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HD현대중공업 이주노동자들은 일요일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병원인 울산이주민센터 진료소를 찾아 수줍게 아픈 곳을 말하는 이가 아니었다. 낯선 한국 땅 울산 동구 거리가 무서워서 가능한 한 친구와 함께 다니는 겁 많은 노동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한국 땅에서 누구보다 당당하게 글로벌 1위 조선사 HD현대중공업 거대 자본의 차별과 불의에 맞서 노동의 권리를 온몸으로 말하는 노동자였다.
사진: 울산이주민센터
6월 13일, 투쟁을 선택하고 모인 수백여 이주노동자
6월 13일 200여 명의 HD 직접고용 E-7-3 이주노동자가, 현대중공업에서 남목고개를 넘어 울산이주민센터로 모여들었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분명했다. 5월 27일, HD현대중공업 사측이 직접고용한 E-7-3비자 이주노동자 전원에게 임금 삭감과 성과차등임금제 도입을 담은 ‘새로운 근로계약서’ 작성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울산이주민센터 김현주 센터장의 진행으로 2시간 넘게 1부 결의대회의 경과보고, 이주노동자 대표단 투쟁사와 여러 단위의 연대사, 전체 토론 그리고 2부 기자간담회가 이어졌다. 약 250명의 정주·이주노동자는 모두 집중했다.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스리랑카 노동자들이었다. 성서공단지회 차민다 전 부지회장이 스리랑카 통역을 맡아, 참가자들은 서로 익숙한 언어로 발언에 집중할 수 있었다.
늦은 저녁까지도 이주노동자들이 계속 대회장을 찾았다. 1층 결의대회 장소 바닥에 앉고, 의자에 앉고, 몸을 붙여서 서도 장소가 비좁았다. 대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이주노동자들은 문밖 인도와 골목에서 스튜디오알 라이브 스트리밍을 보며 함께했다. 몇몇은 자신이 직접 라이브 스트리밍을 해서 미처 오지 못한 동료들이 대회를 시청하도록 도왔다.
사진: 울산이주민센터
밥값 차별에서 임금삭감, 성과차등임금제 차별로
그동안 HD현대중공업은 직접고용 이주노동자들에게 밥값으로 월 571,000원(2004년까지는 516,500원)을 공제했다. 2024년까지는 세 끼 모두 공제했고, 2025년부터는 중식은 기본 공제하고 조식·석식은 식사 시 공제했다. 세 끼를 회사에서 먹었다고 가정하면 그동안 밥값만 1천 7백여만 원이다.
이 밥값 공제는 어떤 법·제도 근거도 없이 이루어졌다. 같은 기간 사내협력업체에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밥값을 공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지독한 차별이고 인권침해다. 게다가 직접고용 이주노동자는 2025년 성과급도 아예 받지 못했다. HD현대중공업은 밥값 공제가 사회적으로 지탄받자, 밥값 공제를 중단하는 대신 기본급을 대폭 삭감하고 ‘성과’대로 임금 전체를 차별하는 새로운 근로계약서 작성을 강요한 것이다.
새 근로계약서에는 기본급 20여만 원 등의 임금삭감과 1987년 현대중공업 민주노조가 만들어진 후 투쟁으로 철폐한 성과차등임금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성과자는 해고한다. 한국어 실력부터 솔선수범 자세, 다기능 수행능력 등 모든 부분에 점수를 매긴다. 분노한 노동자들의 서명 거부에, HD현대중공업 자본은 보름 동안 조직적 협박과 괴롭힘을 펼쳤다.
기존 통상임금 283만원을 받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기본급을 238,400원, 잔업 30시간 시 월 급여로는 287,693원을 삭감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집단적으로 서명을 거부하며 반발하자, HD자본은 중간에 기본급을 70,000원 올린 수정 근로계약서를 제시했으나, 성과차등임금제 적용은 그대로였다. 성과차등제 적용 전이라도, 기본급 168,400원, 잔업 30시간 시 월 급여 208,000원을 삭감하는 내용이다. 이런 흐름은 6월 9일 울산이주민센터가 기고한 프레시안 기사로 처음 언론에 폭로되며 더 많은 이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난생처음 외쳐보는 구호, 그리고 “투쟁!”
이러한 차별과 억압이 그동안 HD현대중공업 현장에서 차별당하며 쌓인 직접고용 E-7-3 이주노동자들의 분노를 솟구치게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HD현대중공업 입사 관문이었던 밥값 차별 근로계약서는 거부하지 못했지만, 밥값 공제 대신 임금삭감과 성과차등임금제로 영혼마저 차별당하라는 횡포에까지 침묵할 순 없었다. 이주노동자들은 허리띠를 더 졸라매고, 동료를 짓밟고 회사에 쩔쩔매는 대신 투쟁을 택했다.
대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이 HD현중 자본으로부터 받는 차별과 불의를 함께 증언하고, 냉정하고 절제된 분노를 쏟아내며, 스스로의 요구를 함께 결정했다. 물론 사측의 전방위적 협박으로, 모두가 개악된 근로계약서 서명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개악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노동자든 작성하지 않고 버틴 노동자든, 이들은 모두가 같은 운명공동체이며, 함께 싸워야 함께 승리한다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HD현대중공업의 전체 직접고용 E-7-3 이주노동자의 1/3이 한날 한자리에 모이는 초유의 사건, 단결투쟁의 장을 만들 수 있었다.
사진: 울산이주민센터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정당한 요구를 ‘8자 구호’로 난생처음 외쳤다. 그 우렁한 소리와 이글거리는 눈빛에 그 자리에 모인 서로가 압도되었다. “나쁜 계약 철회하라! 철회하라!”, “투쟁!”, “임금삭감 철회하라! 철회하라!”, “투쟁!”, “밥값차별 하지마라!”, “잔업차별 하지마라!”, “성과금을 지급하라!”, “재계약을 보장하라”, “투쟁!” 이주노동자들이 팔뚝질하며 외친 “투쟁”은 너무나 명확했다. 억눌린 차별에 터져 나온 분노는 밝고 힘찼다.
그동안 수많은 이주노동자의 개별적 저항이 있었고, 이주노조와 성서공단노조 등으로 뭉쳐 싸워 온 이주노동자들도 있지만, 단일 거대 공장에서 수백 명이 집단적으로 투쟁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그만큼 놀랄 만한 투쟁이다. HD현대중공업은 자신의 이윤만을 위해 정주노동자가 떠난 자리를 더 부려먹기 쉬운 이주노동자로 대체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노예’가 아니라 ‘인간’이며, ‘노동자’임을 당차게 증명했다. 6월 13일 수백여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이미 20명 중 1명이 이주민인 한국의 노동운동사, 비정규직 운동사를 새로 썼다.
사진: 울산이주민센터
“인마”, “서명 안 하면, 비자 안 주고 집으로 보내버릴 거야”
여기는 이주노동자 체류권과 직업선택의 자유, 동등한 노동권 등을 봉쇄하는 한국이다. 한국 조선소 자본에 종속된 비자로 취업한 노동자에게 ‘사장님’은 목숨줄을 쥔 하느님과 다를 바 없다. 직접고용 E-7-3(조선소 일반 기능 인력) 노동자들은 그 어떤 노동자보다 더 사용자와의 관계에 있어 절대적인 종속관계에 놓여 있다. 고용허가제(E-9) 노동자는 최초 취업 기간 3년 동안 세 번 등 사장의 동의를 전제로 몇 번의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 그런데 E-7-3 노동자는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2년 전에도 이미 HD현대중공업 직접고용 E-7-3비자는 쪼개기 계약과 해고로 사회문제가 된 바 있지만, 개선된 게 거의 없다.
HD현대중공업은 자신의 청탁으로 한국 정부가 만들어준 E-7-3비자의 특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를 악용해 이주노동자들을 협박했다. 이주노동자들의 증언과 함께 실제 관리자들의 목소리가 담긴 녹취록도 공개되었다.
“D10 비자 안 나와. 그거에 대해서 더 이상 얘기하지 마”
“회사에서는 이제 위에서 정책이 그렇게 바뀌면서 이제는 D10 비자를 안 해주기로 했어”
“국가에서 안 해주고 회사에서 안 해준다는데. 분명히 내가 너한테 서너 번을 계약 안 하면은 사인 안 하면 스리랑카 가야 된다고 얘기했어”
“너는 할 말이 없는 거야. 인마”
“팀장님이나 우리 파트장님들은 충분히 너희들한테 정보를 다 제공했고 설명했어. 그리고 한편으로는 사정도 했고, 강압적으로 해라 이런 식으로도 했고, 할 만큼은 충분히 다 했어”
“앞으로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안 돼. 어떤 회사 지침이 내려와서 이런 비슷한 일이 있더라도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 얘기하는 거야”
“근로계약서에 사인 안 할 거면, 여기 사직서에 사인해”
“너는 가족 데려서 있으니까 가족 생각해서 사인해”
“사인 안 하면, 잔업 안 준다”
“6월 8일부터 싸인한 사람만 밥값 안 내도 돼”
“먼저 사인한 사람은 일 못해도 SS(등급)를 주겠다. 나중에 사인하면 등급 낮게 준다”
녹취를 듣는 동안 눈에서는 눈물이, 입에서는 “인마, 인마 하지마 인마”라는 욕이 나올 듯 화가 나고 고통스러웠다. 이주노동자들은 “정신적 고문”, “괴롭힘”, “협박”이라고 했다. 이주노동자들이 증언한 자본의 언행은 기가 막힌다. 거짓과 사기, 강요와 협박, 위계와 괴롭힘... 일방적 노동조건 불이익 변경도 위법한데, 이주노동자에게 서명을 받아내기 위한 자본의 조직적 탄압은 위법도 위법이지만, ‘글로벌 1위’답게 매우 폭력적이다.
대회 자리에서 민주노총 울산법률원 이선이 소장은 ‘현대중공업의 횡포가 위법하다’는 법률 검토 의견을 전달했다. 모두 알고 있었지만, 통쾌한 마음에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어떤 노동자는 서명하라는 말만 일주일 내내 종일 듣는 게 힘들고 머리가 하도 아파서 금요일 오후에 조퇴를 신청했다. 하지만 관리자는 그를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 대신 서명할 때까지 집에 보내지 않았고, 결국 기진맥진한 노동자로부터 서명을 받아냈다.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를 노예로 생각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연대와 단결로 역사의 진전에 함께하자
이주노동자들은 이러한 폭력을 당하고도 투쟁에 두려움이 없었다. “우리는 이미 블랙리스트다”라고도 말했다. “우리는 끝까지 함께 싸운다”고 외쳤다.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지 가늠할 수 없다. 글로벌 자본에 맞서 당당히 노동자임을 선언하고 투쟁하는 모습은 얼마나 거룩한 인간선언인가!
그 엄숙한 투쟁 앞에 만약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라면 다른 나라에 일하러 갈 용기를 낼 수 있을까? 먼 타국에서 그것도 비자가 걸려있는 상황에서 불의에 저항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쩌면, 이 분노가 수십 년 전부터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들에게 켜켜이 쌓인 분노의 분출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의 투쟁을 결의하며 정주노동자들에게 딱 한 가지를 부탁했다. 바로 ‘연대’다. “한국 노동자와 같이 싸우면 더 힘이 세진다. 연대해달라!” 그렇다. 함께 일하는 정주노동자, 이주노동자가 함께 싸우면 더 힘이 세진다. 20명 중 1명이 이주민인 사회, 특히 현대중공업은 전체 노동자 10명 중 2명이 이주노동자다. 민주노조의 역사가 새로 쓰이고 있다. 단결하고 연대하자!
HD현중자본의 공격이 시작된 이후인 6월 5일,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사측에 항의했다. 현대중공업지부는 “이주노동자 인사제도 일방적 개편에 대한 철회 및 차별 시정 요구의 건” 공문을 발송해 문제를 지적하고 즉각 중단할 것을 사측에 촉구했다. 하지만 자본은 노동조합의 말을 듣지 않았다. 6월 9일 현중사내하청지회가 전 공장 노보를 통해 지부 공문과 관련 소식을 알리며 근로계약서 강제전환 중단을 요구했다. 현중지부와 사내하청지회는 연대사를 통해서도 힘찬 연대를 약속했다.
6월 13일 결의대회에 연대한 서영호양봉수열사정신계승사업회 활동가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기억을 떠올렸다. ‘2003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연차 사용 요구에 식칼테러를 당한 후 울산공장에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위원회(비투위)를 꾸리던 시절이 절로 떠오른다, 분위기가 그때와 흡사하다.’ 23년이 지난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오늘 그 투쟁에는 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의 얼굴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시간 이주노동자운동에 헌신해온 이주노동자차별철폐네트워크 ‘사람이왔다’ 활동가들은 ‘이주노동자가 이렇게 대규모로 차별을 말하고 권리를 말하는 모습을 처음 본다며 너무나 감동적’이라고 했다. 같은 이주노동자로 E-2비자를 받고 한국에서 일하는 여러 국적의 외국어교육지회 노동자들은 ‘이 싸움은 우리의 투쟁과 똑같다’며 ‘차별에 맞서 같이 싸우고 연대한다’고 약속했다. 다른 영남지역 방글라데시·스리랑카 노동자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노동조합 간부와 활동가로서 참여한 정주노동자들은 한국 노동자운동에서 이주노동자가 대중적 투쟁으로 진출하는 역사적 순간을 목도하며 자신의 역할을 고민했다. 대회가 마치자마자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이 쏟아졌다.
6월 17일 19시, 이주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 울산동구지청 앞에서 첫 번째 집회를 열고 일산해수욕장으로 행진한다. 한국 정부에, 한국 사회에 처음으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말하고 HD현대중공업의 부당한 차별과 횡포를 규탄할 것이다. 숱한 차별과 탄압을 자행하면서도, HD현대중공업과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집단적 저항을 고려하지 못했을 것이다. ‘해고’와 ‘추방’이라는 자본가들의 권력이 있으니 말이다.
너희 국가와 자본은 “우리는 노예가 아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이주·정주노동자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어라! HD현대중공업 E-7-3 직접고용 이주노동자가 뭉친 역사적 투쟁에 현대중공업 원하청노동자와 울산지역, 금속노조, 이주운동진영, 시민사회 등 전국의 동지들이 연대하자. 자본의 착취와 차별에 맞선 원청교섭 투쟁을, 분열공작에 맞선 이주·정주노동자의 단결투쟁으로 확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