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야 할 것들이 살아남아 현실을 짓누른다 - 21대 대선이 드러낸 노동자계급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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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죽어야 할 것들이 살아남아 현실을 짓누른다 - 21대 대선이 드러낸 노동자계급의 과제

  • 백종성
  • 등록 2025.06.25 15:21
  • 조회수 151

 

이준석 약진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번 대선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 중 하나는 총 득표율 8.34%를 기록한 이준석이 청년층으로부터 얻은 높은 지지다. 대선 지상파 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준석은 20대 남성으로부터 37.2%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 다음이 36.9%를 얻은 김문수로 이준석과 비등하고, 이재명은 24.0%에 불과했다. 비상계엄 내란을 노동자 민중의 투쟁으로 진압한 후 벌어진 선거였다는 점에서, 또한 여성과 소수자들이 광장의 중요 주체였다는 점에서, 남성 청년층의 정치적 정서는 노동자 민중에게 고민을 던진다.

 

20대 남성 청년층은 불안정한 집단이다. 고용불안으로 비정규·플랫폼노동 진입이 일상화된 와중에, 병역의무라는 짐도 감당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 20대 청년 남성 다수는 청년 여성을 취업시장 경쟁자로 여기게 된다. 이런 청년층을 대상으로, 이준석은 '특정 집단'이 혜택을 독점한다는 선동으로 부상했다. ‘이 힘들고 불공정한 세상에서 자신만의 이익을 취하는 집단이 있다. 당신들이 힘든 이유는 바로 그들 때문이다!’ 해당 기득권 집단은 다음과 같다. 모두 힘든데 자신만의 권리를 주장하며 반문명적인 시위를 벌이는 장애인들, 이기적이게도 정년연장을 요구하며 좋은 일자리를 독점하려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 자신들에게만 유리한 국민연금 개악으로 젊은이들을 수탈하며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독점하는 중장년층, 그렇지 않아도 좁은 취업시장에서 남성에 대한 역차별로 불공정한 이익을 취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학교에서 테러에 가까운 난동을 부리는 페미니스트 집단 등등. 이번 대선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1호 공약으로 내건 이준석의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이준석의 선동은 ‘자신을 대변할 유일한 인물’을 찾았다는 20대 청년 남성들의 환호로 이어졌다.

 

보다 긴 국면에서 보자면, 이준석의 정치적 부상은 '조국 사태'로 상징되는 민주당 정권의 위선과 이중성에 대한 청년층의 분노가 누적된 결과였다. 물론 조국 사태 이후 곧바로 민주당에 대한 청년층의 지지가 급감한 것은 아니었다. 2020년 총선 당시 20대 남성의 47.7%가 여전히 민주당을 지지했다. 당시는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하던 국면으로, 문재인 정부는 초기 방역 성과를 앞세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고, 야당인 미래통합당은 황교안 대표 체제로 청년층에게 매력적인 대안이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2020년 총선은 조국 사태 이후 부상하는 ‘공정성’ 담론을 정치적 대안으로까지 밀어올려 결집할 인물이 가시화되기 전 단계였던 셈이다.

 

사진: 뉴스1

 

이런 상황에서 2021년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은 공정성 담론이 그 정치적 표현을 획득하며 확장되는 계기였다. 이준석은 ‘여성할당제 폐지’와 ‘공천 자격시험제’ 등 공정경쟁 이데올로기,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워 등장했다. 이런 흐름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부상하는 과정과도 궤를 같이 했다. 이준석은 민주당 정권의 위선과 부패를 토대로 급부상했고, 2022년 윤석열 집권 후에는 ‘기득권층과 싸우다 부당하게 쫓겨난 젊고 유능한 정치인’이라는 후광도 얻었다.

 

‘민주당의 실체를 드러낸 조국 사태의 이면으로서의 이준석’이라는 맥락은 1년 전 치러진 2024년 총선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2024년 총선의 특징 중 하나는, 윤석열 정권의 거듭된 패악질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결과한 조국혁신당 약진이었다. 2024년 총선에서 조국혁신당 비례대표 득표는 24.25%로 이준석의 개혁신당 3.61%의 근 7배에 달한다. 그런데도 총선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의 개혁신당 지지율은 16.7%로 조국혁신당의 17.9%1)와 비등할 정도로 이준석은 청년 남성들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2)

1) 창당 초기, 조국혁신당은 ‘20대 지지율 0%’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이듯 청년층에게는 전혀 지지받지 못했다. ‘조국’은 청년들에게 불공정과 ‘내로남불’의 역겨운 상징일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출구조사 결과로 드러나듯, 정권 심판론의 확대에 따라 20~30대 일부도 결국 조국혁신당을 지지했다. “2~30대 청년층이 최우선시하는 ‘공정 경쟁’의 원칙(이것은 비인간적 경쟁으로 고통받는 청년층이 가장 일그러진 형태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ᅠ것이다)을ᅠ훼손한 조국에게도 18~23%의 지지를 보낸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청년층이 경험하는 고통의 객관적 크기를 실감하게 한다.”

2) 조국혁신당의 독자 창당은 여러모로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불공정과 이중성의 상징과도 같은 ‘조국’이 별도의 정당으로 등장한 상황은 민주당에 대한 청년층의 반감을 희석시켰고, 민주당의 ‘정권심판’ 호소력을 강화했을 공산이 높다.

 

21대 대선 출구조사 결과, 20대 남성 이준석 지지율 37.2%라는 결과를 어떻게 보아야할까? 거칠게 분류하자면, 20대 남성 37.2%의 정서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이들은 비상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도 찬성하나,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불공정한 민주당도 대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압도적 지지와 함께 출발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을 기대에 차 바라보았으나, 이제는 바로 그 민주당이 자신에게 고통을 안긴 주범이라고 여긴다.

 

계급투쟁의 정치, 그 부재가 낳은 우익포퓰리즘의 부상

 

특히, 여성 의제와 국민연금 의제의 경우 이준석이 지지자를 결집하는 주된 매개였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먼저, 여성의제를 보자. 이준석의 극우 선동처럼 문재인 정부가 여성을 위해 남성을 역차별했는가? 물론 아니다. 문재인은 후보 시절 성별임금격차를 OECD 평균인 15%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으나, 여전히 한국은 29.3%(2023년)로 OECD 성별임금격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연평균 최저임금인상률은 7.2%로 역대 정부 중 뒤에서 두 번째였고, 심지어 박근혜 정부의 7.4%보다 낮았다.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자리 상황판’을 요란하게 전시했지만, 자본 편에 선 문재인 정부는 여성에게건 남성에게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 늘어난 것은 여성 고위공무원, 공기업 여성 임원들뿐이다. 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 10%, 여성 공공기관 임원 비율 20%를 달성한다는 ‘공공부문 여성 대표자 확대’를 내세웠고, 실제로 여성 대표자는 늘어났다. 그러나 더 많은 여성착취자와 여성억압자를 만드는 것이 어떤 평등을 담보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페미니즘’을 앞세워 집권하고서도 박원순 등 성폭력 가해자를 감싸고 추모하며, 피해자에게 집단적 린치를 가하는 민주당의 위선은, ‘민주당식 페미니즘’에 대한 젊은 남성의 냉소를 확대했을 뿐이다. 이렇듯 민주당 정부는 남녀노동자 모두의 삶을 더 안정적이고 평등하게 만들기는커녕, 보수세력의 반페미니즘 혐오선동에 촉매를 제공했을 뿐이다. 즉, 계급투쟁으로 실질적 성평등을 쟁취해내지 못하는 한, ‘여성주의=고위직 할당제=불공정’ 선동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준석이 지지층을 결집하는 또 하나의 매개가 국민연금 개악이었다. 이준석은 ‘기득권 세대가 젊은 세대의 몫을 빼앗고 있다’는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웠다. 3월 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3월 20일 국회를 통과한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청년층의 여론은 ‘반대’가 압도적이다. 18~29세에서는 반대가 63%, 30대에서는 반대가 58%를 기록했고 이준석은 대선에서 '구연금'과 '신연금' 분리운용 공약을 내세우며 청년세대를 결집했다.

 

 

국민연금을 매개로 한 이준석의 청년세대 결집, 이는 계급정치 부재가 낳은 우익포퓰리즘의 승리다. ‘더 내고 더 받는’ 연금을 지향하는 사민주의적 연금개혁론자들은 청년층의 반대 여론을 ‘연대의식 부재’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나, 청년층이 3월 20일 국민연금법 일부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로 개악이기 때문이다.

 

노동자 민중, 특히 청년노동자들은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할 여력이 없다. 2024년 하반기 국정감사에 따르면, 국민연금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가입했어도 형편이 어려워 보험료를 못 내는 사람이 1,034만명에 달한다. 특히 청년층 사각지대 비중이 높다. 2020년 기준 18~34살 인구 중 연금 사각지대 비중은 55.7%에 이른다.

 

대안은 국민연금에 대한 자본의 부담을 늘리는 계급투쟁뿐이다. 압도적 저출생은 객관적 현실이며, 국민연금 문제는 저출생에서 파생된다. 국가와 자본은 연금제도 유지의 부담을 노동자계급에게 지우고자 한다. 자유주의 시민사회와 사민주의자들 역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노동자의 보험료율 인상에 동의하며 '더 많이 내고, 더 많이 받는' 국민연금으로의 재편을 지향한다. 민주노총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왜 보험료를 더 내야하는가? 저출생과 저성장이 집약하는 체제의 위기도, 그 위기에서 파생하는 국민연금의 문제도 노동자 민중이 만든 것이 아니다. ‘더 내고 더 받는’ 국민연금 재편론은 그 의도가 무엇이건 한국 사회를 파탄시킨 자본의 책임을 면죄함은 물론, 보험료를 추가 부담할 여력조차 없는 노동자계급의 현실에 눈감는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인상되어야 하고, 지급개시연령은 낮추어져야 하며, 그 부담은 자본이 져야한다.

 

여성 의제와 국민연금 의제에서 드러나듯, 심화하는 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도 계급투쟁의 정치라는 대안은 드러나지 않았고, 청년층의 불안과 위기감은 공정성을 기치로 내건 우익포퓰리즘이라는 깃발 아래 결집했다.

 

그러나 공정성 담론과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현 위기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내놓을 수 없다. 그저 민주당의 정치, 계급협조주의 정치의 허점을 공략하는 반명제로 기능할 수 있을 뿐이다. 극우 선동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는 계급투쟁의 정치다.

 

2017년 정의당의 몫은 어디로 갔는가

 

민주노동당-사회대전환연대회의 권영국 후보는 0.93%를 득표했다. 진보당 김재연 후보가 사퇴하고 이재명 지지 운동을 하는 상황에서 유일한 진보정당 후보로 완주했으나 예상보다 낮은 득표였다. 민주노동당, 과거의 정의당은 왜 위축되었을까? 잠시 2017년 대선 상황을 돌아보자.

 

“동성애는 찬성이나 반대를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고 봅니다. 성정체성은 말 그대로 정체성입니다. 저는 이성애자지만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것이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2017년 대선 TV토론에서 심상정의 ‘마지막 1분’은 상당한 화제를 낳았다. 당시 민중당(현 진보당)은 통합진보당 해산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심상정을 내세운 정의당은 6.17%를 득표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7년 대선에서, 정의당은 민주당 왼편에서 대안을 찾는 노동자 민중에게 분명 일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점에서 일각이 주장하는 ‘성평등과 소수자 권리를 강조해 정의당이 지지기반을 잃었다’는 주장은 오류다. 성소수자의 권리를 지지하는 심상정의 발언이 2017년 대선에서 반향을 얻었듯, 이는 오히려 정의당의 지지를 확장하는 기제였다.

 

문제는 민주당 종속성이다. 2017년 대선 이후 정의당은 문재인 정부와의 관계에서 종속적 역할을 자처했다. 민주당의 위선을 여실히 드러낸 2019년 조국사태에서 정의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지지하며 민주당과 한배에 탔다. 당시 지형상 정의당은 조국 임명 여부에 관한 정치적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고, 정의당의 동의는 청와대의 조국 법무부장관 임명 강행으로 이어졌다. 조국사태에 대한 민주당의 분풀이에 지나지 않았던 2022년 ‘검수완박’에 대한 입장에서도, 정의당은 민주당을 지지했다. 이 과정 속에서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부상했고, ‘공정성’ 담론이 청년층을 휩쓸었다.   

 

정의당은 민주당에 의존적인 행보 속에서도 '다당제 민주주의'와 ‘제3당’으로서의 가치를 호소했으나, 정작 정의당을 ‘좀 더 매운맛 민주당’으로 보는 대중에게는 설득력이 없었다. 2016년 돌풍을 일으킨 안철수의 ‘국민의당’, 2024년 ‘조국혁신당’ 등 이념과 조직 구성에서 민주당과 보다 유사한 제3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정의당이 고전한 이유다. 

 

결국 정의당은 2022년 대선 2.37% 득표에 이어 2024년 총선에서도 의석 확보 실패라는 참패를 겪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서는 이준석, 금태섭과 손잡고 제3지대 정당을 만들자는 황당한 주장까지 난무했고, 비례대표 의원 류호정과 조성주 등은 실제로 이들과 당을 만들어 개혁신당으로까지 흘러 들어갔다. 또한 민주당과 적극적인 연대를 주장하던 세력은 탈당하여 사회민주당을 결성하고 총선에서 민주당과 연합했다. 당 주요 인사들이 전혀 통제받지 않고 ‘진보정치’와 하등 관계없이 행보할 수 있었다는 상황 자체가, 정의당의 이념과 조직 구성이 얼마나 노동자계급과 괴리되어 있었는지를, 그리고 당내 민주주의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는지를 드러낸다.

 

사진: 뉴스1

 

이런 점에서 정의당의 거듭되는 위축과 이준석의 약진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노동자계급 정치운동 부재라는 하나의 원인에서 나온 두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권영국 후보의 의미와 한계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정의당보다 왼편의 세력, 즉 사회대전환연대회의 소속으로 출마해 완주했고, 34만 4,150표를 얻었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정치세력화를 표방했다는 점, 노동권 확대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 권영국 후보가 제시한 공약이 큰 틀에서 진보적이라는 점, 권영국 후보가 투쟁현장을 찾으며 노동자계급과의 연대 의지를 드러낸 점은 노동자 계급정치 확대의 측면에서도 분명 의미있는 일이었다.

 

사진: 민주노동당

 

그러나 권영국 후보의 한계 또한 분명했다. 과거 정의당의 민주당 종속성과 함께, 사회대전환연대회의 내 일부 세력의 민주당 종속성 역시 문제였다. 노동자의 희생을 통한 기업살리기에 민주노총을 동원하려는 시도였던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 합의안'을 문재인 정부와 손잡고 민주노총에 관철하고자 했던 세력이 버젓이 사회대전환연대회의에 포함된 상황은, ‘민주당과 독립적인 정치세력화’라는 후보의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했다.

 

관련해서 살펴보자면,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사회대전환연대회의 대선후보 경선에서 한상균 노동자계급정당건설추진준비위원회(노정추) 대표가 권영국 후보에게 큰 표차로 패배한 이유는, 그가 ‘노동자계급의 단결과 투쟁의 상징’으로서 자신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정추에 속한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의 존재는 한상균의 상징성과 대표성을 크게 약화시켰고, 이는 한상균의 경선 패배로 이어졌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가 ‘계급투쟁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지향하는 전투적 노동자들을 광범하게 결집하지 못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대전환연대회의 권영국 후보가 제시하는 공약 전반은 자본주의 안에서의 개혁, 그것도 불충분한 개혁에 머무르고 있으며 심화하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인식 또한 결여하고 있었다. 그 결과, 최저 출생률과 최대 자살률이 상징하는 삶의 위기 앞에서도 자본주의 그 자체에 맞선 투쟁이 아니라 증세와 제도개혁을 통한 분배 확대를 요구하고 있을 뿐이다.

 

“불평등을 넘어 함께 사는 경제구조”라는 이름이 붙은 경제공약은 △지역공공은행 설립 △지역공공은행의 경영악화 중소기업에 대한 지분투자 △노동자의 부도위기 기업인수 지원 등을 명시하고 있다. 기간산업과 재벌을 국유화하고, 자본가의 경영권을 박탈하며, 노동자 민중이 산업을 통제하자는 투쟁 선동 대신 철저히 법체계 안의 주변적 조치를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경영악화 기업 지분투자, 부도기업 인수’ 등 공약에는 자본을 위한 경제체제 전반을 재편하겠다는 의지도, 이를 위해 노동자계급을 권력의 주체로 형성하겠다는 전략도 없다. 자본이 틀어쥔 기간산업은 그대로 두고, 파산기업 인수로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가? 권영국 후보의 경제 공약은 사민주의 경제정책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 한계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권영국 후보가 제시하는 '전국민 일자리보장제' 역시 의회주의-개량주의적 정치세력화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시장에서 만들어지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자리 창출'을 지향하는 권영국 후보의 일자리보장제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대자본이라는 몸통은 그대로 두고, 대자본이 장악한 영역 밖에서 공공근로를 확대하자는 주장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아래 그림에서 드러나듯, 일자리보장제가 제시하는 일자리는 호황과 불황에 따라 이곳저곳을 떠도는 임시 비정규직 일자리일뿐이다. 이런 제안에 해방적, 이행적 요소는 눈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출처: http://www.redian.org/archive/153972

 

권영국 후보가 내건 일자리보장제도는 한때 유행하던 현대화폐이론가들의 논의를 차용한 것이다. 그 주요 이론가인 파블리나 체르네바(Pavlina R. Tcherneva)의 논의3)에 따르면, 일자리 보장제도는 민간부문을 흡수하거나 침해하지 않는다. 즉, 현대화폐이론가들이 제안하는 일자리보장제도는 공공부문 확대 구상을 명시적으로 배제함은 물론, 일자리보장제도가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지 않음을 곳곳에서 장점으로 내세운다. 권영국 후보의 공약은 이 틀을 그대로 차용했는데, 생산과 산업에 대한 자본가의 권력을 하등 건드리지 않은 채 정부가 임시적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공약은 ‘그냥 자본주의 안에서 이대로 살자’는 이야기다.

3) 파블리나 R. 체르네바, 2021, 『일자리보장-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제안』 

 

자본주의 자체에 문제제기 하지 않는 권영국 후보의 한계는, 노골적인 민족주의와 반생태적 내용으로 채워진 국방·통일·외교통상 공약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대중에게 무엇인가를 분배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지불능력이 존재해야 한다는 사민주의의 본질적 한계가 반동적으로까지 드러난 대목이다.

 

석유·가스·희토류 등 러시아 극동 자원개발에 참여한다는 공약은 노골적 추출주의(extractivism)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기후정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특히 '러시아 북극항로 개척'으로 조선·물류산업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은, 북극항로 자체가 기후위기로 인한 해빙으로 열렸다는 점에서 기후재난을 이윤축적의 기회로 삼겠다는 반생태적 발상이다. 나아가 북극항로는 미·중·러 열강이 격돌하는 지정학적 투쟁 공간이라는 점에서,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라는 시대인식 자체를 결여하고 있다.

 

이런 시대인식의 부재는 ‘한국형 모병제 도입으로 30만 정예 강군 달성’이라는 공약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모병제는 전쟁의 시장화다. 필요한 것은 대대적 군축이지 모병제 도입이 아니며, 그 목적 또한 ‘정예 강군’ 육성이 아니다. 이것도 모자라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신경제구상'을 계승하겠다는 공약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민주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은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출발이나,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의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다.

 

계급투쟁의 정치를 향하여

 

“4월 29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는 이재명을 지지하자는 대선방침안이 제출되었고, 5월 15일과 5월 20일 중집에서도 마찬가지로 민주당을 지지하자는 주장과 진보정당 후보를 지지하자는 주장의 논쟁 끝에 대선방침 없이 대선을 치르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민주당을 지지하자는 주장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상황이 말이나 되는가! … 민주노총의 민주당 지지가 처음은 아니다. 민주노총의 2010년 6·27 지방선거 방침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지지'였고, 2011년에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로 성장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계 정치세력과 함께 ‘통합진보당’을 창당했다. 2012년 총선에서도 민주노총의 선거방침은 민주당을 포함한 '반MB 단일후보 지지'였다. 민주노총의 이런 방침에 따라, 노동자계급은 민주당 정부의 노동탄압 주범들에게 투표해야 하는 신세로 내몰렸다.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은 지금도 민주당 노동본부장 신분으로 민주노총을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협약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5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이 발표한 성명이다. 대선 시기에도, 대선이 끝난 지금에도, 민주당과의 연대를 민주노총의 공식 노선으로 관철하려는 양경수 집행부의 파행적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조차 갖추지 못한 채 ‘국회 사회적 대화’ 관철을 위한 민주노총 중앙위원회 소집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재명 정부 역시 이에 조응해 노동운동 출신 거간꾼들을 정부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6월 23일, 정부는 전 민주노총 위원장 김영훈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위 성명에서도 언급했듯, 민주노총 조합원들을 “민주당 정부의 노동탄압 주범들에게 투표해야 하는 신세”로 내몬 핵심 인물이자, “민주당 노동본부장 신분으로 민주노총을 기웃거리며 이런저런 협약의 도구로 쓰이”는 인물이다.

 

김영훈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 상황에 대해, 민주노총은 다음 입장을 냈다. “민주노총 위원장과 철도노조 위원장을 역임하며 한국 사회 노동현장의 현실과 과제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 본다. … 시대적 과제를 깊이 인식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노동부 장관으로서의 소임을 충실히 이행할 것을 기대한다.” 사실상 환영 입장이다. 진작 민주노총에서 제명되었어야 했을 인물이 고용노동부 장관으로서 노동정책을 총괄하게 된 일이 정녕 환영할 일인가?

 

이재명은 광장의 눈치도 보지 않고 ‘중도보수’를 선언했고, 강경보수 인사들을 줄줄이 끌어들이며 선거를 치렀다. 당선 후 6월 13일에는 5대 재벌총수 및 6개 경제단체와 만나 자본가들의 민원을 들으며 “경제의 핵심은 바로 기업”이라고 강조하며, “정부와 기업이 함께 뛰는 원팀 정신”을 언급했다. “불필요한 규제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겠다고 약속했으며, 재벌들에게 인사 추천을 요청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민주당은 연일 국민의힘과의 ‘협치’를 강조하고 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 유임이 보여주듯 내란세력 청산 지체는 물론, 노조법 2·3조 개정을 비롯한 노동권 확대 입법이 미루어진다는 이야기다. 이러던 와중에 김영훈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한 민주당의 행보는, 친자본 반노동 정책에 민주노총을 붙들어매겠다는 의도를 반영한다.

 

사진: 고용노동부 국정기획위원회 업무보고 (25.06.19.) 중

 

5월 29일, 한국은행은 2025년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 1.5%(2월)에서 거의 반토막인 0.8%로 하향했다. 자본주의 위기 심화와 열강투쟁 격화에 따라, 한국 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1분기 성장률은 2월 전망치(0.2%)보다 크게 밑돈 –0.2%에 불과했다. 관세전쟁 여파가 반영되지 않은 통계임에도, 침체 경향이 분명하다. 자본은 더 강한 노동개악을 주문할 수밖에 없고, 이재명 정부는 그 집행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조건에서 대선을 관통해 추진되는 민주당과의 연대는 노동개악을 노동자의 이름으로 승인하는 절차에 불과하다. 이미 6월 5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은 ‘고용유연성’을 의제로 사회적 대타협 방안을 모색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민주당과의 연대는 자본가 정치세력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팔아넘기는 행위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타고 발호하는 극우세력의 선동에 노동자 민중을 노출시키는 길이다. 민주당과 노동자계급의 ‘연대’, 죽어야 할 그것이 여전히 살아남아 현실을 짓누르고 있다.

 

사진: 한겨레 

 

민주노총이 민주당에 대한 압력단체로 전락할 위기 앞에,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은 유예할 수 없는 과제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경계를 넘어 해방적 전망을 제시하고 이를 대중적으로 조직할 정치세력의 형성과 직결된 문제다. 격화하는 열강투쟁과 제국주의 전쟁위기, 기후재앙과 저출생,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가 현실화하는 지금, 노동자계급이 정치세력이 되는 길은 계급투쟁으로 대안을 만드는 정치세력화 뿐이다.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에 노동자계급은 당하고 또 당했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모든 환상과 결별하자. 국가와 자본에 맞선 계급투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 그 새로운 순환을 시작하자.

 

민주노조운동의 재구축과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순환, 그 단초는 이미 우리 앞에 있다. ‘광장식 소개’에서 드러나듯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행위에서 시작해,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우군으로, 나아가 투쟁하는 노동자계급 자체로 발전해온 말벌 동지들, 다수가 미조직·불안정 노동자계급인 이 동지들과, 고통 속에서도 현장을 지켜온 조직노동자들의 유기적 결합을 추동하자. 그 결합이야 말로 새로운 순환을 개시할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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