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상담 일기 (3) ┃ 해고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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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노동상담 일기 (3) ┃ 해고가 시작됐다

  • 김요한
  • 등록 2023.01.11 11:19
  • 조회수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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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대통령실

 

대번에 해고 상담이 늘었다. 모두가 경제위기를 예고하는 지금, 노조도 없고 사회도 주목하지 않는 가장 영세한 사업장의 노동자들부터 수두룩하게 잘려 나가고 있다. 유행처럼 회자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측면에서 따져 볼 때, 대공장‧공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작은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지가 훨씬 열악하다는 것이 모든 노동상담 활동가들의 공론일 것이다. 이곳에서부터 협박과 기망(欺罔)을 마다하지 않은 각종 편법과 꼼수로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있다. 


노동과 자본의 대립 구조에서 자본이 가진 권력의 근원은 간명하다. 노동자들 사이의 취업 경쟁이다.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노동자들 사이의 취업 경쟁은, 겉보기에는 대등한 자유계약인 노동계약에서 자본가가 독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원천이다. 노동자가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으면 자본가는 그를 잘라내고 노동시장에서 손쉽게 대체자를 고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반면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노동력을 지속적으로 판매할 때만 생존 가능한 계급이다. 특히 한국의 알량한 사회안전망 제도에서 실직은 신용불량과 파산으로 이어지는 첫 관문이다.


노동자들의 구조적 취약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자본은 언제나 해고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다. 노동법이 정비되지 않았던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이 주당 80시간을 넘나드는 살인적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던 이유도 마찬가지다. 뻔뻔스럽게도 당시 영국 자본가들은 노동자들 스스로가 공장법의 시행을 반대하며 장시간 노동을 원한다는 청원을 하도록 떠밀었다. 윤석열 같은 치들이 “우선 노동자들부터가 ‘주52시간제’를 싫어한다”고 망발을 일삼았던 것처럼 말이다. (자본가들의 레퍼토리와 수법은 예나 지금이나 어쩜 이리 똑같은지!)


자본가들에게 등이 떠밀린 일부 노동자들이 자신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장시간 노동을 ‘노동의 자유’라며 옹호했던 이유는 간단하다. “만약 그들이 더 긴 노동시간을 거부한다면 다른 노동자들이 즉시 그들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문제는 더 오랜 시간 동안 노동할 것인가 아니면 해고당할 것인가에 있다.” (레너드 호너, 〈공장감독관 보고서(1848년 10월 31일)>)


한국 자본가들은 틈만 나면 한국에서는 고용이 경직돼 있다며 유연한 고용, 쉬운 해고를 요구한다. 적어도 노조 없는 사업장에서만큼은 완벽한 거짓이다. 다 떠나서 미조직 노동자의 절대다수는 ‘권고사직(노동자의 사직을 권고하는 행위, 법률적 효력이 없다)’과 ‘해고(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노동관계를 종료시키는 법률행위)’를 구분하지 못한다. 한 번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터무니없는 해고사유에 해당하는데도 스스로 사직서를 쓰고 나와 법률적 구제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부지기수다.


저축은행에서 일하던 30대 초반 남성 A씨는 3주 후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그동안엔 불안정 노동을 전전하느라 결혼은 엄두를 못 냈는데, 저축은행 같은 번듯한 직장에 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돼 결혼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그러나 A씨는 직장 동료들에게 청첩장까지 돌린 상황에서 시용(試用) 근로계약 해지로 해고됐다. 본인은 정규직인 줄 알았는데 취업규칙에 입사 후 3개월은 시용(試用) 기간이란 단서가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해서 해고의 정당성을 다툴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A씨는 그럴 수 없었다.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사직서를 쓰고 퇴직 처리를 해야 한다는 말에 속아 사직서를 써냈기 때문이다. 사직서를 써서 낸 순간 법률적으로는 해고가 아니라 자발적 사직이 된다. 이런 식의 권고사직을 활용한 편법 해고가 가장 빈번하다.


각종 비정규직 제도를 활용한 해고도 단골 메뉴다. 20대 여성 노동자 B씨는 비서 노동자다. 2년 동안 파견근로계약을 거치고 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채용공고를 믿고 다니던 직장에서 이직했다. 파견근로 계약기간 2년이 지나자 원청업체에서는 경제위기로 신규채용을 중단하기로 했다는 통보 하나로 정규직 전환을 거부했다. B씨는 분개했지만 법률적으로 대응할 수단이 전무했다. 파견 노동자인 B씨가 원청업체에 고용을 요구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는 없고, 그렇다고 파견업체에 재계약을 요구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파견근로계약을 비롯한 각종 간접고용 구조는 자본가가 해고권을 아무런 법률적 리스크 없이 무제한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합법화된 제도다.


직접 고용된 계약직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도 갈수록 진화한다. 정부 출자 출연기관에서 일하던 C씨는 2년간의 기간제 근로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에서 인사평가 점수 미달로 해고됐다. 계약직 노동자들은 그나마 재계약 갱신기대권을 다투는 방법으로 부당해고를 법률적으로 다툴 수 있다. 이후 밝혀진 해고사유는 황당했다. C씨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모 관리자가 C씨의 노조 가입을 이유로 엉터리 인사평가를 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해당 관리자는 부하 직원을 사주해 C씨를 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로 신고하도록 했다. 그러고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2차 피해를 예방한다며 C씨의 직장 내 괴롭힘 혐의가 무엇인지를 비밀로 해 C씨의 방어권을 봉쇄했다. 기간제법에 따라 2년이 지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이처럼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삼아 2년 동안 실컷 부려 먹다 2년이 되는 시점에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들어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것도 모자라 자본과 자본가정부는 입을 모아 쉬운 해고가 더 넘치게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반복하지만 쉬운 해고야말로 자본가가 일체의 독재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근원이 되기 때문이다. 1월 9일 고용노동부는 신년 업무보고에서 “파견제도 선진화” 운운하며 “파견‧도급기준 법제화, 파견대상 확대”가 필요하다고 떠벌렸다. 의도는 뻔하다. 노동자 파견 제도는 기본적으로 중간착취, 사람 장사에 불과하다. 최근 자본주의 사법부조차 불법 파견의 잣대를 강화하자, 마음대로 사람을 썼다 자를 수 있는 합법 파견의 범위를 넓히겠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 400만 노동자들에게도 핵심은 해고제한 규정(근로기준법 제23조제1항) 미적용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이라는 생색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자본가정부는 고용노동부 업무 보고에서 “근로자의 인격권 보호를 중심으로 사업장 부담을 고려하면서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을 단계적으로 적용”하겠다는 말도 내놨다. 장담컨대 해고제한 규정은 “사업장 부담”을 이유로 가장 늦게 적용하거나 미적용할 가능성이 높다. 자유로운 해고가 가능하다면 나머지 일체의 법조항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5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단지 임금체불에 항의했다는 이유만으로 노동자들이 잘려 나간다. 


바로 이러한 현실 위에서 정권과 자본의 민주노조 공격이 시작되고 있다. 수많은 노동자가 안정된 일자리 없이 상시적인 해고로 고통받는 이유가 대기업‧공기업 철밥통 노조의 자기 밥그릇 지키기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할 것이다. 우선은 민주노조 진영 내 ‘노동시장 이중구조’ 피해 당사자들이 더욱 크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하청 노동자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 플랫폼 노동자들이 문제의 진짜 근원은 정권과 자본이라고, 가장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을 팔아먹지 말라고 강력히 항의해야 한다. 그리고 전체 조직노동자 운동 앞에는 이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두 가지 갈림길이 놓여 있다.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며 자본에 맞서 결연히 싸울 것이냐, 아니면 저들에 굴복해 사회의 특권집단에 불과하다는 모욕과 음해를 스스로 감수할 것이냐 하는 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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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비정규직 이제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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