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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정원 확대로는 부족하다. 이윤 논리를 대신할 무상공공의료가 필요하다!

기사입력 2023.12.02 09:53 | 조회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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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경향신문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래 집권했던 역대 자본가 정권은 비록 껍데기일지언정 무언가 시대정신을 표방했다. 1992년 김영삼의 ‘군부독재 청산’, 1997년 김대중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2002년 노무현의 ‘비정규직 보호’ 등이 그것이다. 2007년 이명박은 ‘7·4·7 경제성장’을 내세웠으며, 2012년 박근혜조차 ‘경제민주화’를 들고나와 표를 획득했다. ‘촛불정부’를 표방한 2017년 문재인도 다르지 않다.

     

    유일하게 예외인 정권이 있다. 현 윤석열 정부다. 윤석열이 대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단번에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로지 반(反) 민주당 정서로 집권하더니 뚱딴지같이 ‘공산전체주의’에 맞선 이념 투쟁을 강조했을 뿐이다. 최상석에 앉아 술자리를 주재하고 싶어서, 나랏돈으로 해외 유람을 다니고 싶어서 대통령을 했다는 시쳇말이 진실일지도 모른다.

     

    정치철학이 없으니 그게 무엇이든 제대로 추진되는 정책도 없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라는 고갱이를 모두 빠뜨린 안을 ‘국민연금 개혁안’이라고 포장하는 뻔뻔함을 보라. 정치공학에 따른 지지율 계산과 외국 정상과 셀카를 찍는 포퓰리즘 정치가 윤석열 정부의 전부라 해도 무엇이 틀리겠나.

     

    그런 윤석열 정부조차 어쩔 수 없이 추진해야 하는 정책이 있다. 바로 의대 입학정원 증원이다.

     

    한국 의사 수는 OECD 평균을 한참 밑돈다

     

    턱없이 부족한 한국의 의사 숫자

     

    지난 10월 윤석열은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고 초고령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의료인력 확충과 인재 양성은 필요조건”이라며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의사 숫자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 더는 외면할 수 없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되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35년 부족한 의사 수를 2만 7,232명으로 예측한 바 있다.

     

    전문가들의 분석도 엇비슷하다. 김진현 서울대 보건경제학 교수는 한국에서 인구 1천 명당 활동의사 수는 2.3명(한의사 제외 때는 2.0명)으로, OECD 회원국 평균 3.5명의 65.7%(한의사 제외 57.1%) 수준이라고 밝혔다. 특히 한국의 경상의료비(전 국민이 1년 동안 보건의료를 이용하는 데 지출한 총액)는 2022년 209조 원에 달하는 등 1인당 의료이용량이 OECD 평균의 두 배 수준에 이른다. 1인당 의료이용량과 고령사회로의 진입 속도 등을 고려하면 한국의 의사 숫자 부족은 수수방관할 수준이 아니다.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윤석열 정부가 자신의 주요 지지기반이기도 한 특권층 의사 집단의 반발을 어떻게 누그러뜨릴 것인가 하는 점이다. OECD의 ‘2023년 보건통계’에 따르면, 한국 봉직의의 연간 임금소득은 19만 2,749달러(약 2억 4,600만 원, 2020년)로, 관련 통계를 제출한 OECD 회원국 28개국 중 가장 많다. 또 개원의 소득은 29만 8,800달러(약 3억 8,200만 원, 2020년)으로 역시 OECD 최상위권이다.

     

    한국에서 의사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부와 사회적 지위를 평생 보장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비인간적 입시경쟁교육 체제에서 수많은 학부모들이 초등학생 자녀를 의대 입학반에 보내는 현실이 드러내듯이 말이다. 의사 집단은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을 포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다. 문재인 정부 시절, 수련의들이 주 80시간의 살인적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공공의대 설립을 통한 의사 증원은 ‘공정성 훼손’이라며 결사반대했던 것처럼 말이다.

     

    대한의사협회는 당장에 의대 정원을 3,000명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의 징계를 추진하고 있으며, 활동의사 수가 10년 전에 비해 2만 1,611명 증가해 증가율로는 OECD 평균의 1.41배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의대 정원 증원을 막으려 들고 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에는 ‘불법’이라는 딱지를 남발하며 악질 선동을 서슴지 않았던 윤석열 정부가 의사들의 다이아 밥그릇 지키기에는 어떻게 나올지 두고 볼 일이다.

     

    의대정원 확대 대응을 위한 긴급의료계 대표자 회의. 출처: 대한의사협회

     

    의사 숫자가 늘어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그러나 노동자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리는 문제가 아니다. 의사 숫자가 대폭 늘어나봤자,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의료격차, 의료공백은 절대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혀 보자. 오늘날 수많은 노동자 민중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유는 이 사회 전체의 생산력이 부족한 까닭인가? 내로라하는 선진국 영국에서 25%의 국민이 끼니를 거르거나 줄이는 이유는 절대적 식량 생산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한편에서는 재화가 무분별하게 낭비되지만, 반대편에서는 필수재의 부족 현상이 상시로 벌어지는 까닭은 자본주의가 이윤 논리로 움직이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본은 목전에 당도한 기후재난조차 아랑곳하지 않은 채 전쟁 무기 개발, 쓸데없는 마케팅, 금융투기 등에는 천문학적인 자원을 투자한다. 반면 재생에너지 생산이나 인류의 기본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생필품 생산에는 충분한 자원이 투입되지 않는다.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단순히 의사 숫자가 늘어난다고 해도 의료격차와 의료공백이 자연히 해소될 거라 기대하기 어렵다. 현재 급선무로 지적되는 지방 공공의료기관의 의료공백 문제를 보자.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지방의료원 35곳은 의사 정원 1,330명보다 87명이 부족하며, 국립대병원 17곳은 정원 8,942명보다 무려 1,940명이 부족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지방의료원 35곳 중 23곳에서 휴진 과목이 발생하고 있으며, 속초의료원의 경우 18개 진료과목 중 신경외과·정형외과 등 6개 진료과가 개점휴업 상태다.

     

    의대 정원을 늘려 신규 의사를 대량으로 배출하더라도, 이들 중 인구 이천만 명이 넘는 광역수도권 또는 대도시를 두고 저출생으로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에서 병원을 차릴 의사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진료과목별로 적정 의사 수를 계획적으로 배치하고, 진료과목의 특성에 맞춰 의료인력의 적정한 노동강도를 보장하는 일이 단순히 배출되는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가능하겠는가?

     

    전면적 무상공공의료 체계를 향해

     

    의료공백을 해소하고, 이주민·정주민의 차별 없이 모든 인민이 의료 혜택을 보편적 기본권으로 누리기 위해서는 의료 영역에서 일체의 영리 추구 행위를 중단시켜야 한다. 생명을 구하는 데 헌신하려는 의사를 대규모로 양성하고, 이들을 의료 수요에 맞춰 지역별·부문별로 계획적으로 배치하며, 진료과목마다 적정한 노동강도를 보장하고 제대로 된 경제적 보상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의료 부문을 전면 국영화해야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특별히 급진적인 요구도 아니다. 20세기 초반 강력한 노동자투쟁을 기반으로 형성됐던 서구의 무상의료 체계가 단적인 예다.

     

    무상공공의료 체계를 위한 재원은 제약자본의 신약 제조 지적재산권 독점을 철폐하는 등 그간 의료·제약자본이 누려온 천문학적인 이윤을 몰수하면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금융자본이 돈벌이 수단으로 운영하는 의료실비보험을 건강보험으로 통폐합해 과잉진료를 예방하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게 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또한 공공의료체계에서 계획적으로 배치된 의료인력은 사후 치료보다는 질병 예방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의료 역량의 불필요한 낭비도 막아낼 것이다.

     

    결국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은 명료하다. 자본의 이윤이 우선이냐, 아니면 돈 걱정 없이 모든 인민이 온전히 치료받을 권리가 우선이냐 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을 긍휼히 여기고 돕고자 하는 마음, 이것은 모든 사람이 가진 자연적 본성이다. 치료받을 권리마저 돈벌이의 논리로 재단하는 자본주의, 그 야만을 이제는 중단시켜야 한다.

     

    사진: 노동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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