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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독일 공공교통노동자 기후정의파업의 의미, 한계, 과제

기사입력 2024.05.15 11:27 | 조회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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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멈출 곳: 교통전환 #우리는함께간다 사진: Dustin Hirschfeld

     

    다시,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의 만남

     

    올해 초부터 지난 4월까지, 독일 공공교통-운수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진행했다. 1월, 철도기관사노조(GDL) 노동자들이 5일간 파업을 벌였고1), 2월에는 철도와 버스·트램 등 통합서비스노조(Ver.di) 소속 공공교통노동자 9만여 명이 독일 전역에서 파업에 나섰다. 2월 1일과 2일에는 공공교통노동자들과 항공보안직 노동자들이 24시간 경고파업을 벌였다. 버스·트램 등 공공교통노동자들은 2월 29일 48시간 파업을 전개했고, 3월 1일 기후행동의날을 맞아 독일 130여 지역에서 기후활동가들과 함께 행진했다. 교섭 진척이 없는 상당수 지역에서는 4월에도 파업이 진행되었다. 투쟁을 통해, 3월 26일 철도기관사노조와 국영철도회사 도이체반이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2월 말에서 4월에 걸쳐 다수 지역 버스·트램 노동자들이 지역공공교통 단체협약(Tarifvertrag Nahverkehr, TV-N)을 체결했다.  

    1) 애초 계획은 6일이었으나 5일 만에 마무리하고 협상에 돌입했다.

     

    독일 교통-운수노동자들의 요구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임금인상,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휴식시간 연장, 유급휴가 확대 등 노동조건 개선, 둘째 독일 공공교통 수송능력 배가를 위한 대대적 투자다. 이는 2023년 3월 독일 공공교통노동자들의 '거대한 파업(mega strike)'에 이어지는 흐름으로, 작년 통합서비스노조(Ver.di)와 철도운수노조(EVG) 소속 공공교통노동자 파업에는 40만 명 이상이 참여해 1990년대 이후 가장 큰 교통-운수노동자 파업으로 기록되었다.2) 2023년 공동투쟁 당시 독일 경영자총연합회(BDA)의 ‘투쟁이 정치파업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비난과 마찬가지로, 독일 경총은 2024년 파업에 대해서도 ‘정치적 행동주의로 선을 넘었다’고 비난했다.

    2) 2023년 파업의 주요 요구는 10.5% 임금인상이었다.

     

    독일 공공교통노동자들은 왜 싸우는가? 독일 공공교통노동자들의 근무여건은 매우 열악하다. 베를린교통공사(BVG) 버스노동자들의 경우, 한 노선 운행을 마무리할 때 단 4분의 '턴어라운드' 시간만 주어진다. 이에 종점에서의 휴식시간을 최소 10분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할 정도다. 또한, 버스노동자들은 근무 마무리 후 다음 근무까지 휴식시간을 11시간에서 12시간으로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법에 따라 모든 독일 노동자는 교대근무 사이 최소 11시간 휴식을 보장받는데, 도시 외곽 기종점으로 출퇴근하는 버스·철도노동자들은, 이동에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수 노동자가 퇴근에 1시간 30분, 다시 출근에 1시간 30분을 쓴다. 8시간 안에 먹고, 자고,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삶이 온전할 리 없다.

     

    그간 국가와 자본의 공공교통 민영화 공세와 투자 축소로, 독일 교통체계는 부실해졌고, 더 위험해졌다. 독일 공공교통체계의 부실은 악명 높은데, 기차도 연착과 취소가 일상화되어 있어 2024년 3월 기준으로 국영철도회사 도이체반의 장거리 열차 (유명한 ICE와 IC) 중 67.6%만 정시에 운행했을 정도다. 상황이 이럴진대,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고통받는 것은 당연하다.

     

    2023년 2월 25일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기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 15%에 불과한 대중교통 비중은 2030년 24%, 2045년 47%로 3배 이상 늘어야 한다. 독일 운수회사협회(VDV)에 따르면, 운송부문 기후목표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교통-운수노동자 11만 명을 추가 고용해야 한다. 독일 정부도 2030년까지 공공교통 이용률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문제는 열악한 교통노동자 임금·노동조건으로 인력충원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이다. 운수부문의 이직률과 평균연령은 독일 타 산업에 비해 월등히 높다. 통합서비스노조(Ver.di)가 발표한 공공교통부문 고용분석에 따르면, 현재 인력의 절반가량이 6년 내 정년퇴직하거나 퇴사할 공산이 높다. 노조에 따르면 “버스는 늦고, 버스노동자는 정기휴식을 취하지 못하며, 여유인력이 없어 이틀간 야간근무를 마친 노동자가 곧바로 출근해야 할 정도이고, 트램 운전사가 아프면 열차 자체가 결행해야 할 정도”다. 공공교통에 대한 대대적 투자와 노동조건 개선이 필요한 것이다.3) 이렇듯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 공공교통 확대를 위한 노동자 투쟁과 기후정의운동의 목표는 하나다.

    3) 에너지가 상승을 상쇄하기 위한 조치로, 정부는 2022년에 9유로티켓을 도입해 한시적으로 지역 및 지방 공공교통을 9유로에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후속 정책인 49유로티켓은 2023년 초에 시행되었지만, 특히, 공공교통체계가 열악한 지방의 경우 자동차 통행량에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는 함께 간다! - 기후를 보호하는 것은 파업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사진: Motte Wirfahrenzusammen flickr

     

    “우리는 함께 간다”

     

    미래를위한금요일 독일지부에 따르면, 2019년 9월 140만 명 이상이 글로벌 기후파업에 참여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25만 명에 불과하다. 독일 기후운동은 위축되어 왔고, 유럽 전역에서 확대되는 ‘그린래시(기후운동에 대한 백래시)’는 기후운동 위축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독일 기후운동의 주된 투쟁 방식이었던 가두시위로는 한계가 분명했고, 새로운 전망이 필요했다. 이에 독일 기후운동은 2020년 이후 노동운동과의 결합과정을 확대해왔다. 당시 공공교통노동자들은 기후운동가들을 불신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간 ‘마지막 세대(letze generation)’ 등 독일 직접행동주의 기후운동그룹의 예술품 훼손과 접착제 시위에 대한 반감도 있었다. 일부는 그런 반감에 노조를 탈퇴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후운동과 노조운동은 지속적 연대로 신뢰를 쌓아갔다. “우리는 함께 간다” (we ride together, wir fahren zusammen)라는 슬로건으로 두 운동의 목표가 다르지 않음을 드러냈다. 겪어온 과정도, 쓰는 용어도 달랐던 두 운동은 계속 접점을 만들어왔다. 2023년과 2024년의 노동자 기후정의파업은 그 결과다. 물론, 그 발전 정도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 독일 공공교통노동자 모두가 기후정의 투사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공공교통노동자들의 기후정의파업은 기후운동이 계급투쟁이어야 한다는 의식을, 또한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넘어 체제에 맞선 정치투쟁을 확대해야 한다는 계급의식을 확대할 계기다. 독일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의 연대는 목적의식적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독일 노동자투쟁 확대 배경

     

    최근 독일 노동자투쟁은 확대 추세다. 투쟁 확대에 따라 노동조합조직률도 상승하고 있는데, 2023년 독일노동조합연맹 8개 산별노조 중 5개 산별노조에서 조합원이 늘었고, 젊은 조합원 비율도 늘어났다. 노동자투쟁 확대의 주요 배경은 고물가 지속에 따른 실질임금 삭감, 그리고 이와 연동된 요인으로서 세계화의 균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 자본주의의 위기다.

     

    지속되는 고물가에 따라, 독일노동자 실질임금은 무려 4년째 감소하고 있다(2020년 1.2% 감소,  2021년 정체, 2022년 4% 감소, 2023년 0.1% 감소). 러시아산 가스를 독일로 들여오던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파 사건이 상징하듯, 유럽국 중 러시아·중국과 가장 밀접했던 독일 자본주의는 러우전쟁 이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인플레이션과 실질임금 삭감에 노동자 민중이 고통받는 지금에도, 독일 정부는 급격한 군비 확대에 나서고 있을 뿐이다.

     

    "2022년 2월 24일은 유럽 대륙의 역사에 '시대전환'이 될 날입니다. 세계는 더 이상 이전 같지 않을 것입니다.“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사흘 뒤인 2022년 2월 27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연설이다. 숄츠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지된 독일의 방위 정책을 대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1천억 유로 규모 특별방위기금을 만들고, 나토 가이드라인에 맞춰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독일 군비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24년에는 1992년 이후 최초로 나토의 각국 방위비 가이드라인인 GDP 대비 2%를 달성할 전망이다. 이조차 시작에 불과하다. "국내총생산 대비 2% 방위비 기준은 천장이 아닌 바닥이 되어야 한다" - 독일 국방장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의 말이다. 이러한 군비 증가는 사회보장지출 축소와 억압체제 강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교통-운수노동자파업 참여자들 역시 급격한 국방예산 확대에 대비되는 공공투자 낙후를 지적하며, 열악한 공공교통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대대적 공공교통 투자를 요구했다. 이렇듯 2024년 독일 공공교통노동자 투쟁은 임금삭감에 맞선 투쟁, 기후위기에 맞선 투쟁, 전쟁과 군비증가에 맞선 투쟁을 하나로 집약한 반체제 정치투쟁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아직은 ‘가능성’이다. 다음을 보자.

     

    한계와 과제 - 팔레스타인 연대를 둘러싼 세계 기후정의운동과 독일 운동의 분열

     

    의미 있는 진전이었으나, 한계도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대량학살에 맞선 팔레스타인 연대와 관련한 국제 기후운동과 독일 기후운동의 분열을 살펴보자.

     

    "점령, 토지강탈, 정착촌, 콘크리트벽, 아파르트헤이트, … 우리는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다양한 형태와 강도로 나타나는 이 교과서적인 식민주의를 해체해 IPCC의 생존가능 시나리오를 보장할 것입니다 … 이것은 대량학살입니다” - 2023년 10월 19일, 미래를위한금요일 인터내셔널은 "전 세계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억압적 국가테러에 항의하는 날"의 일환으로 10월 20일 금요일 전 세계 총파업을 촉구했다.4)

    4) △모든 노동자와 학생은 금요일에 쉬고 총파업에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업체는 10월 20일 금요일에는 영업하지 마세요. △모든 시민은 이날 국제연대의 상징을 착용해주세요 … 이날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국가테러에 항의하는 날입니다.

     

    2023.10.19. <미래를위한금요일 인터내셔널>의 팔레스타인 연대총파업 촉구 게시물

     

    왜 기후운동은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가? 미래를위한금요일(FFF)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식민점령 아래 기후정의는 없다.", ”기후정의의 핵심은 모든 사회적 불의와 억압에 반대하는 것이며, 여기에는 팔레스타인 민중에 대한 억압도 포함된다.“ 이렇듯 미래를위한금요일 국제조직과 각국 지부는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해 왔다.

     

    그러나 독일지부는 예외다. 미래를위한금요일 국제조직과 그레타 툰베리가 이스라엘의 대량학살을 규탄하며 팔레스타인 연대 입장을 밝힌 후, 슈테피 렘케 환경부장관(녹색당)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이 툰베리와 미래를위한금요일 국제조직을 비난했다. 미래를위한금요일 독일지부는 국제조직과 툰베리의 입장이 일방적이라고 비판하며 국제 기후정의운동과 거리를 두어왔다. 뮌헨에서는 팔레스타인 연대활동가들이 기후시위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전 세계 유대인들과 연대하며, 하마스의 테러를 강력히 규탄한다", “소수가 허위정보와 반유대주의를 전파하고자 네트워크를 악용하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미래를위한금요일 글로벌SNS를 허위정보와 혐오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질 때까지, 독일지부는 미래를위한금요일 글로벌 SNS와 교류하지 않을 것이다." - 미래를위한금요일 독일지부 대표이자 녹색당 정치인인 루이자 노이바우어의 말이다.

     

    2023년 11월 30일 두바이에서 열린 COP28 (28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도, 각국 기후정의활동가들은 화석연료 단체, 기업, 정부수반들의 이스라엘 전쟁범죄 연루를 규탄하며 가자지구 휴전을 촉구했으나, 독일 기후운동 대표단은 해당 투쟁에 참석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하지 않는 독일 기후운동, 특히 그 상층부는 그 운동의 정치적 지향뿐만 아니라 자신이 내건 본령인 ‘기후위기 해결’에 있어서도 오류 그 자체다. 한 영국·미국 연구진이 내놓은 보고에 따르면, 가자지구 대량학살 한달 동안 배출된 온실가스는 글로벌사우스 20개국 연간 온실가스 배출량보다 많다. 이렇듯 전쟁과 군비 확대는 그 자체로 반노동적, 반기후적, 반사회적이다.

     

    독일정부가 급격한 군비 확대에 나선 지금, 노동운동과 기후정의운동은 국제 반제반전운동의 일원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FFF 독일지부는 이스라엘의 범죄적 학살을 지원하는 독일정부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독일 노조운동도 마찬가지다. 독일노동조합연맹도, 통합서비스노조도 이스라엘 지지를 밝혔을 뿐이다.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의 연대가 독일정부에 맞선 반제 반전운동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는 흐름은 3월 1일 노조-기후운동 공동파업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3월 1일 베를린 공동파업 집회에서, 공공교통 저임금체제에 관해 재무부·교통부 장관(둘 다 독일자민당 소속이다) 규탄 발언이 쏟아졌으나, 녹색당을 포함한 독일 연립정부 전체에 대한 규탄 발언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FFF 성원들이 급진적 반자본주의 구호를 현장 곳곳에 내걸었지만, 무대에서는 급진주의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계속되는 대량학살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연대투쟁이라는 주제는 무시되었다. 투쟁은 온건했고, 참가자는 투쟁의 의미와 잠재력에 비해 낮았다. 즉, 2024년 독일 공공교통노동자-기후운동은 2023년 ‘거대한 파업’에 이어지는 연대투쟁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기는 하나, 이 정치적 의미를 더욱 발전시키지는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2023년 독일이 이스라엘에 판매한 무기가 전년보다 10배나 늘 정도로 (수출 218건 중 185건이 하마스의 공격이 있었던 10월 7일 이후 이루어졌다) 독일 정부의 학살 지원이 노골적인 상황에서,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투쟁이라는 중대 과제를 도외시하는 운동은 국가-자본에 종속되고, 길들여질 수밖에 없다.

     

    제국주의 전쟁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노동운동-기후정의운동-반제반전운동의 목표는 하나여야 한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체제에 맞선 정치투쟁’이라는 목표 아래 국가-자본과 독립적으로 각 운동의 연대를 추동해야 한다. 노동운동과 기후운동의 연대 과정에서 드러난 독일 노동자계급의 과제도, 심화하는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위기에도 새해 벽두부터 ‘핵기반 한미일동맹 강화’와 ‘K-방산 전략산업화’를 외치며 국가 자체를 전쟁기지로 만들어가는 정부와 자본에 맞선 한국 노동자계급의 과제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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