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파업을 노란봉투법 탓으로 돌리는 자들이 있다. 이는 사실관계부터 틀린, 의도적 왜곡이다. 그러나 이들이 노리는 것은 분명하다.
“그 전엔 삼성전자 파업이 없었는데, 왜 지금 노조 파업이 생길까? 뭐라고 답변하시겠습니까?”_김성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2차 조정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그 답변은 일단 유보했으면 좋겠습니다”_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뭘 유보해요? 노란봉투법 때문에 그런 거지 그거 알면서 그럽니까? 그것 때문에 지금 성과급까지 논의 테이블에 올라온 것 아닙니까?”_김성원 국민의힘 국회의원
- 5월 19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

의도적 왜곡
김성원 얘기는 모두 틀렸다. 그전에 파업이 없었던 게 아니다. 2024년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의 파업이 있었는데, 이때 핵심 요구도 불투명한 성과급 개선과 투명한 보상 체계 확립이었다.
과거에는 임금·노동시간만 쟁의 대상이었으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 이후 성과급과 경영 판단까지 파업 대상이 된 게 아니다. 성과급 보상은 대표적인 노동조건으로, 기존 노조법에서도 쟁의행위 대상이다.
2024년 삼성전자 파업 웹자보
지난 1월 대법원이 삼성전자의 성과급(OPI)은 퇴직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평균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지만, 평균임금에 해당하든 말든, 중요한 노동조건이기 때문에 당연히 합법 파업 대상에 포함된다. 물론 대법원 판단은 자본의 이해에 종속된 판단, 자본에 유리한 판단일 뿐이며, 성과급은 노동력의 대가로 분명 임금의 일부다.
노란봉투법은 노동쟁의 대상을 소폭 확대하긴 했다. △체불임금 청산 △해고자 복직 △부당노동행위 구제 등 ‘권리분쟁’ 사항을 노동쟁의 대상으로 포함했다. 노동쟁의 대상에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경영상의 결정’을 포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결정이 노동쟁의 대상이 되려면 정리해고, 구조조정처럼 근로조건에 실질적·구체적 변동을 초래해야 한다는 제한을 덧붙였다. 노란봉투법 이후 모든 경영 판단이 파업 대상이 됐다는 주장은 과장과 왜곡일 뿐이다.
노란봉투법으로 자본가들이 손해배상을 할 수 없게 됐다는 주장도 거짓말이다. 자본가들은 여전히 △노동조합 내 지위와 역할 △쟁의행위 참여 정도 △손해에 대한 관여 정도 등으로 따져 노동자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이것이 노란봉투법의 큰 한계다.
더군다나 삼성전자 파업은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노란봉투법의 주요 내용인 원청 사용자성 확대, 사용자 정의 확대와 관련이 없다. 그러나 이들에게 개정 노조법과 삼성전자 파업이 실제로 관련 있는지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점은, 거짓 선동으로 노동자를 공격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원청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국민의힘이 삼성전자 파업과 노란봉투법을 억지로 연관시키는 이유는 오랜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자의 성과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다. 이재명 정부보다 자신들이 자본의 이해를 더 철저히 보호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공세를 펼 수도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이재명 정부의 태도는?
그렇다면 이재명 정부는 국민의힘과 본질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였는가? 김정관 장관은 정부 내에서 긴급조정권 발동을 가장 강력하게 주문했다. 이재명 역시 “노동권만큼 기업경영권도 존중되어야 한다”면서 자본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힘을 싣고 긴급조정권 발동을 내비치며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이런 압박에 밀려 삼성전자 노조는 특별성과급 재원의 70%를 DS부문 전체에 배정하고, 30%는 메모리, 시스템 LSI(Large-Scale Integration), 파운드리 등 DS부문 산하 각 사업부에 사업부별 실적에 비례해 배정하라는 애초의 요구를 포기하고, 자본의 입장인 40% 대 60%를 수용했다.
노조는 애초부터 수많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동일한 성과급을 지급하라는 요구를 꺼내지도 않았다.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와 권리를 대변할 생각이 없었다. 영업실적이 부진한 DX(스마트폰, TV, 가전제품) 부문의 성과급 요구도 배제했다. 사회적 고립과 정부의 압박에 밀린 노조는 DS 내부에서도 영업실적에 따른 격차를 최대한 벌리려는 자본의 의도를 뚫지 못했다.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상실한 삼성전자 노조들의 전략 부재는 노동자들 사이의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낳고 있으며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이렇듯 이번 투쟁의 약점과 한계는 분명하지만, 삼성전자 파업을 노란봉투법과 엮으려는 시도나 긴급조정권 협박은 삼성전자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약화하려는 공격으로 국민의힘과 정부의 본질을 보여준다.
그림자가 아니다
노란봉투법 이전에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원청을 상대로 끊임없이 투쟁했다. 노란봉투법이 생겼기 때문에 원청과 투쟁하는 게 전혀 아니다. 노란봉투법이 있건 없건, 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것은 원청이다. 노동부가 원청 사용자성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교섭 의제를 산업안전 문제로 축소하더라도, 수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노란봉투법 이전에도 그랬듯 말이다.
SK하이닉스 하청 물류업체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피앤에스로지스지회는 4월 30일 하이닉스 청주공장 3캠퍼스 앞에서 “하청노동자는 그림자가 아니다! 여기 사람 있다! SK하이닉스! 대화 좀 합시다!”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 연합뉴스
지회는 “사내 하청 노동자들도 원청과 함께 반도체 생산의 찬란한 성과를 만들어낸 주역”이라고 주장하며 직접적인 성과 차별 개선과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너무나 정당한 요구다. 삼성전자의 막대한 이윤은 노동자계급의 사회적 공동노동이 만든 사회적 부다. 삼성전자 정규직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가치사슬에 포함된 전 세계 모든 노동자의 사회적 공동노동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따라서 당연히 하청 노동자들도 분배를 요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모든 정부는 어떠한 사회적 환수 방안도 없이 천문학적인 노동자 민중의 혈세를 삼성과 SK하이닉스에 투입했다. 2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반도체특별법 역시 △전력·용수·도로 등 기반시설 조성에 관한 정부 지원 의무화 △RE100 실행을 위한 신재생에너지 설비공급 및 설치비용 지원 △산업인프라 조성, 보조금 지급, 조세 감면 등 세제 지원, 예비타당성조사 신속처리 및 면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야말로 노동자계급 주도로, 막대한 이윤을 환수하고 이를 노동자 민중을 위해 사용하기 위한 투쟁을 시작해야 한다.
반도체 하청·비정규직 노동자의 잠재력
이번 파업 과정에서 반도체 하청·비정규직의 열악한 현실이 꽤 많이 알려졌다. 일부 보수언론은 하청 노동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삼성전자 정규직 파업을 비난하기 위해서 하청 노동자의 현실을 알렸다.
세정, 유지보수, 폐기물 처리와 같은 업무들이 하청 노동자에게 전가되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1년짜리 소모품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청·비정규직에 대한 초과착취 없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거대한 이윤은 불가능하다.
지금 반도체 하청·비정규직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소외감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가진 자들도 이 점을 느끼고 있다.
국힘과 보수언론이 개정노조법과 삼성전자 파업을 연계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뜬금없지만, 더 큰 저항, 하청 노동자들의 저항을 최대한 차단하려는 계급적 목적이 깔려 있기에, 그들은 맹렬하게 거짓 이데올로기를 퍼붓고 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충분히 반격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막대한 이윤은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명분과 자신감을 준다. 비록 지금 반도체 하청·비정규직의 노조 조직률은 대단히 낮고, 민주노총 소속 노조는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지만, 이번 삼성전자 파업은 수많은 하청 노동자에게 “이제는 우리도 싸워볼 만한 때가 됐다”라는 자각을 심어줄 것이다. 모두 합해 40만 명이 넘는 사내하청 노동자와 사외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뭉칠 수 있다면, 그 위력은 정규직들의 힘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그 투쟁을 만들기 위해, 나아가 그 투쟁이 정규직 파업이 지녔던 약점과 한계를 뛰어넘어 전체 노동자의 단결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힘을 쏟아붓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