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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레닌의 『국가와 혁명』의 적실성레닌의 『국가와 혁명』은 1871년 파리 코뮌이 보여주었듯이 노동 계급의 권력 장악이란 부르주아지가 운용하던 관료적·군사적 국가 기구를 단순히 넘겨받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보여 준다. 최근 수십 년 동안 노동 계급은 후퇴하고 사회 혁명은 거의 전적으로 부재한 탓에, 좌파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조차 레닌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상 낯선 것이 되어 버렸다. 일당 체제, 그리고 어디에나 스며 있는 관료제의 지배는 레닌과 이후에 트로츠키가 스탈린주의에 맞서 옹호했던 소비에트 민주주의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아래 글은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사상 연구소(IPS)에서 곧 출간될 V. I. 레닌의 『국가와 혁명』(The State and Revolution) 스페인어판 신간에 실린 크리스티안 카스티요의 서문이다. 『국가와 혁명』은 레닌이 1917년 8~9월에 쓴 글이다. 이때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가 권력을 장악하여 역사상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수립하기에 이른 혁명적 위기의 직전이었다. 역사적인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이 글은 미완으로 남았다. 레닌은 1905년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 1917년 2월부터 8월까지 벌어진 일에 대해서 끝내 쓰지 못했다. 은신 중이던 레닌은 이 결정적 시기에 마르크스주의의 국가 개념을 명료하게 세우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에 핵심 쟁점이었고, 카를 카우츠키 같은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주요 이론가들은 이 문제를 온갖 혼란과 왜곡으로 오염시켜 놓았다. 이 지도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사회 계급과 함께 국가도 “소멸”(extinguished)할 것이며 그것이 어떤 자의적 결정에 따라 “폐지”(abolished)될 수는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언급하지 않은 한 가지는, “소멸”하는 국가는 부르주아 국가가 아니라 혁명 이후 등장하는 국가라는 점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노동 계급 권력의 도래가 곧 부르주아 국가의 파괴, 더 정확하게는 그것의 근본 기둥인 관료제와 군사력의 파괴를 함의한다고 보았다는 점도 그들은 숨겼다. 따라서 『국가와 혁명』은 당대 독일 사회민주당 내부의 지배적 견해(당시 러시아 멘셰비키의 견해와 견줄 만한)를 교정하고 이에 맞서기 위해,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입장을 면밀히 재구성해서 담고 있다. 1871년 파리 코뮌이 보여주었듯이 노동 계급의 권력 장악이란 부르주아지가 운용하던 관료적·군사적 국가 기구를 단순히 넘겨받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국가와 혁명』은 보여 준다. 그것은 국가 기구를 완전히 파괴한 다음 성격이 전혀 다른 새로운 기구로 대체하도록 요구한다. 말하자면 소수의 자본 소유자들이 인구의 압도적 다수를 지배할 수 있도록 구조가 설계된 부르주아 국가를 노동 계급이 그저 “점유”하는(occupying)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 계급은 부르주아 국가를 노동자의 지배에 적합한 다른 종류의 국가로 대체해야 한다. 파리 코뮌은 상비군과 경찰을 무장한 대중으로 대체했다. 코뮌 구성원들은 그 어떤 정치 공직자도 숙련 노동자보다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없으며 공직자는 선거권자들에 의해 언제든 소환될 수 있음을 확고히 했다. 국가 행정부의 집행 기능을 선출된 대표들이 직접 수행함으로써,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이 외부에서 실제 권력을 행사하는 부르주아 의회들의 “순전한 사기극”과 달리 코뮌은 “일하는 단체”가 되고자 했다. 계급 사회를 종식시키는 과정 속에서 노동자 국가는 정치·경제 업무를 관리하는 일에 점차 사회 전체를 참여시킴으로써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폐지”하게 될 것이었다. 레닌의 이 책이 어째서 지금도 유효한가? 최근 수십 년 동안 노동 계급은 후퇴하고 사회 혁명은 거의 전적으로 부재한 탓에, 좌파를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에게조차 레닌이 주장하는 내용이 사실상 낯선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우리는 사회주의/공산주의와 관료적 전체주의의 중요한 차이점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하고, 후자는 레닌이 열망한 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소비에트 연방에 관료적 전체주의라는 어둠이 내려앉은 데는 몇 가지 핵심 요인이 작용했다. 10월 혁명은 고립되었고, 내전 중에 혁명 간부들과 지도자들의 상당수가 사망했으며, 러시아 사회가 전반적으로 “후진성”을 벗지 못했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현실은 혁명 이후 탄생한 새로운 국가가 관료화하도록 추동했다. 일당 체제, 그리고 어디에나 스며 있는 관료제의 지배는 이후 발생한 20세기의 혁명들에 “본보기”가 되었으나, 이는 레닌과 이후에 트로츠키가 스탈린주의에 맞서 옹호했던 소비에트 민주주의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오늘날 정치 지형은 자본주의적 지배가 지속될 수밖에 없음을 변호하는 두 부문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보통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는 첫 번째 부문은 부르주아 국가의 기능을 치안과 통제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기업들이 더 전제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모든 사회적 권리를 폐지하려 한다. 동시에 그들은 2008년 위기에서 보았듯이 거대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 국가를 대규모 부채로 몰아넣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자들이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는 두 번째 부문은 국가가 계급 화해 기관이라는 국가 숭배(fetishism)를 고수하면서 그것이 지배 장치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숨긴다. 승리한 사회 혁명 없이 수십 년이 흘러온 지금,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어떤 진보적 변화든 국가라는 틀 안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널리 퍼진 시대를 마주하고 있다. 대다수 사람이 갈망하는 변화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만 성취할 수 있다고 여겨지고,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민주주의 그 자체”로 신비화되었다. 그러나 진실은 이러하다.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대중 운동(movilizations), 항거(Revolts), 혁명 운동들이 전면적 혁명 과정으로 전환되면 봉기한 노동자 대중의 권력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하는 기구들이 틀림없이 발전해 나올 것이다. 파리 코뮌과 러시아의 소비에트는 노동자들이 지배 계급의 탄압에 맞서 자기방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권력의 여러 표현 형태를 보여 주었다. 러시아의 경우, 소비에트는 투쟁하는 노동자·농민 공동전선의 가장 위대한 표현으로 출발했고, 혁명 승리 이후에는 새로운 국가 권력의 토대로 변모했다. 이는 파리 코뮌의 교훈과 레닌이 『국가와 혁명』에서 제시한 전망에 근거한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모든 혁명다운 혁명은 이 같은 기구들의 출현을 수반할 것이며, 자본주의 국가의 억압적 성격을 드러낼 것이다. 레닌과 이후에 트로츠키가 분명히 하고자 했던 또 하나의 쟁점은, 가장 개방적인 자본주의 민주주의보다도 “천 배 더 나은” 민주주의를 구현할 새 국가의 물질적·경제적 토대였다. 레닌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발전은, 실로 “모두”가 국가 행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전제 조건들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전제 조건들 가운데 몇몇은 다음과 같다: 가장 선진적인 여러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미 달성된 보편적 문해력, 그리고 우편·철도·대공장·대상업·은행업 등의 거대하고 복합적이며 사회화된 장치에 의한 수백만 노동자들의 “훈련과 규율”, 등등. 이러한 경제적 전제 위에서 “자본가들과 관료들을 타도한 다음, 즉각, 하룻밤 사이에, 생산과 분배의 통제, 노동과 생산물의 계산 업무에서 그들을 무장한 노동자들, 무장한 인민 전체로 대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 뒤, 레닌은 이렇게 덧붙인다. 계산과 통제—그것이야말로 공산주의 사회의 첫 단계의 “원활한 작동”, 올바른 기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다 … 중요한 것은 그들이 평등하게 일하고, 자기 몫의 일을 하며, 동일한 임금을 받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계산과 통제는 자본주의에 의해 극도로 단순화되어, 지극히 단순한 작업으로, 즉 문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행할 수 있는 감독, 기록, 사칙 연산, 적절한 영수증 발급으로 축소되었다. 잠시 멈추고 생각해 보자. 과학 기술 일반, 특히 의사소통 기술이 혁명적으로 발전한 21세기의 우리는 레닌이 언급한 것보다 훨씬 우월한 전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텔레비전, 라디오, 컴퓨터, 휴대전화, 소셜 네트워크는 수백만 명의 사람에게 정보를 쉽게 전달하고 어떤 경제적·정치적 결정을 내릴지 토론하도록 돕는 수단들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경제 자원을 민주적으로 계획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으며, 불평등을 점진적으로 제거하고 노동일을 단축하여 과학적·문화적 지식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우리는 자본주의로부터 물려받은 비합리성을 이 같은 민주주의 안에서 오래지 않아 억제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이 사회에서는 다세대 주택과 빈민가에 빽빽하게 몰려 사는 수백만 명을 위한 주택 대신에 아무도 살지 않을 집을 짓자는 계획 따위는 제안할 수 없을 것이다. 수억 명이 굶주리는데 한 줌의 인간이 수십 년 쓰고도 남을 부를 축적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다. 공산주의 사회라면, 어떤 사람들은 하루 10시간, 12시간 일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일거리를 얻지 못하고 생존하기 위해 복지제도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깨달을 것이며, 그 대신 더 분명한 계획으로 모든 가용한 일을 모든 가용한 노동자에게 나눌 것이다. 누구도 실업 상태로 남지 않고, 누구도 과로하지 않을 것이다. 소수의 배를 불리기 위해 지구의 미래의 삶을 저당 잡아 환경을 파괴한다는 발상은 한심하게 들릴 것이다. 물론 이 사회는 아직 공산주의는 아니며, 우리는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에서 “각자 자신의 필요에 따라”라는 분배 원칙으로, 다시 말해 “필연의 영역에서 자유의 영역으로” 옮겨 가야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적 착취가 낳은 모든 치욕과 추악한 것들을 사회에서 철저히 씻어내고 더 전진하기 위한 필수 단계”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 구성원 전체, 또는 적어도 압도적 다수가 스스로 국가를 운영하는 법을 배우고, 이 일을 자기 수중에 쥐고, 보잘것없는 소수 자본가와 자본주의적 악습을 보존하려는 지주 신사층과 자본주의에 의해 철저히 부패한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를 조직하는 그 순간부터, 어떤 형태의 정부든 그 필요성은 완전히 사라지기 시작한다. 민주주의가 더 완전할수록, 그것이 불필요해지는 순간은 더 가까워진다. 무장한 노동자들로 이루어지고 “더 이상 엄밀한 의미의 국가가 아닌” 그 “국가”가 더 민주적일수록, 모든 형태의 국가는 더 빠르게 시들어간다. 2008년 이후 자본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새로운 세대는 이 체제가 자신들에게 점점 더 어두운 미래만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착취하고 억압하는 이 체제에 맞서서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에게 사회주의적·혁명적 전망을 제시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투쟁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2019년 10월 10일, 일간좌파에 스페인어로 처음 게재됨. 2019년 11월 4일, Left Voice에 게재된 영문 기사를 번역함. 글쓴이: Christian Castillo -
[한노운사 연재 4회] 1부 폭압과 저항(1970~1987) [3] 민주노조운동의 파괴와 재건광주를 학살한 전두환 신군부는 모든 민주노조를 파괴했다. 쓰라린 피눈물을 딛고 노동자들은 정권에 맞서 함께 싸우지 못한 것을 통렬히 반성했다. 새로 등장한 민주노조들은 구로동맹파업을 통해 연대투쟁과 정치투쟁으로 무장한 새로운 민주노조운동의 길을 열었다. 1) 신군부의 폭압과 노조파괴 광주민중항쟁을 잔인하게 진압한 전두환은 5월 31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임의기구의 위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사실상 대통령 노릇을 시작했다. 광주를 학살한 군사정권의 폭압이 이제 전 사회를 휘감았다. 8월 27일 체육관 간선을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된 전두환은 10월 27일 공포된 개정 헌법에 따라 1981년 2월 25일 다시 체육관 간선으로 제5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개정 헌법에 따라 비상 입법기구로 등장한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는 대통령 전두환이 임명한 81명의 의원들로 구성돼 1981년 4월 제11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행할 때까지 6개월 동안 정치활동규제법, 언론기본법, 집회시위법, 노동관계법 등 189건의 법률을 통과시켰다. 특히 국보위는 기업별 노조 체제로 전환, 제3자 개입금지 신설, 노조설립 요건 강화, 노조임원 자격 제한, 조합비 사용 제한, 노조운영에 대한 행정개입 확대, 단체교섭권 위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쟁의 냉각기간 연장, 직권중재 대상 확대, 노사협의회 설치 등의 내용으로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노동쟁의조정법·노동위원회법을 개정하고 노사협의회법을 신설했다. 전두환 정권은 사회 전반을 상대로 한 이른바 ‘정화’ 조치에 노동조합을 포함시켰다. 1980년 8월 21일 발표한 노동조합 정화 지침에 따라 한국노총 및 산하 산별노조 위원장 12명을 바로 사퇴시켰다. 한국노총 지역지부 105개를 모두 해산시켰다. 노동계 인사 191명을 정화 대상자로 지목해 현장복귀를 지시했다. 특히 1980년 9월 원풍모방 지부장을 정화 조치하고, 12월에는 조합원 40명을 계엄사로 끌고 가 협박과 폭행으로 사표를 강요했다. 그중 일부는 삼청교육대로 보냈다. 다른 노조에서도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는데, 최소 22명의 노조간부가 삼청교육대로 끌려갔다는 기록이 있다.[1] 1981~82년 전두환 정권은 청계피복, 반도상사, 해태제과, 콘트롤데이타, 서통남화전자, 태창메리야스, 원풍모방 등 민주노조들을 모두 해산시켰다. 1981년 1월 6일 청계피복노조에 대해 해산 명령을 내리고 노조 사무실을 폐쇄했다. 1월 30일 조합원 21명이 ‘아시아·아메리카 자유노동기구’(아프리) 농성에 돌입했지만, 경찰을 투입하여 강제 해산하고 12명을 구속시켰다. 1981년 3월 반도상사, 1982년 7월 콘트롤데이타에 폐업을 강제하여 노조를 해산시켰다. 원풍모방노조가 굴복하지 않고 계속 저항하자, 1982년 9월 회사의 사주를 받은 사원 100여 명이 노조 사무실을 점거해 노조 간부들을 폭행하고 기물을 부쉈다. 조합원들이 단식 농성에 들어가자, 9월 30일 밤부터 추석날인 10월 1일 새벽까지 전투경찰이 합세해 노동자들을 잔인하게 끌어냈다. 경찰은 노조 간부 전원을 전국에 지명 수배했다. 원풍모방 노동자들이 10월 7일과 13일 회사 앞과 영등포 일대에서 거리시위를 벌이자 경찰은 수십 명의 노동자를 구속하거나 구류에 처했다. 회사는 574명을 해고했다. 11월 12일에는 핵심 간부 11명이 전원 체포됐다. 원풍모방 노조의 파괴로 1970년대 민주노조들에 대한 파괴가 일단락됐다. 이렇듯 모든 민주노조가 차례로 탄압을 받고 줄줄이 해산됐지만 민주노조들은 각개격파 당하면서도 연대투쟁의 깃발을 올리지 못했다. 1981년 청계피복노조 사수투쟁부터 1982년 원풍모방노조 사수투쟁까지 개별적인 투쟁으로 저항할 뿐이었다. 신군부의 탄압에 밀려 무기력하게 해산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 주체들은 무엇보다 연대투쟁에 나서지 못한 운동의 한계를 뼈저리게 절감했다. 특히 청계피복노조는 해산을 당한 이후 자기비판 문서를 공개 발표했다. 철저한 반성을 다짐하고 제안함으로써 새로운 출발을 열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과오를 범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당국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에 대한 계속되는 탄압에 우리는 괴로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직 조직보존을 위해서 뒷걸음질 쳐 왔다. 언젠가 계엄령이 해제되고 사회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면 그동안 입은 타격을 곧 회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그렇게 해왔다. 또 반도상사 노조 파괴를 보면서 가슴아파하면서도 한편 우리의 조직이 붕괴되지 않음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솔직히 말해서 오늘 우리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는 공포심에 우리도 예외 없이 짓눌려 당국의 탄압에 저항을 못했다. … 우리의 조직을 약화시킨 요인이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2]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YH 노동자들이 보여준 결기처럼 한편으로 엄청난 힘을 가진 운동이었다. 그런데 자기 사업장 조합원들끼리는 강력한 결집력을 가졌음에도 다른 사업장 민주노조가 탄압으로 해산되는 상황에서 연대투쟁을 할 수 없는 장벽에 갇혀 있었다. 생존권 투쟁은 처절하게 할 줄 알지만, 정권에 맞선 연대투쟁·정치투쟁은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청계피복노조가 한 반성의 의미는 ‘언젠가 우리에게 민주노조 할 기회가 다시 온다면 그때는 다르게 하리라’는, 특히 ‘연대투쟁과 정치투쟁을 할 수 있는 민주노조운동을 하리라’는 다짐이었다. 그리고 해산당한 조합원 가운데 상당수가 새로운 사업장으로 가서 구로공단과 인천 등에서 새로운 민주노조들의 밀알이 됐다. 1985년 구로동맹파업의 중요한 씨앗이 여기서 만들어졌다. 구로동맹파업에서 핵심 사업장이었던 대우어패럴노조의 위원장이 바로 청계피복노조의 조합원이었다. 연대투쟁을 당연한 과제로 받아들였던 구로공단 민주노조들의 방향은 청계피복노조의 반성에 기초하고 있었다. 2) 다시 일어서는 노동자들 폭압을 이어가던 전두환 정권은 1983년 2월부터 12월까지 구속자 석방, 사면·복권, 제적생 복교, 대학 상주 경찰의 철수, 해직교수 복직 등의 정치적 유화조치를 단계적으로 취했다. 집권 안정기에 들어섰다는 자신감, 탄압의 효력 감소, 1983년 11월 미국 대통령 레이건 방한을 대비한 분위기 조성 등이 그 이유였다. 군사정권의 유화조치는 민주화 투쟁이 다시 활성화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노동자들의 투쟁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1983년 9월 전두환 정권 아래서 최초의 공개 운동단체인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이 창립됐다. 1984년 3월에는 수도권 해고자들이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노복)를 창립했다. 노복은 기관지 <민주노동>을 발행하면서 블랙리스트 철폐투쟁과 노동악법 개정 투쟁에 주력했다. 1981년 강제해산 당했던 청계피복노조가 1984년 4월 ‘법외노조’로 복구를 선언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이후 청계피복노조는 합법성 쟁취를 위해 치열한 투쟁을 전개하며 다시 한 번 민주노조운동의 선봉에 섰다. 택시노동자들이 뒤를 이었다. 택시노동자들은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18시간을 일하면서도 한 달에 사흘밖에 쉬지 못했다. 과도한 사납금을 채우기 위해 목숨 걸고 과속운전을 해야 했다. 1984년 5월 대구의 택시노동자 1천여 명이 사납금 인하, 노조결성 방해 중지, 취업카드제 철폐 등을 요구하며 대구시청 앞 등 중심가를 차량으로 봉쇄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당황한 대구시는 사납금 인하 등 택시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을 수락한다고 발표했다가 농성이 해산되자 약속을 뒤집었다. 택시노동자들이 다시 대구택시사업조합 이사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자 경찰이 출동하여 농성을 해산시키고 65명을 연행했다. 대구에서의 파업은 가라앉았지만, 부산·대전·강릉 등 여러 도시로 택시노동자들의 파업이 확산됐다. 1984년 하반기 대우자동차에서는 노조민주화 세력이 집행부 불신임을 추진한 것과 관련해서 2명이 해고당했다. 1985년 4월 대우자동차의 2천 200여 노동자들이 임금 18.7%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농성이 사흘째 계속되자 대우그룹 총수 김우중이 직접 나서서 해산을 요청했지만 노동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회사측이 주말을 이용해 휴업을 선언하려 하자 강제진압에 대비해 350여 명이 기술센터 3층을 점거했다. 조합원들의 들끓는 열기에 밀려 어쩔 수 없이 파업을 선언하고 어정쩡하게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노조집행부가 더 이상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빠져나갔다. 민주파 대의원들이 이미 실질적인 지도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결국 파업 9일 만에 김우중 회장과 민주파 대의원 대표가 16.4% 임금인상에 합의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대우자동차 임금인상투쟁은 대자본에 맞선 투쟁이었기에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았고 언론에서도 날마다 보도했다. 대우차 투쟁의 승리는 다른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을 강력하게 자극했다. 학생출신 활동가와 노동자대중의 유기적 결합을 보여주었으며, 남성 중심의 대공장 노동자들도 조직적으로 투쟁에 나서기 시작했음을 보여주었다. 3) 1985년 구로동맹파업 오늘날 구로디지털단지가 있는 구로동과 가리봉동 일대에는 1965년부터 구로공단이 있었다. 1980년대에는 섬유산업과 전자산업을 중심으로 8만여 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수도권 최대 규모 공단이었다. 여성노동자들이 다수인 구로공단 노동자들은 욕설과 폭행, 성희롱이 난무하는 인간 이하의 삶에 시달리고 있었다. 임금은 1인 최저생계비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1984년 6월 구로공단에 자리한 대우어패럴에서 민주노조가 결성됐다. 사측은 노조간부 회유·협박, 흑색선전, 노조탈퇴 강요, 노조반대파 조직, 구사대를 동원한 조합원 폭행, 라인축소, 납치·감금 등 온갖 수법으로 노조를 파괴하려 했다. 집요한 탄압 때문에 1천 400여 명이던 조합원이 100명 정도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한국노총 위원장실 농성, 민한당사 농성 등을 통해 완강하게 맞서면서 노조를 지켜냈다. 대우어패럴에 이어 대한마이크로, 가리봉전자, 선일섬유, 효성물산, 협진, 유니전 등에서 속속 민주노조가 결성됐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에서 배출된 노동자출신 활동가들과 학생출신 활동가들이 각 사업장에 들어가서 끈질기게 선진노동자들을 조직해 나간 활동의 성과였다. 대우어패럴에는 여러 활동가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들어와 있었던 사람은 최한배였다. 최한배는 생산현장에 취업한 것이 아니라, 보일러 기사로 취업했다. 그는 동화교회 야학에서 만나오던 김준용이 군에서 제대하자, 대우어패럴 입사를 권했다. 1982년 김준용은 대우어패럴 재단사로 입사하면서 현장활동을 시작했다. 이 두 사람은 현장활동에 대한 모든 것을 공유하며 논의했다. … 현장활동을 활발히 하던 김준용은 대우어패럴에 들어와 있던 … 학생출신 활동가, 추재숙(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 ○화자(JOC) 같은 여러 활동가들의 동선을 파악하면서, 관계를 만들어 갔다. … 활동가들의 만남이 진행되는 다른 한편 대우어패럴에는 노동자들의 여러 소모임, 친목모임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대중활동의 중심에 김준용이 있었다. 김준용은 청계피복노조에서의 활동경험을 살려 남성노동자, 여성노동자 그리고 소속 라인을 넘어 현장 어디서나 노동자들과 편하고 쉽게 사귀었다. 김준용은 남성노동자 중심으로 술모임, 등산모임, 축구모임 같은 친목모임을 여럿 만들어 노동자들과의 관계를 넓혀갔다. 그 가운데 열성을 가진 사람들은 소모임으로 모아 노동자의 권리, 노동조합에 대한 학습을 하기도 했다. 학습모임은 최한배가 운영했다. 학습소모임 가운데 ‘호롱불’은 가장 열성적이고 적극적인 노동자들이 모였으며, 그 성원들은 대우어패럴 노조결성과 활동의 중심인물로 성장했다. 1년에 걸친 활동 결과, 1984년 김준용을 중심으로 어떤 활동이든 참여하는 노동자가 100명이 넘었다. 이들이 노조결성 뒤 자본가의 탄압에도 끝까지 노조를 사수하는 핵심성원이었다. … “… 김준용이 『전태일 평전』을 나한테 줬어요… 전태일 평전을 읽고 내가 좀 감동을 받았지…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싶기도 했고 그걸 읽고 ‘노동조합이란 게 필요한 거구나 회사에…’ 그때부터 준용이하고 같이 움직이게 된 거죠. … 청계천 쪽에 가면서 그런 거를 많이 접하게 됐죠. 유인물이나 어디서 데모를 하는지 가두행진을 한다든가 그런 정보를 알게 되고 전태일 기념관도 가게 되고, 홍제동 성당에서 집회 있으면 쫓아다니고 하면서 문익환 목사도 알게 됐죠. 우리도 ‘노동3권이라는 게 참 필요한 것이다’ 알게 돼서, 그런 쪽으로 책을 많이 읽었어요. … 전공투, 자본주의의 이론 책자를, 노동운동에 대한 거였어요. … 그러면서 따로 모임을 가지고. … 대우어패럴 노동조합이 결성하게 된 힘은 소모임을 통해서 결속력을 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돼요.” … 강명자는 지역소모임에 참여하면서 노동자의식과 현장활동에 대해 배우면서, 그 모임에서 배운 방식으로 현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소모임을 만들어 책읽기, 현장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거나 놀러 다니면서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나는 의식은 있고 계속 내 공부 모임하면서 … 대우에서 일하는 사람들하고 소모임을 만들었죠. 그러면서 이제 (내가 읽은 것과) 똑같이 『어느 돌멩이의 외침』 이런 것들을 읽으면서 독후감을 각자 써와서 발표하고, 자기 느낌들을 이야기하고, 놀러도 다니고 …”[3] {1985년 무렵 구로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지역활동을 벌인 것은 여러 사업장 관계를 맺고 있던 A지역그룹이었다. 이들은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기업별 노동조합 체계를 극복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의 계급적 정치의식 확보를 활동방향으로 삼고 있었다. 이를 위해서 노동자의 상태와 조건에 입각하여 활동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구로공단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통해 ‘공단 자체를 단위로 한 실천’을 모색했다. 이들은 소모임 내 활동가들을 공단 내 업종의 특성을 고려하여 섬유·전자 사업장에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따라서 대우어패럴, 가리봉전자 같은 민주노조와 중간노조·어용노조가 있는 남성전기, 롬코리아, 부흥사 등에서 직접적으로 활동을 펼치게 되었다. … A지역그룹의 경우 공장단위에서 벗어난 공단 단위의 교육-훈련 체계를 노동자 소모임(지역 소그룹)으로 구상했다. 이 소모임은 강사, 학생, 학습 프로그램을 지역적 차원에서 공동으로 조직한 점과 다양한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같이 만날 수 있도록 조직한 것이 특징이다. … 노동자 소모임 프로그램의 기본 틀은 다음과 같다. “[1단계 프로그램] 노동자의 현장과 생활에서 출발하는 토론 → 의식화에 초점 (예) ‘근로자를 가족처럼’, ‘공장일의 내일처럼’ 등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충효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토론과 교양 + 각 사업장 근로조건을 비교하고 토론 [2단계 프로그램] 우리 사회는 어떤 사회인가 등의 사회문제를 둘러싼 토론 [3단계 프로그램] 노동운동사 및 정치경제학적 기초교양” 이런 소모임은 4~6명을 기본 단위로 하여 6~7개 정도가 비공개로 추진되었다. 대우어패럴 교선부장 김준희는 가리봉전자, 남성전기, 협진양행 노동자 5명으로 구성된 한 소모임에 참여했다. 소모임에서는 각 공장의 실태와 운동 상황이 토론되고 『노동의 역사』, 『일하는 사람을 위한 경제지식』, 『어머니』 등을 읽고 학습을 했으며 다른 사업장의 노동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동질감을 형성해 갔다. 지역소모임을 통한 조직과 의식화는 새로운 노동운동가를 양성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노조에서도 조합활동을 활성화시키는 데 역할을 했으며 나아가 노조 간의 지역연대 활동에 기초가 됐다. … 지역소그룹 활동과 함께 또 다른 지역활동으로는 <공단소식>을 제작해 사업장, 공단주변과 거주지역에 배포했다. 이 소식지는 여러 사업장 소식을 담고 있어 노동자들이 자신의 사업장만이 아니라 다른 곳과 비교하게 했고, 3회에 걸쳐 배포되다가 구로동맹파업으로 발행이 중단됐다. … “노조가 돌아가는 거라든지, 객관적인 상황 돌아가는 거라든지, 이런 거 새벽에 닭장집…들에 들어가서 문마다 쑤셔 넣고 … 출근해서 얘기가 되고… 탈의실에서 옷 갈아 입다보면 한두 장씩 가져와서 이야기되기도 하고…” (대우어패럴, 김준희) “노동자신문도 만들어… 노동자들 밀집된… 지역에 살포를, 그때는 대학생 조직하고도 일부 관련이 됐던 것도 같은데요… 그래서 이게 배포되는 시기가 되면 대학생들 일부와 그리고 노동자들 … 닭장집들 … 주변을 돌면서 새벽에… 배포를 했었어요. …” (롬코리아, 장영인) “공단소식이 저녁에 한 번 돌면 아침에 (회사에) 가면 공단 분위기가 싹 달라져 있다고. 하여튼 공단이라는 게 좁은 데니까. 아침에 현장에 가보면, <공단소식>이 와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게 피부로 즉각 즉각 느껴지는 거 같더라고. 그야말로 ‘공단이 내 손안에 있는 거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 공단소식 만들고 뿌리고 그때 당시 이미 해고 되어서 끌려나온 친구들이 많이 했던 거 같애. …” (부흥사, 이선주)[4] 구로지역 민주노조들은 소모임활동, 교육활동, 소식지 발간 등을 활발히 진행하면서 간부 교류 등의 연대활동을 벌였다. 민주노조들은 1985년 임금인상 투쟁을 공동으로 준비하였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대우어패럴 27% 인상, 효성물산 904원 인상, 가리봉전자 17.5% 인상, 선일섬유 13% 인상 등의 성과를 거뒀다. 각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단결의 힘을 실감했다. 조합원이 증가했고, 노동조합의 힘이 강화됐다. 전두환 군사정권은 이것을 그냥 두지 않았다. 6월 22일 대우어패럴노조의 간부 세 명을 전격 구속시켰다. 임금교섭 때 파업을 주도했다는 이유였다. 1980년대 초 민주노조들을 모두 파괴했듯이, 새롭게 등장한 구로지역 민주노조들도 하나하나 깨나가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바로 그날 구로지역 노조간부, 해고자, 활동가 190여 명이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경찰의 탄압은 민주노조 각개격파를 위한 신호탄이라 인식했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패배를 되풀이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월요일인 24일부터 ‘노동운동 탄압하는 노동부 장관 퇴진, 구속노동자 석방, 노동3권 쟁취’를 내걸고 동맹파업에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1970년대 민주노조들이 기업별 노조로서 최상의 조직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정부의 탄압에 고립분산적인 대응으로 해산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노조간부들은 1980년대 초와 같이 개별 노조의 조직보존에 매몰되지 말고 노조 간의 연대를 통해 탄압에 대항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투쟁 목적은 정부의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연대투쟁을 전개해 정부가 가하는 탄압의 본질을 폭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기업별 노조의 틀을 깨고 고립분산성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는 데 두었다. 그렇기에 “간격을 두고 차례로 당할 것이 아니라 한꺼번에 싸우자”는 투쟁방침을 결의했다.[5] 6월 24일 대우어패럴노조가 오전 8시부터 먼저 파업농성에 돌입했다. 효성물산노조, 선일섬유노조, 가리봉전자노조가 오후 2시부터 동맹파업에 돌입했다. 6월 24일 7시 30분경, 회사에서는 파업을 미리 예상한 듯 현장출입구에 관리자들이 모두 나와 서 있었고 평소 7시 30분에 열리는 현장 문이 7시 45분이 지나서야 열렸다. 50분에 각 현장별로 실시되는 국민체조가 끝나기를 기다려 각과 부위원장들은 작업대 위로 올라가 위원장이 부당하게 구속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같이 싸우기를 호소했다. 각과 조합원들이 1과 현장으로 속속 모여들었고 노조사무실에서 대기하던 2공장 조합원들도 합세했다. 밀고 들어오는 도중에 저지하던 관리자와 격돌하여 조합원 전재선이 쇠파이프를 맞고 코를 병원에서 세 바늘 꿰매고 돌아오는 사태도 벌어졌다. 관리자들의 저지를 받아 미처 들어오지 못하고 쫓겨난 조합원도 수십 명이었다. 1과 현장에 모인 인원은 285명이었다. 조합원들은 먼저 미싱과 원단을 쌓아 출입구를 차단하고 대열을 정비한 후에 소리 높여 ‘결단가’를 불러 사기를 올렸다. 이어 쟁의부장이 「우리의 결의」라는 유인물을 낭독하고 「노예로 살 것인가, 싸워 이길 것인가」라는 유인물을 배포하며 구호를 선창하자 조합원들도 함께 구호를 외치며 창밖으로 유인물을 뿌렸다. 한쪽에서는 플래카드와 구호를 쓴 종이를 준비하고 나머지는 준비한 머리띠를 두르고 부채를 만들어서 모두 창문에 매달려 ‘선봉에 서서’,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의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오전 10시경, 회사는 농성에 참가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모두 퇴근시켰고 관리자들을 모두 동원해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회사 바깥에서는 어느새 전투경찰들이 쫙 깔려 있었다. 간부들이 연설도 하고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점심시간인데 식사는 공급되지 않았다. … 오후 2시. 맞은편에 보이는 효성물산에서 꽹과리 소리가 나면서 동맹파업에 들어갔다는 것을 알려왔다. 모두들 환호하며, 창가로 가서 구호를 외침으로써 서로를 응원했다. 오후에는 즉흥 촌극과 10·26 사태를 풍자한 연극, 장기자랑 등으로 보냈다. 저녁식사 역시 들어오지 않았고 물은 화장실 안에만 나왔다. 어두워지자 회사는 전기마저 끊어버렸다. 노동자들은 솜방망이에 미싱 기름을 적셔서 횃불을 만들어 회사 주위를 밝히고 소화전 비상등에 전원을 연결, 형광등 하나를 켰다. 앰프도 연결, 마이크도 쓰게 되었다. 11시경 일부는 보초를 서고 나머지는 잠을 잤다.[6] 오후 2시경 3개 사업장에서 ‘임시총회’를 거쳐 동맹파업을 결정했고 파업에 들어갔다. 효성물산 조합원 400여 명은 긴급총회 이후 파업농성에 돌입했다. 가리봉전자 구로·독산공장의 520여 명도 ‘임시총회’ 이후 ‘구속자를 석방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파업농성에 돌입했다. 선일섬유도 140여 명이 모여 총회를 하는데, 관리자들이 방해를 하여 조합원이 70여 명으로 줄어들자 출입구를 차단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가리봉전자, 선일섬유, 효성물산 농성장에서는 「노조탄압저지 결사투쟁선언」이라는 공동투쟁선언문이 낭독되고 배포됐다. 노동자들은 이 선언문에서 대우어패럴노조 탄압이 곧 자신들의 노조에 대한 탄압으로 다가올 것이므로 동맹파업을 통해 이에 저항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동맹파업 첫날 4개 노조의 조합원 1,300여 명이 참여했다.[7] 25일에는 세진전자노조, 남성전기노조, 롬코리아노조가 동맹파업을 지지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노동운동 단체들은 구로공단 주변에 유인물을 대량 살포하기 시작했다. 26일에는 민통련, 민청련, 청계피복노조 등 22개 운동단체와 노조 대표들이 청계피복노조 사무실에서 동맹파업 지지 농성을 시작했다. 저녁에는 구로공단 일대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27일에는 효성물산과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이 노동부 중부사무소를 점거했다. 성수동에 있는 삼성제약노조가 중식거부 농성에 들어갔다. 종교단체들도 지지 농성에 들어갔다. 대학생들도 연대투쟁에 나섰다. 28일에는 부흥사노조가 동맹파업에 합류했다. 26~27일에는 동맹파업을 한 3개 노조가 해산했다. 효성물산 조합원 73명은 27일 노동부 중부지방사무소에서 점거농성을 시도하다 모두 연행됐다. 27일 오후 8시까지 농성을 하고 있던 노동자 수는 대우어패럴 사업장의 150여 명과 신민당 제1지구당사의 36명 등 모두 약 200여 명이었다. 같은 날 대우어패럴에서는 반노조원 3백여 명이 노조반대 농성을 벌이다 해산했다. 회사 주위에 전경 차 15대가 배치되자 농성장에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위협적인 분위기 때문에 농성장에서 처음으로 “살인정부 물러가라”, “노총 자폭하라”는 구호가 나왔다. 28일 부흥사 조합원 118명이 노동운동 탄압에 항의, 동맹파업을 시작했다. 부흥사는 동맹파업 직전에 동참권유를 받았으나 집행부 논의 결과 부결되어 참여하지 못했다. 이들은 구속자 석방, 노조탄압중지 등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면서 파업에 들어갔다. 부흥사에서 사업장 내 근로조건 개선요구가 정치적 요구와 결합하여 제기됐다. 그러나 파업은 반노조 폭력단의 폭력으로 6시간 만에 해산됐다. 부흥사의 파업은 동맹파업이 직접적으로 노동자들의 의식을 자각시켜 동참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8] 그러나 동맹파업 6일째인 29일, 닷새 동안 굶주리며 농성을 이어가던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의 농성장에 구사대 500여 명이 벽과 출입문을 부수고 들이닥쳐 각목과 쇠파이프로 노동자들을 폭행하면서 농성을 강제 해산시켰다. 동맹파업의 중심이던 대우어패럴 농성장이 무너지면서 동맹파업도 막을 내렸다. 6월 29일 7시 즈음. 기상해서 출근시간에 맞추어 창틀에 매달려 있는데 한일은행 담을 타고 학생들이 창문으로 들어왔다. 노동자들이 반가워서 몰려가 환호, 박수로 환영하고 학생대표의 인사말을 들었다. 그러나 채 인사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현장 벽이 부서지면서 관리자, 경비, 반대파들이 돌과 각목을 던지고 소화기를 뿜어대며 급습, 관리자 200여 명이 각목과 쇠파이프, 의자, 발길질 등으로 가릴 것 없이 농성자들을 구타하면서 머리채, 손발 아무데나 휘어잡고 기숙사 쪽으로 끌고 갔다. 회사 측의 폭력을 피해 20여 명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다 모두 잡혀 남부서로 연행, 회사로 다시 끌려와 기숙사에 갇혔다. 기숙사로 끌려간 농성자들은 한방에 5명씩 갇혀서 1인당 비조합원 3명에게 감시당하면서 갖은 모욕을 당했다. 11시 즈음 의사들이 들어와 진정제를 억지로 먹여서 농성자들은 잠이 들었다. 오후 2시 30분 즈음 이들은 깨어나 죽 한 그릇씩을 먹었다. 관리자들은 수시로 드나들며 “경찰서로 직행시켜야 한다”, “입에다 똥을 처넣어야 한다”는 등의 폭언과 협박을 함부로 했다. 그 이후 회사 측은 농성자들을 한 명씩 총무과에 끌고 가 부모까지 동원하여 강제로 사표를 쓰게 했다.[9] 구로동맹파업은 한국노동자운동사에서 한 획을 긋는 역사적 투쟁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최초의 지역연대파업이자, 선진노동자들이 목적의식적으로 조직해 낸 연대파업이었다. 구로동맹파업에는 10개 노조에서 약 2천 500여 명의 조합원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43명이 구속되고, 38명이 불구속 입건되었으며, 47명이 구류를 받았다. 1,500여 명이 해고되거나 강제사직을 당했다. 동맹파업에 참여한 구로지역 민주노조 8개가 모두 와해될 정도로 희생은 엄청났다. 그러나 구로동맹파업은 노동자들에게 큰 교훈을 남겼다. 구로동맹파업은 노동조합이 경제투쟁만이 아니라 연대투쟁과 정치투쟁도 조합원대중의 주체적 참여 속에서 수행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민주노조운동이 국가권력의 탄압에 맞서 얼마든지 정면대결을 펼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구로동맹파업은 1987년 대투쟁 이후 대규모로 등장한 민주노조운동이 국가권력의 탄압에 거침없이 연대투쟁으로 맞섬으로써,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결코 쉽사리 파괴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진지를 구축해 낼 수 있도록 길을 잡아주었다. 동맹파업은 노동자들에게 단결의 힘을 인식할 수 있게 했다. 노동자들은 해방춤, 탈춤, 즉흥 촌극, 장기자랑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용하거나, 지원을 통해 서로의 힘을 북돋았다. 이는 노동자들의 투쟁수기, 기고 글, 파업일지 등에서 드러나는데, 「파업농성일지」를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우어패럴 조합원들은 맞은 편 효성물산에서 꽹과리 소리가 나면서 동맹파업에 들어갔음을 알려오자 환호하며, 창가로 가서 구호를 외침으로써 서로를 응원했다.”(24일) “효성물산은 위원장이 가리봉, 선일 등 다른 노조에서도 동맹파업에 들어갔다는 신문보도를 읽어주자, 조합원들은 환호성을 하며 열심히 구호를 외쳤다.”(25일) “가리봉전자 조합원들은 남성, 세진. 롬코리아의 연대소식을 듣고 힘을 얻었다. 밤늦게 옆 회사 노동자들이 우유 등을 넣어주며 격려하여 눈물겹도록 힘나게 해주었다.”(25일) 이처럼 노동자들은 투쟁하는 서로의 모습에 힘을 얻으면서 노동자로서 일체감을 느꼈다. 또 동맹파업은 노동자들이 경찰이나 노동부 등의 탄압을 직접 경험하면서 투쟁 대상에 대한 인식을 보다 분명히 했다. 우선 투쟁 과정에서 드러난 경찰에 대한 노동자들의 태도를 보자. “가리봉전자에서 정문 앞에서 노동자들이 구호와 노래를 하던 도중에 관리자들과 사복경찰들이 정문을 열고 들어오려고 했다. 밀고밀치는 싸움과정 속에서 그들은 쇠파이프 각목 등으로 발등을 내리찍고 등을 후려치면서 ‘xx들 다 죽여야 한다’는 등의 욕설과 폭행을 가했다 … 계속되는 치열한 동맹파업과정 속에서 노동자를 탄압해 온 실체가 누구누구인가를 더욱 분명하게 깨달았다.”(26일) 경찰의 개입에 대해 대우어패럴 노동자들은 분노 속에 “폭력경찰 물러가라”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26일). 또 노동자들은 정부가 기관원이나 노동부 관계자들을 투쟁과정에 개입시켜 탄압하는 것에 대해서도 본질을 인식해 갔다.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태도는 다음의 「파업농성 일지」를 통해 확인된다. “가리봉전자에서는 기관원, 노동부 관악소장 등이 다녀가고 나서부터는 식당아줌마를 퇴근시키고 점심식사를 주지 않았고 물까지 끊었다. 항의하자 회사 측은 ‘우리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밥도 사장은 주려고 했지만 정부에서 주지 말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짐승에게도 밥은 굶기지 않는데 이 정부는 우리 노동자들을 어떻게 여기기에 밥도 물도 못 먹게 하는가! 전 조합원들은 다시 한 번 악랄한 처사에 치를 떨었다.”(25일) 이러한 노동자들의 정부에 대한 인식은 6월 28일 대우어패럴 농성장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났다. 이날 대우어패럴 기업주의 사주를 받은 비조합원들이 노조반대시위를 하고, 이어 전경차 15대가 주위에 배치되면서 농성노동자들의 위기의식이 고조된 위협적인 분위기에서도 노동자들은 “살인정부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경찰, 기관원, 노동부 등의 탄압을 겪으면서 노동자들은 그 본질에 대해 보다 분명히 인식해 갔다. 파업 때 진행한 토론내용은 ‘투쟁의 의의와 민주노동운동’, ‘관리자의 태도’, ‘노동운동사 강의’, ‘10·26 사태를 풍자한 연극과 토론’, ‘왜 동맹파업을 하는가’, ‘신민당의 태도’ 등이었다. 또한 파업과정에서의 토론은 매 사안에 대해 노동자들이 서로의 의견을 모아 결정하는 민주적인 훈련과정이기도 했다. 이처럼 동맹파업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의 규율을 만들어 갔으며 동시에 투쟁대상을 보다 분명히 인식할 수 있게 하여 노동자들의 의식을 변화시켰다.[10] 구로동맹파업은 1970년대 YH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투쟁이나 동일방직 노동자들의 명동성당 농성투쟁과는 질적으로 다른 노동운동의 위치를 보여주었다. 한국전쟁을 경과하며 변혁적 노동운동 세력이 제거된 뒤 새로이 ‘아래로부터 노동자투쟁’으로 출발한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정권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운 탄압과 종교계, 지식인 등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세력들의 영향 아래 있었다. 민주노조운동은 민주화운동 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그들의 생존권적 요구를 정치문제화시켜 해결하려 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경험으로 노동운동은 1970년대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향한 민주화운동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사회변혁을 지향했으며, 사회변혁운동을 위한 반독재 민주화투쟁을 전개했다. 이들은 사회변혁의 주체가 민중·노동자라는 인식을 분명히 했다. 1980년대 전반기 노동운동의 인식변화는 구로동맹파업을 통해 좀 더 구체화됐다. 동맹파업은 노동자들이 비타협적인 정치투쟁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며, 노동자들의 힘 있는 투쟁만이 민주화운동 세력의 지지와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구로동맹파업은 노동자들이 경제적인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서만 투쟁한다는 시각과 노동운동을 전체 운동의 한 부문운동으로만 파악하던 시각을 극복하고, 노동운동이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중심이며 사회변혁운동의 중심이라는 인식의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했다.[11] [1] 한겨레신문, 2016/11/03, 「54명 사망 삼청 교육…가해자들은 바로 풀려났다」. [2] 청계피복노동조합, 1981, 「호소문」.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40~41쪽에서 재인용) [3]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99~105쪽. [4]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257~263쪽. [5]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281쪽. [6]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288~296쪽. [7]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284~285쪽. [8]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285쪽. [9]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306쪽. [10]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475~477쪽. [11] 유경순, 2007, 『아름다운 연대 - 들불처럼 타오른 1985년 구로동맹파업』, 메이데이, 479~480쪽.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스리랑카·베트남 처녀 수입하자”는 막말, 진도군수만의 문제는 아니다!김희수 진도군수 김희수 진도군수가 생방송 도중 농촌 인구 소멸에 관해 “외국 처녀를 수입하자”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의 발언은 방송 3사에 생중계된 2월 4일 전남 해남군 해남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광주·전남 행정통합 찾아가는 타운홀미팅’에서 나왔다. “광주·전남이 통합할 때 인구 소멸에 대한 것을 법제화해서, 정 뭣하면 스리랑카나 베트남이나 그쪽 젊은 처녀들 좀 수입해갖고 농촌 총각 장가도 보내고, 이런 특별 대책을 해야 한다. 사람도 없는데 산업만 밤낮 살리면 그게 제대로 되겠냐”라는 발언이었다. 이주여성 노동자가 혼인과 출산 대행 상품인가! 진도군수의 발언은 이주 여성을 한 인간이자 노동자로서 존중하지 않고, 혼인과 출산을 위한 도구로 취급한 발언이다. 그것도 사람을 사고 파는, '수입 가능한' 상품으로 취급한 노골적인 인권 침해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진도군수의 말은 ‘처녀’라는 표현이 ‘결혼하지 아니한 성년 여자’, ‘남자와 성적 관계가 한 번도 없는 여자’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가 문제다. 그리고 사용 맥락 역시 여성을 가부장제적 인식에 기반해 젠더차별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더 문제다. 또 ‘수입하자’는 발언은 인간을 상품과 동일시하는 극단적인 비인간화다. 이는 단순히 ‘부적절한 표현’, ‘신중하지 못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 노동자 민중, 특히 평균소득이 낮은 나라에서 온 이주여성을 하위의 존재로 규정하는 위계의식에 기반한 혐오발언을 공적 자리에서 내뱉은 사건이다. 진도군수의 발언은 이주민의 인권과 존엄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이 발언은 여성을 노동력 재생산, 무급돌봄노동 도구로 규정하며, 특정 국적의 여성은 더 쉽게 통제하고 이용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을 재생산한다. 계급구조의 폭력성을 바탕으로 성차별·인종차별을 뒤섞은 억압을 정당화하는 발언이다. 가뜩이나 도시와 농촌의 사회적 격차로 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문화에다 다양한 공적 서비스 인프라가 부족한 농촌에서 이러한 가부장적이고 반동적 이데올로기는 결혼제도 안에서 발생하는 이주여성에 대한 통제와 폭력, 경제적 착취를 구조적으로 은폐한다. 불안정한 체류 자격과 열악한 노동조건, 생계와 송금 등 경제적 압박 속에서 폭력과 차별을 감내하는 결혼 이주민 여성을 보호하기는커녕 차별과 혐오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할 뿐이다. 군수 하나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 그런데 이 발언이 진도군수 공인 한 사람의 문제일까? 전국 25개 지방자치단체는 2025년 상반기가 되어서야 소위 “국제결혼 지원 조례”에 근거해 세금으로 ‘농촌 총각을 이주 여성에게 장가보내’는 결혼 비용 지원 사업을 폐지했다. 그동안 이는 농촌 인구감소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외국 여성을 사온다는 ‘매매혼’이자, 이주여성을 출산과 무급돌봄노동 도구로 취급하는 인권침해 정책이라는 여러 비판에도 거의 10년간 지속되었다. 최근에는 ‘이주여성 정착지원금’ 등으로 제도를 변경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주여성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인구대책 수단이자 상품, 농촌 총각 매매혼의 도구로 생각하고 동시에 농촌 비혼 남성을 이주여성 매입자(구매자)로 규정하는 관점은 한국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기인한다. 노동자 민중을 존엄한 인간이 아닌 도구로 여기는 체제, 가부장적 젠더차별, 성별분업 구조,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 유지되는 자본주의적 농촌 구조, 그리고 이주민을 ‘노동력’이나 ‘인구 대책’ 수단으로 활용해 온 국가의 반동적 이주정책이 결합한 결과다. 다시 말해 여성, 그 중에서도 더 열악한 처지인 아시아 이주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이번 발언을 가능하게 한 토대다. 젠더차별에 맞서는 노동자민중의 단결이 필요하다 이주 여성은 ‘수입’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사회 구성원이다. 여성과 이주민을 억압하는 구조를 철폐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도, 평등도 존재할 수 없다. 여성 노동자가 출산과 무급돌봄노동 도구가 아니듯, 이주여성 노동자는 농촌 인구감소나 결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국적과 인종, 젠더, 성별정체성과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우리는 같은 노동자이자 존엄한 삶과 노동을 영위해야 할 주체다. 노동자는 하나라는 대의로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확대재생산하는 인종차별에 맞서자. 한국 자본주의가 만든 지역 사회의 위기를 이주여성에게 떠안기고 이주여성의 존엄을 파괴하는 폭력을 중단하라! 이주민을 '값싼 노동력'으로 사고하는 관점이나 이주여성을 결혼과 출산의 도구로 사고하는 관점을 다르지 않다. 이미 한국 인구 20명 중 1명이 이주민이다. 국내 신혼부부 10쌍 중 1쌍은 다문화 가정*이다. 쇠퇴하는 자본주의, 자본과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노동자를 분열시키며 착취와 수탈을 강화한다. 진도군수의 발언을 비판한다면, 국적과 젠더를 활용한 차별에 맞서 노동자 단결을 확대하자. 그것이 노동자 내부를 가르는 저들에 맞서는 우리의 전략이다. *국가데이터처 ‘2024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 지난해 다문화 혼인은 2만 1450건으로 1년 전보다 1019건(5.0%)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2026년 1월 6일 발표) -
[그래, 다시 마르크스주의 연재#3]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역사적 유물론에 입각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운동 법칙을 집중 탐구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생산양식이 어떻게 발생해 소멸해 가게 되는지, 그리고 이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경제적 생산양식이 무엇인지를 다룬 것이 바로 마르크스 경제학설의 내용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세계를 설명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과학적인 대답이다. (1852년 《펀치》지에 실린 만화 '콜레라 왕을 위한 법정'은 런던 내 도시노동자계급의 비참한 환경을 묘사하고 있다. - 편집자 주) 3부.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1. 생산력: 인류 역사 발전의 원동력 출발점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이 고통스럽고 불안정한 삶에 내몰려 있다. 이것은 결혼과 출산마저 기피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의 뿌리는 무엇일까? 바로 먹고사는 문제, 즉 안정적이고 충분한 생활임금을 주는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다. 이는 경제 문제다. 마르크스 사상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마르크스의 사회 분석에서 출발점은 ‘생산’이다. 인간과 사회의 변하지 않는 제1의 필요는 다름 아니라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먹고사는 것을 만드는 것을 우리는 생산이라 부른다. 생산 방식은 늘 변해 왔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든 인간이 생활에 필요한 것을 생산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물론 이렇게 생산된 것을 어떻게 분배하느냐도 중요하다. 하지만 분배는 무언가 생산이 이뤄진 뒤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는다면, 분배 자체가 성립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회가 변화 발전하는 방향은 우선 생산에 맞춰진다. 분배가 어떻게 이뤄지든, 그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사회가 생산하는 양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생산의 크기는 결국 ‘생산능력(생산력)’에 좌우된다. 인류의 역사적 발전 법칙은 바로 이 생산력을 가능한 한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산력은 진공 상태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생산은 생산 과정에 존재하는 인간들이 맺는 사회적, 집단적 관계 속에서 이뤄진다. 이런 관계에는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관계, 생산물 사이의 교환관계, 생산물에 대한 분배관계 등이 있는데, 마르크스는 이것들을 종합해 ‘생산관계’라고 불렀다. 생산관계라는 형식 속에서 생산(능)력이 살아 숨 쉬는데, 이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일이 바로 ‘생산양식’이다. 그런데 생산력은 고정돼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 발전한다.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산력의 변화 발전이 일정한 수준, 단계에 도달하면, 이 생산력은 기존의 생산관계와 충돌한다. 내용(생산력)의 변화 발전은 기존의 고정된 형식(생산관계)과 충돌한다. 이것은 빠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몸(생산력)과 그 아이가 입고 있는 옷(생산관계)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아이가 성장(변화 발전)하면, 그동안 아이의 몸에 딱 맞았던 옷이 아이의 몸을 조이기 시작한다. 결국 아이가 제대로 성장하려면, 작은 헌 옷을 버리고 큰 새 옷으로 바꿔 입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옷 때문에 아이는 고통받게 되며, 언젠가 아이의 몸은 헌 옷을 찢게 될 것이다. 물론 후자의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현명한 부모라면 그런 상황이 닥치기 전에 아이의 성장 속도에 맞게 더 큰 새 옷을 입힐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의 발전 과정, 즉 생산력의 발전 과정은 그것과는 달리 대단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생산력의 성장 단계에 발맞춰 기존의 생산관계를 새로운 생산관계로 대체하는 것을 결연하게 막아야 하는 반동 세력 즉, 인류의 사회적 발전을 가로막아야 하는 반동 세력 때문이다. 바로 기존의 생산관계 속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겨 왔던 낡은 지배 계급이다. 낡은 반동 지배 계급은 새로운 생산관계가 사회에 자리 잡아 인류의 생산(능)력이 더욱 높은 수준으로 발돋움하는 것에 저항한다. 개인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서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 저항을 분쇄해 새로운 생산관계를 창조함으로써 인류의 진보에 길을 터 주고 촉진하는 것, 바로 이것이 ‘사회 혁명’이다. 인류 사회는 생산력의 성장에 족쇄를 채우는 낡은 생산관계를 버리고, 생산력 발전에 조응하는 새로운 생산관계를 채택하는 방향으로 전진해 왔다. 이것이 마르크스가 규정한, 인류 사회의 혁명적 변화 발전의 뿌리였다. 생산력 옷, 쌀, 자동차, 배, TV, 컴퓨터, 휴대폰, 약, 학교 등 의식주를 비롯한 생존 수단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다음 두 조건을 갖춰야 한다. Ι. 토지, 원료, 기계, 도구, 작업장 ─ 즉 생산수단이라고 부르는 것. ΙΙ. 노동력 ─ 생산수단에 자신의 힘과 기술을 사용해 유용한 것을 생산하는 노동자. 생산수단과 노동력은 생산력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두 요소다. 이 두 조건이 결합해야 비로소 생산이 이뤄진다. 생산수단만으로는 생산할 수 없다. 자동차 공장을 예로 들면, 아무리 우수한 작업 도구와 잘 정비된 조립 라인이 있더라도 노동자가 조립 노동에 나서지 않으면 즉, 노동(능)력이 결합되지 않으면 자동차를 만들 수가 없다. 이것은 노동자가 일을 멈추는 파업을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노동력이 준비돼 있더라도, 작업장과 기계, 도구 같은 생산수단과 결합하지 못하면 자동차를 만들 수 없다. 이것은 해고돼 생산수단으로부터 강제로 격리된 노동자들이 아무것도 생산할 수 없는 것에서 드러난다. 가장 단순하게 접근하면, 생산이란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결합하는 것, 그래서 유용한 가치를 가진 생산물이 만들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모든 사회에 공통된다. 각각의 사회를 구분하는 것은 우선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질적 차이다. 돌도끼나 낫 같은 생산수단을 사용하는 사회와 거대한 컨베이어나 자동 선반 같은 생산수단을 사용하는 사회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회가 된다. 원시인의 노동력과 잘 숙련돼 있고 여러 고급 기술과 기계를 사용하는 현대 노동자의 노동력 사이에는 거대한 질적 차이가 있다.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결합해 구성되는 생산(능)력의 질적 차이로부터 각각의 사회는 질적으로 구별된다. 더 진보한 사회과 덜 발전한 사회를 나누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생산력의 질적 차이다. 크게 볼 때 인류 사회는 원시 공산제 생산양식, 노예제 생산양식, 봉건제 생산양식,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 질적으로 이행해 왔다. 2. 소유관계와 분배관계 다음으로 각각의 사회를 구별하는 것은 생산관계의 상이성이다.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결합하는 것은 특정한 생산관계 아래에서 이뤄진다. 소유관계, 교환관계, 분배관계를 포괄하는 이 생산관계에서 일차적 규정력을 발휘하는 것이 ‘생산수단에 대한 소유관계’다. 가령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과 노동력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한편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유산자 계급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하고, 단지 노동(능)력만 갖고 있는 무산자 계급이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소유관계 아래에서는 생산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 생산수단을 소유한 유산자 계급인 자본가 계급은 다른 사람들을 임금노동자로 고용해서 자신을 위해 일을 시킬 권리를 얻는다. 반대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무산자들인 노동자 계급은 노동력 제공을 조건으로 해서만 비로소 생산수단과 결합할 기회 즉, 취업의 기회를 얻는다. 이렇게 생산수단은 자본가 계급이 소유하고, 노동력은 노동자 계급이 소유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에서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결합해 생산이 이뤄지는 체제가 바로 자본주의 경제 체제다. 이것은 생산 과정에 자신을 각인한다. 자본주의 소유관계에서 이뤄지는 생산 과정은 생산수단의 소유자인 자본가가 가진 것은 단지 몸뚱이(즉 노동력만 가진 무산자)인 노동자를 마음대로 부려 먹고 착취하는 과정이 된다. 그 결과 생산 과정(노동 과정)은 생산수단과 노동력이 결합해 재화와 서비스가 생산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자본가가 노동자를 쥐어짜서 잉여가치(이윤)를 창출하는 잔인한 착취의 과정이게 된다. 개별 소농민이 자기 소유의 밭에서 스스로 일하는 과정은 단순히 일(생산)하는 과정일 뿐이지만, 노동자가 자본가 소유의 작업장에서 일하는 과정은 생산하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착취하는 과정이자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착취당하는 과정이다. 교환 과정과 분배관계 이러한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을 통과해 만들어진 생산물은 이제 자본주의적 교환 과정 및 분배 과정으로 들어간다. 자본주의 (상품)교환관계에서는 평등한 등가교환의 원리가 작동한다. 동일한 교환가치를 가진 상품은 동등한 화폐가격으로 서로 교환된다. 시장에서 200만 원에 팔리는 200만 원짜리 오디오 1대를 가정해 보자. 200만 원을 손에 쥔 사장은 이걸로 200만 원 어치 부품, 재료를 다른 사장들로부터 구입할 수 있을 뿐이다. 때로는 더 싸게 구입할 수 있고, 때로는 더 비싸게 구입할 수도 있겠지만, 긴 기간 평균 가격을 따져 본다면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분배관계는 어떨까? 시장에서 판매된 생산물(상품)은 자본가 계급 수중에 화폐로 돌아간다. 이 화폐는 어떻게 분배되는가? 일부는 부품이나 원료, 설비, 도구 등을 다시 구입하는 데 들어간다. 그 뒤 남은 돈으로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분배가 일어난다. 자본가는 노동력 공급자인 노동자와 계약을 맺은 돈을 임금으로 지급한다. 이 임금을 제외한 나머지가 자본가의 이윤이 된다. 이렇게 노동력에 해당하는 가치(임금)와 이걸 제외하고 남은 자본가의 이익(이윤)이 자본주의 분배관계의 핵심이다. 노동자는 노동력의 가치를 임금으로 분배받고, 자본가는 노동자가 생산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 낸 전체 노동의 가치 중 이 임금을 제외한 나머지 가치를 이윤으로 챙긴다. 이런 분배관계의 결과는 무엇일까? 임금은 노동자 가족이 한 달 벌어 먹고사는 데 급급한 낮은 수준에 불과하다. 기껏해야 약간 남은 돈은 질병이나 노후, 아이들 학비를 대비해서 모아 두어야 한다. 결국 노동자들은 임금노예의 지위를 넘어설 수 없다. 작업장, 기계 등 생산수단을 구입해 유산자가 되는 길은 봉쇄돼 있다. 한 달에 100만 원도 저축하기 힘든 노동자들이 어찌 수백억, 수천억, 수조 원의 생산수단의 소유자가 될 수 있겠는가? 반면 기존의 거대한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에 더해, 자본가들은 새롭게 확보한 이윤으로 추가 투자를 함으로써 갈수록 더 거대한 생산수단을 소유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눈덩이처럼 커진, 거대한 생산수단을 노동자들이 소유할 수 있는 길은 완전히 닫힌다. 그래서 자본주의 소유관계는 더욱 확고해진다. 더 많은 노동자들이 더욱 완전하게 자본주의 착취관계에 빨려들어 간다. 이것은 분배에서의 불평등을 더욱 가속화한다. 이렇게 소유관계 → 분배관계 → 소유관계 → 분배관계로 이어지는 확대 순환의 고리 속에서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더욱 탄탄해진다. 3. 잉여가치의 본질 잉여가치(이윤)는 어디서 발생할까? 어느 지점에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일어나고, 그 결과 자본가들이 잉여가치를 창출하게 될까? 교환 과정은 아니다. 여기서는 하나의 상품이 동일한 교환가치를 가진 다른 상품과 화폐를 매개로 교환될 뿐이다. 그렇다면 분배 과정일까? 그렇지 않다. 정상적인 경우 분배는 계약에 의해 정당하게 이뤄진다. 노동자들은 자본가와 맺은 임금계약에 따라서 임금을 분배받는다. 이 임금계약서는 계약한 임금을 정상 지급한다면, 나머지 이익금을 사장이 가져가는 것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 임금계약은 내용적으로는 부당한 것이다. 동등한 두 주체가 맺는 계약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맺은 불평등한 계약이기 때문이다. 입사하는 노동자는 사장에게 ‘내가 일해서 창출한 가치만큼 전액을 임금으로 지급하라.’고 요구하지 못한다. 그러면 사장은 단번에 입사계약을 거부할 것이다. 계약은 전혀 다르게 진행된다. 몸뚱이, 즉 노동(능)력만을 소유하고 있는 노동자는 생산을 해서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생산수단과 결합해야만 한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사장은 절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서 계약서를 내민다. “네가 노동을 통해 얼마만큼의 가치를 창출하느냐는 임금계약에서 결코 중요하지 않다. 나는 네가 노동을 통해 창출한 가치 전체를 줄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면 나에게는 이익(이윤)이 남지 않는다. 나는 오직 네가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수준의 임금만을 줄 것이고, 나머지는 내가 가져갈 생각이다. 이것에 동의하면 임금계약서에 사인해라. 그렇지 않으면 취업을 포기하라!” 실업자로 떠돌지 않으려면, 노동자는 이런 불평등한 계약서에 사인해야 한다. 그렇게 됨으로써 부당한 착취적 분배관계가 평등한 자유계약으로 둔갑한다. 이렇게 부당한 분배관계가 작동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생산의 두 요소 중, 생산수단을 전적으로 극소수 사장들이 독점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바로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 즉, 소유관계에 있다. 개별 노동자 수준에서 접근한 이러한 상황은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집단적 임금계약을 맺더라도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강력한 노동조합이더라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수행한 전체 노동의 가치를 임금으로 달라고 강제하기 어렵다. 단지 착취의 강도를 낮춰, 잉여가치를 줄이는 대신 노동자가 가져가는 임금 비율을 높일 수 있을 뿐이다. 만일 잉여가치를 크게 줄여 버리면,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이유가 사라진 자본가들은 차라리 회사 문을 닫아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 체제는 그것을 구조적으로 강요한다. 잉여가치를 충분히 뽑아내지 못해서 자본 투자를 줄이는 자본가는 언젠가 경쟁에서 밀려 몰락할 것이고, 이것은 그 자본가와 계약을 맺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실업이라는 거대한 재앙을 선물한다. 이것은 모든 노동조합에 대한 근본적 압력이 된다. 그 결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개의 노동조합 투쟁은 착취 자체를 철폐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정상적인 임금이라도 강제하는 의미를 갖는다. 물론 이것은 자본주의 철폐를 향해 단호하게 진격하지 않는 노동조합이라는 한계 내에서 그렇다. 노동자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착취를 철폐하려는 노동조합이라면, 자본주의 경쟁 압력을 뛰어넘어 전체 노동자 계급의 총단결을 추구해야 한다. 그 결론은 자본주의 소유관계를 모든 생산수단을 생산자 자신이 집단적으로 공동 소유하는 사회주의로 대체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전망이 모든 노동조합이 추구해야 할 미래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에게 임금 투쟁은 사활을 걸 만큼 중요하다. 임금 투쟁을 통해서만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정상 임금이라도 강제할 수 있으며, 다른 무엇보다도 자본주의를 철폐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 힘, 단결, 의식을 키워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지속적이고 전투적인 임금 투쟁을 통해서만, 그리고 임금 투쟁의 연장선에 있는 노동 시간 단축 투쟁, 노동 강도 완화 투쟁을 통해서만 노동자 계급은 사회주의를 향한 학습, 토론, 조직화를 이룰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여유를 쟁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생산 과정 ─ 노동자 착취 과정 내용적으로 볼 때 부당한 임금계약이 이뤄졌더라도, 그 자체로 잉여가치가 바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빼앗기 위해서는 먼저 빼앗을 것이 있어야 한다. 잉여가치 또한 생산 과정에서만 창조된다. 유산자와 무산자로의 분할이라는 자본주의 소유관계에서 출발한 ‘부당한 계약’은 작업장에서 이뤄지는 생산 과정에서 비로소 집행된다. 모든 가치가 창조되는 생산 과정에서 자본가들은 임금, 즉 노동력 재생산 비용에 해당하는 가치가 창출되는 노동 시간(이것을 마르크스는 ‘필요 노동 시간’이라고 불렀다)을 넘어서는 추가 노동을 하도록 노동자에게 강요한다. 이 추가 노동에 대해서 자본가들은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자신이 챙긴다. 이것이 바로 이윤의 원천이다. 이처럼 노동자들이 공짜로 자본가들에게 갖다 바치는 추가 노동 시간을 마르크스는 ‘잉여노동 시간’이라 불렀다. 가령,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자기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창출하는 시간이 주 20시간이라고 하자. 그런데 취업계약서에 주 40시간이 명시돼 있다면, 나머지 주 20시간의 노동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서 노동자들은 자신을 위해 노동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를 위해 노동하는가? 바로 자본가들을 위해서다. 이 공짜노동이 잉여가치를 낳는데, 이것이 모든 자본가 계급의 이윤의 원천이다. 자본가들 사이에서 여러 복잡한 과정을 거치더라도, 이렇게 생산 과정에서 창출되는 잉여가치가 모든 자본가들이 나눠 가지는 이윤의 원천이다. 그렇기에 마르크스는 모든 사회에서 생산 과정은 유용한 가치가 창출되는 과정이지만, 동시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 과정은 노동자에 대한 자본가의 착취가 자행되는 무자비한 착취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마르크스가 “모든 생산물은 그것에 투입된 사회적 평균 노동 시간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 가치의 어머니는 바로 노동이다.”라는 ‘가치 법칙’을 발견한 최초의 인물은 아니었다. 자본주의 경제학자였던 리카도가 그것을 먼저 발견했다. 하지만 리카도는 잉여가치 즉, 착취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감추려고 했다. 왜냐하면 그는 자본가 계급의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잉여가치 앞에서 도망쳐 버렸다. 반면 마르크스는 리카도의 가치 법칙을 계급적 편견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잉여가치를 최초로 발견했다. 이것은 노동자 운동에 대한 마르크스의 최고의 공헌이었다. 착취가 왜 발생하는지 즉, 왜 노동자들은 가난하고 자본가들은 갈수록 부자가 되는지에 대해서, 나아가서 가만히 놔두면 자본주의는 왜 필연적으로 자본가 계급의 왕국을 건설할 수밖에 없는지를 명확히 밝혔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밝힌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 법칙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자본주의 불황기와 공황기에 노동자들은 실업과 더 낮아지는 임금에 신음한다. 반면 자본주의 호황기에 노동자들은 잠시 어느 정도 안정된 일자리와 임금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노동자들은 엄청난 잉여가치를 자본가들에게 갖다 바쳐 노동자들을 칭칭 감고 있는 임금노예의 사슬의 길이를 빠르게 늘려야 한다. 잉여가치(이윤)가 빠르게 추가 투자됨으로써 자본가들은 더 거대한 생산수단을 자신의 수중에 축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산자와 유산자 사이의 깊이 파인 골은 더욱 깊어지고, 노동자들은 헤어날 수 없는 더욱 깊은 착취의 수렁으로 굴러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로부터 벗어날 길은 딱 하나다! 노동자 계급 전체에 의한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 즉, 사회주의!” 4. 약탈 경제, 그리고 증가하는 모순 기계제 대공업의 발전으로 공장이 널리 확산됐지만, 이렇게 비약적으로 발전한 사회적 생산력의 성과는 생산자(노동자)들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집단적, 사회적 노동의 성과들은 공장 플랫폼 소유자인 자본가들이 독점했다. 게다가 자본가의 수중에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수많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강도 높고 위험한 노동으로 내모는 강력한 무기가 됐다. 플랫폼 자본가는 산업 사회에서 사회적, 집단적 노동의 성과를 자본가가 독점해 이윤으로 흡수했듯이, 디지털 플랫폼 공유경제의 성과 또한 독점해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고 있다. 이른바 정보통신 플랫폼이 확산하면서 발생하는 효과는 디지털 중앙 플랫폼을 독점하고 있는 자본가에게 주로 귀속된다. 그에 따라 MS, 구글 등의 뒤를 이어 새로운 거대 신흥 자본의 배출구로 디지털 플랫폼 산업이 부상하고 있다. 또한 공장 플랫폼이 수많은 소생산자들을 몰아내고 임금노동자로 둔갑시켰듯이, 디지털 중앙 플랫폼은 택시, 숙박업, 택배, 화물운송, 돌봄 노동 등에서 수많은 소생산자들을 사실상 자기 휘하에 종속시키고 임금노동자로 전락시키고 있다. 플랫폼 기업이 운영하는 정보 플랫폼(거대 앱)을 공유하고, 심지어는 이 플랫폼에 정보를 공급하는 필수적 주체는 바로 이용자들 즉, 사회다. 이처럼 정보의 생성자들은 수많은 이용자들이지만 그 정보는 결코 ‘공유’되지 않고, 플랫폼 기업에게 ‘독점’된다. 정보통신 기술과 과학을 발전시킨 것은 사회지만, 그 결과물은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플랫폼 기업에 의해 이윤 창출의 도구로 독점된다. 노동의 사회적 결합, 그리고 이용자와 생산자 사이의 사회적 결합을 통해 더 진전된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하며 생산능력을 발전시키는 사람들은 플랫폼 산업의 노동자들이지만, 그 결과물은 플랫폼 자본에 의해 독점된다. 플랫폼이란 기술 장치를 통해서 거래되는 유휴자원의 효율적 관리와 배치, 상호교환, 나아가서 정보공유 플랫폼을 통한 생산성 증대와 비용 절감 등 대부분의 경제적 효과들이 ‘공유’되지 않고, 플랫폼 기업 수중에 ‘집중’, ‘독점’되어 상품으로 가공된다. 이처럼 정보가 플랫폼을 통해 공유되기는 하지만, 공익적 효과가 거의 없는 것이 오늘날 ‘공유경제’의 민낯이다. 디지털 플랫폼 산업에서 자본은 과거 산업자본처럼 상당한 규모의 초기 자본조차 투입하지 않는다. 가령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플랫폼 기업은 거대 독점체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큰 자본을 투입하지 않았다. 단지 정보의 망을 (총자본의 크기에서 보면 별것 아닌) 중앙 정보 플랫폼 장치를 통해 연결했을 뿐이고, 그 작업을 ‘선점’했을 뿐이다. 통상적으로 산업 자본이 투입하는 임금 비용이나 토지매입 비용, 설비투자 비용 등이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게는 거의 생략된다. 과거 산업 자본은 ‘투자한 자본에 대한 대가’라는 명분으로 이윤을 정당화하려 했다. 디지털 플랫폼 기업은 그런 알리바이조차 댈 수 없게 됐다. ‘초기 투자 자본’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공유경제라는 말은 그런 딱한 처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디지털 플랫폼 산업에서는 거의 손 하나 안 대고, 사회적 공유 성과를 도둑질해 가고 생산자들을 수탈하는 자본의 약탈적 성격이 도저히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과 과학, 생산자들과 이용자들의 연결망과 이것을 통해 교환되는 거대한 정보는 모두 사회적 공유재산이다. 누구도 이것을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회적 범죄다. 하지만 플랫폼 자본은 중앙 플랫폼을 통해 정보 연결망을 독점해, 사회적 공유재산을 사유화한다. 이것은 IT 분야의 선조인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다음 등의 독점 대자본이 형성됐던 과정이기도 했다. 이 선조의 뒤를 따라 지금 플랫폼 산업은 모든 영역으로 가지를 뻗어 가고 있다. 게다가 이들은 택시, 자가용, 트럭 등을 한 대도 보유하지 않고도, 또한 단 한 평의 땅도 사용하지 않고서도 엄청난 이윤을 뽑아 간다. 따라서 본원적 자본 즉, 초기 투자 자본의 권리조차 플랫폼 대자본은 감히 주장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가 플랫폼 산업에 붙인 ‘공유경제’란 딱지는 한편으로는 비열한 위선이자 사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다. 공유경제! 맞다. 이것은 철저히 공유경제다. 그렇다면 공유의 성과는 사회 전체가 가져가야 하고, 특히 플랫폼 산업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모든 노동자 민중이 가져가야 마땅하다. 이를 통해 플랫폼 자본이 사회적 공유경제의 효과를 독점해 자신의 이윤으로 착복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원천 봉쇄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이 정보통신 기술과 플랫폼을 통해 발전하는 사회적 노동의 효과를 노동자 계급을 비롯해 전체 사회구성원에게 돌려줄 수 있는 유일한 전망이다. 이 전망은 국가가 한 줌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대신, 사회구성원 다수의 생존을 지키고자 한다면 간단한 조치만으로도 즉각 실행할 수 있다. 가령 국가가 중앙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이미 국가 전산망을 통해 사회 구석구석까지 서로 연결되는 엄청난 플랫폼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유화된 중앙 플랫폼을 무기로 삼는다면, 점차 이를 중심으로 해당 산업 전반을 장악하고 사회화해 가는 빛나는 전망이 열릴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소유관계와 이것을 반영하는 자본가 국가는 그러한 전망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 자본가 소유를 채워 넣는다.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생산력과 이것을 사유화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 사이의 충돌은 플랫폼 경제의 확대 속에서 더욱 격렬하게 나타난다. 나아가서 성장하는 생산력과 낡은 생산관계 사이의 충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치명적인 모순을 잉태한다. 발전하는 생산력은 사회적 성격을 띠지만, 자본주의 생산관계는 갈수록 그것과 격렬하게 충돌한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이다.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성장하는 사회적 생산력을 더 이상 제대로 담을 수 없게 되는데, 이것은 생산력 발전에 엄청난 장애가 된다. 장기불황과 공황이 그 단적인 증거다. 자본주의 체제의 반동성을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 ─ 공황과 장기불황 공황을 살펴보자. 공황의 양상은 어떤 것인가? 공황이 발생하면 수많은 생산설비와 노동력이 쉬게 된다. 기계는 지금 당장이라도 굉음을 내면서 수많은 생산물을 토해 낼 수 있지만, 가동되지 못한다. 수많은 원료가 썩거나 폐기 처분되고, 기계는 녹슨다. 엄청난 숫자의 노동자들이 일하기를 갈망하지만, 실업자로 떠밀려 생산에서 배제된다. 이것은 명백히 생산(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생산설비와 같은 생산수단이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노동자가 문제인 것도 아니다. 기계는 스위치만 누르면 바로 가동될 수 있는 상태고, 노동자의 노동능력도 아무 문제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엄청난 생산능력을 파괴하고 있는가? 바로 자본주의 생산관계다. 자본주의 생산관계의 본질은 자본-임노동 관계다. 즉, 생산수단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 계급이 자신의 이윤을 증대시키기 위해 무산자인 노동자들을 임금노예로 고용해 착취하는 방식으로 생산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러한 생산관계에서 생산의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자본가의 이윤을 증식시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생산의 유지, 확대, 축소 여부가 결정된다. 공황을 세부적으로 들여다본다면, 결국 공황은 다수 자본가들이 생산을 축소시킨 결과 발생한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생산을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것이 자신의 이윤 증식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심지어는 거대한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이 뒤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하지만 장기불황과 공황을 통해서, 다음의 점은 이미 충분히 드러났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이미 사회의 생산(능)력 발전과 충돌하기 시작했다는 점, 따라서 인류의 진보를 위해서는 이제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철폐할 시기가 되었다는 점!” 5. 생산의 사회적 성격의 확대 지금까지 이어진 인류 보편적 모순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모순은 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의 충돌에서 비롯한다. 다만 이 충돌이 도달한 역사적 발전 단계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은 기존에 존재했던 다른 사회 체제의 모순과는 구별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등장하고 발전하며 보편화되는 생산력은 바로 ‘사회적’ 생산력이다. 사회적 생산력이란 간단하게 말하면, 생산이 개인적 필요와 욕구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와 요구에 따라 이뤄진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의 결과물을 대표하는 것이 ‘상품’이라는 점이 그것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자본주의 이전에도 상품교환이 일어났지만, 생산물을 대표하는 것이 상품은 아니었다. 주요한 경제활동은 판매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생산(능)력이 너무나 낮은 수준에 머물렀으므로 빼앗길 만한 잉여노동 자체가 아주 클 수가 없었다. 이 잉여노동이 만들어 낸 재화 중에서 노예주나 지주가 소비하는 몫까지 제외한다면, 시장에서 판매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상품으로 교환될 수 있는 것은 주로 이 잉여노동 시간에서 발생했다. 자신과 가족이 먹고사는 데 직접 필요한 것들은 결코 상품으로 시장에 나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노예와 농노의 잉여노동에서 발생한 잉여생산물의 경우도, 그것의 대부분은 노예주와 봉건영주, 봉건지주의 호의호식을 위해 사용됐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상품은 사회의 총생산물에서 작은 일부일 수밖에 없었다. ‘타인에게 판매하기 위해 생산하는 생산물’ 즉, ‘교환 자체를 위해 생산하는 생산물’인 ‘상품’이 사회의 총생산물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역사적 발전에 의해 다른 전제조건들이 창출돼야 했다. 기계제 대공업과 집단적 생산 우선 생산능력이 획기적으로 발전해야 했다. 그래서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생산하는 자급자족 수준을 넘어서는 잉여생산물이 큰 규모로 발생해야 했다. 그리고 이 잉여생산물은 착취자의 호화 소비 규모를 넘어설 정도로 충분해야 했다. 이렇게 생산능력이 발전해 타인에게 판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생산되는 생산물이 충분하게 발생할 때 시장교환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다. 다음으로 노동 분업이 본격화해야 한다. 노동 분업이란 각각의 생산자가 생산하는 생산물의 종류를 다르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생산물은 자기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필요와 요구를 충족하기 위한 것이 된다. 자연스레 생산물 사이의 교환이 필수적이게 되고, 그렇게 해서 생산물은 상품으로 전화한다. 이러한 생산능력의 획기적인 발전 및 노동 분업의 본격화를 가능케 했던 것이 바로 기계제 대공업의 등장이다. 봉건 사회 말기에 일어났던 노동 분업은 도시 수공업과 농촌 소규모 생산 사이의 분업이었다. 소농민들은 식량을 생산하고, 이것의 일부를 도시 수공업자들이 생산한 농업 도구들과 교환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환이 확대됐지만, 그럼에도 상품으로 교환되는 생산물은 전체 생산물 중 작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기계제 대공업이 도시에서 발전하면서, 이런 상황은 급격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계제 대공업은 엄청난 양의 생산물을 전적으로 판매를 목적으로 생산했다. 그것과 연관된 다양한 새로운 산업 부문의 등장(가령 철도)은 사회적 노동 분업을 가속화했다. 자급자족적이고 소규모였던 농업 생산의 비중은 급속히 줄어들었고, 판매 자체를 목적으로 생산하는 공업 생산의 비중이 빠르게 높아졌다. 농업 생산도 빠르게 판매를 위한 생산으로 재편되어 갔다. 그와 함께 생산 방식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생산은 소농민이 자기 논과 밭에서 자기 소유의 농업 도구를 가지고 가족과 함께 일하는 ‘소생산 방식’과는 질적으로 달라진다. 거대한 공장에서 수백, 수천, 수만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 생산하는 집단적 생산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 또한 그 공장에서 노동자들은 각기 다른 종류의 노동에 종사하는 여러 분야의 노동자들로 나뉜다. ‘사업장 내 노동 분업’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이제 노동자들은 ‘이것은 내가 생산한 것’이라고 도저히 말할 수 없게 된다. 가령 자동차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라면, 이 노동자는 ‘이 자동차는 수천, 수만 명의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생산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도 더 이상 진실이 아니다. 자동차 조립공장에 부품을 보내는 수십만 부품업체 노동자들, 자동차 차체와 부품에 들어가는 철강을 가공하고, 플라스틱과 오디오, 전선, 페인트를 제공하는 연관 산업의 수백만 노동자도 고려해야 한다. 심지어는 저 철강과 플라스틱의 원료를 공급하는 칠레의 철광석 노동자, 중동의 석유 산업 노동자도 감안해야 한다. 결국 이것이 진실이다. “이 자동차는 수천만, 수억 세계 노동자의 협력으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생산은 집단적 방식으로 이뤄질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전 세계적, 사회적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대규모 시장 한두 명, 기껏해야 몇 명에 의해 수공업적으로 이뤄지던 생산이 기계에 기반한 수백, 수천 노동자의 집단적 생산으로 대체됐다. 기계제 대공업을 통해 집단적 생산이 전면화함으로써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이 일어났다. 수공업 생산에 비한다면 기계제 대공업의 1인당 생산량은 비교 불가능할 만큼 엄청나게 증대했다. 그것은 ‘대규모 시장’을 요청했다. 우선 기계제 대공업은 엄청난 양의 원료가 필요했고, 이것은 원료에 대한 대규모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을 요청했다. 또한 기계를 만들어 내는 자본제 생산 분야와 기계를 사용해 생활수단을 만들어 내는 소비재 생산 분야 사이에 거래가 필요했다. 엄청난 양의 최종생산물 또한 바로 그만큼의 거대한 판매처를 요청했다. 이러한 대규모 시장 없이는 기계제 대공업의 발전이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기계제 대공업으로 아무리 많은 양을 생산하더라도, 결국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는다면 무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좁은 지역 사회를 넘어선 전국적 시장교환, 나아가서 세계 차원의 시장 거래를 요구했다. 그것은 철도, 트럭, 선박 등을 활용한 신속하고 대규모적인 물류 운수 산업이 뒷받침돼야 가능했다. 이것은 몇십 년 동안 아직 상용화되지 못한 채 창고에 처박혀 있던 와트의 증기기관을 세상에 불러냈다. 이 증기기관을 장착한 철도가 굉음을 울리면서 대륙을 횡단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규모 시장이 형성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물류 산업이 빠르게 확대되자 이것이 기계제 대공업에 반작용을 가해, 기계제 대공업은 더욱 강하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이렇게 생산과 물류, 시장이 서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맞물려 들어가면서, 대다수 생산물이 상품으로 존재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빠르게 확립돼 갔다. 그 본성상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개별 국가를 넘어 전 세계 시장을 향해 뻗어 갔다. 생산은 국가적 성격을 벗어던지고 세계를 향해 확장했고, 이것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를 세상에 토해 냈다. 6. 사회적 생산력과 충돌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 바닷물 한 방울에는 대양의 모든 성분이 포함돼 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상품에는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이 응축돼 있다. 상품은 사회적 생산과 교환의 산물이다. 몇 가지 측면만 살펴도 그 점은 너무나 분명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우선 상품은 자신과 가족의 생존수단으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다. 상품은 ‘사회적 사용가치’ 즉, 타인들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생산된다. 다음으로 상품의 교환가치는 그것의 생산에 투입한 ‘사회적으로 평균적인 노동시간’에 의해 측정된다. 여기서는 ‘주관적 척도’가 아니라, ‘사회적 척도’에 의해 생산자의 노동 가치가 측정된다. 개별 생산자가 10시간의 노동을 투입했더라도, 만약 이 상품 제작에 투입되는 사회적 평균 노동 시간(이것은 평균적인 숙련도와 노동 강도, 기술조건, 기계화.자동화 정도를 기준으로 측정된다)이 9시간이라면, 이 상품은 9시간어치의 교환가치만을 갖게 된다. 이 두 가지 측면이 보여 주는 것은 노동(생산)의 성격이 ‘사회적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물론 상품 생산이 존재하는 모든 사회에서는 이러한 ‘사회적 노동’이 존재했다. 그러나 전체 생산물 중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낮았다. 이것은 자본주의 이전의 사회에서 노동은 아직 충분히 사회적 성격을 띠지 못했음을 보여 준다. 원시 공산제의 경우 집단적, 공동체적 노동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그것의 범위는 부족 수준의 아주 제한된 공간을 넘어서지 못했다. 게다가 원시 공산제 사회에서는 아직 사적 소유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생산물이 상품의 형태를 취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면 상품교환의 확대에서만이 아니라, 생산 과정 자체에서 노동의 성격이 질적으로 변화한다. 기계제 대공업의 발전에 따라, 생산 자체가 이미 ‘개별적 노동’이 아니라 ‘집단적 노동’의 성격을 띤다. 나아가서 생산은 개별 작업장의 수준을 넘어서서, 전 세계 차원 생산의 사회적 연결망 속에서 이뤄진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이처럼 작업장 내에서든, 전체 사회적 차원에서든 노동(생산)에 ‘집단적·사회적 성격’을 깊이 각인했다.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생산력은 비로소 ‘사회적’ 단계에 도달했다. 이처럼 생산력은 ‘사회적, 집단적, 세계적 생산력’이라는 성격을 띠게 되고, 또한 그 성격은 갈수록 더욱 강화되지만, 생산관계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우선 ‘소유관계’ 측면에서 보면, 생산은 노동자들의 전 세계적 협동 노동 및 사회적 노동 분업을 통해 이뤄지지만 소유권은 여전히 극소수 자본가 계급이 장악하고 있다. 이것은 ‘분배관계’를 규정한다. 자본주의 분배관계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이라는 형태로 노동력의 가치만 준 뒤, 나머지 노동은 자본가들이 공짜로 가져가 이윤으로 착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배관계는 생산수단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소수 자본가들의 수중에 집중되게 함으로써 자본주의 소유관계를 더욱 강화한다. 이렇게 강화된 소유관계는 자본주의 분배관계를 더욱 강화해, 갈수록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 사이의 부의 불평등을 키운다. 결국 사회적 생산력과 부르주아적 소유관계, 분배관계 사이에 충돌이 커져 간다. 그리고 충돌은 성장하는 사회적 생산력이 토해 내는 막대한 생산물을 더 이상 자본주의 사회가 소화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기도 한다. 생산과 소비 사이의 충돌이 바로 그것이다. 자본주의 소유관계, 분배관계는 소비의 한계를 만들어 낸다. 자본주의 소유관계에서 노동자들이 분배받는 몫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에 따라 노동자들의 상품 구매량은 그보다는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생산량을 결코 쫓아갈 수 없다. 이러한 양상은 결국 파국에 이른다. 시장에서는 팔리지 않는 상품들이 범람해, 불황과 공황이 발생한다. 그 결과 멀쩡한 기계와 작업장이, 수많은 노동자들이 더 이상 생산에 투입되지 못한다. 수많은 공장이 문을 닫거나 가동률을 낮춘다. 자본주의 생산력은 비틀거리고, 쪼그라들면서 후퇴한다. 자본주의 소유관계, 분배관계가 더 이상 포용할 수 없을 만큼 웃자란 사회적 생산력은 결국 폐기 처분된다. 생산력은 성장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가 허용하는 좁은 테두리에 갇히거나 심지어는 파괴된다. 다음으로 ‘교환관계’의 측면에서 보면, 생산이 이미 사회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음에도, 교환은 시장에서 상품교환을 매개하는 무정부적 방식으로 이뤄진다. 생산력과 교환관계는 서로 격렬하게 충돌한다. 성장하는 사회적 생산력은 생산물 사이의 교환이 계획적으로 잘 이뤄지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래야만 전 세계적으로 짜인 거대한 사회적 노동 분업망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필요량이 정확히 측정되고, 그에 맞춰 자동차 산업 및 연관 산업의 전반적인 생산계획이 세워져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교환관계는 그것을 전적으로 시장에서의 상품교환에 내맡겨 버린다. 그 결과 자본주의 생산은 무계획적 방식으로 집행된다. 자동차가 시장에서 얼마나 팔리게 될지, 그에 따라 전반적인 생산계획이 어떻게 짜여야 하는지를 전혀 가늠하지 못한 채 생산이 이뤄진다. 모든 것은 시장에서 교환이 일어난 다음에야, 확인된다. 시장에서 판매되지 않는 상품들이 흘러넘치기 시작한 뒤에야, 자본가들은 생산의 축소를 결정한다. 이러한 무계획적 생산 방식은 자본가들에게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 결과 자본가들은 시장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예견하면서 파산이나 손해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를 분석하고 시장 상황을 예측하는 기구들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킨다. 그럼에도 무계획적 생산이 불러오는 파국에서 그들이 자유롭게 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이런 위험을 경쟁하는 자본가들에게 전가시키기 위해 격렬한 경쟁에 돌입하곤 한다. 그 결과 과잉생산은 결코 멈추지 않으며, 단지 패배한 자본가들이 그 대가를 치를 뿐이다. 상황이 잘 흘러가서 주요한 자본가들이 암묵적 담합을 통해 생산을 감축하는 경우라면 어떨까? 이 경우에도 사회가 치러야 할 결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사회의 생산력은 강제적으로 축소되며, 이에 따라 생산 감축과 실업 행렬이 뒤따른다. 이처럼 무계획적으로 생산이 이뤄짐으로써 발생하는 낭비는 불가피한 것인가? 시장에서의 상품교환이라는 자본주의 교환관계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생산계획을 짤 수 없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개별 작업장 수준에서는 이미 완전히 계획적인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연간, 월간, 주간, 일간 생산계획표에 따라 생산은 착오 없이 잘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적 차원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어떤 자본가도 자기 회사에서 생산한 상품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잘 판매될 수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수많은 자본가들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들의 생산을 세계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무계획적인 생산이 야기하는 파국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대자본가들은 잘 발달된 경제 예측 기구들, 가령 거대한 경제 연구소를 운영한다. 자본가 국가 또한 이런 자본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여러 국책 경제 연구소들을 운영한다. 이러한 경제 연구소들만이 아니라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도 손실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경제 연구소를 운영하며 전 세계 생산 흐름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계산한다. 이러한 ‘부기 수단’들이 발전함으로써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 생산의 흐름을 계산할 수 있는 정교한 방법들을 발전시켜 왔다. 하지만 이렇게 예측하더라도 이것이 생산의 사회적 계획화를 가능케 하는 건 아니다. 몇 년 후 세계 시장에서 자동차가 포화될 거라고 예측하는 자본가는 어떤 전략을 세울까? “누군가는 과잉생산의 결과 몰락할 것이 분명하다. 무정부적 과잉생산의 대가를 치르는 자는 내가 아니라 경쟁자여야 한다. 자동화, 기계화를 촉진하고 노동 강도를 높여 더 값싸게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것이 개별 자본가가 내리는 결론이다. 그 결과 예측의 효과는 사라지고, 대신 과잉생산에 따른 파국은 더 일찍 모습을 드러낸다. 개별 기업 수준의 계획화는 전체 사회 차원에서는 완전한 무계획성으로 둔갑해 버린다. 이와 같은 결과가 너무나 위험천만하기 때문에 주요한 대자본들이 생산을 감축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한계 내에서 ‘생산의 계획화’가 작동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화는 생산력의 낭비를 제거하는 진정한 계획화가 아니다. 착취적인 자본주의 체제가 결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강제적인 생산 감축인 것이다. 이 경우에도 그것의 결과는 불황과 공황, 거대한 사회적 생산력 파괴와 낭비다. 이처럼 자본주의는 노동자 계급을 잔인하게 착취한다는 점 때문만이 아니라 인류의 진보를 측정하는 중요한 척도인 생산력을 훼손하고 파괴한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도 이제 완전히 낡아 버린 반동 체제다. 종합해 보자.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모순은 ‘성장하는 사회적 생산력’과 ‘낡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소유관계+교환관계+분배관계)’ 사이의 충돌이다. 이 충돌은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 사이의 계급 투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노동자 계급은 발전하는 사회적 생산력에 걸맞게, 모든 생산수단을 노동자 계급의 공동 소유, 즉 사회적 소유로 전환시킴으로써 사회적 생산력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과 충돌을 해결한다. 아울러 자본주의의 무정부성, 그리고 ‘자본주의적 계획화’의 한계를 극복함으로써 ‘사회적 생산과 소비’가 조화로운 진정한 사회적 계획생산의 단계로 인류를 이끈다. 그 결과 사회적 생산력에 조응하는 새로운 사회적 생산관계가 탄생해, 사회적 생산력을 더욱 고도한 단계로 이행시켜 인류를 진보로 이끌게 된다. 바로 그 사회적 생산관계를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라 불렀다. 7. 생산과 소비 사이의 간극 성장하는 사회적 생산력 그리고 이것과 충돌하는 자본주의 생산관계 사이의 모순은 여러 양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모순은 얽히고설켜 생산력을 제약하고 파괴하는 불황과 공황 등을 잉태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자신이 더 이상 사회의 진보를 대변하지 못한 채 쇠퇴하는 반동적 체제임을 명백히 드러낸다. 그러한 모순 중 마르크스가 주목한, 가장 근본적인 모순은 ‘생산과 소비 사이의 모순(과잉생산 경향)’ 및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의 소비 자본주의가 토해 낸 사회적 생산력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한계가 없다는 듯, 무한히 발전한다. 이에 더해 자본주의 생산은 ‘축적(자본의 증식)을 위한 축적’ 경향에 지배받는다. 한편으로 이윤 증식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확대 투자가 필요하다. 미래에 더 큰 이윤을 얻으려면, 자본가들은 더 많은 이윤을 부단히 생산에 투자해야 한다. 다른 한편 무한대의 경쟁이 초래하는 거대한 압력이 자본가들 사이에 작동한다. 자본가들에게는, 지속적인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본 투자를 계속 확대하는 것이 지상 명령이 된다. 이런 점들 때문에, 자본의 무한 증식(축적을 위한 축적)은 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적인 경향으로 자리 잡는다. 그 결과 사회적 생산력 발전은 가속화하고, 이것은 갈수록 더 많은 생산물을 시장에 토해 놓는다. 하지만 이렇게 확대되는 생산은 소비와 조응해야 한다. 확대되는 생산 규모를 소비 규모가 쫓아가지 못하게 되면 ‘과잉생산’이 발생한다. 얼핏 보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노동자 민중은 소비의 과잉이 아니라 결핍으로부터 고통받고 있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소비가 가능한 사람들은 최소한 상층 중간 계급 이상인데, 이들의 비율은 전체 인구에서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란 ‘구매능력’에 좌우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상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물은 상품 형태로 존재한다. 자본가들은 자선 사업가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생산물을 판매해서, 그것으로부터 투입한 자본과 함께 적정 수준의 이윤을 회수할 수 있어야 생산을 지속할 이유가 생긴다. 그런데 다수 소비자들은 단순히 ‘필요’가 아니라, ‘구매능력’에 따라 소비 행위를 한다. 아무리 절실히 필요하더라도, 구매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소비는 불가능하다. 생산과 소비 사이의 간극, 그리고 과잉생산 자본주의 사회에서 구매능력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소유관계에 좌우된다. 사회의 압도 다수인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 소유관계에서는 노동력의 가치 즉 임금에 의해 구매능력이 제한된다. 그런데 자본가들의 ‘축적을 위한 축적’ 욕구(이윤 욕구)에는 한도가 없다. 그에 따라 기술적 발전 단계가 규정하는 생산능력의 절대적 한계를 제외하면, 자본주의 생산은 다른 어떤 한계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무한히 확대하려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그 결과 생산과 소비 사이의 간극이 커진다. 이 간극은 생산이 소비를 압도하는 양상을 취하는데, 그 결과가 과잉생산이다. 이것은 노동자 계급의 필요를 능가하는 과잉생산이 아니다. 노동자 계급이 자본주의 소유관계가 규정하는 작은 구매능력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발생하는 과잉생산이다. 만일 노동자 계급이 충분한 구매능력을 갖고 있다면, 다시 말해 노동자 계급의 수입이 ‘임금 법칙’에 갇히지 않고 충분하다면, 결코 발생할 수 없는 그러한 과잉생산인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과잉생산이 노동자 계급의 ‘과소소비(가난과 결핍)’와 나란히 존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 필연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 이러한 과잉생산이 시장에서 전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여러 자본가들이 파산하게 된다. 그와 함께 장기불황 혹은 공황이 사회를 덮치게 된다. 한편으로 시장에는 수많은 생산물이 팔리지 않고 쌓여 있다. 다른 한편으로 기업들이 대대적으로 파산하거나 생산을 대폭 축소하면서 대규모 실업과 저임금에 신음하는 굶주린 노동자들이 생겨난다. 이것은 자연재해로부터 발생하는, 과거의 굶주림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과거 사회에서는 생산물이 흘러넘쳐서가 아니라, 자연재해 때문에 생산이 급격히 감소함으로써 굶주림이 나타났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다르다. 생산물이 흘러넘치지만,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사람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굶주림이 확산된다. 자연재해에 따른 생산의 감소 때문이 아니라, 거꾸로 거대한 기술적 발전과 생산에 대한 투자 확대로 너무나 많은 것이 생산된다는 바로 그 이유에서 노동자 계급의 굶주림이 발생한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생산과 소비 사이의 간극을 만들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 소유관계가 범인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단순히 생산능력을 발전시키는 것만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를 철폐하는 혁명적 전망을 통해서만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생산과 소비의 간극을 줄일 길은 없는가? 과잉생산에 따른 장기불황과 공황을 지우기 위해 자본가 계급은 필사적인 시도를 거듭해 왔다. 노동자 계급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가 계급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런 시도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가령 케인스주의 정책을 이어받아, 노동자 민중의 소득을 향상시켜 자본주의 경제를 성장시키겠다는 과거 문재인 정부의 야심찬 계획이 증거가 될 수 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장이 줄어들어 판로가 좁아지며, 그로 인해 자본가들의 투자가 침체되고 성장률이 낮아지는 게 자본주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노동자 서민의 소득 증대를 시장 확대로 연결해 자본주의를 정상화하고, 나아가서 자본주의를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자본가 계급의 계획이 등장할 수 있다. 그들의 계획을 추진하면, 생산과 소비 사이의 간극은 확실히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노동자 계급의 커지는 구매능력은 분명 소비를 확대할 것이고, 그렇게 하면 생산과 소비 사이의 간극이 좁아지면서 자본주의는 활력을 되찾을 듯 보인다. 그러나 이 계획의 성공조건은 무엇인가? 노동자 서민의 삶의 개선, 즉 소득의 증대가 자본가들의 이윤과 충돌하지 않고, 오히려 이윤을 늘리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조건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본적으로 결코 성립할 수 없는 조건이다. 생산의 동기가 소비 확대이며, 이는 노동자들의 삶의 개선과는 결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 계급이 생산을 결정하는 동기는 무엇일까? 단순히 생산량 확대가 아니다. 유일한 생산 동기는 이윤 증식이다. 그런데 이윤 확대는 소비 증가가 아니라 소비 축소를 요청한다. 왜냐하면 이윤을 확대하기 위한 결정적 조건인 노동자에 대한 착취 증대는 불가피하게 노동자의 소비능력을 줄여 버리기 때문이다. 소비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윤 감소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은 자본가 계급의 생산 동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아주 예외적으로 노동자 계급의 절대적 소득 증대와 자본주의 성장이 나란히 서 있는 경우가 있다. 바로 자본주의 경기 활황기다. 안정적인 이윤율이 뒷받침되는 활황기에 자본가 계급은 가장 높은 수준의 투자에 나선다. 이것은 비록 일시적으로나마 고용을 확대하고 임금 수준을 높여, 노동자들의 소득 수준이 절대적으로 높아진다. 그런데 오늘날 자본주의는 과거 케인스 식의 논리가 발 딛고 있던 2차 세계대전 후 호황기와는 완전히 다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점증하는 경제 위기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은 완전히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그 뒤에는 어떤 정책이 기다리고 있을까? 바로 자본주의 성장을 가속화하는 것 즉, 노동자 착취도를 강화해 이윤율을 높이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생산과 소비 사이의 간극을 더욱 키울 수밖에 없다. 본래 자본주의적 성장 그 자체는 노동자 삶의 진정한 개선을 보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빠르게 성장하는 시절에는 더 많은 몫을 빼앗기더라도 노동자들의 절대적인 삶은 개선될 수 있었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성장이 갈수록 장애에 부딪히고 있는 오늘날에는, 그에 따른 이윤율 하락을 노동자 삶의 하락을 통해 필사적으로 만회하려 하는 자본가들의 욕구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적 성장을 목표로 하는 한, 노동자 삶의 질과 수준 하락이 필연코 수반된다. 지금처럼 자본주의의 눈부신 성장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시대에 노동자 민중의 소득을 보장할 유일한 방법은 ‘계급 투쟁’이다. 어떤 계급 투쟁일까? 노동자 민중의 소득 보장을 위해 필요한 만큼 거침없이 자본의 이윤과 소유권을 침해해 들어가는 계급 투쟁이다. 극소수 자본가들이 움켜쥔 막대한 부를, 사회 전체의 부로 전환해서 사회 전체를 위해 계획적으로 생산을 조직하는 계급 투쟁이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고 소수 자본가들만이 결정권을 갖는 자본주의적 투자를, 노동자 민중의 삶과 사회적 필요의 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계획적 생산으로 대체함으로써 생산과 소비 사이의 균형을 창출하는 계급 투쟁이다. 이것만이 과잉생산 경향을 폐지함으로써 불황과 공황을 추방할 수 있고, 진정 소비와 조화를 이루면서 중단 없이 발전하는 효율적 생산 체제를 가져다줄 수 있다. 그것은 생산의 동기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만 실현할 수 있다. 생산의 목적이 한 줌 자본가들의 이윤 증식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절실한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 또한 생산의 확대가 노동자 계급의 민주적 동의 아래 결정되는, 적절한 수준의 사회적 투자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8.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 과잉생산 경향은 장기불황과 공황 속에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을 가속화하고 갈수록 전면화하는 근본 요인이 있다. 바로 자본주의 사회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인데, 이 법칙 또한 자본주의 착취 체제(자본주의 소유관계)라는 뿌리에서 자라난다. 자본가 계급의 모든 이윤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착취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기계, 토지, 건물, 노동력 등 총 투하자본에 대한 이윤의 비율(이윤율)’이 갈수록 낮아진다. 기계, 토지, 건물 등 생산수단에 투입하는 자본의 크기(이것을 불변자본이라 부른다)가 늘어나는 비율에 비할 때, 노동력에 투입하는 자본의 크기(이것을 가변자본이라 부른다)가 늘어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낮아진다는 말이다. 이것은 경험적으로도 분명한 사실이다. 자본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에 비해 고용하는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의 총량은 훨씬 더디게 증가한다. 그런데 자본가들이 이윤을 뽑아내는 부분은 불변자본(생산수단) 부분이 아니다. 구입한 원료나 기계는 자기 가치를 상품에 이전할 뿐, 추가가치(이윤)를 조금도 보태 주지 않는다. 추가가치(이윤)가 발생하는 곳은 바로 노동자에 대한 착취다. 지불하는 임금에 비해 더 많은 일을 시킴으로써 그 차액만큼이 이윤으로 발생한다. 그런데 이처럼 이윤을 낳는 부분(가변자본)이 전체 투하자본 중 차지하는 비율이 갈수록 줄어들게 되면, 착취율이 높아지더라도 이윤율은 경향적으로 낮아지게 된다. 그 결과가 바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다음의 세 가지 점에 주의할 것을 마르크스는 지적했다. 첫째, 줄어드는 것은 이윤율이지 이윤의 총량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윤의 총량은 절대적으로 늘어난다. 다만 총 투하자본에 대비할 때 얻는 이윤의 비율이 줄어들 뿐이다. 둘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의 토대에서는 발전하는 생산력이 반영할 수밖에 없는 생산의 기술적 조건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생산력의 발전, 즉 생산의 기술적 발전을 드러내는 여러 지표 중 가장 결정적인 것은 무엇일까? 바로 생산자 1인이 1시간 동안 생산해 내는 생산량, 즉 1인당 생산성이다. 착취관계를 배제하고 접근한다면, 결국 인류의 생산 발전이란 생산자 1인이 단위시간 동안 얼마만큼 많은 것을 생산했느냐로 측정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1인당 생산성은 인류 역사 내내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고, 이러한 발전이 인류의 풍요와 문명의 발전 수준을 규정했다. 그런데 그와 같은 1인당 생산성을 규정하는 기술적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단위 시간당 1명의 생산자가 가동하는 기계와 소모하는 원료의 양, 즉 생산수단의 양이다. 이것은 누구의 눈에도 자명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인류 사회를 관통하는 그런 명백한 사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다른 외피를 두르고 나타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은 불변자본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노동자는 가변자본으로 나타난다. 그 결과 1인당 생산성의 증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총 투하자본 대비 노동력의 비중 저하, 따라서 이윤율의 저하 경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인류의 진보를 거꾸로 돌리지 않는 한, 자본주의 사회는 이 이윤율 저하 경향에서 결코 도망칠 수 없다. 게다가 자본가들 사이의 첨예한 경쟁은 이윤율 저하 경향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 결국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에서 성공 여부는 노동자 1인당 생산성을 누가 더 높일 수 있느냐(이것은 경쟁 자본에 비해 생산물을 더 값싸게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한다)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셋째, 마르크스는 이윤율 저하 법칙 앞에 ‘경향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무슨 말일까? 단순하게 일직선으로 관철되는 법칙이 아니라는 뜻이다. 자본가 계급은 생명 같은 이윤율을 회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인다. 착취도를 높이는 것이 대표적인 대처 방법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윤율 저하 법칙을 잠시 저지할 뿐 지속적으로 막을 수 없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볼 때 그러한 저항은 이윤율을 낮추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가령 착취도를 높이는 대표적인 방법은 정리해고로 노동자 수를 줄이는 대신 1인당 생산량을 높이는 것이다. 그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이 기계 수를 늘리거나 자동화를 촉진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가변자본에 대한 불변자본(기계와 같은 생산수단)의 비율을 높인다. 그 결과는 바로 이윤율의 하락이다. 이처럼 이윤율 저하를 막기 위한 자본가 계급의 필사적인 반항에 의해 일시적으로 이윤율이 회복될지라도, 장기적으로 보면 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막을 수 없다는 점을 마르크스는 강조했다. 오히려 마르크스는 이윤율의 저하 경향이 바로 그러한 자본가 계급의 반항을 통해서 장기적으로 관철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것을 표현한 개념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다. 9. 낡아 버린 자본주의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파산선고다. 왜냐하면 이 법칙은 자본가 계급이 갈수록 생산의 발전에 적대적인 반동 계급으로 전락한다는 점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자본가 계급이 생산을 확대할 것인지 축소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윤율’이다. 그런데 이 이윤율이 갈수록 줄어든다면,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투자에 대한 자본가들의 열기가 감소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결국 생산력의 발전이 커다란 장애에 직면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 점 때문에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 앞에서 도망쳤다고 마르크스는 지적했다.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투자하고, 그 결과 생산력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는 점에서 자본가들을 정당화했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로서는 자본가 계급의 심장인 이윤율이 갈수록 감소한다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이윤율이 갈수록 감소한다면, 자본가 계급의 투자율도 갈수록 감소할 것이고, 그 결과는 명백히 생산의 맥박이 느려지는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반면 마르크스는 거기서 도망치는 대신, 진실을 향해 한 발 내디뎠다. 마르크스는 거기서 자본주의 체제의 정당성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낮아질수록, 자본주의 체제의 맥박은 느려져서 더욱 빈번하게 그리고 더욱 전면적으로 장기불황이나 공황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고 마르크스는 예견했다. 즉, 마르크스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이 작동함으로써 자본주의 반동성은 갈수록 가속화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의 예견은 명확한 사실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저하하고 있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상식이 됐다. 그리고 이윤율 저하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필연적으로 공황이나 장기불황으로 이어지고 있음도 중요한 사실이다. 어떤 부르주아 경제학자들도 그 점에 대해 전혀 부정하지 않는다. 도저히 부정할 수 없는,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것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하더라도, 그들은 그 법칙으로부터 자본주의 체제의 반동성을 끌어내지 않는다.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 즉, 자본가 계급의 이론적 수호자라는 지위가 그들에게서 과학적 양심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자본주의 체제의 반동성이 갈수록 가속화함을 보여 준다. 자본주의 사회의 과잉생산 경향은 더욱 심화된다. 이윤율이 갈수록 낮아지는 상황에서는 생산과 소비의 간극이 조금만 벌어지더라도 이윤율이 최저한도에 금방 이르게 됨으로써, 불황과 공황이 더욱 빠르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최근 상황은 더욱 악화하고 있다. 이제 자본가들의 투자 러시를 불러오는 호황기란 거의 기대할 수 없다. 이윤율이 너무나 낮아져 버렸기 때문이다. 호황기란 장마철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햇볕처럼 기대하기 어려워졌고, 자본주의 사회는 장기불황이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것만 막아 내도 다행이라 느끼는 단계에 도달했다. 나아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실물자본과 화폐자본의 괴리(거품)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모순을 확대하고 있다. 생산 분야에서 낮아지는 이윤율은 자본가들의 투자 의욕을 짓밟는다. 그에 따라 자본가들은 다른 자본가들의 이윤을 강탈하거나, 중간 계급의 소득이나 노동자 계급의 임금까지 수탈하는 데로 고개를 돌린다. 비생산 분야에서 거품을 일으키거나 부동산, 주식, 화폐, 선물투기 등을 통해 모험을 감수하면서 이윤율을 벌충하려 발악한다. 그러나 비생산 분야에서는 아무런 이윤도 생기지 않는다. 비생산 분야에서의 투기는 다른 자본가들의 이윤을 빼앗아 오는 것에 불과하다. 다만 대가가 있다. 자신의 이윤을 판돈으로 내걸어야 한다. 누군가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는다. 다만 부동산, 주식, 화폐, 선물투기 등과 맞물린 거품 현상은 중간 계급, 노동자 계급의 소득까지 수탈함으로써만 자본가 계급의 이윤율 회복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의 대가는 무엇인가? 소비를 감소시키고, 이는 생산과 소비의 간극을 더 빠르게 넓혀 자본주의의 모순을 증폭한다. 여기에도 탈출구는 없다. 사회가 이러한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할 수 있는 수단은 단 하나다. 생산의 동기가 이윤 증식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의 생존과 번영이어야 한다. 생산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것을 계획하고 그 결과물을 분배하는 주인공이 자본가들과 그들의 정부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과 그들의 민주적 정부여야 한다. 그것은 모든 생산수단을 자본가 계급의 수중에서 연합한 노동자 계급의 수중으로 이전하는 사회주의를 의미한다. 사회주의는 생산과 소비의 간극을 없앨 것이다. 사회주의는 생산능력의 발전이 전체 사회 번영의 원천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한 줌 착취자들의 이윤율을 저하시킨다는 이유로 불황과 공황처럼 사회가 후퇴하는 이유가 되는 이 어이없는 반동적 생산시스템을 저 멀리 고대 박물관으로 보내 버릴 것이다. 10. 파산하는 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쇠퇴는 이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자본주의 사상에도 종말을 고한다. 자유주의 이념의 파산은 그 단적인 예다. 자본주의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사회적 자원이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되고 관리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핵심 논리는 이런 것이다. 어떤 산업에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증대하면 가격이 낮아지고, 이것은 자본가의 투자욕을 감퇴시켜 사회적 자원이 이 산업에서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반대로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인상되고, 이에 고무된 자본가의 투자는 사회적 자원을 이 산업에 자동으로 추가 투입되는 효과를 낳는다. 이런 식으로 사회적 수요에 비해 생산이 과잉인 부분에서는 사회적 자원이 빠져나가고, 사회적 수요에 비해 생산이 부족한 부분에서는 사회적 자원이 투입됨으로써 가장 효율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분배하고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율적 조정 장치인 수요-공급에 따른 가격 결정 구조에 개입하는 것은 사회적 생산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간섭으로 배제해야 한다는 논리가 뒤따랐다. 국가는 이 자율적 경제에 개입해서는 안 되고, 단지 밤에 도둑이나 잡는 역할에만 만족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야경국가론’이 바로 자유주의다. 여기서 하나의 논리가 추가로 파생됐다. 이런 가장 효율적인 자율적 조정 장치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금기시되는 반면, 자본가의 개입은 필수였다. 자본가들의 이윤욕이 개입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사회적 자원은 과잉된 부분(가격이 하락해 이윤율이 낮아지는 부분)에서 결핍된 부분(가격이 올라가 이윤율이 높아지는 부분)으로 이동한다. 여기서 자본가의 이윤욕, 다시 말해 자본주의 체제를 관통하는 이윤 논리는 잔인하고 반사회적인 것이 아니라 이 효율적 경제 체제를 떠받치는 ‘유일하게’ 윤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사회적인 요소로 정당화된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는 자신이 신처럼 모셔 왔던 자유주의 이념을 스스로 배신하고 있다. 국가는 ‘야경국가’가 아니라, ‘전면적인 개입’에 나서고 있다. 수많은 자유주의 신봉자들이 그것을 보고 경악하며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마저도 국가가 행하는 그런 배신에 정면으로 항의하는 대신, 오히려 더 대담한 배신을 국가에게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야말로 자유주의 이념, 그리고 이 이념이 대변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완전히 낡아 파산해 버렸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하나의 장면을 살펴보자. ‘마스크 사회주의’는 이제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한국만 아니라 수많은 나라에서 코로나19 당시 마스크를 비롯해 핵심 의료장비의 생산과 유통에서 국가 통제가 본격화됐다. 이는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이 재난을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자신을 덮치는 위험을 스스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자유주의 이념에 따르면, 마스크 수요가 폭증해 가격이 폭등하면, 높아지는 이윤율에 신바람이 난 자본가들에 의해서 사회적 자원이 마스크 생산에 투입됨으로써 간단하게 문제가 해결돼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마스크 수요에 비해 생산은 부족하기 짝이 없었고, 생산 확대는 재난의 확대 속도를 결코 따라가지 못했다. 이것은 산소호흡기를 비롯해 문제해결에 필수적인 모든 의료장비에 빠짐없이 적용되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민영의료 체계는 이런 비상 상황 앞에서 아무런 효율적인 대처능력도 발휘할 수 없다는 점을 드러냈다. 그 결과 한국 정부는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하면서 마스크 생산, 유통, 분배에 직접 개입했다. 마스크 생산 가격도 직접 통제했다. 마스크 산업 자본가들에게 마음대로 맡겨 둔다면 치솟는 마스크 가격과 사재기 등으로 재난 확산에 대처할 수 없다는 점이 너무나 분명했고, 대중의 저항과 분노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스크와 관련해 한국에서 나타났던 상황은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마찬가지 모습으로 재현됐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오래된 전시법까지 동원해 지엠에게 산소호흡기 생산을 명령했다. 영국 정부도 다이슨에게 인공호흡기 1만 개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면서, 생산에 직접 개입했다.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는 손’으로 대체됐다. 그러나 자유주의 이념의 신봉자들은 이 상황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있다. 그들이 찬미하는 자본주의의 자율적 조정기능에 맡겨 둔다면, 그것이 초래할 재앙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배신은 거대한 배신의 일각에 불과하다. 자유주의 이념은 경쟁에서 도태된 비효율적인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사회적 효율성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항상 강조해 왔다. 시장의 가격 경쟁에서 도태된 비효율적인 기업이 제거됨으로써 사회는 선진적이고 효율적인 체제로 끊임없이 물갈이되면서 진보해 나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경국가’는 파산하는 기업과 자본가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보내서는 안 되며, 이 뒤처진 비효율적인 부분의 파산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비효율적인 부분이 오랜 기간 비대하게 커져 왔다. 파산 직전의 위태로운 기업의 비율이 수십 년 넘는 오랜 기간 동안 계속 확대돼 왔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주요 자본주의 나라에서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된 한계 기업의 비중이 40%에 육박하고 있음을 몇 년 전부터 계속 경고했다. 이윤율이 경향적으로 하락하면서, 사회적 자원의 배분과 순환의 키를 쥐고 있는 자본가들이 자기 역할을 방기해 왔고,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활력을 앗아 갔다. 여기서는 자유주의 이념이 절대적으로 옳았다! 자유주의가 주장하듯 자본가들은 오직 이윤욕에 의해서만 생산에 박차를 가하는데, 이윤율 저하는 그들의 의지를 앗아 갔다. 투자율이 전반적으로 하락하면서, 자본주의 생산은 깊은 불황과 저성장의 늪에 깊숙이 빨려들어 갔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런 상황을 극적인 수준으로까지 빠른 속도로 밀어 올렸다. 다수 기업이 한계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생산가동률은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자유주의의 기대와는 달리,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자율적 조정기능에 내맡겨 둔다면 그 결과는 재앙이다. 그냥 방치하면 이 자율적 조정장치는 완전히 망가져 버려, 대공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비효율성의 극치를 보여 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들은 작심하고 자유주의를 완전히 배신하기로 마음먹었다. 미국 정부는 부실 기업이 발행한 악성 채권까지 모조리 사들이는 무제한적 재정 투입을 선언했다. 한국 정부도 항공사, 두산중공업을 비롯해 파산 직전의 기업에게 천문학적 국가 재정을 쏟아 붓고 있다. 자본가 국가의 전면적인 개입 덕분에 분야를 막론하고 수많은 기업이 근근이 버티고 있고, 금융권은 파산을 모면하는 등 대공황으로 이어지는 파국이 유예되고 있다. 이러한 국가 개입이 미래에 야기될 거대한 위험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말이다. 자율적 조정능력, 효율성 증대, 자본가 이윤욕의 생산적 역할 등 자유주의가 내세워 왔던 매력들, 그리고 이 매력들에 기반했던 국가 개입 반대가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자리를 시장에 대한 국가의 전면 개입이 대체하고 있다. 어제까지 강경 자유주의자였던 작자들이 오늘은 국가의 무제한적 개입을 부르짖고 있다. 어제까지 자유주의의 배신자로 취급받았던 국가 개입론자들이 이제 자유주의의 구원 투수로 칭송받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자유주의의 파산선고’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더 이상 이 사회의 진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반동적 체제로 전락했음을 자본가 계급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자본가 정부는 이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대자본이 무너지지 않게 지원해야 한다. 국민의 재산인 정부 재정은 위기 때마다 ‘공적자금’이란 형태로 대자본의 회생을 위해 투입되곤 했다. 이렇게 자본가 국가의 도움으로 대자본은 회생하고, 그 과정에서 자본가 정부와 대자본의 융합은 더욱 전면화한다. 이제 대기업의 번영과 생존은 자본가 정부의 번영, 생존과 뗄 수 없이 연결된다. 대기업의 이사진과 경영진에는 공적자금을 지원한 자본가 국가의 핵심 관리들, 특히 산업은행의 관리들이 포진하게 되고, 이들의 입김이 높아진다. 이들은 정부 재정을 회수한다는 이름으로 노동자를 향한 가혹한 구조조정을 강요하고, 기업합병 같은 자본의 집중 경향을 부추긴다. 이런 식으로 국가와 자본 사이의 융합 경향은 지속적으로 강화돼 왔다. 순수한 자유주의 이념은 오직 부르주아 지식인의 관념에서만 존재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도 실제로 일어났던 일은 자본가 국가와 자본 사이의 긴밀한 융합의 확대였다. 11. 자본주의는 유효기간이 다해 가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는 국가와 자본의 융합 경향을 더욱 부각시켰다. 그 이유는 자유주의 이념이 그토록 강조했던 시장의 자율적 조정기능 그리고 자본의 탐욕이 낳는 효율성과 생산성 증대가 결정적 한계에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과잉생산과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다. 만성화된 과잉생산, 즉 생산과 구매의 부조화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강타했다. 시장은 자율적 조정기능을 발휘해 사회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하기는커녕 만성 불황의 늪에 빨려들었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자유주의가 전제하고 있는 생산의 추동력, 즉 자본가들의 이윤욕에 근거한 맹렬한 투자를 근본적으로 제약했다. 이윤율이 낮아지자 자본가들은 투자를 줄여 버렸고, 이것은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률을 극히 낮은 수준에 묶어 버렸다. 이윤에 눈이 먼 자본가들의 투자 덕분에 이뤄지는 경제의 비약적인 발전은 옛 추억이 됐다. 돈은 생산 부문에서 빠져나와 금융과 부동산으로 흘러들었다. 이윤을 창출하는 유일한 분야인 생산이 답보 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이런 돈의 흐름은 거품과 위험을 증대시켰다. 실물자본과 괴리된 금융자본 부문에서 거품이 터짐으로써 2008년 세계 금융 위기가 덮쳤다. 여기서도 자본가 국가가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천문학적 국가 재정이 금융 전반의 파산 도미노를 저지했다. 그 가운데 자본가 국가와 금융자본의 융합이 확대됐다. 코로나19 사태와 경제 위기 앞에서 이런 융합은 더욱 전면화되고 있다. 대불황의 위협 앞에 모든 자본가들이 자본가 국가의 지원책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은 자본주의의 몰락을 웅변한다. 하지만 아무리 국가 개입이나 통제가 확대되더라도, 이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을 뒤바꾸지는 못한다.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국가 개입의 모습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 준다. 오늘날 전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국가 개입’의 의미는 무엇일까? 자본가 국가는 정부 수중으로 집중된 모든 사회적 자원을 자본가 구하기 작전에 투입해야 했다. 정부 재정의 더 많은 부분이 복지 정책이 아니라 자본가 살리기 정책에 투입돼야 했다. 쓸 만한 국유재산이나 공기업들은 최대한 매각해 민영화함으로써 자본가들의 추락하는 이윤율을 회복하는 데 사용하고, 좁아지는 투자처를 벌충해야 했다. 법인세 인하와 같은 조치를 통해 정부 재정은 더욱 전적으로 노동자 민중을 수탈해서 꾸려 가야 했다. 결국 마비 상태에 빠진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란, 몰수 국유화를 통한 사회적 통제와는 완전히 반대편에 있다. 자본가 국가의 개입이란 노동자 민중에 대한 수탈로 마련한 사회적 재원으로 파산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구원하는 것, 또한 죽어 가는 자본가들을 사회적 재원으로 회생시켜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가 국가의 개입 확대는 자유주의 이념을 잉태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역사적 유효기간이 만료됐음을 입증한다. 하지만 자본가 국가의 개입 확대는 유효기간이 만료된 자유주의 체제를 회생시키려는 마지막 발악이다. 결국 이 자본가 국가는 자유주의 이념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같은 편에 서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자본가 국가는 파산하는 자유주의 체제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보존하려는 자본가 계급의 필사적인 마지막 발악을 대표한다. 자본가 국가의 전적인 지원으로 당장의 대공황을 피한다고 해도, 역사적 수명이 다한 환자인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길은 근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와 무정부적인 과잉생산은 자본주의 체제의 숙명이고, 이것은 지속적으로 위기의 규모와 폭발력을 키울 것이다. 자본가 국가의 확대되는 개입은 자본주의 한계 내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침식이다. 국가라는 형태로 사회적으로 개입하고 통제하지 않는다면, 이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위기와 모순을 조금이라도 유예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없다. 오늘날 국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 자본주의 경제의 불안정성이 나날이 증대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사회적 재난을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지속적으로 불러올 수밖에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본가 계급은 이 국가를 더욱더 분명하게 자본가 계급의 국가로 통제하고 활용하려 발악한다. 이것은 자본가 국가와 자본가들 사이의 융합을 가속화하고, 자본가 국가의 계급적 본질과 반동성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하지만 노동자 계급은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가 계급이 착취를 통해 쌓아 올린 거대한 부의 성을 허물어 노동자 계급의 일자리와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국가를 갈구한다. 정부 재정을 한 줌 착취자에게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위해 투입하는 국가를 갈구한다. 생산-유통을 대담하게 사회적으로 통제해 재난과 위기를 극복하는 국가를 갈구한다. 자본가의 이윤논리에서 벗어나 거대한 사회적 생산수단들을 전면적으로 국유화해 사회의 공동체적 원리에 따라 운영하는 국가를 갈구한다. 바로 이렇게 경제와 정치가 노동자 계급을 대변하며 하나로 결합하는 체제가 바로 사회주의다. 파산하는 자유주의 뒤편에서 사회주의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힘으로 떠오르고 있다. -
[한노운사 연재 3회] 1부 폭압과 저항(1970~1987) [2] 1980년의 분출박정희가 사망하자 지배세력은 일시에 혼란에 빠졌다. 그 혼란의 틈새로 노동자들의 누적된 불만이 터져 나왔다. 1978년 이후 한국경제 위기도 요인이었다. 1980년 들어 5월까지 임금인상, 체불임금 지급, 공장폐쇄 반대, 민주노조 건설, 어용노조 민주화 등을 요구하며 897건의 노동쟁의가 발생했다. 1970년대 10년 동안 발생한 노동쟁의 832건을 능가하는 수치였다. 노동쟁의 참가자 수도 1970년대 전체 노동쟁의 참가자 수와 비슷한 20만 명에 달했다. 그러나 전두환 신군부가 5·17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에 맞선 광주민중항쟁이 고립된 채 패배했다. 군사정권의 재수립과 함께 노동자투쟁의 분출도 중단됐다. [목차] 1부 폭압과 저항 (1970-1987) [시대배경] 군사정권이 주도한 산업화 [1] 민주노조운동의 태동 [2] 1980년의 분출 [3] 민주노조운동의 파괴와 재건 [4] 1987년의 대폭발 1) 1980년 서울의 봄과 사북항쟁 가장 먼저 투쟁에 나선 것은 민주노조운동의 선봉인 청계피복노조였다. 4월 8일부터 10일 동안 청계피복노조 조합원 150여 명이 임금인상, 상여금 지급, 퇴직금제도 전면 실시, 노동3권 완전 부활, 해고자 복권·복직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계엄령 아래서도 공세적인 투쟁을 전개하여 평균 29%의 임금인상과 ‘10인 이상 사업장 퇴직금제 실시’를 관철해 냈다. 4월 21일부터 24일까지 강원도 사북에서 탄광노동자들의 항쟁이 전개됐다. 사북에는 전국 최대 민영탄광이던 동원탄좌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노동자들은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다. 게다가 탄광 개발 당시 노동자들을 감독하기 위해 고용됐던 깡패들이 그대로 노조를 장악하고 있었다. 보통 수백m, 깊게는 수천m 지하로까지 내려가야 하는 막장 노동 속에서 한 해 평균 200명의 광부가 목숨을 잃고 5,000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었다. 10명 가운데 1명꼴로 일어나는 막장 사고를 운 좋게 피한다고 하더라도 진·규폐증이 광부들을 기다렸다. 79년 가톨릭대 부설 산업의학연구소가 민영탄광 노동자 9,15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가운데 16.1%가 진폐증 환자였다. 하루 3교대로 8시간씩, 한 달 평균 28일씩의 중노동을 하면서도 이들이 받는 임금은 79년 당시 평균 16만 4천 원으로 5인 가족 최저생계비에도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게다가 광부들이 거주하는 사택촌은 거의 집단수용소와 같았다. 가구당 주거면적 5~6평에 30~40가구가 한 곳의 공동변소를 이용했으며, 공동수도의 물마저 제한 급수를 받고 있었다. 탄광촌의 유일한 후생복지시설이라고 할 수 있는 목욕탕은 중앙 사택의 단 한 곳뿐이었다. 이런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노조였으나 회사는 지부장에게 자재 납품권, 덕대 하청권, 식당 운영권 등을 주는 방식으로 노조를 철저히 어용화시켰다.[1] 이런 상황에서, 전국광산노동조합이 전체 지부장 회의를 통해 42% 임금인상을 목표로 제시했음에도, 동원탄좌 지부장이 회사와 비밀리에 20% 인상에 합의했다. 이에 동원탄좌 노동자 200여 명이 4월 21일 지부 사무실에서 ‘어용노조 퇴진과 42%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경찰이 출동하자 노동자들이 거칠게 저항하고, 험악한 분위기에 위협을 느낀 경찰이 지프로 도망치다가 노동자 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노동자 500여 명이 사북 시내로 몰려가 경찰서장과 광업소장에게 몰매를 가하고, 과장급 이상 회사 간부들과 지부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들의 집을 부수었다. 22일 오전 시위대가 가족까지 참여해 2천여 명으로 불어났다. 시내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지부장의 부인을 인질로 잡아 린치를 가했다. 경찰 200여 명이 소총으로 무장하고 읍으로 들어왔다. 5천여 명으로 늘어난 시위대는 일단 동원탄좌로 후퇴했다가 경찰에 반격을 가했다. 오후 2시쯤 경찰이 궁지에 몰려 철수했다. 사북읍을 완전히 장악한 노동자들은 자치방범대를 뽑아 치안을 유지했다. 그런데 언론은 노동자들을 폭도로 몰고 경찰은 헬기로 삐라를 뿌리면서 해산하지 않으면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위협했다. 노동자들은 분열하기 시작했고 투쟁의 주도권이 타협적인 대의원들에게 넘어갔다. 정부 측과 협상을 진행한 끝에 24일 아침 기존 노조집행부의 사퇴, 상여금 인상, 부상자 치료·보상, 피해주택 복구 등의 내용으로 타결됐다. 5월 7일 군·검·경 합동수사본부가 70여 명을 연행해 가혹한 구타와 고문을 가했고, 31명이 구속됐다. 사북항쟁 이후 정부는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했다. 이제 임금 문제보다 어용노조 퇴진과 민주노조 건설이 중심 이슈가 됐고, 투쟁 형태도 탈법적이고 전투적으로 바뀌었다. 동국제강, 인천제철, 일신제강, 원진레이온 등의 노동자투쟁이 대표적이었다. 특히 동국제강 노동자들은 적은 임금인상에 항의하면서 거리까지 밀고 나가 경찰과 투석전을 벌인 끝에 요구를 쟁취했다. 인천제철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회사를 점거·파괴하면서 파업농성을 벌였다.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은 5·17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 뒤에도 3일간 공장을 계속 점거하며 투쟁했다. 해태제과 노동자들은 1979년부터 줄기차게 요구해 온 8시간 노동제를 임금 삭감 없이 쟁취했다. 해태제과 노사는 기존 12시간 노동의 임금을 8시간 기본급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는데, 이로써 실제 임금인상률이 남자 39.8%, 여자 48.5%에 이르렀다.[2] 민주노조들은 산별노조와 한국노총의 민주화에 나서기도 했다. 원풍모방, 반도상사, 동일방직 등의 노조들은 10·26 사태 이후 섬유노조정상화추진위원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콘트롤데이타노조는 금속노조 민주화투쟁에 앞장섰다. 원풍모방·동일방직 조합원을 비롯한 노동자 3천여 명은 5월 13일 한국노총 주관으로 한국노총 대강당에서 열린 ‘노동기본권 확보 전국궐기대회’에 참가해 노동3권 보장 전국 서명운동과 어용간부 퇴진을 한국노총에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했다. 민주노조들은 2일간의 농성을 통해 한국노총의 각성과 민주화를 강력히 촉구했다. 그런데 이들이 농성을 벌이던 5월 14일 대학생 시위대가 한국노총 회관 앞으로 몰려와 민주화 시위 합류를 요청했다. 농성지도부는 ‘군부에게 탄압의 구실을 주어서는 안 된다’며 거부했다. 5월 15일, 서울 35개 대학과 지방 24개 대학에서 학생들이 전국 주요 도시의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서울에서만 10만 명이 서울역에 운집해 계엄군의 탱크가 진주한 광화문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곧 군대가 치고 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저녁 8시 국무총리가 “연말까지 개헌안 확정, 내년 상반기까지 양대 선거 실시”라는 민주화 일정을 발표하며 학생 시위대의 해산을 종용했다. 학생운동 지도부는 일단 시위를 멈추고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이었다. 2)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1979년 12·12 쿠데타로 군부 내 실권을 장악한 전두환은, ‘서울의 봄’ 시위가 커지자 1980년 5월 17일 24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2차 쿠데타를 일으켰다.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 학생들이 투쟁을 포기한 것과 달리, 광주 학생들은 5월 18일 아침에도 ‘비상계엄 해제’를 외치며 시위에 나섰다. 공수부대가 학생들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까지 무참히 살육하기 시작했다. 쇠몽둥이로 머리통을 부수었고, 대검으로 온몸을 난자했다. 치 떨리는 살육을 목격한 노동자·민중은 가눌 수 없는 분노로 일어섰다. 평화시위는 폭력항쟁으로 바뀌었다. 시민들과 학생들은 돌과 각목 등을 들고 계엄군의 총칼에 맞서 용감하게 싸웠다. 공수부대의 잔혹한 유혈진압은 계속됐다. 20일에는 차량시위를 조직하는 등 투쟁이 한층 격렬해졌다. 보안사의 통제 아래 놓인 언론이 광주항쟁을 ‘불순분자와 폭도들의 난동’이라고 보도하자 광주 MBC 방송국을 불태웠다. 일부 시위대는 차량을 타고 광주를 빠져나가 전남 일대를 누비며 진실을 알리고 시위를 널리 퍼뜨렸다. 21일 마침내 계엄군이 시민들에게 총을 발포했다. 시위대는 경찰서를 습격하고 무기고를 접수해 무장하기 시작했다. 아세아자동차에서 생산하던 장갑차와 트럭 같은 군용차량들을 확보했다. 화순탄광 노동자들은 탄광에서 쓰던 다이너마이트를 광주로 가지고 왔다. 무장 투쟁이 시작되면서 학생들이 주도하던 운동이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운동으로 바뀌었다. 시내 곳곳에서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21일 밤 전남도청을 중심으로 포진한 계엄군이 무장 시위대의 거센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광주 외곽으로 철수했다. 계엄군을 몰아낸 노동자·민중은 광주를 해방공동체로 만들었다. 전투 과정에서 형성된 시민군은 시내 방위대와 지역 방위대를 조직해 자치질서를 수립했다. 계엄군의 외곽 봉쇄로 식량과 생활필수품 공급이 차단된 상황에서, 식량이 떨어진 이웃과 쌀을 나누었다. 주먹밥을 이고 거리로 나와 모두가 나눠 먹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발적으로 부상자들을 치료했고, 너도나도 헌혈에 나섰다. 범죄가 사라졌다. 23일부터 26일까지 도청 앞 분수대 광장에서 매일 수만 명이 모이는 시민궐기대회가 열려 항쟁의 의미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 토론했다. 종교인과 지역유지로 구성된 시민수습대책위원회가 무기 회수를 통해 계엄군과 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25일 윤상원을 비롯한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민주시민학생투쟁위원회가 결성돼 결사항전의 준비를 갖추었다. 27일 새벽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전개됐다. 157명의 시민군이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며 계엄군에 맞서 싸웠다. 광주민중항쟁으로 인한 희생자는 사망 165명, 행방불명 65명, 부상 후 사망 376명 등 606명으로 나중에 공식 집계됐다. 그러나 암매장자와 미신고 인원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펼쳐진 노동자·민중의 항쟁을 책임졌던 이들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밀어닥친 역사의 부름에 주저 없이 떨쳐 일어선, 너무나 평범한 노동자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이 엄청난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어떤 학습도 해보지 않았고, 어떤 조직도 가져보지 못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그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짓밟으려 할 때, 노동자계급이 얼마나 단호한 혁명적 본능으로 얼마나 엄청난 혁명적 역량으로 떨쳐 일어설 수 있는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1970년대 민주화운동과 1980년 ‘민주화의 봄’을 이끌던 지도부가 광주를 빠져나간 뒤 광주를 지키며 끝까지 싸웠던 이들은 노동자, 농민, 기층민중이었다. 5월 20일 오후 6시쯤 택시노동자들이 택시 2백여 대를 몰고 무등경기장에 모였다. 그들은 18, 19일 광주 시내 곳곳에서 벌어진 공수부대의 만행을 누구보다 생생히 눈으로 보고, 학생들과 부상자를 나르다 피해를 당하기도 하였다. 7시쯤 버스와 대형 트럭을 앞세운 차량 2백여 대가 금남로에 나타났다. 거리를 가득 메운 채 불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도청 쪽으로 나아갔다. 운수노동자들의 투쟁과 희생은 시위 군중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로케트전기, 전남방직, 일신방직, 아시아자동차, 금호고속, 전일섬유, 광주어망, 남해어망 노동자들이 투쟁의 대열로 모였다. <투사회보>를 만들던 들불야학 팀도 노동자들이었고, <투사회보>를 돌리다 들키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일을 했던 이들은 회보를 하나라도 더 감춰 나르려고 ‘몸빼’ 같은 옷을 입고 나온 21살, 22살, 23살 여성 노동자들이었다. 맨 앞에서 총을 들고 싸웠던 시민군 기동타격대원들을 보더라도 항쟁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5·18 민중항쟁에 적극 참여했다가 군법회의에 넘겨진 기동타격대원 30명의 이름과 나이, 하던 일을 보자. △윤석루(20세)-자개공 △이재호(33세)-회사원 △이재춘(20세)-방위병 △양기남(19세)-삿슈공 △임성택(17세)-양복공 △구성회(16세)-양화공 △오정호(33세)-식당종업원 △박승렬(20세)-레코드사 △박명국(18세)-양화공 △김상규(19세)-전파사 △박영수(18세)-도자기공 △안성옥(19세)-목공 △김두전(19세)-재수생 △정광호(20세)-타일공 △염동유(23세)-다방 △이성주(18세)-차량조수 △김공휴(19세)-나전칠기공 △남승우(19세)-삿슈공 △도준식(23세)-식당종업원 △남영관(18세)-농업 △박홍식(21세)-목공 △김기광(18세)-고3 △박인수(21세)-노동 △김여수(20세)-용접공 △나일성(18세)-가구공 △김태찬(19세)-석공 △김행남(16세)-노동 △김재귀(16세)-고2 △영용섭(19세)-나전칠기공 △장승희(19세)-양화공. … 어떤 사람들이 이 항쟁에 가담했고 투쟁했고 죽었는가 … 바로 노동자들, 기층들, 넝마주이 같은 사람들이었다.[3] 5월 19일부터는 학생시위가 민중항쟁으로 변화하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시위대에는 노동자와 시민들의 참여가 늘어났다. 도청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이미 학생들의 숫자보다, 소상인과 가게종업원, 노동자의 비중이 월등히 커졌다. … 공수부대의 잔혹한 탄압 앞에서 노동자의 숨은 투쟁역량에는 서서히 불이 붙어가기 시작하였다. 머리가 으깨지고 팔이 부러져 온통 피범벅이 된 부상자를 급히 병원으로 이송 중이던 택시 운전수를 차의 유리창을 부수고 끌어내려 대검으로 무참하게 배를 찔러 살해하는 공수부대의 학살극이 최소한 3건 이상이나 발생하였다. 그리하여 5월 20일 오후 2시부터 무등경기장에는 택시운수노동자들이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매고 ‘군저지선의 돌파에 앞장서자’고 결의하면서 2백여 대가 무리지어 도청을 돌격해 가기 시작하였다. … 5월 21일 오전에는 아세아자동차에서 APC장갑차 3대를 포함한 360여 대의 차량이 징발되었다. 무기를 탈취하기 위하여 나주 방면을 향하는 7대의 버스에는 방직공장 여성노동자들이 돌격대가 되어 있었다. 나주경찰서의 무기고에서는 M1소총과 AR소총, 그리고 카빈소총 등이 광주로 반입되었다. 그리고 화순탄광의 돌격부대원들은 화순탄광 광부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다이너마이트와 뇌관을 무기로 얻었다. … 계급구성 기동타격대 사망자 구속자 인원 % 인원 % 인원 % 노동자 생산직 19 63.4 42 31.0 142 36.1 사무직 1 3.3 9 6.5 30 7.6 서비스직 3 10.0 22 16.0 23 5.9 학생 3 10.0 40 29.1 130 33.1 영세상인 2 6.7 1 0.7 13 3.3 농민 1 3.3 4 2.9 33 8.4 무직 17 12.4 10 2.5 가정주부 1 0.7 2 0.5 군인 1 3.3 1 0.7 9 2.3 공무원 1 0.3 총계 30 100.0 137 100.0 393 100.0 기동타격대에 소속되었던 것으로 밝혀진 구속자들 중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성원의 76.7%나 된다. … 확인된 사망자 212명 중 직업미상자 75명을 뺀 137명을 직업별로 나누어 보면 노동자의 비중은 53.5%에 이른다. … 구속자들 중 노동자계급의 비중은 49.6%이다.[4]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린 광주 노동자·민중의 항쟁은 한국 사회 전체를 거대하게 뒤흔들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의 혁명적 패배는 한국의 1980년대를 ‘혁명의 시대’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1950~1953)을 거치며 절멸당한 사회주의 운동이 한국에서 다시 부활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광주민중항쟁의 혁명적 패배로부터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서, 학생운동을 비롯한 급진적인 지식인 전반의 사상적 경향이 빠른 속도로 급진화됐다. 광주민중항쟁을 학살한 군사정권의 잔인한 폭력성에 치를 떨면서 민주화 투쟁이 승리하려면 혁명적인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됐다. 한국 민중들의 민주화 투쟁을 지원하리라 기대했던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이 군사정권을 전면적으로 지지한 것에 대한 충격 속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재인식이 시작됐다. 지식인들의 허약함과 달리 노동자들을 비롯한 기층 민중들이 광주민중항쟁을 끝까지 사수하다 죽음을 맞이한 사실로부터 변혁의 주체로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진지한 재인식이 시작됐다. 광주의 혁명적 민중항쟁이 일주일 넘게 지속되었는데도 철저히 고립된 채 패배한 사실로부터 전국적인 투쟁을 이끌 수 있는 강력한 조직을 건설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이러한 반성적 평가를 바탕으로, 1970년대 민주화 운동과는 그 급진성과 규모에서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혁명적 민주주의 운동이 1980년대 초반에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태동했다. 광주민중항쟁에 대한 역사적 죄의식과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압통치에 대한 분노 때문에 대학생들을 비롯한 지식인 집단 전반에서 혁명적 민주주의 운동에 대한 지지가 매우 높았으며, 엄청난 숫자의 대학생들과 지식인들이 운동에 새롭게 뛰어들었다. 학내시위부터 가두시위까지 전두환 군사정권의 폭압에 항거하는 정치투쟁, 그리고 노동자들을 변혁의 주체로 일으켜 세우려는 학생출신 활동가들의 현장 투신이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어 1980년대 중반에는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게 됐다. 1980년대 초반에 해방신학 등 해외의 진보적 이념들을 소개하는 책자와 팸플릿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더니, 1980년대 중반부터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원전들이 번역되어 팸플릿으로 비밀리에 유통되기 시작했다.[5] 적극적인 실천과 학습, 그리고 치열한 논쟁은 혁명적 민주주의 운동의 가장 급진적인 부분들을 점점 사회주의자로 변모시켜 나갔고, 1980년대 중반을 거치면서는 사회주의 운동을 본격적으로 추구하는 그룹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후주) [1] 경향신문, 2003, 「실록 민주화 운동 (39) 사북 광산노동자투쟁」. ‘덕대’는 “광산업자와 계약을 맺고 광산의 일부를 맡아 채광하는 사람”이다. [2] 동아일보, 1980/04/25. [3] 박준성, 2009, 『노동자 역사 이야기』, 이후, 288~290쪽. [4] 이정로, 1989, 「광주봉기에 대한 혁명적 시각전환」, 『노동해방문학』 1989년 5월호, 18~22쪽(표는 재구성). [5]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1984년 무렵에 가장 먼저 대중화된 원전 팸플릿이었다. 마르크스의 『자본』은 1987년 노동자대투쟁이 한창이던 8월에야 처음으로 책자로 발간되었는데, 노동자대투쟁의 물결 속에서 벌어진 인쇄소 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에 예상보다 보름 정도 늦게 출판됐다.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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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을 폭력만행으로 짓밟는 이재명정부 규탄한다! 연행자를 석방하고 정리해고 철회하라!2026년 2월 2일 10시 30분, 경찰은 세종호텔 로비 농성 중 중인 고진수, 허지희 세종호텔지부 조합원과 연대자들을 집단연행했다. 바로 오늘, 이재명 정부는 생존권 쟁취와 민주노조 사수를 위해 처절한 투쟁을 전개하는 세종호텔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을 짓밟으며 주명건 등 악질 자본가를 비호하는 정부로서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명동에 관광객들이 넘쳐나는데도 민주노조를 겨냥한 표적해고를 철회하지 않는 세종호텔 자본에 맞서, 고진수 지부장은 처절한 336일 고공농성을 진행했다. 고진수 지부장의 처절한 투쟁에 이은 세종호텔 노동자들과 연대자들의 로비농성에도, 세종호텔 실소유주인 ᅠ주명건 세종대학교 대양학원 명예이사장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로비농성 20일째인 오늘, 이재명 정부는 이 처절한 투쟁을 폭력으로 짓밟았다. 2021년 12월, 세종호텔 자본은 ‘코로나로 관광객이 없으니 3층 연회장을 폐쇄해야한다’는 명분으로 민주노조 조합원들을 해고했다. 관광객이 넘쳐나는 지금, 3층 연회장을 운영하는 세종호텔 자본에 조합원들과 연대자들이 항의하자 경찰이 집단연행한 현실은, 세종호텔 자본과 경찰의 긴밀한 협조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추악한 공모와 탄압을 모든 노동자 민중운동의 연대로 박살내자. 민주노조운동의 단호한 투쟁으로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폐하자! 지금 당장 연행자를 석방하라! 세종호텔 정리해고 투쟁으로 박살내자! 노동자 민중 총단결로 정리해고제 철폐하자! 2026년 2월 2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 -
[후기] '지혜복 교사는 공익제보자가 맞다' 2년 간의 투쟁과 연대가 만든 승리2년 전, 지혜복 교사는 학교 내 성폭력 문제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강제전보, 해임당했다. 그리고 1월 29일, 법원은 지혜복이 공익제보자이며 이 전보가 부당하다고 판결해 지혜복 교사의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이는 지혜복 선생님의 2년간의 끈질긴 의지, 그리고 평등하고 안전한 학교와 사회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연대가 만들어낸 승리다. [돌멩_사회주의를향한전진] 2년 전, 지혜복 교사는 학교 내 성폭력 문제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강제전보, 해임당했다. 남학생들은 수년간 구조적으로 여학생들을 성추행하고 괴롭혀 왔으며, 지혜복 교사는 학생들의 증언을 통해 이를 알게 되었다. 지혜복 교사는 피해자를 보호하고 포괄적 성교육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학교는 가해자를 제대로 징계하려 하지 않았다. 더 심각한 것은 성폭력을 신고한 피해자들의 신원이 노출되었음에도 학교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아 2차 피해를 입게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지혜복 교사는 이 사건을 공익신고하고 피해자들을 위해 싸웠으며, 마침내 2년, 740일 간의 투쟁 끝에 1월 29일 법원이 지혜복은 공익제보자가 맞으며 전보는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이 2년간의 'A학교 투쟁'은 한 교사만을 위한 투쟁이 아니었다. 피해자들의 완전한 회복을 위한 투쟁이었고,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리고 이는 지혜복 교사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 안전하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노동자, 학생, 여성, 소수자들의 투쟁이었다. 그래서 지혜복 교사는 혼자가 아니었고, 법원의 판결은 뜨거운 연대가 만들어낸 결과였다. 지혜복 교사가 투쟁하는 동안, 소위 '진보 교육감'이라는 서울시교육감 조희연과 정근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혜복이 공익제보자임을 부정하고, 지혜복 교사를 부당전보·해임했으며, 심지어 형사 고발까지 했다. 이는 소위 '진보적'이라는 서울시교육감들이 책임자들을 처벌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부추겨 학교를 안전하지 않고 불평등한 곳으로 만들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지혜복 교사가 소속된 전교조조차 투쟁을 외면한 사실은 그들의 관료주의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조희연과 정근식 전-현 서울시교육감은 피해자와 지혜복 교사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완전한 회복을 지원하고, 서울 모든 학교에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전면 조사를 실시하며, 포괄적 성교육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지혜복 교사를 즉시 본래 직위로 복직시켜야 한다. 지혜복 교사, 그리고 지혜복과 연대하는 우리는 모두 함께 더 안전하고 평등한 학교와 사회를 위해 더 큰 투쟁을 해나갈 것이다.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English] 2 years ago, Ji hye-bok, a teacher was unjustly and forcibly transferred to another school, for the reason that she whistle-blowed the sexual violence problem in her school. and on 29th January, the court ruled that the transfer was unjust, proving that Ji Hyebok was right. this is victory made by 2 years of passionate and long-standing will of Ji hyebok, and by solidarity of the people aspiring to equal and safe school and society. [script] Hi, I’m Min and today we made significant victory. 2 years ago, Ji hye-bok, a teacher was unjustly and forcibly transferred to another school, for the reason that she whistle-blowed the sexual violence problem in her school. the male students systematically continued to sexually harass and bully female students for years, and Ji hyebok got to know that from the testimonies of the students. she tried to protect the victims and tried to solve the problem with comprehensive educational perspective, but the school doesn’t want to displine the perpetrator properly, and more seriously, the identities of the victims that reported the sexual violence were exposed, but the school didn’t do anything to protect the victims, exposing them to the secondary harming. that’s why Ji Hyebok whistleblowed this case and fought for the victims, and finally after 2 years, 740 days of the struggle, the court ruled today that the transfer of ji Hyebok was unjust. for these 2 years, this ‘A school struggle’ has not been just a struggle of one teacher. it was a fight for the full recovery of the victims, and to change a society that forces silence to the victims of sexual violence. and it was a fight not only by ji hyebok, but by all workers, students, women, and minors who struggled for safe and equal society. that’s why ji hyebok wans’t alone, and the court’s decision was the result of passionate solidarity. While Teacher Ji Hye-bok was fighting, Cho Hee-yeon and Jeong Geun-sik, the so-called ‘progressive chairman of Seoul educational office’ did nothing for her. rather, they denied that ji hyebok is whistleblower, and they forcibly transferred her, fired her, and even filed criminal charges against her. this shows that these so-called ‘progressive chairmen of seoul educational office, not only failed to punish those responsible, but actually encouraged them, making the school unsafe and unequal. and the fact that even the labor union where ji hyebok belong, turned a blind eye to her struggle, starkly reveals their bureaucracy. the chairman of Seoul educational office, must publicly apologize to the victims, and Teacher Ji Hye-bok. they must support the victims' full recovery, and conduct a comprehensive investigation on sexual violence problems, and introduce comprehensive sex education in all schools in Seoul. and, immediately reinstate Ji Hye-bok to her original position. Teacher Ji Hye-bok, and our comrades in solidarity with her, all together will march toward a greater struggle for safer and more equal schools and society. March to Socialism also will be always at that fight. 투쟁! -
[후기] 세종호텔 로비농성 2주, 교섭은 바로 결렬, 복직까지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세종호텔 로비에서 2주 동안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복직을 쟁취할 때까지 계속 싸울 것이다. 이는 단지 세종호텔 노동자들의 투쟁이 아니라, 이 잔혹한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 싸우는 모든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돌멩_사회주의를향한전진] 안녕하세요, 지금 저는 세종호텔에 와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협상 이후로 호텔 로비에서 2주째 농성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오늘 교섭이 있었지만 사측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수백 명이 넘는 노동자와 시민들, 노조를 비롯해 정치단체, 시민단체, 종교단체 등 다양한 조직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을 비롯해, 여러 개인들이 모여 해고된 노동자들과 함께 여기 굳건히 서 있습니다. 현재 해고된 노동자 중 몇 명만이 남아 투쟁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는 결코 몇 명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항상 모든 노동자를 위해 싸워왔습니다. 경영진이 호텔에 도입하려 했던 정리해고법과 비정규직화에 맞서 싸워왔고, 여성, 성소수자, 이주노동자에 대한 모든 차별과 억압에 맞서 싸웠으며, 팔레스타인 해방의 깃발을 높이 들었습니다. 2021년 12월 해고 이후 5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 투쟁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닙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사업장의 담벼락을 넘어선 연대가 필요하며, 바로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노동자와 시민들이 착취, 차별, 억압에 맞서 싸움을 포기하지 않은 이 노동자들을 위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매일 수십 명, 때로는 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함께 농성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 투쟁은 우리가 복직을 쟁취할 때까지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투쟁! [English] at the Sejong Hotel, we’re doing sit-in protest in the lobby for 2 weeks, and we will continue to fight until we win the reinstatement. It's not only a fight of a few Sejong hotel workers, but of all workers fighting against this brutal capitalist system. [Script] Hi I’m Min and I’m here at the Sejong Hotel, we’re doing sit-in protest in the lobby of the hotel now for 2 weeks, since the previous negotiation. today, new negotiation was done but there was no difference on owners’ position, so we, more than hundreds of workers and people, from various organizations, such as Unions, political organization, civil right or religious organization, including my organization march to socialism, and all the individuals are firmly standing here together with the laid-off workers. now among the fired workers, three of them remains and continues to fight, but it’s never a fight of the three. Sejong hotel workers, always has fought for all workers, fighting against lay-off law and irregular working system, that the owner wanted to adopt to hotel and they fought against it. and they has fought against all the discrimination and oppression on women, LGBTs, migrants, and held the flag of Free Paelstine. this struggle, now continuing more than 5 years since the lay-off on december 2021, has really significant political meaning. for this fight to win, the solidarity beyond the borders of working places must be needed, and that’s what’s happenning right now, workers from all different background are concentrating their force for these workers, who never gave up to fight against exploitation, discrimination and oppression. everyday more than dozens of people, many times around hundred people are doing the sit-in protest together, this fight will never end until we win the re-instatement. 투쟁!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미·중 패권대결강대국 간의 충돌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고, 전쟁과 학살은 점점 더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한국의 한 국제정치학자는 이러한 세계의 변화를 ‘우아한 위선의 시대가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고 표현했다.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과연 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에게 제기되는 과제는 무엇인가? <목차> 1.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이어진 사건들 2. 미·중 패권대결의 기본 성격과 현재 지점 3. 트럼프 정권의 미·중 패권대결 대응 전략과 베네수엘라 침공 4. 미·중 패권대결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5. 실천 방향과 과제 2022년 2월 러시아와 나토가 우크라이나에서 출구 없는 대리전을 시작하면서 세계 자본주의는 다시 한 번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2023년 10월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의 팔레스타인 민중들을 집단학살하면서 동시에 중동 곳곳으로 전쟁을 확산시켰다. 2025년 1월 이후 트럼프는 관세를 앞세워 세계 곳곳을 약탈하고 미국의 대도시들을 사실상의 계엄 상태로 몰아넣으면서 마치 조폭깡패가 힘자랑하듯 세계 최강 제국주의 국가의 힘을 휘둘렀다. 지난 4년 동안, 가깝게는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멀게는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지돼 오던 국제질서의 ‘규범’들이 하나둘 흔들리면서 세계는 점점 더 깊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강대국 간의 충돌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표출되고 있고, 전쟁과 학살은 점점 더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한국의 한 국제정치학자는 이러한 세계의 변화를 ‘우아한 위선의 시대가 가고 정직한 야만의 시대가 왔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2026년 1월 한 달 동안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에서 전개된 일련의 사건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기존 국제질서를 뒤흔들며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혼란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이른바 ‘규칙기반 국제질서’에서 희망을 찾아온 이들, 또는 중국·러시아가 열어냈다는 이른바 ‘다극체제’에서 희망을 찾아온 이들은 예상치 못한 사건들 앞에서 혼란과 당혹, 무기력과 절규를 곳곳에서 표출하고 있다. 요동치는 국제질서는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그것은 우리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노동자계급의 관점을 명확히 세우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과연 세계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에 따라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에게 제기되는 과제는 무엇인가? 1.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이어진 사건들 2017년 첫 번째 임기 초반부터 트럼프는 “그들은 엄청난 석유를 가지고 있다”며 베네수엘라 석유에 대한 탐욕과 침공 의사를 여러 차례 공공연히 드러냈다. 2020년에는 미국 법무부가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와 정부 관료들을 ‘마약 테러’ 혐의로 기소했다. 2025년 1월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직후 트럼프는 ‘마약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마약 카르텔을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7월에는 국방부에 마약 카르텔에 대한 공격 개시를 명령했고, 8월부터 대규모 미군 병력이 베네수엘라 인근 카리브 해에 배치됐다. 9월 2일 11명이 탑승한 쾌속정을 마약운반선이라며 폭격해 전원을 사망케 했다. 이때부터 12월까지 최소 105명이 비슷한 방식으로 카리브 해상에서 미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11월 11일 미군의 항공모함 전단이 카리브 해에 배치됐다. 12월 10일과 20일, 베네수엘라 인근 해상에서 유조선 두 척이 미군에게 나포됐다. 12월 16일 미국이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를 ‘해외 테러단체’로 규정했다. 1)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2026년 1월 2일 저녁 10시 46분(미국 동부시간, 베네수엘라 시간으로는 11시 46분),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침공 작전의 개시를 지시했다. 폭격기, 전투기, 정찰기, 헬리콥터 등 150대 이상의 각종 항공기가 동원됐다. 미군의 고출력 전파방해로 베네수엘라의 러시아제·중국제 방공망이 무력화됐고, 전력망에 대한 사이버 공격으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미군이 첨단 극초단파 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3일 오전 2시, 작전개시 두 시간여 만에 미군이 쿠바인 경호부대를 무력화하고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와 부인 플로레스를 납치하여 미국 본토로 이송했다. 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베네수엘라 측에서는 최소 80여 명의 병사와 민간인이 사망했다. 작전이 끝난 뒤에도 미군은 카리브 해를 떠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미군은 카리브 해상에 1만 5천여 명의 병력을 유지하며 베네수엘라에 대한 해상봉쇄를 지속하고 있다. 이번에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해서 대통령 마두로를 납치한 것은 1989년에 파나마를 침공해서 실권자 노리에가를 납치했던 사건과 닮은꼴이다. 또한 2020년에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솔레이마니를 원격조정 드론으로 살해했던 사건과도 닮아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앞선 두 사건 모두 1990년 1월 3일과 2020년 1월 3일에 일어났다. 1월 3일! 이것은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마두로 납치는 어떤 정당성도 가질 수 없는 제국주의 만행이다. 하다못해 유엔헌장의 기준에서 보더라도 타국의 주권을 부당하게 침해하고 국가 간 호혜평등 원칙을 짓밟았다는 점에서 명백한 위반이다. 타국과의 전쟁은 의회 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미국법도 위반했다. 물론 미국이 제국주의 깡패 노릇을 해온 것은 수없이 되풀이돼 온 일이다. 200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2003년에는 이라크를 침공했으며, 바로 지난해에는 이란을 폭격했다. 미국은 매번 그럴싸한 핑계를 내세웠는데, 이번에는 ‘마약테러와의 전쟁’ 논리를 내세웠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거짓 핑계다. 그런데 이번에는 베네수엘라 석유에 대한 탐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그 허술한 핑계를 포장하려는 노력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은 노동자·민중을 억압하는 반동적인 정권이었다. 그러나 마두로 정권이 반민주적이고 반동적이라는 사실은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을 조금도 정당화해주지 않는다. 미국은 마두로를 심판할 어떤 자격, 권리, 권한이 없다. 반동적인 독재자를 심판할 권한은 오로지 베네수엘라 민중에게 있을 뿐이다. 2) 베네수엘라 침공에 이어진 사건들 마두로 납치에 성공한 뒤, 트럼프는 이를 의기양양하게 자랑하면서 다른 나라들 또한 전격적인 침공작전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공공연히 위협했다. 쿠바에 대해서는 “베네수엘라 석유에 의존해 온 쿠바가 곧 무너질 것”이라고 협박했다. 멕시코에 대해서는 “카르텔들이 멕시코를 운영하고 있어서 멕시코에 무언가 행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콜롬비아 대통령 페트로를 지칭하면서는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때마침 격렬한 반정부 시위가 전개된 이란에 대해서는 군사 공격, 사이버 공격, 추가 제재 등의 개입 가능성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7일 트럼프는 2027 회계연도(2026년 10월 시작) 국방예산을 1조 5천억 달러로 증액해 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현재 시행 중인 2026 회계연도 국방예산은 약 1조 달러로 세계 2위부터 10위까지 국방예산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다. 그런데 여기에 5,000억 달러가량(50%) 증액을 요청한 것이다.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증액 요청이다. 같은 날, 트럼프는 기후환경, 인권, 여성, 난민지원, 문화교육, 보건 등에 관련된 국제기구 66개(유엔 산하 31개, 비유엔 35개)에서 미국이 탈퇴하거나 지원을 중단한다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과거에 트럼프 1기 정권이 파리기후협약, 유네스코, 유엔인권이사회에서 탈퇴하고 세계보건기구에서 탈퇴 선언을 한 바 있었다. 바이든 정권이 이것을 되돌려 놓았는데, 트럼프 2기 정권 들어 다시 유엔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고 세계보건기구에 대한 지원을 중단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다른 무엇보다 세계를 뒤흔든 것은 트럼프가 유럽의 동맹 열강들을 공공연히 협박하면서 그린란드 병합 의사를 노골적으로 밀어붙인 것이었다. 1월 3일 베네수엘라 침공 직후부터 트럼프는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를 병합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며 협박을 거듭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지지하거나 묵인했던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은 미국이 나토 동맹국을 군사적으로 공격할 수 있다고 공공연하게 협박하자 갑자기 주권에 대한 맹렬한 수호자로 변신했다. 7일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폴란드·덴마크 7개국이 “그린란드는 그린란드 주민들의 것으로, 덴마크와 그린란드 관련 사안을 결정하는 주체는 오직 덴마크와 그린란드뿐”이라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5일 나토가 그린란드에서 군사훈련을 벌이기로 긴급 결정하고 영국·프랑스·독일·네덜란드·핀란드·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가 소규모 병력을 파견했다. 유럽의 저항에 심기가 뒤틀린 트럼프는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견한 8개국에 대해 2월부터 10%, 6월부터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17일 선언했다. 그러자 18일 유럽 8개국이 “관세 위협은 대서양 관계를 훼손”한다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유럽의회에서 미국과의 무역협정 승인절차를 중단하자’, ‘유럽도 보복관세를 부과하자’, ‘통상위협대응조치를 발동하자’, ‘2026 북중미 월드컵을 보이콧하자’ 등 많은 주장이 유럽 각국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제 유럽은 트럼프 달래기를 넘어 대서양 동맹 붕괴를 감수하는 태세 전환에 나서야 한다는 여론도 급부상했다. 미국 공화당의 온건파 상원의원들도 “나토 분열은 중국과 러시아에 좋은 일”이라며 관세 부과를 반대하고 나섰다. 그런데 오랜 시간 미국의 맹방이었던 캐나다도 트럼프 2기 집권 이후 미국의 51번째 주로 합병하겠다는 협박을 지속적으로 받아 왔다. 20일 새벽 트럼프는 그린란드, 캐나다, 베네수엘라 영토에 모두 성조기가 뒤덮인 지도를 배경으로 자신이 유럽의 지도자들과 회담하는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를 트루스소셜에 올렸다. 20일 낮, 캐나다 총리가 스위스 다보스포럼 연설에서 미국을 강한 톤으로 규탄했다. “과거 미국 중심의 규칙기반 국제질서는 이제 끝났으며, 강자가 약자를 억압하는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했다. … 테이블에 앉지 못하면 메뉴판에 오른다. … 중견국들이 힘을 합치지 않으면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희생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 사이에 긴장이 한창 고조되던 21일, 트럼프는 나토 사무총장과 회담을 가진 뒤 유럽 8개국에 부과한 관세를 취소했다. “유럽과 그린란드 문제를 ‘합의할 틀’을 마련했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나토 동맹국들을 상대로 한 트럼프의 영토 병합 공세는 일단 멈췄다. 하지만 그의 공세는 언제든 다시 시작될 수 있다. 그런데 그린란드 병합을 놓고 유럽을 밀어붙이던 15일, 트럼프는 가자지구 과도 통치와 재건을 주도하기 위해 이른바 ‘평화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유럽 8개국 대상 관세부과를 취소한 21일, 트럼프는 “평화위원회에 러시아의 푸틴도 참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의 맹방 벨라루스도 참여 의사를 밝혔다. 곧바로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와 평화를 논할 수 없다”며 평화위원회 불참 의사를 밝혔다. 중국은 평화위원회 참여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대신 23일 시진핑(중국)-룰라(브라질) 간 정상통화를 통해 ‘유엔의 권위 유지’, ‘브릭스 국가 간 협력’, ‘글로벌사우스의 공동이익 수호’, ‘중국과 중남미 관계의 더 큰 발전 추진’ 등의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발표했다. 한편 국제질서가 이렇게 요동친 1월 한 달 동안, 미국 안에서는 이민자 단속을 둘러싸고 사실상 계엄 상태에 있던 대도시들의 상황이 끔찍한 인명살상으로 발전했다. 1월 8일과 24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민관세단속국(ICE)의 무자비한 이민자 단속에 항의하던 미국 시민권자 두 명이 ICE 요원들의 총격으로 연거푸 살해당했다. 3) 베네수엘라 침공과 미·중 패권대결의 연관성 미국이 베네수엘라 침공을 개시하기 여섯 시간 전인 2일 오후 5시 30분, 베네수엘라를 방문한 중국 특사가 마두로를 만나 세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눴다. 중국 특사의 베네수엘라 방문은 베네수엘라가 미국의 침공위협 앞에서 중국에 계속해서 긴급지원을 요청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서 중국은 ‘중국과 베네수엘라는 전략적 파트너다’, ‘중국은 모든 일방적 강압 행위를 반대하며 각국의 주권 수호를 지지한다’, ‘베네수엘라와 각국의 정상적 협력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냈다. 그러나 중국 특사와 마두로가 헤어지고 세 시간 만에 미국의 침공 작전이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중국의 메시지와 약속, 중국이 베네수엘라에 공급한 무기들은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이 미국의 세계전략 전반과 깊이 연결돼 있다는 것은 자명하다. 오늘날 미국의 세계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중국과의 패권대결이다. 따라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미·중 패권대결과 깊은 상관관계에 있다. 이를테면 <한겨레신문>의 1월 7일자 기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미국이 ‘마약 단속’을 베네수엘라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은 명확하다. 중국의 ‘외부 영향력’을 제거하고 서반구를 완전한 미국 주도의 질서로 재편하려는 것이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석유 장악’을 강조하는 것도 중국이 베네수엘라 석유를 값싸게 확보해온 것을 겨냥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베네수엘라 석유 수출의 약 80%가 중국으로 향했다. 베네수엘라는 중국과 ‘전천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중국의 중남미 핵심 거점이다. 중국 국유 에너지 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과 첨단기술기업 화웨이 등이 베네수엘라에서 대규모로 사업을 하고 있다. 2010~2020년 중국이 중남미에 판매한 무기의 86%를 베네수엘라가 사들였다. 중국은 베네수엘라로부터 석유와 자원을 값싸게 수입하고, 통신 장비와 무기 등을 수출하는 구조다. 특히 중국과 베네수엘라의 위안화 석유 거래가 달러 시스템에 타격을 줄 가능성도 미국을 자극했을 것이다.[1]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은 미·중 패권대결이라는 거대한 전개과정이 드러낸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 침공에 이어진 사건들, 특히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나 가자 평화위원회 구성도 미·중 패권대결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미·중 패권대결의 성격과 동학을 노동자계급의 관점에서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세계를 ‘혼돈’ 속으로 밀어 넣는 사건들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사태의 전개방향을 전망할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그에 대응하는 노동자계급의 실천과제를 올바로 정립할 수 있게 해준다. 2. 미·중 패권대결의 기본 성격과 현재 지점 1) 자본주의 축적위기의 산물이자 축적위기를 가속화하는 요인 오늘날 미·중 패권대결은 1990년대 이후 미국이 주도한 세계화를 통해 중국이 경제적으로 급부상함으로써 시작됐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세계화에 나섰는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겪고 있던 자본의 축적위기, 즉 자본이 손쉬운 이윤 획득과 원활한 확대재생산을 이루지 못하는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서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략 30년 동안 이어졌던 전후호황의 황금기를 뒤로 하고 1970년대에 세계경제가 다시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1980년대에 시작된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는 노동자의 고용·임금·복지를 공격하고 자본에게 감세·민영화의 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자본의 이윤을 인위적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1990년대에 세계화와 금융화가 가세하고서야 자본의 축적위기가 외견상 사라졌다. 세계화는 선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대대적인 공장이동을 통해 선진국 자본의 임금비용을 획기적으로 감축시켰고, 자유무역의 깃발을 든 선진국 자본이 세계의 모든 시장을 마음껏 접근할 수 있게 했다. 금융화는 주식·부동산 등의 거대한 금융거품 조성이나 지대 인상으로 막대한 금융수탈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자본이 착취를 통한 이윤획득의 부족분을 수탈을 통한 이윤획득으로 보충할 수 있게 했다. 자본주의 경제에는 다시 황금기가 찾아온 듯 했다. 그러나 1930년대 세계대공황의 출발점이었던 1929년 미국 주식대폭락이 보여줬던 것처럼, 거대한 금융거품 조성은 애초부터 거품파열의 위험성을 안고 있었고 다시 현실이 되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에 기초한 축적체제에 심대한 타격을 가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국가의 전면적인 경제개입을 통해서만 간신히 연명할 수 있는 빈사 상태, 다시 말해 국가의 전면적인 경제개입을 통해서만 자본의 이윤획득과 대중의 소비수준을 보장할 수 있는 만성적인 축적위기에 빠져들었다. 당연하게도 국가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이 위태위태한 축적위기를 잠재울 해법을 자본주의는 갖고 있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라는 기존의 방책들은 과거와 달리 축적위기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고, 오히려 경제적인 축적위기를 사회 전반의 복합위기로 발전시켰다. 신자유주의 공세는 국가부채 부담을 대중에게 전가하기 위한 대대적인 긴축 공세로 발전했고 상호 결합했다. 신자유주의·긴축 공세는 특히 선진국에서 제조업 이탈과 결합하여 주민의 상당한 부분을 고통스러운 빈곤의 늪으로 빠뜨렸고, 이들을 배경으로 이주민혐오에 기반하고 보호주의·민족주의를 주창하는 극우적인 정치세력이 급성장할 수 있게 했다. 신자유주의·긴축 공세는 또한 부동산 가격급등 및 임대료 상승과 결합하여 세계적으로 청년의 빈곤과 미래 상실을 초래했고, 이는 점점 더 많은 나라에서 사회적 재생산 위기로 이어졌다. 세계 곳곳의 자원개발·생산확장·소비팽창이 가속시킨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지구온난화는 거대한 기후변화를 통해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 자체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축적위기가 지속되고 심화할수록 금융수탈로 자본의 이윤을 벌충해야 할 필요는 더욱 커져갔고, 따라서 2008년 금융위기가 남긴 교훈을 무시한 채 금융거품은 더욱 더 크게 부풀어 올라 세계경제를 일거에 붕괴시킬 상시적인 시한폭탄으로 작동하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중국은 세계의 수많은 공장들을 빨아들인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으로서 지속적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미국과의 격차를 줄여 나갔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때 미국 대비 12.7%에 불과했던 중국의 GDP는 2007년 24.5%로 성장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중국에게 도약의 기회였다. 2011년 중국의 GDP가 미국 대비 48.4%로 급증했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에 미국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2011년 오바마 정권이 국제정책의 핵심 방향으로 ‘아시아로 집중’을 내걸었고 중국을 배제한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했다. 미국과 정반대로 중국은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2012년 시진핑의 집권과 함께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활하는 중국을 꿈꾸는 ‘중국몽’을 말하기 시작했다. 2013년 중국 자본의 적극적인 대외 진출을 선언한 일대일로 정책이 가시화했고, 2015년 첨단기술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하기 위한 ‘중국제조 2025’ 전략이 시작됐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선진국에서 성장하던 보호주의·민족주의 극우세력은 2016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과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성공을 계기로 정치의 전면에 부상했다. 2018년 중국의 GDP가 미국의 67.7%를 기록하던 해에, 트럼프 정권이 중국산 수입품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며 대대적인 무역분쟁을 일으켰다. 마침내 미·중 패권대결이 공공연하게 표면 위로 떠오르는 변곡점이었다. 미·중 패권대결은 바이든 민주당 정권에 의해서 고스란히 계승되었다. 2021년 중국의 GDP가 미국의 77.1%를 기록하던 해에, 바이든 정권은 반도체과학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기술의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조치를 시행하기 시작했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의 글로벌 공급망 분리 정책이 더욱 가속화됐다. 이에 중국은 한편으로 자기완결적인 첨단기술 공급망을 구축하고 내수기반을 확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수출경제를 재편하는 ‘쌍순환’ 전략으로 맞섰다. 그런데 미·중 패권대결은 그 성격상 단순히 경제적 대결에 머무를 수 없었으며, 필연적으로 정치군사적 대결로 확대돼 왔다. 그리고 이 측면에서 미·중 패권대결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넘어 세계질서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중국 또한 세계 자본주의 전반의 극심한 축적위기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하락세에 있는 미국・서유럽・일본의 서구 자본주의와 달리, 중국의 자본주의는 상승세에 있다. 중국은 미국을 제외한 모든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을 추월해 제2의 강대국으로 부상했으며, 패권적 지위를 상당 부분 상실한 미국을 맹렬히 추격하고 있다. 세계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이러한 상황은 러시아, 인도, 이스라엘, 튀르키예 같은 지역적 군사강국들에게 자신의 팽창 야망을 실행할 공간을 열어주고 있으며, 서유럽과 일본은 세계질서 속에서 더 이상의 지위 하락을 막기 위해 적극적인 재무장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유일 패권을 복원하고자 하는 미국의 몸부림과 최강대국으로 부활하고자 하는 중국의 야망은 이 모든 상황을 더욱 가파르게 가속시킨다. 따라서 현 시기의 세계질서는 세계 자본주의 전반의 극심한 축적위기가 지속되고 미국의 패권이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미・중 간 패권대결을 중심으로 열강 간의 다각적인 대립・충돌이 점점 더 격화되는 것을 기본 동학으로 한다. 2022년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 2023년 이후 중동에서의 상황, 2025년 인도-파키스탄 갈등, 2026년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그린란드 병합 갈등이 보여주듯이, 당분간 세계질서는 크고 작은 충돌과 격변에 끊임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공급망의 분리·교란에서부터 군사적 긴장·충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기존의 축적위기를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2) 제국주의 패권대결로서 미·중 패권대결 그런데 미·중 패권대결의 계급적 성격은 무엇인가? 중국은 사회주의 또는 노동자국가인가? 또는 자본주의일지라도 최소한 미국보다는 진보적인가? 그러므로 미국의 유일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은 (그리고 러시아는) 세계의 노동자·민중에게 모종의 희망과 대안을 제시하는가? 중국의 사회성격을 자세히 논하는 것은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다만 몇 가지 두드러진 사례들을 통해 오늘날의 중국이 자본주의 사회이자 제국주의 강대국이라는 점, 따라서 노동자·민중의 입장에서 어떤 진보성도 없으며 어떤 희망이나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하겠다. 중국은 생산수단의 상당 부분이 국유화돼 있지만, 이는 사회적 소유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지 않다. 중국 국가의 실제 주인은 노동자·민중이 아니라 공산당 관료들이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는 민간 자본가들과 깊이 융합돼 있는 공산당 관료들이 노동자·민중을 착취·수탈·억압하기 위한 계급적 지배의 수단일 뿐이다. 중국은 형식적으로 계획경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그 계획의 실제 목적은 노동자·민중의 인간다운 삶이 아니라 자본의 원활한 확대재생산에 있다. 중국 경제는 자본주의의 전형적 특징인 무정부적 과잉생산과 과잉축적에 만성적으로 시달리고 있으며, 과잉생산에 따른 디플레이션도 자주 경험하고 있다. 중국의 거대 기업들은 포춘의 글로벌 500대 기업 리스트에서 130여 개를 차지하며 미국과 1위를 다툰다. 그런데 이와 같은 기업의 화려한 성장 반대편에는 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 주 6일 장시간 노동해야 하는 초과착취 체제가 자리잡고 있다. 제조업에서는 심지어 일요일까지 일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극단적인 초과착취 체제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자주적인 노동조합이 국가에 의해 철저하게 봉쇄되기 때문인데, 이는 중국 국가의 반동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점이다. 중국 자본주의는 높은 수준의 내부 수탈을 기반으로 작동하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것은 중국의 오랜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 2천년 이상 이어져 온 중국의 역사는 제국의 강력한 중심부가 광범한 주변부를 (주로 식량징발을 통해) 수탈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제국의 중심부가 매우 강력해서 광범한 주변부 대부분을 제국 안으로 통합하여 유지해 온 것이 ‘거대한 중국’의 역사적 실체였다고 할 수 있다. 중심부(대도시)가 주변부(농촌)를 수탈하는 구조는 1949년 중국혁명 이후에도 지속됐는데, 1958년 도입돼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농촌 주민의 도시 진입을 엄격하게 차단하는 후커우 제도가 그 대표적인 산물이다. 개혁개방 과정을 거치는 동안에는 중심부가 대도시를 넘어 산업발전이 집중된 동부연안으로 확장되었고 개발에서 소외된 광활한 농촌을 배경으로 하는 중서부내륙이 주변부가 되었다. 개혁개방 이후 전개된 수탈의 대표적인 표현은 동부연안의 산업거점과 대도시에서 일하지만 저임금과 불안정한 생활조건을 강요당하는 중서부내륙 농촌 출신 수억명의 농민공이다. 내부 수탈의 또 다른 표현은 지역 간의 심각한 경제적 격차로 나타난다. 2024년 중국 전체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억 5천의 인구를 포괄하는 (베이징・상하이・톈진의 3대 대도시와 쟝수성・푸젠성・저장성・광둥성의 4개 성으로 구성된) 동부연안은 평균 약 20,000달러의 1인당 GDP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서도 특히 6천 3백만이 거주하는 베이징・상하이・선전의 3개 도시는 평균 약 30,000달러의 1인당 GDP를 기록했다. 반면 중국 전체 인구의 4분의 3을 포괄하는 중서부내륙은 평균 약 11,000달러의 1인당 GDP를 기록했다.[2] 중심부와 주변부 사이의 이 같은 뚜렷한 격차를 중국의 약점으로 보는 시각들이 종종 있다. 물론 노동자·민중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는 중대한 약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이자 제국주의로서 중국에게는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다. 중국 제국주의의 실체는 인구 25%를 포괄하는 중심부(동부연안)이고, 인구 75%를 포괄하는 주변부(중서부내륙)는 사실상 ‘내부 식민지’로 작동해 왔기 때문이다. 중심부(동부연안)가 광활한 주변부(중서부내륙)를 마음껏 수탈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중국의 급속한 부상을 가능케 한 결정적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의 자본가계급은 주변부(중서부내륙)에 대한 체계적인 수탈을 기반으로 거대한 사회적 자원을 산업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고, 중심부(동부연안) 내에서도 광범한 노동자들에게 저임금, 높은 노동강도, 불안정한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을 강제할 수 있었다. 한편 2010년대 이후 중국 정부는 ‘공동의 발전’을 강조하면서 상당수 공장을 중서부내륙으로 보냈다. 그런데 이는 공동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의 이해관계가 그것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첫째, 2010년부터 시작된 동부연안에서의 임금투쟁은 중국 정부로 하여금 자주적 노조운동의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 동부연안을 중심으로 최저임금을 매년 빠른 속도로 올려줄 수밖에 없도록 강제했는데, 이와 같은 임금인상을 감당할 수 없게 된 많은 저부가가치 제조업들이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중서부내륙으로 이동했다. 둘째, 2010년대 중반 시작된 일대일로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중국의 과잉자본에게 출구를 제공하는 것이었는데, 건설・토목을 중심으로 중국 외부에서 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일대일로였다면 제조업을 중심으로 중국 내부에서 출구를 찾기 위한 노력이 중서부내륙으로 상당수 공장을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셋째, 2020년대 들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와의 관계에서 공급망 디커플링과 무역분쟁이 격화되자 중국 정부는 중국 자체적으로 완결적인 공급망 구성과 왕성한 내수 수요 창출을 미국에 맞선 패권대결에서 핵심적인 과제로 추진하게 됐는데, 이를 위해 대대적인 중서부내륙 개발에 나선 것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중국 자본이 진출해 있다. 그런데 이들은 특히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에서 중국식 초과착취 모델을 현지에 이식하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중국 기업의 생산현장과 작업장에서는 산업재해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고 있다. 아동노동 착취, 저임금, 임금체불, 폭력적 현장통제도 만연한 상태다. 자원약탈 때문에 원주민과 충돌하는 사례도 여러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3] 약소국에 대한 중국의 대출과 투자는 약소국의 주권에 대한 침탈 또는 압박으로 이어진다. 중국이 대출상환 지연을 이유로 2017년에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만에 대한 99년 사용권을 확보한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에게 대출·투자를 통해 의회건물이나 이런저런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해 주고 있는데, 이러한 중국의 선물은 늘 해당 약소국이 대만과의 외교관계 단절, 공공사업 입찰에서 중국 기업에 우선권 부여, 중국이 관여하는 사업에 대한 노동법 적용과 환경 규제 완화 등의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것과 연결돼 있다. 중국은 이집트, 탄자니아, 나이지리아 등 40여 개의 아프리카 국가들과 다양한 수준의 안보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안보협력은 항구·철도 같은 일대일로 자산의 보호와 더불어 해당 국가의 병사들을 훈련하는 프로그램도 포함한다. 모잠비크, 나미비아, 세이셸, 탄자니아, 잠비아, 짐바브웨는 무기의 90% 이상을 중국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중국의 방위산업 기업들은 앙골라, 나이지리아, 남아공 등에 사무소를 개설하고서 아프리카 각국에 무기·탄약 공급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거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남중국해 대부분을 자신의 영해로 주장하는 이른바 9단선을 고집하면서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에게 굴욕적 후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 모든 사실들은 오늘날 중국이 자본주의 사회이자 또 하나의 제국주의 강대국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미·중 패권대결은 전형적인 제국주의 패권대결이다. 노동자·민중의 관점에서 볼 때, 미국과 중국 어느 쪽도 진보성을 갖지 않으며, 어떤 희망이나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노동자·민중에게 필요한 것은 노동자계급의 국제연대에 입각해 두 제국주의 강대국 모두에 맞서는 것이며, 이것을 자본주의 철폐와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혁명적 전망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3) 미·중 패권대결의 현재 지점 요약 2018년 미·중 패권대결이 본격화한 이후 미국은 우세한 힘을 갖고 중국을 압박하여 추가적인 성장을 차단하려 했지만, 중국은 점점 더 미국의 압박을 무력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과 중국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중국이 점점 더 대등한 경쟁자의 지위로 다가가는 것이 지금까지의 추세였으며, 이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15년 정도 전만 해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눈부신 성장이 저부가가치 단순조립 제조업에서의 현상이지 고부가가치 첨단기술 제조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다르게 전개됐다. 5년 전 바이든 정권이 임기 초에 친환경 산업을 강조하고 나섰을 때에는 중국이 추격할 수 없으리라고 예상된 이 분야에서 격차를 벌이기 위해서였지만, 불과 2~3년 만에 중국산 배터리와 전기차가 세계 시장을 사실상 석권해 버렸다. 바이든 정권이 임기 후반부에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 성장을 차단하기 위해 첨단 칩의 중국수출을 제한했지만, 중국은 딥시크 충격을 안겼고 이제는 중국의 독자적인 인공지능 칩 개발 가능성에 안달이 난 엔비디아가 중국수출 제한을 풀어달라고 전방위 로비에 나서는 상황이 됐다. 2025년 트럼프의 관세 공격 또한 중국의 희토류 반격으로 무력화됐다. 미・중 패권대결의 대리전이기도 했던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의 지원을 받은 러시아가 사실상 승리를 굳혀가고 있다. 2024년 중국의 GDP는 18.74조 달러로 미국의 28.75조 달러 대비 65.2%를 기록했다. 명목 GDP만 보면, 2021년 77.1%까지 근접했던 중국의 GDP가 미국의 반격으로 상당히 뒷걸음질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구매력 평가 GDP(PPP) 비교는 상당히 다른 그림을 보여준다. PPP 기준으로 중국은 이미 2014년에 미국을 추월했고 이후 격차를 꾸준히 벌이면서 2024년에는 미국 대비 130.9%를 기록했다. 2021년 이후를 보더라도 124.3%, 125.1%, 128.1%로 계속해서 중국과 미국 간의 격차가 확대돼 왔다. 오늘날 중국이 첫 번째 교역파트너인 국가는 세계 190개 국가 가운데 120~130개 국가에 이른다. 반면 미국은 30개 국가 정도에 불과하다. 중국의 눈부신 성장과 달리, 미국은 쇠퇴를 거듭해 왔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제조업 역량의 심각한 후퇴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은 재래식 전쟁을 감당할 수 없는 열악한 산업역량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를테면 미국이 1년 동안 생산할 수 있는 포탄의 양은 우크라이나의 두 달 소모량을 다 충당할 수 없는 정도였다. 국가부채가 GDP의 125%에 이르러 매년 그 이자비용만 국방비에 맞먹을 정도가 됐다는 점도 미국의 쇠퇴를 상징하는 하나의 창이다. 매년 미국 재정적자의 절반가량은 (대중의 최소생활과 소비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의료지원과 생활지원 비용이다. 이것은 신자유주의·긴축 공세로 삭감당한 임금만큼 자본이 획득하는 초과이윤을 국가가 재정을 투입하여 뒷받침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매우 퇴행적인 이 구조는 계급역관계의 급격한 변화 없이는 (즉 급격한 임금상승이나 혹독한 복지중단 없이는) 지속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미국의 국가부채는 당분간 끝없이 부풀어 오를 수밖에 없게 돼 있다. 21세기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치른 두 개의 큰 전쟁에서 모두 패배했다는 사실, 특히 친미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장기간의 시도가 모두 허무한 실패로 끝났다는 사실도 미국에게 큰 부담을 안겼다. 미국이 미·중 패권대결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틈을 타서 여러 지역적 군사강국들이 자신의 팽창 야망을 하나둘 행동에 옮기는 상황도 미국의 정치군사적 패권을 상당 수준 약화시켰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로 남아 있다. 미국의 그러한 지위를 보장해 주는 것은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힘과 압도적인 군사력이다. 중국은 많은 영역에서 미국을 추월했거나 대등한 지위에 올라섰지만, 미국의 패권을 뒷받침하는 이 두 핵심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아직 상당히 열등한 위치에 있다. 미국 연준(Fed)은 매년 ‘국제통화사용지수’를 계산해 발표하는데,[4] 아래 도표는 2001~2024년의 추이를 보여준다. 그 시간 동안 중국이 산업적 역량, GDP, 세계 교역 비중 등에서 엄청난 성장을 거듭해 온 것과 매우 다르게, 중국 위안화가 미국 달러화에 비해 여전히 매우 취약한 위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을 대표하는 것은 군사비 지출과 핵무기 보유량이다. 중국은 최근 매년 7%대의 높은 증가율로 군사비를 증액하고 있지만, 여전히 미국에 한참 못 미친다. 숨겨진 군사비를 더하면 중국의 군사비가 5천억 달러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미국의 절반 수준이다. 중국의 핵무기 보유량은 여전히 미국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중 패권대결의 현재 지점은, 여러 측면에서 중국이 미국을 맹렬하게 추격하고 있고 심지어 추월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달러 패권과 군사 패권이라는 결정적인 양 측면에서 미국이 분명한 우위를 갖고 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중국이 세계패권의 도전자로 부상하면서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상당 부분 상실했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의 패권국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현재 지점에서 미국이 가진 우위는 매우 불안한 것이다. 첫째, 중국이 미국과의 패권경쟁에서 중도 하차할 가능성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의 패권에 도전했던 소련이나 일본이 경제력이나 군사력 가운데 하나에서 결정적 결함을 가졌던 것과 달리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 모두에서 탄탄한 토대를 갖고 있어서다. 둘째, 중국의 상승세와 미국의 하락세가 당분간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3. 트럼프 정권의 미·중 패권대결 대응 전략과 베네수엘라 침공 1) 2025년 12월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의 요지 2025년 12월 5일 트럼프 정권은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을 공개했다. 새 국가안보전략은 트럼프 정권의 기본 방향을 보여주지만, 몇 군데에서 혼선을 유발하는 표현들을 담고 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으로 보인다. 첫째, 트럼프의 정치적 기반인 마가(MAGA) 세력을 고려한 문학적 수사들 때문이다. 둘째, 트럼프 정권의 중요한 전략적 의도 때문이다. 새 국가안보전략에서 혼선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표현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미국이 아틀라스처럼 세계질서 전체를 떠받치던 시대는 끝났다.” “패권은 원해선 안 되는 일이었고 달성할 수도 없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 외교정책 엘리트들은 전 세계에 대한 영구적인 미국 지배가 우리 국가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스스로 확신했다.” “엘리트들은 미국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거대한 복지-규제-행정 국가와 거대한 군사·외교·정보·대외원조 복합체를 동시에 유지할 자금을 댈 수 있다고 보았다.” “요컨대, 우리 엘리트들은 근본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고 불가능한 목표를 추구했다.” 또한 새 국가안보전략에서는 중국에 대한 표현들이 이전보다 완화됐다. 2022년에 바이든 정권이 내놓았던 국가안보전략에서는 중국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의지와 능력을 가진 가장 중대한 장기적·전략적 도전’으로 규정했다. 미·중 패권대결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던 것이다. 그런데 새 국가안보전략에서는 ‘비서반구 경쟁국’이나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국가’ 같은 모호한 표현들을 갖고 중국을 지칭했다. 한편 새 국가안보전략은 ‘서반구(Western Hemisphere)에서 미국의 압도적 우위를 회복’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부여했다. 이 또한 바이든 정권의 2022년 국가안보전략이 미·중 패권대결에 대응하기 위해 ‘중국과 첨단기술·공급망 분리’, ‘민주주의 가치 동맹을 통한 압박’ 등에 최우선 순위를 부여했던 것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준다. 트럼프 정권이 내놓은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은 어떻게 해석돼야 할까? 일부에서는 이를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중대한 변화로 해석한다.[5] 이들은 미국이 새 국가안보전략을 통해 ‘더 이상 패권국이 아님을 스스로 공식 확인’했다고 본다. 이들에게 새 국가안보전략은 ‘미 제국주의 대외정책의 극적 반전을 대표’하고 ‘세계 패권국 지위를 방어하려는 시도의 종언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들은 트럼프 정권의 정책이 ‘주요 적대국(중국·러시아)과의 대결에서는 후퇴하고, 대신 서반구의 약한 동맹국들에 대해서는 약탈, 지배하려는 시도’로 특징지어진다고 본다. 트럼프가 미국의 쇠퇴를 인정하고 ‘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스스로에게 설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패권국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포기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중국과의 패권대결로부터 전혀 물러서지 않았고 물러설 수도 없다. 그 이유와 근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미국 자본주의는 달러 패권에 기초해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달러 패권은 미국이 달러의 무제한 발행을 통해 자신의 경제위기를 전 세계로 전가할 수 있는 기반이다. 천문학적인 국가부채를 끝없이 늘려갈 수 있는 것도 달러 패권 덕분이다. 만일, 달러 패권이 붕괴한다면 미국은 더 이상 대규모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될 것인데, 이는 (대중의 최소생활과 소비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의료지원과 생활지원, (압도적인 군사력 유지를 위한) 국방비 지출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국내적으로는 대규모 경제위기와 계급투쟁의 폭발을 뜻할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군사적 우위의 조속한 붕괴를 뜻할 것이다. 달러 패권의 붕괴는 사실상 미국의 전면적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미국은 달러 패권을 사수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미국의 달러 패권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더 이상 미국의 경제력이 아니라 압도적인 군사력이며, (달러 패권과 군사 패권에 기초한) 세계 패권국 지위다. 오늘날 미국이 패권국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방어하지 않으면서 달러 패권을 사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둘째, 미국과 중국이 서로 세력권을 인정하며 세계를 분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냉전 시기에 미국과 소련은 서방과 동방이라는 각자의 세력권을 이끌며 40년 이상 세계를 분할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미국과 소련이 세력권 분할을 합의하고 그에 따라 상대의 세력권을 존중하면서 각자의 세력권을 구축해 갔기 때문이다. 미국과 소련이 각각 이끈 서방과 동방은 경제적으로도 철저히 분리돼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중 패권대결은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를 하나로 통합시킨 세계화의 기반 위에서 전개되고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에서 보자면, 중국은 라틴아메리카를 포기할 수 없고 미국은 동아시아를 포기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첨단기술과 공급망의 분리가 진전된다 하더라도 이것은 세력권 분할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얘기다. 2차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역사적 사건을 경과하지 않는 한, 세력권 분할은 가능하지 않다. 세력권 분할이 가능하지 않다면, 미국과 중국은 세계 패권을 향한 사활적 대결을 피할 수 없다. 미국 자본주의의 존속을 위해 세계 패권의 사수가 필수적인 것만큼, 중국 자본주의의 활로를 위해서는 세계 패권의 쟁취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셋째, 트럼프 정권의 행동은 중국과의 패권대결로 명확히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 패권대결에 대한 트럼프의 속마음은 ‘중국과의 패권대결이 미국의 최우선 안보사안’이라는 지론으로 유명한 엘브리지 콜비(Elbridge Colby)를 국방부(전쟁부) 정책담당 차관이라는 핵심 요직에 중용한 데서 잘 드러난다. 트럼프 1기 정권 때도 국방부 차관보로 일하면서 2017~18년 미국 국가안보전략 작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콜비는 2021년 자신의 저서에서 ‘경쟁자인 중국에게 패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미국의 모든 국력을 동원해 저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만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가안보전략의 하위문서로 2026년 1월 23일 발표된 미국 국방부의 ‘2026 국가방위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은 이러한 방향을 보다 분명히 보여준다. 새 국가방위전략은 중국을 “19세기 이후 미국이 직면한 가장 강력한 경쟁국가”로 규정했다. 또한 ‘한국이 북한 억지의 일차적 책임을 지고 미국은 결정적이지만 제한적인 지원에 그쳐야 한다’고 전략적 방향전환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전환이 ‘미국의 국방 우선순위와도 더 잘 부합’한다고 했다. 주한미군의 주된 임무를 중국 견제에 두고 대만 유사시 곧바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넷째, 미국이 서반구에 집중하겠다는 것은 중국과 사이좋게 세력권을 분할하겠다는 게 아니라 가장 유리한 지역에서부터 중국을 위축시키면서 중국과의 전면적 대결을 준비하겠다는 전략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트럼프가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의도와 직결되는 만큼 자세히 살펴보자. 2)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서반구에 둔다는 의미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서반구의 남쪽에는 라틴아메리카(중남미)가 있고, 북쪽에는 캐나다와 그린란드가 있다. 미국의 서반구 집중 전략에서 중국과 관련된 부분은 라틴아메리카에 해당한다. 나토에 속한 캐나다와 그린란드는 러시아와 관련지어 뒤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먼저 라틴아메리카를 살펴보자. 흔히 미국의 ‘앞마당’으로 불리는 라틴아메리카는 오랜 시간 미국에 종속되어 제국주의적 수탈을 당해왔다. 특히 1980~90년대 미국이 신자유주의 공세를 전면화할 때, 라틴아메리카는 외채위기, IMF 구조조정, 시장개방, 민영화, 노동유연화, 긴축의 과정을 밟아가며 미국 자본들에게 철저히 수탈당했다. 대륙 전반에 만연한 극심한 빈곤과 불평등 심화는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중남미 각국에서 연성 좌파 정권들이 줄줄이 정권을 잡는 ‘핑크타이드’를 만들어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브라질의 룰라,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네르 등으로 대표되는 중남미 ‘진보’ 정권들은 때마침 진행된 중국의 경제적 급부상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원유·원자재·식량 등 라틴아메리카의 풍부한 자원을 중국이 엄청난 규모로 수입해 간 덕분에 경제적 숨통을 틔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중국 경제의 성장세가 둔화되면서 중남미 각국의 경제도 악화됐다. 2010년대 중후반 중남미 ‘진보’ 정권들은 위기를 맞았고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같은 극우세력이 부상했다. 트럼프와 긴밀히 연결된 중남미 극우세력들의 핵심 정책은 노동유연화·민영화 등을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는 ‘강화된 신자유주의·긴축’과 ‘저항의 범죄화’였다. 물론 극우세력들은 다시 대중의 반발에 부딪쳤다. 그렇게 지난 10년 동안 중남미 각국에서는 미국과 비슷하게 ‘진보’ 정권과 극우세력 간의 정권 주고받기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 중국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경제적 기반과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시켜 왔다. 중국은 중남미 국가들 대부분에서 첫 번째 또는 두 번째 교역파트너로 부상했다. 중국은 전 세계 리튬 매장량의 68%를 보유한 ‘리튬 삼각지대’(아르헨티나·볼리비아·칠레)에 2018년 이후 160억 달러를 투자해 수십 개의 광산·채굴 프로젝트를 확보했다. 중국의 국영기업들은 2018년 이후 중남미 국가들의 전력 부문에 공격적으로 진출하여 칠레와 페루에서 절반 이상의 전력을 통제하고 있으며, 브라질에서도 325억 달러를 투자해 6천만 명에게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의 화웨이는 브라질과 멕시코에서 통신 인프라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은 페루의 찬카이 항구를 건설한 뒤 이를 브라질과 철도로 연결해 태평양-대서양 회랑을 구축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전략적 우선순위를 서반구에 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첫째, 미국의 앞마당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의 경제적 기반과 영향력이 점증하는 상황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을 최대한 위축시킨 뒤 미국이 라틴아메리카의 풍부한 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갖겠다는 것이다. 셋째, 다분히 경제적 성격을 가진 이러한 전략적 목표를 경제적인 방식이 아니라 정치군사적인 방식으로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서반구 집중 전략의 중요한 특징으로, 미국과 중국이 가진 강점과 약점을 철저히 타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제조업 역량이 심각하게 쇠퇴한 미국은 경제적인 방식의 경쟁을 통해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을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 반면 군사적인 견지에서 보았을 때 라틴아메리카는 중국에게 가장 취약한 지역이다. 아직까지 중국의 군사력은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미군을 격퇴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지구 정반대편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거의 힘을 쓸 수가 없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 또한 미국이 오랜 시간 라틴아메리카에서 행사하고 구축해 온 정치적 영향력에는 비교가 안 된다. 특히 트럼프는 최근 중남미 각국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 아르헨티나의 밀레이, 엘살바도르의 부켈레, 에콰도르의 노바아, 칠레의 카스트, 온두라스의 아스푸라 등으로 이어지는 친미 극우정권 연대를 형성해 가고 있다. 미국은 친중 ‘진보’ 정권을 하나씩 군사력으로 (또는 관세공격으로) 타격하는 한편 친미 극우정권을 (파격적인 혜택을 제공하며) 지원·육성함으로써 중남미 각국을 친미·반중 정권으로 채워내려 한다. 트럼프 입장에서 친미·반중 정권들의 핵심 과제는 중국과의 추가 경제협력을 중단하거나 계약을 파기한 뒤 중국 기업 대신 미국 기업들에게 자원과 인프라에 대한 접근을 보장해주는 게 될 것이다. 가장 유리한 곳에서부터 승리를 거둔 뒤 이를 요새화하여 결정적인 전투를 준비하는 것은 군사학의 가장 기본적인 전법이다. 트럼프 정권이 미·중 패권대결이라는 큰 전쟁 속에서 일단 서반구(라틴아메리카)에 전략적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것은 바로 그런 전법을 쓰려는 것이다. 3)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의도 1999~2013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은 라틴아메리카 핑크타이드의 중심에 있었다. 차베스는 1989년 수도 카라카스의 반신자유주의 빈민 봉기로부터 성장해 나간 대중운동의 물결을 타고 1998년 선거로 집권했다. 2002년 미국이 지원하는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지만, 대규모 군중시위에 힘입어 권좌에 복귀했다. 2004년 불신임 국민투표에서도 승리했다.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야심찬 기치를 내건 차베스 정권은 석유·철강 등 기간산업을 국유화하고 빈민에게 주택·교육·의료 혜택을 제공함으로써 주민 과반수의 탄탄한 지지 기반을 구축했다. 강력한 반제국주의 수사를 사용하면서, 미국 제국주의와 공공연한 마찰을 이어갔다. 그러나 차베스 정권은 실제로는 베네수엘라의 종속적인 자본주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국유화는 일부에 그쳤고, 대다수 기업들의 소유권은 건드려지지 않았다. 국유화 방식도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하는 유상 국유화였다. 외채 상환을 거부하지 않았고, 이윤의 해외반출을 허용했다. 거대 기업들에게는 사실상 세금이 면제됐고 막대한 광물자원이 제공됐다. 차베스 정권은 전통적인 자본가계급과 차베스주의를 내건 신흥 자본가계급 모두의 이익을 수호했다. 차베스 정권 아래서 권력은 차베스 개인에게 집중되었고, 통합사회당이라는 단일 정당과 차베스를 추종하는 군부가 국가를 통제했다.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대중은 실질적인 의사결정에서 배제되었다. 차베스주의로 포섭되지 않은 혁명적 좌파는 탄압과 배제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부유층만 선거에 나설 수 있게 한 반민주적인 선거법 때문에 혁명적 좌파는 발언권을 봉쇄당했고 부유한 우파가 차베스 반대진영을 독점했다. 차베스 정권은 핑크타이드에 함께 한 ‘진보’ 정권들 가운데 가장 왼쪽에 있었지만, 이 같은 근본적 한계가 있었다. 차베스 정권의 본질적 한계는 2013년 차베스 사망 이후 권력을 이어받은 마두로 정권에서 폭발했다. 마두로 정권이 들어설 무렵 세계적인 경제위기와 특히 중국 성장세의 둔화 때문에 원유·원자재 가격이 급락했다. 국가 경제의 압도적인 부분을 여전히 석유에 의존하고 있던 베네수엘라는 큰 타격을 받았다. 화폐가치와 가격통제 붕괴로 물가가 하늘 높이 뛰는 상황에서 임금삭감과 연금삭감이 강요됐다. 대중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차 충족되지 않자 주민의 25%에 해당하는 700만이 베네수엘라를 떠났다. 만성적인 물자부족, 의료진 유출, 인프라 파괴, 정전 등으로 의료 시스템도 붕괴했다. 그런 와중에 마두로 정권은 경제위기를 타개하겠다며 특별경제구역을 설치하고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노동법을 무력화했다. 차베스 정권이 과반수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선거에서의 절차적 정당성을 가졌던 것과 달리 마두로 정권은 점점 더 선거부정에 의지했다. 2018년 대선에서는 주요 야권 후보들의 출마가 금지됐다. 2024년 대선에서는 광범한 개표 조작 정황이 뚜렷하게 드러나 전국적으로 대규모 항의시위가 발생했는데, 특히 과거 차베스의 강력한 지지 기반이었던 카라카스의 노동자·빈민 거주지에서 큰 시위가 발생했다. 마두로 정권은 준군사단체 콜렉티보스와 협력해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2천여 명을 체포했다. 한편 2019년 트럼프 1기 정권은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과이도의 쿠데타 시도를 지원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광범한 제재 조치를 취했다. 그런데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러시아산 원유 공급이 막히자 베네수엘라산 원유 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바이든 정권이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를 완화했다. 2024년 바이든 정권은 베네수엘라 대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하고 야당 후보를 당선자로 인정했다. 2025년 트럼프 2기 정권은 초반부터 마두로 정권을 부정하며 베네수엘라 침공을 준비했다. 그리고 2026년 1월 2~3일 베네수엘라 침공 작전이 전격 전개됐다. 트럼프 정권이 베네수엘라를 전격 침공한 것은 미국의 전략적 우선순위를 서반구에 두겠다는 국가안보전략을 구체적으로 실행한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한 의도는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중국과 베네수엘라의 관계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은 베네수엘라에서 수출되는 원유의 80%를 국제시세보다 50% 할인된 가격으로 공급받아 왔는데, 이는 중국이 베네수엘라에 제공한 차관 600억 달러를 원유로 대환받는 과정이었다. 베네수엘라에서 공급받아 온 원유는 중국이 사용하는 전체 원유의 6~7%를 차지했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이후 미국은 카리브 해상에서 베네수엘라를 드나드는 유조선을 계속 나포하면서 베네수엘라산 원유가 중국으로 가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 1월 20일까지 총 7척의 유조선이 미군에게 나포됐다. 한편 마두로 납치 이후 트럼프는 미국이 베네수엘라로부터 최대 5천만 배럴(28억 달러 어치)의 원유를 인도받아 대신 판매한 뒤 그 수익금의 일부를 베네수엘라에게 줄 것인데, 베네수엘라는 이 수익금으로 미국산 상품만을 구입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베네수엘라에서 권력을 승계한 로드리게스 정권은 1월 20일 “미국으로부터 원유판매대금 5억 달러 가운데 3억 달러를 첫 번째 분할금으로 받았다”고 밝혔다. 로드리게스 정권이 트럼프의 요구대로 베네수엘라 원유 수출의 통제권을 미국에게 넘긴 것이다. 둘째,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 자원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최대의 원유 매장량(3,030억 배럴)을 갖고 있다. 베네수엘라 석유가 미국 수중으로 들어가면 미국은 세계 원유 매장량의 30%를 통제하게 된다. 이것은 국제유가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여 인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는 데, 그리고 ‘페트로-달러’ 체제를 방어하여 달러 패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 트럼프 정권의 국무장관은 베네수엘라 침공 직후인 1월 4일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이 미국의 적대국들에 의해 통제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20년 동안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이 운영되는 데서 핵심적 역할을 한 것은 중국이었다. 지금도 중국의 기술자들이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의 인프라를 유지·보수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기술자들을 몰아내고 베네수엘라 석유산업을 장악하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에서 원유생산을 크게 늘리려면 ‘1천억 달러의 비용과 수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예상했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석유자원을 통제한다는 것과 그것을 대규모로 개발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 셋째, 베네수엘라를 미국의 속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안정적으로 관철하기 위해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속국으로 만들려 한다. 미국이 경제적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해 약소국을 침략하여 속국으로 만드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트럼프는 과거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용됐던 방식, 다시 말해 이른바 ‘미국식 민주주의’를 이식해서 친미정권을 수립하는 ‘국가건설’ 프로젝트와는 다른 방식을 사용하려 한다. 마두로를 납치한 직후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에서 친미 야권을 대표해 온 마차도 대신 마두로의 부통령 로드리게스를 베네수엘라의 통치자로 인정하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의 의지를 거역한다면 마두로보다 더 험한 일을 겪을 것이라는 위협과 함께, 자신의 요구를 순순히 따른다면 정권의 안위를 보장할 것이라는 신호도 보냈다. 초기에 혼란스런 메시지를 내던 로드리게스는 시간이 지나면서 트럼프에게 확실히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1월 15일 마차도가 워싱턴에서 트럼프를 만나 노벨평화상을 헌납하던 날, 로드리게스는 카라카스에서 미국 CIA 국장을 만났다. 같은 날 로드리게스는 의회에서 첫 국정연설을 하면서 석유산업 국유화를 되돌리기 위한 탄화수소법(석유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석유산업에 대한 외국자본 투자유치, 기업에 유전운영 자율권 부여, 판매수익 배분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베네수엘라 의회에서 29일 통과되었다. 트럼프 자신이 비난해 왔던 ‘국가건설’ 프로젝트 대신 기존 지배세력을 굴복시켜 베네수엘라를 속국으로 만든다는 트럼프의 구상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공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무엇보다 트럼프가 베네수엘라 지배세력의 실체를 정확히 간파했기 때문이다. 노동자·민중 위에 군림하는 억압적 세력이라는 점, 제국주의의 압도적인 힘을 보여주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순순히 굴복할 세력이라는 점, 그렇게 주종관계가 설정되고 나면 제국주의의 이해관계를 지키는 하수인으로서 노동자·민중을 효과적으로 억압할 세력이라는 점 말이다. 넷째, 미국의 군사적 우위와 중국의 군사적 열세를 실제 이상으로 극대화하여 드러냄으로써 미국의 패권적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것이다. 미국은 베네수엘라 침공 과정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과시했다. 특히 중국제·러시아제 방공망을 철저히 무력화함으로써 베네수엘라만이 아니라 중국·러시아에 대해서도 군사적 우위에 있음을 과시했다. 물론 이것은 라틴아메리카라는 미국에게 매우 유리한 지역에서 벌어진 일로서 실제 격차보다 다분히 과장된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베네수엘라 침공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극우정권들이 공개적으로 환호를 보낸 것과 달리, 브라질의 룰라나 멕시코의 셰인바움 같은 ‘진보’ 정권들은 잔뜩 움츠러든 채 모호하고 추상적인 원론적 입장만을 내놓았다. 미국은 이번 베네수엘라 침공을 통해 향후 라틴아메리카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정치군사적 행동과 위협을 통해 자신의 의도를 관철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교두보를 확보했다. 4. 미·중 패권대결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1) 미 국가안보전략에 담긴 또 하나의 의미: 동맹 질서의 재편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에는 트럼프 정권의 중요한 의도가 하나 담겨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를 중국 편에서 떼어내고 나아가 미국 편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푸틴에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고 있다. 트럼프 정권의 새 국가안보전략이 ‘미국은 더 이상 세계 패권을 추구하지 않으며 다극 세계질서를 인정하면서 서반구에 집중할 것’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는 방식으로 쓰인 것은, 한편으로 마가(MAGA) 세력을 고려한 산물이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다극 세계질서’라는 푸틴의 슬로건에 공명하려는 의도였다고 할 수 있다. 국가안보전략은 러시아를 미국의 위협으로 규정하지 않은 대신, 유럽연합이 미국의 분쟁 종식 노력을 방해했다고 규탄했으며, 유럽이 ‘문명의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나토가 영구적으로 확장되는 동맹이라는 인식을 종식시키고 그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방지하겠다’면서 러시아의 핵심 요구를 수용할 뜻을 내비쳤다. 사실 트럼프는 러시아를 끌어당김으로써 미·중 패권대결의 판을 흔들고자 하는 의도를 두 번째 취임 직후부터 드러내 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트럼프 정권의 태도 또한 바로 이러한 의도에 의해 규정돼 왔다. 이에 대해 푸틴은 외견상으로는 트럼프의 유혹을 뿌리치며 중국과의 동맹을 강조하는 공식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미국이 러시아에게 어떤 대가를 제공할 수 있는지 확인할 용의가 있다는 점 또한 굳이 숨기지 않았다. 러시아 입장에서도 중국의 하위 동맹자가 된다는 것은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경제적 측면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역사적 맥락과 군사적 역량이란 측면에서 불만스러운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은 트럼프가 푸틴에게 한걸음 더 적극적으로 추파를 던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푸틴 정권은 국가안보전략이 공개된 직후 ‘러시아의 미래 비전과 부합’한다고 긍정적으로 화답했다. 또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의 공동주범인 트럼프가 제안한 가자 지구 ‘평화위원회’ 참여도 수락했다. 트럼프가 푸틴에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는 것은 러시아의 선택이 미·중 패권대결의 향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계산하기 때문이다. 만일 러시아가 미국 편으로 붙는다면 (미국과 중국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는) 인도 또한 러시아를 따를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과거 고립된 소련을 몰락시켰던 것처럼 고립된 중국을 밀어붙일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의도가 실제 성공할 가능성은 그렇게 높아 보이지 않는다. 트럼프는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과정에서 푸틴에게 큰 선물을 안겨줘야 할 텐데, 그 과정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반발을 잠재우는 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의 새 국가안보전략이 말하듯, 러시아의 손을 들어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결시키려는 미국의 의도는 그동안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적극적 반대로 계속 좌절돼 왔다. 유럽은 만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승리로 마무리한다면 그 파장이 우크라이나에 그치지 않고 구 소련권 또는 심지어 구 동구권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고, 이는 또 다른 전쟁을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착된 형세를 돌파하기 위해, 트럼프는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극우정권 연대와 비슷하게 유럽에서도 극우세력 연대를 추진하겠다고 국가안보전략에서 밝혔다. 이를테면 “친미적 입장을 유지하면서 자주성과 전통적 유럽 생활방식의 보존·복원을 추구하는 정당과 운동, 지식인 및 문화계 인사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극우정권들이 트럼프를 중심으로 강한 주종관계로 묶여 있는 것과 달리 유럽의 극우세력들은 트럼프에게 별로 의존적이지 않은데다가 스펙트럼도 훨씬 넓다. 이런 상황에서, 그린란드와 캐나다를 향한 트럼프의 영토 팽창 야욕은 자신의 동맹 질서 재편 구상을 훨씬 더 실현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침공 직후 기세를 몰아 그린란드에 군사력 동원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유럽 8개국에 관세 부과를 위협하며 그린란드 병합 의지를 관철하려고 해 보았지만, 유럽의 반발과 금융시장이 보내는 위험신호 앞에서 일단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의 ‘도를 넘은’ 탐욕에, 유럽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다. 극우세력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2024년 11월 트럼프의 선거 승리를 크게 반겼던 유럽 극우세력들은 트럼프가 2025년 일방적 관세 부과와 방위비 지출 압박에 이어 2026년 베네수엘라 침공과 그린란드 병합 시도까지 나서자 일제히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흥미로운 지점은 라틴아메리카의 극우가 트럼프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적극 지지하고 환호한 것과 달리 유럽의 극우는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의사에 적극 반발한다는 점이다. 유럽은 라틴아메리카와 달리 미국의 종속국이 아니라 (비록 열세에 있을지라도) 경쟁하는 제국주의 열강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의 극우세력은 유럽연합·유엔 등이 자국의 이민·경제정책 등에 개입하는 것을 ‘주권침해’라고 반대하는 ‘고립주의’에 입각해 세력을 확장해 왔기 때문에, 트럼프의 노골적인 주권침해에 반발하는 게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만일 트럼프가 그린란드 병합을 계속 추진한다면 트럼프와 유럽 극우 사이의 균열은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스페인 등 서유럽 제국주의 열강의 극우들은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트럼프의 러시아 끌어당기기 카드는 그 자체로도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는데, 트럼프 자신의 영토팽창 야욕까지 뒤섞이면서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만일 트럼프가 지금 같은 방식으로 일을 밀어붙인다면, 미국이 러시아를 얻는 과정은 동시에 유럽을 잃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중국 입장에서 러시아 대신 유럽을 동맹으로 얻을 수 있다면 꼭 손해만은 아닐 수 있다. 그러한 사태전개의 가능성은 역으로 트럼프가 러시아 끌어당기기 카드를 계속 추진할 동력을 크게 약화시킬 것이다. 2) 미·중 패권대결의 최후 해결책: 군사적 정면대결 미국과 중국을 각각 중심에 둔 동맹 질서가 어느 한편으로 크게 기울면서 한쪽이 심각하게 고립당하는 길로 가지 않는 한,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은 최종적으로는 군사적 정면대결을 통해서 패권의 향방을 결판 짓는 길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의 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이며, 지금으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다. 물론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국제적 투쟁이 그러한 군사적 정면대결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말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군사적 정면대결이 펼쳐진다면 그 핵심 전장은 어디가 될까? 그것은 단연 동아시아에서 서태평양에 이르는 지역이 될 것이다. 왜 그런가? 첫째, 이 지역은 미국의 해양세력과 중국의 대륙세력이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팽팽하게 맞부딪치고 있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과 한국을 동맹으로 이끌고 있고, 중국은 러시아와 북한을 동맹으로 이끌고 있다. 둘째, 중국은 서태평양에 대한 미국의 통제력을 분쇄하고 미군을 서태평양 동쪽으로 몰아낸 뒤 중국 근해에서 서태평양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에 대한 통제권의 수립을 전략적 목표로 갖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전략적 목표는 이미 2013년 시진핑이 베이징을 방문한 미국 국무장관에게 “광활한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대국을 수용하기에 충분히 넓다”며 태평양 양분론을 제기했을 때 공공연한 사실이 되었다. 이것은 일본·한국·대만 등의 동아시아와 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시아 전반을 중국의 영향력 아래 두겠다는 것이다. 이에 맞서 미국은 일본과 한국에 6만 4천여 명의 미군을 배치하고 있고, 대만에 점점 더 많은 무기를 공급하고 있으며, 서태평양부터 대만해협까지 대규모의 해군 전력을 상시 가동하고 있다. 셋째, 오늘날 중국・일본・한국・대만을 포괄하는 동아시아는 세계 자동차 생산의 43%, 반도체 생산의 75%, 선박 건조의 95%를 차지하는 ‘세계의 공장’으로서 세계 자본주의의 향방을 결정할 만한 위치에 있다.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을 몰아내고 패권을 수립한다면, 세계적으로도 미국을 능가하는 최고의 패권국으로 올라설 것이다. 반대로 미국이 중국의 야망을 좌절시킨다면, 미국은 중국의 추격을 뿌리치고 유일 패권을 다시 한 번 확립하게 될 것이다. 만일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군사적 정면대결이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을 중심으로 전개된다면, 그 전쟁은 어떤 양상을 띨까? 첫째, 그 전쟁은 (인류의 공멸로 가지 않을 것이라면) 핵 전쟁이 아닌 재래식 전쟁으로 전개되겠지만, 대신 사상 최대 규모의 파괴력을 동원하는 전쟁이 될 것이다. 2025년 기준 미국·일본·한국 동맹이 가진 병력 수는 총 205만(135만+25만+45만)이고, 중국·러시아·북한이 가진 병력 수는 총 470만(200만+150만+120만)이다. 여기에는 세계 5대 군사강국 가운데 4개국이 포함돼 있으며, 전통적인 군사장비부터 첨단기술 군사장비까지 중무장한 군대들과 산업적 역량들이 포괄돼 있다. 둘째, 그 전쟁은 아마도 대만이나 한반도를 둘러싸고 시작될 가능성이 높겠지만 어디서 시작되든 빠른 속도로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전체를 포괄하는 전쟁으로 확산될 것이다. 육지에서는 중국의 동부연안, 북한, 러시아 극동지역, 대만, 한국, 일본이 모두 전장이 될 것이고, 해양에서는 중국 근해부터 서태평양에 걸친 영역이 모두 전장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을 핵심 전장으로 하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군사적 정면대결로부터 얼마나 가까이 있을까? 합리적으로 추론해 본다면, 다행히 10년 이상의 시간은 아직 남아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 모두 필수적인 군사적 준비를 위해 최소한 1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군사적 준비가 끝나더라도 엄청난 규모의 대량 파괴와 살상을 수반할 수밖에 없는 대규모 결전을 최종 선택하기까지는 아마도 또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중국 간의 군사적 정면대결이 시작되는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15~20년 뒤, 다시 말해 2040년대의 어느 시점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미국과 중국은 각각 어떤 군사적 준비가 필수적인 상황인 것일까? 먼저 중국은 무엇보다 핵무장을 강화해서 핵전쟁을 피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핵균형(상호확증파괴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 최근 중국은 매년 핵무기를 100기씩 추가하면서 2025년 기준 600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지는데, 현 속도라면 10년 뒤에는 대략 1,500기의 핵무기를 갖추게 된다. 이는 미국의 전체 핵무기 수에 비하자면 여전히 절반에 훨씬 못 미치지만 미국이 오랜 시간 유지하고 있는 실전배치 핵무기 수와는 거의 비슷하게 된다. 항공모함 전력을 따라잡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은 2035년까지 항공모함 6척을 추가 건조해 9척을 운용할 계획인데 그렇게 되면 11척을 운용하는 미국에 버금가게 된다. 미국은 무엇보다 재래식 전쟁을 뒷받침할 제조업과 해군력을 뒷받침할 조선업을 재건해야 한다.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에서 벌어질 전쟁에서 해군력이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될 것임을 감안할 때 미국과 중국 사이의 조선업 격차는 미국의 큰 약점이다. 오늘날 중국이 세계 조선업의 55%를 차지하는 반면 미국은 0.1%만을 차지한다. 미국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건조한 총톤수보다 많은 톤수를 중국의 한 조선소가 1년 만에 건조해 낸다. 2025년 현재 중국과 미국의 해군함정 수는 370척 대 297척인데, 당분간 격차가 더 벌어질 상황이다. 중국의 첨단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응할 수 있는 무기체계도 개발해야 할 것이다. 15~20년 뒤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을 핵심 전장으로 하는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정면대결 가능성을 전망하는 것은 과도한 예단이 아니냐는 반론이 예상된다. 현실에는 수많은 변수가 작동하는 법인데 시기까지 특정해 가면서 그렇게 전망할 수 있느냐는 문제제기는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실제로 현실은 앞에 얘기한 전망과는 꽤 다른 그림으로 전개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전망을 생각하고 얘기하는 것이 갖는 결정적인 유익함이 있다. 꼭 그런 전망대로는 아닐지라도 대략 유사한 형태의 세계사적 격변과 도전이 우리 앞에 가까이 있음을, 따라서 그에 대응할 수 있는 노동자·민중의 운동을 각국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적인 수준에서 시급히 건설해 나가야 할 중차대한 필요성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특히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사는 우리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 학살, 베네수엘라 침공, 그린란드 병합 시도 같은 사건들이 그저 머나먼 나라의 역사 속 한 장면 같은 이야기들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상대적으로 안온한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거대한 핵폭풍의 전조로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그러한 해석에 기초해 노동자계급의 실천적 대응능력을 비상하게 발전시켜 가는가 여부는 머지않은 미래에 엄청난 차이로 돌아올 것이다. 20세기의 첫 15년 동안 독일과 러시아에서 펼쳐졌던 운동의 차이가 마침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엄청난 차이로 돌아왔던 것처럼 말이다. 5. 실천 방향과 과제 자본주의가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다운 모습을 점점 더 분명히 드러내는 상황에서,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서는 노동자·민중의 운동을 각국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건설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노동자계급에게 사활적인 과제다. 그런 관점에서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미·중 패권대결’을 살펴본 오늘, 우리의 실천이 나아갈 방향과 과제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 보겠다. 첫째, 전 세계 노동자·민중과 함께 한국의 노동자·민중 또한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을 규탄하는 투쟁에 나서야 한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이 갖는 부당함을 규탄하는 것은 사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더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은 이것이 베네수엘라와 라틴아메리카 노동자·민중만의 고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끝내는 전 세계를, 그리고 특히 이곳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끔찍한 참화와 학살로 끌고 들어갈 제국주의 전쟁기계가 작동한 결과라는 사실이다. 지금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에 맞서 싸우는 것은 미래에 바로 우리에게 닥쳐올 훨씬 더 끔찍한 전쟁과 학살을 저지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둘째,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규탄하는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국제연대는 노동자·민중을 억압하면서 허구적인 반제국주의 깃발을 휘날리는 반동적 정권들과 철저히 독립된, 노동자·민중의 자주적 운동으로서 전개되어야 한다.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권의 반동적인 성격은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베네수엘라 노동자·민중의 대중운동을 발전시키는 데서 결정적인 방해물이었고 지금도 그러하다. 그와 같은 반동적 정권들의 역할에 대한 일체의 환상과 결별할 때에만, 노동자·민중의 반제국주의 운동은 흔들림 없이 일관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셋째,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규탄하는 투쟁은 세계 노동자·민중의 반제반전 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한 큰 흐름의 일부가 돼야 하며, 특히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국제연대 운동과 결합돼야 한다. 지난 2년 동안 가자 집단학살에 맞서 세계 곳곳에서 전개된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은 세계 노동자·민중의 반제반전 운동에서 중심으로 떠올랐다. 특히 온건한 BDS 운동에서부터 격렬한 가두시위, 점거, 수무드 선단까지, 나아가 학살지원을 직접 중단시키기 위한 총파업까지 다양한 투쟁수단을 발전시킴으로써 노동자·민중의 반제반전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구축해 왔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 규탄 투쟁을 팔레스타인 연대운동과 결합시키는 것은 노동자·민중의 반제반전 운동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넷째, 노동자·민중의 반제반전 운동은, 특히 이곳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는, 미·중 패권대결이 동아시아와 서태평양을 핵심 전장으로 하는 군사적 정면대결로 나아가는 고리를 끊기 위한 노동자·민중의 국제적인 운동을 건설하는 길로 전진해야 한다. 우리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획기적으로 완화하기 위해 주한미군·주일미군 철수와 북한의 핵무장 해제를 동시에 요구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모두의 간섭과 침략을 거부하는 대만의 평화적인 자주독립, 따라서 친미 또는 친중 자본가계급이 아닌 노동자·민중 권력에 의한 대만의 자주독립을 지지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중 패권대결이 종국에는 군사적 정면대결이라는 끔찍한 참화와 집단학살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폭로하고 경고하면서 그러한 제국주의 전쟁책동을 반대하고 저지해 낼 노동자·민중의 거대한 반제반전 운동을 한국·일본·미국·중국·대만·북한·러시아에서부터 나아가 전 세계에서 건설해 나가야 한다. (끝) [1] 박민희, <한겨레신문>, 2026/01/07, ‘중국특사 만난 뒤 붙잡혀간 마두로...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까’ [2] 2024년 중국 전체 14억 인구의 1인당 GDP는 13,317달러였다. [3] 안드레 바비에리, 2025, 「세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의 중국」 [4] 연준의 국제통화사용지수(Index of international currency usage)는 세계적으로 공개된 외환 보유고(25%), 외환 거래량(25%), 외화 채권 발행(25%), 외화 및 국제 은행권 채권(12.5%), 외화 및 국제 은행권 부채(12.5%)에서 각 통화가 사용되는 비중을 가중 평균한 값이다. [5] 미하엘 브뢰브스팅, 2025/12/11, 「트럼프의 새 국가안보전략: 미 제국주의의 다극세계 전략 제시 /* 스크롤 여백만 주고, 화면에는 안 보이게 */ .ftn-target { display: inline-block; /* 줄바꿈 안 생김 */ width: 0; height: 0; scroll-margin-top: 200px; } document.addEventListener("DOMContentLoaded", function () { // name="_ftn1", name="_ftn2", name="_ftnref1" ... 전부 대상 document.querySelectorAll('a[name^="_ftn"]').forEach(function(a) { var idValue = a.getAttribute("name"); // 이미 같은 id의 요소가 있으면 또 만들지 않음 if (!document.getElementById(idValue)) { var span = document.createElement("span"); span.id = idValue; span.className = "ftn-target"; a.parentNode.insertBefore(span, a); } }); }); /* 본문 각주 번호 + 아래쪽 각주 번호 색 지정 */ a[href^="#_ftn"] sup, a[href^="#_ftnref"] sup { color: #BF202D; } /* 밑줄이 보기 싫으면 */ a[href^="#_ftn"], a[href^="#_ftnref"] { text-decoration: none; } /* 마우스 올렸을 때 살짝만 강조하고 싶으면 (선택) */ a[href^="#_ftn"]:hover, a[href^="#_ftnref"]:hover { text-decoration: underline; } /* 페이지 전체가 오른쪽으로 넘치지 않게 */ html, body { max-width: 100%; overflow-x: hidden; } /* 본문 영역 폭 강제 고정 + 긴 단어/문장도 줄바꿈 */ #bo_v_con, .bo_v_con, .cke_editable, article { max-width: 100%; overflow-wrap: break-word; word-wrap: break-word; /* 구형 브라우저용 */ } /* 워드에서 붙은 이미지/표가 화면 밖으로 안 나가게 */ #bo_v_con img, #bo_v_con table, .bo_v_con img, .bo_v_con table, .cke_editable img, .cke_editable table, article img, article table { max-width: 100% !important; height: auto; } /* 워드가 p, span에 폭을 박아놓은 경우 강제로 해제 */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bo_v_con p[style*="width"], .bo_v_con span[style*="width"], .cke_editable p[style*="width"], .cke_editable span[style*="width"], article p[style*="width"], article span[style*="width"] { width: auto !important; max-width: 100% !important; } -
세종호텔 로비농성장에서 미국 셧다운 연대 구호를 외치다1월 30일, 현지 시각으로 지금 미국에서는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의 반ICE(이민세관단속국), 반 트럼프 투쟁에 연대하는 전국적 셧다운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세종호텔 저녁집회에서 미니애폴리스 투쟁과 전미 셧다운에 연대하는 구호를 함께 외쳤습니다. 미니애폴리스를 포함한 미국 전역에서는 ICE와 미국 트럼프 정부의 국가폭력에 맞서 자치공동체를 꾸려 방한물품과 식량을 구비하고, ICE의 탄압으로 인해 바깥에 나오지 못하는 이주민들에게 물품을 전달하고, ICE 요원에 폭력에 맞서 거리에서 퇴거에 맞서 싸우는 등의 연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세종호텔 9차 교섭 집회에서 경찰의 간섭과 채증을 물리치며 함께 외쳤던 '경찰 빠져' 구호는 시위대의 'ICE OUT!' 를 떠올리게 합니다. 수많은 연대물품이 시시각각 도착하는 로비농성 풍경은 미니애폴리스 투쟁과 우리의 투쟁이 비슷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NO ICE! NO KKK! NO fascist USA! (ICE, KKK, 파시스트 미국은 꺼져라!) Minnesota make us proud! General strike shut it down! (우리는 미네소타의 투쟁이 자랑스럽다! 총파업으로 세상을 멈추자!)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단결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 Instagram에서 이 게시물 보기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marchtosocialism)님의 공유 게시물 ----- [English] [January 30 Sejong Hotel Lobby Sit-in: Solidarity with the U.S. Shutdown] On January 30, in US there is a nationwide shutdown against Trump and ICE. Same day in Seoul, South Korea, international solidarity for shutdown echoed as well. The Sejong Hotel Labor Union, affiliated with the Korean Confederation of Trade Unions (KCTU), has been fighting for reinstatement since 2021, when it faced targeted layoffs to union. This struggle continues to this day in 2026. Union Branch Chief Go Jin-su conducted an extreme struggle, occupying a tower in front of the hotel for over 300 days until January this year. After ending the tower occupation, union members and protesters have occupied the hotel lobby, continuing their occupation and protest for over two weeks. At a rally held ahead of negotiations between the union and hotel, the union and protesters chanted 'Police, get out!' together, repelling police intervention and evidence collection after officers stormed the hotel, ultimately driving them away. This echoes the US protesters' chant of ‘ICE OUT!’ Solidarity supplies continue to arrive at the lobby protest site by the hour, reminiscent of the mobilization of communities across the nation organized to confront state violence. On January 30th, at the daily evening rally at the Sejong Hotel, participants chanted slogans in solidarity with the Minneapolis struggle and the nationwide shutdown. NO ICE! NO KKK! NO fascist USA! Minnesota make us proud! General strike shut it down! The people united will never be defe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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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집담회]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미중 패권대결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미중 패권대결 ※첨부파일에서 자료를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 일시: 2026년 1월 30일(금) 19시 - 장소: 강북노동자복지관 205호 (서울 마포구 환일길 13, 충정로역 인근) ※온라인 Zoom 참가 병행 - 발제: 양준석 국제연대위원장 - 사회: 정은희 정책선전위원 미국이 1월 3일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고 마두로 대통령을 납치했습니다. 명백한 제국주의 침략행위입니다. 마두로가 '마약 카르텔의 수장'이라고 증거도 없이 주장하는 트럼프의 실제 목적은,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마음껏 수탈하는 것입니다. 이미 작년부터 미국은 카리브해 군사배치, 민간선박 폭파, 유조선 나포 등 베네수엘라 침공을 준비해왔습니다. '돈로 독트린'을 언급하며 미주대륙 전체에 대한 제국주의 수탈 야욕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콜롬비아를 공격하고 그린란드도 병합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미주대륙에 대한 식민주의 행보는 중국과의 전면전을 준비하는 걸음입니다. 미중 패권대결의 맥락에서 베네수엘라 침공을 둘러싼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고, 노동자계급의 반제국주의 투쟁의 전망을 모색합니다. -
[번역] 미니애폴리스의 분노와 조직화: 역사적 봉기의 연대기Left Voice는 ICE(이민세관단속국)가 지역사회를 휩쓴 잔혹한 공격에 맞선 시위가 벌어진 이틀간 미니애폴리스 현장에 있었다. 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미국 노동자들을 위한 계급투쟁의 새로운 장을 예고할 수 있다. 글쓴이: Lila Walters 2026년 1월 26일 Left Voice에 게재된 기사를 번역 미네소타 주민들은 한 달 넘게 트윈 시티에서 ICE(이민세관단속국)를 몰아내기 위해 싸워왔다. 트럼프 행정부가 "메트로 서지 작전(Operation Metro Surge)"을 승인하고 수천 명의 연방 요원을 거리에 풀어 이민자와 그 지역사회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한 때부터다. 미니애폴리스와 세인트폴 사람들은 즉시 행동에 나섰다.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의 경험을 참고해 동네 안에서 조직을 꾸려 순찰대를 만들고 ICE 요원을 식별해 미행했다. 또한 자신들의 권리와 이민자 이웃의 권리를 외우고, 등굣길이나 교회 가는 길에 ICE의 납치를 두려워해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식료품을 배달했다. 이는 2020년 'BLM(Black Lives Matter)' 운동 당시 국가 탄압의 잔혹함을 직접 겪었던 활동가들부터, 제2기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및 소위 "피난처 도시”를 향한 공격으로 처음 정치화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역 수백 명의 일상이 되었다. 한편, ICE의 전술은 더 고조되었다. 체류 신분에 상관없이 유색인종을 표적으로 삼고, 사복을 입고, 아이들을 미끼로 부모를 납치하며, 항의하거나 만행을 기록하려는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했다. ICE와 연방 요원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명시적인 승인 아래 점점 더 잔인하게 도시를 휩쓸고 다니는 와중에도, 각계각층의 미네소타 사람들은 이웃, 동료, 학우,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이미 ICE에 끌려간 사람들을 위한 정의를 요구하기 위해 거듭 적응해 왔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ICE 요원들의 미행을 막기 위해 등하교를 함께 하고, 사람들은 매일 요원들이 배치된 건물 앞에 모여 시위하였다. 사람들은 ICE요원들이 묵고 있는 호텔 밖에서 소음 발생기와 심지어 밴드까지 동원해 요원들이 잠들지 못하도록 몇 시간씩 피켓 시위를 벌였다. 지역 상점의 노동자들은 일터를 보급품 분배 센터로 바꾸었고, ICE 목격 정보를 알리는 네트워크는 더 조직화되고 확장되어, ICE 요원이 등장한 현장에 몇 분 안에 사람들을 조직해 보낼 준비를 갖췄다. 참여하는 시민들은 이 모든 활동이 목숨을 건 일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ICE는 거리를 떠나지 않았고, 요원들은 더욱 대담해지기만 했다. 르네 니콜 굿(Renee Nicole Good)이 대낮에 살해당한 것에 항의하는 시위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상황을 진정시키려 하지 않았다. 대신 수백 명의 연방 요원을 추가로 모집해 도시에 배치하고 시위대를 "내부 테러리스트"라고 불렀다. 행정부는 굿을 살해한 요원을 포함해 ICE 요원들에게 완전한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것을 옹호했다. 트럼프 관리들은 중환자실 간호사 알렉스 프레티(Alex Pretti)가 살해된 후에도 거짓말을 퍼뜨리며 연방 요원들을 "피해자"라고 불렀다. 이에 따라 미니애폴리스의 시민들은 투쟁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역 종교 지도자, NGO, 영향력 있는 노조들이 평소와 같은 업무를 중단하는 도시 전역 경제의 정지를 호소했다. 불과 일주일 만에 수십 개의 노조와 사회·정치 단체들이 이 호소에 지지를 보냈으며 미네소타 사람들은 응답했다. 일도, 학교도, 쇼핑도 멈추다 1월 23일, 이 지역 전역에서 700개가 넘는 사업장이 문을 닫았다. 도시 곳곳의 상점 창문에는 표지판이 걸렸다. - 우리는 이웃과 연대하여 문을 닫습니다. - 우리는 ICE를 제외한 모두를 환영합니다. - ICE는 미니애폴리스를 떠나라. - 1월 23일 — 일도, 학교도, 쇼핑도 없음. 한편, 홀푸드(Whole Foods market)와 타겟(Target) 같은 대형 체인의 네온사인만이 텅 빈 거리와 닫힌 상점을 비추며 그들이 누구 편인지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영하의 기온 속에서도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도시 중심부를 행진하며, 단순히 도시 내 ICE의 공격을 끝내는 것을 넘어 ICE 자체의 폐지를 요구했다. 이민자 자녀들은 그들의 부모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행진했다. 원주민 공동체도 함께 행진했다. 날씨 탓에 휴교령이 내려져 파업 계획이 연기된 학생과 교사들은 제자와 학우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몇 달간 이어진 대규모 노 킹스(No Kings) 행진의 정서를 반영하듯, 시위대는 트럼프, 공화당, 기성 정치권을 맹비난했다. 그들은 엡스타인 스캔들, 의료 서비스에 대한 공격, 행정부의 민주적 권리 유린을 규탄했다. 미국 노동계급에는 낯선 경험이지만, 다양한 부문의 수만 명이 금요일 출근을 거부했다. 일부는 병가를 냈고, 일부는 동료들과 직접 조직해 작업을 중단하고 결집했다. 한 미국통신노조(CWA, Communications Workers of America) 지부에서는 노동자의 86%가 금요일 근무를 거부했다. 스타벅스 노동자들은 6개 매장(노조가 있는 4개 지점과 없는 2개 지점)에서 일손을 놓고 매장을 폐쇄시켰다. 운수 노동자, 교사, 공항 노동자, 간호사, 서비스 노동자 등 다른 노조원들도 겨울 점퍼에 노조 배지를 달고 추위를 막는 스카프에 노조 로고를 새긴 채 군중 속에 섞여 있었다. 노조와 함께 왔든 아니든, 노동자들은 동료와 지역사회를 지키기 위해 나타났다. 이 역사적인 행동은 노동자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하며 "한 명에 대한 공격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다"라는 말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우리가 인터뷰한 많은 사람은 금요일 셧다운의 중요성에 대해 발언하면서, "돈이 모든 걸 좌우한다 (money talks)"라고 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평소와 같은 업무를 멈춰 세운 노동계급의 단결이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이기 때문이다. 1월 23일 셧다운을 조직하고 참여한 노동자들은 미국 노동계급 사이에서 커지는 정서를 상징한다. 노동자라는 우리의 위치가 조직하고, 단결하고, 계획하고, 노동을 거부함으로써 반격할 수 있는 강력한 위치라는 정서 말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의 공허한 약속으로 끝나는 시위들에 실망해 사기 저하의 악순환에 빠지는 대신, 미네소타 사람들은 버티기에 들어갔다. 바로 그 때문에 미니애폴리스의 호소는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에 이르기까지 전국 여러 도시에서 받아들여졌다. 분노에서 조직화로 수만 명이 거리로 나와 경제 셧다운에 참여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연방 이민 경찰은 미니애폴리스에서 자신들의 존재가 거부당한 것에 대한 대답으로 또 다른 지역 주민을 총으로 쏘았다. ICE가 차 안에 있던 르네 굿을 쏜 지 불과 17일 만이었다. (2026년 1월 24일, 미니애폴리스에서 37세 미국인 중환자실 간호사 알렉스 제프리 프레티(Alex Jeffrey Pretti)가 거주지 인근에서 ICE 요원들에게 여러 차례 총격을 받고 사망했다. 그는 한 여성에 대한 단속 집행을 막기 위해 휴대폰으로 ICE 요원들을 촬영하고 있었고, ICE요원이 여성을 밀어 넘어뜨리자 이를 막아섰다. 6명의 ICE 요원들이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고 그를 넘어뜨렸고, 곧 이어 10발의 총을 쏘아 살해했다. - 편집자 주) 프레티가 살해당하는 잔혹한 영상이 소셜 미디어 피드와 단체 대화방에 돌기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되어 지역 주민들이 현장에 나타났다. 영하의 날씨에 ICE에 맞서 몇 주간 조직하며 얻은 지식으로 무장한 시위대는 추위를 막을 손난로와 비상 담요, 최루탄과 섬광탄을 막을 마스크와 고글, ICE 활동을 동료 시위대에게 알릴 호루라기를 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나타났다. 이웃들은 연방 지원 병력을 태운 장갑차가 거리를 질주할 때 집 밖으로 나와 시위대를 안으로 불러들여 몸을 녹이게 하거나 최루가스를 씻어낼 물을 주었다. We’re on the ground in Minneapolis where CBP just killed a man, following a massive day of action against ICE. Protesters and militarized police are both flocking to the scene. Follow here for live updates: pic.twitter.com/GXJ7VvDeqK — Left Voice (@left_voice) January 24, 2026 국토안보부(DHS)가 프레티에 대해 퍼뜨린 거짓말이 여전히 귓가에 맴도는 가운데, 수백 명의 사람이 총격 현장 주변 블록을 봉쇄하려는 연방 요원들과 대치했다. 요원들은 사람들이 모여 이웃을 애도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시위대는 프레티가 살해된 현장에서 연방 요원들을 몰아내기 위해 니콜렛 애비뉴(Nicollet Avenue)와 26번가로 모여들었다. 한편, 미니애폴리스 경찰(MPD)은 연방 요원들이 시위대를 구타하는 동안 교통정리만 하고 있었다. 시위 현장에서 수 마일 떨어진 곳에서 평화와 질서를 호소하며 브라이언 오하라(Brian O’Hara) 경찰서장은 MPD가 연방 요원을 위한 지원 병력으로 파견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트윈 시티 내 ICE의 존재를 비난하기는커녕, 미니애폴리스와 전 세계를 뒤흔든 경찰 폭력 반대 봉기(2020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맞서 일어났던 시위 – 편집자 주)가 있은 지 거의 5년이 지난 지금 MPD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그 운동의 부활임을 분명히 했다. 2020년 이후 미니애폴리스 지역사회와 경찰 사이에는 불안한 평화가 있었지만, 불과 몇 년 전 사람들의 얼굴에 최루탄을 쏘아댄 것이 경찰과 주 방위군이었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위대는 무장 요원들과 몇 시간 동안 대치하며 수백 개의 최루탄과 섬광탄을 피했고, 쓰레기 수거함과 쓰레기로 바리케이드를 쌓았지만 고무탄을 군중에게 직접 쏘는 요원들에 의해 즉시 무너졌다. 지역의 한 식당은 문을 열어 최루탄과 고무탄에 맞은 사람들을 치료하는 자발적인 의료소 역할을 했다. ICE가 블록을 따라 전진했지만, 가스가 걷히자 시위대는 결국 요원들을 물러서게 했다. 곧 장갑차 한 대가 최전선을 뚫으려 시도했고, 군중을 향해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기는 FBI다. 즉시 해산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시위대는 대열을 지켰고 결국 차량은 방향을 돌려 떠났다. 다른 요원들도 곧 뒤따랐다. 시위대는 프레티가 살해된 블록을 되찾기 위해 달려갔다. 그들은 몇 주 전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르네 굿을 위해 그랬던 것처럼, 그가 총에 맞은 자리에 추모 공간을 만들었다. 지역 주민들은 그들 중 다수가 매일 건너다니는 거리를 되찾기 위해 살인적인 ICE 요원들과 맞섰다. 토요일, 그들은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스마트폰으로 목격한 것을 은폐하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도에 맞서 저항의 행위로서 이웃을 애도할 권리를 위해 싸웠다. 미니애폴리스 사람들은 ICE에 진저리가 났다. 2020년 봉기 이후, 그들은 무장 병력이 도시를 통제하고 지역사회를 마음대로 테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다음에는 어느 이웃이 납치되거나 거리에서 살해될지 걱정하는 것에 지쳤다. 지난 이틀 동안 거리에 있었던 누구에게 물어보더라도, 미네소타 사람들은 다른 누가 그들을 구원해주지 않음을 알고 있다. 이것은 그들의 싸움이며, 그들은 ICE를 영원히 몰아내고 폐지하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의지가 있다. 그러한 깨달음과 함께 새로운 조직화 방식이 등장했고, 또 등장해야만 한다. ICE가 영원히 사라질 때까지 도시를 정지시키자 금요일의 경제 셧다운은 미네소타 사람들이 ICE와 트럼프의 이민 정책을 전면 거부하고 국가에 의해 살해된 모든 이를 위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평소와 같은 업무를 중단하고 도시 전역, 각자의 자리에서 단결한다면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지 보여준 맛보기였다. 그리고 금요일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토요일의 총격은 더 많은 사람을 투쟁으로 끌어들이는 데 지체할 시간이 없음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떨어지고 ICE 폐지 요구가 미니애폴리스에서 전국으로 퍼져나가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그 요구를 지지한다고 답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운신 폭은 좁다. 한편 크리스티 놈(Kristi Noem)부터 그렉 보비노(Greg Bovino)에 이르기까지 행정부와 국토안보부는 지지 기반 사이에서 ICE(와 트럼프)의 정당성을 조금이라도 붙들기 위해 미니애폴리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계속 거짓말을 퍼뜨리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니애폴리스는 트럼프에 맞선 싸움의 최전선이다. 그곳에서 후퇴를 강제한다는 것은 미국과 해외에서 트럼프의 권위주의 정책에 맞선 전체 운동을 강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총파업"이라는 말이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미네소타 대학교 학생회는 이미 1월 30일 2차 셧다운을 호소했다. 총파업은 도시 전체의 기능을 멈추는 것이다. 학교도, 대중교통도, 생산도 멈추고 지배계급을 위한 이윤도 없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난 몇 주간의 모든 노력을 이 단일한 목표로 통합하는 도시 전체의 주도성과 참여가 필요하다. 집 밖으로 나오기 두려워하는 가족들에게 식료품을 배달하고 ICE 활동을 알리기 위해 순찰을 해온 동네 네트워크들(Neighborhood networks)은 놀라운 수준의 조직력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노력은 금요일에 대거 결집했던 노동자 조직, 사회단체, 정치 조직들과 결합해야 한다. 이러한 네트워크는 투쟁의 새로운 단계를 구축하기 위해 가동될 수 있다. 지역사회 총회를 열어 다음 단계를 조직하고, 주민, 노동자, 학생들이 함께 앞으로 나아갈 길을 토론하며 도시를 마비시키는 진정한 총파업을 어떻게 조직할지 논의하는 장을 마련할 수 있다. 노조와 노조 지도자들이 단순히 호소문에 지지 서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파업할 수 있도록 전력을 다했다면 무엇이 가능했을지 상상해 보라. 파업을 파업이라 부르고,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일손을 놓고 조업을 중단하며, 대규모 대열을 지어 행진해 ICE에 맞서고 단 한 명의 지역 주민도 끌려가지 않도록 막아내는 것 말이다. 이는 수천 명의 미조직 노동자들에게도 파업에 동참해 거리에서 계급의 자매형제들과 단결할 힘을 줄 것이며, 지금까지 문을 열어둘 수 있었던 거대 기업들조차 문을 닫게 할 것이다. 우리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기한 싸울 수 있는 노동계급의 힘을 해방하려면, 조직된 노동자든 아니든 "파업 금지" 조항과 노동악법(anti-labor laws)에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ICE를 몰아낸다는 것은 성명서와 비판만으로 미네소타 사람들의 분노를 이러한 억압 세력과 행정부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시위로 돌릴 수 있다고 기대하는 노조 지도자들과 민주당 정치인들의 수동성을 깨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 학교, 동네에서, 민주당도 주 방위군도 아닌 미네소타 사람들이 줄곧 그래왔듯이 투쟁의 다음 단계를 결정하는 주체가 될 것이다. 이 투쟁은 미네소타주만의 싸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금요일은 트윈 시티만의 시위 날이 아니었다. 전국의 사람들이 미니애폴리스와 연대하여 결집했다. ICE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에 대한 분노 때문만이 아니라, 지금 ICE를 막지 않으면 그들이 전국의 다른 도시들로 와서 똑같은 짓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이미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미니애폴리스의 노력은 전국의 적극적인 연대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맹 노조들은 중서부 노동자들의 노력을 지지하기 위해 자체적인 작업 거부, 파업, 피켓 시위를 조직해야 한다. 전국 산별노조총연맹(AFL-CIO)은 미니애폴리스 사태를 규탄하고 1월 23일 행동을 지지했다. 이제는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겨, 모든 지부의 조합원들을 조직해 미니애폴리스를 지지하고, 향후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데 쓰일 트럼프 행정부의 공격에 맞설 권리를 옹호해야 할 때다. 미니애폴리스에서 다음에 일어날 일은 전국과 전 세계로 울려 퍼질 것이다. 도시에서 ICE를 영원히 몰아내는 것이 곧 이민자 및 전체 노동계급에 대해 전쟁을 벌이는 트럼프 행정부를 후퇴시키는 것이다. -
[기고] 서울여대 노학연대, 잿더미에서 투쟁의 불꽃을 피워내자서울여자대학교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여대분회 (이하 서울여대분회)는 지난 여름부터 이어졌던 청소용역업체 태가BM 퇴출 (재계약 반대) 투쟁을 16일간의 천막농성까지 감행하며 승리를 거두었다. 태가BM은 연세 세브란스병원 등에서 의도적인 노조파괴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서울여대 내에서도 청소노동자들에게 폭언을 하는 등의 ‘악덕’ 용역업체였다. 투쟁 과정에서 대학본부 측의 갈등 조장 (갈라치기 등), 타 노조 (서울여대는 복수노조 상황이다) 의 논점 흐리기 등 많은 방해 시도가 있었지만, 2천여 명이 넘는 학생들이 서명으로 증명했듯 태가BM을 반대하는 학내 구성원들에 의해 용역 재계약은 결렬될 수 있었다. 필자는 이번 2025년 태가BM 퇴출투쟁에 ‘노학연대준비위원회 청소노동자와 연대하는 슈니들 (이하 청연슈)’를 만들고 대표를 맡았다. 또한 학생들을 모아 서울여대분회와 연대하고, 행동하였다. 흐릿한 9년 전의 자취를 재구성하는 투쟁 서울여대분회는 9년 전, 타 업체의 재계약 반대 투쟁을 승리를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다른 본격적인 활동을 펼치지 않았다. 교섭대표노조 권한을 잃어버린 탓도 있었지만 가장 큰 것은 아마도 학내 구성원, 특히 학생들의 무관심 때문일 것이다. 투쟁을 하면서 느꼈지만, 많은 학생들은 캠퍼스 내 노동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일시적 연대로 큰 것을 이루어내기는 어렵다.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이리저리 치이고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렇기에 이번 태가BM 퇴출 투쟁은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내부에서 서로를 의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9년 전의 이야기를 다시 소환해서 우리의 이야기로 바꿔내는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 가보는 노학연대의 길. 어떻게 연대해야 할까? 대응을 위해 생각해낸 것은 노학연대였다. 그동안 타 대학의 노학연대를 보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나도 저렇게 연대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누구와 이야기해야 할 지 등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여름방학이 한창인 어느 날, 학교를 잠시 들렸더니 곳곳에 ‘태가BM 퇴출 투쟁’을 외치는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학교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려 수소문해보니 청소 용역업체 태가BM의 재계약 문제가 있고, 태가BM 재계약이 노동자에게 부당한 상황임을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이 무언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 라고 고민하다가 두 가지 안을 생각했다. 우선 TF팀을 만들어서 이번 투쟁이 마무리될 때 까지만 어떻게든 (정말 말 그대로 어떻게라도) 연대하는 것, 그리고 노학연대 운동기구를 만들어서 이번 투쟁 뿐만 아니라 학내/외 다양한 노동/사회의제에 연대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직감적으로 이번이 노학연대 운동을 만들어야만 하는 때임을 느꼈다. 현재의 운동에서 출발해 더 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운동을 추동하자고 판단했고, 그렇게 청연슈가 만들어졌다. 처음이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는 것이 많아서 행동하고 연대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매주 화, 목요일에 있는 서울여대분회 주최의 피켓팅과 오프라인 연서명 요청 활동에 내가 아니더라도, 학생 단 한 명이라도 나갈 수 있도록 했다. 기자회견이나 행정관 내 시위, 집회에도 늦더라도 되도록 참석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투쟁 현장에 의제의 당사자(노동자)가 아닌 연대하는 다른 누군가(학생)가 있다는 것 자체로 힘이 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투쟁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 싸움이 외롭지 않다는 것, ‘우리’가 ‘우리’이기에 결국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다짐이 현실이 되려면 연대가 필요하다. 청연슈는 그 연대를 하고 싶었고, 어느정도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생각한다. 이미 타오른 불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재가 되더라도 2025년 12월 16일, 천막농성 16일차는 청소용역업체 입찰 결정이 있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선전전을 진행하고 회의실 앞에서 우리의 투쟁이 승리로 끝나기를, 모두가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할 수 있었다. 다사다난했지만 그랬기에 더 소중했던 승리였다. 투쟁으로부터 한 달이 조금 넘게 지난 지금은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노학연대준비위원회’였던 청연슈를 <노학연대 청새치>로 정식 출범할 수 있도록 준비 중에 있다. 느리더라도 우리가 우리의 언어로 하고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내는 작업은 필자가 이 대학을 다니며 계속 시도할 목표이자 가치이다. 서울여대분회는 대학 집단교섭을 진행 중이다. 또한 다시 교섭대표노조로서 활동하게 될 것이다. 현재 청새치 회원들과의 인연도 일회성 만남이 되지 않도록 고민 중에 있기도 하다. 필자는 9년 전의 투쟁을 청소노동자분들을 통해 어렴풋이 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의 이 투쟁도 필자의 졸업 이후에 한참이 지나서라도 또 다시 우리가 들고 일어서야 할 때 안내 책자가 되어줄 것이다. 이번 투쟁에서,는 영상을 전공하는 서울여자대학교 학생들이 싸움의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남기기도 했다. 우리가 여기에 있었다는 외침은 더 이상 사라지는 메아리가 아니다. 목소리는 쌓아지며 커지고 있다. 이 투쟁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모두 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되더라도 재 위에 남은 발자국을 통해 새로운 길을 걸어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운동은 그렇게 진보해왔다. 필자 또한 잿더미 위에서 불꽃을, 불꽃 이후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도록 계속 걸어갈 것이다, 노학연대 청새치(준)와 함께. -
[그래, 다시 마르크스주의 연재#2] 세계를 해석하는 유물론과 변증법자본가 계급은 노동자들을 향해서는 관념론을 설파하면서, 스스로를 향해서는 철저히 유물론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윤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모든 자본가들은 한 치의 관념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가장 많은 이윤이 보장되는 길을 유물론적으로 추적하고, 즉각 행동에 옮긴다.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임금을 최소화하며, 노동 강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길을 모든 뇌세포를 총동원해 찾아 나간다. 사랑, 용서, 협조 등 자본가들이 노동자들 속에 심어 놓고자 하는 관념은 정작 그들의 두뇌 속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사랑, 배려를 외칠 때 그들은 냉혹한 현실을 모르는 몽상가들이라고 윽박지른다. 2부. 세계를 해석하는 두 가지 키워드: 유물론과 변증법 1.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누군가에겐 ‘고작’ 빵, 누군가에겐 생명줄, 이게 그저 생각의 차이일 뿐일까?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 나섰던 민중은 “빵을 달라!”고 외쳤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고작 빵 때문에 혁명을 일으킨단 말인가.”라고 탄식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것은 혁명에 기름을 부었다. (실제 이 말을 마리 앙투아네트가 했다는 기록은 없다. 장 자크 루소가 자서전 '고백록'에서 쓴 구절이 이 이야기의 기원이다. - 편집자 주) 이 일화는 인간의 의식이 무엇으로부터 자라 나오는지 설명해 준다. 오스트리아 왕족 출신으로 프랑스 왕비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식에서 빵은 ‘고작’ 빵에 불과했다. 마치 우리가 들이마시는 공기처럼, 그녀는 평생 빵을 언제든 손에 쥐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이 처한 상황은 전혀 달랐다. 굶주리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빵은 ‘생명처럼 소중한 것’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기꺼이 이 빵을 위해, 그리고 이 빵을 얻게 하는 일자리를 위해 혁명으로 들고 일어났다. 빵에 대한 이 상이한 두 관념, 의식의 뿌리는 무엇인가? 바로 이들이 놓여 있는 물질적 삶, 즉 존재 기반의 상이함이었다. 이것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의식에 혁명에 대한 적대감을 심은 반면, 노동자 민중의 의식에는 혁명에 대한 간절함을 심었다. 이처럼 인간의 의식은 바로 인간이 발 딛고 있는 존재 기반 즉, 물질적 토대로부터 자라 나온다. 이런 관점을 칭하는 개념이 바로 유물론이다. 유물론 vs 관념론 위 일화에 빗대서, 관념론을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이다. 관념론은 모든 것이 우리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고작 빵’, ‘고작 일자리’라고 단단히 마음먹으면, 우리는 빵과 일자리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유물론은 모든 인간은 먹고사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러한 물질적 토대로부터 의식이 자라난다고 주장한다. 마리 앙투아네트에게서 빵을 박탈해 보라! 물론 케이크도 함께! 그러면 마리 앙투아네트의 머릿속에 ‘고작 빵’이라는 관념, 의식이 여전히 남아 있을까? 아니면 ‘제발 한 조각의 빵이라도!’라는 새로운 관념, 의식이 자리 잡게 될까? 유물론과 관념론을 이렇게 대비하면, 누구나 유물론이 옳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유물론을 두려워한다. 사회의 물질적 토대에 유물론적으로 접근하면 지배 계급과 피지배 계급, 한 줌 소유자들과 다수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계급 분열이 너무도 선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일하는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는 고통이 자본주의로부터 생겨나고 있음이 대낮처럼 밝게 밝혀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배자들은 항상 노동자 민중에게 관념론을 불어넣으려 애써 왔다. 모든 고통의 원인이 ‘착취 제도’라는 물질적 토대가 아니라 ‘마음가짐’ 때문이며, 따라서 분노와 저항의식을 억제하고 주어진 삶에 순응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노동자 민중은 인간이기에 스스로 생각하고, 착취 제도의 부당함에 맞서곤 했다. 지배자들은 더 고도한 관념론을 만들어 보급했다. 그들은 인간의 모든 고통은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초월자’, ‘신’의 섭리에서 비롯되므로, ‘생각’하지 말고 무조건 순응하라고 주문했다. 심지어 ‘현세의 고통’은 ‘천국에 들어가는 입장권’이므로, 기쁘게 행운으로 받아들이라고 주문했다. 자본주의의 태동과 함께 등장했던 ‘직업소명설’은 노동자들은 죽어라 일하고, 자본가들은 죽어라 이윤을 축적하는 게 신의 소명을 다하는 길이라고 설교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관념론을 퍼트리는 종교를 두고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통렬히 폭로했다. ‘소확행’ 의식으로 들여다본 오늘날의 관념론 오늘날 종교만이 아니라 갖가지 아편이 노동자들과 젊은이들을 세뇌하고 있다. 몇 년 전 일본과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소확행’ 현상을 살펴보자. ‘소확행’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에서 처음 등장한 말로, 작고(小) 확실하게(確) 실현 가능한 행복(幸)을 뜻한다. 가령 그는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을 때, 서랍 안에 잘 정리된 속옷이 가득 쌓여 있을 때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는 불확실한 큰 행복을 추구하면서 불행하게 사는 대신,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만족하면서 즐겁게 살 것을 제안했다. 욕망을 키우기보다, 욕망을 최소화하면서 작은 일상에서 행복하게 보내자는 제안이다. 이런 ‘소확행’ 현상은 한국의 젊은이들 속에서도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 동료와 함께 맛집 방문하기,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기 등이다. 이는 큰돈이 들지 않는 것에서 소소한 만족감을 느끼며 살자는 생각, 배우자와 아이가 생기면 삶이 더욱 불확실해지기 쉬워서 결혼을 기피하고 혼자만의 삶에 만족하며 살자는 생각, 당장 살아가기도 벅찬데 미래에 대한 희망은 버리고, 저녁에 맥주 한잔하며 TV 드라마를 보는 것에 만족하자는 생각, 친한 친구와 동네에서 고기 구워 먹을 때의 행복에 만족하자는 생각, 따뜻한 햇볕 속 낮잠의 행복에 만족하자는 생각 등에서 비롯한다. 이러한 ‘소확행’ 사고는 분명 관념론이다. 행복과 불행은 오직 우리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인간의 욕망은 개개인이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유물론은 인간의 욕망은 개인이 놓여 있는 사회적 환경 즉, 물질적 토대에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수백, 수천 년 전, 최소한의 먹고 입는 것조차 힘든 사회였다면, 그 사회에 사는 개인은 약간의 빵과 몇 벌의 옷가지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사회는 노동자 계급이 매우 많은 것을 효율적으로 생산한 덕분에 그 정도의 물질적 삶은 대다수가 누릴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 대신 인간의 욕망은 크게 성장했다. 이제 최소한의 문화생활, 자동차, 집, 의료혜택과 교육 기회 등이 대다수 인간이 욕구하는 기본적인 것이 됐다. 이와 같은 물질적 환경 앞에서 약간의 빵과 옷에 만족하라는 얘기를 듣고, 자신의 욕망을 통제할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소수의 가진 자들이 누리는 엄청난 사치와 쌓이는 부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만 느끼게 된다. 게다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가뜩이나 좁아지는 시장을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 인간의 소비 욕망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사회 체제가 아닌가? 이런 소소한 것들로부터 지속적인 행복감을 느낄 사람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더구나 이와 같은 소소한 행복조차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게 아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해 실업 상태인 청년들은 저녁에 친구와 맥주 한잔 마실 여유도 없고, 당장 메워야 할 카드 빚 앞에서 펑펑 울지도 모른다. 소확행의 한 사례로서 ‘따뜻한 햇볕 속 낮잠’의 행복감에 대해 필자가 만난 한 젊은이의 외침은 의미심장하다. “‘따뜻한 햇볕 속 낮잠’요? 저는 살기 위해 자요. 데이 근무(새벽∼오후)가 끝나고 집에 오면 밥도 못 먹고 침대에 쓰러집니다. 3교대 근무라 약속 잡기도 어려워요. 하루를 버텨 내느라 진이 빠지죠. 이 일을 계속할 건지 고민할 시간조차 없어요.” 유물론은 이런 소확행 관념이 최근 왜 탄생했고, 젊은이들 속으로 영향력을 확대했는지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요즘 한국 사회를 표현하는 방식 중 ‘1 대 9 대 65 대 25 사회’가 있다. 최상층 1%와 중산층 9%, 평균 이하의 삶을 누리는 65%와 최하층 25%로 구성된 사회가 바로 지금의 한국 사회다. 최근 25년 사이에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중산층이 앞으로는 거의 붕괴로 내몰릴 것으로 예견되는 상황에서 이런 양극화 추세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오늘날 젊은이들이 더 나은 처지로 오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 오히려 최하층으로 떨어질 두려움에 신음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이때 소확행 의식은 일종의 아편과도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하위 계층의 처지에서 벗어날 기회의 사다리가 부러진 상황에서, 가난에 만족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추구함으로써 불행과 고통을 조금이라도 완화하려는 필사적인 시도가 바로 소확행 의식이 오늘날 확대되는 객관적 배경이다. 거꾸로 소확행 의식 확대는 오늘날 젊은이들에게 더 나은 삶의 전망이 닫혀 가고 있다는 현실, 계급 양극화가 더욱 고착화될 뿐만 아니라 더 많은 노동자들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는 현실을 가리는 그림자가 아닐 수 없다. 2. 공정과 유물론 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오늘날 젊은이들을 마취시키는 아편 중 하나다. 개인이 하층, 최하층으로 떨어지는 것은 ‘공정한 경쟁 무대’에서 경쟁력을 상실했음을 뜻한다. 그리고 이 경쟁력 상실은 개인이 노력하지 않은 결과이므로, 공정한 결과로 받아들여지며, 가난과 불평등에 분노하고 저항하는 대신, 오히려 자신을 탓하게 한다. 이 논리는 노골적인 관념론에 비할 때 더 세련된 형식을 취하지만, 근본적으로 관념론이다. 진짜 현실을 감추고, 가짜 현실로 대체하는 것, 이 또한 명백한 현실로부터 비껴나 허구적인 관념적 환상을 유포한다는 점에서 관념론의 변종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현실은 어떤 것인가? 우선 앞에서 살펴봤듯이, 아무리 공정한 경쟁을 하더라도 중산층 이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사다리가 거의 없어지고 있다. 100명이 경쟁해서 3~4명이 승자가 되고, 나머지 모두가 패자가 되는 경쟁 체제라면, 그것이 아무리 그 과정이 공정하더라도 96~97%의 젊은이들은 이미 패자가 되도록 정해져 있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96~97%의 확률로 패자가 되도록 룰이 정해져 있는 이 게임을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 단지 공정한 룰로 3%의 승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정당한 게임이라 부를 것인가? 게다가 ‘공정한 경쟁’이라는 것도 자본가 계급의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상이다. 윤석열 현 대통령은 사법고시에 10번 낙방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10년 동안 고시 공부에 매달린 것이다. 그의 집안은 그 10년을 뒷받침하기 충분하게 여유로운 집안이었다. 하지만 흙수저 보통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집안의 신세를 지면서 10년간 고시공부하는 건 너무나 버거운 일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4년의 대학생활조차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는 지탱할 수 없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이지 않은가? 경쟁의 결과는 사실 불평등한 출발선에서부터 대부분 판가름 나 있는 게 현실이다. 반대로 유물론은 진실을 알려 준다. 현재 젊은이 개개인이 느끼는 고통과 불안은 노력을 하지 않아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현재의 젊은이들이 행하는 생존을 위한 노력은 조부모나 부모 세대가 과거에 했던 노력보다 훨씬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젊은이들이 비참한 상태로 내몰리는 것은 낡고 노쇠해 너덜해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구성원들에게 줄 수 있는 안정된 일자리들이 거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경쟁은 격화되고, 그 경쟁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 재벌의 자식들은 경쟁에 참여하지 않아도 날 때부터 재벌의 삶이 보장돼 있지 않은가? 그런데 경쟁주의 이데올로기를 목청껏 외치는 자본가 계급은 경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재벌 회장들에 대해서는 결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인류 역사상 아편이 창궐한 시기의 공통 특징이 있다. 소위 세기말적 현상으로 불리는 ‘앞이 안 보이는 절망적인 상태’가 보인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은 현존 사회 체제가 생명력을 다했지만 아직 새로운 사회 체제가 등장하지 않은 불안정한 사회 상태를 반영한다. 종교와 함께 소확행 의식과 경쟁주의 이데올로기는 오늘날의 아편이다. 이 아편의 등장 배경은 바로 반동화돼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다. 자본가 계급의 위선적인 이중 철학 노동자 계급을 향해서, 자본가 계급은 관념론을 설파한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러니 임금과 일자리, 평등을 위해 저항하고 투쟁하는 대신, 현재의 가난한 삶에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라고 한다. 성난 민중에게 붙들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민중에게 했던 말과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또한 자본가 계급은 노동조합에게 ‘협조주의와 사랑의 감정’을 설파한다. 자본에 대한 적대적 생각을 거두고, 평화로운 협조주의적 생각을 발전시키면 노사 모두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자본가들은 저항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폭력적이고 적대적으로 삐뚤어진 의식’에 물든 불순분자라고 고함친다. 과연 그럴까? 노동자들의 의식이 폭력적이고 불순하고 저항적이라서 투쟁과 전투가 등장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본가들이 만들고 운영하는 이 자본주의 체제가 그런 의식을 낳고 있는 것일까? 상황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때와 같다. 젊은이들에게는 일자리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노동자들은 높아지는 실업률과 상시적으로 덮쳐 오는 구조조정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노동의 결과물 가운데 더 많은 부분이 갈수록 소수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집중돼 불평등이 확대된다. 물가마저 폭등하면 노동자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진다. 노동자들은 갈수록 절대적,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객관적, 물질적 상황이 노동자들의 의식을 저항적으로 만들고, 분노를 확산한다. 그런데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들을 향해서는 관념론을 설파하면서, 스스로를 향해서는 철저히 유물론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이윤이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모든 자본가들은 한 치의 관념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계산기를 두드리면서, 가장 많은 이윤이 보장되는 길을 유물론적으로 추적하고, 즉각 행동에 옮긴다.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하고, 임금을 최소화하며, 노동 강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릴 길을 모든 뇌세포를 총동원해 찾아 나간다. 사랑, 용서, 협조 등 자본가들이 노동자들 속에 심어 놓고자 하는 관념은 정작 그들의 두뇌 속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다.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사랑, 배려를 외칠 때 그들은 냉혹한 현실을 모르는 몽상가들이라고 윽박지른다. 이러한 계급적 이해관계로부터 자본가 계급의 진정한 의식이 거꾸로 자라난다. 마르크스의 말처럼, “금전 문제에서 인정은 금물이다!”가 자본가 계급의 진짜 의식이다. 자본가 계급은 ‘노동조합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의식, 투쟁하는 노동자에 대한 무한한 적개심’으로 무장한다. 자본가 계급의 거짓말이나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보라! 그들은 단호한 유물론자다! 3. 마르크스는 어떻게 유물론을 발견했는가? 마르크스가 처음부터 유물론자였던 것은 아니다. 대학 시절 마르크스는 당시 관념론 철학을 대표했던 헤겔철학에 경도돼 있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철학에서 급진적 측면을 끌어내 절대왕정 체제에 맞서고자 했던 청년 헤겔파에 속해 있었다. 청년 헤겔주의자들과 함께 마르크스는 민주주의 운동에 나섰는데, 그 가운데 여러 정치적 문제와 씨름해야 했다. 1842년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에서 가장 급진적인 민주주의 사상을 대변했던 〈라인신문〉에서 기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현실의 정치적 문제와 마주치자, 마르크스는 여러 중요한 정치적 대립 배후에 물질적 이해관계가 놓여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토지 문제나 채취권 등의 쟁점들을 파고들자, 정치적 견해가 계급적 이해관계에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방직공들의 봉기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에서는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의 대립이, 숲에서 땔감을 얻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에서는 지주와 가난한 농민 사이의 계급적 이해 대립이 놓여 있었다. 대다수 헤겔 좌파들은 이러한 물질적 대립 즉, 계급 대립 앞에서 관념의 세계로 도망쳤다. 그들은 추상적인 우애, 인간애 뒤로 숨어 계급 투쟁에 대해 기권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이 진실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투쟁을 선택했다. 그리고 투쟁은 그를 유물론으로 이끌었다. 그 결정적 계기는 1844년 6월에 일어난 독일 슐레지엔 방직공들의 봉기였다. 노동자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대가 투입됐고, 수십 명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 지배자들의 악선동 가령, 노동자들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했기에 질서유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얘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의 봉기는 자본가들의 착취에 맞선 저항이었고, 따라서 폭력을 유발한 자들은 자본가들과 정부였음을 폭로했다. 그의 두뇌는 현실에 더욱 충실했다. 그는 이 노동자 봉기라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혁명적 의식’으로 전진했다. 부르주아들이나 지식인들이 중심이었던 민주주의 투쟁이 보인 소심함과 달리, 노동자들의 투쟁은 철저히 전투적이었고 혁명적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경험한 마르크스의 의식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이 현실을 반영해, “오직 노동자 계급 속에서만 해방(혁명)의 진정한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는 의식으로 전진했다. 그의 의식에서 이제 노동자 계급은 고통받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세계를 혁명으로 이끌 수 있는 역사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게 마르크스는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 전진했는데, 이 유물론적 인식은 노동자 계급을 혁명의 중심에 놓는 혁명적 사회주의로 안내했다. 다시 빵의 문제로 확고한 유물론자로 재탄생한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론은 무엇이었는가? 이제까지 인류의 삶의 기초는 먹고사는 문제 즉, 경제적 생산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류는 이 경제적 생산능력(생산력)을 발전시키는 데 가장 적합한 생산관계를 채택해 왔는데, 이 생산관계의 핵심은 ‘생산수단을 어떤 계급이 소유하는가’였다. 그에 따라 생산물의 분배관계가 결정됐다. 어떤 사회의 의식은 바로 이 경제적 생산양식(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일)에 의해 근본적으로 좌우되는 것이었다. 문화, 의식, 윤리 등의 상부구조는 인간에게 필요한 경제적 요소들, 가령 의식주를 생산하는 경제적 하부구조가 그 우선 조건이었다. 바로 이 경제 구조를 밝히는 것, 특히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 구조를 밝히는 것이 마르크스가 평생에 걸쳐 수행한 유물론적 과업이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자본론》이었다. 결국 핵심은 ‘빵의 문제’였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 나섰던 민중의 “빵을 달라!”는 외침은 사회의 진정한 핵심을 여과 없이 투명하게 드러냈다. 하지만 유물론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노동자들과 민중은 왜 가난하고 굶주려 빵을 갈망하는가? 어떤 현실이 그것을 강요하는가? 현실을 분석한 마르크스는 작업장과 기계, 토지 같은 생산수단을 어떤 계급이 소유하는지가 결정적으로 중요함을 간파했다. 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유산자 계급은 소유자라는 이유로 작업장과 기계, 토지 등 경제적 핵심 요소들을 제 마음대로 운영하고 통제한다. 그 결과 노동 과정은 단순히 생산 과정인 것이 아니라, 착취자들이 생산자들의 노동으로부터 잉여노동을 뽑아내는 착취 과정이 되고 만다.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대가(가령 임금)를 뺀 나머지(가령 이윤)를 유산자들이 독점하게 된다. 일하는 사람들은 노동 과정에 대한 통제권을 잃게 되며, 자신이 만들어 낸 생산물인데도 최소한만 분배받는다. 그에 따라 착취 계급과 일하는 피착취 계급 사이의 계급 투쟁이 원시 공산제 이후 인류 사회를 규정해 온 역사라고 마르크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빵을 달라!”는 1789년의 노동자 민중의 외침은 모든 생산수단을 노동자 민중의 공동 소유로 전환시키는 사회주의로 뻗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최종 결론에 도달했다. 단지 ‘빵’이라는 구호가 지금은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달라! 일자리를 달라!’라는 구호로 표현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의 현실이 근본적으로 바뀐 것이 없고, 바뀔 수도 없다면, 이 자본주의의 현실 비판을 반영하고 있는 의식 즉, 마르크스주의 또한 근본적으로 바뀔 수 없고, 바뀔 이유도 없다. 왜 지배 계급은 유물론을 두려워하는가? 지배 계급은 “유물론은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고, 관념론은 정신적 가치를 중시한다”면서 유물론을 저급한 것으로 매도한다. 그러나 유물론이 의식의 가치를 무시한다는 것은 전혀 진실이 아니다. 유물론은 단지 ‘존재(물질)가 의식에 선행한다는 점’, 따라서 ‘인간의 의식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그 의식이 발 딛고 있는 현실(물질과 물질의 운동)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점을 말할 뿐이다. 가령 우리가 컵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 눈앞에 컵이라는 물질적 실체가 먼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지, 우리가 컵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기에 컵이 앞에 존재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계급 투쟁 사상과 착취에 대한 의식을 갖게 되는 것도 바로 현실에 ‘계급 대립’과 ‘잔인한 착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물론은 딱 거기까지만 주장한다. 그 뒤 유물론은 의식과 정신의 가치를 인정한다. 이러한 객관적 현실을 옳게 반영하는 의식이라면, 그 의식은 옳다. 그리고 이 올바른 의식이 현실을 변혁하고 세계를 전진시키는 것일 때, 이 의식은 ‘물질적 힘’으로 전화한다. 오히려 마르크스주의는 이러한 혁명적 의식(혁명적 사회주의 의식)에 결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지배 계급이 유물론을 제 맘대로 왜곡시키면서 유물론의 확산을 가로막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본주의 사회를 규정하는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으로의 분열, 그리고 이 분열에서 자라나는 계급 대립을 감추기 위해서다. 그래서 수많은 노동자들, 젊은이들이 자본주의 착취 제도에서 자신을 짓누르는 고통의 진정한 근원을 발견하고 단결해 투쟁에 나서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치명적인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서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물질적 토대를 자본주의 스스로 창조하고 있음을 밝혔다. 나날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고 있는 사회적 생산력, 이 사회적 생산력이 토해 내는 혁명적 노동자 계급이 바로 그 물질적 토대다. 그 점 때문에 자본가 계급은 유물론을 저주할 뿐만 아니라 이 유물론이 토해 낸 혁명적 사회주의 앞에서 벌벌 떨게 된다. 자신을 휘감고 있는 이 부조리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근원적으로 탐구하고, 그로부터 진정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유물론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마르크스주의를 향한 길을 떠나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4. 변증법: 세계는 변화한다 지배 계급이 지배를 유지하는 결정적인 수단 중 하나는 기존 체제를 결코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체제로 사람들이 여기게 하는 것이다. 즉, 세상을 고정불변한 것으로 보게 한다. 이를 위해 모든 지배 계급은 다양한 세뇌, 교육 장치를 가동했고, 그런 생각을 정당화하는 다양한 이론과 사상을 발전시켜 왔다. 동양의 봉건 체제는 유교와 같은 사상을 보급함으로써, ‘충’의 사상 즉, 임금과 백성으로 신분이 나뉘는 것을 영원히 정당하고 윤리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종교는 ‘변하지 않는 신의 섭리’를 앞세우면서, 대중이 능동적 의지를 갖고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차단해 왔다. 자본가 계급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자본가 계급은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활력을 거세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는 영원불멸하다는 관념을 대중 속에 불어넣는 작업에 집요하게 매달려 왔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고, 이것은 변하지 않는 본성이므로, 자본주의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고 교육해 왔다. 시장 상품경제 속에서 힘없고 고립된 개인들은 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무기력한 소모품에 불과하다고 믿게 만들어 왔다. 그렇지만 자본가 계급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이 있다. 가령 과학과 기술의 변화 발전이다. 이에 대해서는 자본가 계급도 인정하며, 오히려 앞으로의 변화 발전 속도는 더욱 가속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자체는 자본주의 체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발전에 대해서는 얘기가 달라진다. 사회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은 자본주의 또한 영원불멸하지 않고 혁명적으로 타도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본가 계급도 어느 정도의 사회 변화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노예제에서 봉건제로,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변화는 부정할 수 없는 인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더 이상 임금과 백성으로, 영주와 봉건 농노로, 노예주와 노예로의 분할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자본가 계급은 자본주의에 도달하는 역사적 과정에 대해서만, 혁명적 변화를 인정한다. 자본주의에 이르면, 영원불변한 고정성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자본가 계급의 이런 위선과 사기에 맞서, 마르크스는 “모든 사물은 변화하며, 고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변증법 사상을 대변했다. 그리고 이 변증법 사상을 유물론과 결합해, 변증법적 유물론을 정식화했다. 나아가서 이 변증법적 유물론을 사회에 적용해, 자본주의의 붕괴 불가피성과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 탄생의 역사적 필연성을 증명했다. ‘인간의 변하지 않는 이기적 본성’ ─ 완전한 허구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은 노예제와 봉건제는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과 위배되는 경제 체제였다고 말했다. 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이기적 본성에 조응하면서, 이 본성을 활용해 경쟁의 활력을 높여 사회적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체제이므로 영원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를 과학적으로 추적해 보면,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주장은 완전히 거짓말이다. 자본주의 사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랜 기간 지속됐던 원시 공산제 사회에서는 이기심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령 지금까지도 극소수 부족으로 남아서 원시 공산제 사회의 흔적을 유지해 오고 있는,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모히칸족의 사전에는 원래 ‘나’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우리’라는 단어만 존재했다. 공동체적 소속감이 개인을 압도했고, 사적 소유권이 성립하지 않았던 상황을 반영한 결과였다. 물론 이처럼 ‘개인’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었던 모히칸족의 모습은 자본주의보다 낙후한 과거 사회의 모습을 보여 준다. ‘우리’와 함께, ‘나’라는 의식이 탄생한 것은 분명 인류의 거대한 역사적 진보의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의 논의에서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인간이 변하지 않는 이기성이라는 본성을 갖고 있다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에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 인간의 속성 안에 이기성이 들어오게 된 것은 사회의 오랜 역사적 변화 발전의 결과물이었다.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생겨나면서, 특히 자본주의가 확대되면서 나타났다. 게다가 오늘날 사회에 존재하는 인간의 속성에 이기성만이 있는 건 아니다. 홍수나 화재 같은 재난 상태에서 발휘되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타인을 구하려는 숭고한 연대성도 우리는 자주 접한다. 인간의 속성은 끊임없이 변한다. 이 속성은 일차적으로 주어진 사회 체제에 의해 좌우된다. 이 사회 체제 속에서 새로운 변화의 요소가 성장하면 그에 발맞춰 인간의 속성에도 혁명적 변화가 시작된다. 이미 그 변화는 자본주의 심장부에서 시작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단결 속에서 말이다. 길어지는 불황과 수시로 위협을 가하는 공황 앞에서, 무한대의 이기적 경쟁을 찬미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과연 인류에게 더 이상 유용한 선택인지에 대한 질문이 커져 가는 상황에서 말이다. 헤겔 넘어서기 변화 발전을 자본주의에 한해서만 인정하는 자본가 계급의 모습은 철학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헤겔철학이다. 헤겔은 법을 포함해 인류의 정신적, 사상적 발자취를 탐구했다. 당연히 인류 사회의 변화는 이 정신적 영역에도 각인돼 있었다. 헤겔은 이 변화의 원리를 과학적으로 탐구했고, 그 결과 변증법을 정식화할 수 있었다. 사물의 변화 발전의 법칙을 일반화해서 정식화한 양질 전화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은 헤겔에 의해 정식화됐다. 이런 정식화가 가능했던 것은 헤겔이 살았던 시대가 급격한 변화를 맞은 시기였기 때문이었다. 봉건제가 저물고 자본주의가 시작되고 있는 급격한 전환의 초입부였고, 프랑스 혁명 시대였으며,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철학에도 영향을 미치는 시기였다. 이처럼 변화를 도외시할 수 없는 격변기 상황이 헤겔철학을 잉태했다. 하지만 헤겔철학은 대단히 모순적이었다. 한편으로 헤겔철학은 세계의 끊임없는 혁명적 변화에 대한 인정을 핵심으로 하는 변증법에 내재한 혁명적 측면을 반영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헤겔철학은 이러한 혁명적 변화를 오직 헤겔철학에 도달하는 역사적 과정에서만 적용하고 인정했다. 헤겔철학 그리고 이 철학에 근거한 당시 독일 절대왕정의 법률에 도달하면, 변화 발전은 끝나고 이제 ‘완성’ 즉, 변하지 않는 고정성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히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청년 헤겔학파에 속했던 마르크스는 헤겔철학의 이중성 가운데 전자의 혁명적 측면에 주목했고, 후자의 보수성에 맞서 싸웠다. 마르크스는 헤겔 변증법의 혁명적 결론을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 도착지는 어디였는가?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 비판》에서 헤겔 이전의 사상, 법과 마찬가지로, 헤겔의 사상과 그에 기초한 당시 독일의 절대왕정 체제의 법도 ‘일시적’이며, 영원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넘어서야 하는’ 대상임을 밝혀냈다.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의 법, 즉 절대왕정 체제에 맞선 투사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마르크스는 이제 막 역사의 무대에 올라오고 있던 신흥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투쟁으로까지 변증법을 확장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가 잉태한 모순 즉, 변화의 씨앗을 과학적으로 탐구했다. 그는 《자본론》에서 자본주의 사회가 진보적인 신흥 체제에서 낡은 반동적 체제로 전환하고 있으며, 이런 전환은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주의가 수립되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임을 과학적으로 논증했다. 5.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탄생, 변증법과 유물론의 결합 헤겔이 자신의 사상을 집대성한 것은 《법철학》을 통해서였다. 그는 법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따라, 자신이 발견한 변증법을 가장 완전무결한 형태로, 구체적으로 전개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스승 헤겔을 그대로 따를 수 없었다. 헤겔의 변증법은 뒤집어진 변증법이었고, 그 때문에 여러 지점에서 불완전하고 뒤틀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헤겔은 ‘절대정신(이념)’이라는 관념으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으로부터 법, 정치 체제, 경제적 토대로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사회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사회의 진정한 모습은 그 반대였다. 경제적 토대가 정치적 상부구조를 탄생시키고, 이 정치적 상부구조 속에 법과 사상, 철학이 자리 잡았다. 바로 이것이 유물론적 접근이고 현실에서 운동이 전개되는 객관적 양상이었다. 현실이 운동하므로 그것의 그림자도 운동한다. 그런데 헤겔은 현실의 운동에 주목하는 대신, 그림자의 운동에 주목했고, 그림자의 운동으로부터 거꾸로 현실의 운동을 끌어냈다. 이처럼 헤겔철학은 존재와 의식, 실체와 그것의 그림자가 전도된 관념론이었다. 하지만 사회의 경제적 토대가 운동하기에 그 토대 위에 놓인 정치적 상부구조인 그림자 또한 그것을 따라 운동할 수밖에 없다. 헤겔은 현실과 그림자, 토대와 상부구조를 혼동했지만, 끊임없이 운동하는 역사적 맥락에서 그림자(법, 철학)를 검토했기에 그림자의 운동에 반영된 현실의 운동 법칙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마르크스는 헤겔이 그림자의 운동에 대한 분석을 통해 정식화한 사물의 운동 법칙 즉, 변증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머리와 발이 거꾸로 서 있는 헤겔철학을 완전히 뒤집었다. 여기서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헤겔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스승 포이어바흐 철학의 한계 또한 극복했다. 포이어바흐는 물질적 토대로부터 의식을 설명했지만, 그가 토대로 했던 물질은 사회의 경제적 토대, 그리고 이 경제적 토대에서 이뤄지는 생산을 둘러싼 인간의 사회적 관계가 아니라 이로부터 분리, 고립된 개별 인간이었다. 그는 이런 ‘개별 인간’이 놓여 있는 토대로부터 여러 의식을 설명했다. 그러나 포이어바흐가 상정했던 그러한 ‘개별 인간’은 현실에서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인간은 주어진 경제적 관계 속에서 타인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그 속에서 살아간다. 모든 개별 인간의 윤리, 취향, 취미, 생각 등을 그가 관계를 맺고 있는 수많은 타인들 즉,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접근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남겨진 ‘개인’이라는 것은 완전히 허상일 수밖에 없다. “포이어바흐는 ‘종교적 심성’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분석한 추상적 개인이 사실은 일정한 사회 형태에 속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마르크스,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그래서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은 왜곡될 수밖에 없었고, 인간의 의식을 제대로 설명하는 도구가 될 수 없었다. 당연히 헤겔철학을 넘어설 수도 없었다. 특히 사회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억압당하는 노동 인민에게 현실적 탈출구를 제공할 수도 없었다. 마르크스는 유물론과 변증법이 서로 분리돼 대립함으로써 발생하는 모순과 부조화, 한계를 결합시킴으로써 해결했다. (비록 정치적 상부구조가 경제적 토대에 반작용을 가할지라도) 경제적 토대가 정치적 상부구조를 탄생시키고, 이 정치적 상부구조 속에서 법과 사상, 철학이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분석의 결론이었다. 이러한 철학적 결론은 자본주의 사회를 역사적, 구체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제대로 전개될 수 있었다. 관념론자였던 헤겔이 그것을 시도한 무대가 법철학이었다면, 유물론자인 마르크스가 그것을 시도한 무대는 자본주의 경제 분석이었다. 《자본론》을 통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가 어떻게 역사적으로 탄생했고, 자신을 매장할 무덤을 만들고 있는지, 그리고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로부터 어떻게 자본주의 정치 체제와 법, 이론들이 탄생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다룬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자본론》에 가장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서술돼 있다. 형식논리학 vs 변증법 형식논리학과 변증법의 차이를 잘 보여 주는 사례가 있다. 바로 스냅 사진과 동영상이다. 부산에서 서울로 달리는 마라톤 주자를 떠올려 보자. 이렇게 달리고 있는 주자의 위치를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주자가 지금 어디에 있는데, 어디를 향해 달리고 있다”는 식의 설명 외에는 불가능하다. 운동하고 있는 그의 위치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라톤 주자를 스냅 사진으로 찍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스냅 사진 속의 마라톤 주자는 ‘정지’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콕 집어서 그의 위치를 정확히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마라톤 주자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태, 즉 운동하는 상태라면 이 스냅 사진은 그의 움직임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한다. 동영상만이 끊임없이 운동하는 마라톤 주자의 실제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 철학에서 형식논리학은 이 ‘스냅 사진’에, 변증법은 ‘동영상’에 비유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물을 변화 속에서, 운동 속에서 포착하고자 한다면, 변증법이 필요하다. 형식논리학은 이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며, 사물을 고정불변한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형식논리학을 대표하는 두 명제는 ‘동일률’과 ‘모순률’이다. 동일률의 예를 들면, “나는 나다.”, “책상은 책상이다.” 등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A=A’라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것을 두고서 “나는 내가 아니다.”, “책상은 책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이 두 의견은 모순되기에 양립할 수 없고 틀렸다는 것이다. 수학적으로 표현하면, “A=A가 아니다.”는 것은 틀렸다는 뜻이다. 이것이 모순률이다. 그러나 스냅 사진처럼, 어느 한순간의 정지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찍는 것이 아니라 긴 역사적인 운동 과정, 변화 과정을 찍고자 한다면, 동일률과 모순률은 단박에 한계를 드러낸다. 열일곱 살 고등학교 1학년 때의 나와 예순 살 환갑의 나는 과연 같을까? 아니면 이 사이에는 역사적 변화가 일어나니 서로 다른 나일까? 육체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가치관, 세계관, 취향 등의 측면에서 두 ‘나’는 과연 같을까? 부모님에게 용돈을 타 쓰는 열일곱 살 나와 손주에게 용돈을 주는 예순 살의 나는 과연 같은 존재일까? 시간의 길이를 더 늘려 보자. 오늘 내가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 책상은 200년 후에도 책상일까? 아마 200년 후에 이 책상은 썩거나 쓸모가 없어 쓰레기장으로 보내진 뒤, 땔감으로 쓰여 이미 사라졌을 수 있다. 더 이상 책상이 아니라 숯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결국 형식논리학은 운동하고 변화하는 사물을 어느 특정 시점에서 고정된 것으로 취급했을 때만 유효하다. 반면 사물의 운동과 변화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변증법을 채택해야 한다. 변증법은 동일한 사물에 대해, 변화와 운동의 측면에서 접근한다.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와 다르다.”, “나는 살아 있지만, 동시에 나는 죽어 가고 있다.”, “오늘의 책상은 미래에는 책상이 아닐 것이다.”, “책상은 책상임과 동시에, 썩고 유행에 뒤처져 숯으로 변하고 있다.” 등처럼 말이다. 지배 계급은 왜 형식논리학에 집착할까? 그리고 왜 변증법을 거부할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변증법은 오늘의 사물이 내일에는 바뀔 수 있음을 명료하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오늘의 자본주의 착취 체제가 영원불멸하기를 꿈꾸며 “이대로!”를 외치는 자본가 계급은 아직 충분히 각성하지 못했고 자본주의를 타도할 생각에 이르지 못한 노동자 계급의 현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기를 희망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노동자 계급이 미래의 혁명적 변화의 가능성을 믿지 못해 자포자기하면서 자본주의 착취에 순응하기를 간절히 희망할 것이다. 반면 노동자 계급에게 변증법은 희망과 용기, 확신을 불어넣는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파업에 나서 변화하고 있는 ‘어제의 동료’는 ‘내일의 동료’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바로 이런 변증법적 정신 즉, 변화 발전의 정신에 입각해, 선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에서 파업을 준비한다. “파업 투쟁에 나서고 있는 ‘오늘의 동료’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야 한다는 점을 자각하는 ‘내일의 동료’로 변화할 것이며, 언젠가 노동자 혁명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런 변증법적 정신을 바탕으로 해서 사회주의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속에서 활동한다. 반면 자본가 계급은 ‘절대 세상은 변하지 않고 어제의 임금노예는 내일도 임금노예로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철학으로 노동자의 정신을 물들이려 노력한다. 하지만 자본가 계급의 실천은 자신이 유포하는 고정불변의 철학을 거역한다. 그들은 4차 산업혁명의 파도처럼 끊임없는 변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일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더욱 순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들은 아무리 강력한 노동조합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늘의 민주노조는 내일의 어용노조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민주노조 파괴에 전력을 다한다. 상황은 분명하다. 자본가 계급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한, 자본가 계급은 변증법까지도 활용한다. 그러나 그들의 이익을 거역하는 한, 자본가 계급은 변증법을 거부하고 매장시키려 분투한다. 6. 전체와 부분, 그리고 총체적 연관 젊은이들이, 노동자들이 변증법 철학에 익숙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를 새로운 체제로 대체하는 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변증법은 사물들의 전체적 연관 속에서 개별적 사물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준다. 변증법의 핵심인 운동과 변화는 고립돼 일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사물들이 맺는 무수한 관계 속에서 운동과 변화가 일어난다. 역으로 운동과 변화는 사물들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해 낸다. 따라서 사물의 운동을 인식하려면 우선 사물의 전체적 연관에 주목하라고 변증법은 가르친다. 이러한 전체적 연관 속에서 상황을 접근할 때 현재의 상황이 왜 발생했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가령 지금껏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여러 사건들은 전체 세계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접근해야만 옳게 이해할 수 있고, 미래의 전망을 예측할 수 있으며,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전쟁 위험들은 단지 남북 지배자들 사이의 대립이 아니라, 한·미·일 제국주의 세력과 중국 제국주의 사이의 대립에 뿌리를 두고 있다. 더 깊이 분석해 보면, 이러한 제국주의 대립의 뿌리에는 주요 강대국 대자본가들의 상호대립적인 경제적 이해관계가 도사리고 있다. 미국 제국주의와 중국 제국주의 사이의 갈등, 대립이라는 전체적 연관 속에서 남북문제를 바라보면 한반도에서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남북 노동자 민중의 단결, 나아가서 세계 노동자 민중의 단결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전체적인 연관 속에서 사건이나 상황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부분’을 정확히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 조합주의를 넘어서는 데서도 변증법은 사고의 방법을 제시한다. 사물의 전체적 연관을 고민한다면, 모든 노동자들은 자신을 덮치는 자본가들의 공격과 정부의 억압에 맞서 승리하기 위해 사업장의 경계를 뛰어넘어 모든 노동자가 단결해야 한다는 점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전체로서 볼 때 어느 개별 자본도 지속적인 승리를 구가할 수 없는 무한대의 경쟁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이므로, 자본의 위기가 덮칠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지고 이에 따라 구조조정, 파산위협 등에 맞선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은 개별 노동조합 차원에서는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전체 노동자의 연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젊은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변변한 정규직 일자리가 없어 고통을 겪는다면, 그 고통의 이유를 따져 봐야 한다. 사물의 전체적 연관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이런 고통은 전적으로 자신의 불행, 혹은 능력과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게 된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연관을 따져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왜 일자리가 부족한가? 더 낮은 임금과 더 높은 노동강도를 강요해,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자본가들의 이해 때문이다. 그리고 이 자본가들이 작업장의 대부분을 소유하면서, 일자리를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선을 더 확대한다면, 이런 고통이 자신만을 덮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수많은 청년들이 이런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혼자’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지만, 이런 사회적 역량을 단결시켜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낸다면 비참한 운명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에 도달할 수 있다. 7. 물질의 운동 3대 법칙: 양질 전화, 부정의 부정,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 변증법은 사물이 맺는 무한한 연관성 속에서 일어나는 운동을 일반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도구를 운동의 주요 법칙들을 통해 제시한다. 그 법칙들은 양질 전화의 법칙, 부정의 부정의 법칙,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인데, 이것들은 사물이 하나의 단계에서 다른 하나의 단계로 질적으로 이행하는 것을 분석하고 설명하며 예측할 수 있는 인식의 주요 도구들이다. 가령 이것을 소위 보수냐 진보냐 하는 대립구도에 적용해 보자. 보수파 지배 계급의 철학은 고정불변을 찬미하면서 변화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다. 반면 개혁파 지배 계급의 철학은 일정한 변화를 요구한다. 하지만 개혁파 지배 계급의 경우에도 자본주의 착취 체제의 안정과 고도화를 향한 변화를 추구할 뿐이다. 개량주의자들은 적극적으로 변화를 앞세운다. 하지만 개량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점진적인 양적 변화만을 인정한다. 그들은 이러한 양적 변화가 어느 시점에서는 질적 변화라는 사회의 혁명적인 변화로 이어지며, 또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부정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변화를 인정한다는 것은 혁명적 변화까지 인정하는 것이다. 사물의 변화의 정점이자, 질적으로 도약하는 가장 거대하고 위대한 변화는 바로 혁명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이 혁명적 변화를 반영하는 법칙이 바로 “양적인 변화가 어느 지점에서 질적인 변화로 이행한다.”는 ‘양질 전화의 법칙’이다. 인간이 나이를 먹어 가면서, 아이에서 소년, 소년에서 청년, 청년에서 장년으로, 장년에서 노년으로 양적인 변화를 겪으며, 종국에는 죽음으로써 살아 있던 생명체에서 무생명체로 질적으로 변화한다.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또한 이런 ‘양질 전화의 법칙’을 피할 수 없다.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극소수 사람들에게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런 문제의식은 노동자 투쟁이 확산하면서 점차 다수 대중에게 퍼져 나간다. 노동자들의 단결이 확대되고 투쟁력과 경험이 성장함에 따라, 이런 문제의식은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대안을 향한 갈망으로 성장한다. 사회주의 운동의 성장은 자본주의에 대한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욱 전면화하고 확고하게 만든다. 결국 이러한 문제의식의 양적 축적이 어느 단계에 이르러, 사회구성원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 계급에 의한 혁명이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질적 도약이다.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의 법칙’ 또한 이러한 혁명적 변화를 설명해 주는 소중한 도구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산 것과 죽은 것이라는 대립물의 투쟁 속에 놓이게 된다.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세포의 일부는 죽어 가고, 일부 세포는 새롭게 탄생한다. 새롭게 탄생하는 세포의 수가 죽어 가는 세포 수를 능가할 때, 인간은 자라나고 성장한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되면, 인간은 점차 늙게 된다. 산 것과 죽은 것이라는 대립물의 투쟁에서 어느 시점이 되면, 죽어 가는 세포가 새롭게 탄생하는 세포를 압도하게 되고, 인간은 죽음이라는 질적 변화와 만나게 된다. 대립물 사이의 투쟁은 대립물의 통일 속에서 전개된다. 가령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은 대립물의 통일 속에 있다.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의 노동 없이는 단 한 푼의 이윤도 뽑아낼 수 없다. 반면 노동자들은 노동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자본가의 생산수단을 활용해 노동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은 상호 대립하면서도 서로 의존하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임금과 이윤을 둘러싼 대립과 투쟁이 그 사례다. “너희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내놓지 않으면 우리도 일하지 않겠다.”라는 정신으로 전개되는 노동자 파업은 노동에 대한 자본가들의 의존성을 활용한 투쟁이다. 반대로 자본가는 생산수단(불변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의존성을 활용해 사업장을 폐업하거나 공장 가동을 중단해 파업을 압박한다. 매우 격렬한 파업도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는 어느 한도를 넘어서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데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대립물의 통일’이란 단지 상호의존성만을 다루는 개념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더욱 중요한 것은 대립과 적대적인 투쟁이다. 상호 대립하되 서로 의존하고 있는 두 대립물 사이의 투쟁이 계속 발전해 가다가, 결국에는 격렬한 상호 투쟁 속에서 낡은 것이 파멸하고 새로운 것이 승리하면서 상호의존과 함께 대립도 소멸하는 과정, 즉 대립물의 통일과 투쟁이라는 운동을 통해 모순이 극복되고 새로운 단계로 이행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 또한 이러한 대립물의 투쟁 속에 놓여 있다. 바로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계급 투쟁이다. 자본주의를 탄생시키면서 신흥 지배 계급으로 올라선 자본가 계급은 부단히 자본을 축적하면서 노동자 계급을 끊임없이 배출해 낸다. 두 계급 사이에서는 임금과 고용, 노동조건을 둘러싼 부단한 투쟁이 일어난다. 초기에는 자본가 계급의 힘이 노동자 계급의 힘을 압도한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성장함에 따라 수적으로 압도적 다수가 되고, 사회적 생산의 대부분을 담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단결해 나가는 노동자 계급의 힘도 성장한다. 노동자 계급은 더 이상 자본가들에 대한 의존성을 인정하지 않게 된다. 생산수단을 사회 공동의 재산으로 전화시켜 완전한 독립성을 획득하고자 한다. 어느 시점에 자본가 계급의 힘과 노동자 계급의 힘은 팽팽한 힘의 균형 상태, 즉 이중권력 상태로 이행한다. 혁명과 반혁명의 치열한 대립 끝에 힘의 우위를 점한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새로운 계급으로 떠오른다. 자본가 계급은 소멸한다. 이렇게 대립물의 한 축이었던 자본가 계급이 소멸하게 되면 대립물 사이의 모순도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철폐다. 모든 지배 계급은 자신이 새로운 지배 계급으로 떠오르는 시점까지는 이러한 ‘대립물의 투쟁’을 인정한다. 가령, 프랑스에서 자본가 계급은 봉건 체제에 맞선 자신의 투쟁 역사를 찬미해 왔고, 혁명기념일까지 제정했다. 그러나 이 대립물의 투쟁이 이제 자신을 권좌에서 몰아내려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자, 이렇게 부르짖는다. “이제 계급 투쟁(대립물의 투쟁)을 멈추자. 계급 투쟁은 야만적이다. 계급 협조를 통해 평화의 세상을 열자!”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선언한다. “계급 투쟁(대립물의 투쟁)은 역사발전의 원동력이다!” ‘부정의 부정의 법칙’은 이러한 혁명적 변화가 질적인 발전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질적인 발전이 이뤄지는 역사적 과정이 무엇인지를 드러낸다. 자본가 계급을 극복하고 세상의 주인공으로 도약한 노동자 계급은 단순히 새로운 유형의 지배 계급을 만들어 낸 것일 뿐일까? 그렇지 않다. 자본가 계급을 부정하고 사회의 전면에 등장한 노동자 계급은 2차 부정으로 나아간다.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공동체 사회)로 전진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은 자신을 포함한 계급 일반을 제거해 버린다. 우선 생산수단을 전체 사회구성원의 공동 소유로 전환시킴으로써, 노동자 계급은 유산자와 무산자 사이의 구별을 없애 버린다. 모두가 (공동의) 유산자이면서도, 동시에 모두가 (누구도 생산수단에 대한 개인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산자다. 다음으로 이렇게 누군가가 누구를 착취할 이유도, 착취할 근거도, 착취할 힘도 없게 만듦으로써 타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존재했던 모든 국가 기구들이 존재 근거를 잃게 된다. 오직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의식적 공동체’만 남게 된다. 자본주의의 부정을 통한 사회주의의 건설, 사회주의의 부정을 통한 공산주의의 건설이라는 ‘부정의 부정’을 통해 인류 사회는 계급 사회에서 무계급 사회라는 질적 발전에 도달하게 된다. -
[그래, 다시 마르크스주의 연재#1] 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와 만나야하는가?모든 지배자들은 마르크스주의를 두려워했다. 그들은 거듭 마르크스주의의 종말을 선언했지만, 마르크스주의는 그때마다 거대한 생명력을 드러내며 부상했다. 2023년이 저물어 가는 오늘도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은 모든 나라들에서 잊히지 않은 채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사회주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이러한 열광은 2018년에 처음 발견되었으며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사회주의를 향한 거대한 열광은 1980년대 중반 이후 1990년대까지 터져 나왔다. 이러한 열광은 최근 잠시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그럼에도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고 고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나타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중 한 명이다. 왜 마르크스주의는 ‘죽은 개’가 될 수 없는가? 나아가 오늘날 노동자들이, 특히 젊은이들이 마르크스주의를 탐구하고 마르크스의 사상과 대화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마르크스주의의 출발 - 자본주의에 대한 단호한 규탄 마르크스주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일지라도,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과 직관이 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에 적대적이며 자본주의 철폐를 주장하는 급진적 사상이라는 점이다. 그렇다.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 체제가 일하는 사람들에게 전쟁과도 같은 비참한 상태를 강요하며,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반동적인 체제라는 단호한 비판 정신에서 출발한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가 낳는 치 떨리는 폐해들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그것을 극복하고 대체할 수 있는 과학적인 대안으로, 마르크스에 의해 발견됐다. ‘투사!’ 바로 이것이 사회주의가 마르크스라는 인물 속에서 탄생할 수 있는 뿌리였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처음부터 투사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마르크스를 투사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사회주의 사상을 탄생시킬 수 있던 원천을 창조했던 것은 바로 자본주의 그 자체였다. “학문은 이기적인 쾌락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운이 좋아서 학문 추구에 전념하게 된 사람은 인류를 위해 자신의 지식을 사용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즐겨 하던 말들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는 이러한 삶의 가치관을 죽을 때까지 굳게 지켜 나갔다. 역사적으로 인류를 위해 학문을 하고자 했던 선량하고 훌륭한 청년은 많았다. 그런데 마르크스는 왜 자본주의에 맞선 열렬한 투사의 삶으로 나아갔을까? 그것은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사회와 깊이 연결돼 있었다.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 마르크스는 1818년 프랑스 국경에 인접한 독일의 도시 트리어에서 태어났다. 1842년 프로이센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절대주의가 만연해 있었다. 스물네 살에 〈라인신문〉에서 편집진으로 일하기 시작한 마르크스는 자연스레 정치적 저항을 펼쳤고,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과 씨름했다. 당시 유럽에서는 산업혁명이 한창 진행되면서 기계제 대공업 생산이 밀려들고 있었다. 이러한 흐름은 공장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탄생시켰고, 가난한 농민들을 임금노동으로 내몰았다. 마르크스는 슐레지엔 지역 방직공들의 봉기와 모젤 지방에서 포도를 재배하던 가난한 농민들이 받는 억압과 고통 등 노동자 민중의 비참한 삶과 대면했다. 그는 방직공들의 봉기를 전면적으로 지지했고, 그들의 민주적 권리 보장을 주장했다. 또한 사적 소유를 강화하는 새로운 법이 제정되면서 숲에서 땔감을 줍는 일마저 절도죄로 가혹하게 처벌받아야 했던 가난한 농민들의 권리를 옹호했다. 이렇게 가난한 노동자 민중과 연대하는 과정에서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권’ 즉, 자본가들의 재산 보호를 우선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약탈성과 반인간성을 경험했고, 분노했다. 그는 저물어 가는 낡은 봉건적 지배 체제와 새롭게 떠오르는 자본주의 지배 체제 모두에 맞섰다. 두 체제 모두 가난한 노동 인민을 무자비하게 착취했고, 잔인하게 억압했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지배 체제의 뿌리, 가난한 노동 인민이 겪는 고통의 뿌리에는 ‘토지와 기계, 작업장 등 생산수단에 대한 배타적, 독점적 소유’가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했다. 지주와 자본가들은 이런 소유권과 이로부터 비롯되는 거대한 이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오히려 이것에 저항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악랄하게 공격했다. 당연히 그것에 대한 해결책은 ‘서로 사랑하자.’는 식의 관념적 호소가 아니라 ‘지배계급에 맞선 피지배계급의 투쟁’이었다. 만일 절대주의의 잔인한 억압이 없었다면, 그리고 신흥 자본가들의 이윤을 위해 희생되고 짓밟힌 노동자들과 가난한 농민들의 비참한 상태가 없었다면, 마르크스의 이론과 실천은 결코 저항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처럼, 관념철학의 상아탑에 갇힌 평범한 철학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의 뇌가 자본주의를 타도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해야 한다는 혁명적 사상을 토해 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마르크스를 마르크스주의의 창시자로 만든 것은 바로 반동적 사회 즉, 자본주의 자체였다. 만일 마르크스주의가 괴물이라면, 이 괴물은 모순으로 가득 찬 당시의 반동적 사회 체제가 잉태한 것이었다. 이것은 “왜 마르크스주의는 ‘죽은 개’가 될 수 없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는 데서 중요한 실마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타나는 착취, 억압, 부정의, 불평등, 전쟁, 바로 이것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잉태했을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불러오는 공통의 원천이다. 이 원천이 사라지지 않는 한, 마르크스주의와 만나야 할 필요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은 바로 그 점에 대해 다룰 것이다. 1부. 알쏭달쏭 마르크스주의 1. 자본주의, 괴물이 되고 있다 마르크스가 제시한 이론이 21세기 세계와 한국 사회에 어떤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마르크스가 살았던 시대와는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 이제 마르크스주의는 쓸모없는 이론이 되지 않았을까?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제시하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브라질에서는 총기 사고로 매년 3만 7,000명이 총에 맞아 죽는다. 인구 10만 명당 19명꼴이다. 이를 두고 가히 전쟁과도 같은 상태라 부를 수 있다면, 한국은 정말 전쟁 중이다. 하루에 43명, 연간 1만 5,000명, 매년 인구 10만 명당 무려 31명이 자살한다. 한 해 평균 2,000명 이상이 산업재해로 사망한다. 이것은 코로나가 정점이었던 2020년 한 해 동안 한국에서 코로나19로 사망한 900명을 훨씬 넘는 숫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음을 방증하고도 남는다. 하지만 자본가들에게 한국을 포함한 자본주의 체제는 전쟁터가 아니고, 안전한 천국이다. 미국의 억만장자인 데이비드 게펜은 코로나가 절정으로 치달으며 모두 불안에 떨고 있던 2020년 3월, 인스타그램에 “바이러스를 피해 그레나딘 제도에서 자가 격리 중입니다. 모두 안전하길 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이 글과 함께 올라온 사진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요트를 탄 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요트는 7500억 원짜리 호화 요트였다. 마르크스가 태어나서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킨 시기와 그보다 약 2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마르크스가 과학적으로 분석한 자본주의의 본성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작동하고 있다.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의 격차 즉, 불평등은 오히려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이 2014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1% 안에 드는 부유층의 재산은 110조 달러(약 11경 7,183조 원)로, 가난한 인구 35억 명의 재산보다 65배나 많다. 이런 불평등 경향은 최근 10년 가까운 사이에 계속 증가하고 있다. 다보스포럼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 세계 억만장자 2,668명의 재산은 코로나19 2년 기간을 거치면서 무려 5,300조 원이나 증가했다. 불과 2년 사이에 1인당 재산이 평균 2조 원이나 늘어난 것이다. 옥스팜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3월 이후 2021년 12월까지 세계 최빈곤층은 매일 2만 명 이상 사망했지만, 세계 10대 부호의 자산은 2배 이상 늘었다. 이러한 불평등은 한국에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2021년 기준, 한국에서 상위 10%가 보유한 부(재산)는 평균 12억 2,508만 원으로 전체 부의 58.5%를 차지한다. 반면 하위 50%는 평균 2,354만 원으로 전체 부의 5.6%에 불과해, 상위 10%와 하위 50% 격차가 52배 정도에 이른다. 이처럼 사회의 부 가운데 훨씬 많은 부분을 자본가들이 독점하면서, 그들의 권한은 모든 영역에서 커져 가고 있다. 그 와중에 세기말적 징후라고 하는 전쟁, 범죄, 도덕적 타락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절대빈곤을 해결했다는 것을 체제 정당화의 거의 유일한 알리바이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것마저도 흔들리고 있다. 세계적으로 실업률은 높은 수준을 이루고 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인간적 삶마저 포기해야 한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의 2015년 발표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9명 중 1명이 충분한 음식을 공급받지 못했고, 하루 1.25달러 미만의 소득을 올리는 이들이 10억 명 이상이었다. 2022년 옥스팜의 발표 내용은 더욱 어둡다. 이러한 빈곤층이 33시간마다 100만 명이나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격화되는 자본주의 경쟁과 이윤율을 높이려는 자본가들의 잔인한 착취가 결합해, 더 많은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언제든 실업자가 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한다. ILO(국제노동기구)의 2022년 11월 〈2022~2023 글로벌 임금 보고서〉에 따르면, 대부분의 중소득과 저소득 국가에서 일자리 숫자는 감염병 이전 일자리 수준에 비해 2% 줄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고소득 국가까지 포함해,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들에서 불안정하고 저임금의 비정규직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ILO는 해당 보고서에서 글로벌 임금이 2022년 상반기에 실질적으로 0.9% 하락했다고 지적했는데, 이는 〈글로벌 임금 보고서〉를 발간하기 시작한 2008년 이후 최초의 하락 사례다. 이것은 가난한 나라들에만 해당하는 사례가 아니다. 보고서는 세계 임금노동자의 60%를 차지하는 G20 국가들로 범위를 좁힐 경우 월 임금 하락률이 2.2%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가 구세주로 삼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도 해법이 되지 못하고 있다. 자본가들의 수중에 장악돼 이윤을 위해 작동하는 과학과 기술은 대규모로 일자리를 제거하고, 노동자들을 더 강력한 경쟁의 톱니바퀴 속으로 밀어 넣는 공포의 수단으로 작동해 왔다. 2016년 7월 보고서에서, ILO는 4차 산업혁명으로 앞으로 20년 사이에 아시아에서만 1억 3,700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와 같은 명백한 상황은 만인 대 만인의 무한대의 경쟁을 강요한다. 비참한 상태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어린 학생들까지도 경쟁의 링에 올라야 한다. 이것은 인간의 안정감과 행복의 가장 중요한 원천 중 하나인 연대감을 파괴한다. 고립된 개인으로 내몰려 불안정해지고 행복감을 상실한 사람들은 자살의 늪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다. 고통에 절규하는 한국의 젊은이들 마르크스 이래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마르크스가 규정한 그 잔인한 착취 본성을 더욱 철저하게 발현해 온 것이 자본주의다. 게다가 이 자본주의의 미래 또한 달라질 것이 없다. 그것을 가장 명확히 보여 주는 것이 한국 노동자계급 젊은이들이 현재 겪고 있는 삶이다. 세상을 확 바꿔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젊은이들의 가슴 속에 움트고 있다. 2015년 10월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의 토론회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에서 발표된 조사 결과는 의미심장하다. 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 42%가 원하는 미래에 대해 “붕괴, 새로운 시작”을 선택했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미래에 원하는 것으로 선택한 비율을 23%에 불과했다. 이런 결과는 이들의 조부모나 부모 세대가 젊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조부모나 부모 세대만 하더라도, 그들이 젊었을 때 압도적 다수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원하는 미래로 선택했다. 조부모, 부모 세대와 지금의 젊은 세대 사이에는 어떤 강이 흐르고 있는가? 과거를 지배했던 패러다임은 무엇이었는가? 첫째 낙수 효과 즉, 선성장 후분배에 대한 기대였다. 자본주의가 성장해 경제가 발전하면, 그 낙수 효과로 자본가들만이 아니라 가난한 노동자들도 혜택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풍요로운 미래가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 말이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박정희 시대의 엄청난 속도의 경제 발전은 그 낙수 효과를 증명하는 것으로 보였다. 조부모 세대들은 열광했고, 성장하는 자본주의를 포옹했다. 부모 세대에 이르자 이런 포옹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IMF 사태는 자본주의의 잔인한 야만성, 그리고 자본주의가 경제적 풍요의 박차가 아니라 장애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부모 세대에 각인했고 거대한 공포심을 불러왔다. 이러한 부모 세대의 공포감을 보면서 자랐던 지금의 젊은 층은 더 이상 자본주의를 격하게 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갈수록 경제적 활력이 떨어지고 수시로 비틀거리는 자본주의의 야만성이 자신을 덮칠까 공포에 떨고 있다. 세월호 사태는 이 젊은 층에게서 자본주의에 대한 기대감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2022년 미국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 결과는 그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19개국을 대상으로 한 미래경제전망 설문조사에서 18세 이상 한국인 응답자의 60%가 자녀 세대의 경제형편이 부모 세대보다 어려울 것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이 수치는 미국 72%, 일본 82%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둘째, ‘개천에서 용 나기’ 패러다임이었다. 허리띠를 조르고 열심히 노력하면, 또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하면 훨씬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 그래서 이 고통스런 노동자 계급의 삶을 벗어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감이 산산조각 나고 있다. 계층 이동의 통로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으며, 학력 수준은 갈수록 집안의 경제 수준에 좌우되고 있다. 대학을 나오더라도 그들의 다수에게 닥치는 미래는 ‘청년 실업의 높은 벽’이다. 소위 좋은 대학을 나오고 경쟁에서 겨우 승리하더라도, 그들의 대부분은 운 좋게 얼마 안 되는 정규직 자리를 꿰찬 것에 만족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 부모 세대에서는 안정된 정규직 일자리는 고등학교까지 나와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세대를 거치면서 젊은이들의 삶의 기대치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18~33세 때의 고용 상황을 비교했을 때, 침묵의 세대(1946년 이전 출생), 베이비붐 세대(1946~1964년생), X세대(1964~1980년생)까지는 고용률이 80%에 이르지만,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의 경우 7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세계를 변혁하라!”는 마르크스의 문제의식은 오늘날 젊은이들에게도 여전히 정당하다. 아니 더욱 절실하다. 마르크스 시대의 자본주의는 최소한 성장하는 성장하기라도 했다. 그러나 쇠퇴해 내리막길을 내달리는 것이 지금의 자본주의다. 그 내려가는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기에 인류, 특히 미래의 세대를 더욱 고통스럽고 위험천만한 상황으로 내몰 것이다. 2. 여전히 빛을 발하는 마르크스의 문제의식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의식의 핵심은 바로 나와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사회 구조’를 정확히 과학적으로 해명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항상 노동자를 비롯한 압도적 다수의 노동하는 사람들을 착취하는 계급 착취 체제인데, 이 착취는 갈수록 강화되고 그 결과 불평등 및 노동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 그 해명의 결과물이었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마르크스 생전보다 오늘날의 현실에 더욱 유효하다. 당시에 출발 단계였던 자본주의는 오늘날 더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다. 자본주의는 세계적으로 확장됐고, 자본주의가 토해 낸 노동자 계급은 더 거대해졌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착취적, 반동적 본질이 200년 동안 결코 변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확고해지면서 미래 세대의 삶을 짓밟고 있다면, 이 자본주의의 본질과 모순을 밝히는 마르크스의 사상은 다른 누구보다도 젊은 세대에게 절실한 가치가 된다. 이 사상은 단지 과거의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결코 변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갈수록 현실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이러한 자본주의의 운동 원리가 낳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미래의 방향을 추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1883년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런던 하이게이트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에는 불과 10여 명이 참석했다. 마르크스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당시로는 그만큼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 뒤 자본주의가 마르크스의 과학적 분석의 정당성을 현실에서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나아가서 실업과 공황, 세계대전의 폭풍우 속에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대안을 인류가 갈구함으로써, 마르크스의 사상은 전 세계의 노동자들과 젊은이들 속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만성화된 불황, 높아지는 실업률, 격화되는 경쟁, 갈수록 앞이 안 보이는 불확실한 미래, 전쟁의 위협 등이 젊은 세대를 칭칭 휘감고 있다. 다른 누구보다도 ‘오늘날’의 젊은이들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는 가장 거대한 생명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와 대면해야 하는 이유 마르크스주의와 대면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착취적, 반동적 본성을 마르크스주의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어서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마르크스주의가 그런 반동적 체제가 갖는 모순과 함께, 그 모순을 타파하고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사상은 마르크스주의만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진정한 차별점은 자본주의에 적대적일 뿐만 아니라 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를 제시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마르크스는 사회가 변화 발전하며, 낡고 반동화된 체제는 필연적으로 붕괴한다는 것을 해명했다. 자본주의도 역사적 진보성을 갖고 태어났지만, 결국 반동화돼 폐지해야 할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필연적이고도 과학적인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를 제시했다. 개인적인 이익이나 계급적 편견에 눈먼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같은 결론 즉, 사회주의에 도달할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는 끝났다고 기회만 되면 자본가 계급이 떠들었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유령 앞에서 그들이 계속해서 벌벌 떨 만큼 변하지 않는 현실성을 사회주의는 획득해 왔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가 하나의 사상일 뿐만 아니라, 물질적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대안은 노동자 투쟁이라는 물질적 힘으로 구체화돼 자본주의를 붕괴 상태로까지 내몬 적이 있었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물질적 힘을 만드는 주체가 바로 노동자 계급이라고 규정했다. 노동자 계급은 자본주의에 의해 가장 고통받는 계급일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모든 곳에서 거대하게 성장하고 조직화되는 계급이며, 궁극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새로운 노동 공동체 세상을 열 수 있는 혁명 계급임을 마르크스는 강조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 계급의 고통에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그들을 동정과 배려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역사와 경제를 깊이 연구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이 사회주의 건설의 주역이라는 견해에 이르렀다. 마르크스는 독일 고전철학과 영국 고전경제학, 프랑스 사회주의라는 당시 인류가 획득했던 가장 중요한 과학적 성과들을 깊이 탐구했고, 이로부터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 모순과 이것을 해결하는 새로운 사회로서 사회주의의 필연성을 도출했다. 사적인 이익의 영향을 받거나 계급적 편견에 눈먼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같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수십 년 사이에 한국에서, 중국에서, 인도에서, 베트남에서 자본주의화와 나란히 등장하는 수억 명의 노동자 계급을 보고 있다. 또한 아무리 사회주의를 증오하더라도, 노동자 없이는 자본주의가 굴러갈 수 없기에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들을 품고 있는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를 보고 있다. 교통과 통신, 무역의 발달은 이 노동자들을 더욱 긴밀히 연결시키고 있다. 그렇기에 자본가 계급은 잠시 사회주의를 막을 수는 있지만, 결코 이 도도한 물결을 막을 수 없다. 자본주의 착취에 대해 규탄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함께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혁명적 대안을 제시한 사람은 마르크스가 최초였다. 또한 마르크스가 제기한 혁명적 대안은 자본주의에 맞서 새로운 사회를 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전히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남아 있다. 자신을 덮치는 자본주의의 공격에 맞서 해결책을 찾고자 하는 모든 젊은이들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3. 사회주의는 죽었다? 모든 이론은 실험을 통해 검증된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이론이야말로 현실의 실험을 통해 명백히 파산을 선고받은 것이 아닌가? 이미 역사에서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이 드러난 이론을 굳이 공부할 이유가 있을까? 마르크스주의는 자본주의의 약점을 지적한다는 점에서는 유효할지 몰라도,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사회주의의 필연성과 정당성을 제기한다는 점에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게 아닐까? 대략 위와 같은 논리가 마르크스주의에 다가오는 것을 가로막는 또 다른 결정적 장애물일 것이다. 사회주의가 북한이나 중국, 그리고 1930년대 이후 러시아를 의미한다면, 그런 비판이 유효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주의를 정확히 탐구함으로써 그런 체제들이 과연 자본주의의 변종인지 아니면 진정한 사회주의인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만약 변종이라면, 마르크스주의가 그것에 책임질 이유가 없다. 오히려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를 부활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사회주의를 참칭하는 권력자들이 온갖 나쁜 짓을 한다고 해서 그 책임을 사회주의에 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200년이 넘는 기간, 세계적인 역사적 실험을 통해 자본주의는 무엇을 증명했는가? 불평등, 실업, 전쟁, 경쟁, 도덕적 타락, 가난 등이다. 무수한 실험을 통해 응당 파산을 선고받아야 할 당사자는 바로 자본주의 자신이지 않겠는가? 이 모든 것들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마르크스주의를 제대로 학습하고 탐구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음을 보여 준다. 자본주의 주류 체제가 왜곡한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또는 이러저러한 지식인들이나 지배자들에 의해 변형되고 재해석된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마르크스 저작 자체를 탐구함으로써 판단을 내려야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가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과학적 해법을 제기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살펴야 한다. 어떤 결과에 도달하든, 다음은 분명하다. 이 체제가 부당하고 낡았으며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느끼는 젊은이들, 이 사회가 주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전망을 모색하는 주체적 젊은이들이라면 누구나 마르크스주의를 학습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이제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왜곡하지 않고, 그 객관적 실체에 다가가 보자. 물론 이 글 역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석'일 것이다. 책의 글들 또한 의심해 보면서, 더 많은 젊은이들이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이 낡고 반동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길을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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