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 좌파 조직은 계급투쟁 전위들과의 연결 고리를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 어떻게 더 넓은 대중과 결합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2025년 아르헨티나 사회주의노동자당(PTS) 당대회 문서에서 저자는 이 물음들에 답하며, 계급투쟁 내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경향을 건설하려는 PTS의 기획이 거둔 성공과 아울러 그 한계까지 탐구한다.
다음은 PTS 20차 당대회에 제출되어 전국지도부가 승인한 문서다.
이 문서에서 우리는 PTS 20차 당대회의 정치적 지향에 관한 일반적 기준을 몇 가지 수립하고자 한다. 먼저 (1) 우리 조직, (2) 전위 즉 노동계급의 가장 전투적이고 조직된 부문으로서 청년과 여타 전투적 운동을 포함, (3) 우리의 더 넓은 토대인 대중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투적·반관료적인 계급투쟁의 전위가 부상하고 있다. 이것은 확대 가능하다.
아르헨티나에서는 3월 12일 가혹한 국가 탄압에 맞서 축구 팬과 노동자들이 연금 생활자들을 지키기 위해 격렬히 저항하면서 사회 불안의 수위가 한층 높아졌다. 이 사태는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의 종말을 연 2017년 12월의 소요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당시에 민족주의적인 페론주의 부르주아 정당은 민중의 불만을 2019년 선거로 돌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것의 귀결은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세르히오 마사가 주도한 재앙적 정부였다.
{2017년과 다른} 새로운 측면은 이것이다. 저항이 지속적으로 발전·확산되어 정치적 총파업에 이를 경우 주도적 역할을 수행할 잠재력을 지닌 전투적 세력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출현했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결합은 질적 도약을 의미하며, (예비) 혁명적 상황을 향한 길을 열 것이다.
이 세력들은 다음을 포함한다. (1) 교사, 공공 부문 노동자, 학생, 연금 생활자, 불안정·자영 노동자로 구성된 주민 총회들(잠시 둔화되었으나 다시 활성화 중이다); (2) 반관료제 경향을 포함한 광범위한 노동 투쟁; (3) 매주 수요일 의회 앞 시위를 통해 대통령의 연금 연동제 거부에 맞선 투쟁을 이끈 연금 생활자 집단; (4) 2024년 10·11월 100개의 대학 캠퍼스 점거로 정점에 달한 학생운동(학장단, 노조 관료들, 아르헨티나 대학생연맹에 의해 기세가 꺾였으나, 이제 막 학교로 돌아온 새로운 학생 활동가 층을 형성했다); (5) 2024·2025년 두 차례의 대중적 동원을 이끈 여성 운동; (5) 밀레이가 다보스에서 “젠더 이데올로기”를 아동 성학대와 결부시키는 발언을 한 데 대응해 2월 1일 놀라운 위력을 과시한 LGBTQIA+ 운동.
이 운동 중 다수가 부침을 겪고 있으나, 이는 모두 배움의 경험이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전투적·조직적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이러한 경험은 변혁적 도약을 위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
3월 12일 시위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경찰 탄압에 맞선 결의뿐 아니라 노동총연맹(CGT)을 향해 분출된 증오 때문이기도 했다. 이 분노는 CGT의 무대응을 규탄하는 구호, 피켓, 연설로 표면화되었다. 분노가 너무도 뚜렷하여 노동총연맹 최고 지도부의 일원인 엑토르 다에르가 4월 전국 파업을 소집해야 할 정도였다. 정부가 연금 생활자 급여 삭감을 시도했을 때 결집하여 저항한 축구 팬들 역시 똑같은 분노로 들끓었다. 이러한 순간들은 수백만 명의 마음을 움직였고, 사람들은 탄압을 규탄하면서 정부와 그 졸개들에 맞서는 새로운 사회 세력들의 용기 있는 모습을 보았다.
작업장과 학생 운동 양측에서 전투적이고 독립적인 세력이 성장하고 있다. PTS의 앞에 놓인 과제는 각 영역에 적합한 조직 형태들을 촉진함으로써 이러한 발전을 과감하게 추동하는 것이다. 노조 안에서의 활성화와 작업장 위원회부터, 우리가 이미 건설하고 있는 광범위한 조직까지 말이다. 여기에는 자기조직화된 학생 집단, 재활성화된 주민 총회, 투쟁 중인 문화 운동, 보건 의료 집단 등 상이한 조직 형태가 포함된다. 이미 이러한 형태의 조직이 다수 존재한다. 이를 성장시키고, 조율하고, 활성화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당, 전위, 대중의 관계에 관하여
PTS에게 총파업은 전략적 지향의 일부다. 총파업의 전망은 2001년 아르헨티나 봉기나 2019년 칠레 봉기보다 한결 밝다. 두 봉기 모두 최종 국면에 이르러서야 부분적 총파업으로 나아가는 데 그쳤고, 지배계급은 통제력을 되찾았다. 칠레의 경우 정권은 봉기를 기만적 제헌 의회로 우회시켜 증오의 대상이었던 피녜라 정부를 유지시켰다. 그러한 결과가 가능했던 것은 대안적 정치 노선을 구체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중적 영향력을 갖춘 조정 기구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종류의 봉기들은 봉쇄, 우회, 패배시키기가 더 쉽다. 이는 노동계급의 고유한 힘, 특히 생산과 분배의 심장부로부터 자본주의의 지배에 도전하는 능력을 희석시키는 경향이 있으며, 학생운동의 본질적 역할을 주변화한다. 투쟁 과정에는 노동계급의 미조직 부문 및 빈민의 참여가 중요하고 많은 경우 이들의 전투성이 가장 즉각적·폭발적이지만, 이 과정을 끝까지 밀고 나아가는 것은 노동계급의 결정적 부문들과 결합하는 데 달려 있다.
노동계급에 뿌리를 두고 또한 모든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대중이 결합한 정치적 총파업은 정부를 무너뜨리고 혁명 세력과 반혁명 세력 간의 대치를 심화시킬 수 있다. 이는 우리에게도 결정적 시험이 될 것이다. 우리는 대중적 영향력을 획득하고 노동자 정부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사회주의·국제주의 노동자 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우리는 구체적인 투쟁 현장에 개입해야 한다. 작업장(작업장 위원회와 노조), 학교(및 학생회), 불안정 부문 및 피억압 부문(여성, LGTBIQIA+ 공동체)에서 출현하는 모든 새로운 형태의 조직에 대해 결정적 영향력을 획득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는 다른 정치적 경향들, 특히 페론주의의 영향력과 노조 관료의 영향력에 맞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정 기구가 필요하다. 바로 우리가 ‘행동 위원회’라 부르는 것, 즉 전투적 노조, 작업장 위원회, 학생회, 연금 생활자 단체, 주민 총회, 문화 운동을 결합시키는 기구다. 이 기구들은 더 광범위한 조정 구조(노동자 평의회)로 진화할 수 있으며, 관료들과 더 공공연하게 효과적으로 대결하도록 도울 것이다.
우리의 접근법은 공동전선 전술을 따른다. “따로 행진하되, 함께 타격한다.”
우리는 당과 전위와 대중의 관계를 서로 맞물린 톱니바퀴 형태로 구상한다.
혁명 정당은 노동계급, 청년, 지식인 중 가장 의식적이고 전투적인 부문들을 결집시킨다. 혁명 정당은 정의상 국제주의적이다.
전위는 노동자 조직, 학생운동, 페미니즘 및 여타 투쟁 조직체들 속에서 형성된다. 이와 관련된 우리의 과제는 투쟁을 선도하는 경향들을 단결시키면서 이들 사이의 열린 논쟁을 촉진하는 것이다.
대중은 이러한 전위 부문과 그 지도부의 영향을 받는다. 여기에는 승리에 필요한 강령과 전술을 견지하면서 개량주의 세력에 도전하는 우리 당도 포함된다.
전위는 투쟁 속에서 단련된다. 대중은 이러한 투쟁 경험을 통해 이전의 믿음을 깨고 나와 전위 및 혁명 정당의 영향 하에 좌측으로 이동할 수 있다. PTS는 이러한 도전에 뛰어들어, 계급투쟁으로 단련되는 전위라는 톱니바퀴를 통해 대중과 만남으로써 대중적 영향력을 얻고자 한다.
이는 러시아 혁명이 스탈린주의로 변질되기 전 볼셰비키 당을 이끌었던 블라디미르 레닌의 혁명적 경험에서 도출한 교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가 ‘위로부터’ 획득하는 그 어떤 선거 및 의회에서의 영향력도 그것이 ‘아래로부터’의 조직에 뿌리내리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주민 총회, 문화센터, 소셜 미디어, 심지어 우리가 주최하는 PTS 공개 집회조차도 산발적인 접촉에 불과하며, 그 위에 세워진 조직은, 작업장과 학교에서의 조직화를 결코 대체할 수 없다. 작업장과 학교에서의 조직화를 통해 우리는 강력한 대중운동의 가능성을 기층에서의 활동과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을 통해 현실화할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구조적 힘을 발전시키지 못한 당은 ‘거리에서는’ 가시적 존재감을 자랑하더라도 선거주의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밖에 없다.
당 강화와 신입 당원 모집은 (작업장과 학교에서) 전위 및 대중과의 유기적 관계를 벼리는 것과 불가분하다. ‘유기적 관계’란 일시적 교류나 (국가 선거든 노조 선거든 학생 선거든) 선거 활동을 넘어서는 더 깊고 더 일관된 관계를 의미한다.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것은 바로 이러한 종류의 관계다.
지금 우리 조직은 상당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노동운동 부문은 60개 이상의 노조에서, 학생운동 부문은 32개 대학, 48개 중등학교, 24개 기술학교에서 활동한다. 활동가의 규모를 꾸준히 키웠고, 어려움이 없지 않았으나 계급투쟁에서 가장 활발한 동지들을 계속 조직하고 있다.
우리의 가장 큰 약점은, 일부 예외도 있지만, 여전히 작업장과 학교의 기층 대중과 유기적 관계를 발전시키는 일이다. 밀레이 정부 하에서 우리의 중대한 한계 중 하나는 지속적인 대중 행동의 부재였다. 투쟁은 고립된 상태로 폭발했다가 사그라지곤 했다. 그러한 현실을 바탕으로 과거 활동에 대한 자기 비판과 평가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주민 총회의 경우(지난 한 해 동안 대부분 부에노스아이레스 광역권에 집중되어 있었다) 인근의 투쟁과 연결된 공동 행동 위원회 구성을 목표로 삼았다. 예컨대 우리는 GPS 항공 노동자들을 노동부 직원들, 인권 추모 구역들(군사 정권에 납치되고 살해당한 수천 명을 기리는 건물과 공간들), 보나파르테 병원 및 철도 부문 노동자들과 연결하려 했다. 그러나 일부 투쟁들이 패배하면서 더 광범위한 단결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우리는 총회가 활동하는 지역에 위치한 작업장 또는 학교와 지속적 관계를 수립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정치적 선동은 엇갈린 결과를 낳았지만 우리의 개입은, 특히 상반기와 대학 점거의 물결 동안, 일관되게 집단적 행동에 초점을 맞추었다.
대중운동 활성화와 광범위한 반관료주의 경향이 부재한 상황에서, 가장 전투적인 활동가들을 조직해 내는 우리의 능력은 여전히 제한적이었다. 기존의 전위는 더 넓은 기층 대중과 거의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수도 바깥의 일부 지역 당은 더 많은 풀뿌리 조직 활동을 수행했다. 2023년 네우켄의 교사 투쟁은 아래로부터의 강력한 노동 조직화가 정부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분명한 사례였다. 우리는 또한 사회주의 페미니즘 단체 ‘빵과 장미(Pan y Rosas)’를 통해 젠더 기반 요구를 둘러싼 더 광범위한 운동을 전개했고, 빵과 장미의 행사에서는 기존 활동가들을 넘어선 폭넓은 참여가 있었다. 이는 대체로 수동적인 채로 남아 있던 노동 부문들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고와 운동의 상당 부분은 12월부터 6월까지 이어지는 강도 높은 대중운동 일정을 거치면서 가장 적극적인 동지들을 먼저 활성화하고 조직하는 일에, 그리고 이어서 당을 강화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리는 노조 선거와 학생 선거를 포함해 진행 중인 투쟁들에 일관되게 개입했고, 이데올로기 투쟁의 영역에서 다양한 운동을 출범시켰다. 예컨대 공개 포럼, 워크숍, ‘공산주의적 미래를 위한 날들’이라 이름 붙인 토론회가 있었다. 새로운 전위 운동 과정의 출현, 특히 주민 총회와 (점거의 물결에서 정점에 달한) 대학 투쟁은 활동가들에게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했다. 언제나 우리의 목표는 이러한 과정을 우리의 발판이 존재하는 기존 노동자 부문과 연결하는 일이었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상당수의 새로운 당원이 충원되었다. 당원 유입의 결과 우리가 주도하는 대학 기반 학생조직들이 급성장했는데, 학생조직들의 회원 수가 두 배로 늘었으며 질적으로도 훨씬 향상되었다.
투쟁은 이제 어디로 가는가?
조직 노동운동과 관련된 PTS의 「활동 결산」은 우리의 투쟁 개입 내용과 참여 정도를 서술하고 있다. 나아가 이 문서는 조직의 핵심적 한계를 짚고 있다. 광범위한 조직을 건설하기 위한 체계적 전략 또는 우리가 기반을 가진 작업장에서 평조합원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체계적 전략의 부재가 그것이다. 이러한 결함은 수동성과 후퇴가 두드러지는 부문들에서 특히 명확히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서, 1935년 레온 트로츠키가 프랑스 지부를 분석한 글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혁명적 활동과 노동자들의 일상 생활 사이에 놓인 간극을 관찰하고 인상적인 서술을 남겼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우리 동지들이 집회를 조직하고 팸플릿을 배포하고 시위에 참여하지만, 행사가 끝나면 노동자들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의 구호는 허공으로 흩어진다. 우리는 그들의 일상적 투쟁, 그들의 공장, 그들의 노조와 연결된 견고한 다리를 놓지 못했다. 그래서 행사는 매번 막다른 골목에서 끝난다. 우리만 남고, 노동자들은 개량주의가 통제하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통찰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핵심적 모순 가운데 하나를 포착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활동하는 작업장의 일상 생활에 더 깊이 관여해야 한다. 이는 사회적·문화적 참여를 포함한다. 노동자의 생활이 점점 더 원자화되고, 소셜 미디어와 대중 문화의 영향 하에 가족 및 개인의 공간으로 삶이 후퇴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이는 결코 쉬운 과제가 아니다. 관료들이 지배하고 임금과 단체 협약이라는 협소한 목표에 초점을 맞춘 노조 또한 노동자들 사이의 사회적 조직을 침식해 왔다.
아주 드물게 다른 좌파적 세력이 의미 있는 행위자가 되는 경우에도 이처럼 유리된 정치 양식은 그대로 반복된다. 이들은 노동계급으로부터 비슷하게 유리된 기구들을 건설하며, 노동자들이 사용자들의 영향력을 넘어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율적 공간을 조성하려고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 물론 앞서 지적했듯이, 대중 투쟁이나 반관료주의 조직화 노력이 뿌리내리면 노동자들의 자체적 운동으로 이러한 경향이 뒤집힐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수백 명의 무당파 활동가들과 공동의 활동을 전개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음 사례들에서 이러한 지향이 드러난다. 즉, 작업장과 대학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확장한 이동식 보건소(시위대 의료 지원을 위한 이동식 거점); 철도 노동자 해고에 맞선 ‘기차를 지키자’ 캠페인; (사탕수수 공장 노동자들과 함께) 투쿠만에서 그리고 지역 노동자들의 거점인 마디그라프 클럽에서 열린 ‘노동자의 우애’ 축구 토너먼트; 포사다스 병원을 지키기 위한 연말 축제; 모론 지역 총회와 함께 열린 노라 코르티냐스(Nora Cortiñas) 추모식; 보나파르테 병원 투쟁을 지지한 ‘노동하는 청년 축제’; 그리고 비교적 잠잠한 시기에도 폭넓게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당의 공간과 문화센터들을 활용한 것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은 의미 있음에도 여전히 고립된 상태이며, 아직 우리가 활동하는 부문들의 일상 현실에 뿌리내린 체계적 정책으로 종합되지는 못했다.
교사 노조를 보면, 우리는 전국의 여러 노조에 걸쳐 상당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으며 당원과 유관 조직의 동지를 포함 800명이 넘는 동지가 활동한다. 그중 약 250명이 자기 학교에서 노조 대의원으로 활동한다. 그러나 이 부문 내에서 우리 당은 매우 불균등하다. 평조합원을 포괄하는 기층 투쟁이 없을 때엔 우리는 학교의 동지들과 사회적·문화적 활동을 건설하기보다는 (노조관료들이 주도하는) 노조 내부의 정치생활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투쟁이 분출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더 쉬워진다. 공동의 조직에 대한 요구가 더 광범위하게 올라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수의 공장에서 여러 투쟁과 노조 활동에 관여했고, 종종 사측의 보복과 관료적 탄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투쟁에 대한 개입’과 ‘동료 노동자들의 일상에 함께 참여하려는 노력’을 결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2024년 점거를 통해 우리는 대학에서 거의 1,300명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당원과 무당파가 섞인) 세력을 조직했는데, 이는 다른 어떤 좌파 조직보다도 훨씬 큰 규모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활동을 충분히 밀어붙여서 대학의 기층 교수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든가, 관료적 학생회가 대학 당국의 소극성에 투쟁을 종속시키지 못하도록 국면을 돌파하는 데는 실패했다.
대규모로 조직된 4월 23일 집회 이후, 우리는 PTS의 학생들과 교수들 사이에서 계획을 충분히 조율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교수직과 사무직 모두의 임금 정상화를 요구하는 투쟁에 활동적 대학 부문들을 결집시키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 학교 폐쇄에 대한 우려가 첫 행진을 추동했던 것에 비해, 이 요구안은 훨씬 적은 관심을 받았다. 정부가 대학을 폐쇄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자 대중의 관심이 식었고, 우리는 강의실 차원의 접근을 넘어 기층에 다가가기 위한 새로운 전략을 고안해야 했다. 공립 대학과 노동자 임금을 방어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학교 자체에서 대규모 집회를 조직하는 것이 한 가지 선택지였을 수도 있다. 그렇게 했다면 교수들과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자신들의 기층과 다시 연결되고, 1990년대 이후 상당 부분 상실된 학생 조직화 관행을 복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학 차원의 이 투쟁은 장기적인 것이지만, 노동운동에서 우리가 직면한 핵심 과제들과도 교차한다. 한 가지 긍정적인 사례는 라누스대학교 투쟁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활동(강연과 워크숍)’을 투쟁 기간 독립적인 ‘자기조직화’ 활동의 조직화 및 학교 기층 대상 사회적 접촉 활동과 결합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략 덕분에 우리는 학생회 선거에 대담하게 개입해 지역 사회 보건학과 학생회(CeSaCo)를 영향력 아래 둘 수 있었다. 코마우에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서도 비슷한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는 변화하는 정세 속에 살고 있다. 이는 우리를 향한 부름이기도 하다. 새로운 기획을 대담하게 시도하라는, 당과 전위와 대중이라는 각각의 차원에서 활동하라는 부름 말이다. 기회가 우리를 기다린다. 이 기회를 붙들고 우리의 사상과 실천을 시험할 때다.
스페인어: https://www.laizquierdadiario.com/XX-Congreso-PTS-La-relacion-entre-el-PTS-la-vanguardia-y-las-masas (저자: Fredy Lizarrague)
영어: https://www.leftvoice.org/the-party-the-vanguard-and-the-masses-experiences-from-argentina/ (번역: Remo Erdosain)
한국어: 강성윤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