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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빵과 장미: 자본주의 아래서의 젠더와 계급 (0) 들어가며

기사입력 2026.07.13 09:57 | 조회 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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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과장미: 자본주의 아래서의 젠더와 계급’은 아르헨티나의 사회주의 노동자당(PTS) 활동가 안드레아 다트리(Andrea D’Atri)가 쓴 책으로, 혁명적 사회주의 관점에서 자본주의 출현 이후 여성해방을 향한 계급투쟁의 역사를 총괄한 책이다. 2004년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어로 처음 출간되었고, 현재까지 포르투갈어,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로도 번역되었다.

    책이 출간되기 1년 전인 2003년, 저자가 속한 아르헨티나 사회주의 노동자당 활동가들은 ‘낙태 권리를 위한 총회’를 거치며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단체 ‘빵과장미’를 창설했다. ‘빵과장미’는 지난 20여년 간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볼리비아, 페루,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코스타리카, 멕시코, 미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로 확장됐다. 저자는 ‘빵과장미의 지난 20년의 투쟁을 아래와 같이 요약한다: ‘여성 해방에 관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재구성하는 것, 계급 투쟁 속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자발적 조직화를 촉진하는 것, 전투적인 국제주의적 관점을 발전시키는 것,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여성 운동의 모든 투쟁에서 가장 폭넓은 행동의 단결을 추구하는 것’.

    여성해방을 위해 투쟁하고자 하는 모든 사회주의자들을 위한 안내서가 되길 바라며, 안드레아 다트리의 저서 ‘빵과장미’를 번역해 연재한다. 번역본은 2020년 출판된 영문판을 기초로 한다. - 편집자

    ※목차

    0. 들어가며
    1. 곡물폭동과 시민권
    2. 부르주아 여성과 프롤레타리아 여성
    3. 자선과 혁명 사이
    4. 제국주의와 전쟁, 그리고 젠더
    5.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국가 속 여성들
    6. 베트남에서 파리까지, 브래지어에서 모닥불까지
    7. 여성의 차이, 여성들 간의 차이
    8. 포스트모더니티,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포스트페미니즘
    9. 결론을 향해
     

     

    0. 들어가며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각자 편안하게 소파에 기대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자신의 저작이 믿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입증해 줄 주석을 달기 위해 필요한 참조문헌을 열심히 찾는다. [...] 바깥세상은 빈곤으로 폭발하고 있다: 여성으로 태어난 수많은 아이들은 자신을 위해 가시요람을 준비한 사회를 마주한다.

    — 빅토리아 사우 산체스(Victoria Sau Sánchez)

    젠더와 계급을 결합시킨 세계 여성의 날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매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한다. 그러나 꽃과 초콜릿 광고는 넘쳐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날의 기원을 모른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세기에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며 조직한 행동에서 시작됐다. 1857년 3월 8일, 뉴욕의 직물공장 노동자들은 진을 빼는 12시간 노동과 비참한 임금에 맞서 파업을 벌이고 시위에 나섰다가 경찰의 공격을 받았다.

     

    반세기 후인 1909년 3월, 140명의 젊은 노동자들이 비인간적 조건 아래 붙잡혀 있던 직물공장에서 산 채로 불태워졌다. 그리고 같은 해에 3만 명의 뉴욕 직물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였다. 비록 경찰에게 진압됐지만, 이 노동자들은 대학생들, 참정권 운동가들, 사회주의자들, 그리고 사회의 다른 부문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912년 벽두에, 매사추세츠 주 로렌스 시에서 “빵과 장미” 파업이 터져 나왔다. 파업에 나선 직물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과 더불어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추구하는 자신들의 요구를 요약하기 위해 “빵과 장미”라는 슬로건을 사용했다. 이 투쟁에서 파업위원회는 여성 노동자들이 더 쉽게 투쟁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보육원과 공동 취사장을 설치했다.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은 노동조합 강당에서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왜 어머니와 아버지가 파업을 하는지 토론하는 행사를 열었다. 파업이 시작되고 며칠 뒤, 어린이들을 다른 도시들로 보내기로 했다. 노동자투쟁에 연대하는 가족들이 어린이들을 맡아주기로 했고, 첫 번째 기차로 120명의 어린이가 떠났다. 두 번째 기차가 막 출발하려던 참에, 경찰이 어린이들과 동행하는 여성들에게 탄압을 가했다. 이 사건으로 파업이 미국 전역의 신문에 실리고 의회에서도 다뤄지면서, 연대가 확산됐다.

     

    로렌스 파업 2년 전인 1910년 8월, 제2인터내셔널 사회주의자 여성대회가 코펜하겐에서 열렸다. 여기서 독일의 클라라 체트킨[1]은 자본주의 착취에 맞서 최초의 조직된 행동을 전개했던 여성 노동자들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3월 ‘세계 여성의 날’ 행사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온 100명의 사회주의자 여성들은 이 대회에서 여성의 투표권, 일하는 어머니들을 위한 사회복지, 전 세계 사회주의자 여성들의 관계 구축 방안에 대해 토론했다. 그들은 하루 8시간 노동, 16주의 출산 휴가, 그리고 여러 요구를 위한 투쟁 결의안을 채택했다.

     

    만장일치로 통과된, 역사에 남은 ‘세계 여성의 날’ 결의안을 제출한 것은 독일 대표단이었다. 클라라 체트킨과 케이트 던커가 제출한 결의안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자 여성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적인 정치조직들 및 노동조합들과 합의하여, 특별히 ‘여성의 날’ 행사를 조직하여야 한다. 이 행사는 주로 여성 참정권에 대한 선전을 고취하되, 이 요구는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사회주의적 신념에 입각해 전체 여성의 문제와 연결해서 토론돼야 한다. [‘여성의 날’ 행사는] 국제적 성격을 가져야 하며, 주의 깊게 준비돼야 한다.[2]

    이후 몇 년 동안,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많은 나라에서 개최됐다. 하지만 3월 안에서 서로 날짜가 달랐다. 1914년에 이르러서야 독일, 러시아, 스웨덴 사회주의자들이 3월 8일에 행사를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이 날짜가 ‘세계 여성의 날’로 역사적으로 굳어진 것은 1917년 3월 8일 페트로그라드의 직물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빵, 평화, 자유”를 요구한 사건 때문이었다. (그 시절 러시아 달력으로는 2월 23일이었다.) 이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혁명은 그해 10월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으로 귀결됐다.

     

    우리가 보았듯이, ‘세계 여성의 날’은 계급과 젠더를 결합시켰다. 그런데 이 결합은 한 세기가 더 지난 뒤에도 여전히 마르크스주의자들 사이에서 그리고 페미니스트 운동 안에서 논쟁되고 있다.

     

    억압과 착취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보기에 여성억압의 문제는 계급투쟁의 역사 속에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론적 입장은 우리가 투쟁에서 취하는 입장, 즉 자본주의 체제에 의해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모든 인민의 편에 선다는 입장과 동일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세계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변혁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역사적 유물론의 관점에 입각한다.

     

    일부 여성학 전문가들은 “페미니즘 역사를 다룰 때 계급 분석을 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부르주아 페미니즘은 부르주아 사회의 틀 안에서 정치적·법률적·경제적으로 남성과 동등해지고자 하는 부르주아 여성의 의식적 표현이다. 반면에 프롤레타리아 페미니즘은 계급 없는 사회의 틀 안에서 사회적 예속의 극복을 제안한다. 추구하는 정치모델이 사회주의든 무정부주의든 공산주의든 말이다.[3]

    다른 저자들은 여성억압을 분석하는 데서 계급 차이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지적한다: “비록 모든 여성이 오늘날 거의 모든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가부장제에 의해 억압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동일한 이유로 억압받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억압받는 여성들이 있다.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은 중요하다.”[4]

     

    우리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 따라, 착취를 계급들 사이의 관계로 정의한다. 착취란 생산수단을 소유한 계급이 노동자대중의 잉여노동을 전유하는 것을 말한다. 착취는 사회의 경제구조에 뿌리를 둔 범주다. 반면에 억압은 문화적·인종적·성적 이유들로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게 예속되는 관계로 정의할 수 있다. 억압이란 범주는 특정한 사회집단을 불리한 위치에 놓기 위해 불균등을 활용하는 걸 말한다. 차이는 한 부문의 다른 부문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전환된다.

     

    여성들은 서로 대립하는 다른 사회계급들에 속한다. 여성은 별도의 계급이 아니라 여러 계급에 걸친 집단을 구성한다. 이 집단 안에서 착취와 억압은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된다. 한 사람이 속한 계급은 그가 겪는 억압을 큰 틀에서 결정한다. 이를테면, 자신의 몸을 통제할 여성의 권리를 제한하는 법은 모든 여성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어떤 여성들은 불법적인 의료시술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합병증에 걸릴 위험에 대처하는 데서 더 잘 준비돼 있다. 어떤 여성들은 자신들의 경제적·사회적·교육적 수준 덕분에 위생적 조건에서 낙태를 할 수 있다. 반면 어떤 여성들은 수술 후 출혈로 또는 감염으로 사망한다. 그녀들은 무자비한 자본주의의 얼굴을 가진 가부장 질서의 희생양이 된다.

     

    비록 모든 여성이 법률적·교육적·정치적·경제적·문화적 차별로 고통당하지만, 실제로는 그녀들 사이에 명확한 계급적 차이가 존재하며, 그래서 차별이 다른 정도와 형태로 나타난다. 이러한 계급적 차이는 억압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차별을 강요하는 이러한 사회적 조건에 맞서고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극복할 객관적 가능성 또한 근본적으로 규정한다.

     

    젠더는 여성을 묶고, 계급은 여성을 나눈다

     

    21세기가 열리면서, 여성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것, 심지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된 것처럼 보인다. 세계 대다수 정부가 젠더 문제를 다양한 제도적 수준에서 국가 기관, 실무진, 공공 정책 의제, 다자간 조직에 편입시킬 정도가 됐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이를테면 “유리천장”이라 불리는 현상의 실체를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학계에서든 기업에서든 여성은 남성과 같은 자격과 실적을 갖고 있는 경우에도 남성과 같은 속도로 지도적 역할로 승격되지 않는다. 또한 모든 대륙의 압도적 대다수 나라들에서 여성 임금은 남성 임금 대비 60~70%에 불과하다.

     

    우리는 여성억압이 사회의 모든 계급들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데 여성은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지만, 다양한 계급들 속에서 늘 절반의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은 이 세계의 피착취 계급과 빈민들 가운데서는 다수를 차지한다. 하지만 우리를 착취와 빈곤으로 몰아넣는 다국적 기업들의 강력한 소유자들 가운데서는 아주 작은, 거의 존재하지 않을 정도의 소수만을 차지한다. 여성은 세계 인구의 50%를 약간 상회하지만, 13억의 빈민 가운데서는 70%를 차지한다. 반대로 세계의 사유재산 가운데 단지 1%만이 여성의 수중에 있다.

     

    우리가 (시간제 노동자든, 월급제 직원이든, 농촌 노동자든, 실업자든 상관없이) 여성 노동자들을 구속하는 이중 삼중의 사슬을 지적할 때, 어떤 계급에 속하든 인류의 절반이 겪고 있는 억압을 감추려고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우리는 극소수 자본가 기생충들이 대다수 인류를 착취하는 데 기반하는 체제로부터 모든 여성에 대한 억압이 그 정당성을 획득한다고 믿기 때문에, 계급적 전망을 제시한다. 위계질서와 불평등의 영속화는 체제가 작동하는 근본적인 부분이다. 이러한 다양한 분할과 파편화는 가장 비참하게 양분된 위계질서, 즉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수밖에 없도록 몰아넣음으로써 소수가 그 어느 때보다 엄청난 이윤 갈증을 해소할 수 있게 하는 바로 그 위계질서를 지속시킬 수 있게 해준다.

     

    만일 계급이 젠더 억압이 발현되는 다양한 방식을 좌우하지 않는다면, 어떤 여성들은 포브스가 선정하는 억만장자 리스트에 오르고 또 몇몇 여성들은 여러 나라에서 대통령이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는 동안 6천만 명의 소녀들이 여전히 교육받을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20세기부터 우리는 여성이 대통령, 총리, 장관, 병사와 장교, 과학자, 예술가와 운동선수, 사업가, 성공적인 전문가가 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피임약, 미니스커트와 청바지, 남녀공용 패션, 가전제품의 시대였다. 하지만 동시에 전 세계에서 해마다 2천만 명이 비밀 낙태를 하고, 수천 명의 여성이 강간당하고 “인종청소”로 살해당하며, 수많은 여성들이 실업 상태에서 빈곤선 아래의 삶을 살아가는 시대이기도 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그러므로 30대에 이른 한 여성이 한쪽에서는 남성과 동등한 기반 위에서 반식민지 나라들을 폭격하는 나토 연합군의 장교가 되는 것으로 “그녀의 권리를 행사”하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아프리카의 한 마을에서 에이즈에 걸려 죽을 때, 여성 일반을 위한 발전이나 진보를 말하는 것은 모순적이고 심지어 다소 위선적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종류의 여성에 대해 말하면 안 되는가? 여성 사업가와 여성 노동자의 삶은, 제국주의 국가 여성과 반식민지 국가 여성의 삶은, 백인 여성과 흑인 여성의 삶은, 이주여성과 난민여성의 삶은 정말로 같은가? 같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영국 여왕과 영국의 여성 실업자를, 또는 아르헨티나 대통령과 가사도우미를, 또는 국제적인 팝스타나 여성 사업가와 멕시코 마낄라[5]의 노동자를 연결하는 무언가가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생물학적 환원주의라는 (페미니스트들이 격렬하게 비판해 왔던) 지배적인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굴복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런 식으로 젠더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전혀 없게 그리고 우리가 밀어붙이려는 변혁에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게 추상적인 범주를 사용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잘 어울리는 결혼

     

    오늘날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여성이 직면한 문제들을 다른 도구들을 갖고 규명하기 위해 계급에 기반하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가부장제에 대한 규탄을 넘어 빈곤 증가와 공공 서비스 축소에 책임이 있는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을 규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페미니스트가 제3세계 여성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원은, 공공연하게 반제국주의 입장에 서서, 강대국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모든 “인도적” 개입을 비난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6]

     

    우리는 여성에 대한 억압이 자본주의 이전에 출현했지만, 자본주의 생산양식 아래서 특수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이는 가부장제를 착취와 현상유지의 필수적인 동맹으로 전환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착취와 억압을 기반으로, 시장을 확장하기 위해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미개척지와 황무지까지 정복하면서, 여성과 어린이에 대한 착취를 자신의 지배 시스템에 도입했다. 비록 자본주의가 수많은 여성들을 노동시장으로 밀어 넣으면서 여성들을 오로지 사적 영역에만 머물러 있게 하는 몽매한 믿음을 파괴하긴 했지만, 자본주의가 그렇게 한 이유는 여성에게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자신의 착취를 배로 늘리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자본주의는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춘다.

     

    자본주의는 기술의 발전과 함께 산업화의 조건을 창출했고 그리하여 가사노동의 사회화를 위한 조건을 창출했다. 그러나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진행되지 않는다. 바로 무급 가사노동이 자본가 이윤의 일부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무급 가사노동은 자본가들이 노동력을 재생산하는 작업(조리, 세탁, 기분전환 등)에 대해 노동자들에게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도록 면제해 준다. 집안일은 여성의 “자연스러운” 책무라고 선언하는 가부장제 문화를 장려하고 유지하는 것은, 자본가계급에 의한 이러한 “절도”를 보이지 않게 만들며, 동시에 기본적으로 성인여성과 소녀들의 어깨 위로 떨어진 가사노동 또한 보이지 않게 만든다.

     

    자본주의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통제하는 데 필요한 과학적·의학적·위생적 조건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만들어냈지만, 자신의 몸을 통제할 권리는 여전히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다. 알약, 자궁 내 장치, 나팔관 결찰술, 합병증 없는 무균 낙태수술의 가능성 같은 피임법의 발전은 회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있도록 허용되지 않는다면, 우리가 자녀를 원하는지 언제 원하는지 또 얼마나 많이 원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허용되지 않는다면, 이는 교회가 자본주의 국가와 공모하여 계속해서 이를우리의 삶에 강요하기 때문이다. 비밀 낙태는 의료 관계자, 의학 실험실, 경찰 마피아 등에게는 매우 수익성 있는 사업이 되었다. 쾌락과 재생산의 분리 가능성은 지배계급의 이익에 위협이 되는 자유를 내포한다. 어머니가 되는 게 여성의 유일한 자기실현 경로라는 데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 재생산이 성생활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데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 성생활이 이성간 성교로만 이해되는 데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우리의 몸을 통제하기 위해 의지하는 규범을 위태롭게 한다. 착취 체제는 우리의 몸을 노동력으로만,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 관념에 종속된 몸으로만, 상품들의 세계에서 또 다른 상품으로 전환될 분리되고 소외된 몸으로만 간주한다.

     

    여성의 투쟁과 계급투쟁

     

    자본주의의 출현과 발전은 여성에 대한 착취와 억압만 증가시키지 않았다. 착취와 억압의 사슬에 맞선 여성의 저항과 투쟁에서도 심오한 변화가 일어났다.

     

    18세기 말 부르주아 혁명과 함께 페미니즘은 하나의 사회운동이자 이론적·이데올로기적·정치적 흐름으로 출현했다.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며 다양한 형태를 취해 온 페미니즘 운동은 오늘날 다양한 이론적 경향, 가지각색의 실천, 복합적인 조직적 경험의 형태를 갖고 있다.

     

    자본주의 초기부터, 지배계급 부르주아지에게 적대적인 강력한 노동자계급의 등장과 함께, 페미니즘은 (그리고 그에 반대하는 운동은) 자본주의 체제가 여성들에게 강요한 논쟁에 주의를 기울여 왔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핵심적인 관심사인데, 미국의 마르크스주의자 에벌린 리드(Evelyn Reed)의 말을 빌리자면, 바로 이 문제다. “성 대 성이냐?, 아니면 계급 대 계급이냐?”[7]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로서 우리는, 계급투쟁이 역사의 추진력이며, 빈민대중과 모든 피억압 부문을 이끄는 노동자계급이야말로 우리 모두를 임금노예제와 모든 형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킬 사회혁명의 주체라는 입장을 계속 견지해 왔다. 자본주의의 심장부를 강타하고, 착취와 약탈의 자본주의 메커니즘을 마비시키며, 하위계급들(subaltern classes)을 상대로 전쟁을 펼치는 자본주의 기구들을 파괴함으로써 말이다. 오늘날 노동자계급은 그 대열 속에 수많은 여성들을 포괄하고 있다. 자본은 다른 많은 것들과 함께 이 모순을 생산한다.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무덤을 파는 자를 영원히 창출하고 재창출한다. 노동자계급 여성은 착취계급을 완전히 타도하는 이러한 미래의 전투들에서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미주]

     

    [1] 클라라 체트킨(1857–1933)은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자이자 당 여성부의 조직가였다. 그녀는 신문 Die Gleichheit(평등)을 창간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당 지도부가 민족 부르주아들과 결탁하여 전쟁 채권 발행을 찬성했을 때 이에 맞서 싸웠다.

    [2] International Socialist Conference, Report of the Socialist Party Delegation and Proceedings of the International Socialist Congress at Copenhagen, 1910 (Chicago, IL: H.G. Adair, 1910). (이 번역은 독어 원문을 반영해 약간 수정되었다 - 영문판 역주)

    [3] Mary Nash, “Nuevas dimensiones en la historia de la mujer,” in Mary Nash (Ed.), Presencia y protagonismo: Aspectos de la historia de la mujer (Barcelona: Serbal, 1984), 저자가 직접 번역.

    [4] Andrée Michel, El feminismo (México: Fondo de Cultura Económica-GREA, 1983), 저자가 직접 번역.

    [5]’마낄라(Maquila)’ 또는 ‘마낄라도라(Maqiladora)’는 라틴아메리카의 저임금 여성 노동력을 활용해 원재료를 수입해서 조립, 수출하는 외국계 기업 공장을 지칭하는 용어다. (역주)

    [6] Alizia Stürtze, “Feminismo de clase,” Lahaine, 참조: www.lahaine.org/sturtze/feminismo_clase.htm.

    [7] 에블린 리드(1905–1979)는 40년 넘게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의 당원이었다. 에블린은 1930년대 말에 SWP를 알게 되었고, 1939년에 멕시코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망명 중이던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녀는 1959년부터 1975년까지 SWP 전국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녀의 가장 뛰어난 공헌은 의심할 여지 없이 여성 해방에 관한 저술이었다. 이 저술에서 그녀는 역사 유물론을 적용해 계급 사회에서 여성 억압의 기원을 분석하고, 둘의 불가분한 관계를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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