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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 몰락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과제

기사입력 2024.11.17 16:32 | 조회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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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4.11 총선 국민승리를 위한 야권연대 조인식 사진: 연합뉴스

     

    [편집자 주]

    “위 안건에 대한 논의는 종결함.” 9월 26일 민주노총 12차 중집은 총선 평가안도, 총선방침 위반 간부 징계도 결정하지 못한채 마무리 되었다. 22대 총선에서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진보정당이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창당하고 민주노총 전직 위원장과 사무총장이 위성정당 후보로 출마하는 사태까지 발생했음에도, 민주노총 내 논의는 어떤 조치도 없이 종결되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과정을 살피며 방향을 다시 세울 때다.

    이 글은 지난 10월 사회주의를향한전진 정치캠프 발제문으로 제출되었다. 온라인 신문 게재를 위해 분량을 일부 축소했다.

     

     

    1. 노동자 정치세력화 파탄, 2024년과 2012년

     

    1) 2024년 총선

     

    2023년 9월 14일, 민주노총 77차 임시대의원대회는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 파산 이후 12년 만에 민주노총 정치방침을, 또한 2024년 선거방침을 의결했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의 합의를 통해 2026년까지 연합정당을 건설하며, 이를 위해 2024년 총선에서 선거연합을 추진한다, 또한 전·현직 간부의 민주당 지지를 금지한다는 취지다.

     

    2023년 2월 정기대의원대회와 4월 임시대의원대회에 제출된 정치방침은 “제 민주세력 등 진보 정치세력들의 결집된 힘”을 포괄한다는 문구로 조심스러우면서도 분명한 민주대연합 추진 의사를 담고 있었으나, 논쟁 과정에서 민주대연합 추진 근거로 작용할 수 있는 문구는 삭제되었다.

     

    민주노총 정치·총선방침이 민주대연합론을 포함하지 않은 점, 보수양당에 대한 조직적 지지와 금지하고 전·현직 간부의 보수양당 지지 행위를 금지한 점은 정치방침을 둘러싼 논쟁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의 연대 거부를 명시한 정치·선거방침은 2023년 10월 전주 보궐선거에 출마한 진보당 강성희 후보의 ‘고맙습니다 민주당’ 선거운동과 당선 후 민주당과의 연대의사 표명에 이어, 2월 13일 진보당의 더불어민주연합 합류로 결국 휴짓조각이 되었다. 김영훈 전 민주노총 위원장과 전종덕 전 사무총장은 비례위성정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아직까지 그 어떤 징계도 받지 않았다.

     

    진보당의 민주당 연대는 그야말로 노골적이었다. 선거 과정에서 ‘더불어민주연합은 위성정당이 아닌 연합정당’이라는 논리까지 동원하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렸으며, 후보경선 과정에서는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 후보에 대한 사퇴처리 등 민주당 연대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을 서둘러 제거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진보당은 총 64명의 후보를 사퇴시켰고, 비례위성정당을 통해 2석을 확보했다. 지역구 1석조차 민주당과의 연대를 통해 확보했다는 점에서, 진보당 자신의 힘으로 얻은 의석은 없다.

     

    정의당은 2024년 총선에서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거부했으나, 이는 민주당과의 연대 거부가 아니다. 정의당은 중앙당 차원의 지역구 후보단일화 협상을 시도했고, 2월 29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따른 비례의석 축소를 이유로 중앙당 차원의 협상을 중단하면서도 지역구 차원의 협의를 존중한다고 결정했다. 즉, 비례위성정당 참여라는 노골적 행보를 보이지 않았음에도, 민주당과 독립적인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아니다.

     

    정의당의 과거를 볼 때 이는 더욱 명확해진다. 특히, 2016년 총선 국면 정의당의 야권연대는 노골적이고 굴욕적이기까지 했다. 2016년 총선 야권연대, 2017년 대선 야권연대와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수립이 정의당의 계획이었다.

     

    정의당은 “공정경제, 소득주도성장, 경제민주화의 공통점은 민생을 살리겠다는 것”이라며 ‘정권교체를 위한 정치연합’ 건설을 제안했다. 이는 2016년 총선뿐 아니라 2017년 대선을 거쳐 연립정부 구성으로까지 나아가기 위해 전략적 야권연대체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정의당은 총선의 처음부터 끝까지 야권연대에 굴욕적으로 매달렸다. 더민주당은 정의당을 동등한 연대 대상으로 취급하지 않았고, 대중에게 정의당은 더민주당과 유사한 세력으로 비쳤다. … 정의당이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에 야권연대를 제안하며 밝힌 연대의 근거 역시, 경제강령의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분이었으며 실제로 ‘공정경제’, ‘소득주도성장’, ‘경제민주화’라는 3자의 강령상에 질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 백종성, 「20대 총선이 드러낸 것」, 2016.6. 레프트대구 11호

     

    그간 민주당에 의존적인 정의당의 행보는 시기별로 그 정도만 달랐을 뿐 일관되게 이어져왔다. 이런 행보에 대한 반성과 함께 민주당으로부터의 이념적-실천적 독립을 지향하는 세력을 확대하지도 못했다. 그 결과 어떤 내용과 형태건 ‘제3지대론’이 세력을 확대했을 뿐이다. 정의당은 민주당에 의존적인 행보를 하면서도 ‘다당제 민주주의’와 ‘제3당’으로서의 가치를 내걸어왔으나, 정작 정의당을 ‘좀 더 매운맛 민주당’으로 보는 대중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2016년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의 ‘국민의당’, 2024년 ‘조국혁신당’ 등 이념과 조직 구성에서 민주당과 보다 유사한 ‘제3 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정의당이 고전한 이유다.   

     

    정의당은 2019년 ‘조국사태’와 2022년 ‘검수완박’ 문제에 있어 문재인 정부에 영합하는 태도를 보이며 ‘민주당 2중대’로서 스스로를 위치지었고, 이는 민주당 주도 반윤석열 전선을 지배적 흐름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2019년 ‘조국사태’는 2016-17 박근혜정부 퇴진 촛불투쟁의 마지막 여진마저 사라지게 만들었고, 정의당은 이 중요한 국면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에 찬성하며 민주당에 휩쓸렸다. 결국 보수양당 사이에서 ‘좀 더 왼쪽의 민주당’으로 자신을 위치 지어온 결과가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는 단지 정책기획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당의 구성과 계급적 토대의 문제다. 민주당 방계세력을 포함해 창당한 정의당의 근원적 한계에 더해, 정의당의 노동자계급 토대와 결합력은 갈수록 약화되어 왔다. 그 공백을 실체도 없는 상층 기획으로서의 ‘청년정치’, 보수정당을 흉내내며 ‘우리도 안보와 군사문제를 잘 다룰 수 있음’을 내보이려는, 정의당에 ‘수권 능력’이 있음을 호소하려는 전문가 정치가 차지했다. ‘운동권 정당, 민주노총당을 벗어나야 한다’는 정의당의 숙원이 현실이 된 결과, ‘보수세력과 제3지대 정당을 만들자’는 황당한 주장이 난무해도 제재조차 불가능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2) 2012년 총선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 그 순환의 종결은 길게 보면 ‘위성정당 사태’가 발발한 2024년 총선이라고 할 수 있으나, 짧게 보자면 2010년 6·27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선거방침을 결정한데 이어, 2011년 민주노동당과 민주당계 정치세력이 통합해 통합진보당이 창당하고, 이어 민주노총 김영훈 집행부 주도로 ‘반MB 민주대연합’ 선거방침을 결정함으로써 야권연대를 전면화한 2012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2월 8일 5차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정된 2012년 총선방침과 총선방침 이행방안은 아래와 같다.     

     

     

    민주노총은 ‘새누리당 심판’을 명분으로 민주당과의 연대를 결정했다. 2010년부터 민주노총 위원장이 민주당 대표와 선거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배타적 지지방침’은 자기붕괴했다. 반MB 민주대연합에 따라,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을 주도한 민주당 인사들을 지지해야 하는 신세로 내몰렸다.

     

    2010년 5월 11일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후보 중에는 과거 국민참여당이었던 이광철 통합진보당 후보가 있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법을 만든 세력을 지지 후보로 결정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그러니까 현장에서 다 같이 투표하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다. … 제대로 된 후보도 없다. 노동자들의 투쟁에 함께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싸우고 현장에서 신뢰받는 후보가 아니라 오직 권력욕에 찌든 사람들이 나와서 진보를 떠들고 있는 상태다.” 

    “야권연대 후보 중에 우리 지역인 서울 금천은 이목희 후보다. 그는 기륭전자 투쟁할 때 걸림돌이었고, 비정규직법 만들어놓고 잘했다고 주장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만들기에서 비정규직 가짜 친구들 10인으로 선정했는데, 그는 민주노총도 동의했다며 아직도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과 2024년 민주대연합 모두 그에 앞서 ‘진보대통합’이 먼저 추진되었다. 즉, 반이명박·반윤석열 민주대연합은 전략, 진보대통합은 민주대연합을 떠받치는 전술에 불과했다 (2009년 민주노동당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 《2017년 집권을 위하여》는 '반신자유주의 세력' - '반제민족주의 세력' - '민주-평화통일 세력‘의 대연합을 집권 과제로서 명시한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총 주도 단일정당 건설’과 ‘야권연대’는 일견 모순이나, 결국 동전의 양면이었던 셈이다. 이는 단지 노동운동 다수파 그룹의 기획이 그러하기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는 양날개론에 근거한 사민주의 노동자 정당, 그 자체의 한계였다.

     

     

    2. 민주노동당은 왜 통합진보당으로 귀결했는가

     

    1) 민주노총 주도 민주노동당 건설

     

    민주노동당을 돌아보자.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1996-97 총파업을 계기로 노동자 독자정치세력화에 나선 결과로 만들어졌다. 노동자계급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총파업의 힘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보수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극복을 목표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계급투쟁의 성과를 어떤 식으로건 일정히 반영한다. 민주노동당은 처음부터 민주노총의 조직적 지지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귀결은 거듭된 보수야당과의 선거연대에 이은 민주당 계열 분파와의 합당을 통한 통합진보당 창당이었다(‘전태일 정신과 노무현 정신의 만남’). 앞서 살펴보았듯,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지방선거 이래 야권연대가 노골화했고(반MB 야권연대), 대선이 있었던 2012년에는 극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부터 중앙정부까지 ‘공동정부 구성’이 음양으로 운위되었다. 이는 민주노동당 내부 갈등에 이은 분당을 재통합하는 과정과 맞물렸는데, 이를 종합하면 <진보대통합-야권연대-정권교체와 연립정부 구성>이라는 전망이었다.

     

    ‘비판적지지’를 넘어 ‘민주당과의 공동집권’까지 운위되는 상황에서, 2010년경까지 유지되던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은 민주대연합에 이어 소위 ‘통진당 사태’와 함께 스스로 폐기되었다. 이후 선거철이면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집단 입당원서를 들고 민주당에 투항해도 징계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왔다. 민주노총은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을 통해 ‘진보정당’의 국민정당화를, 또한 민주당과의 연대를 부추기고 보조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당과의 연대,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국민정당화가 민주노동당 노선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민주노동당 노선의 결과라는 점이다. 즉, 민주노동당의 국민정당화는 몰계급적 개량주의-의회주의 정치세력화의 결과다. 민주노동당의 국민정당 지향은 민주노동당 초창기부터 존재했다.

     

    "김창현 당시 울산시지부장은 한국사회의 변혁은 엄격한 단계론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지금은 결코 사회주의가 쟁점이 되는 단계가 아니라 … 이 단계에서 필요한 이념노선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진보적 민주주의'이다. 이때 진보적 민주주의는 노동계급뿐만 아니라 소자산계급, 나아가서는 자본가계급의 상당부분까지도 포괄하는 최소강령적 내용들을 추구하는 것이다. … 당 강령에서 사회주의 규정을 삭제함으로써 계급연합적 성격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 김윤철,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략 논쟁' - 이념과 조직노선을 중심으로」, 2004, 역사비평 68호

     

    의회주의 수권정당을 지향하는 한, 노선을 바꾸지 않고 노동자계급과 함께 우직하게 전진하는 민주노동당은 형용모순에 불과하다. 이는 사민주의의 역사적 숙명이다.

     

    “그들은 계급에 대한 강조와 국민에 대한 호소 사이에서 뒤로 가거나 앞으로 갈 것을 요구받고 있다. … 그들은 한탄하고 후회하며 그들의 전략을 바꾼다. 그리고 또 다시 한탄하고 후회한다.”

    - 아담 쉐보르스키,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사민주의 정당은, 선거에서 수권능력을 내보이며 보수정당과 경쟁한다. 그리고 선거에서는 투쟁하는 노동자도 1표,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도 1표, 중산층과 소자본가도 1표를 행사한다. 집권이 일차 목적인 한, 사민주의 정당에게 투쟁하는 노동자는 더 넓은 확장을 가로막는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이에 따라 점차 계급투쟁의 자리를 산업평화가, 사회적 합의주의가 차지한다. 특히 계급투쟁이 침체할 경우, 사민주의 정당의 우경화는 급격한 형태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2) 양날개론은 무엇을 결과했는가

     

    출범 당시 민주노동당은 노동조합 주도로 의회주의 진보정당을 만들어 집권하겠다는 사민주의 노선에 근거했는데, 그 구체적 전략으로서 ‘양날개론’은 산별노조의 경제투쟁과 의회주의 진보정당의 정치투쟁이라는 역할분담론으로 정식화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음 결과를 야기했다.

     

    첫째, 양날개론은 현장에서 정치를 추방한다. 역할분담론에 따라 현장은 경제의 공간, 의회는 정치의 공간이 된다. 노동현장의 과제는 임단협의 수행, 재정과 투표의 조직, 의회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물리력 동원으로 한정된다. 곧, 현장은 의회정당을 위해 돈과 사람을 대는 저수지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필연적으로 현장정치활동은 빈다.

     

    둘째, 공동화된 현장의 계급투쟁과 계급정치를 조합주의, 타협주의가 채운다. 양날개론이 의회진출을 현장정치보다 훨씬 중요한 임무로 상정하는 순간, 현장이야 어떻게 되건 현장의 돈과 표를 집중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 과정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이 피해자가 된다. 그 적나라한 예가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정에서 ‘진보정치’가 작동한 방식이다. 이 ‘중재’ 이면에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다는 ‘이념’이 존재했음은 물론이다.

     

    “대표적인 '찬물'은 '25일 투쟁' 후반기에 나온 야4당 중재안이다. 중재안의 핵심은 '점거농성을 푼 후 교섭하자'였다. 정규직화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이들에게 이 중재안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담긴 것이 아니었다. 투쟁을 줄곧 가로막고 심지어 "협박"까지 한 이경훈 당시 현대자동차지부장이 주장해온 방안을 국회의원들이 받아들인 것일 뿐이었다. 야4당에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포함돼 있었다."

    - 「자본가는 피를 빨고 진보정당은 표를 빨았다」, 2012년 5월 29일 프레시안

     

    당시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탄압한 장본인인 이경훈 현대차 지부장은 통합진보당 총선후보 경선에 참여했고, 심지어 당내 경선에서는 승리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은 이경훈의 경선 참여에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보였음은 물론, 이를 ‘상향식 공천’이라고 포장하기까지 했다.

     

    또 하나의 적나라한 사례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이어진 전북버스노동자들의 파업투쟁 사례다. 통합진보당의 민주연립정부(인민전선정부) 구성을 위한 야권연대는 사실상 ‘파업파괴 행위’로 작용했다. 통합진보당은 민주당 지방정부가 자행하는 전북버스노동자 파업 탄압에 대해 규탄성명조차 발행하지 않았다.

     

    개혁우파 세력이 집권하면 세상이 어떨까는 전주를 보면 된다. 버스 노동자들이 86일째 추위와 폭력 속에 파업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장악한 전주시와 전주시의회는 이명박보다 덜하지 않다. 법원이 합법 파업임을 인정했음에도 전주시와 전주시의회는 불법 파업으로 매도하며 자본가 편에 서 왔다. 선거연합을 통해 진보정치를 구현한다는 민주노동당이 중앙당 차원의 논평 하나 없다는 건 선거연합의 정체를 보여준다. 개혁우파 세력이 집권한다면 전주의 상황은 전국의 상황이 될 것이다. 그들이 집권했던 10년이 그랬듯 말이다.

    - 김규항, 「난감한 풍경」, 2011년 3월 2일 한겨레

     

    셋째, 배타적 지지방침, 즉 강제 단결이다. 산별노조-단일정당 모델에 근거해 현장의 정치적 역할을 돈과 표로 한정하면, 현장은 각 당의 노선차와 정세에 대한 각 당의 입장차를 알 필요도, 자기 입장을 가질 필요도 없다. 즉, 현장의 무관심에 근거한 동원적 단결의 유도가 바로 배타적 지지방침이다. ‘아, 잘 모르겠으니까 하나로 만들어와!’, 물론 이는 가장 본능적인 정서다. 이러저러한 민주노총 설문조사에서 ‘단일 진보정당 건설’이 늘상 압도적인 요구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운동이 현 상태를 지양하는 것이라면, 정치세력은 이런 정서를 강제 단결의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자생적 정서와 싸워야 한다.

     

    3) 민주노동당 강령과 이념의 문제

     

    (1) 당의 주체 – 계급연합

     

    (2)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 – 자본주의 개선

     

    (3) 강령 비판

     

    ○ 계급연합정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 계급연합정당으로서의 성격을 일정히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는 임금노동자만 입당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대안체제로서의 사회주의와 민주적 계획경제, 수단으로서의 계급투쟁, 당의 중심 주체로서의 노동자계급을 분명히 해야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2007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를 방문해 “민주노동당과 중소기업이 동지적 관계를 가지자”고 말했다. 이는 자본가들과 동지적 관계를 가지자는 발언인만큼 당내외 논란을 빚었는데, 사실 민주노동당 강령상 문제 없는 발언이었던 셈이다.

     

    ○ 민주적 시장통제론     

    위 당들은 모두 ‘시장에 대한 민주적·사회적 통제’를 대안으로 놓는데, 이는 매우 모호한 지향이다. 시장에 대한 사회적 통제는 당연히 시장의 존속을 의미하며, 노동력 시장 역시 전제한다. 노동력이 여전히 사고 팔리는 상황에서 가능한 것은,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한 사후적 통제, 즉 분배 개선일 뿐이다. 결국 위 강령들이 내비치는 것은 자본과의 공조를 통한 생산성 확대, 이를 통한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복지국가 전망이나, 강령들에 신자유주의 이후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몰락에 대한 평가는 없다. 사민주의 복지국가의 물질적 토대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강령적 지향은 시간이 갈수록 ‘자본주의 안에서 가능한 조치’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 계급투쟁과 대안체제의 연계 부재

    또한, 위 강령들에는 시장에 대한 통제를 어떻게 이루어낼 것인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물론 강령적 지향의 작동 원리를 모두 명시하는 것은 불필요하며 가능하지도 않다. 그러나 핵심은 계급투쟁과 결합한 대안체제 건설 전망이 드러나있지 않다는 것이다. 노동자계급 정당이 강령적 지향을 현실화하는 경로와 수단은 계급투쟁이다. 강령적 지향과 계급투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며, 양자의 연결고리가 불분명할 경우 강령적 지향은 대안사회에 대한 이런저런 모델링이 되거나, 체제내적 정책대안에 그칠 뿐이다. 이 문제는 진보정당 강령 제반에 걸쳐있다.      

     

    결국 민주노동당 강령이건, 분당한 진보신당 강령이건, 재통합한 통합진보당 강령이건 모두 ‘세상을 바꿀 수단으로서의 계급투쟁’은 드러나 있지 않다. 결국, 전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일단 ‘집권’해야 하는 것이다. 계급투쟁과 강령적 지향의 유기적 연관 부재는 의회주의와 대리주의로 이어진다.

     

    ○ 중소기업 주도 경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대안론   

    재벌이 지배하는 경제에 대한 대안은 ‘재벌해체와 중소기업, 혹은 전문기업 주도 경제’가 아니라 ‘재벌과 기간산업의 국유화와 노동자 민중의 통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사이에 불공정 거래, 혹은 부등가 교환이 벌어진다고 해서 중소기업 주도 경제가 더 민주적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시장에서 중소기업이 자본으로서 살아남고자 한다면,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는 필연이다. 2012년 대선 당시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는 “맞춤형 재벌개혁 로드맵”으로 “진정한 주주자본주의를 실현하겠다”라고 밝혔는데, 이는 재벌해체론이 얼마나 오른쪽으로 갈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런 주장은 기간산업을 지배하는 권력을 ‘총수일가’에서 ‘시장’으로 옮길 뿐이다.

     

    또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을 대안적 소유형태로 규정하는 것은 오류다. 각국에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이 확대된 맥락은, 신자유주의가 낳은 ‘사회 해체’의 고통에 분노하는 대중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대응이었다. 한국 역시 신자유주의 본격화와 함께 ‘고용대책’ 일환으로 국가의 지원 아래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이 확대되었다. 즉, 사회적경제 확대의 토대는 만성적 실업과 비정규·불안정노동 확대다. 그리고 이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안은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 확대를 요구하는 계급투쟁이다. 이렇듯, 사회적 경제는 만성적 실업과 불안정노동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책임을 가린다.

     

    결국 위 제반 강령은 ‘사민주의 강령’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1918년 제정되어 1995년 토니 블레어에 의해 폐기되기 전까지 근 80년간 유지된 영국노동당 「당헌 4조」는 다음과 같다.

     

    “육체노동자와 두뇌노동자의 노력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가장 공정한 배분은 생산·분배·교환수단의 공동소유, 그리고 민중이 산업과 서비스를 운영하고 통제함으로써만 가능하다.”

     

    영국노동자조차 ‘생산수단의 공공소유’를 강령적 목표로 근 80여 년간 천명해왔다. 이에 비추어본다면, 민주노동당 이후 한국 진보정당들이 체제 대안으로 꼽아온 ‘중소기업 중심경제’, ‘사회적 경제’, ‘주주자본주의’ 등은 사회주의는 물론 사민주의 지향에 조차 한참 미달하는 ‘사회적 자유주의’ 강령에 가깝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반공주의를 감안하더라도, 이는 자본주의 체제와 싸우는 정당의 이념이 아니다.

     

     

    3. 전면화하는 자본주의 위기, 사민주의의 쇠퇴   

     

    1) 자본주의 위기, 개량주의에는 개량이 없다

     

    2024년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파가 약진했다. 극우파가 확보한 의석은 ‘유럽보수개혁당(ECR)’ 83석, ‘정체성과 민주주의(ID)’ 58석, 최초로 유럽의회에 진출한 독일대안당(AfD) 15석, 헝가리 피데스(Fidesz) 11석 도합 167석으로 유럽의회 전체 720석 중 23%의 의석을 점했다. 극우파는 프랑스(국민연합), 이탈리아(이탈리아형제당), 헝가리(피데스), 오스트리아(자유당) 등에서 득표율 1위를 기록했고, 독일(독일대안당), 네덜란드(자유당)에서 득표율 2위를 기록할 정도로 급격히 확산하고 있다.

     

    유럽의회 정당

    이념과 각국 소속 정당

    득표율

    의석수

    유럽국민당 (EPP)

    중도우파 (독일 기민·기사당, 프랑스 공화당 등)

    26.25%

    189 (+13)

    사회민주진보동맹 (S&D)

    중도좌파 (각국 사민당, 이탈리아 민주당 등)

    18.89%

    136 (-3)

    리뉴 유럽 (Renew Europe)

    자유주의 우파 (프랑스 르네상스당, 독일 자민당 등)

    10.28%

    74 (-28)

    유럽보수개혁당 (ECR)

    강경보수-극우 (이탈리아형제당, 폴란드 법과정의당, 독일 자유보수개혁당 등)

    11.53%

    83 (+14)

    정체성과 민주주의 (ID)

    극우 (프랑스 국민연합, 이탈리아 북부동맹, 오스트리아 자유당 등)

    8.06%

    58 (+9)

    녹색당-유럽자유동맹 (Greens/EFA)

    생태주의 진보 (각국 녹색당 등)

    7.08%

    51 (-20)

    유럽의회 좌파 (The Left)

    좌파 (독일 좌파당, 불복프랑스, 시리자, 포데모스 등)

    5.42%

    39 (+2)

    무소속

     

    6.25%

    45

    기타 (유럽의회정당 미확정 당선)

    독일대안당, 헝가리 피데스(오르반 총리 소속 여당) 등

    6.25%

    45

     

    이런 상황은 각국 사민주의-자유주의 정당의 실패와 연동되어 있다. 202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중도좌우가 지분을 지켜냈으나, 주요국 상황을 들여다보면 사민주의-자유주의 정치세력 몰락은 분명한 양상이다. 프랑스 사회당 올랑드 정부의 몰락, 유럽의회 선거로 드러난 마크롱 정부의 위기, 유럽의회 선거에 이어 최근 튀링겐과 작센 주의회 선거 참패로 다시 확인된 독일 사민당 숄츠 정부의 위기 등이 이를 드러내고 있다. 2000년 유럽연합 15개국 중 10개국에서 사민당이 정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2024년 현재 유럽연합 27개국 중 사민당이 집권한 국가는 연립정부 포함 5개국에 불과하다(영국을 더하면 6개국).

     

    신자유주의 본격화 이후 사민당은 이미 사회적 자유주의로 퇴행한 상황이었고,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는 노동자 운동을 공격하고 긴축을 수용하며 자유주의 정당과의 변별점은 보다 희미해졌다.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한 잉여의 분배와 이를 통한 산업평화를 가능케 했던 안정적 경제성장이라는 조건 자체가 부재한 상황에서, 유럽 사민주의는 나날이 쇠퇴했다.

     

    사민주의 우경화, 그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온 것이 극우파다. 2008년 금융위기와 유로존 위기를 거치며 유럽 극우파는 진화하기 시작했다. 마리 르펜의 국민전선은 애초 ‘감세’와 ‘작은 국가’ 등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했다. 그러나 마리 르펜의 딸 마린 르펜이 당 대표를 맡은 2011년 이후 국민전선(현 국민연합)은 보호주의,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주의, 사회안전망 옹호로 방향을 전환했다. 오스트리아 자유당도 비슷한 변화를 겪었다. 원래 자유시장주의자들과 나치 출신 인사들을 포함했던 이 정당은, 소위 ‘복지 국수주의’, 즉 복지혜택을 자국민에 제한해야 한다는 노선을 수용한다. ‘독일을위한대안’은 유로화와 남유럽 구제금융에 반대하는 중산층 보수정당으로 출발했지만, 2017년 의회 진출 당시 ‘독일인을 위한’ 사회보장을 주장하는 우익 민족주의 정당으로 변화했다. 2018년 스웨덴 선거에서 우익 포퓰리즘 정당인 스웨덴 민주당은, 사민당이 아니라 자신들이 스웨덴 복지국가의 진정한 수호자라고 주장할 정도다.

     

    물론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은 그 구성상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위해 탐욕스러운 유럽자본가들과 계급투쟁에 나서자’고 선동할 정당이 아니다. 복지 쇼비니즘은 ‘야만적인 불법이민자들이 유럽 복지국가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인종주의 선동이며, 이는 보편적 빈곤확대로 이어질 뿐이다. 문제는 이런 선동이 발호할 토양을 제공한 것이 사민주의의 우경화라는 것이다.

     

    오늘날 극우는 성정치 측면에서도 진화했다. 마린 르펜과 조르자 맬로니의 경우에서 드러나듯 ‘친 여성’을 적극적으로 앞세우기도 한다. 독일을위한대안 공동대표이자 연방의회대표인 알리체 바이델은 여성이자 동성애자이기도 하다. 이는 일종의 우익 정체성 정치인 셈인데, 마찬가지로 이민자 혐오와 연동된다. ‘야만적인 이민자들이 유럽여성을 공격한다.’

     

    유럽 극우파 확대 상황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회적 합의주의 정치가 아니라 사회주의 계급투쟁의 정치, 노동자계급 일부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익, 정체성 정치가 아니라 사회주의 페미니즘-퀴어해방 정치가 우리의 정치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내국인 적격자에게만 복지혜택을 주어야 한다는 유럽 극우파의 ‘복지 쇼비니즘’을 찬찬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지금, 건설노조 다수 지역지부가 ‘내국인 우선 채용’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유럽 노동자 민중은 지속되는 러-우 전쟁, 실질임금 삭감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 2023년 유럽 평균 실질임금은 전년도보다 0.7% 감소했다. 독일(-0.9%)과 프랑스(-0.6%), 이탈리아(-2.6%) 등 유럽 주요국도 마찬가지다. 이런 조건 속에서 사민주의와 자유주의 몰락은 가속화하고 있으며, 극우는 고통의 원인을 이민자들에게 돌리며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유럽 정치 상황은 가속화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2) 시리자의 실패가 드러내는 것 - ‘혁명’의 길과 ‘개량’의 갈림길은 구분된다

     

    2008년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 이후, 한때 사민주의 쇠퇴의 공백을 채운 다른 한 축 시리자와 포데모스 등 급진 좌파정당들이었다. 시리자는 사회민주주의보다 왼쪽의 이념을 걸고 1945년 이후 유럽에서 최초로 집권에 성공한 정당이었다. 시리자는 남유럽 재정위기 국면, 트로이카(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IMF)가 강요하는 연금삭감 등 긴축안에 맞선 대중운동을 기반으로 급부상해 2015년 1월 집권했으나, 압도적으로 ‘긴축 반대’를 결정한 7월 국민투표 이후 단 3일 만에 굴욕적 긴축안에 굴복하며 트로이카의 긴축안 집행자로 전락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잠시 시리자의 이론적 토대를 살펴보자. 시리자의 당 정첵연구소 이름이 ‘니코스 풀란차스 연구소’다. 당 연구소에 그 이름이 걸릴 정도로 시리자 노선에 많은 영향을 끼친 유로코뮤니즘 이론가, 니코스 풀란차스와 4인터내셔널 프랑스 지부(LCR) 주요 이론가였던 앙리 웨버는 ‘국가’에 대한 관점을 두고 아래와 같이 논쟁을 벌인다. 오래된 논쟁이지만, 여전히 국가권력에 대한 태도에 있어 시사하는 점이 많다.

     

    니코스 풀란차스: 그람시도 10월 혁명의 근본적 골간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앙리 웨버: 그렇다.

     

    니코스 풀란차스: 그람시가 진지전으로 말하는 바가 무엇인가? 진지전은 국가의 강한 성채를 민중권력의 골조로 둘러싸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같다. 그람시에게 국가는 ‘강한 성채’다. 당신은 그 성채를 공격하던지(기동전), 성채를 포위하는 것이다(진지전). 그러나 결국 같은 이야기다. 그람시 저작 어디에도 국가기구 특정 지점에서 일어날 수 있는 내부투쟁과 연관된 파열의 개념은 없다. 그런 개념은 그람시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히 국가의 발전으로 인해, 즉 국가의 힘으로 인해, 국가와 사회 모든 영역이 통합된 현실로 인해 … 파열은 국가 안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이 국가의 약점이다.

     

    앙리 웨버: 대화의 난점은 어떤 파열인가에 있다. 파열의 본질은 무엇이며 정도는 어디까지인가? 위기가 터지기 이전, 혹은 위기 도중에 국가 내부 진지들이 균열한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으로 부차적 진지들이다. 권력의 실체가 집중된 가장 중요한 국가기구는 혁명의 편으로 이동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혁명적 대중운동이 국가장치의 핵심 부문을 분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 예를 들면 관료 다수를 – 당신은 실제로 국가가 중립적일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지는 것이다. 당신은 국가기구와 그 지도적 인물들의 성격을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풀란차스는 위기에 따라 자본주의 국가가 내부에서 파열할 가능성을 논하며 혁명과 개량의 경계를 모호하게 설정한다. 앙리 웨버의 정당한 비판처럼, 이는 국가가 중립적일 수 있다는 관점을 내포한다. 국가를 ‘사물이 아닌 계급관계의 응축’이라고 규정하며, 이행의 경로로 혁명적 대중운동, 혹은 평의회 민주주의와 의회의 결합을 제안하는 풀란차스의 주장은 통상적 사민주의보다 진보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는 이중권력 상태의 영구적 지속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그 실현이 불가능하다. 계급투쟁에 따라 국가기구 일부가 균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웨버의 비판처럼, 국가의 중핵은 그 혁명적 개조를 용납하지 않는다. 풀란차스의 주장은 결국 혁명 없이 이행이 가능하다는 관점으로, 국가의 중립성이라는 오도된 관점으로 귀결한다.

     

    실제로 시리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리자는 ‘그리스와 유럽에서 21세기 사회주의 실현’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걸고 남유럽 재정위기 국면에서 급격히 부상했으나, 자신을 지지한 대중을 배신하고 긴축의 집행자가 되었다. 시리자의 몰락은 통상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몰락 경로와 전혀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물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급투쟁의 발전 전망에 중대한 타격을 주었다는 점에서, 시리자의 굴복이 남긴 상처는 더 컸다.

     

    명백히 드러났듯, 긴축의 중단은 열강의 대리자들과 한 테이블에 앉아 입씨름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시리자는 트로이카와의 협상 테이블을 박차고 나와 그리스 노동자 민중의 힘에 호소했어야 한다. 또한, 유럽노동자계급의 연대를 구하며 트로이카의 악랄함 강요에 맞서 함께 싸우자고 호소했어야 했다. 그 힘과 함께 ‘유로존 탈퇴’라는 도약을 감행하지 않고, 긴축의 거부’는 불가능했다.

     

    시리자가 부상하던 당시, ‘혁명과 개량의 이분법을 넘어서자’는 말장난을 하는 사람들은 한국에도 많았다.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시리자의 몰락이 남긴 역사적 교훈을 상기하는 것은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전망을 여는 데 있어 중요하다.

     

     

    4. 노동자계급의 정치운동 - 사회주의 정치운동과 전투적 노동운동, 급진적 사회운동의 만남을 향하여

     

    1) 민주당과 독립적인 노동자정치 세력화를 위해, 민주노총을 전 계급적 투쟁기관으로 세워야 한다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이를 논하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의 가장 중요한 동력은 계급투쟁, 국가와 자본에 맞선 정치투쟁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이런 주장에 대해, ‘열심히 싸우다 보면 정치세력이 된다는 말이냐’라는 반문, ‘전진이 주장하는 정치세력화는 어차피 비제도적인 것 아닌가’라는 반문이 있을 수 있으니 선거의 사례를 살펴보자.

     

    ‘계급투표’가 나타난 가장 가까운 사례는 2016년 총선이다. 2010년 지방선거 이래 노골화한 야권연대와 소위 통진당 사태에 이은 배타적 지지방침의 붕괴 이후,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는 2015년경 이후에야 재개될 수 있었고, 이는 총파업 총궐기 투쟁의 성과에 기반했다. 2016년 2월 4일,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에서 “노동개악세력 심판을 위한 총선대응 총력투쟁”을 결의했다. 민주노총은 이와 함께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의 12대 요구를 바탕으로 ‘노동자·농민·빈민 살리기, 박근혜정권심판 2016 총선공동투쟁본부(총선공투본)’를 제안했으며, 총선공투본에는 30여개의 정당과 단체가 집결했다. 배타적 지지방침 이후 이렇다할 정치-총선방침과 관련 논의가 부재하던 당시, 총선 국면 제 단체와 정당을 한 자리에 불러 모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총궐기 투쟁과 최저임금1만원운동, 노조 할 권리 등 전 계급적 투쟁과제를 제시하며 싸워온 민주노총의 실천적 권위가 있었다.

     

    총선공투본은 정의당의 노골적 야권연대를 제어하지 않은 한계를 노출했으나, 총파업 총궐기 투쟁의 성과를 선거공간에서 이어가며 정치·총선방침을 재정립하려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었다. 노동개악 저지투쟁은 계급투표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노동자 밀집지구인 창원 성산 노회찬, 울산 북구 윤종오, 동구 김종훈 당선이 그 예다. ‘통합진보당 사태’의 상흔이 남아있는 상황에서도 울산 두 후보가 무소속으로 당선했다는 사실은 노동개악 저지 총파업·총궐기 투쟁이 계급투표로 이어졌음을 드러낸다.    

     

    이런 경험에서 드러나듯 노동자계급은 국가와 자본에 맞선 정치투쟁으로 정치세력이 된다. 이런 점에서 노동자계급을 권력의 주체로 형성하는 과정, 민주당과 독립적인 노동자 정치운동의 주체로 형성하는 과정은 노동조합의 계급적 재구축과 뗄 수 없는 과제다.

     

    민주노총을 계급적으로 재구축하는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로, 가장 열악한 노동자의 생존권과 기본권 요구를 전면에 건 계급투쟁 확대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300인 이상 정규직 사업장 노동자가 100원을 받을 때, 300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는 44.1원을 받는다. 거대한 규모의 특수고용노동자가 통계에서 제외됨에 따라, 실제 격차는 통계보다 훨씬 크다.

     

    2022년 기준으로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 소위 ‘비임금노동자’ 규모는 850만 명에 달한다. 거대한 불안정노동자가 노동법 밖에서, 최저임금제도 밖에서 노동하고 있다. 민주당과 독립적인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한 노동운동의 당면 과제는, 이 노동자들을 정치운동과 함께 조직하고, 주체로 세우는 것이다.

     

    이러한 임금과 권리상 구조적 격차에 더해, 실질임금의 지속적 하락에 따라 노동자계급 내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 고용노동부 7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상반기 1인당 명목임금 상승률은 2.4%로 소비자물가 상승률 2.8% 보다 낮아 실질임금은 0.4% 하락했다. 2022년 0.2% 하락과 2023년 1.1% 하락에 이어, 올해까지 실질임금 감소가 지속되고 있다. 실질임금 하락이 3년째 이어지는 것은 IMF 위기와 서브프라임 위기 국면 당시에도 없었던 일이다.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2.2% 감소,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0.8% 감소해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의 임금손실이 더 컸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반격은 조직되지 못하고 있다. 생존권과 기본권 쟁취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최저임금투쟁을 비롯,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권을 확대하는 투쟁, 국가와 자본에 맞선 생존권쟁취 계급투쟁을 확대하는 것은 그 진전이 더딜지라도 현 정세에서 필수적이다.

     

    2) 지금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이념과 주체, 경로를 명확히 할 때다 – 민주노총 주도 단일정당 건설론에 대하여

     

    의회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에 많은 동지들이 동의한다. 2023년 9월 민주노총 정치방침 역시 ‘의회주의 정당을 만들자’고 하지 않으며, 대신 ‘직접정치’, ‘광장정치’를 언명했다. 일견 의회주의에 대당하는 방향으로 보이지만, 막상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모호하다. 직접정치는 민주노총 조합원이 후보와 의원이 되는 정치, 혹은 기층 조합원이 열성적으로 선거운동에 나서는 정치인가? 광장정치는 대규모 집회로 국가와 의회에 압력을 행사하는 정치인가? 만약 직접정치와 광장정치의 의미가 그러하다면, 민주노동당의 정치도 직접정치와 광장정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회주의는 언명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17년, 2022년, 2024년 모두 민주노총 주도 통합정당 건설 구상이 제시되었다. 그간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반성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 구상들은 결국 선거를 겨냥해, 또한 선거를 경유해 통합노동자정당을 만들자는 제안이었다. 물론 이런 맥락에서 통합의 목적은 무엇보다 의석 확대다. 그러나 전 계급적 정치투쟁을 정치세력화의 주동력으로 놓지 않는 한, 그간 정치세력화의 오류를 재생산할 수 있을 뿐이다. 민주노총 주도로 단일정당을 만든다고 해도, 그 당의 지향과 정치활동은 현존 정치세력들의 산술평균에 불과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이후 ‘정치’의 공간은 의회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노동조합의 정치적 역할은 지역구 후보 조정과 지지표명, 세액공제 모금, 투표 조직 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누군가 ‘양날개론이 옳다!’고 힘주어 외치지 않더라도, ‘산별노조의 경제투쟁과 진보정당의 정치투쟁’이라는 양날개론은 여전히 유일하게 가능한 정치세력화의 모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이런 현실을 지양하는 것이어야 한다. 노동자가 스스로를 정치 세력으로 드러내는 행위는 ‘정치투쟁’, 곧 전 계급적 투쟁이다. 노동조합이 투쟁을 잘 조직하다 보면 정치세력이 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목적의식적으로 건설할 노동자당의 목적은, 의석 확대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정치투쟁을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회주의·개량주의·대리주의를 지양한 정치세력화, 양날개론을 실천적으로 지양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상은 어떤 것일까. 대안적 정치-선거방침의 예를 상상해보자. 민주노총 정치방침이 ‘2024년 윤석열 퇴진 민주노총 정치총파업’으로 제시되는 정치세력화, 선거방침이 ‘현장과 지역에서 정치총파업을 조직한 정당의 후보를 지지한다’인 것이 하등 어색하지 않은, 그런 종류의 정치세력화일 것이다.   

     

    2009년 쌍용차 파업과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고 가정해보자. 국가권력의 탄압에 조응하는 노동자정당의 ‘정치’는 고작 의원단 기자회견 같은 것이 아니어야 한다. 양날개론을 지양하고 새로운 정치세력화에 나선 노동자당이라면, ‘당원은 자신이 속한 노동조합에서 연대파업을 안건으로 대의원대회 소집에 나선다’는 긴급당대회 결의를 끌어내야 할 것이다. 또한, 양날개론을 지양한 민주노총이라면, 스스로의 정치파업 결의와 함께 모든 진보정당에 함께 이를 조직하자고 요구할 것이다.

     

    의회주의, 대리주의, 개량주의를 극복하는 정치세력화는 결국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정치, 노동현장과 지역에서 투쟁을 조직하는 정치다. ‘그래서 어느 세월에 정치세력화 하나?’라는 질문이 있을 것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자본주의 위기심화 정세다. 물론 우리는 위기가 저절로 투쟁 확대로 이어지지 않음을 숱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당면 위기에 대응하는 정치투쟁을 제안하고 조직하는 과정에서 사회주의 노동자정당의 구심을 형성해 가야한다는 것, 또한 ‘우리 아니면 안 된다’라는 좁은 태도에서 벗어나, 또한 ‘투쟁하다 보면 된다’는 대기주의적 자세에서 벗어나 넓은 자세로 목적의식적 공동투쟁을 조직할 때라는 것이다.

     

    3) 제국주의 열강투쟁 전면화, 진영론을 청산하고 사회주의를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이념으로 세우자

     

    다음으로, 이념의 중요성을 보자.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하등 어색한 것 없는 정세, 전면화하는 위기와 제국주의 열강 투쟁의 시대다. 그 반영 중 하나가 운동진영 내 진영론 확산이다.

     

    지금, 운동진영 한편에서는 미국 주도 세계질서 불가피론(소위 규칙기반 세계질서론)이 운위되는가 하면, 북중러 블록을 모종의 반제-사회주의-민주기지로 여기는 진영론도 있다. 제국주의 블록 간 투쟁이 전면화하는 지금, 한 블록의 존재와 행위를 정의로운 것으로 대중 앞에 해석하고 제시하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앙상한 진영론으로 만든다. 당장 핵 보유를 평화의 수단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도착적이다. 이런 주장은 극우파 주장의 거울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원수가 ‘핵 기반 한미동맹’을 운위하고, 미국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가 새롭지도 않을 만큼 일상화하는 지금에도 한국 대중은 반제반전투쟁에,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에 냉소적이다. 이런 상황은 이념에 근거한 대중적 정치투쟁의 부재를 드러내며, 또한 그 절실한 필요를 드러낸다. 이념에 근거한 정치세력화의 과정은, 바로 이런 현실과의 진지한 대결 과정이다. 오도된 진영론을 청산하고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

     

    4) ‘인민의 호민관으로서 노동자계급’, 그 오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전방위적 정치활동에 나서자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를 부르주아에게 내맡기지 말고, 노동자계급이 당면 민주주의 혁명을 주도하는 주체로 서야한다고, 모든 억압에 앞장서서 맞서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바로 그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레닌은 말했다. 그 주장처럼, 노동자계급의 모든 억압을 계급투쟁의 관점으로 해석하며 그 억압을 철폐하는 투쟁의 선두에 서야한다.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는 바로 그 과정과 함께 형성된다. 사회주의 운동을, 그리고 노동자계급을 인민의 호민관으로 세우려는 적극적 시도가 필요하다.

     

    특히 여성억압을 철폐하는 투쟁, 기후위기에 맞선 투쟁을 계급투쟁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자기 과제로 세우기 위한 과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물론 이 과정은 라클라우나 무페를 비롯한 급진민주주의 좌익포퓰리즘 이론가들의 ‘등가적 연대’ 노선, 혹은 포데모스식 정치노선과 판이하다.

     

    사회주의 노동자 투쟁정당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계급의 일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노조운동, 여성-저임금노동자-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는 노조운동, 국가와 자본이 만든 기후위기에 맞서는 노조운동, 제국주의 전쟁위협에 맞서는 노조운동을 세워야 한다. 이는 계급 전체를 조직하는 과정의 일부다.

     

    5) 위기 심화, 정세에 조응해 현장분회운동 확대를 모색하자

     

    노동의 공간이 곧 투쟁의 공간이고, 정치의 공간이어야 한다. 물론, 그간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주요 노선이었던 현장분회(세포)의 경우, 단지 구획하는 것으로 분회운동이 확대는커녕 유지조차 되기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배워왔다.

     

    “전전(戰前)의 러시아에서는 유럽에서의 제2인터내셔널 시기 전체를 특징지었던 거대한 노동자 조직들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당이 노동계급의 모든 결정적 이해들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은 단지 일반적인 이론적 요구사항이 아니라 조직과 투쟁의 실제적 정언명령이었다. 공장과 가두의 세포들은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위한 노조의 투쟁에서 그리고 짜리즘의 타도를 위한 정치투쟁 모두에서 대중들을 이끌었다. 반면 서유럽에서는, 노동계급의 노조조직과 정치조직 간의 분할이 더욱 심화되었다. 노조 진영에서는 개량주의자들과 평화주의적 경향이 급속도로 힘을 얻고 있었다 ― 또는, 환언하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의 영향력이 점차 증대하였다. … 대중기관들이 노조활동에 국한하지 말고 자본주의와 그 정치 체제에 대한 전체 투쟁의 일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추동해야 한다. 확실히 우리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은 러시아 볼셰비키가 직면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데, 왜냐하면 우리는 파시스트 국가의 반동적 세력뿐만 아니라 노조 내의 개량주의자들의 반동적 세력과도 전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 그람시, 당의 조직적 기반 (1925.8.15.)

     

    사회주의 정치운동이 조직하고자 하는 상당수 일터에는 이미 노동조합과 현장조직이 있다. 사업장 현안 대부분이 노동조합과 현장조직 결정에 따라 집행되는 상황에서, 정치조직 활동가는 노동조합과 현장 활동가조직에서 활동하며 해당 공간을 이끌고 조직하고자 노력한다. 노조-현장조직 외부에서 추상적 선전활동에 그치지 않고자 한다면, 활동가는 노동조합과 현장조직의 결정과 질서를 존중하며 내부에서 활동하게 된다.

     

    주요 난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노동조합과 활동가조직이 제반 투쟁현안을 결정하는 상황이기에, 분회가 현장투쟁을 매개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정치분회가 일상적 현장투쟁 조직기능을 포괄하고자 할 경우 분회는 활동가 조직과 경합하게 되며, 이는 양자 모두에게 좋지 않다. 현장조직은 활동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그것이 대중을 모아 일상 투쟁을 조직하는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장분회의 공개 정치운동은 통상적 현장투쟁보다 더 의식적인 싸움을 제기하는 것, 사업장을 넘어 지역과 산업, 나아가 전체 노동자계급 입장에서 현안을 해설하고 과제를 제시하며, 연대를 추동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도 이는 활동가 조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능력과 준비를 요할 수밖에 없다. 분할된 노동계급의 상황상, 주변의 냉대를 견디는 강단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분회의 구성과 확대는 분회만의 몫이 결코 아니다. 또한, 현장분회의 조직구성 역시, 노동자의 존재-노동조건에 따른 구축시도가 행해져야 한다. 네트워크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산업현장분회, 서비스-플랫폼노동자들의 경우 지역현장분회 등을 구축해야 현장정치활동이 가능할 것이다. 노동조건 자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분회 구성과 활동의 가능성을 진단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으로, 현 정세를 빼놓을 수 없다. 자본주의의 위기 심화와 함께, 현 정세는 전 계급적 생존권 쟁취투쟁과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간극을 상대적으로 좁히고 있다. 파산과 산업재편에 대응하는 투쟁, 기간산업 구조조정에 대응하는 투쟁의 경우, 투쟁의 정당성에 관한 정치적 자신감 자체가 생존권 투쟁의 선결조건이기도 하다.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생존권쟁취 정치투쟁을 제기하며 현장정치활동의 공간과 조직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강령적 과제를 구체적으로 설득해 낼 조직적 실천에 착수해야 한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다른 노동자 정당’의 가능성은 실물화할 것이다.

     

    6) 당면 과제, 윤석열정권 퇴진 노동자 정치총파업을 조직하자

     

    정세적 인화물질은 가득하나 대중투쟁은 부재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윤석열의 24번의 거부권 행사가 드러내듯, 국회 내 지루한 공방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고, 이는 노동자 민중운동의 대응이 민주당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대중이 윤석열 정권에 환멸을 느끼고 있음에도 정세의 발전은 지체되고 있다.

     

    돌아보자. 민주노총은 2015년 총파업-총궐기 운동으로 2016-2017 국정농단 사태 본격화 전 박근혜 퇴진투쟁을 본격화했다. 2016년 10월 말 경, 철도노동자들은 한 달 이상 정권에 맞선 파업을 전개하고 있기도 했다. 조직노동자들이 총파업·총궐기로 투쟁구심을 형성해왔고, 이 구심과 미조직 대중의 자연스러운 융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본격화 이후 정세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다. 광장의 대중이 가장 많이 외친 ‘박근혜는 퇴진하라!’ 다음으로 많이 외친 구호가 ‘재벌도 공범이다!’였다는 점 역시 노동자계급운동이 주체적 대응으로 만든 성과였다.

     

    야당은 광장으로부터 국회로 주도권을 회수하고자 했다. 2016년 11월 21일,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은 원내대표 성명을 통해 철도파업 철회와 법률대응으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철도파업의 승리가 총파업의 핵심목표라는 점에서, 이는 사태중심에 노동계급이 서는 것을 막고 국회 주도로 ‘질서’를 세우려는 시도였다. 안타깝게도 11월 30일 민주노총 총파업의 위력은 미약했고, 그 결과 투쟁의 성격은 ‘민주공화국 회복’의 테두리를 넘어서지 못했다. 주도권은 보수야당으로 넘어갔고, 보수야당은 ‘시민혁명’이라는 이름의 혁명 없는 혁명을, 체제정상화 과정을 주도했다. 광장의 모든 대중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을 때, 2016년 11월 중반까지도 야당들의 요구는 ‘국회추천 총리임명, 특검, 국정조사’에 불과했다는 것을 상기할 때, 광장의 힘이 없었다면 탄핵 가결은커녕 발의도 불가능했다.

     

    현 상황은 당시에 비해서도 훨씬 뒤처져 있다. 대중은 처음부터 퇴진을 외치며 광장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 탄핵발의를 요청하고 있다. 2016-2017년의 경험 때문이다. 처음부터 제도가 보장하는 체제정상화 경로로서의 ‘탄핵’이 중심에 있다. 이 상황을 돌파할 방법은 목적의식적 정치총파업 조직뿐이다. 현장과 지역에서, 노동운동과 모든 정치운동이 함께 정치총파업 조직화에 착수해야 한다. 그 과정으로부터,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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