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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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4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 양준석
  • 등록 2023.01.18 09:04
  • 조회수 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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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로널드 레이건, 마가렛 대처 (사진출처: american prospect)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1970년대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매우 심각하게 하락해서 바닥까지 떨어졌다. 1970년대 노동자계급의 세계적 반란을 잠재운 자본가계급은 1980년대 이후 이윤율 저하를 상쇄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매우 공격적으로 추진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라는 한 묶음의 대책이 지난 40여 년의 세계를 지배했다.

 

1) 1980년대 이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기 위해, 나아가 바닥까지 내려간 이윤율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자본주의 국가가 가장 먼저 추진한 정책은 신자유주의였다. 정리해고, 임금삭감, 비정규직화, 복지축소, 노조무력화, 자본가감세, 규제완화, 기간산업사유화 등의 세부 정책을 포괄하는 신자유주의는 간단히 말해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최대한 강화하고 자본가에게 온갖 특혜를 줌으로써 자본의 이윤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데 그 목표가 있었다.


1970년대 중후반 칠레 군사정권의 실험을 거쳐, 1980년대 영국과 미국의 보수주의 정권에 의해 본격화한 신자유주의는 1990년대를 거치며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은 특히 각국의 사회민주주의 정권들이 대거 신자유주의 정책의 집행자가 되는 과정을 수반했는데, 이들은 흔히 노·사·정 협상에 입각해 신자유주의를 ‘민주적으로’ 추진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강제로 하락시키면서 자본의 이윤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는 특히 미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1978~2007년 미국 제조업의 시간당 산출량은 연 평균 3.26% 상승했지만, 노동자들의 시간당 실질임금은 연 평균 0.37% 하락했다. 2007년 미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1974년 실질임금의 85%에 불과했다. 1972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에서 시간당 노동생산성이 160.70%포인트 상승하는 동안, 시간당 실질임금은 24.28%만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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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신자유주의는 이윤율 회복에 상당한 효과가 있었지만, 이내 한계에 봉착했다. 신자유주의 자체에 내장된 모순 때문이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힘입어 개별 기업이 이윤율을 회복할수록 노동자는 더 가난해졌고 따라서 사회 전체에서 생산과 소비의 간극은 더 벌어졌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생산과잉은 구조적인 판매부진을 낳았고, 이는 이윤율 회복에 중대한 장애를 조성했다.


신자유주의가 지닌 결정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세계화와 금융화가 덧붙여졌다.


‘생산의 세계화’와 ‘시장의 세계화’가 결합된 세계화는 1980년대 중반부터 가속되다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함께 전면화했다. 세계 총GDP 대비 해외직접투자(FDI)는 1985년 0.4%에서 2007년 5.3%로 늘어났다. 세계 총GDP 대비 수출은 1986년 16.9%에서 2008년 31.2%로 늘어났다. 특히 1980년대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 1989~91년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는 스탈린주의 진영을 소멸시키면서 세계를 단일 공급망과 단일 시장으로 통합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생산의 거점 전체 또는 일부를, 값싸고 고분고분한 노동자를 찾아 국경을 넘어 세계 곳곳으로 이동시킨 ‘생산의 세계화’는 자본의 이윤율 제고에 크게 기여했다. 저개발 국가를 향한 공장이동은 추가되는 물류비용을 충분히 상쇄하고 남을 정도로 임금비용을 획기적으로 하락시켰다. 공장이동에 대한 협박은 선진국에서 노조를 무력화하고 후퇴를 강요하는 자본의 필살기가 되었다.


국가 간 무역장벽을 허물어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시킨 ‘시장의 세계화’는 시장을 획기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생산과 소비의 간극 확대라는 신자유주의의 약점을 보완했다. 중국산으로 대표되는 저렴한 수입품은 선진국 노동자들이 하락한 임금으로도 그럭저럭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함으로써 임금하락이 노동자투쟁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효과적으로 차단했다.


세계적인 공장이동은 자본주의의 지형을 크게 바꿔 놓았다. 미국·서유럽·일본에 집중돼 있던 공장은 남미·동유럽·동아시아를 향해 빠져 나갔고 최종 귀착지로 중국을 향해 몰려들었다. 세계 자본주의는 중국의 생산과 미국의 소비라는 양대 축을 중심으로 재편되었다.


금융자본은 본래 산업자본에 대한 대부나 주식투자를 통해 산업자본이 획득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이자나 배당의 형태로 나눠받음으로써 수익을 얻는 자본이다. 금융자본은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지만, 사회의 유휴자본을 수집하여 산업자본에게 공급함으로써 산업자본의 가치증식에 간접적으로 기여하기 때문에 그 대가로 이자나 배당을 분배받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주가가 지속적으로 폭등한다면, 금융자본은 이자나 배당으로 얻는 수익보다 주식 매매차익을 통해 훨씬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투기적인 불로소득에 대한 환상을 불러일으켜 중간계급과 노동자계급 상층까지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면, 주가는 자연히 한동안 오르게 마련이다. 금융자본은 주식시장 참여자들에 대한 고금리 대출을 통해서도 별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물론 실질가치를 크게 벗어난 주가는 언젠가 폭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체로 큰손들은 폭락 이전에 이미 차익을 실현하고, 폭락에 따른 손실은 대부분 개미들에게 전가된다.


이와 같은 금융수탈은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지만, 매우 큰 부작용이 있다. 주식가격이 폭락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고 그 충격으로 은행들까지 파산하면서 경제 전반이 심각한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1929년 10월 미국에서 대공황이 시작될 때 상황이 바로 그러했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을 수습하면서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에 여러 가지 규제를 도입했다. 가장 중요한 건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금지였는데, 예금을 취급하는 상업은행이 주식투자 같은 고위험 영역에 관여할 수 없게 만든 것이었다. 대공황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이런 규제는 1990년대 후반까지 60년 이상 계속됐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이런 규제들을 1999년에 대대적으로 풀어버렸다. 대표적으로 상업은행·보험사·투자은행 사이의 겸업금지 조항을 없애 버렸다. 대중들이 가진 소액의 자금조차도 최대한 투기적인 고위험 영역으로 끌어낼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적극적 지원 아래 금융수탈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과정이 바로 금융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한 금융화는,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을 기게 됨으로써 잉여가치 생산을 통한 착취만으로는 충분한 이윤을 거둘 수 없게 된 자본에게 금융수탈을 통한 추가적인 수익을 보충해 주는 장치였다.


금융수탈은 주식 매매에 국한되지 않았다. 기업을 인수한 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가치’를 높여 다시 판매하는 기업 자체의 매매도 금융수탈의 중요한 영역이었다. 부동산시장에서는 주식시장과 비슷한 일이 훨씬 큰 규모로 벌어졌는데, 여기서는 주택담보대출의 규모가 압도적인 만큼 그를 통한 금융기관의 수익도 훨씬 컸으며, 주택가격 폭등에 따라 임대료 상승으로 얻는 수익도 상당했다. 금융화가 확산되면서, 금융수탈의 영역은 외환시장, 원자재시장, 선물시장, 나중에는 암호화폐시장까지 끝없이 뻗어나갔다.


금융화는 금융부문을 비대하게 팽창시켰다. 2006년 세계 총GDP가 51.8조 달러일 때, 세계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을 더한 규모가 119조 달러에 이르렀다. 2007년 금융화의 전위부대라 할 헤지펀드들이 운용하는 금액만 10.1조 달러였다. 영국에서는 2007년 제조업에 300만 명이 고용된 반면 금융부문에는 650만 명이 고용됐다. 미국에서는 GDP 대비 전체 금융기관 자산이 1985년 110.3%에서 2007년 224.2%로 치솟았다. 세계화와 금융화가 맞물린 결과, 미국에서 제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47년 25.6%에서 2009년 11.2%로 축소된 반면, 은행·보험·증권·부동산·임대업을 합친 금융업의 비중은 1947년 10.5%에서 2009년 21.5%로 성장했다.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에서 헤매는 까닭에 쓸 만한 투자처를 쉽사리 찾지 못하던 자본은 가공할 수익률을 제공하는 금융부문에서 새로운 활기를 찾았다. 엄청나게 부풀어 오른 거품을 바탕으로 금융부문에서 투기적인 수익률을 얻을 수 있게 되자, 제조업마저 생산적 투자가 아니라 금융수탈을 향해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 지엠은 1990년대에 자회사 지맥을 통해 금융수탈에 동참했다가, 그렇게 해서 벌어들인 수익이 전체 이윤의 절반을 상회하자, 지맥에 투자를 집중하기 위해 소형차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멀쩡한 공장들을 폐쇄시켜 버렸다. (2008년 금융위기에 따른 지맥의 파산은 2009년 지엠 전체의 파산으로 귀결됐다.)


금융수탈을 위해 주식·부동산 시장에 거품을 일으키고 이를 뒷받침하려고 막대한 신용대출을 제공하는 것은 선진국에서 소비를 확장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구조에는 그 자체로 하나의 중요한 모순이 있었기 때문이다. ‘생산과 시장의 세계화’가 진전될수록 점점 더 많은 상품이 세계시장에 쏟아져 나오는데, 세계시장의 중추인 선진국에서는 신자유주의 공세와 공장이동에 따른 노동자계급의 임금하락·고용감소로 소비능력이 오히려 점점 더 위축됐다. (2010년 기준으로 미국·유럽연합·일본을 포괄하는 선진국은 세계 인구의 17.9%이지만 세계 GDP의 57.9%를 차지했다. 특히 미국은 세계 인구의 4.5%에 불과하지만 세계 GDP의 23.3%를 차지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구조가 마비되지 않고 원활히 작동할 수 있으려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인위적인 소비 확장이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했다. 미국에서 1990년대 중후반 주식거품과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거품을 국가가 은행을 매개해 막대한 신용대출로 뒷받침한 것은 그에 동승한 대중이 지갑을 열고 왕성한 소비에 나서도록 만드는 과정이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과정은 소득불평등이 빠르게 심화되는 과정이었다. 자본가들이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면서 이윤을 늘린 만큼 노동자들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 전체 국민소득에서 상위 1%가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10%에서 2007년 23%로 치솟아, 1929년 대공황 발발 직전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는 자본가들에게 꿈과 같은 세상을 열어줬다. 뉴욕을 비롯한 금융 중심지들에 포진한 국제 금융자본은 마치 지구가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되기라도 한 것처럼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기구들을 앞세워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흐름을 지구 구석구석까지 강제하면서 자본주의 세계 전반을 이끌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흐름 속에서 소련·동유럽이 붕괴하고 중국·베트남이 개혁개방에 나서자 자본가들은 ‘자본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노래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전 세계 자본가들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를 앞세워 자본주의가 영원히 승승장구하리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2) 2008년 금융위기와 대불황


금융수탈을 위해 한껏 부풀려진 주식·부동산 가격은 필연코 실제 가치에 부합하는 가격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후반 미국 주식시장에서 부풀어 올랐던 이른바 ‘닷컴버블’이 2000년에 터졌다. 그러자 수많은 주식시장 파산자들을 뒤로 하고, 금융수탈의 주요 무대가 부동산시장으로 옮아갔다.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시장에서 더욱 거대한 거품이 부풀어 올랐다. 은행들은 상환능력이 부족한 이들까지 광범하게 대출을 제공하며 주택 구입을 부추겼다. 주택소유자가 파산하더라도,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하기 때문에 주택을 압류해서 팔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준이 3~4%대의 물가를 잡기 위해 2004~06년 금리를 1.00%에서 5.25%로 인상하자, 갑자기 불어난 이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주택구매자들이 줄줄이 파산했고, 그에 따라 주택가격도 폭락했다.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한 은행들은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됐고, 하나 둘 위기로 내몰렸다. 게다가 파생상품을 매개로 미국과 세계의 금융기관들 다수가 부동산 부실채권과 연결돼 있었다. 마침내 2008년 9월 미국의 5대 투자은행과 최대 보험사를 비롯한 대규모 금융기관들이 줄줄이 파산 또는 사실상의 파산 국면에 들어섰고, 그 충격으로 주식시장이 대폭락했다. 이른바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가 전면에 부상하는 순간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사건이었다. 미국은 물론이요, 다른 나라의 거대 금융기관들도 줄줄이 파산함으로써 세계 자본주의 전체가 마비되기 직전이었다. 부동산 가격 폭등과 약탈적 대출을 통한 금융수탈은 200만 가구를 홈리스로 만들며 자본가들에게 큰 수익을 안겨주었지만, 결국 금융위기의 부메랑으로 돌아와 자본가들의 지배체제 자체를 파탄 직전까지 내몰았다.


자본주의 체제 전반이 붕괴할 위험에 직면하자, 그동안 신자유주의를 부르짖으며 ‘시장에 다 맡기라’던 자본가계급은 뻔뻔스럽게도 국가를 통해 천문학적인 구제금융을 금융기관들에게 제공했다. 2009년 11월 영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영국·유로존이 쏟아 부은 구제금융만 14조 달러로 2009년 세계 총 GDP의 4분의 1에 해당했다.


은행들의 파산은 간신히 막았지만, 선진국 소비시장이 빠르게 위축되었다. 금융위기가 터지고 불과 세 달 만에 전 세계 생산과 무역이 30% 이상 감소했다. 특히 중국에서는 금융위기 직후 세 달 만에 수출산업을 중심으로 2천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이번에는 경기부양을 위해 각국 정부들이 엄청난 재정을 쏟아 부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보조금과 세금혜택을 중심으로 소비를 진작시켰다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에서는 대대적인 토목·건설 공사가 활용됐다. 금융위기 이후 2년 동안 경기부양을 위해 각국 정부가 투입한 재정은 5조 달러를 웃돌았다.


한편 미국·유럽·일본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대규모의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정책을 장기간 실시했다. 이를테면 미국 연준은 2008년 11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6년 동안 세 차례에 걸쳐 3.6조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은행들이 보유한 채권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중앙은행이 시중 통화량을 확대하는 정책)를 실시했다. 또한 연준은 2008년 12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7년 동안 기준금리를 제로(0.00~0.25%)로 유지했다.

이와 같이 전례 없는 대규모 구제금융과 경기부양 정책을 동원함으로써, 자본주의 국가는 2008년 금융위기가 (1930년대 대공황처럼 대규모의 파산과 실업으로 넘쳐나는) 또 한 번의 폭발적인 대공황으로 발전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불황은 피할 수 없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9년까지 12년 동안 세계경제의 평균성장률이 2.5%를 기록했는데, 이는 1961~2007년 평균성장률 3.7%는 물론, 1995~2007 평균성장률 3.4%보다도 한참 낮은 것이었다. 더욱이 이 수치는 각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천문학적인 재정확장과 전례 없는 초저금리·양적완화 정책을 장기간 동원함으로써 겨우 달성한 결과였다.


대불황의 시기는, 부분적으로 애플 같은 빅테크 기업들, 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들, 테슬라 같은 이른바 ‘친환경’ 기업들의 눈부신 성장과 그에 따른 과감한 투자를 보여주었지만, 전반적으로는 체제 전반의 이윤율이 바닥을 벗어나지 못함에 따른 극심한 투자기피 현상을 보여주었다.


체제 전반의 투자기피 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대표적인 실례는 미국의 ‘자사주 매입’ 확산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해외투자를 미국으로 회수하는 기업들에게 감세 혜택을 주기로 함에 따라, 2018년 1분기 미국 기업들이 2,170억 달러를 미국으로 회수했는데, 이는 전체 해외투자금 2.1조 달러의 약 10%였다. 그런데 상위 15개 기업이 회수한 810억 달러 가운데 겨우 20억 달러만 생산적 투자에 지출됐다. 반면 2018년 2분기 미국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1,500억 달러로 1분기 대비 세 배로 급증했다. 즉 미국으로 회수된 해외투자의 대부분은 생산적 투자 대신 경영권 방어나 주가 견인을 위한 ‘자사주 매입’에 투입됐다.


투자기피 현상은 은행의 대출 방향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미국 상업은행들이 1970~81년 제공한 총신용 가운데 상공업대출의 비중은 25.0%였으나 2008~19년에는 16.1%에 불과했다. 반면 부동산대출의 비중은 같은 기간 19.1%에서 37.0%로 상승했다. 한국에서는 투자기피 현상이 재벌 대기업의 사내유보금 급증으로 나타났다. 2008년 221.6조였던 1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은 2019년 821.6조로 성장했다.

결국 대불황의 시기는 자본주의 축적체제에 발생한 모순을 해소함으로써 새로운 호황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모순을 더욱 축적하고 악화시킴으로써 대규모의 폭발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었다. 모순의 축적과 악화는 세계화와 금융화 양 측면 모두에서 진행되었다.

 

3) 세계화가 불러낸 리쇼어링·보호주의·패권대결


세계화는 선진국과 신흥국 모두에서 자본가들이 저임금을 강요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고 나아가 이윤율을 회복할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는 수단이었다. 또한 낮은 물가가 유지되게 함으로써 저임금이 노동자투쟁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차단하는 기능도 했다.


그러나 대불황 시기를 거치며 세계화는 (특히 ‘생산의 세계화’는) 크게 후퇴했다. 세계 GDP 대비 해외직접투자의 비율은 1985년 0.4%에서 출발해 추세적으로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07년 5.3%까지 이르렀으나, 이후 추세적 하락을 거듭하며 2020년 1.3%를 기록했다. 세계 GDP 대비 수출(상품+서비스)의 비율은 1986년 16.9%에서 출발해 2008년 31.2%까지 상승했으나, 이후 추세적 하락 끝에 2020년 26.3%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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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요국·지역에서 GDP 대비 해외직접투자 유입분의 비율은, 대부분의 경우 2006~10년보다 2016~20년에 그 수치가 하락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미국 1.9%에서 1.5%, 유로존 5.8%에서 1.9%, 중국 3.7%에서 1.5%, 인도 2.4%에서 1.8%, 러시아 3.7%에서 1.4%로 하락했다. 브라질이나 동남아시아 등 일부 국가·지역에서는 양상이 약간 달랐지만, 여기서도 그 비율이 뚜렷이 상승하지는 못했다. 세계화의 후퇴는 특정 국가나 지역에 한정되지 않는 범세계적인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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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가 이렇게 후퇴한 이유는 무엇일까? 세계화 자체에 내장된 모순이 작동한 결과 리쇼어링, 보호주의, 패권대결을 불러냄으로써 강력한 역세계화의 힘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세계화의 초기에 선진국 자본가들이 신흥국으로 생산거점을 대거 이동한 것은 무엇보다 신흥국의 현저한 저임금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선진국 임금과 신흥국 임금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신흥국에서 산업화가 진전될수록 노동자들의 단결과 임금투쟁이 확대되면서 임금이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에서 2010년에 터져 나온 대대적인 임금투쟁은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덧붙여 선진국에서 전반적인 임금정체에 덧붙여 이중임금제까지 확산되면서 제조업 신규 노동력의 임금이 상당히 하락했다.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의 임금격차 축소는 물류비용 등까지 고려할 때 신흥국으로 생산거점 이동이 과연 장기적으로 이득인지에 대해 회의를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대략 2010년을 분기점으로 많은 선진국 기업들이 신흥국을 향한 추가 생산투자를 보류하고, 심지어 신흥국에 있던 생산거점을 다시 선진국으로 되돌리는 이른바 리쇼어링에 나서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트럼프 정부가 등장하기 이전인 2010~16년에 이미 리쇼어링으로 43만 8천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길 정도였다.


그런데 리쇼어링이 비교적 조용한 경제적 현상이었던 것과 달리, 보호주의와 패권대결의 부상은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강력한 정치적 현상이었다.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는 소련·동유럽의 몰락과 중국의 시장경제 전환을 포괄하며 사실상 세계를 하나의 질서로 재통합해 냈는데, 그와 같은 단일한 세계질서는 반대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가 원활하게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정치적 기반이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각국 정부들이 단일한 세계질서에 입각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한 것은 금융위기가 폭발적인 대공황으로 나아가지 않고 대불황 정도로 수습되게 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세계화는 이 단일한 세계질서를 밑바닥에서부터 뒤흔드는 보호주의와 패권대결을 다시 불러냈다.


2009년 4월 런던에서 G20 제2차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각국 정상들은 금융위기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 ‘보호주의 저지’를 공식 결의했다. 1930년대에 세계 각국이 보호주의에 빠짐으로써 대공황을 크게 악화시켰던 경험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다짐이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로 피폐해진 데다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더욱 급격하게 삶의 후퇴를 경험한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민중이 (이들을 이끌 역량 있는 혁명적 세력의 부재라는 조건 위에서) 보호주의 세력에게 거대한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마침내 2016년 영국에서 유럽연합 탈퇴가 국민투표를 통해 결정되고, 미국에서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보호주의가 세계 정치와 국제관계의 전면에 부상했다.


보호주의 세력의 집권은 기왕에 진행되던 리쇼어링을 더욱 가속시켰다. 트럼프 정부가 해외투자를 회수하는 기업들에게 대규모 감세 혜택을 제공한 결과 2017~20년 리쇼어링으로 63만 7천 개의 일자리가 추가됐다. (앞서 본 것처럼 회수 자금의 대부분이 자사주 매입에 투입됐는데도 그 정도 결과가 나왔다.) 보호주의 세력의 집권은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정치적 힘으로도 기능했다. 트럼프가 내세운 ‘미국 우선주의’는 중국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유럽의 전통적인 동맹들과의 관계에도 큰 균열을 만들어냈다. 외국과 이주민을 혐오하는 보호주의의 득세는 세계 곳곳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을 혐오하는 온갖 극우 세력들을 강력하게 고무했다.


세계화로 ‘세계의 공장’이 된 중국은 빠른 성장을 거듭한 끝에 미국의 패권을 위협할 만큼 도약했다. 더 이상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미국과 추격의 시간을 단축하려는 중국 사이의 갈등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패권대결을 조기에 가시화했다.


중국에서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1982년, 미국 GDP 대비 중국 GDP의 비율은 6.1%였다. 한동안 이 수치는 완만하게 증가해서 중국이 WTO에 가입하던 2001년에도 12.7%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후 6년 만에 이 수치가 두 배로 늘어나 2007년 24.5%를 기록하더니,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다시 4년 만에 두 배로 늘어나 2011년 48.4%를 기록했다. 게다가 2010년부터는 중국 GDP가 일본을 추월하며 세계 2위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오랜 밀월을 대신해서 긴장과 갈등을 불러왔다. 2011년 오바마 정부는 ‘잠재적 적국’으로서 중국에 대한 견제와 포위를 뜻하는 ‘아시아 회귀 전략’을 미국의 최상위 대외정책으로 설정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추격의 고삐를 더욱 당겼다. 중국의 GDP가 처음으로 미국의 절반을 넘어서서 52.5%를 기록하던 2012년, 당 총서기에 오른 시진핑은 중국이 세계 최강국이 되는 꿈, 즉 ‘중국몽’을 전면에 내걸었다. 나아가 중국의 GDP가 미국의 60.8%를 기록하던 2015년, 중국은 2025년까지 10대 핵심 첨단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중국제조 2025’ 계획을 발표했다.


중국의 GDP가 미국의 3분의 2를 넘어서며 67.7%를 기록하던 2018년,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전면적인 무역분쟁으로 불붙었다. 2018년 7월 트럼프 정부의 선공으로 340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대한 25% 보복관세를 주고받으며 시작된 미·중 무역분쟁은, 2019년 미국이 3천억 달러 규모의 추가 수입품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화웨이를 비롯한 첨단기술 기업들을 제재하자 중국이 미국산 농산물 수입을 축소하는 양상으로 확대된 가운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무역분쟁을 거치며 미국의 중국산 수입품 가운데 관세부과 대상이 1.0%에서 66.4%로 크게 확대됐으며, 평균 관세율은 3.1%에서 19.3%로 상승했다. 미국은 무역분쟁을 활용해 2019년 중국과의 GDP 격차를 다시 벌릴 수 있었지만, 중국이 빠르게 대응력을 회복하면서 2021년 중국의 GDP가 미국의 77.1%까지 이르게 되었다. 미국의 강력한 견제와 중국의 왕성한 추격은 미·중 패권대결이 점점 더 격화될 수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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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전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의 결함을 보완하며 이윤율 저하 경향을 상쇄하고 만회하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세계화의 자체 모순이 전개된 결과 원래의 기능도 현저히 약화됐을 뿐만 아니라 보호주의와 패권대결이라는 (세계질서를 송두리째 뒤흔들며 자본주의 위기를 결정적으로 심화시킬) 정치적 힘을 만들어내고 말았다.

 

4) 더욱 거대한 금융위기를 향해 치달아 온 금융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물경제가 침체와 저성장에 갇힌 것과 달리, 세계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은 미국을 중심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계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07년 4분기 115.5%로 정점을 기록한 뒤, 금융위기를 거치며 2008년 4분기 54.6%까지 추락했다가, 이후 추세적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21년 4분기 128.1%로 새로운 정점에 이르렀다. 새로운 정점의 수치는 금융위기 직전보다 12.6%포인트나 높다. 세계 주식시장에 금융위기 직전보다 더 큰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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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주식시장은 더 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미국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00년 1분기 164.7%와 2007년 2분기 142.6%로 정점을 기록한 뒤, 각각 닷컴붕괴와 금융위기를 거치며 2003년 1분기 94.9%와 2009년 1분기 74.5%로 추락했다가, 이후 추세적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21년 4분기 211.4%를 기록했다. 새로운 정점의 수치는 닷컴붕괴 직전보다는 46.7%포인트, 금융위기 직전보다는 68.8%포인트나 더 높다. 미국 주식시장에서는 닷컴붕괴나 금융위기 직전보다 훨씬 더 큰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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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부동산시장도 심각하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 대비 주택가격지수는 2006년 5월 155.1%로 정점을 기록한 뒤, 부동산 가격폭락과 금융위기를 거치며 2012년 2월 99.4%까지 추락했다가, 이후 추세적 상승을 거듭한 끝에 2022년 5월 178.1%로 정점에 이르렀다. 새로운 정점의 수치는 금융위기 직전보다 23.0%포인트 더 높다. 미국 부동산시장에서도 금융위기 직전보다 상당히 더 큰 거품이 조성된 것이다.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도 심각한 수준의 부동산 거품이 조성돼 있다. 2022년 6월 블룸버그는 임대료 대비 가격과 소득 대비 가격을 합산해 본 결과 OECD 국가들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19개 국가의 부동산시장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전보다 더 큰 거품이 조성돼 있다고 분석했다.


2008년 이전, 자본가들에게 있어서 금융화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따른 초과착취에 덧붙여) 금융수탈을 통해 추가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금융수탈이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붕괴로 내몰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수단임을 여실히 입증했다. 그러므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적어도 한동안은 금융수탈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이 자본가들에게 최소한의 합리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60년 이상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확인한 것처럼 2008년 이후 금융수탈은 더 거대한 규모로 전개됐다. 그리고 그 결과 지금 자본주의에는 2000년 닷컴붕괴와 2008년 금융위기를 낳았던 두 거품보다 훨씬 더 큰 거품이 조성돼 있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금융수탈이 아니고서는 자본주의가 존립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동안 착취를 강화하기 위해 세계적으로 엄청난 신자유주의 공세가 퍼부어졌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 전반의 이윤율은 여전히 바닥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게다가 착취를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던 세계화는 2008년 이후 빠르게 후퇴해 왔다. 자본주의의 동력은 자본가들의 끝없는 이윤욕인데, 대규모의 금융수탈을 통하지 않고서는 그 이윤욕을 제대로 충족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는 금융수탈 없이는, 금융수탈을 필사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고서는, 존립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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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이후 주식·부동산 시장 등에서 더욱 거대한 거품이 조성되고 그럼으로써 더 거대한 규모로 금융수탈이 전개된 데에는 금융수탈을 부추기고 지원하는 국가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나라마다 여러 가지 법과 제도가 작용했지만, 경제정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가 핵심이었다.


2008년 직후 미국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초저금리와 양적완화 정책을 펴기 시작한 것은 금융위기 충격으로 급격히 얼어붙은 실물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자본가들이 더 쉽게 생산적 투자에 나설 수 있도록 시중에 충분한 화폐를 공급하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바닥을 기는 이윤율 때문에 자본가들은 생산적 투자에 잘 나서지 않았고, 결국 넘쳐나는 화폐는 주식가격과 부동산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더 많이 기여했다. 그런데 자본가계급 전체로 보자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생산적 투자로 충분한 이윤을 거둘 수 없다면, 금융수탈로 보충하면 될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구조가 고착되자,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는 주식·부동산 가격을 지탱하고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실상 변질됐다.


그런데 특히 주식거품이 맹렬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기 때문에,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다시 금융위기가 터지는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조심스럽게 금리를 다시 인상하고 양적긴축에 들어갔는데, 특히 미국 연준은 2015년 12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9차례에 걸쳐 2.25% 금리를 인상하고 2017년 9월부터 2019년 8월까지 0.7조 달러를 회수하는 미미한 양적긴축을 실시했다. 그 표면상 이유는 ‘점진적인 경제회복에 따른 정상화’였지만, 과도하게 부푼 거품이 격렬하게 터지기 전에 미리 바람을 빼는 것 또한 실제 목표에 포함돼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준은 바람을 충분히 뺄 수 없었다. 약간의 금리인상과 양적긴축에도 미국 경제가 빠르게 하강했기 때문이다. 연준은 2019년 9월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를 재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이 터져서, 일시적으로 초유의 위기 국면이 펼쳐졌다. 이를테면 2020년 4월 미국에서는 한 달 만에 일자리 2천만 개가 사라졌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 2008년 9월부터 2009년 8월까지 1년 동안 사라진 일자리 670만 개의 세 배가 한 달 만에 사라졌다.) IMF에 따르면, 2020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각국 정부가 9.9조 달러의 재정을 지출했으며, 각국 중앙은행이 6.1조 달러의 금융 지원에 나섰다. 이렇게 투입된 16.0조 달러는 2020년 세계 GDP의 18.8%에 이르렀다.


미국 연준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다시 2020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고 4.8조 달러의 양적완화에 나섰다. 이번에도 정책의 효과는 비슷했지만 그 정도는 훨씬 심했다. 다시 한 번의 제로금리와 대규모 양적완화는 생산적 투자의 활성화보다 주식·부동산 거품을 끌어올리는 데 훨씬 더 많이 기여했다. 그 결과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의 거품이 전 세계 주식·부동산 시장에서 조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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