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규탄하는 미국 성소수자 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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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이스라엘과 미국의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을 규탄하는 미국 성소수자 노동자들

“집단학살에 자긍심은 없다”

  • 정은희
  • 등록 2024.05.29 08:44
  • 조회수 547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미국 대학 퀴어노동자들

 

미국 보스턴대 대학원생(대학원생으로 연구나 교육 등 노동자로 일하는) 퀴어 노동자들이 ‘파업 중’이라는 손피켓과 함께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다. 목에는 흰 바탕에 검은색 체크무늬 카피예를 두르고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현했다. 이들은 지난 3월 25일 임금 인상과 저렴한 주택, 노동조건 개선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보스턴대학원생노동조합(BUGWU, 3천 조합원)의 성소수자 간부들이다. 이들은 지난 5월 1일 메이데이에 BUGWU 현장 간부(BUGWU Rank and File Caucus)들과 함께 “보스턴에서 뉴욕까지, 우리는 해방 팔레스타인을 외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공개적으로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학살 중단을 촉구했다.

 

[파업 중인 보스턴대 퀴어 노동자들 @gradworkersofBU]

 

퀴어조합원를 비롯한 보스턴대학교 대학원노동자들이 이스라엘을 규탄한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원생노동자들이 밝혔듯 “노동자로서 우리의 투쟁은 근본적으로 전쟁에 반대하는 투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생노동자들은 “우리의 노동이 전쟁을 부추긴다면, 우리는 우리의 고용주들과 다를 바 없다”며 “존엄한 노동조건을 위한 우리의 투쟁은 대학의 비무장화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대학원생노동자들은 “우리는 대학의 비무장화가 전투적 집단행동과 결의를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점을 안다”며 “우리는 보스턴 대학교가 국방부 연구의 열렬한 지지자라는 점에 주목한다. 현재 4천만 달러가 넘는 국방부 보조금과 계약이 보스턴대에 지원되고 있다. 우리는 보스턴대에 국방부와 군산복합체의 연구비 지원을 거부하고 보잉, 엘빗시스템즈, 록히드마틴, 모트루먼 등 군수업체에 보내는 추천서 작성을 거부하라고 간곡히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퀴어 대학원생노동자들은 수많은 학내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에 참여해 이스라엘의 집단학살과 핑크워싱을 비판해 왔다. 보스턴대학에서는 ‘팔레스타인 정의를 위한 보스턴대 학생들(BU Students for Justice in Palestine)’이 주도해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와 농성을 벌였고, 여기에는 성소수자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동안 보스턴대 학생들은 학내에 텐트 100여 개로 이뤄진 농성촌을 세우고, 행진을 하고, 졸업식에서는 팔레스타인 깃발로 만들어진 학사모를 쓰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밝혀 왔다. 지난 4월 말에는 경찰의 농성장 강제철거에 맞서 투쟁하다 100여 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특히 성소수자들은 이스라엘이 ‘중동 유일의 성소수자 친화 국가’를 자처하며 팔레스타인 식민지배와 학살을 정당화하고자 성소수자를 이용하는 핑크워싱을 비판한다. 성소수자 투쟁은 팔레스타인 식민지배와 학살이라는 제국주의 억압에 맞선 투쟁과 분리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프라이드 행진을 비롯해 기업의 성소수자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지만, 정작 자국 내 동성결혼은 여전히 불법이고, 팔레스타인 성소수자 난민 역시 탄압한다.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미국 대학생 운동은 파업투쟁으로 확산하고 있기도 하다. 캘리포니아대학(UC)에서는 대학원생과 박사후과정 노동자 48,000명을 포괄하는 UAW 4811지부가 파업에 돌입했다. UAW 4811지부는 지난 5월 15일 파업 찬반투표를 벌여 79% 찬성으로 가결했다. 이 파업에도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어깨를 걸고 있다.

 

[뉴욕대 팔레스타인 지지 농성장 모습 | www.them.us]

 

팔레스타인 연대집회를 조직하고, 군산복합체 지원을 받는 성소수자단체를 규탄하는 미국 퀴어운동

 

팔레스타인 민중의 절박한 호소에 손 맞잡은 미국 성소수자들은 대학원생노동자들뿐만이 아니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규모 공세를 시작한 직후부터, 미국 성소수자들은 가두시위를 열었다. 이들은 평화단체가 조직한 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을 규탄하는 시위를 직접 조직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2023년 10월 23일에는 뉴욕 맨하탄에서 ‘임신중지권리 그룹’과 ‘해방 팔레스타인의 퀴어들’이라는 단체가 시위를 열고 가자지구 집단학살을 규탄했다. 이들은 ‘재생산 정의는 해방 팔레스타인을 의미한다(Reproductive Justice means FREE PALESTINE)’, ‘해방을 위한 레즈비언들(Lesbian4Liberation)’, ‘가자 휴전을 위한 게이들(Gays4Gaza Ceasefire)’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12월 11일, ‘해방 팔레스타인의 퀴어들’은 2,500명 규모의 시위를 주도적으로 열기도 했다.

 

미국 성소수자들은 가두시위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기업, 군산복합체의 핑크워싱을 비판하면서 BDS1)운동도 조직하고 있다. 대표적 상대는 미국 최대 성소수자 조직인 ‘인권캠페인(HRC)’으로, HRC가 미국 군산복합체 노스롭그루먼(Northrop Grumman)의 후원을 받기 때문이다. HRC의 ‘기업 파트너’인 노스롭그루먼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무기제조사로, 이스라엘에 무기를 ‘원조’한다. 이 때문에 미국 퀴어들은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에 워싱턴DC HRC본부 앞에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대한 ‘침묵을 깨라’라고 시위를 벌였으며, 2월 3일에는 뉴욕시에서 열린 HRC 연례행사장 밖에서도 유사한 시위를 벌였다. 당시 시위에는 미국 드라마 ‘포즈(Pose)’의 스타 배우, 인디아 무어(Indya Moore)도 참여해 팔레스타인을 지지했다. 무어는 작년 10월 30일 반시온주의 단체인 ‘평화를위한유대인의목소리(Jewish Voice for Peace)’가 조직한 시위에서 연행된 수백 명 중 한 명이었고, 연행자 중에는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트랜스젠더 활동가 세실리아 젠틸리도 있었다.

1) 보이콧(boycott), 투자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의 약자로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및 인종차별을 끝내기 위한 비폭력 저항 운동이다.

 

인권캠페인(HRC)에 대한 BDS운동은 ‘노 프라이드 인 제노사이드(No Pride in Genocide, 집단학살에 자긍심은 없다)’라는 전국적 연합단체가 조직했다. 이들은 퀴어, 트랜스젠더 무슬림, 유대인, 아랍인, 서남아시아인, 북아프리카인 등 소수자들이 결성한 팔레스타인 연대모임이다. 이 단체의 2월 13일 성명에 따르면, “이 연합은 퀴어해방이 팔레스타인 해방과 하나라는 신념을 더욱 고양하고, 이스라엘의 점령으로 희생된 퀴어와 트랜스젠더를 위해 싸우기 위해” 조직됐다. 이들은 “아랍과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경멸적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동맹국의 핑크워싱으로, 팔레스타인 집단학살에 대한 우리의 슬픔, 공포, 분노는 더욱 깊어졌다”고 규탄한다.

 

미국도 성소수자들을 탄압하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에 따르면 올해에만 515건의 반 성소수자 법안이 미국에서 발의됐다. 반 성소수자 법안 대부분은 학교에서 성정체성 논의를 금지하고, 트랜스젠더 운동선수의 스포츠 참여를 제한하며, 아동과 청소년에 대한 성별확인진료를 금지한다.

 

[2월 14일 ‘노 프라이드 인 제노사이드’가 주최한 시위 장면 | NATASCHA TAHABSEM/COURTESY OF NO PRIDE FOR GENOCIDE]

 

‘노 프라이드 인 제노사이드’

 

‘노 프라이드 인 제노사이드’는 워싱턴이나 뉴욕에서뿐 아니라 디트로이트, 리노, 로스엔젤레스에서 성소수자들이 유사한 시위를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대표적인 미국 에이즈 운동단체인 액트업 뉴욕(ACT UP New York)도 노스롭그루먼을 상대로 BDS운동을 벌이는데, 이 또한 ‘노 프라이드 인 제노사이드’와의 연대를 통해 시작됐다. 2월 14일에는 로스앤젤레스 퀴어해방 풀뿌리 조직인 ‘젠더정의(Gender Justice LA)’도 행진 시위를 진행했다. 지난 5월 초, 액트업 뉴욕은 맨해튼 ‘글래드미디어어워드’2) 시상식장 밖에서도 친이스라엘 기구 및  구글·월마트·맥도날드·디즈니·코카콜라 같은 노조파괴 기업과 관계 단절을 촉구하는 집회를 조직했다. 글래드미디어어워드는 다수 방산업의 후원을 받는다.

2) 미디어에 나오는 LGBT의 이미지를 감시하는 비정부기구GLAAD가 주관하는 시상식으로, 성소수자 인식 개선에 공헌한 인사들에게 시상한다.

 

프라이드 행진 조직위원회가 입장을 내기도 했다. 2월 8일, 샌프란시스코 프라이드위원회는 “휴전과 모든 인질 석방을 촉구한다”라는 성명을 냈다. “가자지구에서 계속되는 전쟁과 집단학살은 많은 어린이를 포함해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 우리는 가가지구 즉각 휴전과 모든 인질들의 석방을 촉구한다.”

 

이외에도 약 28,000명이 ‘해방을 위한 퀴어들’ 그룹의 청원에 온라인 서명했다. 이 청원은 즉각적인 휴전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미국 정부 관료들에게 이스라엘 지원 중단을 요구하고자 조직됐다.

 

물론 이 같은 미국 퀴어들의 투쟁이 하루아침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성소수자 억압과 제국주의를 동일시해 온 미국 퀴어들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식민지배와 핑크워싱을 규탄하며 조직해 온 BDS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의 결과다. 그리고 이제 그 투쟁은 노동자 운동과 결합해 그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가부장적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투쟁으로 전진하고 있다. 우리 역시 성소수자 해방을 위해, 제국주의 세력이 아니라 그에 맞선 노동자 운동과 단결해 함께 싸우자. 집단학살에 자긍심은 없다! 이스라엘은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 팔레스타인 땅에서 영원히 떠나라! 미국과 서구 열강은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떠나라!

 

[NATASCHA TAHABSEM/COURTESY OF NO PRIDE FOR GENOCIDE]

 

[영국 레즈비언 집단의 직접행동을 비롯한 영국 성소수자들의 팔레스타인 연대]

 

“언론이 무슨 얘기를 하든, 팔레스타인에는 퀴어인들이 살고 있어요. 우리가 여기에 있고, 우리가 퀴어입니다. 팔레스타인에 해방을!”

 

“가자에서 살고 있는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다와 당신뿐입니다.”

 

“저는 항상 당신과 내가 햇볕 아래서 손을 맞잡고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상상해 왔습니다. 우리는 할 수만 있다면 가고 싶은 모든 곳에 대해 이야기했었죠. 하지만 이제 당신은 떠났어요. 우리에게 쏟아지는 폭탄이 당신을 빼앗아 갈 줄 알았더라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세상에 기꺼이 말했을 거예요. 내가 겁쟁이여서 미안해요.”

 

팔레스타인 가자에 이스라엘의 포탄이 쏟아지던 지난해 10월 말, 영국에서는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 광고판에 퀴어 팔레스타인들의 증언들이 도배됐다. 이 이미지들은 영국 레즈비언 집단 다이크 그룹(Dyke Group)이 ‘퀴어링 인 더 맵’이라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팔레스타인 퀴어들의 증언을 인쇄해 붙인 것이었다. 성소수자들을 팔레스타인 식민정책의 선전 도구로 삼는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에 반대해 조직한 행동이었다. 다이크 그룹처럼 영국 퀴어인들도 절박하게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조직하고 있다. 이들은 자국 정부들에 “집단학살에는 자긍심이 없다”고 말하며 팔레스타인 민중을 학살하고 핑크워싱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대표적으로는 영국에서는 작년 10월 이스라엘이 가자 학살을 시작하자마자 전 세계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한 지지 성명이 발의되어 1천4백여 명의 성소수자가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를 선언했다. 이들은 1990년 에이즈에 대한 정부의 무책임과 사회적 혐오에 맞서 제작된 ‘침묵은 죽음’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빗대어 “우리는 ‘침묵은 죽음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지금은 침묵할 때가 아니다”라며 즉각 휴전과 팔레스타인 점령 종식을 촉구하고 “우리 모두가 자유로울 때까지 우리 중 누구도 자유롭지 않다”고 밝혔다.

 

[“여기(가자 지도에 표시된 장소)가 첫 번째 데이트 장소야. 우리는 앉아서 우리 어린 시절과 퀴어 문화, 음식과 백파이프에 관해 이야기했었지”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 Dyke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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