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제 트럼프가 동맹국으로 제일 먼저 파병을 요구하는 다섯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이미 제국주의 침략세력의 일원인 이 국가에서, 한국정부와 자본의 학살공모, 전쟁장사, 그리고 이제 전쟁동참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 땅 노동자계급의 일차적 과제다. 파병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중동 제국주의 패권을 강화시키고,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학살과 인종청소를 확대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 지금껏 대자본가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전쟁무기를 팔고 학살자들과 손잡는 것을 거리낌없이 해왔듯이, 이재명 정부는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가 달라졌을 땐 언제든 파병을 결정할 것이다. 그들은 전쟁과 학살을 행하여 이윤을 얻는 이 체제의 일부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를 멈출 책임이 있다.
3월 20일, 오전 11시 트럼프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에 대한 검토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청년학생 기자회견에서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군함을 보내려는 이재명 정부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침공하며 시작된 전쟁이 20일 째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 침공 이후, 자신을 이란 신정체제에 맞선 구원자처럼 선전했고, 이미 결정적 타격을 가했으며, 전쟁이 곧 끝날 것처럼 언사를 이어갔지만, 전쟁의 진행양상은 트럼프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번 전쟁은 미국의 전략적 오판과 군사적 한계를 노출시키고 있다. 비록 사상자 수나 군사전력에서 열세를 피할 순 없지만, 오랜 시간 미국과의 전쟁을 준비해온 이란은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군사적 반격을 이어가며 미국을 당혹케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월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고 마두로를 납치한 뒤, ‘델시 로드리게스’를 꼭두각시로 만드는데 성공한 경험에 도취되어 충분한 전략적 고려 없이 이란을 침공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암살 후, 트럼프는 이란 내 친미 대중시위를 선동하고, 이란의 ‘로드리게스’를 찾았지만, 상황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 이란은 3월 8일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최고 지도자로 선출하면서 이란 혁명수비대(IRGC) 중심의 강경 대응테세를 견지하고 있다.
미국이 이란의 드론, 미사일 등 군사적 반격 능력에 대해서도 과소평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방공 요격미사일이 바닥날 때까지 값싼 드론 공격을 지속하는 전략을 썼다. 이란의 샤헤드-136 드론 한 대당 가격은 약 6천만원 수준이지만, 이를 막기 위해 미국 패트리어트 방공 시스템이 사용하는 요격 미사일은 개당 약 60억 원 수준이다. 파괴된 레이더와 소진된 미사일을 보충하기 위해 미국은 한국 등에서 패트리어트와 사드체계를 중동으로 긴급 공수해야했다.
이번 전쟁은 그 시작부터, 미국이 주도해 만든 국제질서에 비춰보아도 매우 정당성을 상실한 전쟁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과의 핵협상 도중 선제공격을 하며, ‘임박한 위협’에 대해 ‘예방적 공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핵 협상 과정에 있던 이란이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임박한 위협’을 가했다는 증거는 당연히 어디에도 없다. 이후 미국은 “이번 작전의 목표는 이란 정권이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란이 우라늄 농축시설과 핵무장을 추구한다는 것이 예방 공격의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주변국에 미사일 공격을 일삼아온 이스라엘과, 세계 최대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수십차례 타국을 침공해온 미국의 존재 자체도 예방 공격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들의 침공은 중동 패권을 위해 제국주의 국가가 억압국을 향해 벌이는 가장 반동적인 전쟁이다.
전쟁에 대한 미국 국내 지지도는 그 어느 때보다 낮다. 개전 직후부터 이란 공격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30% 이하였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진주만 공습에 대한 대응으로 일본에 선전포고했을 당시(97%),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92%), 2003년 이라크전(76%)와 눈에 띄게 차이난다. 국제적 반전운동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좌절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어느때보다 열려있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한 국제연대 투쟁에 나서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궁지에 몰린 트럼프의 파병 요구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전략적 궁지에 내몰린 현 상황이, 네타냐후와 트럼프로 하여금 더욱 노골적으로 반동적인 정책을 취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 중 한가지가 다른 국가들을 직접적으로 이 전쟁에 참전시키는 것이다.
트럼프는 3월 14일 한국, 일본, 영국, 프랑스, 중국 5개국에 대해 호르무즈 해협으로 군함 파견을 요청했다. 영국, 프랑스를 비롯해 캐나다, 호주, 독일 등 주요 동맹국들은 이를 거절했다. 중국도 곧바로 거절 의사를 표명했고, 일본과 한국은 19일까지 분명한 답 없이 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 17일 파병에 관해, “SNS 자체를 공식적 요청이라 보지 않는다. 공식 요청을 받은 바 없기에 드릴 말씀이 없다”고 일축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도 “요청이라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상황”이라며 모호한 답변만 내놓았다.
관세협상 과정에서 트럼프에게 왕관까지 선물하며 아부하던 이재명 정부가 현재까지 파병에 이렇듯 모호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정당성도 없고 전략적으로도 궁지에 몰린 이 더러운 전쟁에 파병함으로써 한국 자본가계급이 당장 얻을 이익이 많지 않다는 계산의 결과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의 사태전개에 따라 이재명 정부의 입장은 변할 수도 있다. 미국 제국주의의 적극적 하수인 노릇을 하는 국민의 힘 일각은 이미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적극 참여’하여, 그 댓가로 미국의 경제, 통상 압박을 피하고 ‘신속한 핵 추진 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 및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 등 ‘안보 전략자산 확보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트럼프는 파병에 소극적인 나토 동맹국들과 한국, 일본 등을 향해 격노를 쏟아내며 노골적인 불이익을 주겠다며 협박하고 있다. 사태전개에 따라 트럼프가 격한 보복을 현실화하거나, 이 더러운 전쟁의 주도권을 다시 거머쥐게 되었을 때, 이재명 정부는 계산기를 다시 두드려보고 거리낌없이 파병을 결정할 수도 있다. 애초에 이재명 정부가 고려하는 것은 국익, 즉 한국 총자본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가 뿐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협력해온 한국
이번 중동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그간 자행해 온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의 연장선에 있다. 그리고 한국은 그동안 이스라엘에 무기 판매, 굴착기 수출, 가스개발 동참 등을 통해 팔레스타인 학살을 지원해왔다.
HD현대는 굴착기 수출을 통해 이스라엘의 식민지 점령을 오랫동안 지원해왔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 2012년 HD현대의 굴착기가 불법 정착촌 확장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제기한지 14년이 지났다. 그 이전부터 십수년 넘는 세월 동안 HD현대의 굴착기 판매는 지속되었고, 마사페르 야타를 포함해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수많은 불법 정착촌 건설에 공병기계로 사용됐다.
HD현대는 십수년 동안 이어진 질의와 항의에 한번도 제대로 응답하지 않았다. 현재 이스라엘을 향한 굴착기 수출은 하청업체 에프코 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HD현대는 “주택 철거 현장에 쓰인 장비는 없다” ”이스라엘 철거 업무 등 정부 기관에 판매한 자료가 없다”고 얘기하지만,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최근 몇년 간 가옥파괴에 HD현대 굴착기가 사용되고 있다는 증거사진을 끝없이 제시하고 있다. 국제앰네스티 조사에 따르면, 2019년 9월부터 2024년 7월까지 최소 54건의 건물, 주택, 사업장 철거에 HD현대와 HD현대인프라코어 중장비가 동원되었다. 올해 1월, 휴전안이 발효된 직후에도 이스라엘은 HD현대의 굴착기를 사용해 가자지구 주민들의 주택을 파괴했다.
1월 17일, 이스라엘 군이 두산인프라코어 로고가 새겨진 굴착기를 사용해 가자지구 북가자주 자발리아 민중들의 집을 파괴하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 2021년 HD현대가 인수 합병한 기업이다.
HD현대의 미국, 이스라엘과의 연루는 이뿐만이 아니다. HD현대는 2021년부터 이어온 미국 AI기업 팔란티어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최근 확대강화했다. 팔란티어는 CIA의 투자를 받아 2003년 설립된 이후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기술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제는 2025년 7월 1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 집단학살을 지원하고 불법 유대인 정착촌 건설에 관여한 기업 명단이 담긴 보고서에서 팔란티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이스라엘 군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표적 목록을 생성하기 위해 “라벤더(Lavender)”, “고스펠(Gospel)”, “Where’s Daddy?”와 같은 인공지능 시스템을 개발했으며, 이는 현대전을 재편하고 인공지능의 이중용도적 성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2023년 10월 이전부터 이스라엘과 기술 협력을 이어온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Palantir Technologies Inc.)는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 군에 대한 지원을 확대했다. 팔란티어가 자동 예측 치안 기술, 군사 소프트웨어의 신속하고 대규모 구축 및 배치를 위한 핵심 방위 인프라, 그리고 자동화된 의사결정을 위해 실시간 전장 데이터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인공지능 플랫폼을 제공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 2024년 1월, 팔란티어는 이스라엘과의 새로운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하고 “연대”를 표명하며 텔아비브에서 이사회 회의를 개최했다. 2025년 4월, 팔란티어의 최고경영자는 팔란티어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했다는 비난에 대해 “대부분 테러리스트들이 맞다”고 답변했다. 이 두 사건은 이스라엘의 불법적 무력 사용에 대해 경영진이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를 의도적으로 용인했음을 시사하며, 이러한 행위를 방지하거나 관여를 철회하지 못한 점을 보여준다.
팔란티어가 만든 ‘고담(Gotham)’ 소프트웨어는 감시 영상과 같은 방대한 데이터 세트를 압축하여 검색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로 변환하는 기술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이미 미군의 핵심 도구로 활용됐다. 팔란티어는 미국이민단속국(ICE)과도 협력해 미등록 이주민을 선별, 감시, 추적하는 AI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끔찍한 집단학살 공모기업이기에, 2023년 이후 영국 의료노동자들은 팔란티어가 계약을 통해 국민의료서비스(NHS)의 데이터플랫폼 구축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HD현대와 팔란티어의 협력강화는 작년 8월, 이재명 정부와 트럼프가 체결한 마스가 프로젝트와 연결돼있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미중 패권대결에 있어 미국의 약점인 군함 건조,보수 능력을 보완해주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이다. 즉 이재명 정부와 HD현대 자본은 세계에 더 큰 전쟁을 불러올 미국의 해군력 증강에 적극 협력하고, 이 과정에 집단학살에 AI를 사용해온 군사기업과 협력함을 통해 이윤을 얻고 있다.
방산기업 한화 또한 이스라엘 집단학살에 적극 협력하는 기업이다. 한화는 이스라엘 방산업체인 엘타 시스템즈, 엘빗 시스템즈와 2021년 MOU를 체결했다. 엘타 시스템즈는 킬러 드론을 공급하는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의 자회사이며, 팔레스타인 마을의 조직적 파괴를 위한 무인 불도저를 개발한다. 엘빗 시스템즈는 이스라엘 군이 사용하는 드론과 지상장비의 85%를 생산하고, 서안지구 분리장벽 감시 시스템을 공급했다. 엘빗시스템즈는 백린탄, 집속탄과 같은 대량살상무기 제조 전력도 있다. 이러한 전범기업과 지금도 거래하며 한화는 이윤을 얻고 있다.
이뿐만 아니다. LIG넥스원이 인수한 고스트로보틱스의 군용 로봇은 이스라엘군에 공급되어 그들의 군사작전에 활용되었다. 한국 항공우주산업(KAI)은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과 협력하고 있으며, 현대로템은 이스라엘 방산기업 라파엘의 탱크 방호체계를 도입해 자사 전차에 장착·수출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파괴를 효율화하고 폭력을 극대화하는데 기여한다.
민간 대자본 뿐 아니라,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도 이스라엘의 집단학살에 연루돼있다. 한국석유공사는 자회사 다나페트롤륨을 통해 가자지구 앞바다의 가스를 수탈하는 식민지 개발 프로젝트에 동참하고 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은 해양가스 탐사권을 다나 페트롤륨을 포함한 컨소시엄에 판매했는데, 이스라엘이 판매한 6개 탐사권 면적의 62%는 팔레스타인의 배타적 경제수역이다. 더욱 끔찍한 사실은 해당 식민지 프로젝트 동참 결정이 이스라엘이 가자에 지상군을 투입한 바로 다음 날 진행됐다는 것이다.
다나 페트롤륨과 함께 해당 컨소시엄을 주도했던 이탈리아 석유기업 에니(Eni)는 작년 12월 “향후 이 지역에서 활동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며 철수 의사를 보였다. 이는 작년 9월부터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이탈리아의 총파업 투쟁이 만들어낸 성과 중 하나다. 반면 한국석유공사는 작년 11월 26일 국제행동의 날 집회 때 진행된 면담에서 ‘이 프로젝트에 대해 잘 모른다’며 책임을 회피했을 뿐이다. 현재까지도 한국석유공사는 가스전 수탈에 대해 어떤 책임있는 답변도 하지 않고 있다.
한국의 주요 대학들은 이스라엘과 학술 교류 또한 적극적으로 이어왔다. 고려대학교는 십수년 전부터 이스라엘 대사관과 수차례에 걸쳐 관계를 맺으며 이스라엘 정부, 이스라엘 대학과 고려대 간의 학술적 연계를 강화하고, 이를 재정확보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고려대학교는 1월에는 집단학살을 정당화하는 논설을 생산해온 시온주의자 유발 샤니 교수를 초청해 ‘국제 AI 인권장전 세미나’를 열었고, 이에 항의하는 투쟁이 진행됐다. 이스라엘이 AI기술을 전면도입해 팔레스타인 민중을 학살하는 일을 가속하는 동안 말이다. 3월의 시작과 함께 학살에 공모하는 방산기업들이 버젓이 대학에서 취업박람회를 여는 것에 항의하는 투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전쟁장사꾼들의 새로운 기회
한국은 수많은 곳에 무기를 수출하며, 세계의 무기상 역할을 해왔다. 한국이 판매한 무기는 세계 온갖 지역에서 억압자들의 도구로 사용돼왔다. 인도네시아에선 한국산 장갑차와 물대포, 최루탄이 시위진압용으로 사용되었다. 미얀마 군부도 한국산 최루탄을 시위진압을 위해 사용했다.
이번 중동전쟁도 한국의 방산자본들에게 무기수출을 확대할 절호의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LIG넥스원은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 천궁-2를 UAE(2022년), 사우디(2024년), 이라크(2024년)에 판매해왔다. 이번에 천궁-2가 이란 미사일을 요격하는데 우수한 성능을 보이자, 지난 3개월 기준 저점 대비 LIG넥스원(120%), 한국항공우주(68%), 현대로템(23%) 등 방산기업들의 주가가 올랐고, 군수자본은 K9 자주포, 포병전투장갑차 레드백, 전투기 KF-21, K2 전차 등의 전쟁무기 계약 확대를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듯 한국은 지난 몇년 간 이어진 학살과 전쟁으로부터 무수한 이득을 얻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대자본이 특히 가증스러운 점은, 제국주의 세력과 손잡고 웃으면서, 학살에 기술과 자원을 제공해왔으면서도, 마치 자신들은 중동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제국주의 학살과 침략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는 점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일방적 침공이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가 공식입장을 낸 사안은 오직 ‘중동지역에 있는 한국인들의 신속한 대피’뿐이었다. 해당 침공은 이란과의 핵협상 도중 벌어진 것이었고, 기만적인 부르주아 세계질서의 맥락에서 보더라도 국제법을 버젓이 위반한 행위였음에도, 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이 미납 지역 초등학교를 폭격해 초등학생들을 일거에 대량 살해한 사실에 대해서도 침묵했다. 한국에 배치된 미군의 패트리어트 미사일과 사드 체계의 중동 반출을 받아들이며, 미국이 명분없는 반동적 전쟁에 자원을 동원할 자유를 지지했다.
한국 정부가 인권과 평화에 대해 내세우는 모든 법적, 도덕적 기준은 미국과 이스라엘 앞에서 산산히 흩어졌다. 그런 잣대를 정직하게 들이대는 순간, ‘국익’(이라 부르는 총자본의 이익)에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이들에게 도덕과 윤리기준이란 이익 앞에서 얼마든지 휘어질 수 있는 거추장스러운 명분임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얼마나 반동적이고 더러운 짓이든, 그 앞에서 침묵하는 게 ‘코스피에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민주당 정부는 미국 제국주의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해 중동에 병력을 파견한 전력이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전에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3600여명의 병력을 파견했고,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가 이란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 뒤 ‘호르무즈 호위 연합’ 참여 요청에 응답하며 320여 명의 청해부대 병력을 호르무즈 해협에 보냈다. 노무현은 2003년 4월 1일, 취임 1달 만에 이라크전 파병을 결정한 뒤 국정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명분은 중요합니다. 앞으로 세계질서도 힘이 아닌 명분에 의해서 움직여져야 합니다. 명분에 의해서 움직여 가는 시대가 와야 합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직은 명분이 아니라 현실의 힘이 국제정치 질서를 좌우하고 있습니다. 국내정치에서도 명분론보다는 현실론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 저는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도 들었습니다. 명분에 발목이 잡혀 한미관계를 갈등관계로 몰아가는 것보다, 오랜 동안의 우호관계와 동맹의 도리를 존중하여 어려울 때 미국을 도와주고 한미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 저는 어려운 우리 경제도 생각했습니다. 저는 전쟁 가능성에 대한 불안이 우리 경제를 어렵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미국의 대북 공격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도 하고, 한반도에 전쟁이 없을 것임을 국제투자가들에게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투자자들을 만나본 결과, 그들은 제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전쟁의 위험에 대한 현실적 가능성보다는 한미관계의 갈등요소를 더 큰 불안 요인으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파병 결정은 이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정부에게 ‘명분’, 즉 도덕과 윤리의 문제는 국익이라는 ‘실리’ 앞에서 언제든 치워질 수 있는 거추장스러운 장애물에 불과하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더러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을 도와주고,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하여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이라크의 노동자민중이 처한 억압에 대해선 일말의 고려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철저히 민족적이다. ‘국제 투자자들이 전쟁위험성보다 한미관계 갈등을 불안요인으로 본다’는 사실을 파병을 결정하는 기준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철저히 계급적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제국주의와 손잡기를 택한 결과는 무엇인가? 20년이 지난 오늘날, 세계는 더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되었고, 미국 제국주의는 미중 패권대결에서 지지 않겠다는 몸부림으로 세계 곳곳에서 수탈과 침략을 노골화하며 동아시아 미중 간 전면전이라는 암울한 미래를 향해 우리를 끌어가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 충분한 역량이 있다”며 수출기업 지원 등 전쟁추경 신속 편성을 요구했다. 그에겐 중동전쟁이란 새롭게 제시된 게임의 조건일 뿐이다. 게임의 목표는 국익의 극대화다. 한국정부와 자본이 걱정하는 위기는 오직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한 경제적 위기다. 특히 얼마 전 축배를 터뜨린 ‘코스피 6천’ 거품이 흔들리는 것이다. 한국정부와 자본이 기대하는 기회는 새로운 이윤창출의 기회다. 명분없고 더러운 이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스러져갈 민중들의 삶은 관심사조차 아니다.
한국은 이제 트럼프가 동맹국으로 제일 먼저 파병을 요구하는 다섯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이미 제국주의 침략세력의 일원인 이 국가에서, 한국정부와 자본의 학살공모, 전쟁장사, 그리고 이제 전쟁동참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 땅 노동자계급의 일차적 과제다. 파병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중동 제국주의 패권을 강화시키고, 팔레스타인에서의 집단학살과 인종청소를 확대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기 때문에 막아야 한다. 지금껏 대자본가들에게 이득이 되기 때문에 전쟁무기를 팔고 학살자들과 손잡는 것을 거리낌없이 해왔듯이, 이재명 정부는 계산기를 두드려본 결과가 달라졌을 땐 언제든 파병을 결정할 것이다. 그들은 전쟁과 학살을 행하여 이윤을 얻는 이 체제의 일부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이를 멈출 책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