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과 은둔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청년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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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고립과 은둔을 강요하는 자본주의, 청년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양질의 일자리 확대-가사돌봄 사회화를 위해, 노동자계급이 나서자

  • 고근형
  • 등록 2024.03.05 09:39
  • 조회수 188

사진: gettyimages

 

히키코모리. 오랜 시간(6개월 이상) 집에만 틀어박혀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 일본 후생성은 2001년 히키코모리의 기준을 위와 같이 제시했다. 2003년 일본 히키코모리 인구는 120만 명이었고, 그중 30%가 노동 가능 인구의 중추인 30대 청년으로 드러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2023년, 여기 한국에서 고립, 은둔 청년이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3월 국무조정실 주관 ‘2022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립·은둔 청년이 전국에 약 54만명으로 추정된다. 여성(72.3%)이 남성(27.7%)보다 약 3배 정도 많았고, 이들 중 75.4%는 자살 생각을, 26.7%는 실제 자살 시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본주의가 청년들을 죽이고 있다. 도대체 고립, 은둔 청년은 누구일까. 그들은 왜 고립, 은둔을 선택하게 되었을까. 왜 여성이 더 많이 고립되고 있을까.

 

삶의 위기에서 기댈 곳 없는 청년들

 

먼저 고립과 은둔의 정의를 살펴보자.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진행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사회적 고립을 “정서적 교감을 포함한 도움이 필요한 곤란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지지체계가 부재한 상태”, “타인과의 유의미한 교류가 없이 사회활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정의한다. 즉, 사회적 관계와 지지체계가 단절된 상태를 의미한다. 은둔 상태는 “집이나 방과 같은 물리적 공간에서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외출을 제한하면서 살아가는 상태”를 의미한다(단, 임신, 출산, 장애 등 건강상의 이유로 외출이 제한되는 경우를 제외). 즉, 은둔 상태는 사회적 고립뿐 아니라 공간적·물리적으로도 고립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1).

1) 김성아, 「고립·은둔 청년의 현황과 지원방안」, 2023.05.

 

고립·은둔은 청년들의 정신과 육체를 파괴한다. 앞서 적었듯 자살 생각이 있거나 시도한 경험이 있는 고위험군이 다수다. 그 밖에도 미래 희망이 없고(66.3%), 타인 시선이 두렵고(62.0%), 대인 접촉 회피(47.8%), 지인 대면 두려움(44.2%)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 절반 정도(45.6%)는 용기를 내어 일상생활 복귀를 시도했으나 다시 고립·은둔 상태로 복귀했다고 한다. 주된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27.2%)과 번아웃(25.0%), 기존 고립·은둔의 원인이 해결되지 않아서(22.9%)였다. 이렇듯 고립·은둔 생활은 정신적으로 치명적일 뿐 아니라, 빠져나오기도 어렵다. 고립·은둔 생활 기간은 1년-3년(26.3%)이 가장 많고, 10년 이상(6.1%)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요” 모두를 비참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그렇다면 어떤 청년들이 고립·은둔 상태가 되고 있을까. 연령대로 보면 25세-29세(37.7%)와 30-34세(32.4%)가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한다. 이들의 학력을 보면 대학원 이상(5.6%)과 대학교 졸업(75.4%), 고졸(18.2%), 중졸 이하(0.8%)로 전체 청년의 학력 비율과 유사하다. 즉 고립·은둔 청년 다수는 생애주기 상 학업을 마친 후 취업을 준비할 시기에 있다. 고립·은둔 생활을 시작한 시기 역시 20대(60.5%)가 가장 많다. 취업난,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 고립·은둔의 주요 원인임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사자들이 말하는 고립·은둔의 원인 역시 취업 및 직업 관련(24.1%)이 가장 많았다. 고립·은둔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물었더니, 마찬가지로 취업 및 경제적 지원(88.7%)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실제 구직단념과 사회적 관계 단절의 상관관계는 통계적으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일도 구직활동도 하지 않는 ‘쉬었음(구직단념)’ 청년은 2016년 24.9만 명에서 2022년 7월 36만, 2023년 7월 40.2만으로 증가했다. 우울·낙심할 때 대화할 사람이 없다(사회적 고립)고 응답한 청년의 비율 역시 2019년 21.8%에서 2021년 30.6%, 2023년에는 31.6%로 증가했다. 경제적 고립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자. 15세-29세 최종학교 졸업자 452.1만 명 중 미취업자는 126.1만 명이다. 미취업자 중 절반 이상(53.8%)이 대졸 이상 학력을 가졌으며, 4명 중 1명(25.4%) 꼴로 아예 취업 시험 준비나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 학교 졸업 후에도 장기간 미취업 상태로 지내거나, 반복되는 취업 실패로 구직 활동을 포기하는 청년이 늘어나고 있다. 번듯한 일자리를 가져야 한다는 압박감 속에서 취업난은 개인의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한편 취업·연애·결혼2) 등에 성공한 일부 또래 청년과의 비교와 박탈감으로 자연스럽게 기존에 맺고 있던 사회적 관계가 감소한다. 자본주의의 위기, 양질의 일자리 감소, 심화하는 경쟁이 청년들에게 한편으로는 혐오와 차별을, 다른 한편에서는 고립과 은둔을 강요하고 있다.

2) 한국은행이 작년 11월 30일 발간한 경제전망보고서에 따르면 취업을 못 하거나 취업을 했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인 청년들은 결혼 의향이 낮았지만, 공공기관에 취업하거나 공무원인 경우에는 결혼 의향이 높았다. 관련 내용은 <전진 기사: 자본주의가 강요한 정신질환, 각자도생 대신 집단적 변혁을!>를 참고하라

 

가사·돌봄의 덫, 3배 더 고립된 여성

 

한편, 고립·은둔 청년의 다수(72.3%)는 여성으로, 남성보다 3배 가까이 많다. 이는 첫째, 성별화된 노동시장에서 여성이 양질의 일자리를 갖기 어렵다는 것과 둘째, 여성의 경우 거의 모든 생애주기에서 가사·돌봄 의무가 부과된다는 데서 기인한다. 특히 미혼 청년들 가운데서도 ‘딸’과 ‘아들’에게 기대하는 가사·돌봄 노동은 차원이 다르다. 아래 그림은 성별/생애단계 유형별 하루평균 가사노동 시간을 비교한 것이다.

 

출처: 이진숙·이윤석, 「성인이행기 남녀의 가사노동 시간에 대한 탐색적 연구」, 『여성연구』 Vol. 98, 2018.

 

가족과 함께 사는 미혼 청년 중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85.7분)이 남성(27.4분)보다 3배 이상 길다. 이는 가정 내에서도 아들이 아닌 딸에게 가사노동을 분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남성에게 집은 휴식의 공간이지만, 여성에게 집은 또 하나의 노동을 수행하는 공간이다. 감정노동을 수반하는 돌봄 역시 많은 경우 ‘딸’들의 몫이다. 심지어 결혼 이후 남성의 가사노동은 비슷하거나 오히려 감소(자녀가 없는 경우)하는 반면, 여성의 가사노동은 2배 이상 증가한다. 여성은 전 생애를 통틀어 자기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없다. 여성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더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실제 2022년 한국 우울증 환자는 처음으로 100만명을 돌파했는데, 그중 가장 많은 성별/연령집단은 20대 여성(12.1%)이다. 전체 연령으로 보더라도 여성(67만4천555명)이 남성(32만6천189명)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이렇듯 청년 여성은 집안에서는 가사·돌봄, 사회적으로는 취업·결혼·출산 등을 요구받고 있다. 개별 여성이 이상의 압력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사회적 단절뿐이다. 심지어 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한 뒤에야 여성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물론, 관계의 단절은 마찬가지로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고립과 은둔이 아닌 가사·돌봄 사회화 등을 위한 연대와 투쟁이다.

 

오래된 미래 일본의 경고에도, 너무나 안일한 윤 정부

 

다시 히키코모리의 원조, 일본의 상황을 보자. 일본 내각부가 지난해 3월 발표한 ‘아동 및 청년층의 의식과 생활에 관한 조사’에 따르면 2022년 11월 기준 만 15세부터 69세에 해당하는 일본 국민 중 146만 명이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특징은 히키코모리 연령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히키코모리 현상이 처음 주목받았던 1980~90년대에는 10대 청소년들이 이지메(왕따) 등의 이유로 등교를 거부하고 집 안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것이 히키코모리의 보편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청소년기부터 히키코모리 생활을 해온 사람들이 사회활동 없이 장기간 부모와 함께 거주하면서 연금수령 세대인 부모(80대)가 중장년층이 된 히키코모리 자녀(50대)를 부양하는 이른바 ‘8050 문제’가 또 하나의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조사에 따르면 히키코모리 중 40대가 약 40%를 차지하고, 정년퇴직 이후 일거리가 사라진 60세 이상도 25%를 초과했다. 심지어 70대 부모가 40대 히키코모리 자녀를 살해하거나, 히키코모리 당사자가 친족을 살해하는 등 끔찍한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히키코모리, 고립·은둔 상태는 적절한 조치가 없으면 장기간 지속되기 쉬우며, 개인과 그 가족 모두의 삶을 파괴한다. 더 늦기 전에 고립·은둔 청년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고, 청년들이 고립·은둔에 빠지는 여건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절실하다.

 

고립·은둔 실태조사를 공개한 같은 날, 보건복지부는 「고립·은둔 청년 지원방안」을 함께 발표했다. 이 지원방안은 ▲고립·은둔 조기 발굴 ▲전담지원체계 구축 ▲학령기, 취업, 직장초기 일상 속 안전망 구축을 골자로 한다. 그 중 전담지원체계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즉, 지원사업 대부분이 자조모임, 관계복원 등 대인기술 향상에 맞춰져 있다. 그나마 취업 지원 사업의 경우(청년도전지원사업), 구직단념청년이 구직 활동에 참여할 경우 참여수당(최대 300만원)을 지원할 뿐이다. 그러나, 지금 고립·은둔 청년은 단순히 ‘관계를 만들 줄 몰라서’ 고립된 것이 아니다. 이들이 애초부터 구직을 단념한 것은 더욱 아니다.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경쟁의 심화, 여성에게 부과되는 가사·돌봄의 의무가 해결되지 않는 한, 고립·은둔 청년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양질의 일자리 확대·재생산 사회화, 노동자계급이 나서야 한다

 

한국의 저출산·저출생은 전세계가 인정하는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그러나 한국에서 고립·은둔 청년 문제는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조차 못한 상태다. 당장 ‘청년 문제’는 대개 수도권, 명문대 출신, 정규직, 남성 청년의 문제로 다뤄진다. 이를테면 명문대, 정규직 청년들의 ‘공정성’ 담론, 여성 혐오 같은 것들이다. 이른바 엘리트 청년의 삶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그 궤도에 올라서지 못한 청년들을 패배자로 낙인찍고, 자괴감에 빠뜨리고, 사회적 관심조차 주고 있지 않다. 그런 사이 고립·은둔 청년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운동사회부터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

 

첫째, 양질의 일자리 보장을 통해 청년들에게 강요되는 취업·입시 경쟁을 해소해야 한다. 좋은 대학, 좋은 일자리를 갖지 못한 청년들은 스스로부터 자기를 패배자라고 생각하고 사회에 나서길 꺼리게 된다. 물론 이는 자본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청년들이 취업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본이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청년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의 청년들은 스스로를 책망하며 고립·은둔에 빠지고 있다. 이제 자본과 국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모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하고, 입시경쟁 등을 철폐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둘째, 여성에게 부과되는 가사·돌봄 등 재생산노동을 사회화해야 한다. 2-30대 여성이 ‘딸’이라는 이유로 가사와 돌봄 노동을 부과받고 있다. 당장 가정에서 나이든 부모를 돌보는 것은 아들이 아니라 딸과 며느리의 몫이다. 그리고 이는 원래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노동이다. 그 외의 가사·돌봄 노동 역시 마찬가지다. 재생산노동을 전면적으로 사회화하고, 가사·돌봄을 비롯한 성별 분업을 철폐해야 한다.

 

셋째, 청년들의 연대와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과 연대감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수적이다. 자본주의는 청년들을 노동력 상품으로써 서로 연대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경쟁하게 한다. 연대와 공동체가 사라진 자리에 혐오와 고립이 확산하고 있다. 연대를 복원해야 한다. 물론 이는 단순 ‘자조 모임’을 만들자는 제안이 아니다. 진정한 연대는 함께 세상을 바꾸는 운동 속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존엄을 짓밟는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이, 고립이 아닌 연대를 실현할 필수조건이다.

 

넷째, 노동자계급이 고립·은둔 문제 해결을 위해 싸워야 한다. 당장 고립·은둔 청년의 다수는 노동자계급의 가족 또는 일부다. 물론, 노동자들이 개별 가구에서 고립·은둔 청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제한적이다. 그러나 앞서 제기했던 과제, 노동시간 단축-양질의 일자리 확대-가사·돌봄 사회화는 노동자계급의 힘으로만 실현가능하다. 이 요구를 노동자계급 자신의 과제로 받아안고,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어야만 청년들도 연대를 구축할 수 있다. 노동자계급의 헤게모니는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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