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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들어본 반도체 노동자들의 목소리

다크램 인형권익위원회(변혁적여성운동네… mtosocialism@gmail.com
기사입력 2026.03.08 17:49 | 조회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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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올림·빵과장미의 ‘찾아가는 집담회’ 현장 스케치

     

    2026년 2월 21일. 여성의 날을 앞둔 토요일 오후, 설 연휴의 들뜬 기운이 가시지 않은 거리와 달리 내가 향한 곳에는 조금 특별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매년 3월 8일 여성의 날을 앞두고 우리는 분노와 결의를 다지곤 하지만, 올해 내 마음 한구석은 유독 무거웠다. 초부터 화려한 AI 호황과 반도체 산업의 장밋빛 전망이 쏟아졌지만, 그 화려함 뒤에 더욱 잔혹하게 가려진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문득 작년 9월 27일, 기후정의행진 현장에서 반올림 부스를 도우며 마주했던 영정사진 속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 생생한 모습들을 기억하며 묻고 싶었다. 모두가 찬양하는 반도체 산업의 그늘 아래, 여성 노동자들의 '오늘'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자들의 진짜 목소리를 세상에 꺼내 놓기 위한 우리의 간절한 시도가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반도체 자본과 성장을 강조하는 정부, 이들은 현장에서 일하고 퇴근해 다시 집으로 출근하는 여성 노동자의 이중굴레를 걷어내고 있을까? 더는 일터에서 아프지 않고 죽지 않는 노동안전의 성장이 찾아온다는 것일까? 오히려 경제, 전쟁, 체제 위기가 더해져 잘나가는 때에 저들은 여성 노동자의 이중굴레를 더 옥죄고 있기에,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으로, 투쟁으로 일어서는 것 아닐까.

     

    1부: 왜 ‘여성파업’을 고민할까?

     

    집담회는 '빵과장미’의 정은희 동지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사전 신청을 한 동지들이 하나둘 도착하며 반올림 사무실을 채웠다. 1부, 나는 발제자로서 사람들 앞에 섰다. 준비한 원고를 넘기며 내가 가장 깊게 고민하고 함께 나누고 싶었던 지점은 바로 ‘여성파업을 조직해야 하는 이유’를 되짚어 보는 것이었다.

     

    다크램 인형권익위원회 동지의 발표 장면

     

    빵과장미의 활동명 '광고판' 동지가 준비해 준 슬라이드를 보며 발제문을 준비할 때, 나는 밀려오는 분노로 마음이 힘들었다. 이재명 정부에서도 노동 탄압의 칼날은 멈추지 않았고, 그 칼날은 늘 가장 약한 곳부터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지 않는 반도체특별법은 지난 1월 본회의를 통과했고, 2월 2일에는 세종호텔에서 농성하던 동지들이 폭력적으로 연행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여전히 노동자를 탄압하는 분위기 속에서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더욱 깊은 소외로 내몰리고 있었다.

     

    나는 이 비참한 현실을 단순히 '힘들다'는 하소연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우리가 겪는 이 부당함을 하나로 모아, 세상을 멈추는 강력한 힘인 ‘여성파업’으로 조직해 보자는 제안을 던졌다.

     

    2부: 화려한 AI 호황 속 더욱 숨겨지는 노동자들의 현실

     

    2부가 시작되기 전, 동지들이 함께 만든 반올림 마스코트 ‘진복이’ 영상을 보았다. 인형 진복이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현실을 간결하면서도 날카롭게 짚어주었다. 짧은 영상이었지만 모두에게 울림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어 반올림의 상임활동가 이종란 노무사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슬라이드에는 그동안 외면당했던 산재 피해자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지나갔고, 이종란 노무사님은 눈물을 참으며 AI 산업의 화려한 전망이나 반도체 특별법 같은 이야기들이 정작 현장 노동자들의 생명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주었다.

     

    이종란 노무사의 발표 장면

     

    [이종란 노무사 발제문 발췌] 
    “조혈기, 생식기, 정신질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 이미 2020년 정부실태조사로 밝혀졌음에도 예방대책은 마련되지 않았다. 생식독성 피해로 인한 2세 질환 피해자들이 용기내어 산재신청을 했지만 정부와 국회의 외면속에 자녀산재법 개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고, 우울, 수면장애, 아파도 출근하는 프리젠티즘 등의 정신건강 악화의 문제도 지속되거나 악화되었다. 2025년 3월 26일 삼성반도체 연구개발노동자 고 김치엽 님은 인력부족 속에 성과를 내기 위한 프로젝트팀에서 우울, 수면장애를 견디며 일하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이 초래되었다.”

     

    국가가 경제 성장을 말할 때, 그 성장의 밑바탕이 된 노동자, 특히 여성 노동자들의 건강은 철저히 지워졌다. 특히 반도체 고등학교까지 만들며 아이들을 현장으로 밀어 넣으려는 정부가 정작 그 아이들이 마주할 위험은 감추고 있다는 사실에 주먹이 쥐어졌다.

     

    발제 내용 중 반도체 산업에 여성 노동자가 유독 많은 이유가 기억에 남는다. 아시아의 기업주들이 여성 노동자를 선호해온 이유는 ‘손이 날래고 참을성이 있어 단순 조립 업무에 적합하다’는 성별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임금이나 노동조건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고 통제가 쉽다는 이유로 젊은 여성들을 채용해왔다는 사실을 마주하며, 지금의 반도체 호황이 얼마나 많은 생명을 짓밟고 일어선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어서 전 삼성전자 노동자이자 산재 피해 당사자인 정향숙 활동가님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활동가님이 직접 겪은 현장의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차별적이고 참담했다.

     

    정향숙 활동가의 발표 장면

     

    [정향숙 활동가 발제문 발췌]
    “개인적으로는 한 번의 계류 유산*을 경험했습니다. 당시에는 유산을 하게 되면 개인 월차를 사용해서 쉬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 일을 일과 연결해서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돌아보면 유산이나 여성 질환을 겪는 동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일과 연결해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물질을 다루고 있었는지, 그것이 몸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 깊이 이야기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산재라는 개념 자체가 저희가 일하는 곳엔 없었습니다. 저 역시 나중에 중재 협약에 유산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알고 신청을 했고 보상을 받긴 했으나, ‘이러한 것도 보상을 해주는구나’였지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의 어떠한 문제 때문에 이런 걸 보상해 주지?’라는 생각은 못 했었습니다. 여성 노동자가 많았던 곳이었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하는 여사원들이 많았습니다. 관리자였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 그리고 복직 계획까지 관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막연하게 미디어를 통해서만 접했던 ‘산재’는 누군가의 고통스러운 삶 그 자체였다. 발제 중 “왜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개인의 문제로만 남았는지, 왜 그때는 질문하지 않았는지” 라는 발언에 특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남성 엔지니어들이 가진 ‘환경수첩’조차 지급받지 못했다고 한다. 사측은 이미 알고 있는 위험 속에 뻔뻔하게도 노동자들을 갈아 넣고 있었다.

     

    3부: 남아있는 이야기

     

    모든 발제가 끝나고, 3부는 참가자들의 소감과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미 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온 참가자들이었음에도, 생생한 증언 앞에서 더욱 뜨겁게 끓어오르는 분노가 느껴졌다. 특히 이주노동자가 반도체 산업 현장에서 겪는 차별을 묻는 한 참가자의 질문을 들으며, 우리가 가진 연대의 마음이 얼마나 더 넓어져야 하는지를 다시금 깨달았다. 아픈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 너머의 아픔까지 먼저 들여다보고 힘을 합쳐 차별을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오늘 이곳에 모인 이유가 아닐까.

     

    집담회는 마무리되었지만, 현장의 열기는 여전히 생생하다. 3월 6일 3.8 여성파업대회와 고 황유미 님의 19주기 추모제에 이어 이 불꽃이 세상으로 나와 더욱 타오르기를 기대하며, 다시 한번 여성의 날의 의미를 가슴 깊이 되새겨본다.

     

     

    *임신 20주 이내에 태아가 사망하고, 자궁 경부가 닫힌 채로 사망한 태아가 자중 내에 수일에서 수주 동안 배출되지 않고 머물러 있는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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