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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혼란에 빠진 빅 테크: 자본주의의 주요 성장 엔진이 멈추다(IT 스타트업의 절반이 이용하는 은행이었던 실리콘밸리 뱅크가 지난 3월 10일 파산했다) 사진=NPR - 케이샤 테일러, 에디 맥케이브 2023년 3월 30일 1990년대 후반 닷컴 버블 붕괴 이후 최악의 위기에 직면한 IT산업은 혼란 상태다. 주가는 큰 폭으로 변동하고 이윤은 축소됐으며 수십만 명의 노동자가 해고됐다. 미국의 IT 기업들은 2022년에 해고를 649% 증가시켰으며, 전 세계적으로 161,411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2023년에는 첫 3개월 동안 155,462명이 해고되었으며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2022년 10월 일론 머스크가 440억 달러에 트위터를 인수한 후, 트위터 직원들의 상황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머스크는 자신의 터무니없는 금융 거래를 만회하기 위해 인력을 절반(3,700명)으로 감축하는 결정을 내렸고, 남은 직원들에게 '하드코어한' 업무 환경에 전념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많은 직원이 이 제안을 거부하고 자진 퇴사하여, 트위터에는 전체 인력의 30%만 남게 되었다. 다른 유명 대기업들도 비슷한 비용 절감 조치를 취하고 있다. 11월 이후 Amazon은 2만 7,000명, Meta는 2만 1,000명, Google의 모기업인 Alphabet은 1만 2,000명, Microsoft는 1만 명을 감원했다. 수천 개의 소규모 테크 기업들도 규모를 축소하고 있으며, 많은 스타트업이 파산하고 있다. 빅 테크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 전반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며, 이는 최근 일련의 은행 파산, 특히 "벤처캐피탈의 지원을 받는 IT 스타트업의 거의 절반이 이용하는 은행이 된" 실리콘밸리 은행의 파산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지는 전했다. IT 및 금융 분야의 위기는 공급망 붕괴를 비롯한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제국주의적 긴장의 심화, 기후 변화, 수년에 걸친 빈혈성 성장과 이윤율 하락 등 자본주의 경제의 여러 다른 문제로 비롯된 산물이며,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전 세계 중앙은행의 정책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IT 부문의 호황은 저금리와 이로 인해 부추겨진 투기로 인위적으로 부풀려졌다. 많은 IT 기업의 성장은 (그리고 심지어 그 존립은) 실질적인 수익성이 없는 상황에서 값싼 신용에 의존해 왔다. 이러한 신용이 없다면 이들 기업은 지위를 유지하는 게 (경우에 따라서는 그저 생존하는 것조차) 매우 힘겨울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기업들의 다운사이징은 그러한 사실이 처음으로 공공연하게 드러난 것이다. 사진=Greater Pacific Capital 빅 테크의 급부상 의심할 여지 없이 이 위기는 IT 분야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IT 산업의 시장 가치는 약 5조 2,000억 달러로 전 세계 GDP의 5%에 달한다. 2022년 시가총액 기준 세계 10대 기업 중 7곳이 IT 기업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TSMC, 메타였다. 2020년까지 매년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하급수적으로 기업가치가 상승하는 등 여러 면에서 IT 기업과 닮은 테슬라까지 포함하면 8개가 된다. (테슬라는 2020년까지 매년 적자를 기록했고, 심지어 자체 전기차를 판매하는 것보다 다른 자동차 제조업체에 탄소 배출권을 판매하여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 20년 전만 해도 이 목록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이라는 두 개의 IT 회사만 포함되어 있었다. 이 기업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들일 뿐만 아니라, 이들의 부상과 업계 전반의 성장은 극적이었다. Amazon은 1995년에, Google은 1998년에 설립되었고, Facebook은 2004년에, Uber는 2009년에, Zoom은 2011년에 설립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보라. 이제 이 회사들은 거의 독점 기업처럼 다양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또한 이 회사들에 지난 10년간 전 세계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1위까지 차지한 창립자 및 CEO가 있다는 점도 생각해보라. 이들의 개인 재산 축적은 놀랍고도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예를 들어, 2010년 마크 저커버그(메타)와 제프 베조스(아마존)의 재산은 각각 69억 달러와 126억 달러였지만, 전성기였던 2021년에는 1,400억 달러와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일론 머스크는 2012년에 억만장자가 되었고, 2021년에 그의 재산은 3,400억 달러로 평가되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이 절정에 달했던 그 말도 안 되는 정점 이후, 이들의 개인 재산은 다시 크게 감소하여 2023년 2월 머스크의 순자산은 1,870억 달러로 추정된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지구상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이다. 이러한 금액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이다. 하지만 그 급격한 변동성(2022년에 머스크가 잃은 재산은 인구가 거의 천만 명에 달하는 헝가리의 국내총생산(GDP)에 해당한다)은 그들 비즈니스의 핵심에 있는 불안정성을 반영한다. 사진=Guardian 근본적인 취약성 IT 부문은 인터넷 시대가 커뮤니케이션을 변화시킨 이래, 점점 더 일상 생활의 많은 측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최근 수십 년 동안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장 역동적인 부문이었다. 혁신과 기술 발전도 분명 그 일부이긴 하지만, IT 부문의 성장에 있어 보다 중요한 요소는 금융 투기이며, 이는 지속적인 현금 유입으로 이어져 주가를 부풀리고 실제 혁신이 보장하는 수익보다 훨씬 더 많은 투자로 이어진다. 암호화폐의 급격한 상승과 하락은 이러한 현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전반적으로 이윤율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계속 성장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분야인 IT 산업에 큰 베팅을 해왔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이 양적 완화(통화 공급 확대)와 저금리(값싼 신용 공급) 정책을 추진하면서 투자자와 기업들은 앞다투어 투자에 나섰다. 여기에는 혁신과 생산성을 뒤로 하고 그저 단기간에 부자가 되는 걸 추구하는 투자방식도 포함됐다. 예를 들어, 한때 세계 최고의 디지털 통신 회사였던 Cisco는 지난 20년 동안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말 그대로 자기 회사 주식을 사는 행위)에 같은 기간 수익의 95%에 달하는 1,523억 달러를 지출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경쟁사, 특히 R&D에 실제로 투자한 중국 5G 기업들에 비해 뒤처지게 됐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주요 기업, 특히 IT 분야의 기업들은 이와 유사한 관행에 종사하고 있다. 그 결과 장기간에 걸쳐 수익이 (심지어 매출조차) 부채를 감당하지 못해 정상적으로는 파산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고 생존하는 '좀비 기업'이 만연하게 되었다. 이러한 기업들은 저렴한 대출 공급 덕에 계속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상황을 단적으로 설명해 보자면, 1990년에는 세계 주요 경제 상장 기업 중 1.5%가 좀비 기업으로 간주되었지만, 2020년에는 그 비율이 7%로 증가했다. 현재 금리를 인상하고 있는 여러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변화를 고려할 때, 이들 기업은 분명히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으며, 현금 투입으로 크게 부양됐던 IT 부문 전체도 더 이상 값싼 현금 투입이 불가능해지며 마찬가지 위험에 처해 있다. 물론 그 영향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닥쳤을 때 상황이 얼마나 더 심각해질지는 아직 미지수이나, 상황이 더 심각해질 것임은 분명하다. 금리 인상의 동기 중 하나는 인플레이션에 맞서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원하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차단하기 위해 경기 침체를 유발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장이 아닌 노동자가 가장 큰 타격을 입는다 모든 자본주의 위기가 그러하듯,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이윤율 회복을 위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해고를 당하거나 임금 하락과 노동조건 악화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다. 이 노동자들의 노동이 없다면 현금 투입과 값싼 신용도 아무 소용이 없고 매년 수천억 달러를 벌어들일 수도 없다. 하지만 그것은 이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일이 잘못되면 이러한 기업들이 경쟁사에게 표출하던 무자비함은 기업 내부의 노동자에게 향한다. Slack의 전 최고 인사 책임자였던 나디아 롤린슨은 뉴욕 타임즈에 실린 기사에서 이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정리해고는 새로운 보스주의 시대의 일부입니다. 경영진이 그간 너무 많은 통제권을 포기했기 때문에, 직원들로부터 다시 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개념인 것이죠. 20년 동안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싸워온 최고 경영자들은 이제 수년간의 관리 방종을 조정하여 자격을 갖춘 노동자 세대를 남기기 위해 이 시기를 이용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및 디자인과 같은 IT 직종은 일반적으로 보수가 높고 인기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모든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착취를 당하고 있다. (임금이나 복리후생으로 받는 것보다 고용주에게 더 많은 가치를 가져다 준다). 이번 위기 이전에도 IT 기업 내 주요 트렌드는 직접고용된 직원을 훨씬 적은 권리와 열악한 조건을 가진 계약직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2018년부터 구글에서는 계약직 직원 수가 정규직 직원 수를 넘어섰다. 또한, 이들의 업무는 종종 매우 압박적이고 까다로우며 자신의 업무가 생각만큼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등 번아웃이나 지치는 경우에 대한 보고가 많다. IT 노동자들은 일반적으로 사회를 위해 기술을 사용하기보다는 다른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거나, 대량 감시에 가까운 데이터 수집 행위 등 광고주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광고를 노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손모빌과의 단 한 번의 계약으로 연간 34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배출하며 '탄소 네거티브' 목표를 한 번에 박살냈다.) 사진=TVC NEWS 이윤 창출을 위한 IT 활용에서 벗어나기 이러한 IT 기업들은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2018년, 수천 명의 직원들이 구글의 미군 프로젝트용 기술 개발을 공개적으로 비난하자 구글은 행동 강령에서 "악이 되지 말라"는 유명한 모토를 조용히 삭제했다. 빅 테크 기업들은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탄소 배출량 감축, 신기술 개발의 선두주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은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는 쉘, BP, 셰브론, 엑손모빌 등의 기업이 화석 연료를 더 빠르고, 더 효율적이고, 더 수익성 있게 발견하고 추출할 수 있도록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엑손모빌과의 단 한 번의 계약으로 연간 34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추가로 배출하며 '탄소 네거티브' 목표를 한 번에 박살냈다. 빅 테크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가장 은밀한 사례 중 하나는 소셜 미디어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플랫폼은 연결, 소통, 표현을 위한 거의 무한한 기회를 제공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플랫폼은 사람들이 어떤 대가를 치르든 아랑곳하지 않고 (특히 광고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발됐다. 검색, 클릭, 심지어 스크롤을 잠시 멈출 때마다 우리의 불안감을 교묘하게 악용하여 불필요한 제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타겟 광고가 쏟아진다. 이러한 앱은 광고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파민 보상 반응을 악용하여 사람들이 스크롤을 계속 내리며 가능한 한 오랫동안 광고를 보도록 설계되었다. 소셜 미디어가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정신 건강의 해악은 점점 더 분명히 규명되고 있으며, 청년들의 섭식 장애를 고의적으로 조장하는 알고리즘도 점점 더 많이 밝혀지고 있다. 마찬가지로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은 우익 및 극우 콘텐츠가 사람들에게 훨씬 더 쉽게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광고 및 모니터링 데이터로 인해 저장 및 처리 시설의 필요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개의 데이터센터가 확장되고 있으며, 각 시설에는 수천 또는 수만 대의 서버가 있어 국가 전체보다 더 많은 환경 자원을 소비하고 있다. 데이터센터는 현재 전 세계 에너지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의 거의 1%를 차지한다. 비교해 보자면 항공 산업은 배출량의 2%를 차지한다. 효율성이 크게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센터는 전 세계 전력 사용량의 약 1%를 차지하며(암호화폐 채굴은 제외), 2030년까지 아일랜드 에너지 수요의 최대 30%까지 소비할 수 있어 아일랜드 국내 에너지 공급을 위협하고 있다. (옮긴이 주: 아일랜드는 낮은 전기료, 정부의 제도적 지원, 서늘한 날씨 등으로 미국 IT 기업들이 데이터센터를 집중적으로 건설하는 지역이다.) 새로운 기술은 커뮤니케이션, 조직, 교육, 창의성 측면에서 인류에게 엄청난 잠재력을 제공하지만,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완전히 파괴적이다. IT 산업이 사적 이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공공 소유로 전환되고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충분히 고려하며 노동자와 사용자(user)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된다면 산업 전체가 변화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IT 산업은 광고, 데이터센터의 낭비, 정신 건강에 대한 파괴적인 영향, 파괴적인 화석 연료 산업과의 결탁을 제거할 수 있으며 안정된 일자리와 노동조건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끝없이 파괴당하는 지구를 구하면서 인류를 발전시키려는 목적 아래 민주적으로 관리된다면, 모두를 위한 진정한 무료 오픈소스 자원이 될 수 있다. 원문 : Big Tech in Turmoil: Capitalism’s Main Growth Engine Stuttering / International Socialist Alternative ( https://internationalsocialist.net/en/2023/03/global-economy) 역자 : 양동민2023-05-20 | 조회 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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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30%인상 연속기고] 최저임금을 둘러싼 세계적 수준의 계급투쟁“후보로 최저임금 1만원을 내세우면 당선은 확실하겠네요.”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분위기가 실제로 그랬다. 모든 정당의 후보들이 실현 시기만 차이가 있을 뿐 최저임금 1만원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5~6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2022년에 연거푸 치러진 대선과 지자체 선거에서 최저임금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정당의 후보가 시기의 차이만 있을뿐 최저임금 1만원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사진=KBS) 어쩌다가 최저임금은 찬밥 신세가 되어버린 것일까. “최저임금 오르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반짝 하고 최저임금이 잠시 오르긴 했지만, 이내 산입범위가 망가지며 오히려 임금이 깎이는 일이 벌어지고, 최저임금법이 적용되지 않는 플랫폼·특수고용을 비롯한 사각지대가 늘어나는 부작용을 겪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제도로서 갖고 있던 실효성·보편성이라는 힘이 사라지자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전세계에서 유사하게 벌어진 과정 사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에 뒤이은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의 대량 실직, 월가와 광장 점거운동을 거치며 전세계 노동계급운동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래서 2010년대에 시작된 한국의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은 미국의 15달러 운동에서 영감을 크게 받은 것이고, 독일에서 법정 최저임금제가 부활하고 영국에서 생활임금 제도라는 형식으로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는 일이 거의 동시에 벌어졌다. 처음에 자본가계급과 정부들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노동계급의 공세적 요구와 새로운 운동 조직화에 놀라 양보 조치를 통해 뒷걸음질을 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적으로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최저임금이 가진 실효성·보편성이라는 힘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산입범위가 개악된 것처럼 그리스에서는 경제위기를 틈타 25세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요구 자체는 들어주되 이를 몇 년에 걸쳐 점진적인 방식으로 실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매년 새로운 최저임금 협상이 벌어지며 운동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역동성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이원화하는 개악을 밀어붙였던 것, 최근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실상 교섭을 무력화시키는 최저임금 결정 공식을 활용하고 있는 점, 윤석열 정부가 업종별 차등적용을 밀어붙이는 것 모두가 사실 자본가계급과 자본가정부가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공격과 맞닿아 있다. 2010년대 미국의 15달러 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의 최저임금 운동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불과 5~6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사진=장그래대행진) 다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노동계급운동 2010년대 초부터 전세계로 퍼진 최저임금 대폭 인상운동은 2010년대 말쯤에 가면 자본가들의 반격에 맥을 못 추고 가라앉게 된다. 설상가상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며 최저임금운동은 세계적으로 자취를 감춘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가만히 앉아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팬데믹 과정에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처음으로 15달러 운동을 조직했던 그룹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조직한 15달러 운동이 역동적으로 뻗어갔음에도 왜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되돌아보게 된다. 첫째, 대부분의 주들에서 최저임금 15달러를 수용했으나 5~6년에 걸친 점진적 인상이라는 방식으로 역동성을 제거당하게 되었다는 점. 둘째, 지불능력 있는 원청사의 책임이 모호하다는 한계를 남겼다는 점. 그렇다면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소산별(업종) 교섭 그들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면서 새로운 운동을 조직했다. 지난 몇 년간의 지속적인 요구와 투쟁을 통해 지난해 말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 AB257이라는 법안을 통과시키게 된다. 이 법안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교섭틀을 법제화한 것으로, 총 10명의 교섭단을 구성해 교섭구조를 만들도록 규정하고 있다. 프랜차이즈(원청사)를 대표하는 2명, 프랜차이즈 점주를 대표하는 2명, 노동조합 대표 2명, 노동시민단체 대표 2명에다 캘리포니아주 정부 대표 2명으로 총 10명의 대표단이 구성되어 교섭을 진행하며 시간당 22달러로 최저임금을 높일 수 있도록 하였다. 15달러 운동이 가졌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표적인 저임금 사업장인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목표로, 프랜차이즈 원·하청 자본 모두를 교섭틀로 끌어들이며 사업장을 뛰어넘는 집단교섭을 법제화하고 여기에 주 정부까지 끌어들임으로써 실효성을 높인 것이다. 만일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강제할 수 있는 소산별(업종) 교섭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여기서 실효성 있는 임금인상을 실현해낼 수 있다면, 가장 낮은 곳의 노동자 임금인상은 전체 노동자의 자신감 회복으로 이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AB257 법안의 통과는 자본가들로 하여금 그동안 잠시 잊고 살았던 최저임금 대폭 인상운동의 공포를 다시 느끼게 만들었다. 곧바로 이 법에 반대하는 점주들이 법안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주민투표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점주들의 ‘자주적·자발적 행동’이라기보다 원청인 프랜차이즈 자본의 사주가 있었을 것이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은 그저 항의시위나 기자회견만 하고 앉아있지는 않았다. 점주들의 서명운동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해 11월 15일 하루 파업을 벌였으며, 주민투표 발의가 이뤄지던 올해 1월 27에는 1박 2일간의 파업을 조직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원·하청 자본이 수십~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으며 주민투표 발의에 열을 올려 가까스로 주민투표 발의에 필요한 서명지를 채워내고 말았다. 미국법에 따르면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11월, 이 법안의 개폐 여부를 묻는 캘리포니아 주민투표가 진행될 예정이다. 안타깝지만 그때까지 법안의 효력은 잠시 정지된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이제 다시 한 번 최저임금을 놓고 치열한 계급 간 격돌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도 그저 손놓고 기다리며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법안 발의와 투쟁, 입법 성공 이후 자본가들의 무력화 시도에 맞선 파업을 전개해온 것처럼 다시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화에 나서며 반격을 시작할 것이다.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교섭틀을 법제화하기 위한 AB257 법안 통과 운동 (사진=Fight For 15$) 뉴욕과 워싱턴에서 조직된 새로운 저항 뉴욕시에서 택시기사 생활고로 인한 자살률이 심각해지자 2000년대부터 10여년간의 조직화와 투쟁 노력이 이어지게 된다. 특히 뉴욕 택시기사노조는 우버, 리프트 등 승차공유 호출 앱 기사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며 뉴욕택시노동자연합(NYTWA)을 결성했다. 2018년 말 뉴욕시 택시-리무진 위원회(Taxi Limousine Committee, TLC)는 앱 기사들의 최저 표준 운임(minimum pay standard) 제도를 도입해 시간당 최저 표준 임금을 $17.22로 결정했는데, 이 과정이 이뤄지도록 지속적인 투쟁을 이끌어온 것이 바로 NYTWA였다. TLC의 새로운 제도 도입에 우버를 비롯한 승차공유 업체들은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지난해 말 법원에 이 제도의 시행을 중단시켜 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일시 중단 가처분을 받아내기도 한다. 이에 NYTWA는 이 법안의 애초 시행 예정일인 작년 12월 19일에 맞추어 하루 파업을 조직했으며, 항소심이 벌어지던 1월과 2월에도 법원 심리가 열리는 날마다 파업이 조직되었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TLC는 자료를 보강하여 3월에 새롭게 의결절차를 거쳤으며 3월 13일부터 위 제도가 시행되게 되었다. 3차례의 파업, 브루클린 다리 통행을 마비시켰던 대규모 차량 시위 등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이 제도 시행을 만들어낸 것이다. 워싱턴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다. 미국의 경우 각 주별로 결정되는 최저임금은 대부분의 경우 팁 받는 노동자에게 차등 적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워싱턴 DC의 경우 주 최저임금은 시간당 16.1달러인데, 팁을 받는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5.35달러로 1/3 수준에 불과하다. 자본가들과 정부의 논리는 사장이 지급하는 임금과 별도로 팁을 받으니 최저임금 수준을 낮춰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제도 자체를 갉아먹을 수밖에 없으며 각 주별로 이러한 차별을 없애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어왔다. 작년 미국 중간선거와 함께 워싱턴 DC주에서 팁 받는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폐지하는 법안 ‘Initiative 82’가 발의되어 주민투표가 이뤄진 결과, 2/3 주민의 동의를 얻어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현재 미국 50개의 주 중에서 워싱턴 DC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폐지한 8번째 주가 되었다. (오리건주, 미네소타주 등) 파업중인 NYTWA 소속 뉴욕 택시 노동자들. (사진=NYTWA 트위터 갈무리) 워싱턴 DC주에서 팁 받는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폐지하는 법안 ‘Initiative 82’ 찬성투표를 독려하는 포스터 최저임금이라는 삼손이 가진 힘의 원천 미국 노동계급운동이 보여주는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 액수만 대폭 인상하는 취지의 최저임금 운동이 맞닥뜨린 한계, 바로 거기에 한국 노동계급운동도 함께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상황 아닌가. 2010년대 전세계 노동계급운동이 자본가계급과 정부를 잠시나마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최저임금을 둘러싼 계급투쟁, 도대체 최저임금 제도의 어느 대목이 그들을 주춤거리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최저임금이라는 삼손이 가진 힘의 원천은 이 제도가 가진 보편성이다. 노동을 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성별·국적·나이·신념·고용형태나 장애 여부를 가리지 않고 차별 없이 동일하게 작동되는 제도의 성격 말이다. 자본가들과 정부는 최저임금이 가진 이 삼손의 머리칼을 잘라내야만 힘을 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을 밀어붙이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반대로 노동계급운동이 새롭게 찾은 길은 무너진 보편성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팁 받는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 플랫폼과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도 차별 없이 최저임금 법·제도가 적용되도록 만드는 것, 원청과 하청 모두를 교섭 테이블로 불러내 실효성 있는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이는 것. 2023년 한국 노동계급운동이 최저임금 투쟁에서 참조해야 할 훌륭한 참고서 아닌가. 머리칼이 잘려 힘을 잃은 삼손처럼, 최저임금 또한 차등적용, 적용제외로 힘을 잃었다. 최저임금의 힘을 되찾는 길은 무너진 보편성을 되찾는 것이다.2023-04-17 | 조회 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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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연금개악에 가장 먼저 영향받는 건 이민자들이 될 것입니다"프랑스 우파가 파리 8대학의 알제리 학생이자 '치켜든 주먹' (연속혁명의 학생사회주의조직)과 '연속혁명'의 회원인 메흐디에 대한 인종차별적 공세를 시작했습니다. 메흐디 젠다는 프랑스의 연금 개혁과 다르마닌 내무부장관의 이민법(정부가 서류 미비자를 추방할 수 있는 더 큰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고, 현재 우파는 그의 추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연금 개악과 이민법을 연결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이민자들이 될 것이고, 우리 부모님들이 될 것이고, 우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요구를 확장해야 합니다." - 메흐디 자료참조 : Instagram @Leftvoice2023-04-05 | 조회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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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노동자와 청년들이 점점 더 대담한 시위에 나선다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시위 반중 정서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그 배경에는 중국의 제국주의적 야심에 대한 정당한 반감도 뒤섞여 있을 테다. 하지만 ‘반미’라는 구호 아래 미국 노동자들의 투쟁과 사회주의자들의 활동, 미국 내 정치적 급진화 흐름을 지워서는 안 되는 것처럼, ‘반중’ 감정에 휩싸여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투쟁과 저항, 그것이 중국 사회에 변화를 일으킬 가능성에 주목하고 연대해야 할 필요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많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초의 이야기다. 2022년의 주요 시위 대출 상환 거부시위: 지난해 6월 허난성 정저우 등에서는 아파트 공사중단과 은행의 대출 상환 압박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집을 마련한 이들에게 아파트 시공이 중단됐다는 소식은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당장 머물 곳이 없어 전기도 안 들어오는 미완공 아파트에 이불만 갖고 들어가 밤을 보내는 가족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 와중에 은행은 대출금을 갚으라고 독촉했다. 시위에 참여한 수천 명이 “건설 중단에는 대출 상환 중단으로! 집을 내놓고 돈을 갚으라 하라!”고 외쳤다. 또 한 명의 탱크맨: 2022년 10월에는 중국공산당 20차 당 대회를 며칠 앞두고 수도 베이징에서 시진핑을 규탄하는 1인 시위가 있었다. 시진핑의 국가주석 3연임 결정을 앞둔 상황에서 이런 시위가, 그것도 수도에서 일어났다는 건 그 자체로 놀랄 만한 일이었다. 시위자는 고가도로 위에서 현수막을 걸고 불을 피우면서 “독재자, 반역자 시진핑을 파면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그는 금방 경찰에 연행됐지만, 시위를 벌이는 모습이 SNS를 타고 빠르게 전파됐다. 1989년 톈안먼 항쟁 당시 홀로 탱크의 진격을 가로막은 이를 떠올리게 한다며 ‘또 한 명의 탱크맨’이라는 호칭이 붙었다. 폭스콘 공장 시위: 한 달 뒤인 11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이폰 생산 공장인 정저우의 폭스콘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투쟁을 벌였다. 노동자들은 “임금을 지급하라”, “관리자 나와라” 하고 외치며 공장 집기를 부수고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했다. 이 일이 벌어지기 한 달 정도 이전에는 노동자 상당수가 공장에서 ‘탈출’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코로나19 확산을 이유로 폭압적인 봉쇄조치가 이어지면서 노동자들은 사실상 감금된 상태로 일을 했다. 음식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고, 소량 지급된 도시락을 두고 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장 안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는데도 적절한 조치 없이 계속 봉쇄하기만 해 노동자들은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일부 노동자들이 몸싸움을 벌이면서 공장 문을 뚫고 탈출했으며, 교통편도 없었던 탓에 걸어서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다. 백지 시위: 그리고 곧바로 2022년 11월 말 중국을 뒤흔든 ‘백지 시위’가 시작됐다. 우루무치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났을 때 거주자들이 빠르게 대피할 수 없었고 화재진압도 어려웠다고 한다. 건물 출입구까지 막아버리는 혹독한 봉쇄조치 때문이었다. 이 화재로 10명이 목숨을 잃자 전국 수십 개 도시와 대학에서 폭압적인 제로 코로나 정책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가 번져나갔다. 시위 참가자들은 중국 정부의 검열과 탄압에 항의하면서 백지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흰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지만, 그들이 외치고 싶은 모든 구호가 담겨 있는 것이기도 했다. 때로는 중국공산당을 규탄하며 시진핑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 투쟁이 현재의 체제를 넘어 새로운 사회를 향한 전망을 뚜렷하게 붙잡지 못한 건 사실이다. 투쟁의 수위를 과장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규모에서 1989년 톈안먼 항쟁 이후 최대 시위였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수도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중국 주요 대도시 전부가 이 시위의 무대가 됐다.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터져 나온 것 역시 그동안 보기 힘들었던 장면이다. 백지 시위는 시진핑 정권을 두려움에 휩싸이게 했으며, 중국은 이 시위 이후 급격하게 그간의 봉쇄조치를 해제하기 시작했다. 2023년에도 계속된 시위 흐름 백지 시위가 사그라든 뒤 시진핑 정권은 적극적인 집회 참가자들을 추적해 은밀하게 체포하고 있다. 지금까지 연행자가 100명 이상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2023년 들어서도 또 다른 계기를 통해 시위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충칭 지바이오 노동자투쟁: 1월에는 충칭에서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코로나19 진단키트를 만드는 제약회사 지바이오(ZYBIO) 공장이 그 현장이다. 2만여 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지바이오 사측은 올해 설을 앞두고 8,000명가량을 해고한다고 발표했다. 임금도 체불됐다. 필요할 때 불려왔다 헌신짝처럼 버려진 노동자들은 그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시위 장면은 한국에서 노동자 운동이 한창 전투적인 면모를 보였던 시절처럼 격렬했다. 노동자들은 경찰과 충돌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여러 대의 경찰 차량을 전복시켰다. 제품을 담는 플라스틱 상자, 의자, 교통통제용 시설물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내던졌으며, 진압경찰은 이리저리 밀려다녔다. 의료보조금 삭감 항의 시위: 2월이 되자 후베이성 우한에서 의료보조금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 참가자 상당수가 우한제철소 또는 다른 국유기업에서 일하다 은퇴한 고령의 노인들이어서 ‘백발시위’라는 별칭이 붙었다. 우한에서 ‘의료보험 개혁안’을 추진하면서 월급의 6%를 지급해왔던 의료보조금을 기존 대비 70%나 삭감하자 의료보험금을 돌려달라며 시위가 일어난 것이다. 2월 8일 우한 정부청사 앞에 모여 시위를 벌인 사람들이 15일까지 해결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으나, 여전히 제대로 답변이 나오지 않으면서 15일에 또다시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가 벌어졌을 때 시내 지하철 역사를 폐쇄하고, 15일에는 우한의 대학들이 봉쇄됐다는 소식도 나돌았다. 비슷한 시위가 우한뿐만 아니라 랴오닝성 다롄 등 다른 몇몇 도시에서도 벌어졌다고 한다. 최근의 여러 시위: 베이징 시진핑 규탄, 광저우 폭스콘, 우한 의료보조금 삭감 항의, 충칭 지바이오 공장(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지난해에서 올해로 이어지는 이런 연쇄적인 투쟁은 계기도 다양하고 참가자들의 면모도 다양하다. 중국 사회에 누적된 모순이 다면적으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지방정부 차원의 충돌을 넘어 베이징을 포함한 주요 대도시에서 시진핑 정권을 규탄하는 정치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고, 무엇보다 저항의 전통과 기억에서 완전히 단절된 것처럼 보였던 젊은 세대가 (특히 백지 시위에서) 투쟁의 전면에 나섰다는 점에서도 의미심장하다. 지금 보이는 흐름이 곧장 체제에 도전하는 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식으로 과장하지는 않더라도, 중국 노동자 민중의 불만이 점점 더 대담하게, 그동안 보지 못했던 양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은 아주 중요하다. 이런 분위기 변화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면서 이후 중국의 동향을 가늠해보도록 하자. 과도한 제로 코로나 정책 탓이었나? 예컨대 지난달 우한에서 의료보조금 삭감에 항의하는 시위가 터져 나오자, 언론이 주로 제시한 설명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강행하면서 막대한 방역 비용을 의료보험 기금에서 충당한 결과 재정 적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지방정부가 심각한 재정 적자를 겪고 있는 건 널리 알려졌다. 헤이룽장성 등 일부 지역은 행정조직을 축소했고, 윈난성에서는 6개월 넘게 공무원 임금을 체불했다고 한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의료보조금 삭감과 마찬가지로 주민 복지혜택이 축소되고 있다거나, 교사 임금의 3분의 1이 삭감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코로나19를 겪은 몇 년간 도시들에 대한 반복적인 봉쇄가 이뤄지면서 사실상 경제가 마비되고, 그에 따라 세금 수입은 줄어드는 반면 방대하고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코로나19 검사로 막대한 경제적 지출이 이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에서 노동자, 학생, 퇴직자 등 대중 속에서 불만이 자라나고 행동으로 표출되는 이유를 코로나19 사태의 영향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이렇게 비교해 보자. 근래 미국의 젊은 층 사이에서 사회에 대한 불만이 성장하고 정치적 급진화로 연결되며 완곡하게나마 사회주의에 대한 우호적 반응이 늘어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젊은 세대의 삶이 자기 부모의 삶보다 더 열악해질 거라는 명백한 사실이 그들의 시야를 휘감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도 기본적으로 비슷한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몇십 년간 중국이 가파르게 성장하는 동안에는 지방 관리들의 부패 같은 불만 사항이 생기더라도 중국 사회를 뒤흔들 정도의 투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중국공산당의 통치가 어쨌든 우리의 삶을 더 낫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대중의 기대감이 더 우월했기 때문이다. 10%를 넘나드는 성장률은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이런 경제 성장은 정권 안정의 물질적 기반이 됐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이 추세가 꺾였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의 파도 앞에서도 큰 틀에서는 중국 경제가 선방한 것처럼 보였지만, 2012년에 7%대로 내려앉은 성장률은 2015년에 6%대로 내려왔고, 계속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다. 지난해 성장률은 3%에 불과했다. 2021년 청년(16~24세) 실업률이 국가 통계국 공식 발표로도 19.3%에 이를 정도로 일자리 문제가 암울하다. 사회 전반의 고령화와 한국 못지않은 저출생 양상도 심각하다.(1990년, 2000년, 2010년에 한국의 출생률 추이가 1.6 → 1.7 → 1.23인데 비해 중국은 2.87 → 1.56 → 1.63으로, 이 기간에는 중국의 출생률 낙하폭이 더 크다. 2012 유엔세계인구전망 참조.)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저출생은 젊은 세대가 느끼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의 증표다. 중국의 경제위기와 재정 적자 이 불안이 어느 정도의 폭발성을 지닐 수 있을 건가와 관련해 가장 큰 관심을 끌어모으는 지점은 정부의 부채 문제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의 파장으로 중국에서도 공장이 문을 닫고 수백만 노동자가 거리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중국 지배계급은 과잉자본의 배출구를 찾기 위해 인프라 건설에 투자를 집중했다. 철도, 항만, 고속도로 등을 연결하는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도 2013년부터 공식화했다. 중국 내에서는 지방정부를 앞세워 인프라 건설 사업을 부추겼다. 이는 일정 기간 일자리를 창출하고 성장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가공할 만한 부동산 거품을 일으키고 부채를 누적시키며 위기를 초래하는 중심축이 됐다. 스페인에서 장기불황에 대처하기 위해 부동산개발에 자본을 집중한 뒤 그것이 거품을 일으키고 위기를 초래하면서 2011년 광장 점거 운동으로 나아갔던 것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현재 중국에서 부동산산업의 비중이 전체 GDP의 25%가량 된다. 2018년에 30%까지 치솟은 뒤 부동산 침체와 더불어 하락한 게 그 정도다.(‘부동산 공화국’인 한국의 경우 부동산 및 임대업, 건설업을 합한 비중이 2020년 기준 GDP의 13%가량 된다.) 그런 상황에서 2021년 중국 2위의 부동산 개발기업 헝다그룹이 364조 원의 부채를 짊어지고 채무 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364조 원은 한국 박근혜 정부 시절의 연간 정부 예산 규모와 맞먹는다(340조~380조 원). 280개 도시에서 1,300여 개의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8,400여 개의 연관 기업과 380만 개의 연관 일자리의 중심에 있는 헝다그룹이 파산하면 그 파장은 엄청날 것이다. 공사가 중단돼버린 아파트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헝다그룹만의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2022년 8월 기준으로 30개의 부동산 개발업체가 채무 불이행 상태라고 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대출 상환 거부시위에서 본 것처럼 전국 각지에서 아파트 시공 중단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전체 미완공 아파트 규모가 200만 채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덧붙여 영국의 컨설팅 기업 캐피털이코노믹스는 현재 3,000만 채의 아파트가 미분양 상태이고, 잔금 미지급 등의 이유로 비어있는 아파트가 1억 채에 이른다고 보고했다. 중국 런민대학 원테쥔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은행이) 목숨 걸고 부동산에 투자했다. 사실 부동산은 몇 년 전부터 넘쳐났다. 2018년, 2019년 계산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분양주택은 수요의 두 배에 이른다.”(KBS ‘세계는 지금’, 2022년 8월 6일) 그런데 이런 부동산 거품이 정부의 재정 적자와 어떻게 연관되는가? 중국에서는 지방정부가 토지사용권을 부동산 기업들에 판매하면서 재정을 조달했다. 이렇게 벌어들인 수입이 2021년 기준 지방재정의 40%를 차지했고, 전국 재정수입의 25%에 이르렀다.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 곧바로 재정에 타격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과정을 지방정부는 지방정부융자기구(LGFV)라는 일종의 자회사,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수행한다. 공식적인 정부 기관이 아니라 별도의 기업이다. 그러다 보니 이 기구에서 쌓이는 부채는 ‘공식적’인 정부 부채로 집계되지 않고 ‘숨겨진 부채’가 된다. 그 규모가 얼마나 될까? 지난해 《차이나 쇼크, 한국의 선택》을 출간한 한청훤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중국 지방정부와 중앙정부의 부채는 ‘공식적’으로는 51조 위안(약 9,732조 원), GDP의 45.8% 수준이어서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지방정부융자기구의 채무 총액이 2020년 말 기준 약 53조 위안(약 1경 113조 원)이어서, 이를 합하면 국가 부채 규모가 GDP의 100%를 뛰어넘는다. 여기에 더해 중국 국유기업의 부채 규모가 GDP의 140%인데, 이를 모두 합하면 중국 전체 GDP의 240%에 이른다.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후 최악의 경제 붕괴를 경험한 그리스에서도 그 시기에 정부 부채 규모는 GDP의 170~180% 수준이었다. 시진핑 정권의 발밑이 불안하다 시진핑 정권 입장에서는 이런 불안 요인을 어떻게 연착륙시킬 것인가가 관건일 테다. 상하이방과 공청단 등 권력 기구 내 경쟁 세력을 제압하고 만장일치로 국가주석 3연임에 성공하면서 절대권력을 손에 넣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시진핑 정권은 자신의 장기집권 정당성을 무슨 재주로 입증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시험대에 스스로 몸을 던진 셈이다. 정권 안정성을 흔들 수 있는 모든 요인을 제거하거나 적어도 묶어두기 위해 혈안이 될 것이다. 올해 3월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공산당에 금융공작위원회를 20년 만에 부활시켜 금융 영역 전반을 당이 직접 관장하기로 한 것, 내무공작위원회를 신설해 기존 공안부와 국가안전부가 맡은 역할을 당이 직접 관장하기로 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이런 상황이 의미하는 게 무엇일까? 좁게는 시진핑 정권이, 넓게는 중국 사회 전반이 작은 사건에도 크게 흔들릴 만큼 사회 안정성이 약해져 있다는 것이다.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화재 사망 참사가 전국을 뒤흔든 백지 시위의 방아쇠를 당긴 것처럼 말이다. 지난해와 올해 초 볼 수 있었던 중국 내의 다양한 시위 흐름은 앞으로도 다양한 계기로 재현될 수 있다. 그런 투쟁이 어디로, 얼마나 전진할 수 있을지 쉽사리 예측할 순 없다. 대규모로 퍼져나간 백지 시위에서 그만큼 더 두드러졌던 것처럼, 저항 운동 자체는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수 있지만 이 운동을 일관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 전망과 조직은 아직 준비돼 있지 않은 상태다. 노동자, 학생, 여성 등이 조직을 만들고 연대를 건설하며 투쟁에 나설 수 있는 권리가 심각하게 제약돼 왔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가 근본적으로 ‘인민의 국가’라고 믿거나 마오주의를 혁명적 전통으로 여기는 허구적인 이데올로기의 잔재도 여전히 강력해 보인다. 시진핑 정권은 관료적, 억압적 국가기구를 강화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에 대한 국가적 통제와 탄압을 더욱 촘촘하게 가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결코 시진핑 정권의 ‘자신감’의 표현이 아니다. 최근의 일련의 시위, 특히 백지 시위를 거치면서 중국 민중은 자신들이 집단으로 행동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이런 투쟁으로 정권을 움찔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지금 중국에서 가장 불안감을 느끼는 집단은 다름 아닌 시진핑 정권이다. 이런 상황이 중국에서 급진적 운동이 성장할 가능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불안한 처지의 시진핑 정권은 탈출구를 찾기 위해 위험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중국 사회 내에서 갈등이 고조될수록 그 압력을 외부로 배출하려는 시도가 강해질 것이다. 즉 지금껏 부추겨온 애국주의를 한층 더 고조시키며 모험적인 대외정책으로 나아갈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제국주의 세력이 자신의 패권을 지키며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막기 위해 중국 봉쇄정책을 강화할수록 그 위험은 더 커진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조만간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발발할 것인가를 따지는 건 이 글의 주제를 벗어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정세를 뒤흔드는 불안정성은 더욱 커져갈 거라는 점이다. 그 불안정성을 날려버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은 각 나라 노동자와 민중의 폭발적인 투쟁과 국제적인 연대에서 자라날 수 있다. 중국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투쟁에 계속 주목하고 지지를 보내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2023-03-15 | 조회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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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연금개악 반대 총파업 톺아보기사진: AFP=연합뉴스 지난 한 달 남짓, 마크롱 정권의 연금개악 추진에 반대하는 프랑스 노동자들의 총파업 시위 소식이 우리 시선을 끌었다. 무엇보다 100만을 훌쩍 넘어선 거대한 총파업이 며칠이 멀다 하고 몇 차례씩 거듭되고 있기 때문이다. 총파업과 더불어 에너지산업 노동자들의 ‘로빈 후드 작전’ 이야기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기요금 폭등으로 허덕이는 가난한 민중들에게 ‘미터기를 조작해’ 전기를 무료로 공급해 주겠다면서, 이것은 “불법이지만 도덕적인 행위”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번 연금개악의 핵심은 연금수령 개시연령을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2년 상향하는 것이다. 연금을 100% 수령하기 위한 기여 기간을 현행 42년에서 (2027년까지) 43년으로 연장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198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총파업 시위 프랑스에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연금개악이 진행돼 왔지만, 이번 연금개악은 여러 모로 2010년 연금개악과 비교된다. 이번과 비슷하게 연금수령 개시연령이 60세에서 62세로 상향됐으며, 그에 맞서 1980년대 이후 최대 규모의 총파업 시위가 전개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총파업은 이미 2010년 투쟁을 넘어서고 있다. 2010년에는 (경찰집계 참가자수가 100만을 넘어서는) 대규모 투쟁으로 불붙기까지 연금개악 쟁점화로부터 6개월여가 걸렸던 반면, 이번에는 2023년 1월 10일 연금개악안 발표 이후 불과 9일 만에 열린 첫 총파업 시위부터 대규모 투쟁의 양상을 보였다. 또한 1월 31일 2차 시위 참가자수 127만(경찰집계 기준)은 2010년 최대치였던 10월 12일 123만을 훌쩍 넘어서 버렸다. 오늘날 프랑스 노동자운동을 주도하는 철도·정유·전기·가스·교사 등 공공부문 전반은 이번 투쟁에서도 높은 참여율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침체돼 있는 민간부문에서도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확인되고 있다. 이를테면 어느 항공산업 하청업체의 경우 과거 총파업들에는 노동자 200명 가운데 5명 정도만 참여했는데, 이번에는 90명 정도가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프랑스의 이번 총파업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양상은 중소도시 노동자들의 대규모 참여다. 198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진행된 대부분의 총파업들은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이와 달리 중소도시들에서는 노동자운동과 좌파 정치가 전반적으로 허약했고 극우세력이 강력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해 나갔다. 그런데 이번 총파업에서는 중소도시들에서 전체 주민의 20~30%가 총파업 시위에 나서는 일이 프랑스 전역에서 숱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1월 19일 16만이 거주하는 그르노블에서는 3만 5천 명이 시위에 참여했고, 2월 16일 3천 명이 거주하는 무띠에에서는 1천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물론 220만 인구를 가진 파리에서 40~50만 명이 꾸준히 참가하는 등 이번에도 총파업을 주도하는 것은 대도시다.) 한편 르펜이 이끄는 극우파는 압도적인 여론 때문에 형식적으로 반대는 하고 있지만, 파업과 시위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번 투쟁은 중소도시의 노동자계급이 극우파와 관계를 단절하고 노동자운동의 한 부분으로 새롭게 정립하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 2월 16일 프랑스 남동부의 소도시 무띠에에서 벌어진 총파업 시위 총파업에 거대한 동력이 붙은 이유 현지 여론조사 결과는 전체 프랑스인들 가운데 60~65% 정도가 연금개악에 반대함을 드러낸다. 노동자들만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는 반대율이 90%까지 나온다. 그렇다면 이처럼 거대한 동력이 이번 총파업에 붙은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연금을 받기까지 “2년 더 일해야 한다”는 사실에 모두가 분노하고 있다. 노령연금은 프랑스에서 사회복지의 근간으로 간주된다. 흔히 프랑스 노동자들은 ‘5주간의 여름휴가’를 바라보며 1년을 일하고, ‘노령연금으로 뒷받침되는 안락한 노후’를 바라보며 평생을 일한다는 말이 있다. 모두 프랑스 노동자들이 숱한 혁명과 계급투쟁으로 쟁취한 성과들이다. (연금이 너무 허술해서 ‘정년연장’을 요구하는 한국 노동자들의 현실이 참 씁쓸하다.) 연금개악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가 아래로부터 뜨겁게 밀려 올라오자 전국단위 8개 노총 모두가 2010년 투쟁 이후 처음으로 총파업 공동행보에 나섰다. 그동안 여러 차례 친정부 입장을 취해 왔던 민주노동연맹(CFDT)조차 “지난 30년 동안 최악의 연금개악”이라는 일성과 함께 ‘노총연대’에 동참했다. 2020~21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사회를 움직이는 필수요소로서 노동의 의미가 재평가되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의 자부심이 전반적으로 상승한 점, 2022년 인플레이션에 맞서 광범한 임금투쟁이 펼쳐지면서 수많은 젊은 노동자가 생애 첫 파업을 경험한 점도 중요한 배경으로 꼽힌다. ‘이대로 가면 연금에 큰 적자가 난다’는 것이 연금개악을 추진하는 마크롱 정권의 명분이지만, 팬데믹 기간 자본가들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어 놓고서 연금적자는 노동자들에게 다 전가하려 하는 정부의 이중성도 분노에 불을 지폈다. 연금개악에 대한 분노가 물가상승에 따른 실질임금 저하, 에너지 부족, 공공서비스 불만족 같은 프랑스 노동자들이 느끼는 온갖 사회적 고통이나 불만들과 버무려진 것도 큰 요인이다. 그래서 실제 총파업 시위에서는 연금개악 문제를 넘어서서 훨씬 광범한 분노들이 표출된다. 연금수령 개시연령 상향으로 특히 더 큰 타격을 입게 될 블루칼라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더욱 거대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제조업·택배·청소·의료 등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기존에도 기대수명이 더 짧았고 그래서 연금수령 기간도 더 짧았던 터인데, 이제 2년을 더 일하라 하니 “죽을 때까지 일하라는 얘기냐”며 거친 분노를 쏟아내는 것이다. 야간 노동, 중량물 운반, 독극물 노출 등 고강도 착취에 대한 강력한 분노도 역시 표출되고 있다. 시위에는 연금을 이미 수령중인 은퇴자들과 더불어 나이 어린 대학생과 고등학생들도 대규모로 참여하고 있다. 연금개악 법안의 처리 전망 2010년에 연금개악을 밀어붙였던 사르코지 정권과 달리 지금 마크롱 정권은 (제1세력이긴 하지만) 의회 과반수를 갖고 있지 못하다. 제2세력인 좌파 ‘생태사회신인민연합’(NUPES)과 제3세력인 극우파 ‘국민결집’(RN)은 연금개악에 반대한다. 제4세력인 우파 ‘공화주의자’(LR)는 연금개악에 긍정적인데, 만일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제1세력인 마크롱 정권의 ‘함께’(Ensemble)와 합쳐 과반수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공화주의자’는 연금개악 표결에 찬성했을 때 감당해야 할 정치적 부담 때문에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마크롱 정권이 ‘공화주의자’를 설득하지 못한다고 해서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이 정부에게 비상입법권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헌법 제49조 3항에 따르면 정부는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그로부터 24시간 이내에 불신임 당하지 않으면) 의회 표결을 생략한 채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종종 이 방법이 사용돼 왔다. 이를테면 2016년 사회당 정권이 노동법 개악안을 강행할 때 이 방법이 사용됐다. 하지만 이후 사회당의 지지기반이 충격적으로 붕괴한 것처럼, 위험부담이 많은 방법이기도 하다. 마크롱은 어떤 식으로든 이번만큼은 반드시 연금개악을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공공연히 표명하고 있다. 지난 2019년 첫 번째 임기 때 연금개악을 일차 추진했으나 강력한 총파업으로 고전하다가 코로나를 핑계로 물러선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재선에 성공할 때도, 연금개악은 마크롱의 주요 선거공약 가운데 하나였다. ‘앞선 정권들이 노조의 반대 때문에 연금을 제대로 손보지 못하면서 프랑스가 경제적으로 뒤처지게 됐다’는 것이 마크롱이 줄기차게 떠들어온 논지다. 마크롱은 그래서 이번에는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고, 실제로 이번에도 물러섰다가는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 하원에서 2월 6일부터 18일까지 토론을 벌인 데 이어, 3월 2일부터는 상원 토론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다. 3월 하순경이면 표결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데, ‘공화주의자’의 태도에 따라 비상입법권의 발동 여부가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승리를 향한 전망과 과제 프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 <연속혁명>의 후안 칭고는 “198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전개된 어떤 운동도 이렇게 강력하게 출발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승리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2010년 연금개악 반대 투쟁 때도 열두 번의 강력한 총파업 시위를 펼쳤지만, 의회에서 개악안이 통과됐을 때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지 못했고 결국 패배했다. 지금 전개되는 운동의 약점과 한계도 분명하다. 전국단위 8개 노총 모두의 연대가 실현되면서 대규모 시위가 가능해지긴 했지만, 그 대신 언제라도 정부와 타협하며 뛰쳐나갈 수 있는 민주노동연맹(CFDT)이 노총연대 속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모순적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CFDT의 깃발과 조끼는 거리 시위대 속에서도 3분의 1 가까운 규모를 차지하는데, 공공연히 계급협조주의를 표방하는 CFDT는 이번 투쟁에서도 의회 협상에 압력을 가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노총연대가 주도하는 총파업 시위들은 대규모이긴 하되 과격하지는 않게 노동자들의 불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금 상황은 마크롱 정권의 첫 번째 임기 때 펼쳐졌던 상황들과 대비된다. 프랑스 노동자들은 2016년 사회당 정권의 노동법 개악에 맞선 투쟁 이후 마크롱 정권의 첫 번째 임기를 관통하며 상당히 격렬한 계급투쟁을 전개했다. 2017~18년 철도노조 파업, 2018~19년 노란조끼 운동, 2019~20년 공공부문 중심의 연금개악 반대 파업 등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는데, 이 투쟁들은 이번 투쟁보다 규모는 더 작았지만 훨씬 격렬하고 급진적인 양상을 보였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노조관료들의 통제를 상당 수준 극복하면서 아래로부터 주도성과 역동성을 발전시키는 과정이기도 했다. 결국 이번 투쟁의 전망은 노총연대가 주도하는 하루짜리 총파업 시위를 넘어서서 아래로부터 강력한 역동성을 바탕으로 최대한 많은 노동자들이 무기한 총파업으로 전진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의회 내 협상이 어떻게 전개되는가에 상관없이, 또한 비상입법권이 발동되는가에 상관없이, 오로지 생산과 사회를 마비시키는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투쟁을 강력하게 조직할 때만 ‘연금개악 완전 철회’라는 노동자들의 의지를 관철시킬 길이 열릴 것이다. 이와 관련해 2019년 투쟁의 경험은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2019년 공공부문 중심의 연금개악 반대 파업이 펼쳐졌을 때 파리교통공단(RATP) 노동자들은 노조관료들의 소극성을 뛰어넘어 아래로부터 강력하게 무기한 총파업을 요구하고 스스로 조직해 나갔다. 이 흐름은 국영철도로도 확산됐고 50년 만에 최장기 파업 기록을 세우며 두 달 가까이 이어진 끝에, 결국 마크롱 정권이 뒤로 물러서도록 강제할 수 있었다. 이번 투쟁이 갖고 있는 거대한 규모는 무기한 총파업 운동이 2019년보다 훨씬 멀리 뻗어나갈 가능성 또한 보여준다. 2019년의 무기한 총파업 운동은 격렬하긴 했지만 운수부문에 한정됐다. 다른 조직노동자들은 일부가 며칠짜리 파업 정도에 머물렀고, 대다수 미조직 불안정노동자들에게는 전혀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투쟁에서는 훨씬 다양한 노동자들이 거대한 규모로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큰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이와 관련, <연속혁명>의 후안 칭고는 1995년 연금개악 반대파업 때의 (개악안을 철회시켜 냈던) 성공적인 경험을 잘 살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당시 총파업에서 파업에 나선 조합원들은 지인들의 작업장을 직접 찾아가 총파업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전술로 파업을 확산시켜 나갔다. 이 전술은 무작위 대중에게 리플렛을 배포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고 하는데, 특히 5인 이상이 집단적으로 방문했을 때 종종 직접적인 결과를 끌어낼 정도로 더욱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또한 사업장마다 현장 노동자들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 총회를 기반으로 작동하면서 파업에 활력이 넘쳤다고 한다.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이 더 강력한 행동을 요구하는 상황에 떠밀리면서, 노총연대 지도부는 ‘정부와 의회가 응답하지 않는다면 3월 7일에는 프랑스 전체를 마비시키겠다’고 2월 11일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무기한 총파업이 아니라 하루 총파업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 2월 7일 노동총동맹(CGT)에 속한 전기·정유·철도·항만 노동자들은 노총연대가 주도하는 하루 총파업 시위를 넘어서서 (무기한 총파업을 준비하는 성격으로) 48시간 파업을 전개했다. 파리교통공단의 노조합동위원회와 CGT 철도지부는 3월 7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유 노동자들도 비슷한 계획을 논의 중이다. 이처럼 아래로부터 주도성을 갖고 무기한 총파업을 역동적으로 건설해 나갈 때 이번 투쟁을 승리로 이끌 길이 열릴 것이다. 나아가 노동자계급의 모든 부문 속으로 다가가며 무기한 총파업을 널리 확산시킬 때 단지 연금개악 철회를 넘어서서 다양한 공세적 요구를 관철시킬 길이 열릴 것이다. 이와 관련해 <연속혁명>을 비롯한 프랑스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60세부터 (중노동 부문은 55세부터) 모든 노동자들에게 풍족한 연금 지급 △물가인상에 맞선 대규모 임금인상과 물가임금연동제 실시 △열악한 노동조건을 해결하기 위한 노동자의 생산통제 △불안정노동 철폐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 △교육·의료·주거 환경 개선 △반이민법 폐지 등의 요구를 이번 투쟁 속에서 함께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만일 이번 투쟁에서 프랑스 노동자들이 마크롱을 패퇴시킬 수 있다면, 세계 곳곳 노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으로 다시 한 번 ‘위기와 전쟁의 시대’가 시작된 상황에서, 세계 노동자계급 또한 ‘혁명의 시대’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노동자계급의 역사적인 투쟁을 기대하며 우리 모두 응원의 마음을 함께 보내보자.2023-02-23 | 조회 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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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개혁은 스페인처럼?지난 한 해 동안 스페인에서 추진되고 있는 성평등 개혁 뉴스가 종종 전해졌다. 그중 몇 가지를 살펴보면: • 성 및 생식 건강과 자발적 임신 중지에 관한 법률: 정부 개정안이 2022년 5월 스페인 국무회의에서 승인됐다. 16~17세 여성과 장애가 있는 여성이 법적 보호자의 동의 없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지할 수 있는 권리, 거주지에서 가장 가까운 공공병원에서 시술 지원, 숙려 기간 조항 삭제, 사후 피임약 무료 공급 등 광범한 내용이 포함됐다. • 성전환자 성별 정정 간소화 법안: 16세 이상이면 의학적 소견이 없어도 성별을 바꿀 수 있는 법적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으로, 12월 22일 하원을 통과했다. 이 법안이 상원까지 통과하면 성 소수자 정체성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전환 치료’가 금지되고, 성 소수자를 겨냥한 공격도 처벌 가능하다고 한다. • 생리휴가 법제화: 한국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월 1회 무급 보건휴가가 가능한데, 스페인에서는 월 최대 3일(애초 제안은 5일)의 유급휴가로 추진하고 있다. 12월 15일 하원을 통과했다. • 페미니스트 내각: 2020년 초 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가 함께 구성한 연립정부 내각에서 22명의 장관 중 11명이 여성이다. 2018년 사회노동당 정부의 내각은 17명 중 11명이 여성이었다. 평등부 장관은 “스페인의 모든 새로운 법안과 정부 지출안은 페미니즘적이어야 한다”고 선포했다. ‘개혁’ 세력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구조적 성차별이라는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윤석열 정부의 행태와 비교해 보면 천지 차이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역사가 오래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고, 포데모스는 2011년 경제위기와 긴축정책에 항의하며 광장점거 운동이 분출한 이후 2014년에 결성된 느슨한 범좌파 경향의 개량정당이다. 이들이 연립정부를 구성해 추진하는 성평등 조치를 보면서 한편에서는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역시 이런 ‘개혁 세력’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성급하게 그런 결론을 내리기 전에 살펴봐야 할 점들이 있다. 개혁적인 것처럼 보이는 스페인 정부의 조치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우선 페드로 산체스 총리 스스로 솔직하게 고백한 비밀이 있다. 2018년 6월 6일자 <가디언 The Guardian> 보도에 따르면, 산체스 총리는 성평등 문제에 관한 한 스페인의 역사는 2018년 여성 파업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며, “새 정부는 그 운동을 충실하게 반영한다”고 말했다. 2018년 스페인 여성 파업의 한 장면 스페인 여성 파업에서 노조들은 3.8 여성의 날에 2시간 파업, 24시간 파업, 대규모 집회와 행진 등의 방식으로 투쟁을 조직했고, 그 결과는 2018년과 2019년에 각각 530만 명과 600만 명의 참가자 규모를 기록했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박근혜 퇴진 촛불시위 당시 최대 인원이 230만 명이었다고 한다). 학교, 병원, 버스, 철도, 공항, 공장, 언론사, 콜센터 등 다양한 산업에서 노동자들이 파업에 동참했다. 성별 임금 격차를 비롯한 직장에서의 성차별, 가정과 거리에서의 성폭력을 규탄한 이 파업은 “우리가 멈추면 세계가 멈춘다”는 대표 구호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증명해 보였다. 정부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이 거대한 대중적 열망에 응답하는 모양새를 취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집권 사회노동당의 처지가 곤란했다. 대중을 들썩거리게 만든 근본적인 경제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기존의 우익정당들에 더해 복스(VOX) 같은 신생 극우 정당이 포데모스를 제치고 제3당으로 떠오를 만큼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를 보였다. 반면 사회노동당은 포데모스와 손을 잡아야 가까스로 정부를 구성할 수 있을 만큼 취약한 상태였다. 요컨대 개혁적인 성향의 조치를 대거 풀어놓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 기반을 보충하려는 것이다. 기만과 그 결과 ‘그래도 어쨌든 이와 같은 성평등 개혁 조치는 환영할 만한 것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저런 조치 자체가 끈질기게 이어진 대중 투쟁의 성과인 만큼 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되, 현 정부를 절대 신뢰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 연립정부를 신뢰할 수 없는 것은, ‘페미니스트 정부’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여성들의 투쟁이 다시 터져 나오는 것을 결단코 억누르려는 그들의 기만적인 태도 때문이다. 2021년 3.8 여성의 날을 앞두고 정부는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했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위험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다음 날 진보 성향의 스페인 매체 <엘파이스 EL PAÍS>에는 현 정부의 기만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실렸다. “[수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시장과 다수의 관중이 몰린 축구 경기장, 지하철 인파는 내버려 둔 채 오직 여성 집회만 통제했다”는 얘기다. ‘노동 존중 정부’를 자처했던 문재인 정부가 코로나를 핑계로 ‘핀셋 방역’ 운운하며 노동자 투쟁만 핀셋처럼 콕 집어 억압했던 것을 빼닮았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스페인 사회노동당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긴축정책을 밀어붙이며 여성과 청년, 노동자에게 고통을 전가했던, 그래서 2011년 ‘분노한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광장점거 운동이 터져 나오게 만든 바로 그 세력이라는 점이다. 스페인 사회노동당의 정치는 다른 세상을 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또 하나의 절충적 방식을 지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절충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자본주의가 극심한 위기에 직면하면 결국 자본가들의 이윤 보호를 1순위에 놓고 노동자, 민중에게 손실을 전가하게 된다. 지금 사회노동당 정부가 보이는 ‘개혁적’인 겉모습은 2018년과 2019년 스페인을 뒤흔든 대규모 여성 파업의 위력에 압박을 느낀 결과일 뿐이다. 여성 장관의 숫자가 늘어나면 자본주의 국가권력의 성격이 달라질까? 이런 성격의 정권이 어떤 말로를 걷게 되는가는 그리스에서 시리자가 먼저 보여줬다. 절망적인 경제위기와 폭발적인 총파업 운동의 분출에 뒤이어 긴축정책 폐기를 내걸고 2015년에 집권한 시리자는 그 이름(‘급진좌파연합’이라는 뜻)과는 달리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지 못하는 어중간한 정치 전망에 머물렀고, 대중 투쟁의 압력이 가라앉은 상황에서 스스로 긴축정책을 집행하는 자본주의 위기관리 대리인으로 우경화하더니 결국 2019년 기존 지배 세력인 신민주당에 도로 정권을 내줬다. 이런 결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중 투쟁의 압력을 끌어올리는 것, 즉 계급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정부를 자처하면서 여성 집회를 봉쇄하는 스페인 사회노동당에 이를 기대할 순 없다. 광장점거 운동의 기세를 이어받아 탄생한 포데모스는 조금 다를까? 애초에 포데모스는 사회노동당 같은 특권 집단과는 손을 잡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극우를 저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안정적인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라며 대중 투쟁의 힘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정도로 우경화했다. 그들의 시야가 선거 정치에 완전히 함몰됐기 때문이다. 기만과 자기기만에서 벗어나야 그렇다면 2018~2019년 여성 파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온 페미니즘 운동은 어떤 상황일까? 당시 여성 파업을 조직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스페인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호세피나 마르티네스는 이렇게 증언한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과 페미니즘 운동 같은 최근의 가장 중요한 사회 운동은 우익에 맞서 ‘차악’을 지지하자는 생각 때문에 활력을 잃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스페인에서 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의 연립정부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대거 옮겨갔다.” 이 대목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스페인의 거대한 여성 파업 운동이 사그라든 데에는 코로나 사태가 조성한 압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투쟁이 활력을 잃은 본질적인 원인은 ‘지금은 사회노동당과 포데모스 연립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타협적인 전망에서 찾아야 한다. 여전히 다수 여성이 더 높은 실업률과 임금 차별, 가사노동의 부담과 여성 살해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더 큰 투쟁을 조직해야 할 이유가 넘쳐나는데도 페미니즘 운동의 주류가 그런 타협적인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고, 일부는 정부와 직접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대중 투쟁의 고삐를 놓아버리는 방식은 결국 극우세력이 더 기세등등하게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준다. 스페인은 위력적인 여성 파업을 일으킴으로써 여성 억압, 성차별에 맞선 투쟁이 어떻게 펼쳐져야 하는지 보여준 중요한 사례다. 또한 그런 투쟁이 활력을 잃지 않으려면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지금 한국에서 여성운동의 주류가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에 맞서면서 민주당을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면 이 점은 특히 중요하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혁명적 페미니즘의 힘은, 개혁 간판을 걸고 노동자 민중을 농락하는 민주당 같은 자들과의 제휴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물결 속에서만 살아날 수 있다.2023-01-20 | 조회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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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5부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가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거듭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도 체제 전반의 이윤율은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계화는 점점 후퇴하며, 금융화는 더욱 거대한 금융위기를 향해 치달으면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가 근근이 이어져 왔다. 그런데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강력한 충격을 안기며 이 시대를 끝장내고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무엇보다 이전 시대 동안 축적된 모순들이 폭발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격렬하게 분출할 시대다. 또한 마찬가지로 이전 시대 동안 축적된 모순들로부터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충돌과 전쟁이 일상화할 시대다. 나아가 경제위기와 전쟁이 서로 맞물리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과 인류를 끝없는 고통 속으로 몰고 들어갈 시대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계급투쟁이 부활하고 전진할 것이며 나아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노동자혁명의 전망이 다시 한번 미래의 막연한 전망이 아니라 눈앞의 구체적인 과제이자 가능성으로 떠오르게 될 시대다. 1) 패권대결과 보호주의가 만들어 낼 새로운 세계질서 새로운 시대의 전환점이 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배경 위에서 시작됐고, 또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을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난 30년 동안 국가들 간의 세력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1~2020년 세계 총GDP에서 국가별 비중의 변화를 살펴보면, 흔히 짐작하는 바와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중국의 눈부신 상승이고, 일본의 급격한 하락이다. 또한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의 전반적인 하락을 볼 수 있다. 미국은 상승하다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크게 하락한 뒤 다시 회복하고 있다. 인도·브라질·러시아의 추세적 상승도 확인할 수 있다. 1991~2020년 세계 총 수출에서 국가별 비중의 변화를 보면, 역시 중국의 눈부신 성장이 가장 눈에 띈다. 미국·독일·일본·영국·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캐나다·스페인 등 기존 선진국들은 공히 추세적으로 하락해 왔다. 한국·싱가포르·인도·멕시코·러시아·브라질·사우디·튀르키예 등 신흥국들은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한 성장 추세를 보여준다. 1991~2020년 세계 총 해외직접투자(자본수출)에서 국가별 비중의 변화를 보면, 중국·일본·독일·캐나다·한국·러시아의 성장과 미국·프랑스·영국·스위스의 하락이 교차함을 볼 수 있다. 브라질·사우디·인도·튀르키예는 계속해서 미미한 수준이다. 여기서는 수출에 비해 특정 국가로의 쏠림이 더 큰 것과 기존 선진국들과 신흥국들 안에서도 흐름이 서로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1991~2020년 세계 총 군비지출에서 국가별 비중의 변화를 보면,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상황을 볼 수 있다. 미국의 하락과 중국의 상승이 교차했지만, 여전히 그 격차가 매우 크다. 또한 경제력 지표에서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사우디·인도·러시아가 꾸준한 성장 끝에 3~5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영국·프랑스·일본·독일·이탈리아·스페인은 꾸준한 하락을 보여준다. 한국·호주·브라질·캐나다·이스라엘·튀르키예·이란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 왔다. 2016~2020년 세계 주요 분야에서 국가별 비중 비교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종합한 국가 간 세력관계가 지난 30년의 변화를 거쳐 오늘날 어느 지점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경제력에 비해 군사력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중국은 경제력에서 미국을 상당히 추격했고 심지어 수출과 해외직접투자에서는 추월하기까지 했지만, 군사력에서는 미국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미국과 중국이 보여주는 차이는 미국의 군비지출이 GDP 대비 3.4%인 반면, 중국은 1.7%에 불과한 것으로도 나타난다. 또 하나 두드러지는 지점은 인도·러시아·사우디가 경제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핵무력은 미국과 쌍벽을 이루지만, 종합적인 군사력을 보여주는 데는 군비지출이 더 적절한 지표일 것이다.) 그러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 국가는 GDP 대비 각각 2.5%, 4.3%, 9.3%에 이르는 군비지출을 했다. 중국이 아직까지 경제성장에 집중하면서 군비지출 비중이 1.7%에 머물러 있고, 상시적인 전쟁위기 아래 놓여 있는 한국의 군비지출 비중도 2.6%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또는 매우 높은 수치들이 아닐 수 없다. 튀르키예는 경제력도 군사력도 강하지 않지만, GDP 대비 군비지출이 2.4%라는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영국·프랑스·독일·일본·이탈리아·캐나다·스페인 등 미국을 제외한 기존 선진국들은 경제력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프랑스가 나토가 요구하는 GDP 대비 2.0% 내외의 군비지출을 하면서 경제력과 엇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한 반면, 나머지 국가들은 1.0~1.4%의 군비지출을 하면서 경제력보다 꽤 낮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최근의 국가 간 세력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중국의 급격한 추격과 미국의 견제로 미·중 패권대결이 본격화했지만 아직 군사력에서는 중국이 한참 밀린다.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미·중 패권대결은 국가 간 세력관계가 급격히 변화할 가능성을 제공하는데,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급격히 군사력을 증강해 온 인도·러시아·사우디가 중국의 현저한 군사력 열세라는 빈 공간을 파고들며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배경과 이후 전개되는 사태들을 상당히 설명해 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나토의 동진에 대한 반발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역으로 나토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장악한다면 영향력 강화의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주도 아래 중국을 포위하는 쿼드에 참여해 온 인도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불참하고 오히려 에너지 수입을 늘리면서 사실상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굳건한 동맹이었던 사우디는 바이든의 요청을 거절하며 원유가격 유지를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더니, 미래도시 건설에 미국의 제재대상 화웨이의 참여를 허용하며 중국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큰 틀에서 보자면,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관철돼 온 세계질서가 미·중 패권대결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경제력에 비해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러시아·인도·사우디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할 기회를 붙잡기 위해 세계질서를 더욱 뒤흔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기존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이 나토를 이끌며 우크라이나의 대리전을 적극 지원하면서 반격해 온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러시아 등의 세계질서 재편 시도에 크게 자극받은 서방의 열강들이 적극적인 재무장에 나서게 만든 과정이기도 하며, 특히 일본과 독일은 공히 GDP 대비 2% 수준으로 군비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세 국가에게 신중하지만 분명하게 화답하고 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러시아에 대한 직접 지지는 삼가면서도 제재에 불참하고 에너지 수입을 확대하면서 러시아를 사실상 지원하고 있다. 인도와는 ‘한 세기 동안 볼 수 없었던 중대한 변화’를 놓치지 말자며 국경분쟁의 조속한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에게는 다량의 원유·가스를 안정적으로 수입하는 대신 위안화로 결제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달러의 기축통화 유지에서 중요한 한 축인) ‘원유대금 달러화 유일결제’ 시스템에 균열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후 세계질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을 중심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진영과 중국이 주도하는 진영 사이의 대립구도로 재편될 것인가?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은 이제 그 승부가 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겠지만, 다른 주요 열강들까지 그 패권대결의 하위 파트너가 되어 진영 간 대결구도로 포괄될 것이냐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일차적으로 러시아·인도·사우디가 중국의 하위 파트너가 되거나 확고한 동맹이 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세 나라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미·중 패권대결로 열린 공간을 활용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있을 뿐이다. 지금은 필요에 따라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 나가고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또 다른 필요에 따라 다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또한 아직 중국은 세 나라를 휘하에 묶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 더 중요한 이유는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진영 내부의 모순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동맹복원’을 외쳤던 바이든의 정책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공동 대응을 통해 나토의 단결을 회복하면서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10년 동안 중국투자를 포기해야 보조금을 주겠다는) ‘반도체지원법’과 (전기차와 배터리의 생산시설을 북미지역으로 이전해야만 보조금을 주겠다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제정을 통해 트럼프 이상의 ‘미국 우선주의’를 실행했다. 심지어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러시아를 대신해 유럽에 가스를 수출하면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데도 바이든 행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동맹국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미국의 행보에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당연히 크게 반발하면서, 반도체법·탄소국경세·핵심원자재법 등의 맞불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보호주의가 강력한 대세로 자리를 굳힌 미국 내 정치상황과 점점 더 악화될 전반적인 경제상황은 앞으로도 미국이 당파를 초월해서 보호주의를 강화할 것임을 말해준다. 그렇게 되면, 유럽 국가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진영은 심각한 균열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미국은 (특히 미·중 패권대결이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정리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더 이상 유럽의 열강들을 휘하에 묶어 둘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 세계질서는 한편으로 미국과 중국이 패권대결을 펼치지만 이와 별개로 여러 열강들이 보호주의에 입각해 독자노선을 추구하면서 다극 대립구도가 병행하는 양상으로 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러시아·인도·사우디는 이미 세계질서 재편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행위자로 나서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나 독일 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 보호주의가 맹렬히 확산하거나 극우 세력이 집권한다면, 주변 지역을 이끄는 맹주로 스스로를 재정립하면서 미국 패권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아직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하지 않지만 지역의 맹주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 튀르키예도 복병이 될 수 있다. (반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지리정치적 조건 때문에 미·중 패권대결의 영향이 강력하게 미치면서 모든 나라가 그 구도 아래로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에 덧붙여 여러 열강들이 보호주의에 입각해 각자 영향력 강화를 추구하는 다극 대결구도는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를 가능케 했던 미국 유일 패권의 ‘단일한 세계질서’와는 상당히 다른 질서가 될 것이다. (만일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을 중심으로 각국이 결집하는 진영 간 대결구도로 재편된다 하더라도 역시 상당히 다른 질서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과 다양한 수준의 전쟁이 일상이 되고 나아가 점점 더 격화되는 격동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하이퍼인플레이션·금융대공황과 대규모 전쟁 만일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때, 각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 투입과 중앙은행들의 제로금리·양적완화 정책이 시행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 결과는 거의 분명하다. 세계 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에 뒤지지 않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파산과 실업으로 가득 찬 폭발적인 대공황으로 진입했을 것이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발발 이후 1년 동안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발발 이후 1년 동안,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치는 각각 –0.3%와 1.2%를 기록했다. 만일 이 수치가 7% 이상 또는 심지어 10%를 넘나드는 수준이었다면, 그래도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제로금리·양적완화 정책이 가능했을까? 또는 우리가 경험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간단치 않은 질문이다. 어쨌든 그런 상황이라면,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제로금리·양적완화 정책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칫하면 인플레이션에 불을 지를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대공황으로 빨려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그러므로 아마 인플레이션에 불을 지르지는 않되 대공황은 차단해 낼 수 있는 어떤 기묘한 균형점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만일 그와 같은 상황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되풀이된다면, 그것도 점점 더 악화된 형태로 되풀이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두 번은 그 기묘한 균형점을 요행히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가능할까? 불가능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이퍼인플레이션? 금융대공황? 아니면 둘 다? 문제는 바로 그런 상황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그 가능성은 두 가지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첫째,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미 전 세계 주식·부동산 시장에 사상 초유의 거품이 조성돼 있어서 언제든 거대한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데, 그럼에도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막대한 금융수탈을 끝없이 추구할 수밖에 없어서 계속해서 더욱 거대한 거품을 조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 세계화를 대신해서 패권대결과 보호주의가 지배하게 될 새로운 세계질서는 인플레이션의 파고가 거듭해서 세계를 강타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세계질서 아래서 패권대결과 보호주의 때문에 훨씬 더 자주 발생하게 될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은 꼭 전쟁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세계적인 공급망을 거듭거듭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나아가 공급망 자체가 경제 논리보다 패권대결·보호주의 논리에 의해 재편되도록 강제할 것이며, 이는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추가 비용과 비효율성을 뜻하게 될 것이다. 패권대결과 보호주의를 세계화보다 앞세우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논리는 사실 이미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상당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면서도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고율관세를 끝내 철회하지 않았다. 패권대결 일환으로 첨단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 하며, 보호주의를 앞세워 미국에서 생산하는 기업들에만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려 한다. ‘가장 저렴한 곳에서 생산’한다는 세계화의 논리는 바로 그 세계화를 힘으로 관철하던 미국에 의해 적극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가장 저렴한 곳에서 생산함으로써 가능했던 장기적인 저물가를 대신해서 이제 ‘인플레이션과 함께 사는 시대’가 장기적인 경향으로 펼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2년, 미국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빠르게 금리를 인상했다. 미국 연준의 경우 2022년 3월부터 12월까지 7차례에 걸쳐 4.25%포인트의 금리를 인상했다. 그 결과 6월 9.1%로 정점을 찍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2월 7.1%까지 점진적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물가는 아직도 높고 연준은 2023년에도 1%포인트 가량의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이번 인플레이션의 파고는 일단 잡혀갈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 금리인상이 부채부담 증가, 기업신용 경색, 가계소비 위축, 주식·부동산 가격 하락의 고리를 거쳐 초래할 경제침체의 파고를 겪어야 한다. 다가오는 경제침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미국 연준이 2004~06년 금리를 4.25%포인트 인상하고 2년 뒤에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더 짧은 시기 동안 더 높은 금리를 올리게 될 이번 금리인상의 파고는 결코 작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 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22년 3분기에 162.1%를 기록함으로써 정점을 찍은 2021년 4분기 211.4%로부터 이미 49.3%포인트나 하락했다. (닷컴붕괴 때는 12분기 동안 69.8%포인트, 금융위기 때는 7분기 동안 68.1%포인트 하락했다.) 주식 못지않게 거대한 거품을 조성했던 미국 부동산시장은 2022년 5월 정점을 찍은 뒤 아직은 소폭 하락한 상태인데, 향후 그 하락 폭과 속도가 어떻게 되는가 또한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편 IMF에 따르면 가계·기업·국가를 망라하는 세계의 총부채가 2007년 195%에서 2020년 256%로 상승했는데, 이렇게 부채가 늘어난 만큼 금리인상에 따른 부담과 파장도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은 다가오는 경제침체를 악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에는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잘 준비돼 있는 측면도 있다. 이를테면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거의 모든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로 묶어놓았는데, 이것은 금리인상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는 데 (적어도 미국 안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미국 금리인상의 폭과 속도에 비해 과거와 달리 외환위기에 빠져든 국가가 아직까지 거의 없는 것은, 많은 국가들이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나름의 준비를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2023년에 겪게 될 경제침체는 상대적으로 덜 심각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들도 있다. (반면 근원물가가 40년 만에 최고치인 3.6%에 이르렀는데도 GDP 대비 266%라는 세계 최고 수준 국가부채 때문에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거대한 부동산 거품 붕괴가 진행 중인 중국이 동아시아발 세계 경제위기를 촉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2023년의 경제침체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든, 아마도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일 수 있다. 이미 GDP 대비 국가부채가 세계 평균 100%에 이를 정도로 크게 누적돼 있다는 점 때문에, 또한 쉽사리 꺼지지 않는 인플레이션의 불씨 때문에,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제로금리·양적완화를 통한 경기부양이 매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의 경제침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게 출발했지만,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부양 정책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서 경제침체가 길게 늘어지고 점점 악화되다가 마침내 심각한 수준의 경제위기로 넘어가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상정해 볼 수 있다. 또는 무리해서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그렇게 해서 다시 한번 거대한 거품을 부풀렸을 때 훨씬 빠르고 강력한 인플레이션이 덮치는 시나리오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지금 2023년 이후를 구체적으로 전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사태가 전개되는 양상과 속도는 우리가 지금 알 수 없는 많은 변수에 의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추세만큼은 우리가 예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가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금융대공황 가운데 하나 또는 둘 다를 향해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 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그와 같은 파국적 상황에 이르렀을 때 자본가계급은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할까? 그런 상황에 이르렀을 때 자본가계급이 믿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탈출구는, 어마어마한 대량파괴와 대량학살을 실행함으로써 자본주의가 1930년대 대공황으로부터 벗어나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경험일 것이다. 지구를 완전히 끝장낼 수 있는 가공할 핵무장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장기간의 전면전이 쉽지 않을 테니, 자본가계급은 아마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형태의 대규모 전쟁을 추진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파국을 향해 치달아가는 동안 패권대결과 보호주의를 앞세우며 켜켜이 누적될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은 그러한 전쟁을 위해 활용될 수 있는 충분한 계기와 명분을 자본가계급에게 제공할 것이다. 지극히 반동적인 그러한 전쟁을 반드시 관철해 내려면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철저히 제압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자본가계급은 많은 국가에서 파시즘 정권을 세우려 할 것이다. 3) 계급투쟁의 재건과 혁명적 전진을 향해 1980년대 이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는 기본적으로 1970년대 세계적인 노동자투쟁의 분출을 잠재운 토대 위에서 전개됐다. 그러므로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세계 전반의 노동자투쟁은 착취와 수탈이 상당히 강화됐는데도 오히려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침체에 빠져 있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강력한 노동자투쟁의 시대를 거쳤던 한국의 경험은 브라질·남아공 등과 함께 상당히 예외적인 사례에 속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노동자투쟁의 양상에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전 세계 자본가계급이 금융위기에 따른 고통과 그 수습비용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기 위해 엄청난 공세를 지속적으로 퍼부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민중들이 금융수탈의 집중적인 피해자가 되어 집을 빼앗기거나 파산했다.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으로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한 각국 정부가 국가부채 폭증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공공부문 정리해고·임금삭감, 복지지출 축소, 연금개악 등의 대규모 공세를 퍼부었다. 세계 곳곳의 민간 기업들도 금융위기에 따른 신용경색과 소비위축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또한 대불황 시기를 가로지르며, 노동권의 후퇴와 노동조합의 약화를 노린 노동법 개악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980년대 이후 확산돼 온 노동유연화를 한층 가속시켜 더욱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더욱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자로 전락시켰다. 자본가계급의 집요한 공세에 맞서, 또한 파탄난 삶과 희망 없는 미래에 분노하며, 2010년 이후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거센 반격이 세계 곳곳에서 전개돼 왔다. 2010~12년에는 프랑스의 연금개악 반대파업, 아랍의 봄,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 운동, 미국의 월가점령운동, 그리스의 긴축반대 총파업 등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민중투쟁의 첫 번째 물결이 펼쳐졌다. 2018~2020년에는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홍콩의 민주화 투쟁, 칠레의 민중반란, 미국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등을 중심으로 두 번째 물결이 펼쳐졌다. 2022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사회를 위해 진정으로 필수적인 존재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 노동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따른 생존권 박탈에 맞서 세계 곳곳에서 파상적인 임금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제 세계 노동자계급은 경제침체와 경제위기로 점철되다가 끝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금융대공황 같은 파국을 향해 치달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대, 또한 이와 맞물리며 패권대결과 보호주의를 앞세운 제국주의 열강들의 충돌이 거듭되다가 끝내는 대규모 전쟁을 향해 치달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대 앞에 서 있다. 앞으로 펼쳐질 ‘위기와 전쟁의 시대’는 세계 노동자계급을 극심한 고통과 절망으로 내몰 것이며, 이 암흑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뒤집어엎는 데에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투쟁과 운동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뒤집어엎을 수 있을까? 나라마다 계급투쟁의 양상과 발전정도에 차이가 많은 만큼 그 구체적인 답은 나라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핵심적인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우리는 특히 한국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관점에서 이렇게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계급적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광범한 노동자대중이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계급적 노동자투쟁의 길을 열어야 한다.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이든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든 이제는 눈앞의 협소한 변화에만 몰두하는 조합주의를 과감하게 박차고 떨쳐 일어서야 한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운명을 덮치는 큰 그림을 직시하면서, 노동자계급 전체의 요구를 세워내고 광범한 노동자대중을 끌어들이며 하나의 계급으로 뭉쳐 싸우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둘째, 노동자계급이 구심에 서서 광범한 민중을 단결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맞선 투쟁, 기후재난과 환경파괴에 맞선 투쟁, 사회적 생존권과 민주적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투쟁 등에서 노동자계급이 선두에 서야 한다. 특히 위기와 전쟁으로 치달을 자본주의 아래서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기게 될 청년들이 노동자계급과 함께하는 투쟁 속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모든 자본가세력에 대한 모든 어리석은 미련을 깨부수고 오직 노동자계급 자신의 단결투쟁만을 믿는 ‘노동자계급 독립성’을 확고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노동자투쟁의 재건과 계급적·정치적 전진, 나아가 혁명적 도약을 헌신적으로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혁명적 노동자정치운동을 강력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다가오는 파국의 고통과 절멸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계급과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국 세계적인 노동자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에 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국가·작업장·사회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어 민주적 계획경제와 생산자 자주관리를 결합시키는 사회주의 세계체제를 건설함으로써만 자본주의에서 끝없이 되풀이돼 온 착취와 억압과 차별을 그리고 빈곤과 야만과 전쟁을 끝장내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2023-01-20 | 조회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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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4부(왼쪽부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로널드 레이건, 마가렛 대처 (사진출처: american prospect)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1970년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매우 심각하게 하락해서 바닥까지 떨어졌다. 1970년대 노동자계급의 세계적 반란을 잠재운 자본가계급은 1980년대 이후 이윤율 저하를 상쇄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매우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라는 한 묶음의 대책이 지난 40여 년의 세계를 지배했다. 1) 1980년대 이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나아가 바닥까지 내려간 이윤율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자본주의 국가가 가장 먼저 추진한 정책은 신자유주의였다. 정리해고, 임금삭감, 비정규직화, 복지축소, 노조무력화, 자본가감세, 규제완화, 기간산업사유화 등의 세부 정책을 포괄하는 신자유주의는 간단히 말해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최대한 강화하고 자본가에게 온갖 특혜를 줌으로써 자본의 이윤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그 목표가 있었다. 1970년대 중후반 칠레 군사정권의 실험을 거쳐, 1980년대 영국과 미국의 보수주의 정권에 의해 본격화한 신자유주의는 1990년대를 거치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은 특히 각국의 사회민주주의 정권들이 대거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가 되는 과정을 수반했는데, 이들은 흔히 노·사·정 협상에 입각해 신자유주의를 ‘민주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강제로 하락시키면서 자본의 이윤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는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78~2007년 미국 제조업의 시간당 산출량은 연 평균 3.26% 상승했지만, 노동자들의 시간당 실질임금은 연 평균 0.37% 하락했다. 2007년 미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1974년 실질임금의 85%에 불과했다. 1972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에서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160.70%포인트 상승하는 동안, 시간당 실질임금은 24.28%만 상승했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는 이윤율 회복에 상당한 효과가 있었지만, 이내 한계에 봉착했다. 신자유주의 자체에 내장된 모순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힘입어 개별 기업이 이윤율을 회복할수록 노동자는 더 가난해졌고 따라서 사회 전체에서 생산과 소비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생산과잉은 구조적인 판매부진을 낳았고, 이는 이윤율 회복에 중대한 장애를 조성했다. 신자유주의가 지닌 결정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세계화와 금융화가 덧붙여졌다. ‘생산의 세계화’와 ‘시장의 세계화’가 결합된 세계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가속되다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함께 전면화했다. 세계 총GDP 대비 해외직접투자(FDI)는 1985년 0.4%에서 2007년 5.3%로 늘어났다. 세계 총GDP 대비 수출은 1986년 16.9%에서 2008년 31.2%로 늘어났다. 특히 1980년대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 1989~91년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는 스탈린주의 진영을 소멸시키면서 세계를 단일 공급망과 단일 시장으로 통합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생산의 거점 전체 또는 일부를, 값싸고 고분고분한 노동자를 찾아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이동시킨 ‘생산의 세계화’는 자본의 이윤율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저개발 국가를 향한 공장이동은 추가되는 물류비용을 충분히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임금비용을 획기적으로 하락시켰다. 공장이동에 대한 협박은 선진국에서 노조를 무력화하고 후퇴를 강요하는 자본의 필살기가 되었다. 국가 간 무역장벽을 허물어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시킨 ‘시장의 세계화’는 시장을 획기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간극 확대라는 신자유주의의 약점을 보완했다. 중국산으로 대표되는 저렴한 수입품은 선진국 노동자들이 하락한 임금으로도 그럭저럭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임금하락이 노동자투쟁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세계적인 공장이동은 자본주의의 지형을 크게 바꿔 놓았다. 미국·서유럽·일본에 집중돼 있던 공장은 남미·동유럽·동아시아를 향해 빠져 나갔고 최종 귀착지로 중국을 향해 몰려들었다. 세계 자본주의는 중국의 생산과 미국의 소비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금융자본은 본래 산업자본에 대한 대부나 주식투자를 통해 산업자본이 획득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나 배당의 형태로 나눠받음으로써 수익을 얻는 자본이다. 금융자본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지만, 사회의 유휴자본을 수집하여 산업자본에게 공급함으로써 산업자본의 가치증식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이자나 배당을 분배받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주가가 지속적으로 폭등한다면, 금융자본은 이자나 배당으로 얻는 수익보다 주식 매매차익을 통해 훨씬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투기적인 불로소득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켜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 상층까지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면, 주가는 자연히 한동안 오르게 마련이다. 금융자본은 주식시장 참여자들에 대한 고금리 대출을 통해서도 별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물론 실질가치를 크게 벗어난 주가는 언젠가 폭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체로 큰손들은 폭락 이전에 이미 차익을 실현하고, 폭락에 따른 손실은 대부분 개미들에게 전가된다. 이와 같은 금융수탈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매우 큰 부작용이 있다. 주식가격이 폭락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고 그 충격으로 은행들까지 파산하면서 경제 전반이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1929년 10월 미국에서 대공황이 시작될 때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을 수습하면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여러 가지 규제를 도입했다. 가장 중요한 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금지였는데, 예금을 취급하는 상업은행이 주식투자 같은 고위험 영역에 관여할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대공황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이런 규제는 1990년대 후반까지 60년 이상 계속됐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이런 규제들을 1999년에 대대적으로 풀어버렸다. 대표적으로 상업은행·보험사·투자은행 사이의 겸업금지 조항을 없애 버렸다. 대중들이 가진 소액의 자금조차도 최대한 투기적인 고위험 영역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적극적 지원 아래 금융수탈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과정이 바로 금융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한 금융화는,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을 기게 됨으로써 잉여가치 생산을 통한 착취만으로는 충분한 이윤을 거둘 수 없게 된 자본에게 금융수탈을 통한 추가적인 수익을 보충해 주는 장치였다. 금융수탈은 주식 매매에 국한되지 않았다. 기업을 인수한 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가치’를 높여 다시 판매하는 기업 자체의 매매도 금융수탈의 중요한 영역이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주식시장과 비슷한 일이 훨씬 큰 규모로 벌어졌는데, 여기서는 주택담보대출의 규모가 압도적인 만큼 그를 통한 금융기관의 수익도 훨씬 컸으며, 주택가격 폭등에 따라 임대료 상승으로 얻는 수익도 상당했다. 금융화가 확산되면서, 금융수탈의 영역은 외환시장, 원자재시장, 선물시장, 나중에는 암호화폐시장까지 끝없이 뻗어나갔다. 금융화는 금융부문을 비대하게 팽창시켰다. 2006년 세계 총GDP가 51.8조 달러일 때, 세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더한 규모가 119조 달러에 이르렀다. 2007년 금융화의 전위부대라 할 헤지펀드들이 운용하는 금액만 10.1조 달러였다. 영국에서는 2007년 제조업에 300만 명이 고용된 반면 금융부문에는 650만 명이 고용됐다. 미국에서는 GDP 대비 전체 금융기관 자산이 1985년 110.3%에서 2007년 224.2%로 치솟았다. 세계화와 금융화가 맞물린 결과, 미국에서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47년 25.6%에서 2009년 11.2%로 축소된 반면, 은행·보험·증권·부동산·임대업을 합친 금융업의 비중은 1947년 10.5%에서 2009년 21.5%로 성장했다.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에서 헤매는 까닭에 쓸 만한 투자처를 쉽사리 찾지 못하던 자본은 가공할 수익률을 제공하는 금융부문에서 새로운 활기를 찾았다. 엄청나게 부풀어 오른 거품을 바탕으로 금융부문에서 투기적인 수익률을 얻을 수 있게 되자, 제조업마저 생산적 투자가 아니라 금융수탈을 향해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 지엠은 1990년대에 자회사 지맥을 통해 금융수탈에 동참했다가,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수익이 전체 이윤의 절반을 상회하자, 지맥에 투자를 집중하기 위해 소형차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멀쩡한 공장들을 폐쇄시켜 버렸다.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지맥의 파산은 2009년 지엠 전체의 파산으로 귀결됐다.) 금융수탈을 위해 주식·부동산 시장에 거품을 일으키고 이를 뒷받침하려고 막대한 신용대출을 제공하는 것은 선진국에서 소비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구조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중요한 모순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과 시장의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점점 더 많은 상품이 세계시장에 쏟아져 나오는데, 세계시장의 중추인 선진국에서는 신자유주의 공세와 공장이동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임금하락·고용감소로 소비능력이 오히려 점점 더 위축됐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유럽연합·일본을 포괄하는 선진국은 세계 인구의 17.9%이지만 세계 GDP의 57.9%를 차지했다. 특히 미국은 세계 인구의 4.5%에 불과하지만 세계 GDP의 23.3%를 차지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구조가 마비되지 않고 원활히 작동할 수 있으려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인위적인 소비 확장이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했다. 미국에서 1990년대 중후반 주식거품과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거품을 국가가 은행을 매개해 막대한 신용대출로 뒷받침한 것은 그에 동승한 대중이 지갑을 열고 왕성한 소비에 나서도록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과정은 소득불평등이 빠르게 심화되는 과정이었다. 자본가들이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면서 이윤을 늘린 만큼 노동자들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전체 국민소득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10%에서 2007년 23%로 치솟아, 1929년 대공황 발발 직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는 자본가들에게 꿈과 같은 세상을 열어줬다. 뉴욕을 비롯한 금융 중심지들에 포진한 국제 금융자본은 마치 지구가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기라도 한 것처럼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기구들을 앞세워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흐름을 지구 구석구석까지 강제하면서 자본주의 세계 전반을 이끌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흐름 속에서 소련·동유럽이 붕괴하고 중국·베트남이 개혁개방에 나서자 자본가들은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노래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자본가들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를 앞세워 자본주의가 영원히 승승장구하리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2) 2008년 금융위기와 대불황 금융수탈을 위해 한껏 부풀려진 주식·부동산 가격은 필연코 실제 가치에 부합하는 가격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주식시장에서 부풀어 올랐던 이른바 ‘닷컴버블’이 2000년에 터졌다. 그러자 수많은 주식시장 파산자들을 뒤로 하고, 금융수탈의 주요 무대가 부동산시장으로 옮아갔다.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시장에서 더욱 거대한 거품이 부풀어 올랐다. 은행들은 상환능력이 부족한 이들까지 광범하게 대출을 제공하며 주택 구입을 부추겼다. 주택소유자가 파산하더라도,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하기 때문에 주택을 압류해서 팔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준이 3~4%대의 물가를 잡기 위해 2004~06년 금리를 1.00%에서 5.25%로 인상하자, 갑자기 불어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주택구매자들이 줄줄이 파산했고, 그에 따라 주택가격도 폭락했다.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한 은행들은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고, 하나 둘 위기로 내몰렸다. 게다가 파생상품을 매개로 미국과 세계의 금융기관들 다수가 부동산 부실채권과 연결돼 있었다. 마침내 2008년 9월 미국의 5대 투자은행과 최대 보험사를 비롯한 대규모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파산 또는 사실상의 파산 국면에 들어섰고, 그 충격으로 주식시장이 대폭락했다. 이른바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전면에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사건이었다. 미국은 물론이요, 다른 나라의 거대 금융기관들도 줄줄이 파산함으로써 세계 자본주의 전체가 마비되기 직전이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약탈적 대출을 통한 금융수탈은 200만 가구를 홈리스로 만들며 자본가들에게 큰 수익을 안겨주었지만, 결국 금융위기의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본가들의 지배체제 자체를 파탄 직전까지 내몰았다. 자본주의 체제 전반이 붕괴할 위험에 직면하자, 그동안 신자유주의를 부르짖으며 ‘시장에 다 맡기라’던 자본가계급은 뻔뻔스럽게도 국가를 통해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금융기관들에게 제공했다. 2009년 11월 영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영국·유로존이 쏟아 부은 구제금융만 14조 달러로 2009년 세계 총 GDP의 4분의 1에 해당했다. 은행들의 파산은 간신히 막았지만, 선진국 소비시장이 빠르게 위축되었다. 금융위기가 터지고 불과 세 달 만에 전 세계 생산과 무역이 30% 이상 감소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금융위기 직후 세 달 만에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2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경기부양을 위해 각국 정부들이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부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보조금과 세금혜택을 중심으로 소비를 진작시켰다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에서는 대대적인 토목·건설 공사가 활용됐다. 금융위기 이후 2년 동안 경기부양을 위해 각국 정부가 투입한 재정은 5조 달러를 웃돌았다. 한편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의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을 장기간 실시했다. 이를테면 미국 연준은 2008년 11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6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3.6조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중앙은행이 시중 통화량을 확대하는 정책)를 실시했다. 또한 연준은 2008년 1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7년 동안 기준금리를 제로(0.00~0.25%)로 유지했다. 이와 같이 전례 없는 대규모 구제금융과 경기부양 정책을 동원함으로써, 자본주의 국가는 2008년 금융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처럼 대규모의 파산과 실업으로 넘쳐나는) 또 한 번의 폭발적인 대공황으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불황은 피할 수 없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2년 동안 세계경제의 평균성장률이 2.5%를 기록했는데, 이는 1961~2007년 평균성장률 3.7%는 물론, 1995~2007 평균성장률 3.4%보다도 한참 낮은 것이었다. 더욱이 이 수치는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확장과 전례 없는 초저금리·양적완화 정책을 장기간 동원함으로써 겨우 달성한 결과였다. 대불황의 시기는, 부분적으로 애플 같은 빅테크 기업들, 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들, 테슬라 같은 이른바 ‘친환경’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과 그에 따른 과감한 투자를 보여주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함에 따른 극심한 투자기피 현상을 보여주었다. 체제 전반의 투자기피 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대표적인 실례는 미국의 ‘자사주 매입’ 확산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해외투자를 미국으로 회수하는 기업들에게 감세 혜택을 주기로 함에 따라, 2018년 1분기 미국 기업들이 2,170억 달러를 미국으로 회수했는데, 이는 전체 해외투자금 2.1조 달러의 약 10%였다. 그런데 상위 15개 기업이 회수한 810억 달러 가운데 겨우 20억 달러만 생산적 투자에 지출됐다. 반면 2018년 2분기 미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1,500억 달러로 1분기 대비 세 배로 급증했다. 즉 미국으로 회수된 해외투자의 대부분은 생산적 투자 대신 경영권 방어나 주가 견인을 위한 ‘자사주 매입’에 투입됐다. 투자기피 현상은 은행의 대출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상업은행들이 1970~81년 제공한 총신용 가운데 상공업대출의 비중은 25.0%였으나 2008~19년에는 16.1%에 불과했다. 반면 부동산대출의 비중은 같은 기간 19.1%에서 37.0%로 상승했다. 한국에서는 투자기피 현상이 재벌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급증으로 나타났다. 2008년 221.6조였던 1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19년 821.6조로 성장했다. 결국 대불황의 시기는 자본주의 축적체제에 발생한 모순을 해소함으로써 새로운 호황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모순을 더욱 축적하고 악화시킴으로써 대규모의 폭발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모순의 축적과 악화는 세계화와 금융화 양 측면 모두에서 진행되었다. 3) 세계화가 불러낸 리쇼어링·보호주의·패권대결 세계화는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에서 자본가들이 저임금을 강요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고 나아가 이윤율을 회복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는 수단이었다. 또한 낮은 물가가 유지되게 함으로써 저임금이 노동자투쟁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차단하는 기능도 했다. 그러나 대불황 시기를 거치며 세계화는 (특히 ‘생산의 세계화’는) 크게 후퇴했다. 세계 GDP 대비 해외직접투자의 비율은 1985년 0.4%에서 출발해 추세적으로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07년 5.3%까지 이르렀으나, 이후 추세적 하락을 거듭하며 2020년 1.3%를 기록했다. 세계 GDP 대비 수출(상품+서비스)의 비율은 1986년 16.9%에서 출발해 2008년 31.2%까지 상승했으나, 이후 추세적 하락 끝에 2020년 26.3%를 기록했다. 세계 주요국·지역에서 GDP 대비 해외직접투자 유입분의 비율은, 대부분의 경우 2006~10년보다 2016~20년에 그 수치가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1.9%에서 1.5%, 유로존 5.8%에서 1.9%, 중국 3.7%에서 1.5%, 인도 2.4%에서 1.8%, 러시아 3.7%에서 1.4%로 하락했다. 브라질이나 동남아시아 등 일부 국가·지역에서는 양상이 약간 달랐지만, 여기서도 그 비율이 뚜렷이 상승하지는 못했다. 세계화의 후퇴는 특정 국가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범세계적인 현상이었다. 세계화가 이렇게 후퇴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화 자체에 내장된 모순이 작동한 결과 리쇼어링, 보호주의, 패권대결을 불러냄으로써 강력한 역세계화의 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초기에 선진국 자본가들이 신흥국으로 생산거점을 대거 이동한 것은 무엇보다 신흥국의 현저한 저임금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선진국 임금과 신흥국 임금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신흥국에서 산업화가 진전될수록 노동자들의 단결과 임금투쟁이 확대되면서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에서 2010년에 터져 나온 대대적인 임금투쟁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덧붙여 선진국에서 전반적인 임금정체에 덧붙여 이중임금제까지 확산되면서 제조업 신규 노동력의 임금이 상당히 하락했다.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임금격차 축소는 물류비용 등까지 고려할 때 신흥국으로 생산거점 이동이 과연 장기적으로 이득인지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대략 2010년을 분기점으로 많은 선진국 기업들이 신흥국을 향한 추가 생산투자를 보류하고, 심지어 신흥국에 있던 생산거점을 다시 선진국으로 되돌리는 이른바 리쇼어링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정부가 등장하기 이전인 2010~16년에 이미 리쇼어링으로 43만 8천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정도였다. 그런데 리쇼어링이 비교적 조용한 경제적 현상이었던 것과 달리, 보호주의와 패권대결의 부상은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강력한 정치적 현상이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는 소련·동유럽의 몰락과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을 포괄하며 사실상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재통합해 냈는데, 그와 같은 단일한 세계질서는 반대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가 원활하게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기반이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각국 정부들이 단일한 세계질서에 입각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한 것은 금융위기가 폭발적인 대공황으로 나아가지 않고 대불황 정도로 수습되게 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계화는 이 단일한 세계질서를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드는 보호주의와 패권대결을 다시 불러냈다. 2009년 4월 런던에서 G20 제2차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각국 정상들은 금융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 ‘보호주의 저지’를 공식 결의했다. 1930년대에 세계 각국이 보호주의에 빠짐으로써 대공황을 크게 악화시켰던 경험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로 피폐해진 데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욱 급격하게 삶의 후퇴를 경험한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민중이 (이들을 이끌 역량 있는 혁명적 세력의 부재라는 조건 위에서) 보호주의 세력에게 거대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마침내 2016년 영국에서 유럽연합 탈퇴가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고,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보호주의가 세계 정치와 국제관계의 전면에 부상했다. 보호주의 세력의 집권은 기왕에 진행되던 리쇼어링을 더욱 가속시켰다. 트럼프 정부가 해외투자를 회수하는 기업들에게 대규모 감세 혜택을 제공한 결과 2017~20년 리쇼어링으로 63만 7천 개의 일자리가 추가됐다. (앞서 본 것처럼 회수 자금의 대부분이 자사주 매입에 투입됐는데도 그 정도 결과가 나왔다.) 보호주의 세력의 집권은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정치적 힘으로도 기능했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는 중국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유럽의 전통적인 동맹들과의 관계에도 큰 균열을 만들어냈다. 외국과 이주민을 혐오하는 보호주의의 득세는 세계 곳곳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온갖 극우 세력들을 강력하게 고무했다. 세계화로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은 빠른 성장을 거듭한 끝에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만큼 도약했다. 더 이상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미국과 추격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중국 사이의 갈등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대결을 조기에 가시화했다. 중국에서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1982년, 미국 GDP 대비 중국 GDP의 비율은 6.1%였다. 한동안 이 수치는 완만하게 증가해서 중국이 WTO에 가입하던 2001년에도 12.7%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후 6년 만에 이 수치가 두 배로 늘어나 2007년 24.5%를 기록하더니,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다시 4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나 2011년 48.4%를 기록했다. 게다가 2010년부터는 중국 GDP가 일본을 추월하며 세계 2위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오랜 밀월을 대신해서 긴장과 갈등을 불러왔다. 2011년 오바마 정부는 ‘잠재적 적국’으로서 중국에 대한 견제와 포위를 뜻하는 ‘아시아 회귀 전략’을 미국의 최상위 대외정책으로 설정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추격의 고삐를 더욱 당겼다. 중국의 GDP가 처음으로 미국의 절반을 넘어서서 52.5%를 기록하던 2012년, 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은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는 꿈, 즉 ‘중국몽’을 전면에 내걸었다. 나아가 중국의 GDP가 미국의 60.8%를 기록하던 2015년, 중국은 2025년까지 10대 핵심 첨단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제조 2025’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의 GDP가 미국의 3분의 2를 넘어서며 67.7%를 기록하던 2018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전면적인 무역분쟁으로 불붙었다. 2018년 7월 트럼프 정부의 선공으로 34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대한 25% 보복관세를 주고받으며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은, 2019년 미국이 3천억 달러 규모의 추가 수입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화웨이를 비롯한 첨단기술 기업들을 제재하자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축소하는 양상으로 확대된 가운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무역분쟁을 거치며 미국의 중국산 수입품 가운데 관세부과 대상이 1.0%에서 66.4%로 크게 확대됐으며, 평균 관세율은 3.1%에서 19.3%로 상승했다. 미국은 무역분쟁을 활용해 2019년 중국과의 GDP 격차를 다시 벌릴 수 있었지만, 중국이 빠르게 대응력을 회복하면서 2021년 중국의 GDP가 미국의 77.1%까지 이르게 되었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와 중국의 왕성한 추격은 미·중 패권대결이 점점 더 격화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2008년 이전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의 결함을 보완하며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고 만회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세계화의 자체 모순이 전개된 결과 원래의 기능도 현저히 약화됐을 뿐만 아니라 보호주의와 패권대결이라는 (세계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며 자본주의 위기를 결정적으로 심화시킬) 정치적 힘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4) 더욱 거대한 금융위기를 향해 치달아 온 금융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물경제가 침체와 저성장에 갇힌 것과 달리, 세계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계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07년 4분기 115.5%로 정점을 기록한 뒤, 금융위기를 거치며 2008년 4분기 54.6%까지 추락했다가, 이후 추세적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21년 4분기 128.1%로 새로운 정점에 이르렀다. 새로운 정점의 수치는 금융위기 직전보다 12.6%포인트나 높다. 세계 주식시장에 금융위기 직전보다 더 큰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더 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00년 1분기 164.7%와 2007년 2분기 142.6%로 정점을 기록한 뒤, 각각 닷컴붕괴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2003년 1분기 94.9%와 2009년 1분기 74.5%로 추락했다가, 이후 추세적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21년 4분기 211.4%를 기록했다. 새로운 정점의 수치는 닷컴붕괴 직전보다는 46.7%포인트, 금융위기 직전보다는 68.8%포인트나 더 높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닷컴붕괴나 금융위기 직전보다 훨씬 더 큰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미국 부동산시장도 심각하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대비 주택가격지수는 2006년 5월 155.1%로 정점을 기록한 뒤, 부동산 가격폭락과 금융위기를 거치며 2012년 2월 99.4%까지 추락했다가, 이후 추세적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22년 5월 178.1%로 정점에 이르렀다. 새로운 정점의 수치는 금융위기 직전보다 23.0%포인트 더 높다. 미국 부동산시장에서도 금융위기 직전보다 상당히 더 큰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도 심각한 수준의 부동산 거품이 조성돼 있다. 2022년 6월 블룸버그는 임대료 대비 가격과 소득 대비 가격을 합산해 본 결과 OECD 국가들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19개 국가의 부동산시장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전보다 더 큰 거품이 조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2008년 이전,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금융화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따른 초과착취에 덧붙여) 금융수탈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금융수탈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붕괴로 내몰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수단임을 여실히 입증했다. 그러므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적어도 한동안은 금융수탈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자본가들에게 최소한의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60년 이상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2008년 이후 금융수탈은 더 거대한 규모로 전개됐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자본주의에는 2000년 닷컴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를 낳았던 두 거품보다 훨씬 더 큰 거품이 조성돼 있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금융수탈이 아니고서는 자본주의가 존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동안 착취를 강화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엄청난 신자유주의 공세가 퍼부어졌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이윤율은 여전히 바닥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게다가 착취를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세계화는 2008년 이후 빠르게 후퇴해 왔다. 자본주의의 동력은 자본가들의 끝없는 이윤욕인데, 대규모의 금융수탈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이윤욕을 제대로 충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는 금융수탈 없이는, 금융수탈을 필사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2008년 이후 주식·부동산 시장 등에서 더욱 거대한 거품이 조성되고 그럼으로써 더 거대한 규모로 금융수탈이 전개된 데에는 금융수탈을 부추기고 지원하는 국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나라마다 여러 가지 법과 제도가 작용했지만, 경제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가 핵심이었다. 2008년 직후 미국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은 금융위기 충격으로 급격히 얼어붙은 실물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자본가들이 더 쉽게 생산적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시중에 충분한 화폐를 공급하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바닥을 기는 이윤율 때문에 자본가들은 생산적 투자에 잘 나서지 않았고, 결국 넘쳐나는 화폐는 주식가격과 부동산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더 많이 기여했다. 그런데 자본가계급 전체로 보자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생산적 투자로 충분한 이윤을 거둘 수 없다면, 금융수탈로 보충하면 될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구조가 고착되자,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는 주식·부동산 가격을 지탱하고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실상 변질됐다. 그런데 특히 주식거품이 맹렬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다시 금융위기가 터지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조심스럽게 금리를 다시 인상하고 양적긴축에 들어갔는데, 특히 미국 연준은 2015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9차례에 걸쳐 2.25% 금리를 인상하고 2017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 0.7조 달러를 회수하는 미미한 양적긴축을 실시했다. 그 표면상 이유는 ‘점진적인 경제회복에 따른 정상화’였지만, 과도하게 부푼 거품이 격렬하게 터지기 전에 미리 바람을 빼는 것 또한 실제 목표에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준은 바람을 충분히 뺄 수 없었다. 약간의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에도 미국 경제가 빠르게 하강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2019년 9월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져서, 일시적으로 초유의 위기 국면이 펼쳐졌다. 이를테면 2020년 4월 미국에서는 한 달 만에 일자리 2천만 개가 사라졌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2008년 9월부터 2009년 8월까지 1년 동안 사라진 일자리 670만 개의 세 배가 한 달 만에 사라졌다.) IMF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각국 정부가 9.9조 달러의 재정을 지출했으며, 각국 중앙은행이 6.1조 달러의 금융 지원에 나섰다. 이렇게 투입된 16.0조 달러는 2020년 세계 GDP의 18.8%에 이르렀다. 미국 연준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 2020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4.8조 달러의 양적완화에 나섰다. 이번에도 정책의 효과는 비슷했지만 그 정도는 훨씬 심했다. 다시 한 번의 제로금리와 대규모 양적완화는 생산적 투자의 활성화보다 주식·부동산 거품을 끌어올리는 데 훨씬 더 많이 기여했다. 그 결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거품이 전 세계 주식·부동산 시장에서 조성됐다.2023-01-18 | 조회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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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 개편 방안’ - 이주노동자를 한층 더 착취하겠다는 자본가 정부사진: 한겨레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불허된 고용허가제 2004년 도입돼 시행 20년이 된 고용허가제는 철저하게 자본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합법적 노동력 착취 제도로 악명이 높다.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이 4년 10개월로 제한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법령에서 정하는 사유에 해당할 때만 예외적으로 고용노동부에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사업장 변경 횟수도 최초 3년 간은 3회로, 재취업한 경우 연장 기간 1년 10개월 내 2회까지로 제한된다. 정부는 이주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에도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므로 “고용허가제가 외국인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한다 주장하지만 실상은 이와 거리가 멀다. 예컨대 가장 빈번한 임금체불만 하더라도 임금의 30% 이상을 2개월이 지나도록 체불한 경우 등에야 사업장 변경 신청이 가능하다. 산업재해의 경우에도 중대재해(“산업재해 중 사망 등 재해 정도가 심하거나 다수의 재해자가 발생한 경우”)이거나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신체적‧정신적 부상이나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 한해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근로계약 위반이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는 노사 간 다툼이 있기 마련인데, 언어와 문화가 낯선 이주노동자가 외부 지원 없이 자기 권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2021년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행 씨가 영하 18도의 혹한에 사망한 비참한 사건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 숙소로 비닐하우스가 제공된 경우는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고 얘기하지만, 언론 취재에 따르면 현재 경기도에만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숙소가 700곳이 넘는다고 한다. 안 그래도 불평등관계인 노동계약에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마저 허용되지 않을 경우 사실상의 강제노동이 자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UN 사회권위원회도 지난 2017년 한국 정부에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도 폐지를 권고했을 정도다. 그러나 자본가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명색이 헌법상 기본권 수호 기관이라는 헌법재판소 역시 2021년 12월,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한이 합헌이라는 반인권적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사진: 경향신문 이주노동자의 체류 기간은 늘려도 여전히 노동기본권은 보장하지 않겠다? 작년 말 윤석열 정부는 제36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12월 28일)의 심의‧의결을 거친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을 현행 4년 10개월에서 출국‧재입국의 과정 없이 최대 10년까지 늘리는 것이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계속 줄어들면서 노동공급 감소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약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도 개선을 통해 2023년에는 역대 최대규모인 11만 명의 이주노동자를 신규 도입하겠다고 한다. 자본가 정부의 인구정책은 언제나 자본의 요구에 맞게 노동력 공급의 적정 규모를 유지하는 데 있다. 생산가능인구의 축소, 즉 노동력 공급 감소는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알맞은 규모의 산업예비군을 상시 대기상태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자본의 독재권 행사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최저임금이 곧 표준임금인 이주노동자를 대량으로 공급할 필요가 그래서 제기된다. 문제는 값싼 노동력을 대규모로 공급하겠다는 의지만 명확할 뿐,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요구는 모조리 묵살되었단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동일 사업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서 숙련을 형성하고, 한국어 능력을 갖춘 외국인력을 우대하는 E-9 외국인력 장기근속 특례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일 사업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것이 장기근속 특례의 요건이 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용노동부 박종필 기획조정실장은 제조업의 경우 첫 직장에서 2년을 근무해야 하고, 사업장을 변경하면 변경된 사업장에서 30개월 이상을 근무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넘어, 장기근속 특례라는 미끼로 사실상의 강제노동을 가능케 할 제도를 설계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뻔뻔스럽게도 “사업장 변경은 가장 첨예한 쟁점”이므로 “노사TF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는데 결과가 나오면 별도의 지침을 마련해 발표하겠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주 노동의 비정규 불안정 노동화를 추진하겠다는 자본가 정부 이걸로 끝이 아니다.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에는 이주노동자를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로 운용하겠다는 구상도 포함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인력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외국인력 활용체계 고도화”라는 허울 아래, ‘업종’ 외 ‘직종’ 기준을 활용해 비정규 불안정 이주노동자를 대량 공급하겠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연중 특정 시기에 생산되는 농·수산물의 가공 작업 등 일시적 인력수요에 대한 파견 방식의 인력 활용, 가사‧돌봄 등에 대한 공인된 서비스 인증기관 방식의 인력 공급 등”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는 원칙적으로 노동력 중간착취 제도인 파견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법만 그럴 뿐이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의 「안산시흥지역 파견노동 실태조사 보고서(2013)」에 따르면, 안산‧시흥지역 불법파견업체 이용자의 무려 90%가 이주노동자라고 보고됐을 정도다. 2020년 12월 경기도외국인지원센터에서 펴낸 「경기도 이주노동자 파견노동 실태조사(2020. 12.)」 보고서는 파견으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차별 실태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예컨대 ‘일하는 조건이나 대우에서 한국인과 차별을 받았다’는 항목에는 57.2%, ‘국적과 인종에 따른 차별을 받았다’는 항목에는 46.1%, ‘임금, 업무내용 등 근로조건이 소개업체에서 안내받은 것과 달랐다’는 항목에 44.1%의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해당 보고서에서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이 파견 노동에서 차별을 받는 이유로 취업자유 제한 등 법적으로 취약한 지위, 인종주의 등을 꼽고 있다. 입만 열면 노사 법치주의를 떠드는 정부는 이토록 만연한 불법 실태를 바로잡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보다는 “일시적 인력수요에 대한 파견 방식”을 허용해 아예 이를 양성화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자본가 정부가 파견 업종으로 꼽고 있는 “농‧수산물 가공 작업” 등은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라 근로시간, 휴게, 휴일 규정 일체가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이다.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하루 11시간, 1주 7~80시간을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야만적 현실을 대체 언제까지 목도해야 하는가. 싱가포르식 육아도우미가 저출생 대책이라고? “가사‧돌봄 등에 대한 공인된 서비스 인증기관 방식의 인력 공급” 정책도 심각하다. 자본가 정부는 저출생 문제를 철저하게 자본가들의 계급적 이해에 따라 해결하려 든다. 모든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성차별 문화와 의식을 깨뜨리는 대신, 주 80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하고 여성 혐오와 성별 대립을 정치적 지지 기반으로 삼으려 들고 있다. 필수 사회서비스를 공영화하고 공동체 전체가 가사‧육아‧돌봄을 공평하게 분담하게 하는 대신, 이주 여성 노동력을 대규모로 공급하고 민간기관이 차등화된 돌봄서비스를 판매해 이윤을 창출하도록 한다는 구상을 드러낸다. 이것은 윤석열 정부의 일관된 태도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2년 9월의 국무회의에서 “한국에서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며 싱가포르식 육아‧가사 도우미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가 가사‧돌봄 직종에 대한 이주 노동력 도입 정책을 발표하자 오세훈은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오세훈은 한편으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다 동원해 저출생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떠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으로 공적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2023년 예산 168억 원 중 100억 원(62.1%)을 삭감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윤석열 역시 1월 9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복지를 돈을 쓰는 문제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민간과 기업을 참여시켜 준시장화해 잘 관리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며, “돌봄을 어디가 잘해주고 어디 서비스가 떨어진다는 점이 알려지면 손님이 (특정 업체에) 많이 몰리며 (그곳이) 매출·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게 준시장적인 경쟁 시스템”이라고 떠들었다. 돌봄의 시장화를 노골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돌봄서비스 업체의 이윤 제고를 위해서는 돌봄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최저한도로 제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는 뿌리 깊은 성차별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리고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최저 수준으로 정해질 것이다. 이것은 나아가 노동자계급 내부의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 등 각종 성차별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전면적 단결을 가로막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것이다. 사진: 경향신문 노동자 국제주의 없이 자본에 맞서 싸울 수 없다 한국이 맞닥뜨린 저출생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본가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숫자를 더욱 늘려나갈 수밖에 없다. 2014년 한 연구에서는 국내생산인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2030년 427만 명, 2050년 1,182만 명, 2060년 1,530만 명의 이민자 유입이 필요하다는 추계를 낸 바 있다(조경엽‧강동관, 「이민 확대의 필요성과 경제적 효과」). 이미 2021년 기준 1,956,781명의 외국인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으며, 이중 이주노동자 숫자는 약 41만 명 수준이다. 서구 선진국에서 누군가의 정치적 좌표를 결정짓는 핵심 기준이 이주민에 대한 태도였다면, 세계 10위권 경제 선진국 한국도 같은 상황이 되고 있다. 자본가들은 한편으로는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대규모로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국적과 인종에 따른 차별 이데올로기를 한껏 활용하려 들 것이다. 그것은 이주노동자를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지만, 정주(한국인)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노동자가 우선이라는 조합주의적 의식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무제한적 착취를 외면한다면, 능력주의 차별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행해질 여성 노동자‧하청 노동자‧플랫폼 노동자 등에 대한 공격 역시 방어할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모든 차별과 분할을 뛰어넘어 전 계급적 단결을 이루기 위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제 다음의 금언이 한국에서도 진정한 실천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노동자에겐 조국이 없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2023-01-17 | 조회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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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3부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지금 새롭게 열리고 있는 시대는 전체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어떤 위치와 함의를 갖고 있는가? 이를 해명하는 작업은 그보다 앞선 시대들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한다. 오늘날의 시대들을 해명하는 데 필요한 내용을 중심으로 앞선 네 번의 시대가 가진 특징들을 간략히 살펴보자. 1) 자유경쟁과 부르주아혁명의 시대 (1776~1871) 식민지 약탈과 노예노동에 기초한 상업 자본주의 그리고 공장제 수공업의 시대를 거쳐, 1700년대 후반 기계제 대공업에 기초한 산업 자본주의 시대가 열렸다. 1776년은,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출발한 시점으로서 여러 면에서 상징성을 갖는다. 무엇보다 그 해에 영국의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증기기관이 일반화됐다. 미국의 독립혁명이 시작된 해이자,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을 10여 년 앞둔 해였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정립하는 데서 중요한 역할을 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발간된 해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거의 100년 동안,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유럽 일부와 동부해안 중심의 북미대륙 일부라는 제한된 지역에서 기계제 대공업에 기초한 산업 자본주의가 발전돼 나갔다. 축적된 자본들은 아직 중소규모를 벗어나지 못했고, 산업마다 자본 간의 경쟁이 자유로이 펼쳐졌다. 국가는 경제에 개입하지 않은 채 체제를 수호하는 역할만을 담당했다. 1825년 최초의 공황이 나타난 뒤, 대략 10년 주기의 전면적 공황이 펼쳐졌다. 공황은 매우 파괴적이었지만, 한계기업을 파산시키고 임금을 하락시키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자본의 이윤율을 급격히 회복시켰다. 공황의 주기적 격렬성은 역설적으로 성장기 자본주의가 가진 활력의 표현이었다. 1500년대 초반 대항해시대가 열릴 때부터 1800년대 중반 1차 산업혁명이 정점에 이를 때까지, 유럽은 세계 곳곳에서 식민지를 구축하고 약탈과 노예노동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수탈했다. 그 사이 세계의 패권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넘어갔다. 사진: 코르테스의 테노치틀란 점령, 1521. 가장 먼저 패권을 쥐었던 스페인은 오늘날의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을 식민지로 구축하고서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약탈했다. 한때 전 세계에서 생산된 은의 80% 가량을 소유할 정도였다. 스페인이 라틴 아메리카를 약탈하는 동안 선주민 90%가 전쟁, 광산노동, 전염병 등으로 학살당했다. 스페인은 넘쳐나는 금·은을 믿고 대규모 전쟁을 거듭했다. 필요한 재화는 수입으로 해결하면서 자체 산업화를 가로막았다. 그렇게 금·은 약탈에 의존하던 스페인 경제는 시간이 흘러 금·은 유입량이 줄어들자 급격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스페인은 유럽의 후진국으로 밀려났다. 영국이 패권국가로 올라선 배경에는 면직물공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혁명이 있었다. 영국은 식민지 경영도 원료공급과 상품판매 기지로 식민지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물론 영국 또한 식민지에서 심각한 약탈을 자행했지만, 중심은 자본주의적 생산을 위한 식민지 활용에 있었다. 영국은 착취를 중심으로 수탈을 결합시킴으로써, 이른바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을 건설하며 초창기 자본주의를 지배했다. 1800년대 초반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지배하던 라틴 아메리카 대륙 전반이 독립한 대신, 인도에 대한 영국의 지배가 확립되면서, 세계적인 식민지배의 주도권은 확연히 영국으로 넘어갔다. 산업혁명은, 상업 자본주의 시대에 식민지와 노예노동에 대한 약탈을 중심으로 형성된 광범한 상품시장을, 기계제 대공업에 입각한 사회적 생산을 중심으로 재편해 냈다. 마침내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이 본격적으로 형성돼 나갔다. 경제를 주도하게 된 자본가계급은 국가를 자본가계급의 도구로 재편해 내기 위해 부르주아혁명에 나섰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은 부르주아혁명의 정점이었다. 노동자계급은 자유·평등·형제애라는 이상에 이끌려 부르주아혁명에 적극 동참했다. 그런데 혁명을 주도한 자본가계급의 실제 목표는 봉건 지배계급으로부터 정치권력을 탈취하여 자신들의 지배를 확립하는 데 있었다. 진정으로 자유·평등·형제애를 갈망한 노동자계급은 점점 독립적인 세력으로 성장했고, 그에 두려움을 느낀 자본가계급은 점점 후퇴했다. 마침내 1848년 혁명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계급에 맞서기 위해 봉건 지배계급과 함께 반혁명의 편에 섰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부르주아혁명을 대신해서 자본주의 산업화와 자본가국가 수립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모델이 나타났다. 봉건 지배계급에 기초한 국가 관료집단이 급격한 자본주의 산업화를 주도하면서 스스로 자본가계급으로 변신해 나가는 모델이다. 프로이센에서 대지주를 기반으로 한 국가 관료집단은 1850년대 이후 자본주의 산업화와 1871년 독일 통일을 주도하면서 이러한 경로를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1868년 일본의 메이지유신을 주도한 봉건 무사계급 출신의 국가 관료집단 또한 이러한 독일식 자본주의 산업화를 자신의 모델로 삼았다. 부르주아혁명의 성과로부터 소외당한 노동자계급은, 처음에는 부르주아혁명의 이상을 현실화하는 데서 답을 찾고자 했다. 그 실천적 결론은 보통선거권이었다. 1830년대 보통선거권을 요구하는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은 세계 최초의 노동자계급 정치투쟁이었다. 그런데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에서 마침내 보통선거권이 실현됐을 때, 그 실체를 놓고 모두가 깜짝 놀랐다. 사회의 압도적 다수인 노동자·민중의 지배를 당연히 보장하리라 믿었던 보통선거권은, 실제로는 가장 보수적인 왕당파의 승리를 낳았고, 그렇게 등장한 정부는 노동자봉기를 유발하고 잔인하게 진압했다. 이러한 패배 위에서 노동자계급의 과학적 사상으로서 마르크스주의가 정립되었고, 노동자혁명을 통한 공산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대안적 전망이 수립됐다. 다양한 조류가 경쟁했던 1864~76년 제1인터내셔널은 마르크스주의의 타당성을 국제적인 차원에서 실천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었다. 제1인터내셔널은 모든 자본가세력으로부터 독립한 노동자계급의 독자적인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립했으며, 노동조합으로 하여금 모든 노동자들의 해방을 향해 전진하게 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했다. 1871년 파리코뮌은 노동자국가를 건설함으로써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근본적인 사회경제 변혁에 나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파리코뮌은 노동자국가가 실현해야 할 노동자 민주주의의 요소들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전면적인 자기조직화를 실현해 낸 노동자대중은 통제받지 않는 관료기구들을 철폐하고 대신 집행기관들을 총괄함으로써 직접 모든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 대표자들에게 평균임금을 지급하는 등 어떤 특권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관료화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해야 한다! 모든 대표자들을 직접 선출할 뿐 아니라 언제든 소환될 수 있게 함으로써 대표자들이 언제나 대중의 의지를 표현하게 해야 한다!) 이 시대는 자본주의의 여명기였지만, 이미 노동자계급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노동자혁명과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참혹한 현실이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착취와 억압의 사슬을 끊어낼 길을 갈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스로 해방됨으로써 전체 인류를 해방하고자 했던 수많은 노동자투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monthly review 2) 독점과 제국주의 전면화의 시대 (1871~1914) 1870년대를 넘어서면서, 집적과 집중의 결과로 등장한 독점자본이 특정 산업을 지배하게 되고, 나아가 이러한 독점자본이 은행자본과 융합돼 금융독점체를 형성하면서 경제와 정치를 지배하게 되는 독점자본주의 시대가 열렸다. 독점자본의 등장은 석유·철강·전기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2차 산업혁명과 밀접히 연결돼 있었으며, 후발주자인 독일과 미국이 영국을 급격히 따라잡는 통로가 되었다. 독점자본주의 성립은 국가의 역할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 왔다. 거대한 독점체들은 큰 영향력을 갖고 국가기구를 직접 좌지우지했다. 국가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한 정책들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는데,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정책은 ‘식민지로의 자본수출’이었다. ‘식민지로의 자본수출’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는 데 획기적인 해법이었다. 국내에 투자해서는 만족할 만한 이윤을 거둘 수 없는 ‘잉여자본’을 식민지에 투자하게 되면, 훨씬 더 높은 이윤을 거둘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산업의 발전단계가 낮은 식민지에서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훨씬 낮았고, 노동력의 가격이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적 억압을 통해 다양한 수탈을 결합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따라서 기존에 주로 원료공급지와 상품판매시장으로 활용됐던 식민지는 이제 주로 자본수출 대상지로 활용돼 나갔다. 1890년에서 1913년 사이 새로 부설된 철도 가운데 유럽이 27.7%, 미국이 28.3%를 차지한 반면,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이 절반 가까운 44.0%를 차지했다. 제국주의 열강들은 이전보다 훨씬 맹렬한 속도로 식민지 확보 경쟁에 뛰어들었다. 영국·프랑스·독일·일본·미국·러시아 6대 강국이 확보한 식민지의 인구는 1876년 2억7,380만 명에서 1914년 5억2,340만 명으로 늘었다. 1914년 무렵에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사실상 나머지 세계 전체를 자신의 지배 아래로 복속시켰다. (나머지 세계에서 식민지가 되지 않은 지역은 사실상 라틴 아메리카 대륙과 중국 정도였는데,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뒷마당이나 다름없었고, 중국은 여러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주권을 절반쯤 빼앗긴 상태였다.) 이처럼 엄청난 속도와 규모로 식민지를 침략하고 병합한 뒤 식민지에 대한 초과착취와 약탈을 자행하는 동안, 제국주의 열강들끼리는 상대적으로 ‘평화와 안정’을 구가할 수 있었다. 수백 년 동안 숱한 전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던 유럽 대륙에서 40여 년 동안 사실상 전쟁이 사라졌다. 하지만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에 대한 필사적 동기는 필연적으로 식민지 재분할을 둘러싼 대결을 불러일으켰다. “금융자본은 식민지 정책의 수많은 기존의 동기에 덧붙여 원료자원, 자본수출, 세력권, 유리한 거래, 이권, 독점이윤 등을 위한, 나아가 경제영역 전반을 위한 투쟁을 만들어 냈다. (1876년의 경우처럼) 유럽 열강이 아프리카 대륙의 10분의 1만을 식민지로 점유하고 있던 때의 식민지 정책은 ‘먼저 움켜쥔 자가 차지한다’는 식의 비독점적인 방법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1900년까지) 아프리카의 10분의 9가 장악되고, 전 세계가 분할되었을 때에는 불가피하게 식민지에 대한 독점적 소유의 시대, 따라서 세계의 분할과 재분할을 위한 특히 첨예화된 투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레닌, 1916, <제국주의론>, 제10장 제국주의의 역사적 위치) 이 시기 2차 산업혁명과 함께 사회적 생산력이 급격히 발전했지만, 제국주의 열강들 안에서도 노동자계급의 다수는 여전히 굶주림을 면하지 못했다. 한 줌 독점자본에게 사회적 부가 집중되면서 빈부격차는 과거보다 더 극심하게 벌어졌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제국주의가 식민지에서 거둬들인 초과이윤을 비롯한 독점적 초과이윤이 일부 노동자들에게도 스며들었다. 영국에서부터 시작됐던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화가 미국을 비롯한 나머지 제국주의 국가들로 확산됐고, 계급투쟁의 향방을 가르는 중대한 문제로 대두됐다. 숙련·남성·백인만을 위한 관료적 노동조합주의 대 미숙련·여성·흑인을 포괄하는 계급투쟁 노동조합주의 간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대다수 나라들에서 마르크스주의 노동자정당이 건설됐고, 그 결집체로서 1889년 제2인터내셔널이 건설됐다. 그 무렵 유럽의 정치상황은 중요한 변화를 맞이했다. 주기적으로 펼쳐지던 봉기와 바리케이드 전투가 사라지고 선거와 의회의 시대가 찾아왔다. 부르주아혁명이 일단락되고, 주기적으로 사회를 뒤흔들던 전면적 공황이 만성적인 장기불황으로 대체됐으며, 지배계급이 보통선거권을 허용하면서, 선거와 의회를 중심으로 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가 본격화한 것이다. 제2인터내셔널 정당들은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결합한 강령을 내걸고 부르주아 선거에 성공적으로 대응하며 노동자대중 속에서 꾸준히 조직력을 확대해 나갔다. 그런데 독일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제2인터내셔널 앞에는 두 개의 함정이 있었다. 첫째, ‘자본주의 개혁’ 자체를 목표로 삼는 노골적인 개량주의였다. 베른슈타인은 ‘이제 자본주의가 공황을 극복했고 중간계급이 성장하고 있으며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의회주의를 통한 점진적 개혁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제2인터내셔널 대다수는 ‘사회주의 건설은 혁명적 단절 없이 가능하지 않다’는 믿음을 견지하면서 노골적인 개량주의를 거부했다. 둘째, 당이 선거와 의회를 중심으로 계속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 사회주의를 향한 혁명적 단절을 실현할 수 있으리라는 은폐된 개량주의였다. 그러나 훗날의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권력을 둘러싼 계급 간의 격돌이 다시금 봉기와 혁명의 시대를 불러올 때 그 직접적인 물리적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에 필요한 정치투쟁 역량이 노동자 대중운동의 성장과정 속에서 구축돼 나가야 했다. 1905년 러시아혁명에서 영감을 얻은 로자 룩셈부르크는 독일 사회민주당이 정치파업과 경제파업을 결합시킨 대중파업을 이끌면서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정치투쟁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지만, 다수파는 이를 철저히 무시했다. 독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제2인터내셔널의 대다수 당들이 은폐된 개량주의에 철저히 함몰된 반면, 변방으로 취급되던 러시아의 볼셰비키는 혁명과 반동의 시기를 가로지르고 합법과 비합법의 투쟁형태들을 결합시키며 거듭된 도전을 펼친 끝에 1912~14년 노동자대중의 직접적인 정치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고 있었다. 볼셰비키는 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수많은 정치파업을 앞장서 조직하면서 광범한 혁명적 노동자들을 창출해 냈다. 제2인터내셔널 안에서 발생한 이 차이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제2인터내셔널 대다수가 무기력하게 제국주의 전쟁에 끌려들어가며 비참하게 파산한 것과 달리, 볼셰비키만은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라는 결의를 행동으로 연결시키면서 1917년의 혁명을 향해 뻗어나갈 수 있게 했다. 3) 세계전쟁과 대공황과 노동자혁명의 시대 (1914~1945)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재분할 쟁탈전은 몇 차례 국지전과 첨예한 전쟁위기를 거친 끝에 마침내 1914년 제국주의 세계전쟁을 불러일으켰다. 1918년까지 계속된 제1차 세계대전은 세계적으로 1천만 명을 희생시켰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불과 11년 만에, 누적된 경제적 모순들 위에 금융투기의 파괴적 결과가 덧붙여지면서 1929년 세계대공황이 시작됐다. 대공황은 세계 최고의 공업국이던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휩쓸었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산업생산이 미국 46%, 독일 41%, 세계 38% 후퇴했다. 무역은 보호주의 때문에 더 극심한 결과를 맞아서 미국 70%, 독일 61%, 세계 66%가 후퇴했다. 실업률도 엄청나게 치솟아서 최대 실업률이 미국 25%, 독일 35%, 영국 22%를 기록했다. 1933년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유효수요 확장 정책이 펼쳐지면서 대공황이 어느 정도 수습돼 나갔다. 대공황은 과잉생산과 과잉축적 때문에 생산과 소비의 간극이 심각하게 벌어진 상황을 뜻했는데, 정부가 재정확장을 통해 유효수요를 증대시킴으로써 간극을 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1937년 다시 급격한 침체가 더욱 가파른 양상으로 전개됐다. 소비가 활성화되자 유효수요 확장분 이상으로 생산이 확장되면서 생산과 소비의 간극이 더 벌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막대한 생산과잉을 해소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인위적 소비와 거대한 생산능력 파괴만이 대공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 답은 군비경제고, 대규모 전쟁이었다. 특히 대공황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던 일본이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을 잇달아 벌이면서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성공한 것은 전쟁이 어떻게 대공황을 타개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본보기였다. 대공황에 대응하고자 제국주의 열강들이 매달린 보호주의는 대공황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열강들 간의 긴장과 대결을 격화시키고 있었다. 대공황이 불러온 계급투쟁 고양에 대한 반동적 대응으로 등장한 파시즘이, 세계 제패를 꿈꾸며 전쟁의 불을 당겼다. 대규모 전쟁을 통해 대공황으로부터 탈출하려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열망은 마침내 두 번째 제국주의 세계전쟁을 전면화했다. 결국 1939~45년 제2차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적으로 5천만 명을 희생시키는 참혹한 대량학살과 대량파괴를 거치고서야 자본주의는 비로소 대공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1914~45년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점철됐던 이 30여 년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했던 시기이자,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그야말로 사활적 위기에 빠졌던 시기였다. 자본주의는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들조차 파괴하면서 노동자계급과 인류를 되풀이하여 절멸의 위기로 몰아넣었다. 일찍이 로자 룩셈부르크가 역설한 대로 노동자계급 앞에는 오직 “사회주의냐 야만이냐” 하는 두 갈래 길만이 놓여 있었다. 이 시대에 세계전쟁과 대공황의 야만을 끝장내기 위해 세계의 수많은 노동자투사들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혁명적 투쟁에 나섰다. 빛나는 승리들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제2인터내셔널의 대다수 지도자들이 각기 자기 나라 자본가들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던 것과 달리,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전쟁을 강요하는 지배계급에 불굴의 투지로 맞선 결과 끝내 노동자혁명을 성공시켰다. 1917년 러시아 노동자혁명은 광범한 노동자대중의 혁명적 각성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려는 결연한 행동들이 볼셰비키라는 뛰어난 혁명적 지도력과 결합한 결과였다. 혁명을 성공시킨 소비에트 노동자권력은 은행과 기업을 국유화하고 계획경제를 수립했다. 장군들이 이끌던 차르와 자본가의 군대는 병사소비에트가 이끄는 인민의 군대로 재편됐다. 농민들은 농민소비에트를 중심으로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고 재분배했다. 러시아 제국 내 소수민족들은 민족자결권에 입각해 각자의 소비에트 권력을 건설하고 자유 의지에 따라 소비에트연방 참여를 결정했다. 러시아 노동자혁명은 △여성에게 투표권과 노동권 부여 △남녀 동일임금 보장 △유급출산휴가제 도입 △임신중지 합법화 △가사노동 사회화 △자유롭고 평등한 결혼제도 도입 △동성애 합법화 등을 통해 여성과 소수자의 삶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약한 고리를 끊어낸 러시아 노동자혁명은 세계 자본주의 사슬 전체를 뒤흔들었다. 러시아 노동자혁명은 전 세계 노동자들과 식민지 대중들에게 스스로 당당하게 일어선다면 반동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끝장내고 착취와 억압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파했다. 러시아 혁명의 승리를 이어가고자 하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적·역동적 투쟁들이 이 시대 내내 수많은 나라에서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918~23년 독일, 1919~20년 이탈리아, 1926년 영국, 1926~27년 중국, 1931~37년 스페인, 1934~36년 프랑스, 1934~37년 미국 등에서 펼쳐진 노동자투쟁들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대중의 혁명적 도전이 거듭해서 펼쳐졌지만 또 다른 노동자혁명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 노동자계급 지도력의 문제였다. 파산한 제2인터내셔널에 뿌리를 둔 거대한 개량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은 계속해서 노골적으로 자본가계급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노동자대중의 혁명적 전진을 가로막았다. 또 하나의 큰 문제는 러시아혁명의 성공을 토대로 조직된 코민테른마저 스탈린주의로 넘어가면서 수많은 좌충우돌 끝에 반혁명적 개량주의로 귀결됐다는 점이다. 세계혁명이 정체되면서 러시아 혁명이 일국에 고립되자 그 약점과 한계가 극대화한 러시아 노동자국가는 스탈린주의 관료들이 노동자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퇴보한 노동자국가’가 되었다. 러시아 혁명의 성과를 체계적으로 파괴해 나가던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1930년대 중후반 남아 있던 볼셰비키 중핵대오를 전멸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에게서 권력을 찬탈하는 반혁명을 완성했다. 소련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이 국가를 앞세워 자본주의 산업화를 진행하면서 스스로 착취와 억압의 주체로 기능하는 것과 함께 장차 통상적인 자본가계급으로 변신할 기회를 도모하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되었다. 혁명적 노동자당들 내부에서 정치적 미숙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약점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 시대 혁명적 노동자당들의 경험은 성공 못지않게 실패를 통해서도 미래의 혁명적 지도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활용돼야 할 중요한 교훈들을 남겼다. (파시즘에 맞서면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역량을 강화해 나가기 위해서는, 한편으로 광범한 노동자들의 위력적인 대중투쟁을 발전시켜 나가고 다른 한편으로 그를 통해 노동자대중이 개량주의 세력의 영향력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노동자 공동전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은 노동자 헤게모니를 구축하여 광범한 피억압 민중들을 동맹세력으로 끌어들이되, 자본가 세력 일부와 연합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발을 묶는 인민전선의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대중의 혁명적 역동성을 극대화하여 아래로부터 피억압 대중을 견인하는 방식으로 전개해야 한다! 혁명적 노동자당은 노동자대중이 당면한 고통을 해결하기 위한 절실한 투쟁 속에서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깨달아 갈 수 있도록 대중의 현 의식과 사회주의를 연결하는 이행요구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위기 속에서 다양한 요인이 결합하여 온갖 위기를 발생시키고 있다. … 자본가계급의 경제, 국가, 정치, 국제관계는 사회 위기에 의해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다. …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계급은 깊은 불만에 차 있다. 수많은 대중이 다시 또 다시 혁명의 길로 나서고 있지만, 매번 자기 조직의 보수적 관료기구에 의해서 가로막히고 있다. … 전 세계 특히 스페인, 프랑스, 미국, 그리고 여러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코민테른은 냉소를 머금으며 반혁명을 수행하였다. … 인민전선은 러시아 10월 혁명의 깃발을 흔드는 척하면서 자본가계급과 화해하고 있다. 결국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거세되고 파시즘이 등장하였다. 제국주의 세력은 한편으로는 인민전선을 또 한편으로는 파시즘을 이용하여 노동자혁명을 침몰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할 수 있는 객관적 조건은 무르익었으나 혁명의 주체적 조건인 노동자계급과 그 전위당은 조직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다. 노동자계급의 구세대는 혼란과 좌절에 빠져 있으며 신세대는 경험이 부족하다.” (트로츠키, 1938, <죽음으로 치닫는 자본주의와 제4인터내셔널의 임무>) 결국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패배를 딛고 자본가계급이 제2차 세계대전의 대량살상과 대량파괴를 통해 자본주의에 새로운 원기를 불어넣으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사활적 위기가 해소되었다. 4) 전후호황과 개량주의의 시대 (1945~1980) 제2차 세계대전은 실물적 대량파괴를 통해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낮추고 군수물자의 대량소비를 통해 생산과 소비의 간극을 해소함으로써 자본의 이윤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한동안 왕성하게 확대재생산 운동을 펼칠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하면서, 자본주의는 1940년대 후반부터 25년가량 안정된 성장을 거듭하는 이른바 전후호황의 황금기를 누렸다. 이 시대에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한 국가의 핵심 정책은 ‘유효수요 확장’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의 식민지 국가들이 대거 정치적 독립을 실현함으로써, 식민지에 대한 수탈은 (종속에 따른 수탈로 축소되면서)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는 핵심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잃었다. 대신 미국을 비롯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재정확장 정책을 중심으로 유효수요를 확장함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간극을 좁히려 했다. 유효수요 확장은 크게 (임금인상 허용과 복지제도 도입을 활용한) 노동자의 구매력 향상과 (냉전의 대립구도를 활용한) 대규모 군비경제 지속을 통해 이루어졌다. 케인스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린 ‘유효수요 확장’ 정책은 대공황을 극복했다는 허명과 함께 전후호황을 이끈 주역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1970년대에 이르러 심각한 경제위기가 닥쳤다. 무엇보다 전후호황 동안 이루어진 자본의 왕성한 확대재생산 자체가 ‘자본의 유기적 구성 고도화’에 따른 ‘이윤율 저하 경향’이 다시 본격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효수요 확장’ 정책 자체의 모순이 빚어낸 결과가 (심각한 불황과 물가상승이 결합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형태로 덧붙여졌다. ‘유효수요 확장’ 정책은 생산과 소비의 간극을 줄이는 데 목표가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과잉이 오히려 매우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유효수요 확장을 통해 소비를 늘릴 때마다 자본가들은 생산을 더욱 높이 끌어올렸다. 결국 생산과 소비의 간극은 정부 재정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까지 벌어졌다. 자본가계급의 소유권을 신성시하는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의 무제한적인 확장 욕구를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 생산과잉의 심화는 극심한 불황으로 연결됐다. 여기에 재정확장 재원을 충당하는 방법의 문제가 있었다. 유효수요 확장 정책의 초기에 국가는 자본가들에게 높은 세금을 부과함으로써 재정확장 재원을 조달했다. 이때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화폐발행량 확대가 주요 재원 조달방안으로 대체됐다. 특히 미국은 1960년대 중반 이후 베트남전쟁을 치르면서 막대한 양의 달러를 발행했다. 이것은 세계 기축통화이던 달러의 가치를 급격히 하락시켰고, 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시행한 금태환 폐지는 달러의 가치하락을 전 세계 화폐의 가치하락으로 확산시켰다. 그런 상황에서 오일쇼크까지 겹치자 높은 인플레이션이 세계를 뒤덮었다. 그렇게 해서 1970년대에 초유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세계를 휩쓸었지만, ‘유효수요 확장’ 정책은 어떤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었고 따라서 핵심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급격히 상실했다. 이른바 전후호황의 ‘황금기’ 동안 제국주의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노동자들에게도 얼마간 개량의 떡고물이 주어졌고, 이는 ‘복지국가 자본주의’에 대한 환상을 널리 확산시켰다. 개량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은 자본가들에게 적극 협력하며 지속적인 이윤 확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개량과 환상의 시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전후호황 시기 자본의 지속적인 확대재생산은 노동자계급의 규모를 빠르게 확대시켰다. 특히 청년 노동자들은 1960년대 후반부터 세계 곳곳에서 개량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의 통제를 뚫고 아래로부터 거침없이 활력을 뿜어내며 자본의 권력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억압과 차별에 맞선 학생들의 투쟁도 함께 어우러졌다. 게다가 1970년대에 경제위기가 전개되면서 그 부담을 전가하려는 자본가들의 공세까지 펼쳐지자 노동자들의 투쟁은 더욱 거세게 불타올랐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포르투갈, 스페인,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이란, 중국, 체코, 폴란드 등 세계 곳곳에서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사이에서 치열한 대결이 펼쳐졌다. 특히 1968년 프랑스에서는 2천만 노동자들이 무기한 총파업으로 2주 동안 나라를 멈춰 세웠으며, 1972~73년 칠레에서는 코르돈, 1979년 이란에서는 쇼라, 1980~81년 폴란드에서는 연대파업위원회 등으로 노동자평의회가 등장했다. 그런데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거세게 타오른 노동자투쟁들은 엄청난 파괴력을 가졌지만 혁명을 향해 도약하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노동자투쟁의 거대한 규모와 폭발력에 비해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지도력이 너무 취약한 탓이었다. (세계적인 수준에서 보자면) 혁명적 세력은 제2차 세계대전과 전후호황기를 거치며 매우 약화되었다가 이 시기에 펼쳐진 거대한 노동자투쟁에 힘입어 비로소 부활의 기지개를 펴는 상태였다. 혁명적 지도력을 갖추지 못한 노동자투쟁들은 두텁게 포진한 개량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에게 철저히 가로막혔다. 특히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인민전선을 통해 자본가세력과 협력한 뒤, (기존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국민정당 노선을 추구하며 떠나간 빈자리를 대신해) 노동자들에 기반을 둔 대표적인 개량주의 정당으로 따라서 가장 결정적인 걸림돌로 기능했다. 프랑스 공산당은 1968년 5월의 거대한 총파업을 부르주아 선거를 앞세워 잠재움으로써 허망한 패배로 이끌었다. 이탈리아 공산당은 1970년대 후반 자본가세력과 ‘역사적 타협’에 나서며 10년을 이어가던 노동자투쟁의 ‘뜨거운 가을’을 종결시켰다. 한편 자본주의 위기 국면에서 집권의 기회를 맞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개량 없는 개량주의’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를테면, 영국 노동당은 노동당 정부야말로 자본주의 위기를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고 그에 맞선 노동자투쟁을 가로막는 데서 가장 효율적인 도구임을 거듭 입증해 보였다. 노동자투쟁이 개량주의 정당들과 노동조합 관료들에 가로막혀 허우적거리자, 자본가계급은 노동자투쟁을 완전히 잠재우기 위해 결정타를 날렸다. 1973년 칠레를 비롯해 수많은 나라에서 미국 CIA 후원 아래 쿠데타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군사정권들은 노동자투쟁을 철저히 진압했고 수많은 노동자투사들을 고문하고 학살했다. 세계 곳곳에서 10여 년의 대격돌을 펼친 끝에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의 반란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다. 이 시대에 스탈린주의 체제는 냉전 구도 아래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성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동유럽 8개국과 북한에서는 소련군의 진주를 토대로, 이후 중국·베트남·쿠바에서는 농민이 주도한 자체 혁명을 통해 스탈린주의 체제가 수립됐다. 스탈린주의 체제의 확산과 독자적인 세계질서 구축은 ‘사회주의’ 체제가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어떤 노동자혁명도 없이 이들 나라에 수립된 스탈린주의 체제는 이미 반혁명이 완성된 소련에서와 마찬가지로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일 뿐이었다. 노동자 민주주의가 완전히 결여된, 그리고 노동자 자주관리와 결합하지 못한 ‘국유화와 계획경제’는 국가권력을 장악한 관료집단이 착취와 억압의 주역으로서 자본가계급의 역할을 수행하는 ‘관료적 명령경제’로 현실화했다. 실제로 스탈린주의 체제들은 이 시대에 이미 심각한 모순들을 드러내고 있었다. 소련은 1920~30년대의 급격한 성장과 달리 관료적 명령경제의 비효율성이 점차 고조되면서 1960년대 이후 구조적인 침체로 완연히 빠져들었다. 원자화됨으로써 무기력해진 노동자들은 깊은 냉소와 수동성에 빠졌고, 관료집단 스스로도 관료적 명령경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갔다. 중국에서는 관료적 명령경제에 내재된 관료적 실적주의가 1950년대 말 대규모 아사자를 발생시킨 가운데 관료적 명령경제를 고수하려는 관료집단과 시장경제로 전환하여 통상적인 자본가계급으로 변신하려는 관료집단 간의 충돌이 펼쳐지다가, 1966~73년의 이른바 문화대혁명을 통해 관료적 명령경제의 극단적 폐해가 확인된 후 관료집단 전반의 방향이 시장경제 전환으로 정리됐다. 한편 소련이 1956년 미국과의 평화공존을 선언하고 나서자 중국은 이를 수정주의로 비판했고 그렇게 악화된 양국관계는 결국 1969년 군사적 충돌로까지 치달았다. 그런데 정작 중국은 1972년 미국과 전격 정상회담을 갖고 소련을 고립시키는 데 협력하는 대가로 미국에게서 시장경제 전환을 지원받기로 하는 역사적 거래에 나섰다. 결국 다음 시대에 우리가 보았던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은 이 시대에 스탈린주의 체제들에서 펼쳐진 사태들의 필연적 결과였다.2023-01-10 | 조회 3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