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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시장 3년] #1 노인 최저임금 제외,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폐지, 노조 무력화오세훈 시장 3년, 서울시가 폭주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예산을 전액 삭감했고, 시내버스가 다시는 파업하지 못하게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려 한다. 서울시의회는 4월 26일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하고,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조례를 폐지한데 이어 노인의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위해 최저임금법을 개정하자고 주장하고, 장애인탈시설조례를 폐지하려 하는 등 모든 방면에서 노동자와 민중을 공격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 이후 서울시는 어떻게 다방면에서 노동자민중을 공격하고 있을까? 그중 몇가지 주요한 쟁점들을 연재기사를 통해 정리해보려한다. “노인 최저임금 차등적용하자”, 노인들을 위해? 지난 2월 서울시의회 의원 38명이 노인 최저임금법 적용 제외대상으로 하자는 개정촉구 건의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건의안 전문에서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고 노인들의 일자리 활성화를 도모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 적용 제외의 인가 기준과 범위를 노인층에게 확대 적용하도록 하는「최저임금법」 및 같은 법 시행령의 개정을 강력히 건의한다.”고 밝혔다. 고령화 사회에 더욱 늘어날 빈곤에 허덕이는 노인층을 더욱 값싼 일회용 소모품으로 쓰겠다는 것이다. 건의안의 전문을 읽어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전문에서는 “우리 사회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23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9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4%에 육박하고 있으며, 의학적인 발달 등으로 기대수명은 늘어나는 반면 은퇴 이후 노인들의 삶을 위한 사회적 보장 제도는 미흡한 것이 현실”이라며, 저출생 고령화에 따라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노인들의 삶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을 담고 있다. 딱 여기까지만 맞는 이야기이고, 그 뒤로부터는 노인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쉬우려면 최저임금으로부터 노인을 해방시켜줘야한다는 말도 안되는 해법을 제시한다. 노년알바노조(준)가 2021년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 청소노동자의 39%, 남성경비노동자의 53%가 최저임금에 미달했다. 겉으로는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대부분 대기시간 등을 늘려 실질적으로는 시간당 임금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최저임금 차등적용 도입은 이러한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 불보듯 뻔하다. 안그래도 이미 임금노동을 하는 다수의 노인은 불안정하고 위험하고 열악한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은퇴후에도 임금노동을 지속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그 노동자의 계층적 지위를 드러낸다. 노인은 은퇴하고서도 일을 해야하는 노인과 하지 않아도 되는 노인으로 나뉜다. 연금이 ‘용돈연금’에 불과한 대한민국에서, 특별히 재산을 축적했거나, 퇴직금을 빵빵하게 받았거나,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의 혜택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면 은퇴 후에도 일을 해야한다. 4대보험 안되는 비정규직, 특수고용 일자리를 전전했거나, 가사노동 등 비공식 경제활동에 종사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새벽 첫차를 타고 움직이는 청소노동자, 폭염속에 선풍기 하나로 버티는 경비노동자. 노인에게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면 이런 열악한 일자리에서 더 싼값에 노인을 착취할 수 있게 된다. 앞으로 노인인구가 점점 더 많아질테니 경쟁 또한 치열해질 것이다. 생산가능인구(15세~64세)는 줄고 노년층은 늘어나 착취할 노동력이 부족해져 골머리를 앓던 자본에게는 이윤을 보전하기 위한 훌륭한 대책이다. 하지만 노인의 삶은 더욱 빈곤선으로 내몰릴 것이고, 최저임금을 안줘도 된다는 사실이 당연해지면 지금 장애인을 향하는 시선처럼, 일하는 노인을 향한 천대와 멸시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노인이라고 부양가족이 없겠는가? 노인이라고 큰 돈이 필요치 않겠는가? 차등적용이 합법화되면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삶에 비관하거나,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한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더 장시간의 노동을 견디다 죽어가는 노인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보편의 노인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더 이상 일하지 않고 여생을 누릴 수 있는 권리다. 작년 연금 수급시기를 늦추려는 연금개악에 맞서 투쟁했던 프랑스 노동자들은 “평생 일하다가 죽을 수 없다”고 외쳤다. 노인에게는 최저임금 미만이라도 좋으니 자본에게 다시 예속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그동안 사회의 지속을 위해 고생했던 노고를 인정받고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자신의 남은 여생이나마 행복하게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 자유가 필요하다. ‘용돈연금’이라 불리는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과 자본의 연금재정 부담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K국방이라며 칭송하는 군비지출을 사회복지를 위한 지출로 돌려 모든 노인에게 이런 권리를 보장해야한다. (관련기사: 국민연금을 둘러싼 계급투쟁, 자본이 빼앗은 노동계급의 삶을 되찾는 계기여야 한다) 중증장애인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사업 폐지 서울시는 작년 7월부터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업무 중 ‘권익옹호활동’을 제외시키더니, 올해 사업을 완전히 폐기해버렸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일하던 400명의 장애인 노동자들과, 해당 사업을 담당하던 전담인력 50명이 모두 작년 12월 31일을 끝으로 해고됐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예산 58억을 전액 삭감한 서울시는 ‘장애유형별 맞춤형 특화일자리(서울형 시간제)’ 예산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해당 예산규모는 40억으로 이전보다 줄었기에 대상도 400명에서 250명으로 줄었을 뿐더러, 기존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일하던 최중증장애인들이 일할 수 없는 직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문제다. 서울시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원예관리 보조, 택배 보조, 세탁물 정리원, 세차원, 장애예술인’을 일자리 예시로 제시하고, 뇌병변장애인의 경우 “품질 검사원, 콘텐츠 모니터링, 온라인 홍보마케터” 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업무는 중증장애인들이 수행하기 어렵고, 실제로 전권협 서울지부 내 316명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 중에 특화일자리로 진입한 노동자는 단 6명뿐이다. 서울시는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 담긴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번에 개선대책이라고 내놓은 일자리의 예시들을 보면, 모두 단순한 반복업무들로,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주장해온 ‘권리를 생산하는 노동’과 결이 많이 다르다. 자본의 시각에서 장애인의 노동은 손쉽게 ‘한 사람 몫을 하지 못하는 노동’으로 양적으로 계량된다. 자연스럽게 얼만큼의 이윤생산에 도움이 되는 ‘생산성’을 지녔는지를 기준으로 장애에 등급을 매기고 분류하려는 사고가 자라난다. 경증장애인에겐 단순한 노동을 시키고, 그런 업무를 수행할 수 없는 최중증장애인은 노동에서 배제한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번에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폐기하고 특화일자리란 이름으로 ‘단순반복업무’만을 제시한 것도 궤를 같이한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는 최중증장애인들이 자신의 삶을 사회에 드러내고,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의 수많은 면을 폭로하고 개선하는 기회가 됐다. 저들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가 지하철 시위에 동원됐다”며 그토록 공격하고 싶어하는데, 그렇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덕에 지하철 시위를 더 큰 규모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은 오히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2021년 말부터 ‘시작된’(정확히 말하자면 20년도 전에 시작된) 지하철 출근길 시위는 우리 사회에 장애인들의 권리가 얼마나 박탈되어있는지를 수면 위로 드러냈고, 수많은 논쟁거리를 불러일으켰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의 노동이 장애인들의 삶이 조용한 죽음으로 잊혀지지 않고 치열한 투쟁으로 드러나도록 만들었고, 차별로 가득찬 세상에 균열을 내고 있다.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해고된 노동자들은 권리중심노동자해복투를 구성해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자본가는 자기 맘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 노동자를 해고하지만, 노동자는 자본가를 해고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의 근원적으로 불평등한 노자관계를 드러내는 단면이다. 전장연은 “오세훈 서울시장을 해고하고” 훨씬 더 많은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선언과 함께 투쟁을 이어갈 것을 밝혔다. 자본주의의 불평등한 질서에 균열을 내는 장애인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함께 투쟁에 나서자. 시내버스 한번 파업했더니, 필수공익사업 지정으로 “파업 못하게 하자” 서울시는 4월 11일 ‘시내버스 운영 개선대책’을 발표해, 시내버스를 지하철처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해 파업 시에도 최소 운행률을 유지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을 22대 국회 개원과 함께 건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내버스는 1997년 노조법 제정 당시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됐으나,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로 은행사업과 함께 2001년부터 제외됐던 것을, 다시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노조법 42조의 2항에 따르면 “필수유지업무의 정당한 유지ㆍ운영을 정지ㆍ폐지 또는 방해하는 행위는 쟁의행위로서 이를 행할 수 없다.”고 되어있다. 이에 따라 철도, 지하철 등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있는 노동조합의 파업의 위력은 크게 감소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파업의 본질이 노동자가 노동을 중단해 자본에게 ‘위력이 되는’ 손해를 끼침으로써 자신의 권리를 자본에게 강제하는 것인데, 필수공익사업장 제도는 노동3권의 행사를 유명무실하게 만들며, 유의미한 파업을 불법화하는 악법이다. 서울시 기관지인 ‘내손안에 서울’은 기사에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시민의 이동권을 볼모로 하는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 필수공익사업장 지정을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자본주의가 노동을 사회화하였기에 모든 노동은 서로 연결돼있고, 그래서 어떤 노동의 중단이든 누군가의 일상과 생활에 지장을 줄 수 밖에 없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않으면서 중단할 수 있는 (사회적) 노동이란 것이 존재할까? 누군가의 권리를 ‘볼모’로 잡지 않아야한다는 걸 전제하는 순간 어떤 파업도 불가능하다. 장시간 노동으로 고통받는 버스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파업은 정당하며, 실질임금이 2년 연속 하락하는 지금 더욱 그러하다. 시내버스를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은 시내버스노동자는 임금인상조차도 요구하지 말고 자본에게 조건없이 순응하는 임금노예가 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버스노동자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필수공익사업장 지정을 막아내고, 노동자의 파업권을 무력화시키는 필공사업장 조항을 폐지시켜야 한다. 서울교통공사, 타임오프제로 무더기 부당징계 서을교통공사는 지난 3월 서울교통공사노조와 서울교통공사통합노조 소속 34명의 노조간부에 대해 파면, 해임 등 중징계 처분을 내렸다. 타임오프제를 악용해서 “무단결근 151회, 상습적인 이석·지각 등 노조활동을 핑계로 무단결근·이탈, 지각 등의 행위를 자행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런데 조사과정을 들여다보면, 당사자가 출근사실을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서울교통공사는 “▲개인별 근태 내역 및 직원 신분증 출입기록 ▲사내 업무망 접속기록 ▲작업일지 ▲구내식당 이용 내역 등”을 통해 출근 기록을 파악했다. 타임오프를 사용한 당사자에게 이러한 근무사실 증명을 요구했는데, 지하철에서 출퇴근을 태그하지 않은 경우나 구내식당 이용내역을 제출하지 못한 경우 무단결근으로 처리했다. 자동차를 이용해 출퇴근을 하고, 구내식당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밥을 먹은 경우 출근했음에도 입증하지 못하면 무단결근이 되는 것이다. 사내업무망 또한 공용PC를 5~6명이 같이 쓰는 구조이기 때문에, 로그인 기록이 부재하다고 결근을 확인할 수 없다. 이렇듯 출근을 입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부당하게 무단결근으로 처리된 것이 많다는 것이 노동조합의 입장이다. 노사가 합의하에 단체협약·근무환경·인사제도 등 실무를 논의한 경우도 무단결근으로 본 사례도 있다. 주목할 점은 2010년 7월 타임오프제 시행 이후 10년 동안 노사가 합의하에 진행해온 타임오프 사용방식을 이제서야 문제삼는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작년 11월 서울교통공사에서 근로시간면제를 인원한도인 32명을 10배 초과하는 311명이 사용했고, 전체 시간도 면제시간 한도인 3만 800시간보다 1만 8천여시간을 초과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사항들은 모두 노사합의를 거쳐 진행된 것임에도, 정부가 무리하게 개입해 노조활동의 권리를 축소시키라는 신호를 회사에 보내고 있다. 노조 전임자의 활동의 자유는 노동자가 오랫동안 투쟁해 쟁취한 권리다. 노조전임자를 통해 노동조합은 여전히 아주 소수지만, 일상적인 노동의 속박에서 벗어나 노동자 스스로를 조직하는데 전념할 수 있는 자신의 일부를 얻게 된다. 백번 양보해 만약 노조전임자의 관료화나 부패의 문제가 존재한다면, 이것은 노동조합이 민주주의를 작동시켜 노동자 스스로 풀어갈 문제이다. 작년부터 노동부는 실태조사와 근로감독은 노골적으로 노동자가 그동안 쌓아올린 ‘조직할 권리’의 표현인 노조전임자의 권리를 공격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서 벌어지는 타임오프 위반을 핑계로 한 무더기 부당징계는 그 한가지 사례이다. 부당한 징계를 철회시키고,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투쟁할 권리를 지켜내자!2024-05-09 | 조회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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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왜 청년은 정권심판론에 반응하지 않았는가청년층, 낮은 투표율과 높은 무당층 비율이 드러내는 것 2024년 22대 총선이 끝났다. 야당에 비례정당 포함 175석이라는 압승을 안기면서다. 정부와 여당은 ‘주 69시간제’, 민주노조에 대한 ‘반 카르텔 투쟁’, ‘최저임금 적용 제외 이주노동자 고용 확대’, ‘최저임금 230원 인상’ 등 노동자 생존권을 위협하는 조치를 쏟아내왔고, 이를 심판하려는 대중의 열망도 뜨거웠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67.0%로 1992년 14대 총선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청년층 투표율은 낮았다. 아직 연령대별 투표율 집계가 나오지 않았으나, 매우 저조한 청년층 사전투표율에서 드러나듯, 청년층 투표율은 저조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가에 회자했던 “지겨운 절망을 넘어, 내일을 위해 투표합시다”라는 대자보 제목이 무색하게도, 청년 대중이 고른 대답은 투표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한창 달아올랐던 총선 분위기 가운데서도, 많은 2030 유권자들은 선거장에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즉, 투표한 청년 중 다수는 정권 심판론을 지지했으나, 애초 정권 심판론을 비롯한 총선 담론 자체에 냉소하며 투표하지 않은 청년도 다수다. 30대 이하 유권자수 비중은 32%이나 사전투표자 중 30대 이하의 비중은 24%에 불과했다. 출처: 슬로우뉴스 상황을 보자. 4월 4일 공개된 한국갤럽 3월 4주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국 18~29세 유권자 중 38%는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었다. 같은 연령대의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인 27%, 국민의힘 25%보다 훨씬 높다. 30대 유권자로 범위를 넓혀도 무당층 다수 경향은 줄어들지 않았다. 30대 중 29%가 그 어떤 정당도 지지하지 않았다. 이 또한 양당 지지도보다 10%가량 높은 수치였다. 4050의 무당층 비율이 10%를 겨우 웃돌고 6070의 무당층 비율은 6-7%에 불과한 상황에서, 전체 무당층의 70%에 달하는 비율이 청년이라는 점은 유독 눈에 띈다. 이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한국갤럽을 통해 지난 3월 31일과 4월 1일 전국 유권자를 조사한 결과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하겠다는 20대 응답자는 50.3%에 불과했다. 4년 전 총선 당시 ‘적극적 투표’에 응답한 20대 응답자 비율 74.1%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30대 유권자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4년 전에는 82.2%의 응답자가 ‘적극적으로 투표하겠다’고 밝혔으나 올해는 겨우 68.8%의 응답자만 같은 의사를 밝혔다. 이 같은 수치는 결국 동 여론조사에서 응답자가 밝힌 가장 큰 더불어민주당 지지 이유 ‘정권 심판을 위해서’(63.7%)와 국민의힘 지지 이유 ‘국정안정을 위해서’(46%)가 청년 대중을 흔들지는 못했다는 뜻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매 선거 반복되는 공허한 심판론에 청년 대중은 충분히 지쳤다. 과거를 돌이켜보자. 청년 대중은 과거 문재인 정부나 윤석열 정부처럼 이전 정부를 ‘심판’하겠다 나선 정권에 표를 실어주었던 당사자였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20·30대 여성 지지율은 각각 47.6%, 56.9%로 타 세대보다 월등히 높았고, 20대 대선의 윤석열 후보의 20·30대 남성 지지율 역시 58%, 46%로 상당히 높았다. 그렇다면 이들이 건넨 열렬한 지지의 결과는 어땠는가? 자칭 타칭 촛불 정부로 불린 문재인 정부 재임 중에도 생명안전법을 비롯한 각종 진보적 법안들은 통과되지 못했고, 그런 문재인 정부 심판을 외치며 당선된 윤석열 정부는 각종 사회적 참사를 유발해왔다. 위협받는 생존권에 투표용지를 들어도 청년 대중의 삶에는 일절 변화가 없었다. 그 결과 청년층 다수는 선거에 관심이 없거나, 선거에 참여하는 경우에도 고정된 지지 정당 없이 ‘현 정권’을 번갈아가며 심판할 뿐이다. 그간 청년의 탈정치화와 냉소주의에 대한 비판은 손쉽게 쏟아져왔다. 조국 조국혁신당 당대표는 지난 3월 10일 당의 20대 지지율이 유독 낮은 까닭을 묻는 자리에서 “조국혁신당뿐 아니라 정치 자체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발언하기도 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조사 또한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이 2022년 9월부터 10월까지 진행한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20대 연령층의 정치 무관심 비율은 77%에 달했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현재의 20대, 30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어 투표소로 향하지 않았다는 진단은 선후관계가 바뀌어있다. 투표소로 향했으나 바뀌지 않았던 것이고, 바뀌지 않으니 관심 또한 없어진 것이다. 청년은 정치를 버린 적이 없다. 다만 한국 자본주의 정치가 먼저 청년을 버렸다. 세분된 억압과 착취로 청년 대중이 그 어느 때보다 위기를 겪는 지금. 청년 대중이 맞이한 위기의 종류와 총선에서 내놓은 정당들의 공약을 돌이켜보고, 비판하고자 한다. 선거 일주일 전 기준, 청년 무당층 비율 추이. 사진 아시아경제 증가하는 플랫폼노동, ‘N잡러’라니 지난 3월 17일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2023년 월평균 청년층 취업자는 389만 9천 명이다. 언론은 ‘역대 최고 고용률’이라며 연일 청년 고용 증가를 보도했다. 389만이라는 숫자는 얼핏 보기에 분명 낙관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역대 최고 청년 고용률’에는 함정이 숨겨졌다. 청년 인구 감소로 2018년에 대비해 전체 취업자가 5,000명 줄었음에도 개중 단순노무직 등 불안정노동자 비율은 약 2만 명이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포장·운반·청소 등 대부분 단순노무직이 플랫폼 업체에 의해 외주화된 오늘날, 이와 같은 비율의 증가는 다수 청년이 비정규직, 특수고용·플랫폼 일자리로 첫 노동을 시작한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IMF 경제위기 이후 노동시장에 나온 2000년대 초반 청년층이 ‘88세대’가 될 것이라는 진단으로부터 무려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청년 노동자에 대한 억압은 갈수록 세분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 억눌린 청년을 대변하는 정당은 없었다. 국민의힘은 10대 총선 슬로건 중 하나로 ‘청년 모두 행복한 대한민국’을 내걸었지만 실상 세부 방안은 △출산 가구 주택 지원 △미래세대 문화생활 지원 △청년이 당당하고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 조성 △학자금/주거비 지원으로, 극히 일부의 경제적 부담 경감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총선 공약집을 통해 내건 청년 공약 가운데 그나마 노동과 관계있는 부분은 △인턴 기간이 부당하게 길어져 채용 ‘희망고문’이 되지 않도록 정확한 근무기간 명기 및 무분별한 인턴기간 연장 등 금지에 불과했다. 나머지 공약으로 △해외연수 기회 확대 △친환경 차 구입 시 신혼부부 특별공제 등이 있기는 했지만, 청년 노동자 중 비정규직/특수고용직 비율이 늘어나는 현실과 한참 동떨어져 있다. 국민의힘은 주4일제 도입 및 장시간 압축노동 근절에 공식적으로 반대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과 플랫폼노동 중간착취 근절은 공약집 어디서도 거론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10대 공약 중에는 아예 ‘청년’, ‘노동’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았다. 잘 보이지도 않는 세부 항목에 들어가서야 △동일노동 동일임금 제도화, 플랫폼노동 최소보수 도입, 중간착취 근절로 비정규직·특고·플랫폼 노동자 등 차별 해소를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 보호 제도화 등은 결국 특고·플랫폼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는 선심성 보호조치에 불과하며, △간접고용노동자 보호 패키지 입법 제도화 등 또한 원하청 이중착취 확대라는 현실에 대한 인정에 불과하다. 대부분 정책이 지원금 보장이나 상담센터 운영에 그친다는 점도 문제다.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권은 ‘정규직 전환 지원금’이나 ‘노동자 대표 참여 보장’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비정규직 철폐와 플랫폼 노동자 직고용, 노조법 2·3조의 온전한 개정,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삶의 권리를 논해야 할 시점에 ‘억압을 조금 덜어주겠다’고 외쳐봐야 청년 노동자를 구원할 수 없다. 그 밖에도 녹색정의당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노동자 대상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플랫폼에서 일하는 N잡러를 위한 플랫폼 수수료 5% 상한제 도입 등이 눈에 띄었지만. 노동 외주화로 인한 장시간 노동, 야간 노동, 이른바 ‘파트타임’ 노동의 심화 앞에 놓인 청년 노동자에게 ‘N잡러’ 운운하는 것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모양새였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해줄지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무리한 야간 노동을 지속하던 20대 노동자가 사망한 지 겨우 4년이 지났다. 해당 노동자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1년 4개월을 일했지만 서류상으로 여전히 일용직이었다. 1일 단위 고용계약을 다시 맺는 기형적인 형태의 비정규노동자였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비단 쿠팡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편의점, 술집, 물류, 배달 등 초단시간 노동은 숱한 직종에서 청년 노동자의 수명을 갉아먹고 있다. 현행법상 근로기준법에서조차 배제되는 초단시간 노동자를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것은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지만, 노동의 ‘파트타임’화를 저지할 대안은 수수료 상한이 아니다.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건당 수수료제는 폐지하고 원청에 의한 직고용, 건수에 관계없는 전면 월급제가 필요하다. 녹색정의당이 일하는 청년들의 삶을 말하고자 한다면, 목표는 ‘N잡러’ 보호가 아니라 불안정노동철폐를 통한 ‘1인 1잡’ 시대여야 했다. 치솟는 청년 여성 자살률, ‘인구부’라니 20대 여성 자살률은 2019년 16.5명, 2020년 19.4명, 2021년 20.2명으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30∼34세 여성 자살률 역시 비슷한 상승세를 보였다. 30대 여성 자살률도 마찬가지로 2018년 18.6명에서 2019년 19.5명, 2020년 19.4명, 2021년 21.6명으로 올랐다. 이 같은 청년 여성 자살 급증의 원인으로는 ‘여성의 노동시장 주변화’가 주 원인으로 지목됐다. 생계 위기가 심화하면서 결혼이나 출산보다는 노동 중심의 생애 계획을 꾸리는 여성이 늘었는데, 여성노동자의 인식과 요구가 바뀐 데에 비해 고용주 측은 여전히 ‘가장이 아닌’ 생계보조자 여성 노동자만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학회 학술지 ‘한국여성학’ 호를 통해 '노동시장에서의 위기심화와 청년여성 자살률' 논문을 발표한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민아 교수는 사회적 관심도 대책도 없는 여성노동의 현실을 ‘조용한 학살’로 진단하고 성인지적 일자리 대책 마련을 촉구한 바 있다. 그렇지만 관련 상황은 꽤나 처참하다. 국민의힘 총선 공약집의 ‘여성’ 파트는 고작 단면 두 장, 양면으로 한 장짜리였다. 그마저도 노동 주체로서의 여성은 거의 소실됐다. 국민의힘은 여성을 위한 공약으로 △생애주기별 여성 3대 질환 비용 지원 △미혼 여성 난자동결 시술비용 지원을 들었으나, 이 두 공약 모두 여성을 인구 재생산의 도구로서 한정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국민의힘이 앞서 분류한 여성의 ‘생애주기’라는 기준조차 가임기, 월경기, 폐경기로 나뉘었다. 여성을 철저히 가부장적 자본주의의 객체로 취급하는 시선이 총선 공약집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여성노동자들에게 차별 없는 평등한 노동환경 조성 △여성청년 채용 과정에서의 성차별 관행 근절 △실질적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한 구조적 변화 주도 등을 내걸었으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더불어민주당 공약 중 일부였던 ‘비동의 간음죄’를 비판하며 “억울한 사람만 대거 생기는” 법이라 언급한 뒤 바로 해당 공약을 정정하면서 퇴행적인 민주당의 본질을 드러냈다. 비동의 간음죄란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상대방의 동의 여부’로 바꾸는 내용을 핵심 기조로 하며, 국제적으로 가시화된 ‘NO MEANS NO’ 구호가 의미하듯 젠더폭력 피해자에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법안이다. 이토록 중요한 법안 공약조차 “실무적 착오”라는 터무니없는 변명과 함께 삭제된 일은 민주당표 ‘여성 친화’가 그저 선거철 유세에 불과함을 입증했다. 지난 대선에서 수많은 언론은 20대 여성층을 이재명의 핵심 지지층으로 언급했다. 20대 대선 당시 지상파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여성 58.0%가 이재명을 뽑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20대 청년 여성의 지지가 민주당에게 보답받은 적 있었나? 그 선택 또한 “착오”에 불과하지는 않았던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난 25일 경향신문사와의 인터뷰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려 한다”면서도 “젠더불평등 문제에 대해서 저 역시 관심이 있다. 당이 아직 완비된 여성 정책을 갖고 있지는 않으나 당연히 추후 합당한 정책을 만들 것이다”라 밝힌 것 또한 2030 청년 여성을 외면하려는 조국혁신당의 노골적인 행보였다. 조국혁신당은 2일 4050세대 지원 공약을 발표하며 “정치권이 지금껏 청년, 여성, 아동 등을 대상으로 정책을 추진했지만 4050세대는 늘 소외돼 왔다”는 4050 소외론을 부상시켰다. ‘아직 완비되지 않았다’는 표현은 핑계일 뿐이다. 조국혁신당 10대 공약 중 네 번째는 △담대한 저출생 정책, 성평등·돌봄 정책 추진이지만, 조국혁신당이 담대한” 성평등·돌봄 정책을 만들 날은 정당 해산의 날까지 요원해 보인다. 조국혁신당이 주장하는 ‘제7공화국’ 어디에도 청년, 여성, 노동자의 자리는 없기 때문이다. 조국혁신당 강경숙 후보는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민주노총 구제법’이라고 칭했다 허울뿐인 공약, 그런데도 투표가 전부라니 지금의 2030은 구조적 문제를 민감하게 감각하는 세대다. 청소년기 – 청년기에 걸쳐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처럼 대중이 희생되는 장면을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국가와 체제가 개인의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뿐인가. 나날이 치솟는 취업난 그래프와 물가상승에 턱없이 못 미치는 임금은 과거 학교에서 가르쳤던 ‘노력에 의한 계층 이동’의 꿈을 처절하게 박살냈다. 오늘날 청년 대중은 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의 위기 앞에 놓였다. 그리고 그 위기의 해결책을, 선거에 출마한 어떤 정당도 제대로 진단해내지 못했다. 비단 이번 총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번에도’의 이야기다. 총선은 끝났지만 청년 대중은 여전히 사회적 죽음 앞에 몰려있다. 착취체제는 모든 청년 대중을 조금씩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번에도’를 깨달았다면 ‘이제는’ 달라야 한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야 한다. 영구히 반복되는 보수 여야 간 권력 주고받기를 끝내야 한다. 청년 대중은 삶을 개선할 수 없는 정치, 기실 '정치'라고 부를 수도 없는 체제 재생산 과정으로서의 선거에서 객체 역할을 강요받는다. 물론 노동자 민중의 삶을 개선하는 과정과 하등 무관한 보수여야의 '청년정치'에 그 어떤 쓸모도 없다는 점 역시 지적해야겠다. 지금은 정권 견제냐 정권 지지냐를 두고 갑론을박하는 공허한 안티테제의 시대를 깨부숴야 할 때다. △비정규직 철폐 △최저임금 인상 △노동 현장에서의 젠더 불평등 해결 △플랫폼/특수고용/간접고용 노동자 직고용 등의 의제로 스스로 주먹을 쥐자. 국회의원 누구의 지지자가 아니라, 직접 변혁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투표를 통한 기간제 구원이 아닌 진정한 해방으로 가는 그 길에 앞장서, 6월 최저임금 투쟁에서부터 청년 대중의 힘을 보여주자. 투쟁으로부터, 삶을 바꾸는 정치세력화, 끝없는 고통과 자기학대를 강요하는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정치세력화의 토대를 새롭게 만들자.2024-05-05 | 조회 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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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 양당의 권력 교대, 지겨운 쳇바퀴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윤석열 정부 심판으로 끝난 22대 국회의원 선거 4월 10일 실시된 22대 국회의원 선거는 정부 여당의 참패로 끝났다. 민주당·민주연합 175석, 국민의힘·국민의미래 108석, 조국혁신당 18석, 개혁신당 3석, 새로운미래 1석, 진보당 1석이 최종 성적표다. 이론의 여지 없이, 윤석열 정부를 심판하겠다는 정서가 이번 선거를 압도했다. 윤석열 정부는 선거 승리를 위해 몇 달간 김건희 씨를 잠적시키고, 전국 순회 민생토론회를 스물네 차례 개최하며 총력을 다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정부 여당 참패의 핵심 원인은 물론 윤석열이다. 윤석열은 반동적인 신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를 자신의 인생 책으로 꼽는다. (아마 인문사회도서 중에서 윤석열이 유일하게 읽은 책일 것이다.) 최저임금제를 반대했던 프리드먼을 좇아 윤석열은 대선에서 최저임금 미만을 받고 일할 수 있는 자유를 옹호했다. 집권 후에는 철 지난 신자유주의 부자 감세 정책을 펼치면서 재정 건전성 타령을 그치지 않았다. 카르텔 타도 운운한 윤석열의 한마디에 R&D 예산이 33년 만에 삭감된 게 바로 엊그제 일이다. 그랬던 윤석열이 민생토론회에서는 무차별적 재정 투입을 공언하고 다녔으니, 이것만큼 구역질 나는 일이 또 있겠는가? 민생토론회에서 제시된 240개 정책을 모두 집행하려면 900조 원이 넘게 든다고 한다. 선거에 악영향을 줄까 봐 법정 기한까지 어겨가며 뒤늦게 발표한 ‘2023회계연도 국가결산’에 따르면 지난해 재정 적자는 87조 원이다. 적자 규모가 예산상 계획이던 58조 원보다 29조 원이나 늘었는데, 물론 부자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가 주 원인이다. 윤석열은 일말의 부끄럼도 없이 현실성 없는 공수표를 남발하며 관권선거를 벌인 것이다. 선거기간 내내 진행된 민생토론회. 사진: 대통령실 이런 철면피한 뻔뻔함을 생각하면, 875원 대파 논란과 이종섭 도피 출국 건은 소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해 보일 지경이다. 대중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두 사안이 아니더라도 노동자 민중의 생활조건을 개선할 수 없는 윤석열 정부의 몰락은 예정된 일이었다. 물가 폭등, 2년 연속 실질임금 하락, ‘건폭’ 몰이로 대표되는 노동조합 탄압, 선거용으로 기획됐던 의대 증원 카드의 실패, 황상무의 언론인 회칼 테러 발언, 연이은 입틀막 사건 등 윤석열 정부를 심판해야 할 이유는 차고 넘쳤다. 만약 윤석열 정부에 맞설 정치적 대안이 뚜렷했다면 윤석열 정부는 훨씬 더 참혹하게 몰락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대중이 현 정부에 맞서 선택할 수 있었던 대안은 고작 민주당이었다. 불과 2년 전, 부동산 폭등과 내로남불 입시 비리 등으로 윤석열에게 권력을 내줘야 했던 바로 그 민주당 말이다. 진보정당 운동의 한 시대가 끝났다 2년 전 민주당을 심판했던 대선에서도, 윤석열 정부를 심판했던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진보정당은 대중에게 대안적 정치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정의당은 이번 선거에서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정의당은 4년 전 비례정당 투표에서 9.67%를 득표해 5석을 획득했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2.14% 득표로 한 석도 얻지 못했다. 박근혜 탄핵 촛불 직후 2017년 대선에서 6.17%를 득표했던 4선 의원 심상정은 이번엔 자신의 지역구에서 3위(18.41%)에 그치며 정계 은퇴를 선언해야 했다. 정의당의 몰락은 문재인 정부 시절 내내 민주당 2중대로서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정의당은 민주노조 운동이 침체하자 조직 노동자들과의 조직적 연대를 강화하기보다는 더 많은 득표를 위해 무정형의 대중에 영합하려는 전략을 취했다. 조국의 입시 비리 논란이 대두했을 때 이도 저도 아닌 갈지자 행보를 보인 이유다. 정치적 계급으로 조직되지 않은 대중이 민주당이 아니라 정의당에 표를 줄 리 만무하다. 정의당의 몰락이 예견됐을 때 제일 먼저 당을 탈출한 것은 이 시기 영입됐던, 단지 대중에게 상품성이 있었던 정치인들이다. 사진: 연합뉴스 진보당의 굴종은 더 처참하다. 진보당은 조직 노동자 운동에 상당한 기반을 갖췄다는 점에서 정의당에 비견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진보당은 민주당의 위성정당에 참여하며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라는 깃발을 스스로 짓밟아 버렸다. 진보당은 민주당과 연합하며 '윤석열 정권 심판'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터무니없는 소리다.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노동탄압으로 일관해 온 민주당 역시 노동자들이 심판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선거를 통해 대중의 정치의식이 단계적으로 발전할 것이라 여기는 건 큰 착각이다. 이번 선거엔 윤석열을 심판했으니, 다음 선거엔 좀 더 왼쪽으로 이동해 진보정당에 표를 주겠다고 생각할까? 아니다. 민주당을 심판한다며 다시 국힘에 표를 던질 것이다. 이미 노무현 정부 이후 이명박 정부의 등장, 문재인 정부 이후 윤석열 정부의 등장에서 반복되었던 역사적 경험이다. 사진: 울산시의회 한국전쟁 이후 노동자운동이 절멸됐던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다시 역사의 주체로 등장한 것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이다. 일체의 자주적 노동자투쟁이 봉쇄됐던 1987년에는 민주노조 건설과 최소한의 노동조건 개선 투쟁도 곧바로 국가권력과의 일전(一戰)을 불사하는 것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깃발을 움켜쥐었던 이유다. 1996~97 총파업은 민주노조 투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한국 노동자계급이 가장 높은 곳에 다다랐던 투쟁이다. 그 성과물의 하나가 진보정당의 건설이었다. 2004년 단번에 10명의 의원을 국회에 입성시켰던 민주노동당은, 정치적 타당성은 차치하더라도 그 자체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후대의 역사가는 진보정당 운동의 한 시대가 끝났다고 선언할 시점으로 이번 선거를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의당이 몰락하고 진보당이 민주당에 굴종한 원인으로, 과거 민주노동당 분당, 통합진보당 사태 등의 정치적 사건을 지목한다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진보정당 운동 몰락의 근본 원인은 노동자 계급투쟁의 퇴조에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서 1996~97 총파업까지, 국가권력에 맞선 전투성과 사업장 울타리를 뛰어넘는 연대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악법을 어겨서 깨뜨리던’ 민주노조 운동의 활력이 사라진 지 오래다. 관료주의의 강화, 사업장 내 임단투에 갇히는 ‘합법’ 파업 등이 한국 노동자운동의 현주소다. 노동자계급이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헤게모니를 행사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상황이 되자, 진보정당 운동 역시 덩달아 방향성을 상실한 것이다. 미국식 자본가 양당체제의 확립, 그러나 정치적 불안정성 한국은 이제 미국식 자본가 양당체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 비해 뒤늦게 시작된 한국 노동자투쟁의 첫 번째 시기는 결국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실패한 채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반 미국의 노동자계급이 독자적 노동자정당의 건설에 실패하고 민주-공화 양당체제에 손발이 묶였던 것처럼, 오늘날 한국의 노동자계급도 자본가 양당체제에 결박된 것이다. 자본가계급의 독재를 유지하는 데서 민주당, 국힘 양당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최저임금을 아예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자고 지껄이는 국힘이나, 이를 반대한다면서도 국회 다수 의석으로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개악하고 제도의 거대한 사각지대를 남겨두는 민주당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단지 민주당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유연성이라는 외양을, 국힘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비타협성이라는 외양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노동자 민중의 생활조건이 개선되기 힘든 쇠퇴기 자본주의에서 대중이 현 정부에 격렬한 반감을 터뜨리는 일은 늘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가 양당이 권력을 교대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노동자 민중의 반정부 투쟁을 항상 체제 내로 묶어두는 안전장치가 된다. 노동자계급은 자본가 양당의 비본질적 차이에 의미를 부여할 것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자본가 정치세력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이것은 시대를 뛰어넘는 불변의 원칙이다.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독립 추구가 더 보수적인 세력의 당선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에 대해 마르크스는 이렇게 반박했다. “반동에게 승리의 가능성을 줄지 모른다고 하는 민주주의자들의 허튼소리에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모든 공문구들은 결국 프롤레타리아트를 기만하기 위해서 하는 소리들이다. 독자적인 진출을 통해 프롤레타리아 당이 이루게 되는 진전은 몇 명의 반동 분자들이 대의 기관에 들어감으로써 생길 수 있는 불이익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동맹에 보내는 중앙위원회의 1850년 3월의 호소>). 월 100만 원에 가사 노동자를 도입하자는 조정훈이나, 페미니즘을 ‘망상에 가까운 피해의식’이라 떠들었던 이준석이 아무리 꼴 보기 싫다 해도, 그 대안이 민주당에 투표하는 것일 수는 없다. 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이익은 모든 종류의 자본가 정치세력과 명확히 구별되기 때문이다. 한편 겉으로는 확고해 보이는 한국의 자본가 양당체제가 내적으로는 상당한 불안정성을 보인다는 점도 아울러 주목해야 한다. 2022년 윤석열이 당선됐던 대통령 선거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최초로 5년 만에 상대 당에 정권을 내준 선거였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 역시 1987년 이후 집권 여당이 가장 무력하게 참패한 선거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122석으로 제2당이 되었지만, 제1당인 민주당의 123석과 차이가 크지 않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이 속출하고(최근의 농산물 가격 급등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저출생으로 사회 소멸이 예견되는 시대, 경쟁에서 패배한 이들에게 사회적 지원 대신 멸시와 혐오가 쏟아지는 쇠퇴기 자본주의에서는 어떤 정치세력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최근 몇 년간 청년층의 정치의식이 급선회하는 현상은 이를 잘 드러낸다. 청년들을 어느 깃발 아래 서게 할 것인가? 20세기 후반까지 한국의 선거판에서 가장 주요한 변수가 지역주의였다면, 21세기에는 지역주의가 한결 옅어졌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민주당과 국힘이 박빙의 접전을 펼쳤던 부울경 선거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현재 지역주의를 대신하고 있는 것은 세대별 정치의식이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체험하고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6~70대 이상 고령층은 확고하게 국힘을 지지한다. 다른 한편 80년대 민주화투쟁 등 집단적 정치 경험을 공유하는 4~50대 중년층은 민주당의 주요 지지 기반이다. 이들이 양당의 고정 지지층 35%를 각기 차지한다. 반면 경제성장도, 민주화 투쟁의 경험도 없는 2~30대 청년층은 현 집권 세력을 심판하기 위해 상대 당에 투표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보인다. 물론 2010년대 페미니즘 리부트를 거치며 집단적 정치의식을 형성한 여성들은 계속해서 민주당에 견고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래도 지난 대선에서 20대 여성의 33.8%, 30대 여성의 43.8%는 윤석열에 투표했다.) 반면 2022년 대선에서 윤석열 당선의 일등 공신이었던 2~30대 남성들(지난 대선에선 20대 남성의 58.7%, 30대 남성 52.8%가 윤석열에 투표했다)이 이번 선거에서 보여준 선회는 자못 두드러진다. 2022년 대선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이번 선거 출구조사에 따르면, 비례대표 선거에서 20대 남성의 투표 결과는 민주당 26.6%, 조국혁신당 17.9%, 국힘 31.5%이다. 20대 여성은 민주당 51%, 조국혁신당 18.5%, 국힘 16.7%다. 30대 남성은 민주당 28.8%, 조국혁신당 23.6%, 국힘 29.3%이며, 30대 여성은 민주당 38.2%, 조국혁신당 23.2%, 국힘 20.3%였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에 표를 던졌던 상당수가 반대편으로 돌아선 것이다. 특히 2~30대 청년층이 최우선시하는 ‘공정 경쟁’의 원칙(이것은 비인간적 경쟁으로 고통받는 청년층이 가장 일그러진 형태로 자신의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을 훼손한 조국에게도 18~23%의 지지를 보낸 것은 놀랍기까지 하다.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에서 청년층이 경험하는 고통의 객관적 크기를 실감하게 한다. 2024년 총선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 청년층이 선거마다 보여주는 급선회는 앞으로 한국 자본주의가 정치적 불안정성을 상수로 하게 될 것이란 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왜 이들 청년층이 고작 자본가 양당 사이에서 정치적 대안을 찾아야 하는가? 청년층은 자본의 이윤 질서를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양당에서는 절대 진정한 대안을 찾을 수 없다. 이들에게 경쟁, 혐오, 차별이 아니라 협력, 연대, 단결이라는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대안을 알려야 한다. 청년층에서 정치적 불안정성이 확대되는 것은 이들 사이에서 노동자계급의 정치가 부상할 수 있는 공간이 창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트로츠키는 “모든 혁명정당은 상승하는 계급의 젊은 세대로부터 가장 주요한 지지를 획득한다. 부패한 정치세력은 청년을 자신의 깃발 아래로 결집시킬 능력을 상실한다. 정치의 전선에서 차례로 후퇴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당들은 청년층을 혁명이나 파시즘에 넘겨줄 수밖에 없다”고 썼다(<배반당한 혁명>). 실제로 청년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혁명의 서막을 뜻했다. 1917년 10월 혁명 직전 개최된 볼셰비키 6차 당대회(1917년 8월 6~16일)에 참석한 대의원 171명 중에서 18세~29세까지의 대의원은 46%, 39세까지의 대의원은 92%에 이른다. 이들 청년층이 당에 가입한 기간은 평균 8년 3개월이었으며, 절반에 가까운 79명(46%)이 2월 혁명 당시 투옥, 유배, 망명, 수배 상태에 있었을 정도로 단련된 투사들이었다. 노동자들의 정치적 계급의식은 어떻게 발전하는가? 양당이 가진 35%의 고정 지지층, 상대 당에 대한 혐오 정서는 한동안 한국 정치판을 좌우하는 기본 변수가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특히 청년 노동자들이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주역으로 등장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어떠한 자본가 정치세력도 노동자 민중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자산·소득의 불평등 심화, 혐오와 차별의 확대 속에서 노동자계급은 진정한 대안을 찾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4~50대 중년층이 확고한 민주당 지지세를 보이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자. 윤석열과 곧 손절할 것으로 보이는 <조선일보>는 4~50대 중년층을 ‘진보 중년’이라 부르며 탄식을 늘어놓는다(<조선일보>, “누릴 거 다 누리고 깨어있는 척… ‘진보 중년’을 아십니까(2024. 3. 24.)”). “통상 40대는 자산을 모으고 자녀를 키우며 안정을 희구하는 경향과 함께 보수화되는 연령 효과(age effect)가 나타나는 시기”인데도, “이 땅의 4050은 연령 효과를 거스르는 첫 변종 세대”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조선일보>가 한탄할 만도 하다. 바로 윗세대는 전쟁의 폐허에서 경제를 재건하며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며 살아왔는데, 정작 경제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4~50대는 뚜렷한 반국힘 정서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대중의 정치의식이 어떻게 생명력을 획득하고 견고해지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4~50대는 1980년대 민주화 투쟁, 1990년대 초반 민주노조 투쟁과 1996~97 총파업, 2002년 미군 장갑차 촛불과 노무현 당선, 2008년 광우병 촛불, 2016~17년 박근혜 탄핵 촛불 등을 경험해 온 세대다. 바로 집단적 정치투쟁의 경험이 이들의 확고한 정치의식을 만들어 낸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향한 정치적 계급의식 역시 이러한 대중투쟁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다. 노동자들은 자본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노동자계급의 이익이 모든 종류의 자본가 정치세력과 구별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각인한다. 그러나 자본에 맞선 투쟁이 법과 사업장의 테두리 내에서 관료적으로 통제되는 형식적 파업 정도에 그친다면 이런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 내로 순치(馴致)된 투쟁을 통해서는 민주당에 의존하는 악습만 더 강화될 뿐이다. 자본가들의 이윤 획득에 전면적 타격을 가하는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능력을 보여줄 때만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계급의식은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물론 한국의 노동자 운동은 지금도 최저임금 인상을 내걸고서는 ‘합법’ 파업을 할 수 없을 정도의 후진적 법 제도에 고통받고 있다. 사업장 범위를 넘어 정치적 요구를 내세운 파업이나 연대 파업이 불법인 것도 여전하다. 자본주의 체제의 전면적 위기가 아니고서는 노동자계급의 상층 부문이 실제 투쟁에 나서리라 기대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날 사회주의자들과 노동자 투사들이 확고한 목표의식 아래 더욱 분발해야 함을 뜻할 뿐이다. 노동조합 내부에서 관료적 통제에 반대하고 노동자 민주주의의 원칙을 철저하게 관철하는 것, 협소한 조합주의적 이익이 아니라 전체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투쟁을 헌신적으로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성, 이주민에 대한 차별에 단호히 반대하며 노동자계급의 총단결을 호소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사업장 울타리를 넘어 가장 열악한 밑바닥 노동자들과 연대하는 실천적 기풍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형성된 노동자계급의 새로운 활력은 진정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열망을 다시 불러일으킬 것이며, 선거를 노동자 정치를 널리 알리는 정치적 공간으로 자리잡게 할 것이다.2024-04-15 | 조회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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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공급망감시법 무력화, 자본주의는 오늘도 파국으로 향한다독일 리자(Riesa) 항구에서 홍수에 침수된 컨테이너. 사진: 로이터 4월, 유럽연합 의회 표결을 앞둔 공급망감시법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 즉 유럽연합공급망감시법이 3월 15일 유럽연합 이사회(각료 이사회)에서 통과되었다. 유럽연합 이사회 통과에 따라, 법안은 4월 유럽연합 의회 표결을 앞두고 있다1). 기업 지속가능성 실사지침(CSDDD)은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과 함께 2050년까지 유럽 기후중립을 달성한다는 EU그린딜 계획을 구성하는 중요 법안인데, 법안은 유럽연합 대기업의 공급망 내 강제노동, 아동노동, 삼림벌채 등 노동권 탄압과 환경오염 행위를 규제한다. 기업은 기후변화 대응 의무 등 법안 관련 내용을 매년 공시해야 한다. EU 각국은 기업의 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할 감독기관을 지정하며, 감독기관은 조사를 통해 규정 미준수 기업에 순매출액의 5%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1) 유럽연합 입법절차는 △유럽연합 시민을 대표하는 유럽 의회 △유럽연합 정부를 대표하는 유럽연합 이사회 △유럽연합의 종합적 이익을 대표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세 주요 기관의 합의 과정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후위기 대응과 노동권 확대를 위한 대기업 규제에 있어 진일보로 보인다. 그러나 그 실제 과정은 자본의 승리를 드러낸다. 법안 주요 내용은 이번 유럽연합 이사회 부의와 통과 과정에서 심각하게 후퇴했는데, 이는 세계 각국에서 확대되는 그린래시와 기후운동 퇴조를 반영한다. 그간 ‘ESG 경영’, ‘그린뉴딜’ 등 녹색 분칠에 바쁘던 국가와 자본은 이제 그 분칠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기후-환경정책에 반격하고 있다. 자본의 승리, 공급망감시법 축소 조정 경과를 보자. 작년 12월 유럽연합 이사회와 유럽연합 의회의 합의 후, 세부 조정을 거쳐 올해 1월 30일 공개된 공급망감시법 최종 초안은 유럽연합 이사회 표결을 어렵지 않게 통과할 것으로 보였다. 이미 12월 합의 과정에서 금융부문이 당면 규제에서 제외된 터였다. 그러나 독일이 2월 유럽연합 이사회 투표에서 법안에 기권하겠다고 밝힌 후, 여러 EU 국가가 줄줄이 법안을 반대하고 나섰다. 독일 연립정부(사민·녹색·자민당 연립정부, 신호등 연정) 구성원인 자유민주당(FDP)이 자본가 단체들과 함께 ‘과도한 관료주의로 기업에 부담이 될 것’이라며 독일 입장을 법안 반대로 돌려놓았고, 프랑스는 법안이 적용될 기업의 고용 규모를 초안의 10배로 늘리자고 주장했다. 이탈리아 극우정부 역시, 별개 법안인 플라스틱 포장재 규제법을 무력화하고자 하는 실제 의도로 공급망감시법에 반대하며 법안 사이의 거래를 시도했다. 이렇듯 독일·이탈리아·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은 자본의 이윤 축소 우려를 앞세우며 법안에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고, 결국 초안은 부결되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2월 28일 법안 표결에서 독일·이탈리아·핀란드·오스트리아·불가리아·체코·에스토니아·헝가리·리투아니아·룩셈부르크·몰타·슬로바키아·키프로스 등 13개국이 기권했고, 스웨덴은 법안에 반대했다.2) 2) 유럽연합 이사회 의결을 위해서는 △회원국 55%(15개국) 찬성에 더해 △찬성 회원국들의 인구가 유럽연합 인구의 65% 이상이어야 한다. 따라서 인구가 많은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반대할 경우 법안 통과는 불가능하다. 2월 유럽연합 이사회 부결 후, 법안은 대폭적 축소 조정을 거쳐 3월 15일 27개 EU국 중 17개국 지지로 이사회를 통과했다. 법안 무력화의 핵심은 ‘대기업’ 정의를 훨씬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초안이 명시한 고용인원 500명 이상, 순매출액 1억 5천만 유로 이상 기업에 공급망감시법을 적용한다는 기준은, 고용인원이 1천명 이상(초안의 2배)인 동시에 순매출액이 4억 5천만 유로 이상인 기업(초안의 3배)에 적용하는 것으로 대폭 후퇴했다. 결과적으로 법안이 규제하는 기업 수는 기존의 1/3로 줄어 전체 유럽기업의 0.05%에 불과하다.3) 다국적기업연구센터(SOMO) 추산에 따르면, 적용 대상 기업은 5,421개에 그치며 이는 2023년 12월 유럽연합 의회·집행위원회·이사회 잠정합의 기준에 따른 16,389개에서 67%나 감소한 수치다. 3) 여기서 알 수 있는 지점은 2023년 12월 합의안을 기준으로 해도 규제대상 기업은 전체 유럽 기업의 0.1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법안이 적용되는 기업 규모 기준 다음으로 큰 반대에 부딪힌 내용은 법안 미준수 기업에 대한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의 권한이었는데, 애초 법안에 포함되어 있던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가 법안 미준수 기업을 고소할 수 있다’는 민사책임 조항도 삭제되었다. 공급망 전반에 대한 법안의 강제력도 대폭 축소되었다. 3월 15일 통과된 법안은 “회사를 위해 또는 회사를 대신하여 활동을 수행하는” 사업 파트너에게만 적용된다. 공급망 하단부터 상단까지 복잡다단한 생산의 그물망을 강제하지 못하는 이름뿐인 ‘공급망 감시’ 법안인 것이다. 또한, 고위험산업 규제조항, 즉 ‘인권 또는 환경 분쟁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산업’(임업, 석유산업, 채굴업 등)은 고용인원이나 매출액이 법 적용 기준에 못미쳐도 규제 대상으로 놓았던 기존 규정도 삭제되었다. 제품 폐기, 해체, 재활용까지 포괄하던 내용(다운스트림 규제) 역시 삭제되었다. 규제력이 즉각 발휘되는 것도 아니다. △고용인원 5천 명, 매출액 15억 유로 기업은 3년 후부터 적용되며, △고용인원 3천 명, 매출액 9억 유로 기업은 4년 후, △고용인원 1천 명, 매출액 4억 5천만 유로 기업은 5년 후에야 규제를 적용받는다. 현 상황은 세계 기후운동의 퇴조 속에 그린워싱 흉내조차 거추장스러워진 자본과 국가의 노골적 행보를 드러낸다. 유럽 열강의 행보가 드러내는 것 - 국가와 자본은 기후파국을 앞당기고 있을 뿐이다 공급망감시법을 무력화한 유럽 열강, 독일은 그 중에서도 선두에 있다. 독일은 2월 28일 표결에 이어 3월 15일 표결에서도 기권했다. 이렇듯 독일의 태도는 일관적인데, 이는 공급망감시법에 그치지 않는다. 공급망감시법 표결 이틀 전인 3월 13일, 독일은 ‘강제노동 규제방침(Forced Labor Regulation, FLR)’ 표결에서도 헝가리, 라트비아와 함께 기권했다(법안은 27개국 중 24개국 지지로 유럽연합이사회에서 통과되었으며, 공급망감시법과 마찬가지로 4월 유럽연합 의회 표결을 앞두고 있다). 공급망감시법 무력화에 앞장선 독일의 입장은, 독일 공급망이 중국과 긴밀하게 얽혀있는 상황에서 비롯된다. 독일 산업의 중국·러시아 의존성은 다른 유럽 국가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및 미중 무역분쟁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유럽 국가가 독일이기도 하다. 실제로 독일 화학기업 BASF, 자동차기업 폭스바겐 등은 신장위구르 지역에 공장을 두고 있으며, 이는 ‘서방’이 중국의 강제노동 수용소라고 극렬 비판하는 지역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애초 공급망감시법 자체에 서방의 중국 견제 의도가 담긴 것은 분명하다. 또한 그 견제 의도가 얼마나 위선적인지도 분명하다. 중국은 EU공급망감시법에 반대함은 물론, 유럽연합의 ‘공급망 실사’에 맞서 반간첩법을 대폭 강화하는 등, 중국 내에서 수집한 데이터의 유출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상황을 종합하면, 법안 무력화에 나선 독일을 포함한 유럽 주요국의 입장은 중국 견제로 심화될 공급망의 균열이 결과적으로 자국 자본의 불이익으로 돌아오게 될 상황에 기인한다.4) 이렇듯 공급망감시법 축소 조정 과정은, 법이 내세우는 ‘보다 환경친화적인 공급망’, ‘노동권을 확대하는 공급망’이라는 명분의 허울을 여실히 드러낸다. 이제 국가와 자본은 파국을 피하려는 시늉조차 내지 않는다. 자본축적이라는 대전제 앞에, 자본과 국가는 ‘ESG경영’이라는 허울조차 벗어던지고 있다. 4월 유럽연합 의회 표결 후 법안이 실제 적용될 3년 뒤까지의 시간 동안, 유럽 자본은 교묘한 기업분할과 다단계 하도급 확대를 비롯해 규제 회피를 위한 각급 조치를 취할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4) 실제로 법안 반대 최선두에 선 독일과 중국의 산업 연관은 여전히 긴밀함은 물론 더욱 강화되는 양상까지 있는데, 2023년 중국으로 향하는 해외직접투자(FDI)가 급감하는 상황 속에서도 독일은 대중국 직접투자를 사상 최대치로 늘리기도 했다. 공급망감시법의 현 상황은 자본주의 체제가 기후파국을 막을 수 없음을, 특히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가 기후파국을 앞당기고 있음을 드러낸다. 지금, 기간산업 국유화와 노동자 민중의 생산통제는 생존의 문제다. 이윤을 위한 생산체제를 끝내기 위해, 기후정의운동과 노동운동의 연대를 지역과 현장으로 확대하자. 산업과 생산은 노동자 민중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되어야 한다.2024-04-13 | 조회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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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대결 멈추고 공공의료를 말하라민중의 건강을 볼모로 한 의정 대립 정부의 2,000명 의대 정원 확대 발표와 이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으로 시작된 의료대란이 벌써 한 달째에 접어들고 있다. 정부와 의사들의 강 대 강 대립은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되고 있다. 제때 진료나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예정된 수술조차 기약 없이 연기되고 있다. 사태가 길어지면 중증 또는 응급질환 환자들에게 언제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고 제때 치료받지 못한 후유증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알 수 없다. 의정 대립이 파국으로 치달으면 보건의료 체계 자체가 붕괴할 가능성조차 배제할 수 없다. 의사들은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의사 한 명이 진료하는 환자 수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점, 의사들의 장시간 노동 및 현격히 높은 노동강도, 보건의료 노동자들에 대한 가혹한 착취에 의존하는 의료기관의 현실 등은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분명한 징후다. 한국이 자랑하는 높은 의료접근성이나 짧은 진료 대기 시간도, 본인 부담 의료비 비중이 높고 지방의 응급 및 필수의료 역량이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 등과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의사들은 필수의료의 붕괴나 지방의 의료공백이 의사 수가 아니라 의료인력 배분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장 경쟁 질서를 유지한다는 전제에서 의료인력 배분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결국 ‘건강보험 의료수가(醫療酬價)를 인상하자’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필수의료 분야에 더 많은 수가를 지급함으로써 해당 의사 수를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가 인상을 통한 유인책은 이미 실패한 정책이다. 흉부외과 수가를 2배로 늘렸어도 흉부외과 지원율은 올라가기는커녕 오히려 더 감소했다. 수익성과 경쟁이 지배하는 시장 질서에서 의료인력이 수익성이 높은 곳으로 쏠리는 것은 필연적이다. 더구나 얼마나 의료수가를 올려야 필수의료와 지역의료가 살아날지도 알 수 없다. 수가 인상은 필수의료 파탄과 지역의료 붕괴를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거대 의료자본의 이윤만 증대시킬 것이고 건강보험 재정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의사들의 맹목적 반대는 대다수 노동자 민중에게 자기 밥그릇을 챙기는 집단이기주의로 비칠 뿐이다. 공공의대 설립 반대 등 한국 사회에서 의사들이 그릇된 특권의식을 내비쳐 온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의대 정원 확대라는 포퓰리즘 물론 이 사태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현재 3,000여 명인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린다면서도 확대 규모에 대한 과학적 근거도, 확대된 의료인력의 배치에 관한 구체적 로드맵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한국 보건의료 문제의 핵심이 의사 수 부족이며 의사 수만 늘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굴고 있다. ‘어떤 의사’가 ‘어디에’ ‘어떻게’ 존재하느냐는 사라지고, ‘얼마나’ 존재하느냐만 남은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찬성한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로드맵도 없이 오직 ‘기승전 의사 수 확대’로 몰아가는 정책은 포퓰리즘일 뿐이다. 증원 발표 전 내놓은 ‘필수의료 패키지’ 역시 예산이나 구체적 계획 없이 희망 사항만 적어놓은 것에 불과하며, 심지어는 기존에 실패했거나 실현 가능성 없는 정책들을 나열해 놓았을 뿐이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의대 증원 발표가 불러올 파장을 정부가 몰랐을 리 없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이것은 선거용 기획이다. 마치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유도한 것처럼 보이는 정부의 일방적 발표와 밀어붙이기식 행태가 이를 드러낸다. 2022년 화물연대 파업을 탄압하면서 재미를 본 정부가 이번에도 ‘이권 카르텔’로 의사들을 악마화하면서 지지율 상승이라는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사태가 결국 일종의 정치적 쇼로 끝나지 않겠냐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정책을 내지르고, 긴장이 극대화된 시점에서 타협안을 제시하는 영웅을 만들어냄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다. 만약 정부가 정말 정치적 쇼로 이 사태를 기획했다면 이는 민중의 건강을 볼모로 지지율 장사를 하는, 정말 치졸하고 간악한 정권이 아닐 수 없다. 보건의료 산업화를 위한 의사 수 증원? 한편 정부의 의대 증원 확대 정책이 소위 ‘의료민영화’, 즉 보건의료 산업화를 위한 의료인력 확충이라는 분석도 있다. 윤석열 정부 집권 후 보건의료 부문에서는 ‘공공’이란 단어 자체가 사라졌다. 코로나19 유행 기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역할했던 지방 의료원들에 정부는 6개월의 회복기 손실보상금 외에 아무런 지원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또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울산의료원과 광주의료원 설립을 무산시키기도 했다. 반면 건강보험 보장성 약화와 실손보험의 확대를 야기하는 ‘건강보험 개편안’, 의료영리 플랫폼을 허용하는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 추진, 건강관리를 산업화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비의료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사업', 개인 건강정보와 보건의료 데이터에 민간 보험회사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건강정보 고속도로 플랫폼’, 디지털 헬스케어와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을 위한 각종 규제 폐지 등 보건의료 산업화를 위한 정책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의대 증원을 보건의료 산업화 정책의 일부로 보는 것이다. 수도권에서만 8~9개 대학병원이 2027년~2028년 개원을 목표로 500~1,000병상 규모의 총 10개소 분원을 설립할 계획이라고 한다.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도 대학병원들이 500~1,500병상 규모의 분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대, 울산과기대 등에서 바이오·헬스산업에 필요한 의과학자들을 위한 의대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정부의 의대 증원이 정부가 주장하는 ‘필수의료’, ‘지역의료’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하는 보건의료 시장화, 바이오·헬스산업 등의 이윤 증대를 위한 인력 공급이라는 의심을 가지게 한다. 문제는 공공의료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대립은 한국 보건의료의 진정한 문제를 오로지 의사 수 논쟁으로만 몰아가고 있다. 그러나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붕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과 의료전달체계의 붕괴, 과잉 진료, 낮은 건강보험 보장률 등 한국 보건의료가 드러내는 심각한 문제의 본질은 다른 데 있다. 한국의 보건의료 체계의 특징은 공적 재원으로 마련된 건강보험 제도와 시장 질서에 근거한 민간 의료자본 중심의 의료공급체계 간의 모순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필수의료 붕괴, 의료전달체계의 파탄은 ‘의료 시장 매커니즘’ 자체가 붕괴했다는 징조이고 한국의 의료공급체계가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진정한 해결책은 보건의료 부문에서 영리추구 행위를 근절하고 무상 공공의료체계를 확립하는 데 있는 것이지,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시장주의에 기반한 의료공급체계에서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의료자본의 이윤을 늘릴 뿐이다. 의사 수가 아무리 늘어나도 시장 경쟁 질서, 의료산업에서의 영리 추구 행위를 그대로 두고서는 의료인력의 합리적·계획적 배치란 불가능하다. 이제는 의사 수를 둘러싼 정부와 의사의 치킨게임에 가려진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진정한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 전면적 무상 공공의료체계로 나아가지 않고서는 저출생으로 지방 소멸이 현실화된 한국에서 각종 의료공백은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이 문제에 노동자들이 직접 나서야 한다. 의료자본을 포함해 자본의 이윤 증식을 자기 사명으로 하는 자본가 정부나, 자신들의 특권을 한 치도 내놓을 생각이 없는 의사들이 무상 공공의료체계를 도입할 리 만무하다. 아플 때 돈 걱정 없이 당당히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는 모든 민중의 기본권이다. 노동자들이 앞장서 공공의료체계로의 전환을 쟁취해야 한다. 1977년 의료보험 도입은 박정희 정권이 국민의 건강을 생각해 시행한 시혜적 정책이 아니다. 1970년대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노동자 민중의 불만 고조, 전태일 열사의 분신으로 시작된 노동자들의 투쟁 증가라는 배경이 있었다. 1989년 전국민 의료보험 확대 시행에는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2000년 국민의료보험의 통합에는 1996~97년 총파업과 1994년부터 시작된 ‘의료보험통합일원화와 보험적용확대를 위한 범국민연대회의’를 통한 노동자 투쟁이 있었다. 민간자본 중심의 의료공급체계를 전면적 무상공공의료체계로 개편하는 것도 오로지 노동자들의 강력한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2024-03-19 | 조회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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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 정당과 단절하기 위해,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정치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전면화하는 야권연대, 개량주의·의회주의·몰계급적 정치세력화의 필연적 결과 2월 13일, 진보당은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창당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본가 정당과 함께 당을 만들고, 강령과 공약을 만들고, 후보를 세워 노동자 민중의 지지를 구걸하겠다는 것이다. 2월 17일, 녹색정의당은 민주당 주도 위성정당 불참을 결정했으나 민주당과의 정책연합 및 지역구 후보 연대 등을 폭넓게 추진한다고 발표했고, 이후 민주당과의 협상이 여의치 않자 중앙당 차원의 지역구 연대 협상중단을 밝히면서도 지역 협의는 열어놓겠다고 밝혔다. 중앙당 협상을 중단하는 이유는 ‘민주당이 녹색정의당과의 사전협의 없이 비례대표의석 축소를 결정한 점’이라고 하는데, 이는 비례대표 의석을 그대로 두었다면 계속 연대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위성정당 창당이건 지역구 후보단일화건,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진보정당’과 자본가 정당의 연대연합이 전면화하는 현 상황은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가 어떤 이념, 주체, 수단에 의거해야 하는가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요구한다.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야권연대 - 개량주의·의회주의 노동자정당의 국민정당화는 필연이다 우선, ‘민주노총 주도 단일정당 건설’이라는 2023년 9월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그 정치방침을 함께 만든 정치세력들의 ‘민주당 연대’라는 외견상 모순적인 행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민주노총 주도 노동자 단일정당은 바람직하나, 민주당과의 연대는 바람직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양자는 동전의 양면이다. 좌: 2024년 2월 21일. 우: 2012년 3월 10일 사실, 현 국면 전면화하는 ‘민주노총 지지 진보정당’과 자본가 정치세력의 연대는 새롭지 않은 일이다. 잠시 민주노동당을 돌아보자.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1996-97 총파업을 계기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나선 결과로 만들어졌다.1) 노동자계급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총파업의 힘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보수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극복을 목표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계급투쟁의 성과를 어떤 식으로건 일정히 반영한다. 1) 1997년 7월 24일, 민주노총 제6차 임시대의원대회의의 관련 결의는 다음과 같다. <1. 민주노총은 제 민주세력과 함께 1997년 대선에 국민후보를 추대, 이를 위한 선거대책기구를 구성하고 인적 물적 역량을 동원키로 결의한다. 2. 민주노총은 대중적 합의를 바탕으로 노동자가 적극 참여하고 각계각층의 민주적이고 양심적인 세력과 함께 하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실현하고 노동자의 이익과 요구를 철저히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 건설의 토대를 구축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귀결은 거듭된 보수야당과의 선거연대에 이은 민주당 계열 분파와의 합당을 통한 통합진보당 창당이었다(‘전태일 정신과 노무현 정신의 만남’).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지방선거 이래 야권연대가 노골화했고(반MB 야권연대), 대선이 있었던 2012년에는 극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부터 중앙정부까지 ‘공동정부 구성’이 음양으로 운위되었다. 이는 민주노동당 내부 갈등에 이은 분당을 재통합하는 과정과 맞물렸는데, 이를 종합하면 <진보대통합→야권연대→정권교체와 연립정부 구성>이라는 전망이었다. 즉, 전략은 야권연대를 통한 연립정부 구성이고, 이에 종속되는 전술이 진보대통합이었던 셈이다.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넘어 ‘민주당과의 공동집권’까지 운위되는 상황에서, 2010년경까지 유지되던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은 소위 통진당 사태와 함께 스스로 폐기되었다. 이후 선거철이면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집단 입당원서를 들고 민주당에 투항해도 징계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왔다. 민주노총은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을 통해 ‘노동자가 만든 진보정당’의 국민정당(catch-all party)화를, 또한 민주당과의 연대를 부추기고 보조했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연대,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국민정당화가 민주노동당 노선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그 노선의 결과라는 점이다. 즉, 민주노동당의 국민정당화는 몰계급적 정치세력화, 사민주의-의회주의 정치세력화의 필연적 결과였고 민주노동당 강령은 이미 이런 지향을 명시하고 있었다. 사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중소기업 중심경제 지향을 명시하는 등2) ‘사민주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2) 이런 점에서 2007년 당시 논란을 낳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의 “민주노동당과 중소기업이 동지적 관계를 가지기를 원한다”는 발언은 민주노동당 강령상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발언이었던 셈이다. 민주노동당 강령을 보자. “사회적 소유를 바탕으로 하여 시장을 활용하는 경제체제… 사회적 소유는 국가적 소유, 공공적 소유, 협동조합 소유, 민주적 참여기업 등을 포괄 … 민주적 참여기업이란 해당 기업의 노동자를 비롯하여 다수 국민이 지배적인 지분을 가지고 소유의 주체로서 기업의 경영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보장된 기업” “중소기업에게 사적·개인적 사업의 기회를 최대한 보장한다.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중소기업 고유 영역의 설정, 중소기업 금융지원의 확대 및 어음제도의 폐지 등 모든 정책을 강구한다. 나아가 노동자 소유기업 등 협동조합적 소유에 기초한 중소기업의 창업을 장려한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 내분 끝에 출범한 진보신당은 어떠했나? “재벌 주도의 대기업 소유·지배 구조를 해체하여 노동자가 경영을 주도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대안 기업 형태로 전환한다. … 중소기업을 지원할 금융 및 기술혁신 체계를 구축한다. 또한 협동조합,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사회적 기업 등 대안적 소유 지배 구조를 갖춘 중소기업들을 육성하여 풀뿌리 경제를 활성화한다.”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다. 12. 재벌의 소유 경영의 독점 해소 등을 통해 독점재벌 중심 경제 체제를 해체하고, 불공정 하도급거래 관행 근절, 대형 유통점 규제 등을 통해 중소기업 및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 육성함으로써, 경제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내수 중소기업 주도형 경제체제를 강화한다. 13. 협동조합,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사회적 기업 등 대안적 소유 지배구조를 갖춘 중소기업을 육성하여 풀뿌리 경제를 활성화하고, 중소기업 서민 전담 금융기관을 설립해 중소기업과 서민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금융접근성을 확대한다. 사회주의와 노동자혁명을 철 지난 이야기로 치부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미미한 개량과 의회주의 수권정당을 지향하는 민주노동당의 귀결은 야권연대 끝에 자본가 세력과의 창당, 통합진보당이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국민정당화는 이미 잠재된 것이었고, ‘노선을 바꾸지 않고 노동자계급과 함께 우직하게 전진하는 민주노동당’은 형용모순에 불과했다. 민주노동당보다 훨씬 좌익적이었던 서유럽 개량주의 노동자당, 나아가 의회를 통한 이행을 목표한 유로코뮤니즘 정당들의 국민정당화 과정을 민주노동당은 보다 단기간에, 그리고 더욱 뻔뻔하게 밟았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2023년 9월 민주노총 정치-선거방침과, 위성정당 참여 및 지역구 선거연대로 노골화하는 ‘민주노총 지지정당’과 민주당과의 연대는 일견 모순이나 동전의 양면이다. 2010년 ‘진보대통합’과 ‘야권연대’가 양자를 구성하는 동전의 양면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중 전략은 야권연대-연립정부 구성이고, 전술은 진보대통합이었다. 현재로 보면 전략은 반윤석열 인민전선이고, 전술은 민주노총 주도 단일 연합정당 건설이다(물론 현 민주노총 집행부에 단일정당을 실현할 권위와 실력이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2012년 8월 24일 김영훈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 사진: 노동과 세계 양날개론은 무엇을 결과했는가 기실 민주노동당 이후 ‘진성 노동자 당’의 유일한 모델은 양날개론, 즉 ‘산별노조의 경제투쟁과 사민주의 단일정당의 정치투쟁’이라는 역할분담론으로 굳어졌다. ‘조합원은 노동조합이 만든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배타적 지지방침’을 통해 양날개론이 노동조합에 강제 관철되었다. 진보정당은 그렇게 집중한 자원을 지렛대로 자본가 정당과 연대연합을 행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수립’이라는 지향이 대놓고 운위되었으며, 이는 피아의 구분선 자체를 지우며 노동자정치의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회의로 이어졌다. 현시기 운위되는 ‘민주노총 주도 단일정당 건설론’ 역시 양날개론에 근거한다. 어떻게 양날개론을 극복할 것인가. 이를 위해 산별노조의 경제투쟁과 의회주의 진보정당의 정치투쟁이라는 역할분담론이 낳은 효과를 살펴보자. 첫째, 양날개론은 현장에서 정치를 추방한다. 역할분담론에 따라 현장은 경제의 공간, 의회는 정치의 공간이 된다. 노동현장의 과제는 임단협의 수행, 재정과 투표의 조직, 의회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물리력 동원으로 한정된다(의회협상력 강화를 위한 노동조합 동원, 2023년 9월 민주노총 정치방침 맥락상 ‘광장정치’라는 단어가 이를 표현한다). 곧, 현장은 의회정당을 위해 돈과 사람을 대는 저수지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필연적으로 현장정치활동은 빈다. 둘째, 공동화된 현장의 계급투쟁과 계급정치를 조합주의, 타협주의가 채운다. 양날개론이 의회진출을 현장정치보다 훨씬 중요한 임무로 상정하는 순간, 현장이야 어떻게 되건 현장의 돈과 표를 집중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 과정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이 피해자가 된다. 그 적나라한 사례 중 하나가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정에서 ‘진보정치’가 작동한 방식이다. 계급투쟁을 진압하는 중재정치의 이면에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다는 ‘이념’이 존재했음은 물론이다. “대표적인 '찬물'은 '25일 투쟁' 후반기에 나온 야4당 중재안이다. 중재안의 핵심은 '점거농성을 푼 후 교섭하자'였다. 정규직화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이들에게 이 중재안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담긴 것이 아니었다. 투쟁을 줄곧 가로막고 심지어 "협박"까지 한 이경훈 당시 현대자동차지부장이 주장해온 방안을 국회의원들이 받아들인 것일 뿐이었다. 야4당에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포함돼 있었다.” - 「자본가는 피를 빨고 진보정당은 표를 빨았다」, 프레시안 2012년 5월29일 셋째, 배타적 지지방침, 즉 강제 단결이다. 산별노조-단일정당 모델에 근거해 현장의 정치적 역할을 돈과 표로 한정하면, 현장은 각 당의 노선차와 정세에 대한 각 당의 입장차를 알 필요도, 자기 입장을 가질 필요도 없다. 즉, 현장의 무관심에 근거한 동원적 단결의 유도가 바로 배타적 지지방침이다. ‘아, 잘 모르겠으니까 하나로 만들어와!’, 물론 이는 가장 본능적인 정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관한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설문조사에서 ‘단일 진보정당 건설’이 늘 압도적인 요구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운동이 현 상태를 지양하는 것이라면, 정치세력은 이런 정서를 강제 단결의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정서와 싸워야 한다. 바로 지금, 사회주의 노동자 정치의 정립을 위하여 노조 주도 의회주의 당일정당 건설론이 반복되는 이유, 또한 이와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야권연대와 연립정부 건설론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사회주의 정치운동과 전투적 노동운동 세력이 ‘사회주의 이념에 근거한 노동자 계급정치’의 가능성을 실천으로 증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다는 노동자계급의 권력의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면화하는 야권연대가 사민주의와 의회주의의 필연적 결과, 자본가계급과의 동맹을 통한 연립정부 구성을 추구하는 몰계급적 정치세력화의 필연적 결과라면, 그 해소는 사회주의 노동자계급 투쟁정당의 실물화, 혹은 그를 향한 자원과 의지가 모이고 있음을 실천으로 입증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전면화하는 지금, 노동자계급을 사회주의 정치투쟁 주체로 세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민주노총을 전 계급적 투쟁기관으로 세워야 한다 현 국면 민주노총 주도 당 건설이 한계적이라면,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노동조합의 투쟁과 정치가 전 계급의 고통과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여전히 계급투쟁과 계급정치의 중요한 자원이라면, 또한 사회주의 계급정치의 발전이 민주노조운동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면, 사회주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조합을 전 계급의 투쟁기관으로 세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의 계급적 재구축은 단지 전투적 노조운동만의 과제가 아니다. 노동자계급은 투쟁으로 세력이 된다. 노동자계급은 정치투쟁으로 정치세력이 된다. 전체 계급을 향한 운동이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주요한 매개는 노동조합이다. 즉, 노동자계급을 권력의 주체로 형성하는 과정은 노동조합의 계급적 재구축과 뗄 수 없다. 사회주의 노동자 투쟁정당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계급의 일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노조운동, 여성-저임금노동자-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는 노조운동, 국가와 자본이 만든 기후위기에 맞서는 노조운동, 제국주의 전쟁위협에 맞서는 노조운동을 세워야 한다. 이는 계급 전체를 조직하는 과정의 일부다. 아래는 2023년 5월 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6월 기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다. 2022년 기준으로, 300인 이상 정규직 사업장 노동자가 100원을 받을 때, 300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는 43.7원을 받는다(시간당 임금액을 보면 평균치가 체감 격차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운동과 민주노조운동 모두의 과제다. 둘째, 위기와 전쟁의 시대,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자기해방이념으로서 사회주의를 세워야 한다 전면화하는 위기와 제국주의 열강투쟁의 시대,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어색할 것 없는 정세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를 전쟁과 착취, 수탈과 억압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자기해방이념으로 세워야 한다. 특히, 격화하는 열강투쟁과 전쟁위기 속에서 사회주의를 모종의 ‘진영론’(campism)으로 여기는 경향을 청산해야 한다. 지금, 운동진영 한편에는 미국 주도 세계질서 불가피론(소위 규칙기반 세계질서론)을 운위하는 진영론자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북중러 블록을 모종의 반제-사회주의-민주기지로 여기는 진영론자들도 있다. 기실 이들의 존재야말로 위기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제국주의 진영 간 투쟁이 전면화하는 지금, 특정 블록의 존재와 행위를 정의로운 것, 불가피한 것으로 대중 앞에 해석하고 제시하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한낱 응원가로 만든다. ‘혼란보다는 미국 주도 자본주의 세계질서가 낫다’는 ‘규칙기반 세계질서론’은 사실상 한미일 지배계급의 사상을 운동진영 내에서 대리하고 있다. 이런 주장 그 어디에도 계급투쟁의 자리는 없다. 북중러 블록을 대안으로 삼는 진영도 마찬가지다. 당장 북한의 핵 보유를 평화의 수단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도착적인데, 이런 주장은 극우파 주장의 거울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이 ‘핵 기반 한미동맹’을 운위하고, 미국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가 새롭지도 않을 만큼 일상화하는 지금에도 한국 대중은 반제반전투쟁에,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에 냉소적이다. 이런 상황은 이념에 근거한 대중적 정치투쟁의 부재를 드러내며, 또한 그 절실한 필요를 드러낸다. 오도된 진영론을 청산하고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자기해방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 셋째, ‘인민의 호민관으로서 노동자계급’, 그 오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전방위적 정치활동이 필요하다 당면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를 부르주아에게 내맡기지 말고, 노동자계급이 당면 민주주의 혁명을 주도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고, 모든 억압에 앞장서서 맞서야 한다고,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바로 그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레닌은 말했다. 그 주장처럼, 노동자계급은 모든 억압을 계급투쟁의 관점으로 해석하며 그 억압을 철폐하는 투쟁의 선두에 서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는 바로 그 과정과 함께 형성된다. 사회주의 운동을, 그리고 노동자계급을 인민의 호민관으로 세우려는 적극적 시도가 필요하다. 특히 여성억압을 철폐하는 투쟁, 기후위기에 맞선 투쟁을 계급투쟁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자기 과제로 세우기 위한 과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물론 이 과정은 라클라우나 무페를 비롯한 급진민주주의 좌익포퓰리즘 이론가들의 ‘등가적 연대’ 노선, 혹은 포데모스식 정치노선과 판이하게 다르다. 넷째, 정세에 조응하는 전 계급적 연대투쟁을 제기하며 현장분회운동을 확대하자 노동의 공간이 곧 투쟁의 공간이고, 정치의 공간이어야 한다. 물론, 그간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주요 노선이었던 현장분회(세포)의 경우, 단지 구획하는 것으로 분회운동이 확대는커녕 유지조차 되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절실히 경험해왔다. 사실 이런 경험과 교훈은 역사적이기도 하다. 1925년 그람시의 진단을 보자. “전전(戰前)의 러시아에서는 유럽에서의 제2인터내셔널 시기 전체를 특징지었던 거대한 노동자 조직들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당이 노동계급의 모든 결정적 이해들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은 단지 일반적인 이론적 요구사항이 아니라 조직과 투쟁의 실제적 정언명령이었다. 공장과 가두의 세포들은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위한 노조의 투쟁에서 그리고 짜리즘의 타도를 위한 정치투쟁 모두에서 대중들을 이끌었다. 반면 서유럽에서는, 노동계급의 노조조직과 정치조직 간의 분할이 더욱 심화되었다. 노조 진영에서는 개량주의자들과 평화주의적 경향이 급속도로 힘을 얻고 있었다 ― 또는, 환언하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의 영향력이 점차 증대하였다. … 대중기관들이 노조활동에 국한하지 말고 자본주의와 그 정치 체제에 대한 전체 투쟁의 일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추동해야 한다. 확실히 우리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은 러시아 볼셰비키가 직면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데, 왜냐하면 우리는 파시스트 국가의 반동적 세력뿐만 아니라 노조 내의 개량주의자들의 반동적 세력과도 전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 그람시, 당의 조직적 기반 (1925.8.15.) 오늘날 사회주의 정치운동이 조직하고자 하는 상당수 일터에는 이미 노동조합과 현장조직이 있다. 사업장 현안 대부분이 노동조합과 현장조직 결정에 따라 집행되는 상황에서, 정치조직 활동가는 노동조합과 현장 활동가조직에서 활동하며 해당 공간을 이끌고 조직하고자 노력한다. 노조-현장조직 외부에서 추상적 선전활동에 그치지 않고자 한다면, 활동가는 노동조합과 현장조직의 결정과 질서를 존중하며 내부에서 활동하게 된다. 주요 난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노동조합과 활동가조직이 제반 투쟁현안을 결정하는 상황이기에, 사회주의 정치분회가 현장투쟁을 매개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정치분회가 일상적 현장투쟁 조직기능을 포괄하고자 할 경우, 현장분회는 활동가 조직과 경합하게 되며, 이는 많은 경우 양자 모두에게 좋지 않다. 실제로 각급 활동가조직은 정파의 의도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그것이 대중을 모아 일상 투쟁을 조직하는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장분회의 공개 정치운동은 일상적 현장투쟁보다 의식적인 싸움을 제기하는 것, 사업장을 넘어 지역과 산업, 나아가 전체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현 정세를 해설하고 정치투쟁 과제를 제시하는 것, 전 계급의 연대를 추동하는 것에 집중된다. 그렇기에 당연히도, 사회주의 현장분회의 활동은 각급 현장활동가조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준비를 요한다. 분할된 노동자계급의 상황 상, 노동자계급의 단결·연대투쟁에 관한 주장은 ‘공자님 말씀’이라는 주변의 냉대를 견디는 강단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과제는 그 ‘강단’을 집단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즉 개별 활동가의 자질이 아닌 정치조직 전체의 활동 결과로써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장분회의 구성과 확대는 해당 현장 활동가만의 몫이 결코 아니다. 당면 사회주의 현장분회 구성과 활동 확대를 촉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 정세 그 자체다. 자본주의 위기심화 정세는 생존권 쟁취투쟁과 사회주의 정치투쟁의 간극을 상대적으로 좁히고 있다.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당면 과제는, 의식적 노력으로 생존권 쟁취투쟁과 자본주의체제 자체에 맞선 투쟁을 잇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산에 대응하는 노동자투쟁 혹은 기간산업 재편에 대응하는 노동자투쟁의 경우 해당 노동자들의 정치적 준비가 곧 해당 노동자들이 생존권 투쟁에 나서기 위한 선결조건이기도 하다. 관련한 다른 예를 들자면, 통계상 파산이 증가하고 있으나 이는 모든 산업과 기업에 동일한 속도로 다가오지 않는다. 모든 위기가 그러하듯, 현 위기도 불균등한 속도로 다가온다. 중소기업부터 파산이 증가하는 상황은, 비정규직·영세사업장 노동자와 정규직·대사업장 노동자의 위기에 대한 체감 격차 심화로 이어진다. 대다수 노동자가 생존권 위기를 느낄 때에도, 대사업장 정규직노동자는 위기를 체감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 정치세력과 전투적 노동운동세력의 당면 과제는 사업장과 고용형태를 넘어선 연대의식을 확대하기 위한 부단한 사업의 제안과 그 계획의 집행이다.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생존권쟁취 정치투쟁을 제기하며 현장정치활동의 공간과 조직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강령적 과제를 구체적으로 설득해 낼 조직적 실천에 착수해야 한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다른 노동자 정당’의 가능성은 실물화할 것이다. 바로, 지금이다.2024-03-12 | 조회 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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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과제 7] 노동자 계급운동 대응방향[편집자 주] 지난 1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을 포함한 6개 단위가 함께 개최한 신년 정세토론회에 제출한 <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과제>를 나누어 연재한다. 이 글은 조직적 토론을 통해 제출되었다. ᅠ Ⅰ. 자본주의 위기 지속, 심화하는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Ⅱ.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 불확실성 확대로 치닫는 세계 자본주의 Ⅲ. 세계 각지 극우세력 부상 Ⅳ. 전쟁위기 확산 Ⅴ. 위기 확대, 한국자본주의 정치경제 정세 Ⅵ.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심화와 노동탄압 강화 Ⅶ. 노동자 계급운동 대응방향 실질임금 2년째 삭감, 최저임금투쟁은 2024년 더욱 중요하다. 사진: 노동과 세계 연일 노동탄압 의지를 밝히고 있음에도, 정권의 자원은 취약하다. 외식비와 식료품지출 등에서 실질임금 삭감은 쉽게 체감되고 있고, 69시간제 도입시도 등은 이미 여론의 역풍을 맞았음에도 정권은 노동시간 연장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정권이 내세워온 법치주의 강조와 공정성 담론은 노조법, 쌍특검법, 간호법, 방송3법, 양곡관리법 등 8회에 이르는 거부권 행사에 따라 그 허구성이 드러나고 있음은 물론, 여권 균열 조짐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권 주도 친기업 노조 양성을 통한 민주노총 고립화 시도 역시 별반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쟁 불사’를 외치는 극우화의 중요 원인은 이러한 정권의 취약성이다. 그럼에도 노동운동은 현 정세에 대응하는 투쟁을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2023년 12월 27일 노동부 발표 「현장 노사관계 안정의 핵심은 노사법치 확립」에 따르면, 2023년 노동손실일수1)는 330,726일로 최근 10년 중 가장 낮다. 정부에 따르면, “철도공사에서 임금인상 등에 대한 분쟁으로 파업이 발생하는 등 노사교섭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으나,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을 통해 교섭에 물꼬를 트면서 2023년 임금협약을 원만히 마무리했다. 서울시 등 지역버스의 사전조정, 보건의료노조 사업장의 사전・사후 조정 등 여러 사례들을 통해 실력행사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 해결이 노동현장에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일관된 법치를 기반으로 원칙대로 대응한 것이 가장 효과적인 해법으로 나타난 것이다.” 1) (파업참가자수×파업시간)÷8시간. 노조법상 ‘정당한 쟁의행위’ 기준. 노동자 민중운동은 생존권 쟁취 정치투쟁과 함께, 윤석열 퇴진투쟁을 아래로부터 조직해야 한다. 특히 최저임금투쟁과 아래로부터의 노조법 2·3조 쟁취투쟁 확대를 비롯해 이주노동자, 소수자, 여성에 대한 억압과 혐오에 맞선 투쟁 확대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노동자계급을 제국주의 전쟁위기에 맞서는 투쟁 주체로, 민주적 권리를 확대하는 투쟁 주체로 세우는 과정 역시 매우 중요하다. 엄중한 상황임에도, 민주노총 2024년 사업계획(안)은 안이하다. 2024년 사업계획(안)은 ‘총선 승리’ 목표가 부각되어 있을 뿐 투쟁계획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특히, 최저임금투쟁계획과 노조법 2-3조 투쟁계획은 매우 뒤늦게, 그것도 상층 캠페인 중심으로 제시되고 있을 뿐이다. 이에,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은 다음 과제를 제시한다. 1. 국가와 자본의 위기전가에 맞선 생존권쟁취 정치투쟁 확대 엄중한 정세이나 주체 역량은 미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2024년 6월 총파업을 제기하며 현장과 지역의 태세를 구축하고, 분노와 긴장을 조직하는 과정 자체가 정세의 엄혹함과 주체 역량의 괴리를 극복하는 과정이다. △윤석열 퇴진 △노동운동 탄압 분쇄 △최저임금 대폭 인상 △노조법 2·3조 개정을 중심 요구로 엄중한 정세에 맞서는 노동자 총파업을 제기하자. 3월 여성파업투쟁, 4월 총선대응 결집투쟁, 5월 노동절 국면 비정규직-최저임금노동자투쟁을 6월 총파업으로 이어지는 일관된 흐름으로 만들자. 지역과 현장에서 토론회와 교육, 설명회를 진행하며 엄중한 정세에 대응하는 투쟁을 준비하자. 2. 여성 노동자 권리확대를 위한 여성파업 투쟁 확대 자본주의 위기에 따라 여성과 소수자,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확대는 국제적 흐름이다. 현 정세에서, 2024년 3.8여성파업은 여성 노동자 권리를 확대하고 차별과 혐오를 일소하는 중요한 투쟁 계기다. 성별 임금격차 철폐와 최저임금 인상, 돌봄 사회화와 임신중지권 쟁취 등 요구와 함께,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철폐하는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결집한 저임금 불안정노동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2024년 최저임금 인상,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주체, 돌봄사회화 투쟁주체를 확대해야 한다. 3. 노동자 기후정의파업을 향하여 – 기후위기와 산업전환 비용전가에 맞선 산업국유화-노동자통제투쟁 확대 정의로운전환을위한태안화력노동자모임 등 10개 충남 노동운동-기후정의운동 단체의 제안으로 ‘정의로운전환을위한충남노동자행진이’이 준비되고 있다. 3월 30일 태안 1차 행진을 시작으로 투쟁을 확대할 계획이다. 충남노동자행진은 노동자 기후정의운동 주체를 확대하고, 기후정의운동을 지역과 현장으로 확대하는 계기다. 발전노동자 중심으로 준비를 시작했으나 금속노동자, 교통부문노동자 등 주체를 확대하며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국가와 자본에 맞선 투쟁을 확대하며 지역 연대투쟁 흐름을 구축해야 한다. 충남을 중심으로 한 투쟁이나, 전국 차원에서 결합하며 흐름을 확대하며 기후위기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투쟁, 산업전환 비용전가에 맞선 계급투쟁을 각 지역에서 확대해야 한다. 이는 2024년 상반기의, 또한 9월로 이어지는 가장 중요한 흐름이 될 것이다. 아울러 발전산업을 넘어 버스와 철도 등 기후의제 관련성이 높은 노동조합 단위로 기후정의운동을 확대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2023년 9월 철도파업과 연계하려는 시도 이후, 해당 흐름은 일상적 노동자 기후정의사업 형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특히, 버스준공영제 아래 사모펀드 자본의 버스산업 진출이 확대되는 지금, 버스완전공영제 쟁취 투쟁과 기후정의운동의 연대는 기후정의 계급투쟁 확대의 중요한 계기일 것이다. 4. 제국주의 전쟁위협에 맞선 반제반전 연대투쟁 확대 일터와 지역으로 반제반전 연대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우선, 제국주의 패권투쟁의 위험을 올곧게 해설하고, 반제반전 국제주의 연대투쟁을 노동운동의 과제로 제기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계 곳곳으로 전쟁이 확대되는 흐름에 따라, 미국 주도 다국적군 파병 요청 등이 중요 사안으로 부각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현 팔레스타인 연대투쟁을 통해 만들어진 공동투쟁 흐름을 지역과 현장으로 확대하며 정세에 대응하자. 전쟁위기 심화에 따른 군비경쟁은 노동자 민중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위협은 물론, 그렇지 않아도 OECD 평균지출비중의 60%가량에 지나지 않는 한국 사회복지예산 감축압박을 심화한다.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쟁취 투쟁과 제국주의 전쟁위협에 맞선 투쟁은 하나임을 구체적으로 설득하자.2024-03-07 | 조회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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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과 은둔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청년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사진: gettyimages 히키코모리. 오랜 시간(6개월 이상) 집에만 틀어박혀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 일본 후생성은 2001년 히키코모리의 기준을 위와 같이 제시했다. 2003년 일본 히키코모리 인구는 120만 명이었고, 그중 30%가 노동 가능 인구의 중추인 30대 청년으로 드러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2023년, 여기 한국에서 고립, 은둔 청년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국무조정실 주관 ‘2022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이 전국에 약 54만명으로 추정된다. 여성(72.3%)이 남성(27.7%)보다 약 3배 정도 많았고, 이들 중 75.4%는 자살 생각을, 26.7%는 실제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본주의가 청년들을 죽이고 있다. 도대체 고립, 은둔 청년은 누구일까. 그들은 왜 고립, 은둔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왜 여성이 더 많이 고립되고 있을까. 삶의 위기에서 기댈 곳 없는 청년들 먼저 고립과 은둔의 정의를 살펴보자.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진행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사회적 고립을 “정서적 교감을 포함한 도움이 필요한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지체계가 부재한 상태”, “타인과의 유의미한 교류가 없이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정의한다. 즉, 사회적 관계와 지지체계가 단절된 상태를 의미한다. 은둔 상태는 “집이나 방과 같은 물리적 공간에서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외출을 제한하면서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한다(단, 임신, 출산, 장애 등 건강상의 이유로 외출이 제한되는 경우를 제외). 즉, 은둔 상태는 사회적 고립뿐 아니라 공간적·물리적으로도 고립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1). 1) 김성아, 「고립·은둔 청년의 현황과 지원방안」, 2023.05. 고립·은둔은 청년들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한다. 앞서 적었듯 자살 생각이 있거나 시도한 경험이 있는 고위험군이 다수다. 그 밖에도 미래 희망이 없고(66.3%), 타인 시선이 두렵고(62.0%), 대인 접촉 회피(47.8%), 지인 대면 두려움(44.2%)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 절반 정도(45.6%)는 용기를 내어 일상생활 복귀를 시도했으나 다시 고립·은둔 상태로 복귀했다고 한다. 주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27.2%)과 번아웃(25.0%), 기존 고립·은둔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아서(22.9%)였다. 이렇듯 고립·은둔 생활은 정신적으로 치명적일 뿐 아니라, 빠져나오기도 어렵다. 고립·은둔 생활 기간은 1년-3년(26.3%)이 가장 많고, 10년 이상(6.1%)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요” 모두를 비참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그렇다면 어떤 청년들이 고립·은둔 상태가 되고 있을까. 연령대로 보면 25세-29세(37.7%)와 30-34세(32.4%)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이들의 학력을 보면 대학원 이상(5.6%)과 대학교 졸업(75.4%), 고졸(18.2%), 중졸 이하(0.8%)로 전체 청년의 학력 비율과 유사하다. 즉 고립·은둔 청년 다수는 생애주기 상 학업을 마친 후 취업을 준비할 시기에 있다. 고립·은둔 생활을 시작한 시기 역시 20대(60.5%)가 가장 많다. 취업난,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 고립·은둔의 주요 원인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사자들이 말하는 고립·은둔의 원인 역시 취업 및 직업 관련(24.1%)이 가장 많았다. 고립·은둔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물었더니, 마찬가지로 취업 및 경제적 지원(88.7%)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실제 구직단념과 사회적 관계 단절의 상관관계는 통계적으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쉬었음(구직단념)’ 청년은 2016년 24.9만 명에서 2022년 7월 36만, 2023년 7월 40.2만으로 증가했다. 우울·낙심할 때 대화할 사람이 없다(사회적 고립)고 응답한 청년의 비율 역시 2019년 21.8%에서 2021년 30.6%, 2023년에는 31.6%로 증가했다. 경제적 고립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자. 15세-29세 최종학교 졸업자 452.1만 명 중 미취업자는 126.1만 명이다. 미취업자 중 절반 이상(53.8%)이 대졸 이상 학력을 가졌으며, 4명 중 1명(25.4%) 꼴로 아예 취업 시험 준비나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학교 졸업 후에도 장기간 미취업 상태로 지내거나, 반복되는 취업 실패로 구직 활동을 포기하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번듯한 일자리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취업난은 개인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한편 취업·연애·결혼2) 등에 성공한 일부 또래 청년과의 비교와 박탈감으로 자연스럽게 기존에 맺고 있던 사회적 관계가 감소한다. 자본주의의 위기, 양질의 일자리 감소, 심화하는 경쟁이 청년들에게 한편으로는 혐오와 차별을, 다른 한편에서는 고립과 은둔을 강요하고 있다. 2) 한국은행이 작년 11월 30일 발간한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취업을 못 하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인 청년들은 결혼 의향이 낮았지만, 공공기관에 취업하거나 공무원인 경우에는 결혼 의향이 높았다. 관련 내용은 <전진 기사: 자본주의가 강요한 정신질환, 각자도생 대신 집단적 변혁을!>를 참고하라 가사·돌봄의 덫, 3배 더 고립된 여성 한편, 고립·은둔 청년의 다수(72.3%)는 여성으로, 남성보다 3배 가까이 많다. 이는 첫째, 성별화된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양질의 일자리를 갖기 어렵다는 것과 둘째, 여성의 경우 거의 모든 생애주기에서 가사·돌봄 의무가 부과된다는 데서 기인한다. 특히 미혼 청년들 가운데서도 ‘딸’과 ‘아들’에게 기대하는 가사·돌봄 노동은 차원이 다르다. 아래 그림은 성별/생애단계 유형별 하루평균 가사노동 시간을 비교한 것이다. 출처: 이진숙·이윤석, 「성인이행기 남녀의 가사노동 시간에 대한 탐색적 연구」, 『여성연구』 Vol. 98, 2018. 가족과 함께 사는 미혼 청년 중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85.7분)이 남성(27.4분)보다 3배 이상 길다. 이는 가정 내에서도 아들이 아닌 딸에게 가사노동을 분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성에게 집은 휴식의 공간이지만, 여성에게 집은 또 하나의 노동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감정노동을 수반하는 돌봄 역시 많은 경우 ‘딸’들의 몫이다. 심지어 결혼 이후 남성의 가사노동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감소(자녀가 없는 경우)하는 반면, 여성의 가사노동은 2배 이상 증가한다. 여성은 전 생애를 통틀어 자기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없다. 여성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실제 2022년 한국 우울증 환자는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성별/연령집단은 20대 여성(12.1%)이다. 전체 연령으로 보더라도 여성(67만4천555명)이 남성(32만6천189명)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이렇듯 청년 여성은 집안에서는 가사·돌봄, 사회적으로는 취업·결혼·출산 등을 요구받고 있다. 개별 여성이 이상의 압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사회적 단절뿐이다. 심지어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한 뒤에야 여성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물론, 관계의 단절은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고립과 은둔이 아닌 가사·돌봄 사회화 등을 위한 연대와 투쟁이다. 오래된 미래 일본의 경고에도, 너무나 안일한 윤 정부 다시 히키코모리의 원조, 일본의 상황을 보자.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아동 및 청년층의 의식과 생활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2022년 11월 기준 만 15세부터 69세에 해당하는 일본 국민 중 146만 명이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특징은 히키코모리 연령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현상이 처음 주목받았던 1980~90년대에는 10대 청소년들이 이지메(왕따) 등의 이유로 등교를 거부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것이 히키코모리의 보편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청소년기부터 히키코모리 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사회활동 없이 장기간 부모와 함께 거주하면서 연금수령 세대인 부모(80대)가 중장년층이 된 히키코모리 자녀(50대)를 부양하는 이른바 ‘8050 문제’가 또 하나의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조사에 따르면 히키코모리 중 40대가 약 40%를 차지하고, 정년퇴직 이후 일거리가 사라진 60세 이상도 25%를 초과했다. 심지어 70대 부모가 40대 히키코모리 자녀를 살해하거나, 히키코모리 당사자가 친족을 살해하는 등 끔찍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히키코모리, 고립·은둔 상태는 적절한 조치가 없으면 장기간 지속되기 쉬우며, 개인과 그 가족 모두의 삶을 파괴한다. 더 늦기 전에 고립·은둔 청년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고, 청년들이 고립·은둔에 빠지는 여건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절실하다. 고립·은둔 실태조사를 공개한 같은 날, 보건복지부는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함께 발표했다. 이 지원방안은 ▲고립·은둔 조기 발굴 ▲전담지원체계 구축 ▲학령기, 취업, 직장초기 일상 속 안전망 구축을 골자로 한다. 그 중 전담지원체계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즉, 지원사업 대부분이 자조모임, 관계복원 등 대인기술 향상에 맞춰져 있다. 그나마 취업 지원 사업의 경우(청년도전지원사업), 구직단념청년이 구직 활동에 참여할 경우 참여수당(최대 300만원)을 지원할 뿐이다. 그러나, 지금 고립·은둔 청년은 단순히 ‘관계를 만들 줄 몰라서’ 고립된 것이 아니다. 이들이 애초부터 구직을 단념한 것은 더욱 아니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경쟁의 심화, 여성에게 부과되는 가사·돌봄의 의무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고립·은둔 청년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 확대·재생산 사회화, 노동자계급이 나서야 한다 한국의 저출산·저출생은 전세계가 인정하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립·은둔 청년 문제는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조차 못한 상태다. 당장 ‘청년 문제’는 대개 수도권, 명문대 출신, 정규직, 남성 청년의 문제로 다뤄진다. 이를테면 명문대, 정규직 청년들의 ‘공정성’ 담론, 여성 혐오 같은 것들이다. 이른바 엘리트 청년의 삶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그 궤도에 올라서지 못한 청년들을 패배자로 낙인찍고, 자괴감에 빠뜨리고, 사회적 관심조차 주고 있지 않다. 그런 사이 고립·은둔 청년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운동사회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첫째, 양질의 일자리 보장을 통해 청년들에게 강요되는 취업·입시 경쟁을 해소해야 한다.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를 갖지 못한 청년들은 스스로부터 자기를 패배자라고 생각하고 사회에 나서길 꺼리게 된다. 물론 이는 자본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취업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본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청년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청년들은 스스로를 책망하며 고립·은둔에 빠지고 있다. 이제 자본과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모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고, 입시경쟁 등을 철폐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둘째, 여성에게 부과되는 가사·돌봄 등 재생산노동을 사회화해야 한다. 2-30대 여성이 ‘딸’이라는 이유로 가사와 돌봄 노동을 부과받고 있다. 당장 가정에서 나이든 부모를 돌보는 것은 아들이 아니라 딸과 며느리의 몫이다. 그리고 이는 원래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노동이다. 그 외의 가사·돌봄 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재생산노동을 전면적으로 사회화하고, 가사·돌봄을 비롯한 성별 분업을 철폐해야 한다. 셋째, 청년들의 연대와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연대감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자본주의는 청년들을 노동력 상품으로써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경쟁하게 한다. 연대와 공동체가 사라진 자리에 혐오와 고립이 확산하고 있다. 연대를 복원해야 한다. 물론 이는 단순 ‘자조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이 아니다. 진정한 연대는 함께 세상을 바꾸는 운동 속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존엄을 짓밟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이, 고립이 아닌 연대를 실현할 필수조건이다. 넷째, 노동자계급이 고립·은둔 문제 해결을 위해 싸워야 한다. 당장 고립·은둔 청년의 다수는 노동자계급의 가족 또는 일부다. 물론, 노동자들이 개별 가구에서 고립·은둔 청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제한적이다. 그러나 앞서 제기했던 과제, 노동시간 단축-양질의 일자리 확대-가사·돌봄 사회화는 노동자계급의 힘으로만 실현가능하다. 이 요구를 노동자계급 자신의 과제로 받아안고,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어야만 청년들도 연대를 구축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다.2024-03-05 | 조회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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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옴니버스 법안을 폐기시키다아르헨티나, 옴니버스 법안을 폐기시키다 아르헨티나의 극우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가 야심차게 밀어붙이던 옴니버스 법안이 하원 심의과정에서 폐기됐다. 극우 대통령의 등장에 위축되지 않고 아래로부터 힘차게 투쟁을 이어나간 노동자·민중이 거둔 첫 승리다. (참고: 아르헨티나, 극우정권의 초긴축 실험에 맞서 노동자의 반격이 시작되다!) 옴니버스 법안, 빈껍데기로 전락하자 자진 철회 지난해 12월 10일 취임한 밀레이는 곧바로 일련의 ‘충격요법’ 조치들을 단행했다. 12월 12일에는 △공공지출 대폭 축소 △공공사업 전면 유보 △에너지·교통보조금 삭감 △연방예산 동결 등이 담긴 ‘경제비상조치’를 발표했다. 12월 20일에는 노동권, 임대차, 가격규제, 민영화, 교육, 연금, 관광, 위성인터넷 서비스, 의약품 판매, 무역, 외국인 토지매입 등 다방면에 걸친 대규모 규제완화를 위해 수백 개의 법률을 무력화하는 366개 조항의 ‘메가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그리고 12월 27일에는 △공기업 사유화 △시위제한 명령권 △불법시위 처벌 강화 △환경규제 완화 △세금·연금·에너지·안보 관련 의회 권한의 대통령 양도 등이 포함된 664개 조항의 ‘옴니버스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후 한 달여, 밀레이 정부는 의회에서 다수를 확보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면서 옴니버스 법안의 절반 정도를 포기하고 300여 개 조항으로 추려냈다. 2월 2일 하원에서 옴니버스 법안에 대해 ‘큰 틀에서 동의’하는 찬반투표가 가결됐을 때, 밀레이 정부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았다. 그러나 2월 6일 옴니버스 법안의 각 조항별 찬반투표를 진행하자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공기업 사유화 등 핵심 조항들이 무더기로 부결되면서 옴니버스 법안은 빈껍데기가 되어갔다. 결국 집권 자유진보당(Libertad Avanza)이 법안 자체를 자진 철회했다. “이 법을 필요로 하는 건 정부가 아니라 주민들이라는 게 이해될 때 법안을 다시 제출하겠다”면서. 옴니버스 법안이 폐기된 직후 대통령실은 소셜미디어 X에 올린 공식 성명에서 “주지사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단을 정부가 갖지 못하게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주지사들의 압력으로 하원의원 다수가 옴니버스 법안에 반대했다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자본가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부르주아 정치분석가들은 ‘하원에서 옴니버스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밀레이의 패배는 그의 정치적 경험부족을 드러냈다’면서 무엇보다 ‘모든 개혁을 하나의 거대 법안에 담아내려 했던 게 실패 요인’이며 ‘밀레이 정부가 정치 전략을 재고해야 할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분석을 해외 언론들에 전했다. JP 모건 이코노미스트 디에고 페레이라는 “이건 아르헨티나에서 전례 없는 사건인데, 정부가 첫 번째 입법을 거부당한 사례를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극우 대통령에 맞선 첫 전투 -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나? 그런데 부르주아 정치분석가들이 말하지 않는 결정적인 진실이 있다. 자본가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이해관계 조정이 실패한 것은 무엇보다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가한 강력한 압력 때문이다. 하비에르 밀레이가 취임 직후부터 ‘충격요법’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을 때, 취임 10일 차인 12월 20일부터 노동자·민중의 투쟁도 시작되었다. 이 투쟁에 발동을 건 것은 노동조합총연맹 공식 지도부가 아니었다. 노동조합 공식 지도부가 ‘공세를 완화하기 위한 교섭테이블 모색’이나 ‘다음 선거를 통한 심판’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사회주의노동자당(PTS) 등 좌파전선(FIT-U)에 결집한 혁명적 좌파 정치세력이 전투적인 노동조합들과 실업자단체를 추동해 2만 명의 도심 시위를 조직해 내면서 투쟁의 물꼬를 텄다. 아래로부터 촉발된 도심 시위는 밀레이 정부의 도로점거 시위 금지령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매일 같이 이어졌다. 밤에는 각 지역마다 (냄비와 팬을 두드리는) 카세롤라조 시위를 벌이면서 2001년 민중항쟁을 상기시켰다. 총파업을 소집하라는 압력이 아래로부터 강력하게 밀려오자, 마침내 12월 28일 최대 노총 CGT가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리고 1월 24일 3대 노총이 주도하고 150만 명이 참여한 위력적인 총파업이 전개됐다. 총파업 이후에도 투쟁은 계속됐다. 전투적인 노동조합, 여성조직, 문화단체, 사회단체, 은퇴자 등 수천 명의 시위대가 연일 폭염 속에서도 의회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최루탄을 난사하고 때때로 강경진압에 나서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밤에는 다시 각 지역마다 집회를 열고 카세롤라조 시위를 이어나갔다. 상당수 지역 집회는 참가자들이 민주적 토론을 진행하는 자발적 총회 형식을 띠었다. 노동조합총연맹들이 다시 총파업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언제라도 결정타를 날릴 잠재적 가능성으로 밀레이 정부를 비롯한 전체 자본가 정치세력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좌파전선 소속 하원의원 다섯 명의 맹활약이 있었다. 이들은 매일 가두시위 현장과 의회를 오가면서, 가두시위가 가하는 압력을 의회에 온몸으로 전달했다. 시위대 맨 앞에서 최루탄을 뒤집어쓴 뒤 의회로 달려가 “누가 옴니버스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는지 대중 앞에 다 폭로하겠다”고 압박했다. 257명의 하원은 자본가 정치세력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고, 이들은 모두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를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려는 점에서는 일치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대중투쟁과 그 압력을 의회 안으로 직접 끌어들이는 좌파전선 의원단의 활약은 대중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다수 자본가 정치세력으로 하여금 밀레이 정부와 쉽사리 타협에 나서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아르헨티나 하원의원 니콜라스 델 카뇨 (PTS, 좌파전선 소속) 이러한 요소들을 결합시킴으로써,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은 극우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와 치른 첫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왜 그렇게 경제위기가 잦은가? 2024년 1월 아르헨티나 물가는 전월 대비 20.6% 올랐다. 전년 동월대비로는 254.2% 상승이다. 물가가 공식 수치로 5%만 올라도 생활에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250%를 훌쩍 넘겨 버리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상상이 잘 안 가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 엄청난 물가가 ‘아르헨티나’ 얘기라고 하면 으레 ‘그 나라는 원래 그런 나라 아냐?’ 하는 반응들이 이어진다.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을 가졌고 그래서 한때는 선진국 소리까지 들었다지만 포퓰리즘의 퍼주는 정치를 하다가 경제가 망해버린 대표적인 나라.’ 그게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아르헨티나의 이미지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면이 보인다. 경제가 그렇게 망가졌다는데도 그 부담을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는 것이 쉽지 않은 나라이기도 한 것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왔을 때 한국에서 벌어졌던 상황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김대중 정부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는 외환위기에 따른 경제적 고통을 고스란히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했다. 그 대표적인 결과가 엄청난 규모의 정리해고였고, 뒤이은 비정규직화였다. 그렇게 해서 구축된 고강도 초과착취 시스템 덕분에 삼성·현대·SK·LG로 대표되는 한국의 재벌들은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발휘하며 거대한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부 노동자들도 그 떡고물을 얻어먹으며 ‘노동귀족’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들이 그렇게 약진하는 동안 노동자계급의 다수를 이루는 비정규직의 삶은 과연 나아졌는가? 또 하나. 한국의 재벌들은 언제까지고 약진을 계속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숙명이 있다면, 바로 ‘불균등발전의 법칙’이다. 어떤 기업, 어떤 국가도 언제나 경쟁에서 승리하고 언제나 승승장구할 수는 없다. 한국의 재벌들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 노동자계급의 운명은 다시 어떻게 될까? ‘노동귀족’ 소리를 듣던 정규직의 삶은? 그리고 비정규직의 삶은? 2001년 아르헨티나는 큰 경제위기를 겪었다. 한국의 외환위기보다 훨씬 더 큰 위기였다. 그런데 그 경제위기 한복판에서 거대한 규모의 민중항쟁이 폭발했다.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도망쳐야 했고, 그 뒤로 들어선 임시대통령이 2주일 사이에 세 명이나 줄줄이 날아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결국 자본가 정치세력들 가운데 가장 덜 공격적인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페론주의 좌파, 키르치네르주의 세력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아르헨티나 정치를 주도했던 키르치네르주의는 물론 아르헨티나 경제를 위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사실 글로벌 사우스에 속하는 대다수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제국주의 국가들에 경제가 이미 심각하게 종속된 상황에서 자본주의 틀 안에서는 어떤 획기적인 돌파구라는 걸 찾기 어려웠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 수준을 대폭 강화해서 자본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도 쓰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에 조성된 계급역관계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심각한 경제위기가 왔다. 거듭되는 경제위기에 지친 대중은 누군가 어떤 마법이라도 부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극우인사 밀레이를 선택했다. 밀레이가 부리려는 마법은 간단하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전투에서 밀레이는 패배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밀레이를 지지했던 대중의 상당수는 옴니버스 법안을 비롯한 그의 ‘충격요법’을 실수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밀레이를 지지한다고 한다. 밀레이가 마법을 부려주기를 기대하지만, 그 마법이 나의 권리를 박탈하는 ‘착취의 획기적인 강화’는 아니기를 바란다는 뜻이겠다. 물론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노동자·민중에게도 아주 고통스럽다. 자본의 위기 전가를 어느 정도 막아낼 힘은 있지만,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만큼의 힘은 아직 없다. 러시아 혁명을 이끌던 볼셰비키 의원단을 연상시키는 사회주의 의원단이 당당하게 활동하고,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들이 수만 명의 대중투쟁을 직접 주도해 나갈 정도의 힘은 있지만, 아직 거대한 노동조합운동의 지도력은 페론주의 세력에게 강고하게 장악돼 있다. 어쨌든 노동자계급의 눈으로 보자면, 아르헨티나는 그저 ‘포퓰리즘 하다가 망한 나라’가 아니다.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착취의 획기적인 강화’는 막아낼 정도의 힘을 노동자계급이 갖고 있는 나라다. 또 하나. 여성의 권리와 해방을 위해 가장 강력한 수준의 여성파업을 조직해 낸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아르헨티나는 21세기 세계 자본주의라는 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일는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기괴한 극우 대통령은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별난 일’이라기보다는 앞으로 세계 자본주의 전반에 밀어닥칠 일들을 미리 보여주는 전조일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던지는 의미는 결코 사소한 게 아닐 것이다.2024-03-02 | 조회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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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과제 6]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심화와 노동탄압 강화[편집자 주] 지난 1월 27일 사회주의를향한전진을 포함한 6개 단위가 함께 개최한 신년 정세토론회에 제출한 <2024년 정세와 노동자계급의 과제>를 나누어 연재한다. 이 글은 조직적 토론을 통해 제출되었다. ᅠ Ⅰ. 자본주의 위기 지속, 심화하는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Ⅱ. 제국주의 열강투쟁 격화, 불확실성 확대로 치닫는 세계 자본주의 Ⅲ. 세계 각지 극우세력 부상 Ⅳ. 전쟁위기 확산 Ⅴ. 위기 확대, 한국자본주의 정치경제 정세 Ⅵ. 노동자계급 생존권 위기 심화와 노동탄압 강화 Ⅶ. 노동자 계급운동 대응방향 1. 생존권 위기 심화 앞서 밝혔듯, 생존권 위기는 국제적이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2024년 2월 29일 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노동자 1인당 월평균 실질임금은 전년보다 1.1% 감소했다. 2022년 0.2% 감소에 이어 2년째 감소했다. 2023년 가구실질소득은 전년 동기보다 1분기 증가율 0.0%, 2분기 3.9% 감소, 3분기 0.2% 증가에 그쳤다. 외식물가 상승률은 30개월째 전체 평균보다 높고, 가공식품은 24개월째 높다. 세계자본주의 위기에 따른 식량가 상승 등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는 상황이다.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 쟁취를 위한 정치투쟁이 절실하다. 출처: 고용노동부 2. 노동개악과 노동탄압 정부는 집권 이후 일관된 노동개악 의지를 밝혔고, 올해도 마찬가지다. 사실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 명시된 노동개악 추진 방향은 그간 정부 노동개악안과 크게 달라진 내용이 없는데, 이는 자본입장에서 보아도 정부가 요란할 뿐 무능함을 드러내는 단면이자, 다수의석 확보가 정권에게 그만큼 절실함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는 △2024년 상반기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대책’ 마련 △직무성과급제 확대와 해당 조치 시행기업에 대한 재정인센티브 신설 △2024년 상반기 주 52시간제 무력화와 노동시간 확대개악 추진 의지를 주요 노동정책 방향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한, 한국노총 경사노위 복귀를 반영하듯 해당 절차에 있어 노사정 대화를 명시하고 있다. 경총은 회원사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사회적 대화에서 가장 먼저 논의되어야 할 주제로 '노사간 힘의 균형 회복을 위한 노조법 개선'을 가장 많이(54.0%) 꼽았는데, 이는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폐지와 △사업장점거 전면금지 등을 포괄한다. 민주노총 탄압 역시 지속될 전망이다. 정권은 신년사에 ‘카르텔 타파’를 밝혔을1) 뿐만 아니라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도 ‘노사법치’를 명시하며 ‘불법 노조전임자 운영 등 불법・부당행위를 근절’, ‘노조 회계투명성 강화’를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자기들만의 이권과 이념에 기반을 둔 패거리 카르텔을 반드시 타파하겠습니다. 모든 국민이 공정한 기회를 누리도록 할 것입니다.” 공안탄압 역시 예상할 수 있다. 그간 정권은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매도하며 ‘건설현장 폭력행위 특별단속’을 실시했고, 국정원은 소위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으로 민주노총을 친북집단으로 몰았다. 현 한반도 위기 심화에 따라, 공안탄압의 빈도와 강도는 더욱 높아질 공산이 높다. 종합하면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대책 마련으로 표현되는 △귀족노조 공세를 통한 정규직 임금통제와 고용의 유연화 시도 △주 52시간 내 1일 연장노동 한도를 무력화한 대법원 판결과 경사노위를 매개로 한 노동시간 확대개악 시도 △점거파업 금지 등 파업권 억압 시도 △회계공시 압박과 노조전임자 축소공세 등 노조 길들이기 공세가 예상된다. 2023년 10월 5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사진: 연합뉴스 3. 출생률 급감 등 사회재생산 위기 출생률 1 미만 국가는 OECD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며, 이 추세는 갈수록 심화할 전망이다. 2023년 12월 14일 통계청 발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25년 합계출산율은 0.65명까지 내려갈 예정이다. 저임금 불안정노동 일반화, 여성비정규직 확대, 성별임금격차 확대, 소위 경력단절에 따른 여성의 노동력시장 퇴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의 시장화, 사회보장제도의 절대적 부족 등 한국 자본주의는 낳지 않을 권리와 낳을 권리 모두를 보장하지 않으며, 출생률 급감은 그 결과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폐지 등 정부 정책은 현 위기를 대하는 정부의 모순과 무능을 그대로 드러낸다. 정부는 혐오와 차별을 조장해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정부는 노동력 재생산 위기에 대응해 이주노동자를 늘릴 수밖에 없다. 비전문취업비자(E-9) 기준 정부 외국인 노동자 신규도입 규모는 2021년 5만 2천 명에서 2022년 6만 9천 명, 2023년 12만 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으며, 2024년에는 도입 규모를 16만 5천 명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관련 대책은 정부의 무능과 혼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부는 이주노동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면서도 강제단속을 강화하고 있고,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 예산은 전액 삭감했다. 자본과 함께 이주노동자의 실업급여 수령에 대한 혐오를 조장하기도 한다. 이렇듯, 스스로 노동력 재생산 위기를 조장하면서도 노동력이 부족하다고 한탄하는 정부와 자본의 모습은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와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여야는 저출생 대책을 내놓았지만, 각 대책은 여야를 막론하고 자본가 정치세력은 현 위기에 대응할 의지도, 능력도 없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민주당이 내놓은 대책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조건의 구축이 아니라 이미 아이를 낳은 가구에 대한 자금지원으로 집중되어 있을 뿐이고, 국민의힘이 내놓은 대책은 육아휴직 확대를 매개로 한 기업지원책일 뿐이다. 국가와 자본은 현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출처: 통계청 4. 안보와 기후위기 대응 명분 핵발전과 전력산업 민영화 확대, 노동자 민중을 위한 기후정책 후퇴 국가의 핵발전 육성이 노골적이다. 2024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신한울 3·4호기를 포함해 3조원 이상의 원전 신규 일감을 발주할 계획이며, 곧 발표할 정부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4~2038년)실무안은 원전 비중 확대와 신규원전 건설을 포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현대·삼성·대우·GS·한화·대림·금호 등 원전시공 건설자본에 대한 부양계획이기도 한데, 국내 건설시장 포화에 따른 건설자본의 위기를 핵발전으로 부양하겠다는 반동적 계획의 일환이다. 2036년까지 화력발전소 28기 폐쇄 계획에 따라, 고용문제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2023년 1월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 비중은 2023년 27.1%(40.2GW)에서 2030년 16.0%(31.7GW), 2036년11.3%(27.1GW)로 발전용량과 비중 모두 감소한다. 그러나 노동자 고용보장 대책은 없다. 2023년 10월 통과된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전지원법은 고용노동부 산하 전문위원회 설치를 명시하고 있을 뿐이며, 일각의 대책 요구 역시 노동자 비례성 확대 등 거버넌스 확대 차원에서만 논의되고 있다. 투쟁의 부재 속에, 정부는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에 상응하는 민간 LNG발전 확대로 자본의 이윤 확대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1월 9일 국회는 국가자원안보특별법을 의결했는데, 법안 33조 ‘도시가스 처분에 관한 특례'는 에너지자본의 제3자 가스 판매를 허용한다. 즉, 2005년 노무현 정부시절 가스 직도입 허용 후 에너지 자본은 그간 천연가스를 민간발전사와 산업체의 자가소비를 위해서만 수입할 수 있었는데, 이번 법안으로 천연가스 수입-도매-소매 산업에 전면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렸다. 또한 ’가스위원회 설치 법안‘도 추진되고 있는데, 이는 에너지 자본의 산업장악력 확대를 위한 경로다. 정권과 자본의 행보는 기후정의운동의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조심스러운 진단이나, 현재 한국 기후정의운동은 급속한 대중화 이후 일정한 정체 상황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2년 924기후정의행진, 2023년 414기후정의파업, 2023년 923기후정의행진의 흐름은 상승세라고 보기는 힘든데, 이는 단지 참여자 수 감소의 문제가 아니다. 9월 투쟁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현 흐름이 ‘행사’ 성격을 벗어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이는 기후정의운동이 거리에서 일터로 확대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2023년 923기후정의행진 평가는 다음을 명시하고 있다. “9월 행동이 어떤 자리가 되어야 할 것인가와 관련해, 참여자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나듯이, '운동의 흐름이나 투쟁의 현장'보다는 '행사'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확인됨” “그리고 9월 행동이 이에 그치지 않기 위해 앞으로 고민해 볼 수 있는 과제로 '정의로운 전환-파업' 실물화와 같은 싸움 또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뾰족하게 타격할 수 있는 경험과 투쟁들을 소수 인원이더라도 비상행동이나 동맹의 기후운동 주체들이 함께 경험하고 기획해보는 게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됨” 관련, 민주노총은 기후정의운동 현장화를 위한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923기후정의행진에서 민주노총은 이렇다 할 역할을 해내지 못했고, 기후특위 역시 상층 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2) 핵발전 확대와 전력산업 민영화에 맞서는 투쟁, 산업전환 총고용 보장과 전환과정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투쟁을 아래로부터 확대해야 한다. 2) 관련, 923 기후정의행진 민주노총 부스는 대나무칫솔과 비누 등을 나누어주었는데 이는 민주노총이 ‘기후위기에 맞서는 계급투쟁’이라는 노동운동의 과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단면이었다.2024-02-29 | 조회 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