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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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연재]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5부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 양준석
  • 등록 2023.01.20 11:38
  • 조회수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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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은 마침내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를 뒤로 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게 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는 다시 한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 그래서 혁명으로 뒤덮여야 할 시대다.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동안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는 어떤 시대들이 있었는가? 자본주의 아래서 그와 같이 시대가 구분되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지난 40여 년 세계 자본주의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 시대는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내재적 모순이 작동한 결과 막을 내리고 있는가? 세계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위치와 함의는 무엇인가?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라는 제목 아래 다섯 번에 걸쳐 진행될 이번 연재는 그런 질문들에 답해 보기 위한 하나의 시도다.


[1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 인플레이션이 열어젖힌 새로운 시대

[2부] 자본주의 역사 속에서 시대들이 구분되게 하는 요인

[3부] 앞선 네 번의 시대

[4부]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 (1980~최근)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5부]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거듭되는 신자유주의 공세에도 체제 전반의 이윤율은 바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세계화는 점점 후퇴하며, 금융화는 더욱 거대한 금융위기를 향해 치달으면서,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의 시대가 근근이 이어져 왔다. 그런데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강력한 충격을 안기며 이 시대를 끝장내고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무엇보다 이전 시대 동안 축적된 모순들이 폭발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위기가 격렬하게 분출할 시대다. 또한 마찬가지로 이전 시대 동안 축적된 모순들로부터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충돌과 전쟁이 일상화할 시대다. 나아가 경제위기와 전쟁이 서로 맞물리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과 인류를 끝없는 고통 속으로 몰고 들어갈 시대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계급투쟁이 부활하고 전진할 것이며 나아가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노동자혁명의 전망이 다시 한번 미래의 막연한 전망이 아니라 눈앞의 구체적인 과제이자 가능성으로 떠오르게 될 시대다.

 

1) 패권대결과 보호주의가 만들어 낼 새로운 세계질서


새로운 시대의 전환점이 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떤 배경 위에서 시작됐고, 또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을까?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난 30년 동안 국가들 간의 세력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1~2020년 세계 총GDP에서 국가별 비중의 변화를 살펴보면, 흔히 짐작하는 바와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변화는 중국의 눈부신 상승이고, 일본의 급격한 하락이다. 또한 독일·영국·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의 전반적인 하락을 볼 수 있다. 미국은 상승하다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크게 하락한 뒤 다시 회복하고 있다. 인도·브라질·러시아의 추세적 상승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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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2020년 세계 총 수출에서 국가별 비중의 변화를 보면, 역시 중국의 눈부신 성장이 가장 눈에 띈다. 미국·독일·일본·영국·프랑스·네덜란드·이탈리아·캐나다·스페인 등 기존 선진국들은 공히 추세적으로 하락해 왔다. 한국·싱가포르·인도·멕시코·러시아·브라질·사우디·튀르키예 등 신흥국들은 중국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한 성장 추세를 보여준다.


1991~2020년 세계 총 해외직접투자(자본수출)에서 국가별 비중의 변화를 보면, 중국·일본·독일·캐나다·한국·러시아의 성장과 미국·프랑스·영국·스위스의 하락이 교차함을 볼 수 있다. 브라질·사우디·인도·튀르키예는 계속해서 미미한 수준이다. 여기서는 수출에 비해 특정 국가로의 쏠림이 더 큰 것과 기존 선진국들과 신흥국들 안에서도 흐름이 서로 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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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91~2020년 세계 총 군비지출에서 국가별 비중의 변화를 보면, 지금까지와는 상당히 다른 상황을 볼 수 있다. 미국의 하락과 중국의 상승이 교차했지만, 여전히 그 격차가 매우 크다. 또한 경제력 지표에서 거의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던 사우디·인도·러시아가 꾸준한 성장 끝에 3~5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영국·프랑스·일본·독일·이탈리아·스페인은 꾸준한 하락을 보여준다. 한국·호주·브라질·캐나다·이스라엘·튀르키예·이란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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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20년 세계 주요 분야에서 국가별 비중 비교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종합한 국가 간 세력관계가 지난 30년의 변화를 거쳐 오늘날 어느 지점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강대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경제력에 비해 군사력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 중국은 경제력에서 미국을 상당히 추격했고 심지어 수출과 해외직접투자에서는 추월하기까지 했지만, 군사력에서는 미국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 경제력과 군사력의 상호관계에 있어서 미국과 중국이 보여주는 차이는 미국의 군비지출이 GDP 대비 3.4%인 반면, 중국은 1.7%에 불과한 것으로도 나타난다.


또 하나 두드러지는 지점은 인도·러시아·사우디가 경제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핵무력은 미국과 쌍벽을 이루지만, 종합적인 군사력을 보여주는 데는 군비지출이 더 적절한 지표일 것이다.) 그러한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 국가는 GDP 대비 각각 2.5%, 4.3%, 9.3%에 이르는 군비지출을 했다. 중국이 아직까지 경제성장에 집중하면서 군비지출 비중이 1.7%에 머물러 있고, 상시적인 전쟁위기 아래 놓여 있는 한국의 군비지출 비중도 2.6%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또는 매우 높은 수치들이 아닐 수 없다. 튀르키예는 경제력도 군사력도 강하지 않지만, GDP 대비 군비지출이 2.4%라는 상당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반면 영국·프랑스·독일·일본·이탈리아·캐나다·스페인 등 미국을 제외한 기존 선진국들은 경제력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프랑스가 나토가 요구하는 GDP 대비 2.0% 내외의 군비지출을 하면서 경제력과 엇비슷한 군사력을 보유한 반면, 나머지 국가들은 1.0~1.4%의 군비지출을 하면서 경제력보다 꽤 낮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와 같은 최근의 국가 간 세력관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중국의 급격한 추격과 미국의 견제로 미·중 패권대결이 본격화했지만 아직 군사력에서는 중국이 한참 밀린다.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미·중 패권대결은 국가 간 세력관계가 급격히 변화할 가능성을 제공하는데, 그 기회를 붙잡기 위해 급격히 군사력을 증강해 온 인도·러시아·사우디가 중국의 현저한 군사력 열세라는 빈 공간을 파고들며 자신의 영향력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이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배경과 이후 전개되는 사태들을 상당히 설명해 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은 나토의 동진에 대한 반발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역으로 나토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장악한다면 영향력 강화의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주도 아래 중국을 포위하는 쿼드에 참여해 온 인도는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불참하고 오히려 에너지 수입을 늘리면서 사실상 러시아를 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굳건한 동맹이었던 사우디는 바이든의 요청을 거절하며 원유가격 유지를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더니, 미래도시 건설에 미국의 제재대상 화웨이의 참여를 허용하며 중국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큰 틀에서 보자면,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관철돼 온 세계질서가 미·중 패권대결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경제력에 비해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러시아·인도·사우디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할 기회를 붙잡기 위해 세계질서를 더욱 뒤흔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기존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이 나토를 이끌며 우크라이나의 대리전을 적극 지원하면서 반격해 온 과정이기도 하다. 또한 러시아 등의 세계질서 재편 시도에 크게 자극받은 서방의 열강들이 적극적인 재무장에 나서게 만든 과정이기도 하며, 특히 일본과 독일은 공히 GDP 대비 2% 수준으로 군비증강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세계질서를 뒤흔드는 세 국가에게 신중하지만 분명하게 화답하고 있다. 중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러시아에 대한 직접 지지는 삼가면서도 제재에 불참하고 에너지 수입을 확대하면서 러시아를 사실상 지원하고 있다. 인도와는 ‘한 세기 동안 볼 수 없었던 중대한 변화’를 놓치지 말자며 국경분쟁의 조속한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에게는 다량의 원유·가스를 안정적으로 수입하는 대신 위안화로 결제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달러의 기축통화 유지에서 중요한 한 축인) ‘원유대금 달러화 유일결제’ 시스템에 균열을 시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후 세계질서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을 중심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진영과 중국이 주도하는 진영 사이의 대립구도로 재편될 것인가?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은 이제 그 승부가 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겠지만, 다른 주요 열강들까지 그 패권대결의 하위 파트너가 되어 진영 간 대결구도로 포괄될 것이냐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일차적으로 러시아·인도·사우디가 중국의 하위 파트너가 되거나 확고한 동맹이 될 가능성이 여전히 높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세 나라의 전략적 이해관계는 미·중 패권대결로 열린 공간을 활용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있을 뿐이다. 지금은 필요에 따라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 나가고 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또 다른 필요에 따라 다시 방향을 바꿀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또한 아직 중국은 세 나라를 휘하에 묶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


더 중요한 이유는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진영 내부의 모순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를 비판하며 ‘동맹복원’을 외쳤던 바이든의 정책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공동 대응을 통해 나토의 단결을 회복하면서 성공한 듯 보인다. 그러나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은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10년 동안 중국투자를 포기해야 보조금을 주겠다는) ‘반도체지원법’과 (전기차와 배터리의 생산시설을 북미지역으로 이전해야만 보조금을 주겠다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제정을 통해 트럼프 이상의 ‘미국 우선주의’를 실행했다. 심지어 미국 에너지 기업들이 러시아를 대신해 유럽에 가스를 수출하면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는데도 바이든 행정부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동맹국들’의 뒤통수를 때리는 미국의 행보에 프랑스와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당연히 크게 반발하면서, 반도체법·탄소국경세·핵심원자재법 등의 맞불 보호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미 보호주의가 강력한 대세로 자리를 굳힌 미국 내 정치상황과 점점 더 악화될 전반적인 경제상황은 앞으로도 미국이 당파를 초월해서 보호주의를 강화할 것임을 말해준다. 그렇게 되면, 유럽 국가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맞불을 놓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미국이 주도하는 서방 진영은 심각한 균열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미국은 (특히 미·중 패권대결이 미국의 일방적 승리로 정리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더 이상 유럽의 열강들을 휘하에 묶어 둘 힘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후 세계질서는 한편으로 미국과 중국이 패권대결을 펼치지만 이와 별개로 여러 열강들이 보호주의에 입각해 독자노선을 추구하면서 다극 대립구도가 병행하는 양상으로 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러시아·인도·사우디는 이미 세계질서 재편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행위자로 나서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나 독일 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 보호주의가 맹렬히 확산하거나 극우 세력이 집권한다면, 주변 지역을 이끄는 맹주로 스스로를 재정립하면서 미국 패권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아직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하지 않지만 지역의 맹주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 튀르키예도 복병이 될 수 있다. (반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지리정치적 조건 때문에 미·중 패권대결의 영향이 강력하게 미치면서 모든 나라가 그 구도 아래로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에 덧붙여 여러 열강들이 보호주의에 입각해 각자 영향력 강화를 추구하는 다극 대결구도는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를 가능케 했던 미국 유일 패권의 ‘단일한 세계질서’와는 상당히 다른 질서가 될 것이다. (만일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을 중심으로 각국이 결집하는 진영 간 대결구도로 재편된다 하더라도 역시 상당히 다른 질서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과 다양한 수준의 전쟁이 일상이 되고 나아가 점점 더 격화되는 격동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하이퍼인플레이션·금융대공황과 대규모 전쟁


만일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때, 각국 정부의 막대한 재정 투입과 중앙은행들의 제로금리·양적완화 정책이 시행되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그 결과는 거의 분명하다. 세계 경제는 (1930년대 대공황에 뒤지지 않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파산과 실업으로 가득 찬 폭발적인 대공황으로 진입했을 것이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발발 이후 1년 동안 그리고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위기 발발 이후 1년 동안,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치는 각각 –0.3%와 1.2%를 기록했다. 만일 이 수치가 7% 이상 또는 심지어 10%를 넘나드는 수준이었다면, 그래도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제로금리·양적완화 정책이 가능했을까? 또는 우리가 경험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을까? 간단치 않은 질문이다. 어쨌든 그런 상황이라면,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제로금리·양적완화 정책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칫하면 인플레이션에 불을 지를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하지 않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대공황으로 빨려 들어갈 수는 없으니까. 그러므로 아마 인플레이션에 불을 지르지는 않되 대공황은 차단해 낼 수 있는 어떤 기묘한 균형점을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 게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만일 그와 같은 상황이 여러 차례에 걸쳐서 되풀이된다면, 그것도 점점 더 악화된 형태로 되풀이된다면 어떻게 될까? 한두 번은 그 기묘한 균형점을 요행히 찾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가능할까? 불가능하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이퍼인플레이션? 금융대공황? 아니면 둘 다?


문제는 바로 그런 상황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그 가능성은 두 가지 사실로부터 비롯된다. 첫째,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미 전 세계 주식·부동산 시장에 사상 초유의 거품이 조성돼 있어서 언제든 거대한 금융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데, 그럼에도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막대한 금융수탈을 끝없이 추구할 수밖에 없어서 계속해서 더욱 거대한 거품을 조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둘째, 세계화를 대신해서 패권대결과 보호주의가 지배하게 될 새로운 세계질서는 인플레이션의 파고가 거듭해서 세계를 강타하도록 만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세계질서 아래서 패권대결과 보호주의 때문에 훨씬 더 자주 발생하게 될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은 꼭 전쟁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세계적인 공급망을 거듭거듭 혼란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나아가 공급망 자체가 경제 논리보다 패권대결·보호주의 논리에 의해 재편되도록 강제할 것이며, 이는 경제적으로는 상당한 추가 비용과 비효율성을 뜻하게 될 것이다.


패권대결과 보호주의를 세계화보다 앞세우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논리는 사실 이미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2022년 상당한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면서도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고율관세를 끝내 철회하지 않았다. 패권대결 일환으로 첨단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 하며, 보호주의를 앞세워 미국에서 생산하는 기업들에만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려 한다. ‘가장 저렴한 곳에서 생산’한다는 세계화의 논리는 바로 그 세계화를 힘으로 관철하던 미국에 의해 적극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가장 저렴한 곳에서 생산함으로써 가능했던 장기적인 저물가를 대신해서 이제 ‘인플레이션과 함께 사는 시대’가 장기적인 경향으로 펼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22년, 미국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빠르게 금리를 인상했다. 미국 연준의 경우 2022년 3월부터 12월까지 7차례에 걸쳐 4.25%포인트의 금리를 인상했다. 그 결과 6월 9.1%로 정점을 찍었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12월 7.1%까지 점진적으로 하락했다. 하지만 물가는 아직도 높고 연준은 2023년에도 1%포인트 가량의 추가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이번 인플레이션의 파고는 일단 잡혀갈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 금리인상이 부채부담 증가, 기업신용 경색, 가계소비 위축, 주식·부동산 가격 하락의 고리를 거쳐 초래할 경제침체의 파고를 겪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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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경제침체의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미국 연준이 2004~06년 금리를 4.25%포인트 인상하고 2년 뒤에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점을 고려하면, 더 짧은 시기 동안 더 높은 금리를 올리게 될 이번 금리인상의 파고는 결코 작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 GDP 대비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2022년 3분기에 162.1%를 기록함으로써 정점을 찍은 2021년 4분기 211.4%로부터 이미 49.3%포인트나 하락했다. (닷컴붕괴 때는 12분기 동안 69.8%포인트, 금융위기 때는 7분기 동안 68.1%포인트 하락했다.) 주식 못지않게 거대한 거품을 조성했던 미국 부동산시장은 2022년 5월 정점을 찍은 뒤 아직은 소폭 하락한 상태인데, 향후 그 하락 폭과 속도가 어떻게 되는가 또한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경제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편 IMF에 따르면 가계·기업·국가를 망라하는 세계의 총부채가 2007년 195%에서 2020년 256%로 상승했는데, 이렇게 부채가 늘어난 만큼 금리인상에 따른 부담과 파장도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은 다가오는 경제침체를 악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에는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잘 준비돼 있는 측면도 있다. 이를테면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거의 모든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로 묶어놓았는데, 이것은 금리인상에 따른 부담을 완화하는 데 (적어도 미국 안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미국 금리인상의 폭과 속도에 비해 과거와 달리 외환위기에 빠져든 국가가 아직까지 거의 없는 것은, 많은 국가들이 과거의 경험을 토대로 나름의 준비를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래서 2023년에 겪게 될 경제침체는 상대적으로 덜 심각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들도 있다. (반면 근원물가가 40년 만에 최고치인 3.6%에 이르렀는데도 GDP 대비 266%라는 세계 최고 수준 국가부채 때문에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유지하고 있는 일본, 그리고 거대한 부동산 거품 붕괴가 진행 중인 중국이 동아시아발 세계 경제위기를 촉발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2023년의 경제침체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든, 아마도 진짜 문제는 그 다음일 수 있다. 이미 GDP 대비 국가부채가 세계 평균 100%에 이를 정도로 크게 누적돼 있다는 점 때문에, 또한 쉽사리 꺼지지 않는 인플레이션의 불씨 때문에, 막대한 재정 투입과 제로금리·양적완화를 통한 경기부양이 매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2023년의 경제침체는 그렇게 심각하지 않게 출발했지만,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경기부양 정책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서 경제침체가 길게 늘어지고 점점 악화되다가 마침내 심각한 수준의 경제위기로 넘어가는 시나리오도 충분히 상정해 볼 수 있다. 또는 무리해서 경기부양에 나섰지만, 그렇게 해서 다시 한번 거대한 거품을 부풀렸을 때 훨씬 빠르고 강력한 인플레이션이 덮치는 시나리오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어쨌든 지금 2023년 이후를 구체적으로 전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로 사태가 전개되는 양상과 속도는 우리가 지금 알 수 없는 많은 변수에 의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추세만큼은 우리가 예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가 이러저러한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금융대공황 가운데 하나 또는 둘 다를 향해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 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그와 같은 파국적 상황에 이르렀을 때 자본가계급은 어떤 선택을 하려고 할까? 그런 상황에 이르렀을 때 자본가계급이 믿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탈출구는, 어마어마한 대량파괴와 대량학살을 실행함으로써 자본주의가 1930년대 대공황으로부터 벗어나 어느 정도 원기를 회복할 수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적 경험일 것이다. 지구를 완전히 끝장낼 수 있는 가공할 핵무장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와 같은 장기간의 전면전이 쉽지 않을 테니, 자본가계급은 아마도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다른 형태의 대규모 전쟁을 추진할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파국을 향해 치달아가는 동안 패권대결과 보호주의를 앞세우며 켜켜이 누적될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은 그러한 전쟁을 위해 활용될 수 있는 충분한 계기와 명분을 자본가계급에게 제공할 것이다. 지극히 반동적인 그러한 전쟁을 반드시 관철해 내려면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철저히 제압해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자본가계급은 많은 국가에서 파시즘 정권을 세우려 할 것이다.

 

3) 계급투쟁의 재건과 혁명적 전진을 향해


1980년대 이후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는 기본적으로 1970년대 세계적인 노동자투쟁의 분출을 잠재운 토대 위에서 전개됐다. 그러므로 2008년 금융위기 이전까지 세계 전반의 노동자투쟁은 착취와 수탈이 상당히 강화됐는데도 오히려 과거 어느 때보다 심각한 침체에 빠져 있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강력한 노동자투쟁의 시대를 거쳤던 한국의 경험은 브라질·남아공 등과 함께 상당히 예외적인 사례에 속했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는 노동자투쟁의 양상에도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전 세계 자본가계급이 금융위기에 따른 고통과 그 수습비용을 노동자계급에게 전가하기 위해 엄청난 공세를 지속적으로 퍼부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의 파고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민중들이 금융수탈의 집중적인 피해자가 되어 집을 빼앗기거나 파산했다.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으로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한 각국 정부가 국가부채 폭증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공공부문 정리해고·임금삭감, 복지지출 축소, 연금개악 등의 대규모 공세를 퍼부었다. 세계 곳곳의 민간 기업들도 금융위기에 따른 신용경색과 소비위축의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하기 위해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섰다. 또한 대불황 시기를 가로지르며, 노동권의 후퇴와 노동조합의 약화를 노린 노동법 개악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1980년대 이후 확산돼 온 노동유연화를 한층 가속시켜 더욱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더욱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자로 전락시켰다.


자본가계급의 집요한 공세에 맞서, 또한 파탄난 삶과 희망 없는 미래에 분노하며, 2010년 이후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민중의 거센 반격이 세계 곳곳에서 전개돼 왔다. 2010~12년에는 프랑스의 연금개악 반대파업, 아랍의 봄, 스페인의 ‘분노한 자들’ 운동, 미국의 월가점령운동, 그리스의 긴축반대 총파업 등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노동자·민중투쟁의 첫 번째 물결이 펼쳐졌다. 2018~2020년에는 프랑스의 노란조끼 시위, 홍콩의 민주화 투쟁, 칠레의 민중반란, 미국의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등을 중심으로 두 번째 물결이 펼쳐졌다. 2022년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사회를 위해 진정으로 필수적인 존재라는 자부심을 갖게 된 노동자들이 인플레이션에 따른 생존권 박탈에 맞서 세계 곳곳에서 파상적인 임금투쟁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제 세계 노동자계급은 경제침체와 경제위기로 점철되다가 끝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금융대공황 같은 파국을 향해 치달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대, 또한 이와 맞물리며 패권대결과 보호주의를 앞세운 제국주의 열강들의 충돌이 거듭되다가 끝내는 대규모 전쟁을 향해 치달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대 앞에 서 있다. 앞으로 펼쳐질 ‘위기와 전쟁의 시대’는 세계 노동자계급을 극심한 고통과 절망으로 내몰 것이며, 이 암흑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뒤집어엎는 데에 노동자계급의 유일한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투쟁과 운동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가야 위기와 전쟁의 시대를 혁명의 시대로 뒤집어엎을 수 있을까? 나라마다 계급투쟁의 양상과 발전정도에 차이가 많은 만큼 그 구체적인 답은 나라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핵심적인 방향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우리는 특히 한국 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는 관점에서 이렇게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계급적 요구를 전면에 내걸고 광범한 노동자대중이 역동적으로 참여하는 계급적 노동자투쟁의 길을 열어야 한다.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들이든 중소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든 이제는 눈앞의 협소한 변화에만 몰두하는 조합주의를 과감하게 박차고 떨쳐 일어서야 한다. 전체 노동자계급의 운명을 덮치는 큰 그림을 직시하면서, 노동자계급 전체의 요구를 세워내고 광범한 노동자대중을 끌어들이며 하나의 계급으로 뭉쳐 싸우는 법을 배워나가야 한다.


둘째, 노동자계급이 구심에 서서 광범한 민중을 단결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모든 사회적 억압과 차별에 맞선 투쟁, 기후재난과 환경파괴에 맞선 투쟁, 사회적 생존권과 민주적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투쟁 등에서 노동자계급이 선두에 서야 한다. 특히 위기와 전쟁으로 치달을 자본주의 아래서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기게 될 청년들이 노동자계급과 함께하는 투쟁 속에서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간절한 희망을 찾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셋째, 모든 자본가세력에 대한 모든 어리석은 미련을 깨부수고 오직 노동자계급 자신의 단결투쟁만을 믿는 ‘노동자계급 독립성’을 확고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노동자투쟁의 재건과 계급적·정치적 전진, 나아가 혁명적 도약을 헌신적으로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혁명적 노동자정치운동을 강력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다가오는 파국의 고통과 절멸의 위험으로부터 노동자계급과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결국 세계적인 노동자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건설에 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국가·작업장·사회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어 민주적 계획경제와 생산자 자주관리를 결합시키는 사회주의 세계체제를 건설함으로써만 자본주의에서 끝없이 되풀이돼 온 착취와 억압과 차별을 그리고 빈곤과 야만과 전쟁을 끝장내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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