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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의 권리는 노동자의 권리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트랜스여성은 끊임없이 여성의 범주에서 배제되고, 탈락되며,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젠더1)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트랜스젠더도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숨 쉬고, 밥 먹고, 잠자고, 노동을 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들의 일터에도 트랜스여성이, 트랜스남성이, 그리고 논바이너리인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노동자는 하나다’, ‘노동자는 단결해야 한다’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합니다.”2)
2024년 3월 8일, 한국에서 첫 여성파업을 벌인 집회장에서 트랜스젠더 여성 노동자이자 활동가이신 이연수 동지가 이렇게 외쳤다. 그러나 2025년 3월 8일 여성파업 대회장에선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고 이연수동지와 우리를 죽음으로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2024년 3.8 여성파업 집회 당시 고 이연수 동지 발언 장면 | 스튜디오 알
11월 20일, 트랜스젠더추모의날(Transgender Day of Remembrance, TDoR)은 매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들을 추모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평등을 위한 연대를 다지는 날이다. 트랜스젠더 혐오 살인사건을 계기로 1998년 제정되었다. 올해 한국에서는 11월 22일, <동네북, 두드릴수록 크게 울리는>이라는 제목으로 이태원광장에서 성소수자·여성·인권 등 58개 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집회와 행진을 개최한다.
성별이분법과 정상가족의 틀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있는 그대로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트랜스젠더는 차별과 혐오의 대상 중 한 집단이다. 과거 고대노예제 사회는 트랜스젠더를 제3의 성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21세기 지금의 사회는 인구 20명 중 1명꼴인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 사람들3)이 거리낌 없는 동료이자 이웃으로 평등하게 살아가기는커녕 혐오의 과녁이 되었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의 뼈저린 외침을 아는 노동자라면, 이 사회가 한 사람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으면서 차별하고 비난하고 혐오한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는 일인지 어렴풋이라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쇠퇴기 자본주의는 최근 ‘트럼프’로 대표되는 극우 정치를 강화하며 사회적 소수자에게 불평등한 체제에 대한 분노를 돌리게 한다. 특히 이주민과 트랜스젠더 혐오를 핵심고리로 삼아 노동자계급을 마구 갈라놓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운동이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차별하고 숨이 멎게 만드는 이 사회의 실체와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위한 투쟁과제를 확인하는 일은 중요하다.
편의점 알바도 화장실 사용도
한국에서는 2001년 연예인이던 트랜스젠더 여성 하리수씨가 알려지고 나서야 트랜스젠더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편견이 조금씩 개선되었다. 200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 뒤에야 허들이 높음에도 트랜스젠더들의 성별 정정이 인정되었다. 하지만 2020년 자신의 성별대로 군 복무를 하려던 변희수 하사의 강제 전역과 죽음, 같은 해 숙명여대 입학이 결정된 트랜스젠더 여성이 교내외의 반발로 입학을 포기한 사태는 트랜스젠더가 처한 차별과 억압의 현실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주었다.
한국은 트랜스젠더를 포함해 성소수자 인권 지수가 국제적으로 매우 낮다. 한 연구회4)가 발표한 ‘한국 LGBTI(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인터섹스) 인권 현황 2020·2021’을 보면, 한국의 성소수자 인권지수(무지개지수)는 10.56%로 전체 유럽 국가5)와 비교해 꼴찌며, 인권 후진국으로 불리는 벨라루스의 12.06%보다 낮았다.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젠더차별을 노동자계급의 분열과 착취의 주요 수단으로 삼고 있다. 아울러 노동자민중의 수많은 투쟁에도 불구하고, 여성과 성소수자를 더 차별하는 현실에 노동자운동이 더 나서지 못한 결과 우리는 28년째 OECD 국가 중 남녀 임금 격차 세계 1위, 초저출산 세계 1위라는 끔찍한 현실을 감내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성소수자의 현실은 오죽할까. 한 조사에서 한국인의 70%가 “트렌스젠더는 사회적으로 상당히 많은 차별을 받는다”고 응답했다.6) 대부분 노동자인 트랜스젠더는 채용의 문턱에서부터 외모와 주민등록상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기 일쑤다. 밖에서는 화장실도 맘 편히 사용하지 못한다. 원가족 내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죽을 때까지 차별과 혐오, 실업과 빈곤의 굴레를 강요받는다. 어떤 연구에서 트랜스젠더의 소득을 평균의 1/4 수준으로 보고하고 있다.
“보통 편의점이라든지 단기 알바가 좀 심하거든요. 이제 면접 다 보고 등본 가져다주면 어, 여자가 아니었네? 하기도 하고. 등본 보고 이거 네 것 맞냐고 하기도 하고. 그래서 떨어진 게 꽤 있어요.”7)
“내가 트랜지션(성별 정정)하기까진 내가 불편하더라도 남자 화장실을 가야 하는 거고 그런 거죠. 나는 남자 화장실 가도 이상하고, 여자 화장실 가도 이상한 거야. 붙임머리 할 때는 여자 화장실을 썼는데. 웬만해선 화장실 안 가려고 참아요. 회사에서도 동일해요. 그래서 MTF(트랜스젠더 여성) 트랜스젠더들이 방광염이 많이 걸려요.”8)
돈을 모아서 집을 계약하려 해도 문제가 생겼다. 계약서에 적은 주민등록번호상 성별과 외양의 성별이 달라 트랜스젠더인 것을 알아차린 집주인이 계약을 파기한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성별정정 이전에 월세를 계약했던 트랜스젠더 남성 ㄷ씨는 “마음에 드는 집이 있어도 ‘신분증 내’라고 먼저 하니 집 구하는 것도 무서웠다”고 말했다.9)
트랜스젠더는 병원 이용을 꺼린다. 겉보기 성별과 주민등록상의 성별이 일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칠 때마다 원치 않는 아웃팅을 당하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에 편견을 가진 의료진을 만나면 진료를 거부당하거나 모욕적인 말을 듣기도 한다. 성정체성과 맞지 않는 입원실이나 탈의실을 이용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알음알음 젠더 친화적이라고 알려진 병원을 찾아 먼 거리를 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몸의 불편함보다 시선의 따가움이 더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10)
“이 가부장제 사회는, 아직도 일터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낡은 기준을 들이대며 트랜스젠더 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박탈시키고 있습니다”11)
국가인권위원회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2021년) 결과를 보면 65.3%가 최근 1년간 차별을 경험했다. 57.1% 구직 포기 경험을, 40.9% 공중화장실 이용 어려움, 57.1% 우울증, 24.4% 공황장애를 호소했다.
이러한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구조적 억압은 트랜스젠더 인구의 건강도 심각하게 위협한다. 영국 글래스고대학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논바이너리를 포함한 트랜스젠더 인구의 50%가 평생 한 번 이상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는 지정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같은 시스젠더에 비해 3.48%나 높은 수치다. 29%는 실제로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또한 비자살적 자해 경험률은 47%에 달했다. 호주의 한 연구에서 트랜스젠더의 평생 우울증 유병률은 57.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윤석열’과 ‘계엄’으로 대표된 극우 정치의 발화는 내란 1년을 경과하며 민주노조 혐오, 이주민 혐오, 성소수자 혐오 등으로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이들은 성소수자와 트랜스젠더에 대해 ‘가정과 사회 질서를 파괴’한다거나 ‘하나님이 창조한 남성과 여성의 질서를 부정하는 사탄’이라고 비난한다.
남성이 성별을 바꿨다고 선언한 뒤 곧바로 여자화장실에 간다거나,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별 정체성에 따른 공공시설을 사용하면 성범죄가 늘어나서 여성 인권이 위협받는다며 혐오를 선동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올해 8월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추천한 이상현 숭실대 국제법무학과 교수는 트랜스젠더를 ‘정신질환’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혐오 정치는 구조적 젠더차별의 주범을 은닉한다.
민주당 세력은 ‘중도 보수 자본가정당’으로서 독점기업과 자본의 이익만 수호하며 비정규직 문제 해결, 일자리 창출, 모두의 노동권 보장, 차별금지법 제정, 의료와 돌봄의 공공성 등을 외면하고 있다. ‘민생·경제가 우선, 차별 금지는 나중’이라고 한다. 터무니없다. 어떠한 노동자든 당신이 노동자로 태어났으니 차별받아야 마땅하다는 게 어떻게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문제인가.
착취와 억압의 주범인 자본가계급이 트랜스젠더를 포함해 사회적 소수자 뒤에 숨어 그들을 탓하고 혐오하는 온갖 주장은 ‘사탄’이니 ‘나중’이니 표현은 달라도 같은 말이다. ‘노동자민중은 자본의 이윤과 권력을 위해 더 많이 착취당해라’, ‘우리가 차별하는 대로 잠자코 차별당해라’, ‘자본이 갈라치는 대로 쪼개져 단결 투쟁은 포기하라’는! 계급투쟁의 항복 요구와 같다.
독버섯처럼 퍼지는 글로벌 혐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을 필두로 자본가계급의 극우 정치는 세계 곳곳에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빼앗는 공격을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부터 ‘여성 보호’를 내세워 성별을 공식적으로 남성, 여성만 인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를 시작으로 가능한 모든 영역에서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배제하며 공격하고 있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이제 여성 화장실 사용도, 여권의 여성 성별 표기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정권은 트랜스젠더의 성별 정정 의료서비스 접근, 군 복무, 화장실 이용, 공공서비스 접근, 스포츠 출전, 성별 표기 등의 다방면에서 권리를 빼앗고 있다. 2025년 9월 19일을 기준으로 총 616개의 반성소수자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다. 법안의 내용은 대부분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사실상 반트랜스젠더법이다.
트럼프가 지난 2월 5일 ‘트랜스 여성은 여성 스포츠 출전 금지’ 행정명령에 서명한 후 7월, 미국올림픽위원회(USOPC)는 그에 따른 조치로 트랜스젠더 여성의 여성 종목 출전을 전면 금지했다. 정부는 연방지원금 중단을 내걸고 모든 스포츠 종목 연맹에 트랜스 배제 규정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불과 몇 달 지나지 않은 11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여성 경기의 공정성을 이유로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의 출전을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영국 대법원은 지난 4월 16일 평등법12)상 여성의 정의는 ‘생물학적 여성’만이라고 만장일치로 판결했다.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을 사실상 합법화한 것이다. 이후 성소수자 권리보장과 평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항의시위가 이어졌으나 28일 곧바로 영국 평등위원회가 트랜스젠더의 화장실 제한을 권고하는 등 인권 후퇴 조치를 거듭 발표하고 있다.
입소스 인구조사에 따르면 캐나다는 인구의 10%가 성소수자고 논바이너리를 포함한 트랜스젠더는 인구의 3%다. 캐나다는 2017년 인권법에서 젠더차별을 금지했으나 앨버타주 등 일부 지역에서 반트랜스젠더 법안을 도입하고 있다. 퀘벡주에는 트랜스 여성이 교도소에서 남성 수감자방에 수용되기도 했다. 프랑스는 작년에 17세 이하 청소년 트랜스젠더의 성별확정 호르몬 치료를 금지했다.
러시아는 2023년 성소수자단체를 ‘극단주의’로 규정하고 불법화했다. 성별확정수술을 한 트랜스젠더를 정신질환자로 취급해 운전을 금지한다. 중국은 1997년 동성애를 비범죄했으나 경제와 인구 위기 속에 성소수자에 대한 탄압이 심해지고 있다. 2020년부터 퀴어퍼레이드가 중단되고 2023년에는 베이징 성소수자센터가 15년 만에 폐쇄되었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 성소수자 커뮤니티도 해산, 폐쇄당하고 있다. 성별확정치료는 부모의 동의를 반드시 거치게 하여 제한이 많다. 청소년 트랜스젠더에게 전환치료를 강요하는 경우도 보고되고 있다.13)
라틴 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칠레, 에콰도르, 멕시코, 페루, 우루과이는 모두 트랜스젠더를 보호하는 차별금지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라틴 아메리카는 트랜스젠더 살인 사건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밀레이 극우 정부는 미국 트럼프대통령이 2025년 1월 28일 성별확정치료에 대한 연방지원을 중단하자, 곧바로 아르헨티나에서도 성별확정치료 지원 중단 결정을 발표했다.
트랜스젠더 혐오 공세의 이유
자본가계급은 많은 나라에서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와 탄압으로 사회적 차별을 강화하고 있다. 그럴수록 트랜스젠더 노동자는 더 가난해지고, 더 위험해지고 있다. 사회가 구조적 차별과 혐오를 재생산하기에 혐오 범죄 피해를 겪는 경우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저들은 왜 트랜스젠더 혐오를 선동하며 차별과 억압을 강화하는가?
첫 번째 이유는 노동자계급 내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서다. 자본가계급은 불평등의 원인을 자본가가 아닌 트랜스젠더라 탓하도록 조장한다. 트랜스젠더의 차별이 약간이라도 줄어드는 상태를 노동자민중이 자신의 몫을 빼앗기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듦으로써 자본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감추게 조장하는 것이다. 여성의 차별이 줄어드는 것을 남성이 역차별당한다고 선동하는 것과 같은 식이다.
예를 들어 스포츠 장학금을 받는 극소수의 트랜스젠더 운동선수가 다른 학생 선수의 대학 진학 기회를 훔쳤다고 비난하면서 높은 교육비용과 제한된 교육 기회,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구조의 문제를 감추면서 노동자계급 내부를 분열시킨다.
저들은 학교에서부터 대부분 노동자의 자녀인 아동과 청소년들에게 성별이분법, 성역할규범과 성소수자 배제, 경쟁, 차별과 혐오를 강요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트랜스젠더가 성별 불일치14)를 인식하는 나이는 평균 12세다.15) 그러나 학교에는 입시와 성적만 있을 뿐, 포괄적 성교육이 없다. 인권, 평등도 형편없다. 성평등 도서도 빼앗는다.
이를 제기하는 교육 노동자와 노동조합, 학생, 양육자 커뮤니티는 공격당하기 일쑤다. 국가인권위 조사를 보면 트랜스젠더 응답자의 무려 67.0%가 중고등학교 수업 중 교사로부터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들은 경험이 있고, 21.3%는 교사로부터 폭력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자본가계급은 교육 현장에서부터 청소년에게 트랜스젠더 청소년을 낙인찍고 노골적으로 차별하고, 차별당하게 길들이고 있다.
또한 일터에서도 반트랜스젠더 정서를 부추겨 트랜스젠더 노동자와 다른 노동자 사이에 위화감을 조장한다. 노동자 투쟁이 성소수자, 트랜스젠더 평등에 나서는 활동을 제한하려 든다. 트랜스젠더 노동자가 투쟁이나 노조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비난하고 제한하면서 노동자계급 내부의 불신과 분열을 키운다. 트랜스젠더 권리와 하나로 연결된 노동자 투쟁의 단결력을 훼손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부르주아 가족, 재생산의 위기다. 쇠퇴기 자본주의의 다양한 위기는 노동자계급의 빈곤과 다양한 사회적 위기를 빚어내며 가족, 재생산의 위기를 낳고 있다. 자본가들은 착취할 노동자계급의 다음 세대가 필요하다. 여성에게 저평가된 사회적 생산과 무급 가사돌봄 사회 재생산이라는 이중굴레를 강요하며 다음 세대 노동자를 이어가게 해야 한다.
그런데 노동자계급과 성소수자 운동은 가부장적 자본주의 착취에 꾸준히 도전해왔다. 여성 노동자의 노동권, 임신중지 비범죄화, 동성결혼 합법화, 트랜스젠더 성별 정정 등 부분적 권리를 쟁취해왔다. 이는 자본가계급에게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자본은 심각한 재생산 위기를 성별 이분법대로 타개하기 위해 지정성별을 수용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를 더 극심하게 공격한다.
트랜스젠더 차별과 배제 심화는 임신중지권에 대한 공격, 전통적 여성성 강화, 출산 장려 정책, 사회적 소수자 차별 강화, 가사돌봄 시장화 등과 연결되어 있다. 바로 노동자계급 여성에게 다음 세대 노동자의 출산과 양육을 강요하는 시도다. 저들의 방식대로 가족, 재생산의 위기를 타개하려는 공격이다.
국제 노동운동이 이에 맞서려면 노동자계급 분열 책동에 맞서 트랜스젠더를 괴롭히고 차별하고 억압하는 자본에 맞서 ‘노동자는 하나다’는 정신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트랜스젠더 혐오의 뿌리, 즉 노동자민중을 시장성 있는 인구학적 집단으로 나누고, 부스러기를 얻기 위해 서로 싸우게 하며, 이분법적 성별 규범에 의존하여 후세대 노동자를 무상으로 재생산하라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워야 한다.
트랜스젠더와 단결하는 노동자운동
트랜스젠더 차별의 이유를 성소수자 차별, 이주민 차별, 장애인 차별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로 대입해도 내용은 똑같다. 젠더차별이 심하고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이 초저출산국인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자본의 노노분열 전략, 특히 젠더적 분열을 활용하는 착취 전략을 더 유심히 살펴야 한다. 여성과 성소수자 노동자가 더 차별당하고, 여성이자 장애인일 때, 이주민이고 트랜스젠더일 때 더 차별당하는 현실을 인식하고 하나의 투쟁으로 나서는 계급의식이 필요하다.
트랜스젠더 혐오 공격이 격화된 곳에서는 자본이 트랜스젠더의 공공의료 서비스, 성중립 시설 이용 비용을 삭감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고, 이것이 전체 노동자의 임금과 복지 삭감으로 이어지는 점을 제기한다. 그러나 한국은 트랜스젠더 동료와 이웃이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드러내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민주노총 30년,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광장에서 무지개 깃발을 들지만, 우리는 일터와 사회를 제대로 바꾸지 못했다.
2025년 트랜스젠더추모의날은 노동자에게, 민주노조에게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는 날로 만들자. 성중립 화장실을 일터와 사회에 요구하는, 모든 성별확정치료에 건강보험 적용을 요구하는, 좋은 일자리와 공공돌봄을 요구하는 노동자운동이 ‘여성 보호’니 ‘나중에’라는 자본의 기만을 깨뜨릴 수 있다. 차별과 억압을 단결투쟁으로 허물어 갈 수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주노동자와 정주노동자, 여러 성별과 성적지향을 가진 노동자, 사업장과 업종·지역을 넘어 노동자가 단결하는 것이 성별 정체성대로, 성적 지향대로 차별받지 않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한 개의 사다리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사다리만 내놓은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맞서자. 더는 젠더 정체성, ‘내가 나라는 이유로’ 차별당하고 죽지 않는 평등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자.
[각주]
1) 트랜스젠더는 태어나면서 부여받는 ‘지정성별’과 본인의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와 달리 ‘지정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을 말하는 포괄적 용어다. 고 변희수 하사나 연예인 하리수씨, 풍자씨처럼 태어날 때 남성 지정성별에서 여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젠더 여성도 있고, 그 반대인 트랜스젠더 남성도 있다. 성별 이분법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하지 않는 트랜스젠더 논바이너리 등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2) 고 이연수님(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인권팀), 2024.3.8.여성파업대회 발언 중
3) 글로벌 리서치업체 입소스, 2023년 세계 30개국 성소수자 인구비율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계인의 9%가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답변했다. 한국의 성소수자 비율은 7%로 일본 5%보다 많았다.
4) 성적지향·성별정체성법 정책연구회(Sexual Orientation·Gender Identity·SOGI법정책연구회)
5) 덴마크(73.78%), 벨기에(71.51%) 등은 상위권을 기록했다.
6) 입소스(Ipsos), ‘LGBT+프라이드 2023 글로벌 서베이 리포트’
7) 비판사회정책 제77호·2022, 트랜스젠더 노동 경험 연구 : 생존을 위한 터전 짓기-김종빈, 고태은, 한인정. H님 발언
8) 비판사회정책 제77호·2022, 트랜스젠더 노동 경험 연구 : 생존을 위한 터전 짓기-김종빈, 고태은, 한인정. L님 발언
9) 한겨레 기사,“집주인이 트랜스젠더라며 계약 파기”…‘스위트홈’은 어디에-성소수자주거권네트워크 연구보고서(2023/02/24), https://www.hani.co.kr/arti/society/rights/1081110.html
10) 경향신문 기사, “의사는 편견이 있어도 진료는 차별이 없어야 한다” (2022/04/15), https://www.khan.co.kr/article/202204151042021
11) 고 이연수님(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트랜스인권팀) 2024.3.8.여성파업대회 발언 중
12) 2010 평등법(Equality Act 2010)
14) 트랜스젠더는 지정성별과 자신이 인지하는 성별 정체성 불일치 탓에 △몸에 대한 혐오감 △자신과 타인이 인식하는 성별이 다른 데 따른 불편함을 느끼는데, 이를 성별위화감(젠더 디스포리아)이라고 한다.
15) ‘2024년 트랜스젠더 코호트 구축 및 건강 추적관찰 연구’, 한국성소수자의료연구회(KALM, Korean Association for LGBTQ Medicine),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119012200004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