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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과 기만의 시대, 사회적 대화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노동자의 길이다

기사입력 2025.09.19 15:15 | 조회 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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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4일 양대노총위원장-대통령 회동

     

    최근 민주노조운동은 갈수록 이재명 정부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양경수 집행부는 26년 만에 노사정 기구(국회 주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기로 했다. 이재명 정부에 협조해야 한다는 기류가 민주노조운동의 상층만이 아니라 현장 곳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만이 아니라 여성운동, 기후정의운동, 노동안전보건운동 등에서도 “이재명 정부에 대한 태도”는 아주 중요한 논쟁 지점이다. 장기 투쟁사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투쟁사업장에 민주당 국회의원들과 관계자들이 찾아오니 불편한 일들을 만들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들리기도 한다.

     

    과연 민주당은 해결사인가?

     

    민주노조운동에서 장기 투쟁사업장의 의의는 너무나 크다. 민주노조운동의 투쟁 정신을 구현하며 다른 노동자들에게 감동을 준다. “장기 투쟁사업장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 놓여 있는 우리가 싸우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장기 투쟁사업장은 윤석열 퇴진 투쟁에 나선 수많은 노동자 시민의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옵티칼지회, 세종호텔지부,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지혜복 교사 투쟁, 현대차 이수기업, 성서공단지회 태경산업 투쟁 등에 연대의 손길이 쏟아졌다.

     

    그리고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후, 장기 투쟁사업장 문제 해결에 많은 사람의 눈길이 쏠렸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김형수 동지가 고공에서 내려왔고,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정혜 동지가 고공농성 600일 만에 고공에서 내려왔다. 그때마다 민주당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에 참여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언뜻 보면 이재명 정부가 투쟁사업장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것처럼 비친다.

     

    그러나 과거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전혀 진실이 아니다. 민주당은 아주 오랫동안 투쟁사업장을 탄압해 왔다. 문재인 정부 당시 수많은 노동자 투쟁을 돌아봐도 그렇다. 그들은 지금 ‘해결사’ 흉내를 내지만, 그 흉내조차 어설프다. 옵티칼 투쟁은 민주당이 약속한 청문회 개최조차 불투명한 상태로 진전이 없다. 세종호텔도 마찬가지다. 첫 교섭에 나온 세종호텔 자본은 ‘교섭’이란 말조차 거부했다. 상당한 압박을 받는 개별 자본이 노동자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투쟁사업장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면 그 기운이 계열사 현장으로, 또한 전체 노동자들에게로 퍼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는 방법은 더 크고 넓은 노동자 투쟁뿐이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노동자 투쟁에 밀려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 아니 나설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과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기대를 걸고 의존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이재명 정부에 어떤 환상과 기대도 없이, 정부에 대한 독립성을 지키며, 노동자 투쟁대열을 늘리고 연대투쟁을 강화하는 것이 투쟁사업장 문제를 해결할 가장 빠른 길이다.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당당하게?

     

    물론 현실의 어려움을 절대 가볍게 볼 수 없다. 현실과 원칙의 틈은 넓다. 그런데 이 틈을 좁히려는 노력 대신, 어려운 현실만을 근거로 이 틈을 더 넓히는 사람들이 있다. 투쟁사업장의 어려운 현실을 얘기하며 노사정 대화 기구(국회 주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어보자.

     

    “제가 속한 금속노조 경기지부는 외국인투자단지가 많은 지역입니다. 그래서 외투먹튀 문제로 많은 노동자들이 거리로 쫓겨나는 상황이 많이 발생했습니다. 2012년 하이디스, 2023년 한국와이퍼. 배재형 동지가 죽음으로 투쟁하려 했던 하이디스 투쟁 때 저는 을지로위원회뿐 아니라 국힘 조경태 의원 쫓아다녔습니다. 당시 경기지부장도 국힘이라도 찾아가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절실했습니다. (···) 투쟁사업장들 다 마찬가지입니다. 다 을지로위원회와 창구 만들어보려고 사업하지 않습니까. 이 짓을 왜 투쟁사업장에게 하게 합니까. 이제는 하기 싫습니다. 민주노총이 하십시오. 우리 투쟁하는 동지들이 더 이상 보수정당 쫓아다니면서 애걸복걸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민주노총의 이름으로 민주노총의 힘으로 당당하게 요구하고 그 역할을 하십시오. 저는 그래서 국회 사회적 대화를 민주노총이 참여하는 것에 찬성합니다.” (민주노총 중앙위원, 엄미야)

     

    모든 투쟁사업장이 민주당 “을지로위원회와 창구 만들어보려고” 사업한다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당장 9년 넘게 싸워 이긴 아사히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차헌호 아사히글라스 지회장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기도 했다. “그동안 투쟁사업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당 정부가 자본을 제대로 압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자본가들에게 봉사하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톨게이트 노동자들도 문재인 정부에 맞서며,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사무실을 점거하며 싸웠다.

     

    2019년 6월, 문재인 정부의 대량해고에 맞서 결집한 톨게이트 노동자들 사진: 민주연합노조 톨게이트지부

     

    무엇보다 투쟁하는 동지들을 보수정당 쫓아다니면서 애걸복걸하게 만들지 않으려면, 민주노총이 민주당과 민주당 정부에 의존하지 말고, 독립적인 힘을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엄미야 중앙위원은 정반대 방향을 제시한다.

     

    민주노총이 투쟁사업장을 대신(?)해 민주당을 만나고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면, 갑자기 투쟁사업장에 없던 힘이라도 생기는가? 대안과 전망이 없기에, 민주노조운동의 단결과 연대가 미약하기에, 투쟁사업장들이 민주당에 매달린다. 필자는 이 기대를 합리화하자는 것이 아니다. 힘들더라도 현장토론을 조직하고, 더 구체적이고 명확한 투쟁계획을 만들고, 장기 투쟁사업장 한 곳이라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적 연대를 조직해야 이 안타까운 상황을 풀 실마리가 생긴다. 그런데, 민주노조운동 지도부를 자처하는 관료들이 하지 않는 일이 바로 그 일이다.

     

    투쟁사업장은 당당하게 요구할 힘이 없는데, 민주노총은 당당하게 요구할 힘이 있는가? 민주노조운동 상층 지도자들은 대중적 투쟁동력을 조직하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이재명 정부 아래 보여주기식 투쟁 아닌 “진짜 투쟁이 굳이 필요한가?”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부와 자본가들에게 온갖 형태의 교섭과 대화를 제안하는 것이 ‘애걸복걸’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을 동정적으로 바라보며 ‘이제 민주노총이 투쟁사업장을 대신해 노사정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노조운동 전체를 자본가정당에 의존하게 하자는 말이다. 이런 노선은 결국 투쟁사업장들을 더 힘든 지경으로 내몰 수밖에 없다.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 투쟁성을 약화하기 때문이다.

     

    개량적 지도부는 끊임없이 ‘대중의 투쟁동력 부족’을 핑계 댄다. 그러나 지도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핑계가 아니라 투쟁을 조직하기 위한 분투다. 그것이 지도력이다. 민주노조운동은 이런 지도자들이 너무나 부족해 고통받는다. 대중의 자발적 투쟁이 성장하면 이를 자신들이 조직한 것으로 화려하게 포장하고, 그렇지 않으면 ‘대중의 투쟁동력 부족’을 이유로 대중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파렴치한 지도자들을 넘어서지 않고 민주노조운동의 추락을 막을 수는 없다.

     

    불변의 진리

     

    노동자들의 모든 권리는 자본과 정부의 공격을 제압할 강력한 조직과 투쟁을 통해서만 보호되고 확대될 수 있다.

     

    IMF 시절의 수많은 노동조합의 양보교섭을 돌아보자.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임금과 노동조건을 양보하자, 일자리에 대한 위협은 더 커졌다. 일자리가 더 위협받게 되자, 임금과 노동조건이 더 나빠졌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조합이 패배했고 문을 닫기도 했다.

     

    개량주의자들은 장기적으로 노동조합을 지탱하며 강화하는 단결력과 투쟁력, 노동자로서의 계급의식을 중심으로 현재의 투쟁을 바라보지 않는다. 당연히 이들에게 노동자의 대의를 지키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당장 나의 손에 쥐어지는 ‘실리’만이 중요할 뿐이다. 심지어 돈 몇 푼에 해고자 복직을 포기하거나, 노사화합 선언이나 무쟁의 선언을 서슴없이 하기도 한다. 단기적·실리적 성과에 집착했을 때, 그 결과는 분명하다. 단결력과 투쟁력, 노동자 의식을 잃은 노동조합은 자본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장기 투쟁사업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과는 ‘단결력, 투쟁력, 노동자의식’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이익이다. 그래서 수많은 투쟁사업장은 깨지고 고립되어 피투성이가 된 채로도, 자신의 문제조차 해결이 안 된 상황에서도 노동자계급의 근본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싸워왔다.

     

    그랬기에 장기 투쟁사업장은 자기 주위에 전체 민주노조운동의 힘을 결집할 수 있었고, 자기 투쟁의 승리 가능성을 높임과 동시에 민주노조운동의 중요한 추진력으로 자신을 세워낼 수 있었다.

     

    여러 투쟁사업장에 결합하며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자 노력하는 사회주의를향한전진도 투쟁사업장의 어려움을 함께 느끼며 고민하고 있다. 그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우리는 자본가정당에 맞서 독립적 태도를 유지하고, 단결과 연대를 조직하는 방법이 장기 투쟁사업장의 온전한 해결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경험

     

    역대 민주당 정부는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와 비정규악법을 만들어 노동자를 공격했다. 집권 초 민주당 정부들의 친노동 행색은 오래지 않아 그 한계와 본질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 드러난 대중의 폭발적 열망을 목격했기에, 집권 초기 ‘노동 존중’ 같은 그럴듯한 구호를 내걸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내놓았다. 청와대에 일자리 현황판을 만들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충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의 실체는 몸집만 커진 용역회사, 즉 자회사로 노동자들을 배속하는 가짜 정규직화였다. 현대중공업, 성동조선, STX조선소 등 수많은 조선소에서 대량해고가 벌어졌다. 한국지엠 군산공장은 폐쇄되었고, 금호타이어는 해외매각되었다. 그리고 일자리 현황판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산입범위까지 확대 개악하며 저임금 노동자들을 후려쳤다. 이에 노동자운동이 제대로 맞서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민주당 정부에 대한 정치적 종속성이 가장 큰 몫을 했다.

     

    이정미, 심상정 같은 정의당 지도자들은 “문재인 정부는 촛불을 대변하기에 손색이 없는 정부”,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의 왼쪽 날개”, “나라는 민주당에 맡겼으니 지역은 정의당에 맡겨 달라”라며 민주당을 떠받들었다.

     

    노동자가 문재인 정부에 기대하고 스스로 투쟁을 자제했을 때,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손발을 묶은 노동자의 목을 졸랐다. 적폐청산을 위해 문재인 정부에게 좀 더 시간을 줘야 한다며 주저하는 동안 문재인 정부는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를 벼랑 끝에서 밀어버렸다.

     

    환상의 애드벌룬이 터졌을 때

     

    이재명 정부 출범 후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졌던 비극이 더 확대된 형태로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높아지고 있다. 특히나 민주노총이 국회 주도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그토록 매달리는 노사정 대화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를 도입한 노사정위원회에서 알 수 있듯, 사회적 대화기구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노동개악을 관철하는 수단이다. 이 사회적 합의기구가  자본가들에게 주었던 추가 전리품은 바로 노동조합 같은 노동자조직의 독립성, 자주성, 전투성을 지워나갔다는 점이다. 노사정위원회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문재인 정부 시절 경사노위와 한국노총 관료들의 탄력근로제 확대 야합을 보면, 국회 주도 사회적 대화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가늠할 수 있다.

     

    그렇다고 비정규직이 철폐되고,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가 생겨날까? 구조조정이 중단될까? 그것은 국회 사회적 대화 같은 잡담가게가 아니라 거대한 사회적 부를 움켜쥔 재벌 대자본을 공격해야 가능한 일이다. 경제위기와 민생파탄의 책임을 자본가에게 묻는 투쟁을 조직해야 가능한 일이다.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을 기만하는 환상의 애드벌룬을 띄우고 있다. 이 애드벌룬이 터지며 그 모든 환상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을 때, 누가 어떻게 상황을 수습할 수 있을까?

     

    노동자계급과 민주노조운동의 운명은 국회 사회적 대화장에서의 말씨름, 민주당에 대한 기대와 환상 속에서 허우적대는 민주노총 상층 지도자들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에 맞선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으로 결정된다. 현재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사회적 합의’라는 미명 아래 노동자들을 덮칠 가혹한 공격에 맞서기 위해, 경제위기를 이용한 임금 감소와 실업 확대를 막기 위해,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완전한 해방을 위해 자본가정부와 자본가정당에 대한 노동조합의 독자성을 지키자! 아래로부터의 단결투쟁을 조직하자!

     

    당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소 -

    우리의 상황은 열악하다.

    어둠은 깊어가고 세력은 약해지고 있다.

    수년 동안 활동을 거듭해 온 끝에, 이제

    우리는 처음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러나 적은 이전보다 더욱 강해져 있다.

    적의 세력은 강화된 것 같고 적은 불굴의 모습을 띄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류를 범했고, 이것은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들의 수는 급속히 줄어들고

    외치는 구호들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쓰는 말의 일부를

    적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왜곡해 버렸다.

     

    우리들이 했던 말 가운데 지금 어떤 것이 잘못되어 있는가?

    일부인가, 아니면 전부인가?

    누구에게 우리는 아직도 기대를 걸고 있는가? 우리는 역동적인 흐름에서

    밀려난 채 살아남은 자들인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도 이해시키지 못한 채 처져 있는가?

     

    우리에게 과연 행운이 따르겠는가?

     

    이렇게 당신은 묻고 있소. 기대하지

    마시오. 당신 자신의 답변 외에 그 누구의 답변도!

     

    브레히트 - 흔들리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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