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옴니버스 법안을 폐기시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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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아르헨티나, 옴니버스 법안을 폐기시키다

  • 양준석
  • 등록 2024.03.02 11:50
  • 조회수 439

아르헨티나, 옴니버스 법안을 폐기시키다

 

아르헨티나의 극우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가 야심차게 밀어붙이던 옴니버스 법안이 하원 심의과정에서 폐기됐다. 극우 대통령의 등장에 위축되지 않고 아래로부터 힘차게 투쟁을 이어나간 노동자·민중이 거둔 첫 승리다. (참고: 아르헨티나, 극우정권의 초긴축 실험에 맞서 노동자의 반격이 시작되다!)

 

 

옴니버스 법안, 빈껍데기로 전락하자 자진 철회

 

지난해 12월 10일 취임한 밀레이는 곧바로 일련의 ‘충격요법’ 조치들을 단행했다. 12월 12일에는 △공공지출 대폭 축소 △공공사업 전면 유보 △에너지·교통보조금 삭감 △연방예산 동결 등이 담긴 ‘경제비상조치’를 발표했다. 12월 20일에는 노동권, 임대차, 가격규제, 민영화, 교육, 연금, 관광, 위성인터넷 서비스, 의약품 판매, 무역, 외국인 토지매입 등 다방면에 걸친 대규모 규제완화를 위해 수백 개의 법률을 무력화하는 366개 조항의 ‘메가 대통령령’을 발표했다. 그리고 12월 27일에는 △공기업 사유화 △시위제한 명령권 △불법시위 처벌 강화 △환경규제 완화 △세금·연금·에너지·안보 관련 의회 권한의 대통령 양도 등이 포함된 664개 조항의 ‘옴니버스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이후 한 달여, 밀레이 정부는 의회에서 다수를 확보하기 위해 협상을 벌이면서 옴니버스 법안의 절반 정도를 포기하고 300여 개 조항으로 추려냈다. 2월 2일 하원에서 옴니버스 법안에 대해 ‘큰 틀에서 동의’하는 찬반투표가 가결됐을 때, 밀레이 정부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았다.

 

그러나 2월 6일 옴니버스 법안의 각 조항별 찬반투표를 진행하자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공기업 사유화 등 핵심 조항들이 무더기로 부결되면서 옴니버스 법안은 빈껍데기가 되어갔다. 결국 집권 자유진보당(Libertad Avanza)이 법안 자체를 자진 철회했다. “이 법을 필요로 하는 건 정부가 아니라 주민들이라는 게 이해될 때 법안을 다시 제출하겠다”면서.

 

옴니버스 법안이 폐기된 직후 대통령실은 소셜미디어 X에 올린 공식 성명에서 “주지사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아르헨티나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단을 정부가 갖지 못하게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주지사들의 압력으로 하원의원 다수가 옴니버스 법안에 반대했다는 것인데, 다시 말하면 자본가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이해관계 조정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부르주아 정치분석가들은 ‘하원에서 옴니버스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한 밀레이의 패배는 그의 정치적 경험부족을 드러냈다’면서 무엇보다 ‘모든 개혁을 하나의 거대 법안에 담아내려 했던 게 실패 요인’이며 ‘밀레이 정부가 정치 전략을 재고해야 할 상황으로 내몰렸다’는 분석을 해외 언론들에 전했다. JP 모건 이코노미스트 디에고 페레이라는 “이건 아르헨티나에서 전례 없는 사건인데, 정부가 첫 번째 입법을 거부당한 사례를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극우 대통령에 맞선 첫 전투 -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나?

 

그런데 부르주아 정치분석가들이 말하지 않는 결정적인 진실이 있다. 자본가 정치세력들 사이에서 이해관계 조정이 실패한 것은 무엇보다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가한 강력한 압력 때문이다.

 

하비에르 밀레이가 취임 직후부터 ‘충격요법’ 조치들을 쏟아내고 있을 때, 취임 10일 차인 12월 20일부터 노동자·민중의 투쟁도 시작되었다. 이 투쟁에 발동을 건 것은 노동조합총연맹 공식 지도부가 아니었다. 노동조합 공식 지도부가 ‘공세를 완화하기 위한 교섭테이블 모색’이나 ‘다음 선거를 통한 심판’ 정도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사회주의노동자당(PTS) 등 좌파전선(FIT-U)에 결집한 혁명적 좌파 정치세력이 전투적인 노동조합들과 실업자단체를 추동해 2만 명의 도심 시위를 조직해 내면서 투쟁의 물꼬를 텄다.

 

아래로부터 촉발된 도심 시위는 밀레이 정부의 도로점거 시위 금지령을 정면으로 거부하면서 매일 같이 이어졌다. 밤에는 각 지역마다 (냄비와 팬을 두드리는) 카세롤라조 시위를 벌이면서 2001년 민중항쟁을 상기시켰다. 총파업을 소집하라는 압력이 아래로부터 강력하게 밀려오자, 마침내 12월 28일 최대 노총 CGT가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리고 1월 24일 3대 노총이 주도하고 150만 명이 참여한 위력적인 총파업이 전개됐다.

 

총파업 이후에도 투쟁은 계속됐다. 전투적인 노동조합, 여성조직, 문화단체, 사회단체, 은퇴자 등 수천 명의 시위대가 연일 폭염 속에서도 의회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최루탄을 난사하고 때때로 강경진압에 나서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밤에는 다시 각 지역마다 집회를 열고 카세롤라조 시위를 이어나갔다. 상당수 지역 집회는 참가자들이 민주적 토론을 진행하는 자발적 총회 형식을 띠었다.

 

 

노동조합총연맹들이 다시 총파업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언제라도 결정타를 날릴 잠재적 가능성으로 밀레이 정부를 비롯한 전체 자본가 정치세력들을 압박했다.

 

그리고 좌파전선 소속 하원의원 다섯 명의 맹활약이 있었다. 이들은 매일 가두시위 현장과 의회를 오가면서, 가두시위가 가하는 압력을 의회에 온몸으로 전달했다. 시위대 맨 앞에서 최루탄을 뒤집어쓴 뒤 의회로 달려가 “누가 옴니버스 법안에 찬성표를 던지는지 대중 앞에 다 폭로하겠다”고 압박했다. 257명의 하원은 자본가 정치세력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고, 이들은 모두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를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려는 점에서는 일치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대중투쟁과 그 압력을 의회 안으로 직접 끌어들이는 좌파전선 의원단의 활약은 대중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다수 자본가 정치세력으로 하여금 밀레이 정부와 쉽사리 타협에 나서지 못하도록 가로막았다.

 

아르헨티나 하원의원 니콜라스 델 카뇨 (PTS, 좌파전선 소속)

 

이러한 요소들을 결합시킴으로써,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은 극우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와 치른 첫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왜 그렇게 경제위기가 잦은가?

 

2024년 1월 아르헨티나 물가는 전월 대비 20.6% 올랐다. 전년 동월대비로는 254.2% 상승이다. 물가가 공식 수치로 5%만 올라도 생활에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 250%를 훌쩍 넘겨 버리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상상이 잘 안 가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그 엄청난 물가가 ‘아르헨티나’ 얘기라고 하면 으레 ‘그 나라는 원래 그런 나라 아냐?’ 하는 반응들이 이어진다. ‘넓은 국토와 풍부한 자원을 가졌고 그래서 한때는 선진국 소리까지 들었다지만 포퓰리즘의 퍼주는 정치를 하다가 경제가 망해버린 대표적인 나라.’ 그게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아르헨티나의 이미지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아르헨티나의 새로운 면이 보인다. 경제가 그렇게 망가졌다는데도 그 부담을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하는 것이 쉽지 않은 나라이기도 한 것이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가 왔을 때 한국에서 벌어졌던 상황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김대중 정부가 주도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는 외환위기에 따른 경제적 고통을 고스란히 노동자·민중에게 전가했다. 그 대표적인 결과가 엄청난 규모의 정리해고였고, 뒤이은 비정규직화였다. 그렇게 해서 구축된 고강도 초과착취 시스템 덕분에 삼성·현대·SK·LG로 대표되는 한국의 재벌들은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발휘하며 거대한 다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일부 노동자들도 그 떡고물을 얻어먹으며 ‘노동귀족’ 소리를 듣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국의 재벌들이 그렇게 약진하는 동안 노동자계급의 다수를 이루는 비정규직의 삶은 과연 나아졌는가?

 

또 하나. 한국의 재벌들은 언제까지고 약진을 계속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에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하나의 숙명이 있다면, 바로 ‘불균등발전의 법칙’이다. 어떤 기업, 어떤 국가도 언제나 경쟁에서 승리하고 언제나 승승장구할 수는 없다. 한국의 재벌들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 노동자계급의 운명은 다시 어떻게 될까? ‘노동귀족’ 소리를 듣던 정규직의 삶은? 그리고 비정규직의 삶은?

 

2001년 아르헨티나는 큰 경제위기를 겪었다. 한국의 외환위기보다 훨씬 더 큰 위기였다. 그런데 그 경제위기 한복판에서 거대한 규모의 민중항쟁이 폭발했다. 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도망쳐야 했고, 그 뒤로 들어선 임시대통령이 2주일 사이에 세 명이나 줄줄이 날아갈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었다. 결국 자본가 정치세력들 가운데 가장 덜 공격적인 세력이 정권을 잡았다. 페론주의 좌파, 키르치네르주의 세력이었다.

 

지난 20년 동안 아르헨티나 정치를 주도했던 키르치네르주의는 물론 아르헨티나 경제를 위한 해법을 찾지 못했다. 사실 글로벌 사우스에 속하는 대다수 나라들이 그러하듯이, 제국주의 국가들에 경제가 이미 심각하게 종속된 상황에서 자본주의 틀 안에서는 어떤 획기적인 돌파구라는 걸 찾기 어려웠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 수준을 대폭 강화해서 자본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법도 쓰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에 조성된 계급역관계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심각한 경제위기가 왔다. 거듭되는 경제위기에 지친 대중은 누군가 어떤 마법이라도 부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극우인사 밀레이를 선택했다. 밀레이가 부리려는 마법은 간단하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전투에서 밀레이는 패배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밀레이를 지지했던 대중의 상당수는 옴니버스 법안을 비롯한 그의 ‘충격요법’을 실수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밀레이를 지지한다고 한다. 밀레이가 마법을 부려주기를 기대하지만, 그 마법이 나의 권리를 박탈하는 ‘착취의 획기적인 강화’는 아니기를 바란다는 뜻이겠다.

 

물론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노동자·민중에게도 아주 고통스럽다. 자본의 위기 전가를 어느 정도 막아낼 힘은 있지만, 자본주의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만큼의 힘은 아직 없다. 러시아 혁명을 이끌던 볼셰비키 의원단을 연상시키는 사회주의 의원단이 당당하게 활동하고,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들이 수만 명의 대중투쟁을 직접 주도해 나갈 정도의 힘은 있지만, 아직 거대한 노동조합운동의 지도력은 페론주의 세력에게 강고하게 장악돼 있다.

 

 

어쨌든 노동자계급의 눈으로 보자면, 아르헨티나는 그저 ‘포퓰리즘 하다가 망한 나라’가 아니다. 극심한 경제위기 속에서도 ‘착취의 획기적인 강화’는 막아낼 정도의 힘을 노동자계급이 갖고 있는 나라다. 또 하나. 여성의 권리와 해방을 위해 가장 강력한 수준의 여성파업을 조직해 낸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아르헨티나는 21세기 세계 자본주의라는 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일는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저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기괴한 극우 대통령은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별난 일’이라기보다는 앞으로 세계 자본주의 전반에 밀어닥칠 일들을 미리 보여주는 전조일는지도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의 투쟁이 세계 노동자계급에게 던지는 의미는 결코 사소한 게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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