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개편 방안’ - 이주노동자를 한층 더 착취하겠다는 자본가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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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신문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 - 이주노동자를 한층 더 착취하겠다는 자본가 정부

  • 김요한
  • 등록 2023.01.17 10:45
  • 조회수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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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겨레 

 

사업장 이동의 자유가 불허된 고용허가제


2004년 도입돼 시행 20년이 된 고용허가제는 철저하게 자본의 이익을 위해 설계된 합법적 노동력 착취 제도로 악명이 높다.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이 4년 10개월로 제한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도 이주노동자에게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이주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사업장 변경이 불가능하다. 사용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법령에서 정하는 사유에 해당할 때만 예외적으로 고용노동부에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사업장 변경 횟수도 최초 3년 간은 3회로, 재취업한 경우 연장 기간 1년 10개월 내 2회까지로 제한된다. 정부는 이주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경우에도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므로 “고용허가제가 외국인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한다 주장하지만 실상은 이와 거리가 멀다.


예컨대 가장 빈번한 임금체불만 하더라도 임금의 30% 이상을 2개월이 지나도록 체불한 경우 등에야 사업장 변경 신청이 가능하다. 산업재해의 경우에도 중대재해(“산업재해 중 사망 등 재해 정도가 심하거나 다수의 재해자가 발생한 경우”)이거나 “3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한 신체적‧정신적 부상이나 질병이 발생한 경우”에 한해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근로계약 위반이나 부당한 대우에 대해서는 노사 간 다툼이 있기 마련인데, 언어와 문화가 낯선 이주노동자가 외부 지원 없이 자기 권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2021년 비닐하우스에서 살던 캄보디아 이주노동자 속행 씨가 영하 18도의 혹한에 사망한 비참한 사건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주노동자 숙소로 비닐하우스가 제공된 경우는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고 얘기하지만, 언론 취재에 따르면 현재 경기도에만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숙소가 700곳이 넘는다고 한다. 안 그래도 불평등관계인 노동계약에서 사업장 이동의 자유마저 허용되지 않을 경우 사실상의 강제노동이 자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UN 사회권위원회도 지난 2017년 한국 정부에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도 폐지를 권고했을 정도다. 그러나 자본가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명색이 헌법상 기본권 수호 기관이라는 헌법재판소 역시 2021년 12월, 이주노동자 사업장 변경 제한이 합헌이라는 반인권적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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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향신문

 

이주노동자의 체류 기간은 늘려도 여전히 노동기본권은 보장하지 않겠다?


작년 말 윤석열 정부는 제36차 외국인력정책위원회(12월 28일)의 심의‧의결을 거친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이주노동자의 체류기간을 현행 4년 10개월에서 출국‧재입국의 과정 없이 최대 10년까지 늘리는 것이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가 계속 줄어들면서 노동공급 감소에 따른 성장잠재력의 약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제도 개선을 통해 2023년에는 역대 최대규모인 11만 명의 이주노동자를 신규 도입하겠다고 한다. 


자본가 정부의 인구정책은 언제나 자본의 요구에 맞게 노동력 공급의 적정 규모를 유지하는 데 있다. 생산가능인구의 축소, 즉 노동력 공급 감소는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따라서 알맞은 규모의 산업예비군을 상시 대기상태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자본의 독재권 행사를 위한 전제 조건이다. 최저임금이 곧 표준임금인 이주노동자를 대량으로 공급할 필요가 그래서 제기된다. 


문제는 값싼 노동력을 대규모로 공급하겠다는 의지만 명확할 뿐,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요구는 모조리 묵살되었단 점이다. 고용노동부는 “동일 사업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하면서 숙련을 형성하고, 한국어 능력을 갖춘 외국인력을 우대하는 E-9 외국인력 장기근속 특례 제도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일 사업장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것이 장기근속 특례의 요건이 되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용노동부 박종필 기획조정실장은 제조업의 경우 첫 직장에서 2년을 근무해야 하고, 사업장을 변경하면 변경된 사업장에서 30개월 이상을 근무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것을 넘어, 장기근속 특례라는 미끼로 사실상의 강제노동을 가능케 할 제도를 설계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뻔뻔스럽게도 “사업장 변경은 가장 첨예한 쟁점”이므로 “노사TF를 구성해 논의하고 있는데 결과가 나오면 별도의 지침을 마련해 발표하겠다”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주 노동의 비정규 불안정 노동화를 추진하겠다는 자본가 정부


이걸로 끝이 아니다. ‘고용허가제 개편 방안’에는 이주노동자를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로 운용하겠다는 구상도 포함돼 있다. 고용노동부는 “인력난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외국인력 활용체계 고도화”라는 허울 아래, ‘업종’ 외 ‘직종’ 기준을 활용해 비정규 불안정 이주노동자를 대량 공급하겠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연중 특정 시기에 생산되는 농·수산물의 가공 작업 등 일시적 인력수요에 대한 파견 방식의 인력 활용, 가사‧돌봄 등에 대한 공인된 서비스 인증기관 방식의 인력 공급 등”을 검토한다는 것이다.


현행 고용허가제에서는 원칙적으로 노동력 중간착취 제도인 파견이 금지돼 있다. 그러나 법만 그럴 뿐이다.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의 「안산시흥지역 파견노동 실태조사 보고서(2013)」에 따르면, 안산‧시흥지역 불법파견업체 이용자의 무려 90%가 이주노동자라고 보고됐을 정도다.


2020년 12월 경기도외국인지원센터에서 펴낸 「경기도 이주노동자 파견노동 실태조사(2020. 12.)」 보고서는 파견으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차별 실태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예컨대 ‘일하는 조건이나 대우에서 한국인과 차별을 받았다’는 항목에는 57.2%, ‘국적과 인종에 따른 차별을 받았다’는 항목에는 46.1%, ‘임금, 업무내용 등 근로조건이 소개업체에서 안내받은 것과 달랐다’는 항목에 44.1%의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해당 보고서에서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들이 파견 노동에서 차별을 받는 이유로 취업자유 제한 등 법적으로 취약한 지위, 인종주의 등을 꼽고 있다.


입만 열면 노사 법치주의를 떠드는 정부는 이토록 만연한 불법 실태를 바로잡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보다는 “일시적 인력수요에 대한 파견 방식”을 허용해 아예 이를 양성화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자본가 정부가 파견 업종으로 꼽고 있는 “농‧수산물 가공 작업” 등은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라 근로시간, 휴게, 휴일 규정 일체가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이다. 비닐하우스 농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보통 하루 11시간, 1주 7~80시간을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런 야만적 현실을 대체 언제까지 목도해야 하는가.


싱가포르식 육아도우미가 저출생 대책이라고?


“가사‧돌봄 등에 대한 공인된 서비스 인증기관 방식의 인력 공급” 정책도 심각하다. 자본가 정부는 저출생 문제를 철저하게 자본가들의 계급적 이해에 따라 해결하려 든다. 모든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줄이고 성차별 문화와 의식을 깨뜨리는 대신, 주 80시간의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하고 여성 혐오와 성별 대립을 정치적 지지 기반으로 삼으려 들고 있다. 필수 사회서비스를 공영화하고 공동체 전체가 가사‧육아‧돌봄을 공평하게 분담하게 하는 대신, 이주 여성 노동력을 대규모로 공급하고 민간기관이 차등화된 돌봄서비스를 판매해 이윤을 창출하도록 한다는 구상을 드러낸다. 


이것은 윤석열 정부의 일관된 태도다. 앞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2022년 9월의 국무회의에서 “한국에서 육아 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며 싱가포르식 육아‧가사 도우미의 도입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고용노동부가 가사‧돌봄 직종에 대한 이주 노동력 도입 정책을 발표하자 오세훈은 즉각 환영 의사를 밝혔다. 오세훈은 한편으로는 “할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다 동원해 저출생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떠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서울시 출자출연기관으로 공적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의 2023년 예산 168억 원 중 100억 원(62.1%)을 삭감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윤석열 역시 1월 9일 보건복지부로부터 새해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복지를 돈을 쓰는 문제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민간과 기업을 참여시켜 준시장화해 잘 관리하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며, “돌봄을 어디가 잘해주고 어디 서비스가 떨어진다는 점이 알려지면 손님이 (특정 업체에) 많이 몰리며 (그곳이) 매출·수익을 올릴 수 있다. 이게 준시장적인 경쟁 시스템”이라고 떠들었다. 돌봄의 시장화를 노골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돌봄서비스 업체의 이윤 제고를 위해서는 돌봄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최저한도로 제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돌봄 노동자들의 처우는 뿌리 깊은 성차별 이데올로기에 의해, 그리고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최저 수준으로 정해질 것이다. 이것은 나아가 노동자계급 내부의 성별 분업 이데올로기 등 각종 성차별 의식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전면적 단결을 가로막는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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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향신문 

 

노동자 국제주의 없이 자본에 맞서 싸울 수 없다


한국이 맞닥뜨린 저출생 재난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본가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숫자를 더욱 늘려나갈 수밖에 없다. 2014년 한 연구에서는 국내생산인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2030년 427만 명, 2050년 1,182만 명, 2060년 1,530만 명의 이민자 유입이 필요하다는 추계를 낸 바 있다(조경엽‧강동관, 「이민 확대의 필요성과 경제적 효과」). 


이미 2021년 기준 1,956,781명의 외국인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으며, 이중 이주노동자 숫자는 약 41만 명 수준이다. 서구 선진국에서 누군가의 정치적 좌표를 결정짓는 핵심 기준이 이주민에 대한 태도였다면, 세계 10위권 경제 선진국 한국도 같은 상황이 되고 있다. 자본가들은 한편으로는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들을 대규모로 받아들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국적과 인종에 따른 차별 이데올로기를 한껏 활용하려 들 것이다. 그것은 이주노동자를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지만, 정주(한국인) 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들의 단결을 가로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 노동자가 우선이라는 조합주의적 의식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무제한적 착취를 외면한다면, 능력주의 차별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행해질 여성 노동자‧하청 노동자‧플랫폼 노동자 등에 대한 공격 역시 방어할 수 없다. 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모든 차별과 분할을 뛰어넘어 전 계급적 단결을 이루기 위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들에게 노동기본권을 전면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제 다음의 금언이 한국에서도 진정한 실천적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노동자에겐 조국이 없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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