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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미국과 중국 간의 전쟁은 정말 가능한가?

기사입력 2023.06.09 14:00 | 조회 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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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믹 암스트롱(Mick Amstrong)

    2023년 4월 16일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쟁을 향한 기운이 고조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민주당과 공화당 양쪽의 언사는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다. 미국의 군사비 지출이 급증하고 있으며, 중국 기업과 중국산 제품에 대한 무역 제한 및 기타 제재가 증가하고 있다. 미국만 그러고 있는 게 아니다.


    일본은 최근 무기 구입 예산을 550억 달러로 20%나 대폭 증액하는 등 군사력을 급속하게 확장하는 중이다. 이미 일본보다 더 큰 비중으로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는 한국은 향후 5년간 매년 6.8%씩 무기 구입 지출을 늘려나갈 것이다.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도 군비 증강에 나서고 있다. 호주도 뒤처지지 않고 있는데, 앨버니지 정부는 오커스(AUKUS, 미국, 영국, 호주의 3국 군사동맹 – 옮긴이) 핵추진 잠수함에 4,000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쏟아붓기로 결정했다. 


    중국도 전혀 물러서지 않는다. 중국은 최근 수십 년간 단호하게 전투 능력을 현대화하고 강화해 왔다.


    그러나 강대국 사이에서 대규모 전쟁이 정말 일어날 것인가? 전면 핵전쟁이 아니더라도 대규모 전쟁에서 피할 수 없는 끔찍한 규모의 죽음과 파괴는 확실히 미국 지배계급 또는 중국 지배계급의 이익은 아니지 않을까? 당연히 상식이 승리하고 강대국들이 벼랑 끝에서 물러나 서로 양보하는 외교적 해법에 도달하지 않을까?


    이것은 또 다른 세계대전의 가능성에 당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수천만 선량한 사람들이 가진 희망 깃든 정서이며 이해할 만하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학교 운동장 싸움쯤으로나 보이게 할 규모의 전면전을 보고 싶어할 리 있겠는가?


    문제는 자본주의가 기업들, 기업을 뒷받침하는 국가들 사이의 경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경쟁은 이윤, 시장 점유율, 투자처, 무역 경로에 대한 통제권, 원자재에 대한 접근권을 놓고 벌어진다. 이 냉혹한 경쟁은 자본주의 국가의 권력과 부를 경쟁국에 맞서 발전시키거나 방어하기 위해 야만적 전쟁의 토대를 반복해서 마련한다.


    향후 4~5년 내에 미국과 중국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진다는 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아니다. 양쪽 모두 아직 그럴 준비는 돼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좀 더 가능성이 높고 여전히 매우 위험한 시나리오는 장기간의 긴장 고조, 동맹 강화, 양측의 군사력 증강으로 인해 어떤 시점에서 대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이다. 대결은 어떤 오판이나 전혀 예측하지 못한 사건으로도 쉽게 터져 나올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이 바로 그런 경우다. 1914년 1월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가 오스트리아 대공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암살했을 때, 불과 6개월 후 전체 사망자 수가 1,500만~2,200만 명에 이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 상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소용돌이쳤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자들은 세계대전을 일으킬 의도까지는 없었지만 세르비아에 가혹한 최후통첩을 보내는 것으로 대응했다.


    오스트리아의 동맹국인 독일 제국은 처음에는 이 싸움이 발칸반도의 또 다른 국지적 분쟁에 그칠 것이며 영국은 여기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남부 슬라브족의 보호자를 자처한 짜르 러시아는 오스트리아에 맞서 총동원령을 내렸다.


    그러자 독일은 러시아에 선전포고했다. 이 분쟁에서 중립을 지키라는 독일의 최후통첩에 프랑스가 응하지 않자, 독일은 프랑스에 선전포고하고 벨기에를 침공했다.


    독일의 벨기에 침공은 이어서 위선적으로 약소국 벨기에의 보호자를 자처하던 영국을 자극해 독일에 선전포고하게 했다. 이것은 호주, 캐나다, 인도 등 대영제국의 모든 나라들을 즉각적으로 전쟁에 끌어들였다. 터키는 독일 편에 서고 일본은 영국 편에 서면서 전쟁은 계속 이어졌다.


    이탈리아는 한동안 참전하지 않았지만 결국 오스트리아 영토의 일부를 약속받으며 연합군 편에 합류했다. 기회주의자인 미국 제국주의자들은 다른 주요 강대국들이 거의 소진될 때까지 기다렸다 참전했고, 그 결과 미국은 유럽에 대한 마지막 제국주의 분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됐다.


    1차 세계대전은 제국주의 세력 균형의 구조적 변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어떤 면에서는 오늘날 벌어지는 모습과 유사하다. 가장 먼저 고도로 산업화된 자본주의 국가였던 영국은 오랫동안 “바다를 지배”했던 해군의 지원을 받아 광대한 식민지 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1890년대부터 영국은 새로운 강대국 미국과 독일의 도전을 받으면서 서서히 상대적 쇠퇴에 접어든다. 오늘날 미국과 비슷하게 말이다.


    영국과 기타 구(舊) 제국주의 강대국들(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포르투갈)은 그들끼리 세계를 분할했다. 이것은 가장 급속한 산업 성장이 이루어진 유럽 강대국 독일에게는 사실상 제국을 구축할 공간도, 새로운 시장과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할 지역도 거의 남아있지 않음을 뜻했다. 독일 제국주의는 식민지, 종속국, 무역 파트너를 확보하기 위해 뻗어나가면서 필연적으로 구(舊) 제국주의 강대국들에 맞서야만 했다. 오늘날 중국이 미국에게 그러하듯이 말이다.


    독일 제국의 통치자들은 독일 거대 자본가들의 재촉을 받으며 “세계에서 독일의 입지”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군대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외교 또는 “평화적인” 무역과 투자에만 의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독일은 영국의 해상 지배에 도전하기 위한 전함 함대를, 더 이후에는 영국 상선을 공격하기 위한 잠수함 전단을 만드는 데 산업력을 집중했다. 영국은 “드레드노트” 전함을 건조해 응수했다.


    프랑스는 징집병의 군 복무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려 독일 군대와 보조를 맞췄다. 러시아는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제국과의 잠재적 전쟁을 염두에 두고, 국영 무기 공장을 건립하고 철도 체계를 설계했다. 전쟁으로 가는 길이 넓어지고 있었다.


    계속 이어진 폭발적 사건, 외교적 분쟁, 동맹의 변화, 국지적 전쟁이 상황을 더욱 고조시켰다. 1899~1902년 보어 전쟁, 1905년과 1911년 독일이 프랑스 지배에 도전한 모로코 위기, 1911~1912년 이탈리아-터키 전쟁, 그로부터 촉발됐으며 강대국들이 지역의 추종자들을 부추겨 벌어진 발칸 반도에서의 두 차례 큰 전쟁(제1차 발칸전쟁, 제2차 발칸전쟁을 말한다 – 옮긴이)이 그것이다.


    위의 사례들에서 전쟁은 확대되지 않았고 결국 외교적 타협이 이루어졌다. 비록 발칸 반도의 전쟁에서 수많은 인명이 희생됐지만 말이다. 그러나 냉소적인 외교 거래와 절충안은 결정적 충돌을 얼마간 유예시켰을 뿐이다. 경쟁국들의 대립은 점점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을 만큼 누적됐던 모든 압력이 사라예보에서 암살 사건이 일어나면서 마침내 전면적으로 폭발했다.


    1914년 이후 자본주의 세계 질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크게 변화했다. 제국주의 세력의 균형은 매우 달라졌다. 새로운 강대국들이 등장했고, 옛 식민지 제국은 오래전에 사라졌으며,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파괴적인 무기 체계가 배치됐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경쟁 논리는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다. 자본주의는 여전히 노동자의 노동에 대한 착취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윤 획득이 인간의 모든 필요보다 우선하는 제도다. 자본주의의 잔인한 경쟁 논리는 빈곤과 타락, 반복되는 경제 위기, 환경 파괴, 시장‧투자 기회와 원자재 접근을 둘러싼 지속적인 충돌을 낳는다. 그 결과는 반복되는 전쟁 발발이다.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수없이 벌어진 파괴적인 전쟁들은 지금까지는 완전한 전면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또 핵무기의 시대에 상호확증파괴(MAD)가 핵무장 강대국 사이에 또 다른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극히 낮춘다고 자주 주장된다. (상호확증파괴: 핵무기의 선제적 사용은 쌍방 모두의 파괴를 확증하는 상황이 되므로 핵무기를 동시에 보유한 2개국 간에는 핵전쟁이 발발하지 않게 된다는 가설 – 옮긴이)


    상호확증파괴(MAD)는 두 초강대국 러시아와 미국 사이에 이른바 데탕트가 유지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러시아와 미국은 상대적으로 엇비슷한 파괴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는 핵전쟁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을 뿐이다. 사소한 오판도 아마겟돈을 불러올 수 있었다.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부상으로 지난 20년 동안 제국주의 세력의 균형이 결정적으로 바뀌었고, 이는 훨씬 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1969년 시작된 미국과 소련의 “데탕트”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또한 상호확증파괴(MAD)는 강대국들이 상대에게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을 극도로 주저하게 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은 막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유럽 심장부에서 일어난 가장 거대한 군사적 충돌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른바 재래식 무기가 얼마나 거대한 파괴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으로 확대된 전쟁이나 핵전쟁을 촉발하지는 않았지만, 미래의 대규모 재래식 전쟁은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 


    중국은 미국과 전쟁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떠오르는 강대국이기에 장기전을 벌이는 것이 겉보기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자본가계급은 오판하거나 자만에 빠질 수도 있으며, 미국에 의해 너무 심하게 압박당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진주만 공격을 앞두고 일본 통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중국 통치자들은 내부의 정치적 긴장 때문에 대만 침공과 같은 모험에 나설 것을 강요받을 수도 있다.


    미국 지배계급으로서는 중국이 너무 강해지기 전인 어느 시점에 중국을 공격하는 것이 더 낫다고 결정할 수도 있다. 또는 중국을 무역 제재로 아주 강하게 압박할 수도 있고, 그들 역시 내부의 정치적 이유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


    전쟁은 반드시 사전에 숙고되고 계획되는 것이 아니다. 경쟁은 자본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에 전쟁 발발의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그리고 군사력 증강은 그 자체의 논리를 가지기 마련이다.


    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외교나 통치자들의 선의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또한 가만히 앉아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다. 우리는 지배자들에게 도전하는 대중적 반전 운동의 토대를 마련해 나가야 한다.


    전쟁은 호주, 중국, 미국, 일본 노동자계급의 이익이 아니다. 모든 자본주의 전쟁이 그랬듯이, 부유한 자본가 투기꾼들이 이윤을 얻는 동안 노동자들은 죽어가고 희생될 뿐이다.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수십만 시위대가 호주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전쟁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다. 최근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중국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즉 반전 정서가 형성되고 있다. 향후 몇 년간 이러한 정서를 강력한 운동으로 조직해 나가려면, 전쟁을 찬성하는 주류 정당들에 맞서 단호한 사회주의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 핵심 과제다.



    [원문기사] 

    https://redflag.org.au/article/war-between-us-and-china-really-possi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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