“고맙습니다. 민주당”
지난 4월 5일 전주을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당선된 진보당 강성희 후보 사무실 빌딩에 붙어있던 슬로건이다. 전북 전주는 수십 년째 민주당 일당독재가 무너진 적 없는 지역이다. 토호자본은 물론, 행정, 정치권력 모든 곳에 민주당이 뿌리내려 있고 그만큼 민주당의 비리와 부정부패도 많다. 애써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차이를 찾으려는 이들은 전북의 현실을 보면 된다. 이번 재선거 역시, 민주당이 공천한 이스타항공 사장 이상직의 배임과 횡령, 청탁채용 등 비리로 의원직을 상실하며 치러진 선거다. 민주당마저 눈치 보며 무공천으로 대응한 선거였다.
정리해고제, 비정규직법 등 민주당이 자본가 계급을 위해 만든 법안은 하나하나 나열하기도 힘들다. 민주당이 을지로위원회를 앞세워 중요한 계급투쟁을 무력화한 사례는 얼마나 많은가. 보다 참담한 것은 진보당 강성희 당선자가 민주노총 조합원 신분이자, ‘민주노총 후보’로 출마했다는데 있다. 만약 본인 스스로 노동계급의 일부이며, 민주노총 성원이라는 최소한의 자각이라도 있었더라면 민주당을 향한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어떤 이유에서건 꺼낼 수 없는 말이다.
후보 출마 영상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첫날, 정규직이 입던 더러운 작업복과 짝짝이 작업화를 받아 안고 10년을 투쟁해 800여명의 현대자동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이 된 이유가 강성희 당선자 덕인가? 계급투쟁을 고민하는 이라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성과’로 포장하지 않는다.
2014년 818 합의와 후속 합의에 따라, 현대차 불법파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신입사원’으로 ‘입사’해야 했다. 현대차 그룹의 사죄와 보상, 더 이상 비정규직을 양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강제하기는커녕 수십 년간 비정규직 노동자를 불법적으로 양산하고 초과착취한 현대차 자본에 면죄부를 안기는 결과를 맞이한 것이다. 쓰린 결말을 맞은 현대차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결과를 본인의 국회의원 출마영상에 개인 성과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노선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지금도 현장에는 당시 투쟁에 대한 부채의식을 안고 진지하게 비정규직투쟁을 고민하며 묵묵히 활동하는 활동가들이 많다.
민주노총 정치방침(안)을 폐기하라
의회주의 진보정당들에게, 민주당과의 연대는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줄곧 공공연한 노선이었고, 비단 특정 세력만의 행보도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민주노총 후보로 출마한 후보자의 야권연대 행보에 대해 총연맹 차원은커녕, 민주당 지방정부를 상대로 투쟁하는 민주노총 전북본부도, 어떤 단위노조 대표자도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 상황은 좌표를 잃고 표류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현재를 여실히 드러낸다. ‘어차피 계속 그래왔던 것 아닌가?’하는 체념과 무관심이 지배적인 정서라 할 것이다.
4월 24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토론될 민주노총 정치방침(안)은 민주당과의 연대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반성하기는커녕 민주노총 정치방침으로 세우려는 흐름이다. 강성희 당선자는 국회 등원 첫날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윤석열 검찰독재 심판을 위해서는 진보 민주개혁세력의 단결과 연대가 필수”, “1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과 2027년 대선에서 야권의 압도적 승리와 정권교체의 밑거름이 될 것.” 야권연대 노선을 더욱 노골적으로 밝힌 셈이다. 그리고 민주노총 정치방침(안) 두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다. “민주노총은 진보정당을 포함하여 제 민주세력 등 진보 정치세력들의 결집된 힘을 만들어 노동자 집권과 사회변혁을 목표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추진한다.”
‘제 민주세력의 결집’ - 슬그머니 집어넣은 문장이지만, 그 의도는 분명하다. 반윤석열 민주대연합, 즉 민주당과의 연대다. 즉, 민주노총 주도로 단일 진보정당을 만들고, 그 진보정당을 축으로 민주대연합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이는 조직노동운동 전체를 민주당이라는 ‘적’과 손잡게 하겠다는 구상에 불과하다.
4월 24일 임시대대에서 정치방침(안)을 의결하지 않기로 했음에도 정치방침(안)의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 민주노총 정치-총선방침(안)이 관철된다면 야권연대 민주대연합 정치는 민주노총 전체로 확대될 것이다. 제대로 논쟁하고, 확실히 폐기하자. 자본주의의 위기가 노동계급에게 전가되고 있다. 국가와 자본에 맞선 정치총파업과 함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좌표를 아래로부터 다시 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