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당금 논쟁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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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국민배당금 논쟁은 무엇을 드러내는가

반도체산업 초과이윤, 누구의 것이며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 백종성
  • 등록 2026.05.22 12:41
  • 조회수 546

‘국민배당금’ 제안은 반도체산업 초과이윤이 누구의 것이며 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에 관한 논쟁을 촉발했다. 보수세력은 노동자 파업에는 국가 개입을 요구하면서도, 기업 이윤과 주주 권리는 성역으로 놓으며 색깔론 공세를 폈다. 그러나 국민배당금 제안은 다단계 하청구조, 만연한 노동재해, 기후·환경파괴, 반도체산업의 전쟁산업화 경향을 건드리지 않는다. 반도체산업의 막대한 호황 앞에, 우리는 국민국가 내 분배론을 넘어 생산수단 소유와 통제에 대한 문제제기로,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로 나아가야 한다.

 

 

이른바 국민배당금 제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한국 자본주의 역사상 유례없는 이윤을 축적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26년 1분기 영업이익 약 57조 원, SK하이닉스는 영업이익 37조 원을 기록했다. 이 막대한 이윤은 AI 인프라 구축과 연동된 수요 폭증의 결과다. 일부는 2026년 두 기업이 합산 600조 원에 달하는 영업이익을 올릴 것으로 본다. 이 거대한 이윤은 AI산업의 ‘병목’으로 부각되는 메모리 공급에서 우월한 지위를 점한 결과다. 초기 AI 인프라 투자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집중되었으나, 최근에는 AI 추론기능 부각에 따라 이를 처리할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폭증하고 있고, 이에 따라 병목, 즉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과 가격 폭등이 나타나고 있다.

 

5월 11일,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차원이 다른 나라: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라는 제목의 글을 SNS에 게재했다. 요지는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라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은 산업 기반의 결과이며, 그렇기에 그 과실 일부는 전 국민에게 환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국민배당금’ 제안이다. 국민배당금의 토대는 지속적 초과이윤에서 나오는 초과세수인데, 김용범의 글은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이 지속적으로 창출된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다음날인 5월 12일 코스피가 장중 5% 폭락했고, 보수언론은 이를 김용범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제안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국민의힘은 ‘공산당 본색’, ‘사회주의 급행열차’, ‘기업이익 배급제’ 등 색깔론 공세를 폈다. 청와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5월 13일, 이재명이 직접 김용범의 국민배당금 제안은 개인의견이고, 배당 제안은 초과이윤이 아니라 초과세수에 대한 것이며, “기업의 초과이윤을 국민배당하는 방안”이라는 보도는 “음해성 가짜뉴스”라는 입장을 밝혔다.

 

보수언론과 국민의힘 모두 노사관계라는 ‘사적 문제’인 삼성전자 파업에 대해서는 긴급조정권을 통한 국가 개입을 요구하면서도, 이윤에 대한 국가 개입은 비난한다. 양자를 관통하는 믿음은 분명하다. 기업 이윤은 불가침이라는 것이다. 이윤을 위협하는 노동자의 파업권은 국가가 제한할 수 있지만, 기업 이윤과 주주 권리는 국가가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믿음에 따르면 노동자의 요구는 국민경제를 위협하는 집단 이기주의이나, 기업이 얻은 이윤은 사적 소유라는 성역으로 남아야 한다. 그 이윤이 국가의 공공재정 투입, 세제 혜택과 인허가 혜택, 연구개발 지원, 전력망 구축, 용수·토지 제공 등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국가는 이윤에 대해 개입해서는 안된다.

 

보수세력의 발작적 반응은 그야말로 시대착오적이다. 자유주의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조차 AI가 만들어낼 지대(rent)와 초과이윤의 집중을 그대로 둘 수 없으며 정상적인 자본수익률을 초과하는 이윤에 대한 과세와 토지·자연자원에 대한 부담금으로 초과이윤을 환수할 수 있다고 제기한다. 나아가 AI 기업의 부분적 국유화, 모두에게 AI기업 주식을 나눠주는 방안까지 거론한다. 물론 이코노미스트의 제안에 담긴 문제의식은 체제 변혁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의 안정화에 있다. 그러나 자유주의 경제지조차 초과이윤의 환수를 논하는 상황은, 한국 보수세력의 낡은 반공주의와 자본의 소유권에 대한 물신숭배를 드러내기에는 충분하다.

 

 

국민배당금, 어떻게 볼 것인가

 

첫째, 국민배당금은 이런저런 기본소득론과 마찬가지로 산업의 소유와 통제에 대해, 생산과정에 대해 침묵한다.[1] 국민배당금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 구축한 다단계 하청과 비정규직 양산, 반도체산업에 대한 국가적 자원 집중과 특혜, 기후·환경파괴적 생산은 하등 건드리지 않는다. 배당금은 반도체산업의 실태는 그대로 둔 채, 그 불평등을 수용하라고 요구한다. 더군다나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은 제국주의 패권경쟁과 군사AI 경쟁 속에서 전략물자로 격상된 반도체의 지위와도 결부되어 있다. 이렇듯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은 전쟁산업 확대의 결과이기도 하나, 국민배당금은 반도체산업의 군사화 문제를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다. AI산업과 반도체산업을 둘러싼 제국주의 열강 사이의 경쟁이 전쟁 위험을 높이더라도, 그렇게 발생한 초과이윤을 배당하면 된다는 식이다.

 

둘째, 국민배당금은 한국 반도체산업의 막대한 초과이윤이 오로지 한국이라는 국민국가에 속한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반도체산업은 국민경제 안에서 완결되는 산업이 아니며, 전 세계에 걸친 노동분업과 공동노동의 결과다. 한국 반도체 대기업이 초과이윤을 취한다면, 그것은 ‘한국인’만의 몫이 아니다.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은 원료 광물을 채굴하는 저임금 위험 노동, 공급망 하단에 위치한 각국 노동자들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등, 세계 노동자 민중에 대한 착취와 자연자원 수탈의 결과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AI 인프라의 핵심을 장악한 초국적 자본이며, 한국은 더 이상 세계 자본주의의 주변부에 위치한 하청 생산기지가 아니다. 그러나 국민배당금은 세계적 착취와 수탈의 산물을 국민국가 내부 분배 문제로 축소한다. 필요한 것은 ‘한국 국민에게 얼마를 나눌 것인가’가 아니라, 한국은 물론 세계 노동자들이 함께 만든 부를 왜 특정 자본이 전용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코노미스트>조차 ‘부분적 국유화’를 거론하는 형국이다.

 

셋째, 국민배당금 구상은 반도체산업의 초과이윤이 지속적이라는 가정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 가정은 허술하다. AI 인프라 투자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지만, 이 투자가 실제로 그만큼의 이윤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AI 기술이 쓸모없다는 뜻이 아니라, 막대한 설비투자가 이윤의 실현을 훨씬 앞서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반도체산업 초과이윤은 빅테크 기업의 선점 경쟁에 따른 공급 병목의 결과이며, 그 배경에는 격화하는 제국주의 열강투쟁이 있다. 물론 이런 이윤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공급이 확대되고, AI산업에서 나오는 이윤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해 빅테크의 투자 조정이 시작되면, 반도체산업 초과이윤은 급격히 축소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이런 현상은 낯설지 않다. 19세기 철도산업, 20세기 초반 자동차산업,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의 닷컴 열풍 등은 모두 광기어린 투자에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연쇄적 파산과 거품 붕괴를 겪었다.

 

반도체산업 국유화와 노동자 통제를 제기한다

 

그럼에도 국민배당금 논쟁은 중요한 균열을 드러냈다. 반도체산업에서 나오는 이윤은 더 이상 ‘특정 기업의 뛰어난 경영 성과’만으로 포장될 수 없으며, 이윤에 대한 처분권은 총수와 주주에게 독점적으로 귀속되어서는 안 된다는 문제제기는 정당하다. 그러나 국민배당금은 이 정당한 문제의식을 협소한 분배론으로 가둔다. 그 결과 국내 반도체산업 속에서 발생하는 노동 재해와 다단계 하청구조를 통한 초과착취, 노동자계급 내 불평등 심화는 물론 세계적 노동분업 속에서 이루어지는 착취와 수탈, 환경파괴는 건드리지 않은 채, 이를 용인하는 대가로 소액의 금전을 건넨다.

 

필요한 것은 국민배당금이 아니라 반도체산업의 국유화와 노동자 민중의 통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전략산업’은 사회 전체의 필요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 국제연대 강화와 함께 AI·반도체산업의 전쟁산업화 중단, 반도체산업 다단계 하청구조 철폐, 하청노동자 직접고용, 노동시간 단축, 노동안전보건조치 강화, 전력과 물 사용에 대한 사회적 통제, 기후위기 대응을 추진해야 한다. 문제는 누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누구의 필요를 위해 무엇을 얼마나 생산할 것인가다. 해답은 반도체산업의 국유화와 노동자계급의 산업통제,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에 있다.

 

[각주] 

[1] “분배를 가지고 야단법석을 떨고 거기에 중점을 두는 것은 도대체 잘못된 것이다. 소비수단의 그때그때의 분배는 생산조건 자체의 분배의 귀결일 뿐이다 … 물적 생산조건들이 노동자들 자신의 조합적 소유가 되면, 오늘날과는 다른 소비수단의 분배가 나타난다.” 맑스, 「고타 강령 초안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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