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병원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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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병원노동자들

무급휴직. 불법의료행위 만연, 구조조정 위협까지

전공의들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진료거부에 돌입한 지 석 달이 넘었다. 4월부터 의대교수와 개업의들이 진료시간을 각각 주 52시간, 주40시간으로 줄이기로 한 바 있고, 5월부터는 의대교수들이 주1회 휴진으로 정부압박 수위를 높였다. 보건복지부는, 내년에 전문의 시험을 치러야 하는 전공의 3, 4년차들에게 5월 20일까지를 복귀시한으로 던졌지만 돌아온 전공의 숫자는 8,800여 명 가운데 650여 명밖에 되지 않는다. 2월 20일 시작될 때만 해도 ‘아무리 길어져도 4월 10일 총선까지만 버티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사태는 여전히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급종합병원 의료진의 40%를 차지하는 전공의가 의료현장을 떠나고 병원 운영 파행사태가 길어짐에 따라 피해를 보는 것은 환자만이 아니다. 의료현장엔 의사 외에도 간호사를 포함한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가 함께 일하고 있다. 당장 의사 부족으로 진료축소를 하면 병원노동자들의 근무조건에 상당한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환자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많이 다루고 있으니 여기선 병원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피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진짜 의료개혁, 공공의료 대책을 발표하라! 기자회견 중인 의료연대본부

진짜 의료개혁, 공공의료 대책을 발표하라! 기자회견 중인 의료연대본부. (기사의 내용과 직접 연관이 없습니다) 사진=민주노총

 

무급휴직, 진료축소 갈수록 늘어

 

서울아산병원은 이미 초기인 3월 초부터 한 달 무급휴가를 접수 받기 시작해 3월 15일엔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다. 무급휴가도 최대 100일로 늘리더니 결국 4월엔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다고 했다. 의사를 제외한 50살 이상, 근속 20년 이상자를 대상으로 한다. 40일간의 손실이 511억 원이라는 게 이유다. 서울아산병원이 ‘수술로 먹고사는 병원’이라 그렇다는 게 의료현장의 반응이다. 어떤 병원에선 언제까지인지도 모를 무급휴직 상태에서 누구는 알바를 하고 누구는 여행을 다닌다고 했다.

 

나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병원의 경우 원래 토요일 오전 진료를 하던 외래부서가 3월부터는 한 두 개 과를 빼고는 모두 토요일엔 문을 닫았다. 5월부터 주1회 교수 휴진을 하는 대신 그 외 요일에 외래예약을 더 많이 받는다. 그렇잖아도 외래진료 시간이 5분도 채 안 되는 마당에 충분한 진료시간 확보는 더욱 어려워진 셈이다. 응급실에선 경증환자는 거의 받지 않는다. 전부터 우리 병원에 다니던 환자는 거부할 수 없으니 받고, 그 외의 경증환자는 다른 2차 병원으로 가라고 안내해서 대부분 돌려보낸다.(단적인 예로 지난 석 달 동안 찢어진 상처를 꿰매는 경우를 본 게 몇 번 안 될 정도다. 평소엔 하루에 10~20명 정도 상처봉합을 한다.)

 

응급실의 변화된 모습

 

어떤 부서에서는 일이 줄었다며 교대근무조당 인원을 한 명씩 줄였다. 어떤 부서에서는 수간호사가 간호사들에게 가족돌봄휴가(무급)를 쓰라고 압박한다. 몇몇 병동은 아예 부서통합을 해서 문 닫은 부서의 직원들은 다른 부서로 뿔뿔이 흩어져서 일한다. 병원이 4월 중순에 한 용역업체에 ‘한 달에 얼마의 지출을 줄여라’고 구조조정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다행히 아직 구조조정이 시행되진 않았지만 곧 누군가 잘리겠구나 걱정 속에서 일한다. 소문은 무성하다. 다음 달부터 다시 문 연다더라, 1년은 걸려야 정상화된다더라, 정상화해도 인원을 줄여서 운영한다더라, 사표 수리 안 한 전공의들을 다시 채용한다더라 운운.

 

우리 응급실은 환자가 예전보다 30~40%는 줄었다. 솔직히 처음 며칠은 좋았다. 경증환자를 거의 안 받으니 일이 조금 덜 힘들었다. 갑자기 근무표가 바뀌어 쉬는 날이 두어 개 더 생겼다. 그런데 4월부터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다른 부서로 가기 시작하더니 5월에도, 6월에도 계속 그렇게 한단다. 응급실에 진료 받으러 온 경증환자들에게 상황설명을 하고 다른 병원을 안내하는 일을 맡은 간호사는 아주 죽을 맛이다. ‘당장 아파 죽겠는데 진료해 달라’, ‘내 돈 내고 내가 진료 보겠다는데 왜 안 된다는 거냐’ 막무가내인 환자도 있다. 정부와 의사들 때문에 벌어진 사태인데 환자와 입씨름하고 욕먹고 스트레스 받고, 다른 부서로 지원 가서 일 새로 배우고 적응하고, 원치 않는 휴가를 억지로 써야 하는 건 모두 간호사를 포함한 병원노동자 몫이다.

 

지난달부터 응급실에 군의관이 한 명 와 있다. 이번 달엔 공중보건의도 한 명 왔는데 특정 과의 검사동의서 받는 업무만 한다고 한다. 큰 도움은 안 된다. 응급실은 철저히 중증환자 위주로 받다 보니 그야말로 응급실다운 모습을 찾은 게 사실이다. 인턴과 전공의가 없어 교수가 직접 진료를 해서 환자들의 만족도는 높다. 전공의가 교수에게 전화로 일일이 보고하고 허락받고 하는 몇 단계의 전달과정 없이 교수가 직접 응급실에 와서 환자를 대면진료하고 처방을 내는 만큼 일처리가 단순하고 빠르다. ‘저 교수 이름만 보다가 얼굴은 처음 본다. 퇴사할 때까지 한 번도 얼굴 볼 일 없을 줄 알았다’는 말이 오간다. 환자 입장에서는 진료의 질이 높아진 셈이다.

 

하지만 제때 진료 받지 못하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는 환자가 많다는 게 함정이다. 반면 상급병원의 진료 축소 덕분에 2차 병원엔 환자가 엄청 몰린다. 우리 병원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다 2차 병원에 간 동료는 요즘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하소연한다.

 

불법의료행위, 간호사는 무슨 죄?

 

우리 응급실 간호사 몇은 졸지에 속성교육을 받고 PA(physician assistant, 이른바 전담간호사)가 되어 의사들이 하던 진료기록 넣는 일을 하고 있다. 어떤 부서 간호사들은 수술실로 가서 전공의 대신 수술 보조를 하는 SA(surgeon assistant)로 일한다.

 

원래 인턴과 전공의들이 받던 각종 검사동의서도 요즘은 다 간호사들이 받는다. 삽관, 동맥혈 채취 등 그 동안 의사업무였던 것도 이젠 간호사에게 넘어왔다. 처방을 하거나 진단서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합법적인 절차와 자격을 갖춘 것이라 보기 어려운 이런 일을 간호사들이 의사 대신 하고 있는 것이다.

 

PA, SA는 현재 불법이다. 의사들이 자기 이익만 챙기겠다고 집단행동하며 의료현장을 떠날 때마다 간호사들은 점점 더 많은 불법적인 의료행위를 울며 겨자 먹기로 강제 받고 있다. 2000년에 정부가 의약분업하는 대신 의사들의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의대정원을 10% 줄인 결과 의사 수가 부족해지자 이를 메우기 위해 PA를 도입하게 되었다. 간호사들은 PA를 합법화해 달라고 오래 전부터 요구했고 그동안 의사들은 이를 극구 반대해왔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PA를 합법화해서 전공의 없이도 의료현장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들겠다고 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 못잖게 의협과 대립각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20년 넘게 정부와 의사집단이 줄다리기해 온 사안인데 원만하게 넘어갈 수 있을까?

 

보건의료노조는 5월 10일 국회에서 국제간호사의 날 기념 토론회를 진행했다@보건의료노조

보건의료노조는 5월 10일 국회에서 국제간호사의 날 기념 토론회를 진행했다 (기사의 내용과 직접 연관이 없습니다) 사진=보건의료노조

 

의사집단행동과 노동자파업, 달라도 너무 다르다

 

5월 20일, 우리 병원 어떤 부서의 전공의는 100% 복귀했다지만 응급실엔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다. 응급실 조직도가 그려진 게시판에서, 떠난 전공의와 인턴들의 사진이 떼어진 걸 발견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언제부터 떼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혹시 내일이라도 이들이 돌아온다면? 석 달 넘게 수련기간을 날려버린 전공의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내년 전문의 시험 자격을 주는 것은 정당한가? 현장 간호사 등은 대부분 그게 말이 되냐며 고개를 젓는다. 아무리 정부와 의협이 합의한다고 해도 수련기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한 채 전문의가 된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정상화에 1년은 걸릴 거라고 이번 사태 초기부터 맘을 다잡고 길게 내다보는 노동자도 상당히 많다.

 

정부가 의사들의 반발을 뻔히 알고도 의대정원 확대를 밀어붙이고, 의사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집단행동을 하는 통에 환자와 병원노동자들만 중간에서 피해를 보고 있다. 하루하루 사태가 길어질수록 병원노동자의 불안은 커져만 간다. 병원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면 정부가 앞장 서 필수유지업무제도를 이용해 파업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심지어 의료노동자의 50%를 필수유지업무로 둔갑시키는 경우도 있다. 작년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에 국민의 힘은 "보건의료노조의 요구사항이 무엇이건 대규모 의료공백을 일으키면서 총파업 일으키는 건 의료인의 의무와 윤리를 저버린 것"이라며 정치파업, 불법 딱지를 붙였다. 그러나 지금 의사들의 장기간 집단 업무거부에 대해선 어떤가?

 

의사들은 의료인의 의무와 윤리를 지키고 있는가?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이행하고 있는가? 환자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는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 책임을 묻기는커녕 ‘선처’, ‘대화를 통한 타협’으로 봐주기에 급급하고 있다.

 

노동자가 파업하면 정부와 언론은 일주일도 안 되어 손해가 얼마네, 환자 목숨을 볼모로 하네, 불법파업으로 피해를 주네 운운하며 노동자파업을 마녀사냥하듯 한다. 그런데 의사들의 집단진료거부에 대해서는 왜 이리도 시선이 다른가? 병원노동자는 철저히 피해자로 모든 짐을 떠안고 이 시간에도 현장에서 발로 뛰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때 못잖게 병원노동자들의 노고와 어려운 처지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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