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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제르 - 아프리카에서 또 하나의 제국주의 대리전이 터지는가?

기사입력 2023.08.16 14:24 | 조회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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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 아프리카에 니제르(Niger)라는 나라가 있다. 한국의 열세 배 면적에 2천 4백만 인구를 가진 나라다. 국토의 북쪽은 사하라 사막이고, 나머지는 사헬(Sahel) 지대, 즉 사하라 사막과 사바나(열대초원) 사이에 자리한 건조지대다. 사람이 아예 살 수 없는 사하라 사막과 달리, 사헬에서는 어느 정도 거주와 경작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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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26일 니제르에서 군부 쿠데타가 있었다. 대통령 경호대가 대통령을 감금한 뒤, 대통령 경호실장이 새로운 지도자를 자처하며 ‘국가수호위원회 의장’에 취임했다. 헌법의 정지와 모든 헌법기관의 해산을 선언했다. 하지만 니제르에서 쿠데타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쿠데타가 잦은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니제르는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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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부터 2021년까지 아프리카 대륙에서 7번 이상의 쿠데타가 발생한 나라들


    그런데 이번 쿠데타는 세계의 큰 관심을 끌게 됐다. 이 쿠데타가 몰고 올 국제적 파장 때문이다. 특히 니제르와 주변 국가들을 둘러싸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또 하나의 제국주의 대리전이 발발할 가능성 때문이다.


    쿠데타 직후부터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쿠데타 지지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데, 7월 30일 쿠데타를 지지하는 시위대 수천 명이 프랑스 대사관 출입문에 불을 지르고 프랑스 국기를 불태웠다. 시위대는 “프랑스는 떠나라!”는 구호와 함께 “러시아 만세”, “푸틴 만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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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30일 니제르 수도 니아메에서 쿠데타 지지 시위에 나선 시민들. “니제르 만세, 러시아 만세!”, “프랑스는 떠나라!”, “외국 군대 철수하라!” (출처:Reuters)

     

    니제르 민중들이 반프랑스 시위에 나서는 이유는 간명하다. 니제르는 주변 나라들과 함께 1891년부터 1960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겪었는데, 독립 이후에도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수탈이 계속됐다. 니제르의 자연환경은 척박하지만 풍부한 천연자원을 갖고 있는데, 특히 우라늄은 세계 매장량의 7%, 채굴량의 5%를 차지한다. 프랑스가 핵발전에 사용하는 우라늄의 15%, 유럽연합 전체가 사용하는 우라늄의 20%를 니제르가 공급한다. 그런데 프랑스 기업들이 니제르 정부의 협조 아래 대량의 우라늄을 헐값에 채굴해 가는 동안 니제르는 여전히 전기공급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세계 최빈국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니제르 민중들이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을 프랑스의 ‘부패한 허수아비들’로 보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프랑스는 떠나라’는 외침도,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 군대 철수하라’는 외침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왜 여기에 러시아와 푸틴이 등장하는가?


    그 실마리는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급증으로부터 찾을 수 있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아프리카도 세계의 다른 지역들과 비슷하게 한동안 미국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었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이 급증했다. 러시아의 영향력은 주로 무기수출 분야에 집중됐고, 2020년 아프리카에 48억 달러의 무기를 수출하며 40%라는 압도적인 비중으로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중국의 영향력은 주로 해외직접투자(FDI)에 집중됐고, 2021년 133억 달러를 투자하며 16%로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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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러시아와 중국의 영향력 급증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영향력 퇴조와 맞물리며 아프리카 대륙에서 제국주의 세력관계가 재편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오랜 시간 프랑스와 영국 등 미국과 결탁한 서방 제국주의 국가들에게 수탈당해 온 아프리카 민중들은 이러한 세력관계 재편이 불러온 힘의 공백을 활용해서 ‘서방 제국주의 축출’의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특히 니제르가 위치한 서부 아프리카 지역 또는 사헬 지대에서 반프랑스 기류가 강하게 부상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러한 민중의 에너지를 받아안고 이끌기에는 지역 전반에서 혁명세력이나 노동자운동의 역량이 많이 취약했다. 그 빈자리를 군부 세력이 파고 들었다. 2020년 이후 사헬 지대를 관통하며 군부 쿠데타가 꼬리를 물고 일어났는데, 그 상당수가 프랑스 제국주의 축출을 요구하는 민심에서 쿠데타의 명분을 찾았다. 특히 말리(Mali)와 부르키나파소(Burkina Faso)는 군부 쿠데타 이후 프랑스군을 철수시켰다. 말리에서는 대신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용병들을 끌어들였다. 물론 이후 말리에서 민중의 삶을 변화시키는 눈에 띄는 조치들은 없었다. 대부분 과거 미군에 의해 육성된 장군들이 주도한 군부 쿠데타는 자본주의 국가권력을 누가 장악할 것인가를 둘러싼 지배분파들간의 알력다툼일 뿐이었고, 프랑스와 러시아의 차이는 지배분파들이 결탁하는 제국주의 세력의 변화를 뜻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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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2022년 사이 발생한 쿠데타. (S) 성공 (F) 실패

    African coups in the COVID-19 era: A current history (https://www.frontiersin.org/articles/10.3389/fpos.2023.1077945/full)


    니제르에서도 2021년 3월 쿠데타가 있었지만 실패했다. 그래서 그동안 니제르는 사헬 지대에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 측의 핵심 거점으로 기능했다. 최근에 쿠데타로 친러 세력들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사헬 지대에는 서방에 큰 골치거리가 있었으니, 2010년대를 지나면서 사헬 지대가 이슬람국가(IS), 알카에다, 보코하람 등 각종 이슬람 테러단체들의 본거지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현지 주민과 서방 관광객 등을 대상으로 납치와 살해가 끊이지 않았고, 테러단체 소탕을 명분으로 지금도 프랑스군 1,600명, 미군 1,100명, 이탈리아군 300명이 니제르에 주둔하고 있다. 이렇게 니제르에 주둔한 서방 군대는 말리에 들어선 바그너 용병그룹에 맞서면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를 제어하는 역할 또한 하고 있었다. 그런 니제르에서 ‘반프랑스, 친러시아’를 공공연히 표방하는 쿠데타가 일어났으니, 미국을 비롯한 서방 제국주의 세력들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아닐 수 없게 된 것이다.


    서방 제국주의를 대신해서 나선 것은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ECOWAS)’였다. ECOWAS는 서아프리카 15개국으로 구성돼 있는데, 의장국인 나이지리아가 면적은 18%에 불과하지만 인구의 56%, GDP의 77%를 차지하며 압도적 지위에 있다. 7월 30일 ECOWAS는 니제르에게 경제제재를 단행하면서 일주일 안에 정권을 복귀시키지 않으면 군사개입도 고려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러자 바로 다음날 말리와 부르키나파소가 “니제르에 대한 어떤 군사개입도 말리와 부르키나파소에 대한 선전포고로 간주할 것”이라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8월 2일 니제르 군부가 ECOWAS의 제재를 비난하며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4일에는 프랑스와 군사협정을 파기하며 프랑스군에게 철군을 요구했다. 원래 친서방이었던 기니도 외부 세력의 내정간섭에 반발하며 니제르 지지를 표명했다.


    최후통첩 시한을 하루 앞둔 5일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갔다. 니제르 군부 요인이 말리를 방문해 바그너그룹과 접촉해 지원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참고로 러시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니제르 쿠데타 규탄에 동참한 반면, 바그너그룹을 이끄는 프리고진은 텔레그램에서 쿠데타 지지를 표명했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상원이 대통령의 니제르 군사개입 요청에 반대하며 외교적인 해결방법을 촉구했다. (하지만 나이지리아 헌법은 위기상황시 대통령이 의회 승인 없이 해외에 군을 동원할 수 있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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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편으로 갈라진 서아프리카 경제공동체 (ECOWAS)


    8월 6일 최후통첩 시한이 완료됐다. 니제르 군부는 “영공 폐쇄”를 발표했다. 나이지리아는 니제르에 공급해 오던 전력송출을 중단했고, 니제르 전기의 70%가 끊겼다. 8월 10일 긴급회의를 가진 ECOWAS는 11일 “니제르 헌정질서 회복을 위해 ‘신속대응군’ 파견 준비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이후 외교적인 해결을 모색하며 여러 차원의 대화들이 시도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군사적 충돌로 치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서방 제국주의 사이에서도 미묘한 입장 차이가 확인된다. 미국이 국무부 차관대행을 니제르에 파견해 쿠데타 군부와 대화를 시도한 반면, 프랑스는 군사적 해법에 훨씬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ECOWAS의 군사개입이 시작되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까? 일단 니제르 군대가 33,000명에 불과한 반면, 나이지리아만 230,000명의 군대를 갖고 있어서 전력 규모는 서방 측이 크게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말리와 부르키나파소가 어느 정도 지원에 나서는가, 또한 나이지리아를 포함한 서아프리카 지역 전반에 팽배한 반서방 분위기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나는가에 따라 상황은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 여기에 말리에 주둔 중인 바그너그룹과 니제르에 주둔 중인 서방 군대가 어느 정도 직접적으로 개입하는가도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일단 ECOWAS의 군사개입이 시작되면 서방과 러시아 제국주의가 벌이는 또 하나의 대리전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사헬 지대의 동쪽 끝 수단에서는 2021년 10월 쿠데타가 성공한 이후 내분이 일어나서, 올해 4월 15일부터 이집트의 지원을 받는 (친서방) 정부군과 바그너그룹의 지원을 받는 (친러) 신속지원군 사이의 내전이 벌써 네 달째 진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니제르를 둘러싼 전쟁까지 터진다면,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세력들 간의 대리전이 점점 더 지구 곳곳으로 확대돼 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쿠데타 군부가 겉으로는 ‘프랑스 축출’을 내걸며 반제국주의 행세를 하더라도, 지배계급의 일파인 그들을 통해, 또한 또 하나의 제국주의 세력인 러시아를 통해 바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쿠데타 군부가 아니라 노동자·민중의 투쟁으로 세워 올리는 정부만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 낼 것이다. 또한 쿠데타 군부를 끌어내릴 권리는 제국주의 세력이나 그 하수인이 아니라 오로지 니제르 노동자·민중에게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장한다. 니제르에 대한 제국주의 군사개입을 즉각 중단하라! 모든 제국주의 세력과 자본가 지배분파들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니제르와 아프리카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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