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차별과 억압은 단일한 개개별의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권력이 섬세한 가공을 거쳐 제조한 갈라치기의 기준은 서로 화합하며 유기적으로 노동자계급을 양분한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생산을 멈춰 세우고 노동자민중의 물리적 압력을 무엇보다 생생히 전달할 수 있는 총파업 투쟁, 총파업 투쟁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현장에서부터의 운동만이 우리의 답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점으로 흩어져있는, 차별에 맞서 싸운 노동자들의 레퍼런스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라는 선으로 이어낼 선전과 선동. 전술이 필요하다. 만약 KEC의, 톨게이트의, 한국마사회의, 120만 민주노총과 그에 연대하는 민중들의 총파업 구호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쓰일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순간을 상상해보자. 투쟁의 힘으로 밀어 올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이상주의자의 낙관론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전진하느냐에 달려있다.
1. 포괄적 차별금지법 운동의 경과
한국 사회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가 처음으로 수면 위 부상한 것은 노무현 시기다. 보다 정확히 하자면 앞선 1997년,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가 이른바 「3금 법안」의 국회 추진 발표 기자회견 등을 통해 '차별금지'를 명시하는 법안을 형상화하기는 했으나. 당시 맥락에서의 '차별금지'란 성별과 학력, 출신 지역에 대해서만 주요 논의가 국한되었던지라 오늘날 운동사회가 논의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비해서는 근원적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金총재는 이날 오후 춘천 한림대 사회교육원 초청 강연에 앞서 미리 배포한 연설문에서 『우리 사회의 통합을 가로 막고 있는 중앙과 지방,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 인간의 사회, 경제적 불평등, 기회 불균등의 시정이 시급하다』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1997년 6월 11일자 조선일보 보도.) 반면 노무현 정권에 이르러 '사회적' 차별금지법이란 새 수식을 얻게 된 차별금지법은 본격적으로 그의 대선 공약집에도 이름을 올린다. ("「사회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국가차별시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사회적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실질적인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겠습니다." 16대 대통령선거 핵심 공약 / 4대비전 20대 기본정책 150대 핵심 과제 - 당당한 대한민국 떳떳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발행 자료 발췌)

▲ (좌) 「3금 법안」의 추진을 발표하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 정치보복-차별대우 금지법 제정 선언, 1997년도 9월 10일 KBS.) (우) 16대 대통령선거 핵심 공약 / 4대비전 20대 기본정책 150대 핵심 과제 - 당당한 대한민국 떳떳한 노무현 속 사회적 차별금지법 언급 페이지. 노무현 사료관.)
이은 2006년 7월. 국가인권위가 '차별금지법 권고법안'을 권고하면서 차별금지법은 다시 언급된다. ("「권고법안」이 금지의 대상으로 하는 차별의 사유는 성별, 장애, 나이, 인종, 학력, 성적지향 등 20개이며, 고용, 재화, 용역, 교통수단, 상업 시설, 토지, 주거시설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의 교육 및 직업훈련, 그리고 법령과 정책의 집행에 있어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차별하는 공권력의 행사(行事) 또는 불행사(不行事)를 차별의 영역으로 하고 있다(안 제2조 제1항)." 『「차별금지법 권고법안」 권고』 중, 2006년도 7월 24일.) 해당 권고 법안에서 드디어 인종, 성적지향 등이 구체 언급되었다. 현시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담론이 합의한 차별 금지의 대상까지 영역이 확장된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7년에는 법무부가 '차별금지법 제정안'을 실제 입법 예고하는 데에 이르른다. 그러나 2007년 10월 2일까지만 해도 입법 예고안에 포함되어있던 7가지 차별 항목들은 (성적 지향, 학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병력, 출신국가, 언어, 범죄 및 보호처분 전력) 바로 다음 달인 11월 초 법제처로 넘어가며 삭제된다.
법무부는 “입법 예고 이후에도 전문 수정은 당연히 가능하고 마지막 국문회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정부안이 제출되는 것”이라며 “공청회 후 일부의 반발을 계기로 검토한 것은 맞지만 애초 20개 항 모두 각각 열거해야 할 차별 사유로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준을 세워 재검토한 것” (누더기 된 소수자 보호 차별금지법, 2007년도 11월 20일, 주간경향) 이라 밝혔지만. 실상은 성적 지향 항목 명시에 대한 기독교 세력의 극렬 반대 때문이었다. 허울뿐인 허수아비로 전락한 노무현 정권의 '사회적' 차별금지법은 갑론을박에 휩싸였다가 2008년 5월 17대 국회가 종료하며 지난한 계류의 시간으로 들어선다. 차별금지법은 2008년, 2011년, 2012년에 각각 민주당,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의원들을 주축으로 발의가 시도되나 모두 해당 국회의 회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자본은 모든 주체에 대한 직/간접 차별을 법적 제재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대신 일부 주체에 대한 차별만을 조정하는 개별적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한국 노동자민중의 목줄을 살짝 풀어주었다. 한국 자본주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근로기준법」, 「고용정책 기본법」,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등 노동관련법, 「여성발전기본법」, 「아동복지법」, 「장애인복지법」,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방송법」, 「교육기본법」[1] 을 차례로 입법시켰다. 하지만 이 모든 법이 제정되는 한편 국가인권위원회의 인력 조직 축소가 이명박 정부 대에 예고된 것은 단순 개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이 자본과 정부의 '차별금지' 시늉에 불과함을 드러냈다. 그마저도 박근혜 정권에 들어서며 민주통합당을 주축으로 한 두 번의 차별금지법안이 철회되고, 차별금지법 제정은 7년의 암묵 속에 잠긴다.
그러던 2013년,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 위원회(UN Committee 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Right·사회권 위원회)가 10일(현지시간) 최종권고에서 결사의 자유 보장과 포괄적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하며 차별금지법 논의는 마침내 암흑기에서 벗어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한국 자본과 정부는 UN의 권고에도 침묵 카드를 택했다. 촛불 이후 당선된 문재인 정부는 아예 자신의 공약집에서 '차별금지법'의 존재 자체를 지웠다. 문재인은 국가인권위법의 존재를 언급하며 부수적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필요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으나. 두 법 간 차이와 한계는 너무나도 명백한 것이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차별금지조항에 대해서는, ① 법체계상의 관점에서 볼 때, 차별금지의 법적 근거가 조직법의 성격을 띠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명시되어있다는 점13), ② 차별개념과 관련한 국제적 기준들은 대체로 직접차별과 함께 간접차별도 포함시키고 있음에 반해, 「국가인권위원회법」은 간접차별을 명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 ③ 성희롱을 차별행위의 한 유형에 포함시키는 것은 주목할 만하지만, 인종에 따른 괴롭힘 등 차별적 괴롭힘을 차별행위의 한 유형에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 ④ 보복행위(차별행위에 대한 합법적 방어활동에 관여하였다는 이유로 당사자에게 가해지는 적대적 행위)도 차별행위의 한 유형에 포함 시키지 않고 있다는 점 등에서 「국가인권위원회법」을 일반적 차별금지법으로 이해하기는 어렵다." 2012년도 11월 20일, 법제처 게시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권리보호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법제 정비 연구』 인용)
연이은 법제정의 불투명화에도 이 법을 갈망하는 한국 노동자민중의 열기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2017년 기자회견을 통해 재출범한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인권은 없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향한 투쟁의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2020년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대표 발의했고 국가인권위가 「평등 및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 시안」을 제시했다. 2021년 5월에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도해 입법을 촉구하는 10만명 서명 시민행동이 진행되었고, 같은 해 6월 민주당을 주축으로 「평등에 관한 법률안」이 제시되었다.

▲ 2021년 5월 24일 시작된 차별금지법 제정하자! 10만행동 국민청원. 해당 청원은 22일 만인 6월 14일, 10만 명의 서명을 달성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 ‘10만 명’ 달성… 시민의 뜻 증명』, 2021년도 6월 14일 비마이너 보도 참조.)
그런가 하면 2021년, 20대 대선 후보 주자로 나선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후보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논의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신중론'을 가장한 반대표를 던졌다. 문재인 대에 희망 고문으로 묵살되던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다시 강경 반대의 입장에 가로막힌 셈이었다. 윤석열은 아예 2021년 12월 14일 관훈토론회 석상에서 차별금지법을 신중히 검토해야 하는 니유는 "헌법의 해석 작업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라며, "(차별금지법은) 개인의 성향이 아니라 헌법에서 보장하는 자유와 평등을 어떻게 조화해야 하느냐에 관한 문제", "평등만 강조해서는 안 된다"[2]는 어처구니 없는 말을 쏟아냈다. 이후 당선된 그가 인권위원회 수장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의사를 표명해 온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을 기용한 것은 윤석열의 '신중 검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거대양당 중 누가 정권을 잡느냐와 무관하게 차별금지법은 2006년 국가인권위 권고부터 2017년 소위 '촛불 정권'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계류되었다. 박근혜를 퇴진시키고 당선된 문재인 정부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외면했던 전철을 이재명 정부 역시 그대로 밟았다. 2025년 5월 18일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1차 토론회 권영국-이재명 간 포괄적 차별금지법 관련 주도권 토론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 권영국/민주노동당: 우선 이재명 후보께 묻겠습니다.(…)이재명 후보께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의하십니까? ▶ 이재명/더불어민주당: (…)차별금지법 관련해서는 차별이 어떤 특정 요소에 의해서 생기는 것, 방치하는 것 바람직하지는 않기는 한데. 방향은 저는 맞다고 보지만 지금 현재는 너무 현안들이 복잡한 게 많이 얽혀 있어서 이거로 새롭게 논쟁, 갈등이 심화되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드립니다.[3])거대양당 중 누구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자신들의 숙제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한국 자본주의 정치 체계의 '선의'에 기대 차별금지를 쟁취할 수는 없다는 사실만이 박근혜-문재인-윤석열-이재명의 교체 주기 속에서 확정된 것이었다.
2. 재단되고, 이용되고, 압축되는 포괄적 차별금지
비정규직 보호법 제정으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한 노무현 정권의 공약집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을 시정하"는 사회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들어있었다는 블랙 코미디는 무엇을 시사할까?

(좌) 2026년 3월 25일부터 4월 3일까지 개최된 진보당 손솔 의원실의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손솔의 작전회의 – 캠퍼스를 가다" 포스터.
(우상단) 2026년 1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의 차별금지법 발의 기자회견 중 손솔. (사진=뉴시스).
(우하단) 광장대선연합정치시민연대-제정당 연석회의 공동 선언 발표 기자회견. 가장 좌측이 진보당 대선 후보자였던 김재연. (사진=뉴스핌).
그것은 설령 어떤 좋은 내용의 법이라 하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얼마든지 그 실력과 힘을 상실할 수 있으며, 그저 겉 포장에 지나지 않는 낱말들의 연속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아래로부터 조직된 노동자민중의 투쟁 압력이 아닌 상부 정치의 표현 과정으로 법이 제정될 때. 입법 투쟁은 자본의 말장난으로 전락해버린다. 입법을 향한 노동자민중의 절실함은 정치가들이 쓸, 좀 더 인간적인 가면의 재료로만 사용된다.
예시를 더 살펴보자. 대통령 선거 국면은 자본주의 정치 질서 하에서 각 정당의 본질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기 중 하나다. 이러한 시기에 이재명과의 단일화를 선택한 김재연 후보와 진보당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는 핵심 요구를 스스로 후퇴시키며 진보 4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의 이재명 지지 선언문에서 이를 삭제하는 선택을 감행한 바 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존엄한 일상을 보장하겠다고, 자신을 지지한 당내 60% 이상의 지지자들 앞에 천명한 지 21일 만이었다. 이는 단순한 전술적 선택이 아니었다. 자본주의 정치 아래 차별과 착취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동자민중의 의지가 심지어는 진보 정당에 의해서조차 어떤 식으로 체제와 '합의'될 수 있는지를 보이는 훌륭한 일례였다.
물론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인 이재명 정부 출범 시기, 손솔을 앞세워 다시 차별금지법 발의를 내세웠던 진보당의 행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진보당이 당 차원에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일관되게 추진할 의지와 전략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특정 주체가—예시로 손솔로 대표되는 진보당식 청년정치—가 이를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 강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들은 동세대 2030 청년세대의, 나아가 노동자민중이 밝히는 광장의 빛은 가지고 싶어 할지언정 그 빛을 어둠 속에 내놓기 위해 목숨 걸고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이는 진보 운동이 거대 양당 중심의 자본주의 정치 구조에 편입될수록, 그리고 투쟁을 자본주의 체제 내부의 절차로 환원할수록 필연적으로 드러나는 한계이기도 하다. 결국 책임지고 싸워야 할 노동자민중이 법안 발의 자체를 투쟁의 전부로 오인하는 순간, 투쟁의 키를 자본주의 정치가들에게 쥐여주는 순간. 현실의 권력 관계를 뒤흔드는 힘은 사라지고 의회주의적 환상만이 남게 된다.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결코 ‘누가 발의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노동자·민중의 집단적 힘에 의해 쟁취되어야 할 권리이며, 제도 정치의 흥정 대상이 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법 문구가 아니라, 차별을 재생산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구조에 맞선 현장의 투쟁이 어떻게 조직되고 확대되는가이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은 이러한 투쟁의 산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
과제는 분명하다. 제도 정치의 협상과 단일화에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투쟁을 조직하고 전면화하는 것이다. 이제 ‘작전회의’는 정치가의 국회가 아니라 노동자의 현장에서, 노동자·민중의 집단적 실천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3. 진정한 차별금지법 쟁취, 어떻게 할 것인가
전 세계적으로 구조적 차별은 심화하고, 청년세대 우경화에 가세하는 혐오 논리들은 가중되는 시기다. 그러나 작금의 세계에 절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 비청소년 1,000명을 대상으로 2020년 6월 23일 국가인권위가 실시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88.5%는 차별 금지를 법제화하는 데 찬성했다. 2019년 3월 인권위가 실시한 국민인식조사에 반해 15.6%포인트 증가한 찬성 수치였다. 같은 응답자의 73.6%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과 같은 성소수자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중받아야 하고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비청소년 10명이 있다고 할 때, 이 중 8명 또는 9명은 이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는 셈이다. 자본과 권력은 '사회적 합의'를 말하지만,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는 이미 6년도 전에 만들어졌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극우화된 혐오 논리를 이기고, 차별과 억압을 넘어설 수 있는 담대한 투쟁과 구상이다.
현장 노동자들에게서 그 구상의 가능성을 찾자고 제안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라는 명확한 이름에 묶이지 않았을 뿐. 현장의 조직된 노동자들은 이미 오랜 시간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차별에 맞서 싸워왔다. 비슷한 시기 현장에 입사한 남자 동기들이 모두 직책을 달고 과장, 부장이 되는데 여성이란 이유로 승진하지 못해 "OO 씨"라는 이름에 갇혀야 했던, 그래서 “제가 하는 업무보다 퀄리티가 높은 것이냐?”고 묻자 면접관에게 “그 남자 사원은 가장이니 이해하라” 는 말을 들어야 했던 KEC 여성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2019년 인권위 차별 시정 권고를 받아냈다. 2024년 12월 "귀걸이가 길다"며 떼라고, "머리가 지저분하다"며 묶으라고 부당한 외모 통제를 가했던 한국마사회에 맞서서도 여성 노동자들은 싸웠다. 노동자의 화장법, 머리 모양, 손톱, 복장, 액세서리류까지 멋대로 하려 들던 사측은 조직된 노동자와 연대 시민들의 끈질긴 항의 끝에 고객 응대 매뉴얼에서 급하게 해당 사항을 제외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이라는 이름으로 자회사를 통해 비정규직화를 강화하려했던 문재인 정부의 횡포에 맞서 싸웠던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여성이 다수였던 톨게이트 사업장 노동자들은 노동의 비정규직화를 강제하는 자본과 정부에 맞서 싸웠고, 투쟁으로 이겨냈다.
외에도 흑인·라틴계 학생이 절대 다수인 저소득 지역 학교에서 발생하는 구조적 교육 불평등 개선을 파업 요구안으로 내걸었던 2019년 시카고 교사 파업[4], 시애틀을 시작으로 LGBTQ+ 노동자 권리 보장을 전면에 내걸며 전개되었던 2023년 스타벅스 파업[5], 성소수자·여성·이주노동자 차별 금지 요구가 포함되어 있었던 2010년대 영국 공공부문 파업 등. 구조적 차별의 주 대상이 되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연대를 위해 총파업 투쟁으로 나선 조직 노동자들의 사례 역시 있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성차별에 맞선 국제 여성파업의 사례도 빼놓을 수 없다. 아이슬란드의 여성들은 유급노동과 무급 가사노동을 동시에 중단하는 총파업을 통해, 가사, 돌봄 노동을 여성에게 전가해 온 체제에 맞섰다. 스페인에서는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노동, 돌봄, 소비, 교육 전반을 멈추는 전면적 파업에 나서며 임금격차, 성폭력, 가부장적 질서에 맞선 집단적 저항을 조직했다. 스위스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은 동일임금과 노동의 저평가에 맞서 대규모 파업을 벌이며 구조적 성차별을 정면으로 문제 삼았다. 더해 이러한 투쟁들은 공통적으로, 비록 각 나름의 한계는 가지고 있을지언정 '아래로부터 조직된', '차별과 억압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투쟁이라는 이상적 상의 현실 가능성을 보여준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차별과 억압은 단일한 개개별의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권력이 섬세한 가공을 거쳐 제조한 갈라치기의 기준은 서로 화합하며 유기적으로 노동자계급을 양분한다. 그렇기에 자본주의 생산을 멈춰 세우고 노동자민중의 물리적 압력을 무엇보다 생생히 전달할 수 있는 총파업 투쟁, 총파업 투쟁으로 대표되는 강력한 현장에서부터의 운동만이 우리의 답이 될 수 있다. 지금은 점으로 흩어져있는, 차별에 맞서 싸운 노동자들의 레퍼런스를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이라는 선으로 이어낼 선전과 선동. 전술이 필요하다. 만약 KEC의, 톨게이트의, 한국마사회의, 120만 민주노총과 그에 연대하는 민중들의 총파업 구호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쓰일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순간을 상상해보자. 투쟁의 힘으로 밀어 올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이상주의자의 낙관론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유일한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전진하느냐에 달려있다.
[1] 목록은 2012년도 11월 20일, 법제처 게시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권리보호 및 지원체계 구축을 위한 법제 정비 연구』를 참조하였음
[2] 발언 전부 『윤석열 "차별금지법, 신중히 검토해야... 평등만 강조하면 안 돼"』, 2021년도 12월 14일, 한국일보 보도 인용.
[3]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토론회 초청 1차 (경제),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자료 인용.
[4] 『Chicago Teachers Demand Affordable Housing as Strike Begins - The union is negotiating on issues that go beyond those typically addressed through collective bargaining』, 2019년도 10월 17일. Truthout.
[5] 『Starbucks workers plan strike over Pride displays, company accuses union of spreading false information』, 2023년도 6월 23일. PBS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