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근거는 비슷하다. ‘들어가서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러나 1998년 이후 사회적 대화의 역사는 분명하다. 그간 노사정 대화는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 기간제 고용 일반화, 파견 확대, 직권중재 폐지와 맞바꾼 필수유지업무제도 도입과 대체근로 허용 등 무더기 노동개악으로 이어졌다.
1998년 같은 합의 형식을 취하건 2006년 같은 배제 형식을 취하건, 사회적 대화의 끝에는 노동개악이 있었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사회적 대화 2.0’ 역시 전혀 새롭지 않다. 노동운동을 대화라는 허울로 묶어두고 투쟁의 칼날을 무디게 만들며, 결국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개악을 관철하려는 시도의 반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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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대화, 노동개악의 통로
김영삼 정권 이후, 정부와 자본은 종종 ‘경제위기 극복’, ‘고통분담’,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조합 지도부를 노사정 대화 테이블로 불러들였다. 그리고 이는 노동자의 요구를 관철하는 장이 아니라, 자본과 정부가 구조조정과 노동개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노동운동의 동의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노사정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근거는 비슷하다. ‘들어가서 막아야 한다’, ‘할 말은 해야 한다’, ‘대화를 거부하면 노동운동이 고립된다’ 등등.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의 결과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법제화였고, 이 합의는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기틀을 만든 분기점이었다. 결국 1999년 2월,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했다.
2005-2006년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추진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수호 집행부는 출범 때부터 사회적 교섭을 강조했다. 그러나 화물연대 파업 탄압, 철도노조 파업 3시간 만에 공권력 투입, 2005년 울산건설플랜트 파업 탄압, 아시아나항공·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긴급조정권 발동 등 노무현 정부가 파업을 철저히 탄압하고, ‘비정규직 보호입법’이라는 이름으로 기간제법 제정과 파견법 개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노사정 대화는 비정규직 권리보장 입법을 관철하는 공간이 아니라 노동개악을 둘러싼 협의 틀로 작동했다.
2005년 1월과 2월, 이수호 집행부는 대의원대회에 ‘사회적 교섭방침’을 상정했지만 격렬한 반대로 통과시키지 못했다. 3월 15일 대의원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3월 17일 중앙집행위원회는 대의원대회를 거치지 않은 채 노사정 교섭 추진을 결정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4년 11월 비정규직 관련 개악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뒤, 2005-2006년 내내 비정규직법과 노사관계로드맵을 노동개악 두 축으로 병행 추진했다. 비정규직법이 기간제·파견 노동을 확산하는 법안이었다면, 노사관계로드맵은 파업권과 노조 활동을 위축시키는 법안이었다.
민주노총과 비정규직 운동진영이 요구한 것은 상시업무 정규직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파견법 폐지, 불법파견 시 직접고용,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이었다. 그러나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라는 이름을 붙여 추진한 법안은 정반대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기간제노동을 일반화하고, 파견노동을 확대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이 법안은 2006년 11월 30일 국회를 통과했고, 비정규직을 줄이기는커녕 기간제·파견 노동을 합법적 고용형태로 고착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2006년에는 노사관계로드맵을 둘러싼 사회적 대화가 이어졌다. 민주노총은 2006년 6월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복귀했지만, 정부가 내놓은 노사관계선진화방안, 즉 노사관계로드맵은 노동개악 종합 패키지였다. 2006년 9월, 정부는 민주노총의 뒤통수를 치며 민주노총을 배제하고 긴급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열어 로드맵에 합의했고, 이날 합의된 내용은 △기업단위 복수노조 허용 3년 유예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3년 유예 △기존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를 폐지하되 필수유지업무제도 운용 및 쟁의기간 대체인력의 채용·하도급 허용 △필수공익사업장 확대(혈액공급, 항공, 폐·하수처리, 증기·온수공급업) △부당해고 벌칙조항 삭제 △정리해고 사전통보기간을 60일에서 50일로 단축 등이었다.
1998년과 2006년 모두 사회적 대화가 노동개악으로 이어졌으나,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1998년 노사정위에서는 민주노총 지도부가 정리해고제와 근로자파견제 도입에 합의했으나 2006년 노사관계로드맵 합의는 민주노총이 노사정대표자회의에 복귀했음에도 정부가 민주노총을 배제한 채 한국노총·경총과 전격 합의한 사건이었다. ‘개악안에 합의하지 않겠다’, ‘할 말은 하겠다’는 방침으로 참여한다고 해도, 정부와 자본은 사회적 대화라는 틀로 노동운동을 묶어두고, 합의든 배제든 노동개악을 관철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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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노동절 기념식, 어떤 요구를 말해도 그 본질은 노사정 화해의 장이다
결국 1998년 이후 사회적 대화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난 결과는 분명하다. 그간 노사정 대화는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 기간제 고용 일반화, 파견 확대, 직권중재 폐지와 맞바꾼 필수유지업무제도 도입과 대체근로 허용 등 무더기 노동개악으로 이어졌다. 합의건 배제건 사회적 대화의 끝에는 노동개악이 있었다. 우리는 이런 경험 위에서 2026년 노동절을 관통하는 정세를 봐야 한다. 이재명 정부는 노동절을 계기로 ‘노동존중’ 외양을 강화하고, 민주노총을 사회적 대화의 틀로 끌어들이려 한다. 5월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부 노동절 기념식에 관한 언론 보도에는 대통령,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위원장, 경총 회장이 나란히 선 장면이 담겼다.
일부 동지들은 정부 행사 참여가 옳은 일이었다고 한다. ‘노동조합은 투쟁만 하는 조직이 아니라 교섭도 해야 한다. 민주노총 위원장은 오전에는 대통령 앞에서 노동자의 요구를 말했고, 노동절 집회에서는 광화문에서 7월 총파업을 선언했다. 정부 행사에 가서는 축사뿐만 아니라 서광석 열사 사망,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노동권, 자본의 원청교섭 거부 실태를 고발하고 중대재해처벌법 무력화를 비판했다.’ 물론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실제로 그런 말들을 했다. 그러나 이런 반론 역시 새롭지 않다. 앞서 말했듯 예나 지금이나 사회적 대화를 정당화하는 논리는 비슷하다. 핵심은 사회적 대화의 결과는 모두 노동개악이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노동조합은 정부와 만날 수 있다. 그러나 핵심은 노동조합 대표자가 ‘요구를 말했느냐’가 아니다. 문제는 그 말이 어떤 자리에서 이루어졌는가, 어떤 정치적 맥락 속에 배치되었는가다. 정부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적대하는 계급 대표자들을 모아놓고 노사화해주의를 설파하는 자리에 노동조합 대표자가 참여했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그것도 불과 11일 전 열사가 목숨을 잃은 상황에서 말이다.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된 논리도 ‘들어가서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정리해고와 파견제 도입이었다.
1998년 2월 7일자 조선일보
청와대 노동절 기념식은, 국가가 ‘노동절’을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포섭해 재구성하는 자리였다. 언론은 대통령과 경총 회장, 한국노총 위원장과 함께 민주노총 위원장이 나란히 선 장면을 담았다. 바로 이 장면이 정부가 의도한 정치적 효과였다. 정부는 노사정이 함께 박수치는 장면을 연출하며, 불과 11일 전 서광석 열사의 죽음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지우고 자본에 대한 분노를 희석했으며, 열사의 죽음이 만든 계급투쟁 격화 소지를 제어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 민주노총 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노동자의 요구 또한 말했다. 그러나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을 만나 ‘원청자본의 교섭해태 실태’, 심지어 ‘파견법·기간제법 폐기’를 말한다고 해도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정부가 노사정 대화를 강조하는 이유는 노동개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개악과 노동탄압은 사회적 대화와 함께 온다
윤석열 정부가 건설노조 탄압, 주 69시간제 추진, 노조법 2·3조 개정 거부권 행사 등으로 노동운동을 정면 공격했다면, 이재명 정부는 노동운동 상층을 대화의 장으로 불러들여 상생의 이름 아래 노동개악을 추진한다.
2026년 1월, 정부는 청와대와 고용노동부·재정경제부·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참여하는 범부처 ‘노동구조개혁TF’를 출범하며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개악에 나섰다. 언론에 따르면 노동구조개혁TF가 주도하는 노동개악 추진방향은 △기간제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기한 3년 이상으로 연장 △직무·성과급제 확대 △전략산업 특별연장근로 확대 △지역 메가특구 노동시간 규제완화 등이다.
이어 3월 19일, 이재명은 정부 1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식에서 “노동자들이 기업이 원하는 고용유연성을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해고가 죽음이 아닌 사회’, ‘전환의 시대에 맞는 노동시장’ 등 정부의 언사는 부드럽지만, 그 방향은 지난 정부와 하등 다르지 않다. 이재명 정부도 지난 정부와 마찬가지로 ‘유연안정성’이라는 이름 아래 해고와 전환배치, 직무·성과급을 확대하는 대가로 사회안전망을 일부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본질은 더 쉬운 해고와 더 많은 비정규직이고, ‘사회안전망’은 이를 위한 부가조치일 뿐이다.
2026년 3월 19일 이재명 정부 1기 경사노위 출범식
이런 거시적 흐름은 주요 노동자 투쟁에 대한 태도들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노동부 장관과 집권여당 대표 등이 요란하게 장기투쟁 사업장들을 방문했을 뿐, 문제해결은커녕 장기투쟁을 낳은 악질자본가들에 대한 그 어떤 제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노동조합 회계공시제도조차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렇듯 이재명 정권은 한편에서는 ‘노동운동 열심히 하라’는 덕담과 함께 노동자 민중운동 세력을 향해 ‘대화’를 제의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에 맞서는 전투적 투쟁을 탄압한다. 어디 화물연대 투쟁뿐인가. 2026년 2월, 세종호텔 로비농성을 이재명 정부가 지휘하는 공권력이 침탈했고, 4월에는 지혜복 교사의 고공농성에 연대했다는 죄목으로 고진수 동지가 구속당했다. 유예되고 또 유예된 택시월급제 즉각 시행을 요구하며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고영기 동지가 고공에 오른 상황에서조차, 민주당은 택시자본가들을 위해 월급제 유예법안을 통과시켰고 이재명은 거부권을 행사하라는 요구까지 짓밟으며 택시노동자들을 외면했다.
이렇듯 이재명 정부의 허울뿐인 ‘노동 존중’을 떠받치는 것이 사회적 합의주의다. 일터기본법의 실체도 마찬가지다. 정부와 여당은 이 법을 노동법 밖에 놓인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 등을 보호하는 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불안정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이라는 모호한 범주가 아니라 노동자성 인정이고,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의 전면 적용이다. ‘그래도 이전보다 나아지지 않느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터기본법은 노동권의 보편화가 아니라 차등화다. 이재명 정부 계획에 따르면, 한쪽에는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을 적용받는 ‘진짜 노동자’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일터기본법을 적용받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의 2등 노동자들이 양산된다. 결국 정규직-비정규직-일하는 사람 사이의 위계, 노동자계급 내 위계를 더 촘촘히 제도화할 뿐이다.
사회적 대화 2.0은 조금도 새롭지 않다
사회적 합의주의는 노사정이 대등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하며 투쟁 대상을 흐린다. 노동자들이 원청자본을 향한 분노와 함께 ‘진짜 사장 나오라’라고 외칠 때, 사회적 대화는 ‘노사정이 함께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해결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것은 원청교섭을 요구하는 노동자를 죽음으로 몬 자본에 맞선 투쟁이다. 대통령이 직접 ‘모범 사용자가 되겠다’고 말한 공공부문 원청조차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교섭을 거부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투쟁을 확대하는 것이다.
누가 비정규직을 양산했는가? 누가 그 노동자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배하면서도 사용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하다 죽음으로 몰았는가? 누가 노동자를 자영업자로 위장해 권리를 박탈했는가? 국가와 자본이다. 물론 노동자는 국가·자본과 대면할 수 있다. 그 대면은 계급투쟁을 배경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노사정은 애초 대등한 힘을 가진 주체가 아니다. 경사노위 내 노동자 대표가 그 어떤 논리와 당위로 국가와 자본을 설득해도, 결국 문제를 결정하는 것은 힘이다.
기억하자. 1998년 당시 노사정 합의에는 △실업대책기금 조성 △해고회피 노력 △해고자 우선채용 같은 완충 조항도 포함됐지만, 정세를 규정한 것은 자본이 요구한 정리해고제와 파견제 도입이었다. 2006년 노사관계로드맵도 마찬가지였다. ‘직권중재제도 폐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그 실상은 ‘필수유지업무제도’를 통한 파업 무력화였다. 노동자 대표가 회의장 안에서 아무리 효과적인 논리를 역설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저 말이다. 그 말에 힘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계급투쟁이다.
민주노총은 2026년을 원청교섭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이는 곧 한국 자본이 수십 년간 공들여 구축한 다단계 하도급체계를 계급투쟁으로 뚫어내겠다는 뜻이다. 사회적 합의주의와 단절하지 않고 원청교섭 쟁취,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노동자성 인정,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대는 불가하다.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사회적 대화 2.0’은 조금도 새롭지 않다.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거듭 파국을 낳아온 사회적 대화를 중단하고 △원청교섭 쟁취 △팔레스타인 학살과 제국주의 전쟁 반대 △차별금지법 쟁취 △물가임금연동제와 실질임금 보장 △청년일자리 창출 등 절박한 요구를 걸고 7월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