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이중권력: 자기조직화와 총회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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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번역] 이중권력: 자기조직화와 총회의 중요성

  • 강성윤
  • 등록 2026.06.08 18:20
  • 조회수 175

자기조직화는 계급투쟁의 열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데,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에게 이는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정치 권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출발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우리는 팔레스타인 학살에 맞선 학생 봉기가 전 세계를 휩쓰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지난 수개월간 미국과 전 세계의 학생들은 베트남 전쟁에 반대했던 것처럼 가자를 위해 시위를 벌였다. 청년들 사이에서 반제국주의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들은 기꺼이 싸우고 국가에 맞서며, 팔레스타인 해방을 보게 되길 진심으로 염원한다.

 

미국 대학들과 이스라엘 국가의 유착 관계에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점거 농성과 직접 행동이 이어지면서, 운동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방법과 전략을 둘러싸고 공개적인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편집자 주] 이 글이 쓰여진 것은 2024년 6월이라 시기적으로 오늘날 정세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자기조직화와 총회의 개념과 그 중요성에 대한 논의를 전달하기 위해 글을 번역해 게재한다.

 

의식의 발전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투쟁 과정과 다양한 자기조직화 형태가 나타났다. “자기조직화”는 곧 민주적 총회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총회에서 투쟁의 다음 단계를 민주적으로 결정한다. 총회는 자기조직화의 표현 방식이다. 자기조직화란 관료적 지도부에 맞서 싸우는 이들의 의식적 조직화다. 자기조직화는 최근의 계급투쟁 과정에서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2019년 칠레의 방어 위원회나, 2024년 아르헨티나에서 이른바 옴니버스 법안에 항의하기 위해 등장한 동네 총회가 그 예다. 미국에서도 1919년 시애틀과 같이 대중적 분노가 첨예해진 순간에 자기조직화가 발전했다.

 

미국에서 우리는 바이든 행정부의 절대적 지지 아래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끔찍한 학살에 직면해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을 위해 무기, 미사일, 경제적·기술적·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바이든 행정부는 공화당과 극우 트럼프 진영을 포함한 양당 체제 전체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에 맞서서, 학살을 끝내고 팔레스타인을 해방하라고 요구하는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이 제국의 심장부에서 폭발했다. 이 운동은 7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다양한 형태와 단계를 거치며 이어져 왔다. 봄철에 대학 캠퍼스를 휩쓴 점거 농성 물결 이후 현재 운동은 갈림길에 서 있으며, 지난 수개월의 경험으로부터 결론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팔레스타인 운동은 총회의 형태를 띤 자기조직화가 결여되어 있다.

 

이는 운동을 이끄는 주요 경향 전반에 해당되는 사실이며, 이들은 매우 다양한 전략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뉴욕시의 ‘우리 생애 안에(Within Our Lifetime)’, 사회주의해방당(Party for Socialism and Liberation),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학생들(Students for Justice in Palestine)’, ‘평화를 위한 유대인의 목소리(Jewish Voice for Peace)’ 등이 포함된다. 이들의 조직화는 “포퓰리즘적”, “마오주의적”, “스탈린주의적”, “탈식민적” 입장 등을 준거점으로 삼는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노동자·학생의 총회와 자기조직화를 추동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점거 농성은 작고 선출되지 않은, 게다가 많은 경우 비밀스럽게 활동하는 지도부가 조직했고, 그들이 대부분의 핵심 사안을 결정했다.

 

이는 거리 시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시위는 수십만 명을 학살에 맞선 투쟁에 끌어들였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다수는 매일같이 행진하면서도 그 행진에서 내세우는 요구나 더 광범위한 운동의 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발언권을 가지지 못했다.

 

그 이유는 정책을 바꾸거나 휴전 등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해 국가를 압박하는 것이 조직들의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민주당과 연계된 NGO 같은 다른 관료들과 협력한다. 그들은 “보안 우려” 때문에, 혹은 선별된 학생 집단이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토론을 위한 민주적 공간이 발전하는 것을 거부하거나 가로막는다. 이 때문에 운동은 관료화되고, 자신의 삶과 미래를 걸고 거리로 나선 수천 명의 학생들에게서 숙의적 의사 결정의 권리를 박탈한다.

 

(*다음 글도 함께 읽어 보길 권한다: 팔레스타인 해방과 연속혁명)

 

총회를 운영하는 것은 노동자와 학생이 힘을 합쳐 싸우고, 조직하고, 운동을 확장하고, 토론하고, 나아갈 길을 표결하는 방법을 결정하고 의견을 내는 데 필수적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아르헨티나에서는 우파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의 초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선 투쟁이 수십 개의 “거리 총회”를 낳았다. 이 총회에 학생, 노동자, 연금 생활자들이 모여서 어떻게 반격하고 자신의 권리를 지킬지 결정한다. 그 외에 학생들이 숙의하고 표결하는 대학 총회라든가, 정부 정책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며 어떻게 투쟁을 전진시킬지 토론하기 위해 모인 여성과 퀴어들의 총회도 있다. 이 총회들은 집회, 규탄, 대학 행사 등 밀레이 정부에 맞서 취할 조치들을 토론하고 표결한다.

 

총회를 비롯해서 계급투쟁 국면에 생겨나는 자기조직화 기구들은 특정 전술 및 행동에 대해서뿐 아니라 운동의 정치적·전략적 전망에 대해서 토론하고, 의견을 교환하고, 표결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이 물음들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에서 어떤 길이 가장 성공적인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고, 어떻게 계속 나아갈지 함께 결정할 수 있다. 우리는 한정된 소수의 핵심 인물이 이런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본다.

 

우리는 운동에 관계된 모든 이들의 생각을 알아 둘 필요가 있고, 이것이야말로 더 많은 사람을 투쟁에 끌어들이는 방법이다. 노동조합, 학생운동, 노동계급은 전쟁 체제를 멈출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자신만의 수단을 사용하는 운동,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대중운동, 학살을 끝내려면 바로 이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총회, 자기조직화, “직접민주주의”를 발전시킴으로써 이를 쟁취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총회는 모두가 함께 모여 다음 단계를 결정하는 “우리의”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점거 농성 지도부의 한계 중 하나는 민주적 조직화를 중심 과제로 삼아 학생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점거 농성은 확장되기 어려웠고 학생들은 탄압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했다. 우리는 운동을 확장해서 운동이 더 큰 힘을 얻고 민주적 방식으로 결정된 독자적 행동을 통해 제국주의 전쟁 체제를 정말로 무너뜨리고 승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운동이 성공하려면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것은 더 많은 사람이 운동의 과제를 분담하도록 하기 위해서인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이 운동의 다음 단계에서 능동적으로 활동하도록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운동을 가장 단단하게 보호하는 것은 참여가 제한된 의사 결정이 아니라 가능한 한 가장 폭넓은 민주주의다(이는 우리의 단결도 강화한다). 운동의 전략을 논의할 우리만의 공간이 생기면 이곳에서 모든 사람이 자기 입장을 밝힐 수 있고 우리 스스로 최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닫힌 문 뒤에서 혹은 협상 테이블에서 결정이 이루어지면 더 쉽게 포섭이 발생한다. 모든 입장이 공개되면 투쟁하는 우리가 직접 결정할 수 있다. 우리의 총회는 정치 단체, 사회 단체, 노동자 단체를 비롯해 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을 공개적으로 대표하는, 집단적이고 숙의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건물 점거가 민주적 표결로 결정되었다면 경찰이 시위대를 탄압하거나 강제 해산시키기가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여러 도시 혹은 전국에 걸쳐서 서로 다른 점거지와 캠프 사이에 조율이 이루어졌다면 훨씬 더 큰 차이가 생겨났을 것이다. 경찰이 점거 농성을 해산하겠다고 위협할 때 여러 점거지들이 서로를 돕고 방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관료적인 점거 농성 지도부가 이런 경험을 가로막았고, 점거 농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가자 학살로부터 주의가 분산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역사적 경험에 기초하여 총회와 자기조직화라는 방법을 제안한다.

 

우리는 의사 결정 과정에서 노동자와 학생이 가능한 한 폭넓게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 같은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의식적이고 항구적인 실천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뉴욕시립대학교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학 노동자들은 어떤 조치를 취할지 결정하는 세 차례의 총회에 참여하여 거수로 표결했다. 이것은 모든 대학과 노동자들이 따를 만한 본보기다.

 

중앙 집중화된 의사 결정에 맞선 투쟁은 학생운동 부문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더 광범위한 노동운동을 비롯해 팔레스타인 운동의 다른 부문들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는 “휴전”을 요구하는 노조의 성명을 물론 환영하지만, 학살에 맞선 투쟁에 노동자운동이 더 크게 개입하려 할 때는 물론이고 작업장의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위한 노동자 투쟁의 성공을 앞두고도 노동운동 관료들이 방해가 된 사례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의 지도력은 총회와 자기조직화의 발전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예를 들어 전미자동차노조(UAW)는 자신들의 요구 상당수를 쟁취한 역사적 투쟁을 벌였지만, 평조합원들 사이에 진정한 직접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은채 한계를 지녔다. 팔레스타인 운동에 노조가 개입하는 것에 관해서도 똑같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노조 지도부는 학살을 끝내기 위한 집회나 행동을 추동하지 않으며, 오히려 이스라엘 국가를 떠받치는 체제를 지지한다. UAW 위원장 숀 페인(Shawn Fain)이 “학살자 바이든(Genocide Joe)”을 지지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노동운동 지도부의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미국의 노조 조합원들은 학살에 맞서고 운동을 지지하는 행동에 나섰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힘을 이용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에 대한 미국의 공모를 끝장내려면, 예를 들어 노동자들을 규율하고 파업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지 못하게 막는 반노동 법률에 반기를 들려면, 아래로부터의 광범위한 조직화가 필요하다.

 

정치적 기획들

 

자기조직화는 계급투쟁의 열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데, 마르크스주의 혁명가들에게 이는 지배계급과 그 공모자들로부터 독립된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정치 권력을 발전시키기 위한 출발점이다. 자기조직화는 노동자와 학생들이 스스로의 미래를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숙의하는 정치적 주체가 되기 위한 토대다.

 

숙의적·민주적 총회를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의 운동을 확장하여 더 많은 부문을 끌어들이고 우리의 요구를 위해 함께 싸우게 만드는 열쇠일 뿐 아니라,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위해 싸우는 방법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학살은 자본주의 체제가 전 세계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을 점점 더 비참하게 만들 뿐임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노동 대중의 이해관계와 동떨어진 학살이다. 제국주의 정부들은 이 정도 규모로 학살을 자행하기 위해 전 세계 대중의 등 뒤에서 공작을 벌였다. 양당 체제, 즉 공화당과 민주당의 이해관계는 우리의 이해관계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서로 다른 정치적 기획들이 경쟁한다. 한쪽에는 이스라엘에 절대적 지지를 보내는 바이든과 민주당이 있다. 자국 패권에 대한 도전을 무력화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에 자금을 지원하고, “이주민과 싸우기” 위해 국경순찰대 동원 정책을 실시하는 바로 그 정당 말이다.

 

트럼프와 공화당도 자기 적수와 별반 다르지 않다. 트럼프는 이스라엘 국가와 집단학살을 지지한다. 그는 국경을 닫고 이민자들을 억압하는 계획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더 많은 보호주의 정책을 수립할 생각이다. 개선되지 않는 경제 상황은 트럼프의 대선 승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바로 이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으로 임금 가치가 하락한 “제도권” 노동자 운동의 지지를 얻기 위해 다툼이 벌어진다. 바이든은 구매력 하락 때문에 그들의 지지를 상당 부분 잃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조건적인 이스라엘 지지로 표를 잃었다.

 

트럼프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의 현재 위기가 제국주의 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위세에 의문을 품게 만드는 와중에, 트럼프와 바이든 중 누구도 자본주의 위기를 해결할 현실성 있는 길을 제시하지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심각해지는 빈곤과 불안정에 맞설 대안이 필요한 미국의 수백만 노동 대중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들은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자본주의 정부들의 취약점은 제3의 기획, 즉 다른 종류의 사회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 정당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팔레스타인 운동 지도자들의 포퓰리즘적, 스탈린주의적, 마오주의적 정치는 결국 친바이든 정책에 적응해 버리고, 이 길이 자신들의 요구를 달성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대안이 필요하다. 자본가 계급과 독립적으로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제3의 정당, 노동자 정당의 발전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우리 운동의 자기조직화 안에서 시작된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나라라는 말을 끊임없이 듣겠지만, 우리는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안다.

 

대학과 노조의 총회들처럼 우리 스스로 민주적 결정을 내릴 공간을 건설한다는 전망을 품고서, 우리는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노동계급 정당 건설의 일환으로 더 큰 노동자·학생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수 있다.

 

다시 한번 기억하자. 발언하고 표결하는 민주적 총회와 자기조직화는, 우리 노동자와 학생이 사회의 부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우리가 결정해야 한다는 논리를 진전시키는 전위의 첫걸음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멈추고 운영하고 바꿀 수 있다. 노동계급의 자기조직화는 이 체제를 무너뜨릴 힘을 모으는 첫걸음, 사회의 모든 것을 생산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사회, 착취와 억압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첫걸음이다. 우리는 함께 모여 단결할 때 더 강해진다는 것을 알고, 어디서든 자기조직화를 시작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언제나 인종, 신념, 피부색을 가지고 우리를 분열시키려 한다. 우리는 이 장벽들을 허물고 진정한 이중권력과 자기조직화를 위해 싸우고자 한다.

 

2024년 6월 14일 Left Voice에 게재된 글을 번역함.

글쓴이: Marcos Nok and Mi Ka 

번역: 강성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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