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 정당과 단절하기 위해,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정치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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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자본가 정당과 단절하기 위해, 노동자계급과 사회주의 정치운동은 무엇을 할 것인가

  • 백종성
  • 등록 2024.03.12 19:09
  • 조회수 722

전면화하는 야권연대, 개량주의·의회주의·몰계급적 정치세력화의 필연적 결과

 

2월 13일, 진보당은 민주당과 함께 위성정당을 창당하겠다고 발표했다. 자본가 정당과 함께 당을 만들고, 강령과 공약을 만들고, 후보를 세워 노동자 민중의 지지를 구걸하겠다는 것이다. 2월 17일, 녹색정의당은 민주당 주도 위성정당 불참을 결정했으나 민주당과의 정책연합 및 지역구 후보 연대 등을 폭넓게 추진한다고 발표했고, 이후 민주당과의 협상이 여의치 않자 중앙당 차원의 지역구 연대 협상중단을 밝히면서도 지역 협의는 열어놓겠다고 밝혔다. 중앙당 협상을 중단하는 이유는 ‘민주당이 녹색정의당과의 사전협의 없이 비례대표의석 축소를 결정한 점’이라고 하는데, 이는 비례대표 의석을 그대로 두었다면 계속 연대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위성정당 창당이건 지역구 후보단일화건,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진보정당’과 자본가 정당의 연대연합이 전면화하는 현 상황은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가 어떤 이념, 주체, 수단에 의거해야 하는가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요구한다.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야권연대 - 개량주의·의회주의 노동자정당의 국민정당화는 필연이다

 

우선, ‘민주노총 주도 단일정당 건설’이라는 2023년 9월 민주노총 정치방침과 그 정치방침을 함께 만든 정치세력들의 ‘민주당 연대’라는 외견상 모순적인 행보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민주노총 주도 노동자 단일정당은 바람직하나, 민주당과의 연대는 바람직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양자는 동전의 양면이다.

 

좌: 2024년 2월 21일. 우: 2012년 3월 10일

 

사실, 현 국면 전면화하는 ‘민주노총 지지 진보정당’과 자본가 정치세력의 연대는 새롭지 않은 일이다. 잠시 민주노동당을 돌아보자.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1996-97 총파업을 계기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나선 결과로 만들어졌다.1) 노동자계급에 기반했다는 점에서, 총파업의 힘을 반영했다는 점에서, 보수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 극복을 목표했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은 계급투쟁의 성과를 어떤 식으로건 일정히 반영한다.

1) 1997년 7월 24일, 민주노총 제6차 임시대의원대회의의 관련 결의는 다음과 같다. <1. 민주노총은 제 민주세력과 함께 1997년 대선에 국민후보를 추대, 이를 위한 선거대책기구를 구성하고 인적 물적 역량을 동원키로 결의한다. 2. 민주노총은 대중적 합의를 바탕으로 노동자가 적극 참여하고 각계각층의 민주적이고 양심적인 세력과 함께 하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실현하고 노동자의 이익과 요구를 철저히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 건설의 토대를 구축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귀결은 거듭된 보수야당과의 선거연대에 이은 민주당 계열 분파와의 합당을 통한 통합진보당 창당이었다(‘전태일 정신과 노무현 정신의 만남’).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지방선거 이래 야권연대가 노골화했고(반MB 야권연대), 대선이 있었던 2012년에는 극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부터 중앙정부까지 ‘공동정부 구성’이 음양으로 운위되었다. 이는 민주노동당 내부 갈등에 이은 분당을 재통합하는 과정과 맞물렸는데, 이를 종합하면 <진보대통합→야권연대→정권교체와 연립정부 구성>이라는 전망이었다. 즉, 전략은 야권연대를 통한 연립정부 구성이고, 이에 종속되는 전술이 진보대통합이었던 셈이다.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넘어 ‘민주당과의 공동집권’까지 운위되는 상황에서, 2010년경까지 유지되던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은 소위 통진당 사태와 함께 스스로 폐기되었다. 이후 선거철이면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들이 집단 입당원서를 들고 민주당에 투항해도 징계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왔다. 민주노총은 정치방침과 선거방침을 통해 ‘노동자가 만든 진보정당’의 국민정당(catch-all party)화를, 또한 민주당과의 연대를 부추기고 보조했다.

 

 

중요한 것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연대, 그리고 민주노동당의 국민정당화가 민주노동당 노선으로부터의 이탈이 아니라, 그 노선의 결과라는 점이다. 즉, 민주노동당의 국민정당화는 몰계급적 정치세력화, 사민주의-의회주의 정치세력화의 필연적 결과였고 민주노동당 강령은 이미 이런 지향을 명시하고 있었다. 사실 민주노동당의 강령은 중소기업 중심경제 지향을 명시하는 등2) ‘사민주의’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2) 이런 점에서 2007년 당시 논란을 낳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의 “민주노동당과 중소기업이 동지적 관계를 가지기를 원한다”는 발언은 민주노동당 강령상으로는 아무 문제 없는 발언이었던 셈이다.

 

민주노동당 강령을 보자.

 

사회적 소유를 바탕으로 하여 시장을 활용하는 경제체제… 사회적 소유는 국가적 소유, 공공적 소유, 협동조합 소유, 민주적 참여기업 등을 포괄 … 민주적 참여기업이란 해당 기업의 노동자를 비롯하여 다수 국민이 지배적인 지분을 가지고 소유의 주체로서 기업의 경영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보장된 기업”

중소기업에게 사적·개인적 사업의 기회를 최대한 보장한다. 중소기업을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중소기업 고유 영역의 설정, 중소기업 금융지원의 확대 및 어음제도의 폐지 등 모든 정책을 강구한다. 나아가 노동자 소유기업 등 협동조합적 소유에 기초한 중소기업의 창업을 장려한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 내분 끝에 출범한 진보신당은 어떠했나?

 

“재벌 주도의 대기업 소유·지배 구조를 해체하여 노동자가 경영을 주도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대안 기업 형태로 전환한다. … 중소기업을 지원할 금융 및 기술혁신 체계를 구축한다. 또한 협동조합,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사회적 기업 등 대안적 소유 지배 구조를 갖춘 중소기업들을 육성하여 풀뿌리 경제를 활성화한다.”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다.

 

12. 재벌의 소유 경영의 독점 해소 등을 통해 독점재벌 중심 경제 체제를 해체하고, 불공정 하도급거래 관행 근절, 대형 유통점 규제 등을 통해 중소기업 및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 육성함으로써, 경제의 민주화를 실현하고 내수 중소기업 주도형 경제체제를 강화한다.

13. 협동조합,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사회적 기업 등 대안적 소유 지배구조를 갖춘 중소기업을 육성하여 풀뿌리 경제를 활성화하고, 중소기업 서민 전담 금융기관을 설립해 중소기업과 서민 등 경제적 약자에 대한 금융접근성을 확대한다.

 

사회주의와 노동자혁명을 철 지난 이야기로 치부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미미한 개량과 의회주의 수권정당을 지향하는 민주노동당의 귀결은 야권연대 끝에 자본가 세력과의 창당, 통합진보당이었다. 이런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국민정당화는 이미 잠재된 것이었고, ‘노선을 바꾸지 않고 노동자계급과 함께 우직하게 전진하는 민주노동당’은 형용모순에 불과했다. 민주노동당보다 훨씬 좌익적이었던 서유럽 개량주의 노동자당, 나아가 의회를 통한 이행을 목표한 유로코뮤니즘 정당들의 국민정당화 과정을 민주노동당은 보다 단기간에, 그리고 더욱 뻔뻔하게 밟았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2023년 9월 민주노총 정치-선거방침과, 위성정당 참여 및 지역구 선거연대로 노골화하는 ‘민주노총 지지정당’과 민주당과의 연대는 일견 모순이나 동전의 양면이다. 2010년 ‘진보대통합’과 ‘야권연대’가 양자를 구성하는 동전의 양면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이 중 전략은 야권연대-연립정부 구성이고, 전술은 진보대통합이었다. 현재로 보면 전략은 반윤석열 인민전선이고, 전술은 민주노총 주도 단일 연합정당 건설이다(물론 현 민주노총 집행부에 단일정당을 실현할 권위와 실력이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2012년 8월 24일 김영훈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과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 사진: 노동과 세계

 

양날개론은 무엇을 결과했는가

 

기실 민주노동당 이후 ‘진성 노동자 당’의 유일한 모델은 양날개론, 즉 ‘산별노조의 경제투쟁과 사민주의 단일정당의 정치투쟁’이라는 역할분담론으로 굳어졌다. ‘조합원은 노동조합이 만든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배타적 지지방침’을 통해 양날개론이 노동조합에 강제 관철되었다. 진보정당은 그렇게 집중한 자원을 지렛대로 자본가 정당과 연대연합을 행했다. 그 과정에서 ‘민주당과의 연립정부 수립’이라는 지향이 대놓고 운위되었으며, 이는 피아의 구분선 자체를 지우며 노동자정치의 가능성 그 자체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회의로 이어졌다.

 

현시기 운위되는 ‘민주노총 주도 단일정당 건설론’ 역시 양날개론에 근거한다. 어떻게 양날개론을 극복할 것인가. 이를 위해 산별노조의 경제투쟁과 의회주의 진보정당의 정치투쟁이라는 역할분담론이 낳은 효과를 살펴보자.

 

첫째, 양날개론은 현장에서 정치를 추방한다. 역할분담론에 따라 현장은 경제의 공간, 의회는 정치의 공간이 된다. 노동현장의 과제는 임단협의 수행, 재정과 투표의 조직, 의회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물리력 동원으로 한정된다(의회협상력 강화를 위한 노동조합 동원, 2023년 9월 민주노총 정치방침 맥락상 ‘광장정치’라는 단어가 이를 표현한다). 곧, 현장은 의회정당을 위해 돈과 사람을 대는 저수지에 지나지 않게 된다. 필연적으로 현장정치활동은 빈다.

 

둘째, 공동화된 현장의 계급투쟁과 계급정치를 조합주의, 타협주의가 채운다. 양날개론이 의회진출을 현장정치보다 훨씬 중요한 임무로 상정하는 순간, 현장이야 어떻게 되건 현장의 돈과 표를 집중해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그 과정에서 가장 열악한 노동자들이 피해자가 된다. 그 적나라한 사례 중 하나가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과정에서 ‘진보정치’가 작동한 방식이다. 계급투쟁을 진압하는 중재정치의 이면에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불가능하다는 ‘이념’이 존재했음은 물론이다.

 

“대표적인 '찬물'은 '25일 투쟁' 후반기에 나온 야4당 중재안이다. 중재안의 핵심은 '점거농성을 푼 후 교섭하자'였다. 정규직화에 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이들에게 이 중재안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담긴 것이 아니었다. 투쟁을 줄곧 가로막고 심지어 "협박"까지 한 이경훈 당시 현대자동차지부장이 주장해온 방안을 국회의원들이 받아들인 것일 뿐이었다. 야4당에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도 포함돼 있었다.”

- 「자본가는 피를 빨고 진보정당은 표를 빨았다」, 프레시안 2012년 5월29일

 

셋째, 배타적 지지방침, 즉 강제 단결이다. 산별노조-단일정당 모델에 근거해 현장의 정치적 역할을 돈과 표로 한정하면, 현장은 각 당의 노선차와 정세에 대한 각 당의 입장차를 알 필요도, 자기 입장을 가질 필요도 없다. 즉, 현장의 무관심에 근거한 동원적 단결의 유도가 바로 배타적 지지방침이다. ‘아, 잘 모르겠으니까 하나로 만들어와!’, 물론 이는 가장 본능적인 정서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관한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설문조사에서 ‘단일 진보정당 건설’이 늘 압도적인 요구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운동이 현 상태를 지양하는 것이라면, 정치세력은 이런 정서를 강제 단결의 근거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정서와 싸워야 한다.

 

바로 지금, 사회주의 노동자 정치의 정립을 위하여   

 

노조 주도 의회주의 당일정당 건설론이 반복되는 이유, 또한 이와 ‘일견’ 모순적으로 보이는 야권연대와 연립정부 건설론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사회주의 정치운동과 전투적 노동운동 세력이 ‘사회주의 이념에 근거한 노동자 계급정치’의 가능성을 실천으로 증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싶다는 노동자계급의 권력의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면화하는 야권연대가 사민주의와 의회주의의 필연적 결과, 자본가계급과의 동맹을 통한 연립정부 구성을 추구하는 몰계급적 정치세력화의 필연적 결과라면, 그 해소는 사회주의 노동자계급 투쟁정당의 실물화, 혹은 그를 향한 자원과 의지가 모이고 있음을 실천으로 입증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가 전면화하는 지금, 노동자계급을 사회주의 정치투쟁 주체로 세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첫째, 민주노총을 전 계급적 투쟁기관으로 세워야 한다

 

현 국면 민주노총 주도 당 건설이 한계적이라면,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노동조합의 투쟁과 정치가 전 계급의 고통과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여전히 계급투쟁과 계급정치의 중요한 자원이라면, 또한 사회주의 계급정치의 발전이 민주노조운동의 발전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면, 사회주의 정치세력화는 노동조합을 전 계급의 투쟁기관으로 세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의 계급적 재구축은 단지 전투적 노조운동만의 과제가 아니다.

 

노동자계급은 투쟁으로 세력이 된다. 노동자계급은 정치투쟁으로 정치세력이 된다. 전체 계급을 향한 운동이 추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주요한 매개는 노동조합이다. 즉, 노동자계급을 권력의 주체로 형성하는 과정은 노동조합의 계급적 재구축과 뗄 수 없다. 사회주의 노동자 투쟁정당을 건설하고자 한다면, 계급의 일상으로 들어가야 한다.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노조운동, 여성-저임금노동자-이주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는 노조운동, 국가와 자본이 만든 기후위기에 맞서는 노조운동, 제국주의 전쟁위협에 맞서는 노조운동을 세워야 한다. 이는 계급 전체를 조직하는 과정의 일부다.

 

아래는 2023년 5월 말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2년 6월 기준 고용형태별근로실태조사다. 2022년 기준으로, 300인 이상 정규직 사업장 노동자가 100원을 받을 때, 300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 노동자는 43.7원을 받는다(시간당 임금액을 보면 평균치가 체감 격차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을 타파하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운동과 민주노조운동 모두의 과제다.

 

 

둘째, 위기와 전쟁의 시대,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자기해방이념으로서 사회주의를 세워야 한다

  

전면화하는 위기와 제국주의 열강투쟁의 시대,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져도 어색할 것 없는 정세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를 전쟁과 착취, 수탈과 억압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자기해방이념으로 세워야 한다. 특히, 격화하는 열강투쟁과 전쟁위기 속에서 사회주의를 모종의 ‘진영론’(campism)으로 여기는 경향을 청산해야 한다.   

 

지금, 운동진영 한편에는 미국 주도 세계질서 불가피론(소위 규칙기반 세계질서론)을 운위하는 진영론자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는 북중러 블록을 모종의 반제-사회주의-민주기지로 여기는 진영론자들도 있다. 기실 이들의 존재야말로 위기의 반영이라 할 것이다. 제국주의 진영 간 투쟁이 전면화하는 지금, 특정 블록의 존재와 행위를 정의로운 것, 불가피한 것으로 대중 앞에 해석하고 제시하는 것은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한낱 응원가로 만든다.

 

‘혼란보다는 미국 주도 자본주의 세계질서가 낫다’는 ‘규칙기반 세계질서론’은 사실상 한미일 지배계급의 사상을 운동진영 내에서 대리하고 있다. 이런 주장 그 어디에도 계급투쟁의 자리는 없다. 북중러 블록을 대안으로 삼는 진영도 마찬가지다. 당장 북한의 핵 보유를 평화의 수단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도착적인데, 이런 주장은 극우파 주장의 거울에 지나지 않는다. 윤석열이 ‘핵 기반 한미동맹’을 운위하고, 미국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가 새롭지도 않을 만큼 일상화하는 지금에도 한국 대중은 반제반전투쟁에, 그리고 사회주의 이념에 냉소적이다. 이런 상황은 이념에 근거한 대중적 정치투쟁의 부재를 드러내며, 또한 그 절실한 필요를 드러낸다. 오도된 진영론을 청산하고 노동자계급의 국제주의 자기해방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를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

 

셋째, ‘인민의 호민관으로서 노동자계급’, 그 오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전방위적 정치활동이 필요하다

 

당면 민주주의 혁명의 과제를 부르주아에게 내맡기지 말고, 노동자계급이 당면 민주주의 혁명을 주도하는 주체로 서야 한다고, 모든 억압에 앞장서서 맞서야 한다고,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총체적 인식은 바로 그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다고 레닌은 말했다. 그 주장처럼, 노동자계급은 모든 억압을 계급투쟁의 관점으로 해석하며 그 억압을 철폐하는 투쟁의 선두에 서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헤게모니는 바로 그 과정과 함께 형성된다. 사회주의 운동을, 그리고 노동자계급을 인민의 호민관으로 세우려는 적극적 시도가 필요하다.

 

특히 여성억압을 철폐하는 투쟁, 기후위기에 맞선 투쟁을 계급투쟁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자기 과제로 세우기 위한 과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다. 물론 이 과정은 라클라우나 무페를 비롯한 급진민주주의 좌익포퓰리즘 이론가들의 ‘등가적 연대’ 노선, 혹은 포데모스식 정치노선과 판이하게 다르다.

 

넷째, 정세에 조응하는 전 계급적 연대투쟁을 제기하며 현장분회운동을 확대하자

 

노동의 공간이 곧 투쟁의 공간이고, 정치의 공간이어야 한다. 물론, 그간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주요 노선이었던 현장분회(세포)의 경우, 단지 구획하는 것으로 분회운동이 확대는커녕 유지조차 되기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절실히 경험해왔다. 사실 이런 경험과 교훈은 역사적이기도 하다. 1925년 그람시의 진단을 보자.

 

“전전(戰前)의 러시아에서는 유럽에서의 제2인터내셔널 시기 전체를 특징지었던 거대한 노동자 조직들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당이 노동계급의 모든 결정적 이해들의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은 단지 일반적인 이론적 요구사항이 아니라 조직과 투쟁의 실제적 정언명령이었다. 공장과 가두의 세포들은 보다 나은 노동조건을 위한 노조의 투쟁에서 그리고 짜리즘의 타도를 위한 정치투쟁 모두에서 대중들을 이끌었다. 반면 서유럽에서는, 노동계급의 노조조직과 정치조직 간의 분할이 더욱 심화되었다. 노조 진영에서는 개량주의자들과 평화주의적 경향이 급속도로 힘을 얻고 있었다 ― 또는, 환언하면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부르주아의 영향력이 점차 증대하였다. … 대중기관들이 노조활동에 국한하지 말고 자본주의와 그 정치 체제에 대한 전체 투쟁의 일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추동해야 한다. 확실히 우리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은 러시아 볼셰비키가 직면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데, 왜냐하면 우리는 파시스트 국가의 반동적 세력뿐만 아니라 노조 내의 개량주의자들의 반동적 세력과도 전투를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 그람시, 당의 조직적 기반 (1925.8.15.)

 

오늘날 사회주의 정치운동이 조직하고자 하는 상당수 일터에는 이미 노동조합과 현장조직이 있다. 사업장 현안 대부분이 노동조합과 현장조직 결정에 따라 집행되는 상황에서, 정치조직 활동가는 노동조합과 현장 활동가조직에서 활동하며 해당 공간을 이끌고 조직하고자 노력한다. 노조-현장조직 외부에서 추상적 선전활동에 그치지 않고자 한다면, 활동가는 노동조합과 현장조직의 결정과 질서를 존중하며 내부에서 활동하게 된다.

 

주요 난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노동조합과 활동가조직이 제반 투쟁현안을 결정하는 상황이기에, 사회주의 정치분회가 현장투쟁을 매개로 자기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정치분회가 일상적 현장투쟁 조직기능을 포괄하고자 할 경우, 현장분회는 활동가 조직과 경합하게 되며, 이는 많은 경우 양자 모두에게 좋지 않다. 실제로 각급 활동가조직은 정파의 의도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그것이 대중을 모아 일상 투쟁을 조직하는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현장분회의 공개 정치운동은 일상적 현장투쟁보다 의식적인 싸움을 제기하는 것, 사업장을 넘어 지역과 산업, 나아가 전체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현 정세를 해설하고 정치투쟁 과제를 제시하는 것, 전 계급의 연대를 추동하는 것에 집중된다. 그렇기에 당연히도, 사회주의 현장분회의 활동은 각급 현장활동가조직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준비를 요한다. 분할된 노동자계급의 상황 상, 노동자계급의 단결·연대투쟁에 관한 주장은 ‘공자님 말씀’이라는 주변의 냉대를 견디는 강단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사회주의 정치운동의 과제는 그 ‘강단’을 집단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즉 개별 활동가의 자질이 아닌 정치조직 전체의 활동 결과로써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현장분회의 구성과 확대는 해당 현장 활동가만의 몫이 결코 아니다.   

 

당면 사회주의 현장분회 구성과 활동 확대를 촉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현 정세 그 자체다. 자본주의 위기심화 정세는 생존권 쟁취투쟁과 사회주의 정치투쟁의 간극을 상대적으로 좁히고 있다. 사회주의 정치세력의 당면 과제는, 의식적 노력으로 생존권 쟁취투쟁과 자본주의체제 자체에 맞선 투쟁을 잇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산에 대응하는 노동자투쟁 혹은 기간산업 재편에 대응하는 노동자투쟁의 경우 해당 노동자들의 정치적 준비가 곧 해당 노동자들이 생존권 투쟁에 나서기 위한 선결조건이기도 하다. 관련한 다른 예를 들자면, 통계상 파산이 증가하고 있으나 이는 모든 산업과 기업에 동일한 속도로 다가오지 않는다. 모든 위기가 그러하듯, 현 위기도 불균등한 속도로 다가온다. 중소기업부터 파산이 증가하는 상황은, 비정규직·영세사업장 노동자와 정규직·대사업장 노동자의 위기에 대한 체감 격차 심화로 이어진다. 대다수 노동자가 생존권 위기를 느낄 때에도, 대사업장 정규직노동자는 위기를 체감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 정치세력과 전투적 노동운동세력의 당면 과제는 사업장과 고용형태를 넘어선 연대의식을 확대하기 위한 부단한 사업의 제안과 그 계획의 집행이다.

 

위기가 심화하는 지금, 생존권쟁취 정치투쟁을 제기하며 현장정치활동의 공간과 조직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강령적 과제를 구체적으로 설득해 낼 조직적 실천에 착수해야 한다. 바로 이런 과정을 통해 ‘다른 노동자 정당’의 가능성은 실물화할 것이다.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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