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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적 한일외교 - 제국주의 전쟁책동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이 답이다!

기사입력 2023.03.20 18:39 | 조회 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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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연합뉴스

     

    “굶어 죽을지언정 그런 돈은 받지 않겠다”


    일제 식민지 시대 일본 전범기업에 끌려가 강제노동을 당한 피해자 양금덕(94) 할머니가 3월 13일 국회 외교위원회에서 ‘한국 기업들의 모금에 기초한 제3자 재단의 위자료 대리변제’라는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 해법을 단호히 거부하며 한 말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한국 대법원이 2018년 강제노동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들의 위자료 배상을 확정 판결했지만, 일본 정부와 기업들은 이를 거부해 왔다. 일본 정부의 입장은 ‘강제노동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소멸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2018년 대법원 판결이 명시했듯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일본 정부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강제동원 위자료청구권” 또한 마찬가지다.


    노동자의 관점에서 이 사건에 대한 판단은 전혀 어렵지 않다. 우리는 제국주의 전쟁의 한복판을 살아간 식민지 노동자들이 겪은 참혹한 현실에 대해, 또한 기나긴 시간 동안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조차 받을 수 없었던 사실에 대해, 시대를 거슬러 솟구치는 분노를 가눌 수 없다. 다시 격화하는 제국주의 패권투쟁의 시대를 살아가는 노동자들로서, 우리는 한목소리로 외친다.


    “일본 전범기업은 강제노동 피해 노동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하라!”

    “윤석열 정부는 굴욕적인 대리변제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식민지배 부당성에 눈감는 굴욕적인 한일외교 중단하라!


    3월 6일 굴욕적인 대리변제 해법을 내놓은 윤석열은 3월 16~17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굴욕 외교의 기조를 이어갔다. 일본 총리는 식민지배의 부당성에 관해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윤석열은 위자료를 대리변제하는 재단이 추후 일본 기업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가능성마저 단호하게 부인했다.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나 독도 영유권에 관해서도 주장을 펼쳤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는 이번 정상회담이 상당히 일방적인 분위기에서 전개되었음을 시사한다.


    한일 정상회담 이후 ‘민족의 자존심’을 짓밟은 굴욕외교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끓어 넘친다. 당연한 일이다. 노동자들에게는 그토록 공격적인 윤석열이 일본 총리에게 보인 비굴함은 정말 역겹기 그지없다. 식민지배의 통한을 다시 한 번 짓이긴 윤석열의 굴욕외교는 머지않아 노동자·민중에게 철퇴를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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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EPA


    ‘민족의 자존심’, 그 양면성


    그런데 우리가 ‘민족의 자존심’을 외치는 것은 늘 정당한 일일까? 제국주의 침탈과 억압에 맞서는 한 ‘민족의 자존심’은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일제 식민지배의 부당성을 규탄하고 다시는 민족의 자주성을 빼앗기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는 한 ‘민족의 자존심’은 정당하다.


    그러나 다른 민족을 차별하거나 고통에 빠뜨리면서 ‘민족의 자존심’을 말한다면 그것은 결코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억압하는 민족의 자존심은 차별과 강탈로 점철된 더 나쁜 세상을 만드는 반동의 힘이다. 한국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장 이동의 자유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종종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으며 더 고된 일을 강요당하고 있는데, 이런 구조적 차별은 외면하면서 ‘민족의 자존심’을 외친다면 결코 정당한 것일 수 없다. 해외에 나가 있는 수많은 한국 기업들이 노동탄압과 환경파괴로 지탄받는데, 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면서 ‘민족의 자존심’을 외친다면 그 또한 결코 정당한 것일 수 없다.


    한편 지배계급은 다른 국가와의 대결 구도를 조성함으로써 자국 내에서 계급지배를 정당화하고 노동자·민중을 통제·동원하는 수단으로 ‘민족의 자존심’을 숱하게 사용해 왔다. 일찍이 이를 간파한 노동자들은 그래서 이렇게 외쳤다. “노동자에겐 조국이 없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민족적 억압 아래 있을 때에는 노동자들이 민족해방 투쟁에 앞장서면서 이를 자본가들에 맞선 계급투쟁과 결합시키되, 민족적 억압을 벗어났을 때에는 더 이상 자기 민족에 얽매이지 말고 전 세계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해 투쟁하라는 뜻이었다.


    굴욕적인 한일외교의 본질


    윤석열 정부가 이토록 굴욕적인 한일외교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은 국민의힘이 가진 이른바 ‘토착왜구’로서의 본질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최근 10여 년 한일관계의 경색이 2012년 대통령 이명박의 전격적인 독도 방문으로부터 시작됐음을 고려한다면, 민주당의 설명은 석연치 않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세계정세 변화에 대응하여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결단’이라고 말한다. 훨씬 더 일리 있는 설명이다.


    2012년 8월 이명박의 독도 방문은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중국이 급격하게 부상하자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악화시킨 사건이었다.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핑계로 한미일 협력을 약화시키는 만큼 미국의 일방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 중국과의 관계를 진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열렸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박근혜 정부로 이어졌고 2015년 9월 박근혜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석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정책은 해가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미국은 2015년 하반기 한국 정부에 강력한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외교정책의 기본 방향을 바꿔놓았는데, 이는 2015년 12월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2016년 7월 한미 간 사드배치 합의로 구체화했다. 한국 정부의 사드배치는 중국으로부터 상당한 보복을 초래했지만,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을 우선하면서도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자 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지속됐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배치를 최종 실행하면서도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다. 미국의 트럼프 정부가 중국과 강력한 무역분쟁을 펼치는데도 문재인 정부가 상대적 여지를 갖고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트럼프 정부가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을 동원하는 데서 서투른 까닭이었다.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한국에 터무니없는 방위비 증액을 요구한 트럼프 정부의 정책은 역설적으로 문재인 정부에게 숨통을 열어줬다. 이런 조건 위에서 2018년 강제징용 대법 판결이 내려질 수 있었고, 그에 대해 2019년 일본 정부가 경제보복에 나서자 문재인 정부도 지소미아 중단 등의 맞불 대응에 나섰다.


    상황은 2021년 미국의 바이든 정부 등장 이후, 특히 2022년 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급변했다. ‘동맹과의 협력’을 강조한 바이든 정부의 정책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거의 죽어가던) 나토의 완전한 복원으로 결실을 보았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바이든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중국을 견제·포위하기 위해 동맹국들과의 관계 강화(미국 뒤로 철저하게 줄서기)를 압박하고 나섰다. 윤석열의 굴욕적인 한일외교는 바로 중국·러시아·북한을 상대로 미국·일본·한국 군사협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려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바이든 정부의 압력이 만든 결과물이다. 그런 점에서 윤석열 정부 등장 이후 최대 규모의 공격적 한미 전쟁훈련이 재개되고 한미일 군사훈련이 강화돼 온 것과 굴욕적 한일외교는 정확히 동전의 양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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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6월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 사진: AFP


    전쟁책동에 맞선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


    민주당은 ‘한미동맹은 괜찮지만 한미일동맹은 안 된다’고 말한다. 한미일동맹은 북중러동맹을 불러냄으로써 한반도·동북아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란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미국·일본·한국의 군사동맹과 중국·러시아·북한의 군사동맹이 맞부딪치는 상황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심각한 전쟁위기를 몰고 올 것이다. 특히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만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미·중 패권대결의 정점으로 부상한 지금 그러한 대치전선의 가시화는 동북아시아 전반에 매우 심각한 긴장을 조성하게 될 것이다.


    민주당이 간과하고 있거나 감추고 있는 것은 한미일동맹이 한미동맹의 필연적 결과라는 사실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국인 일본을 중심에 놓고 한국을 묶어세우는 게 지금 미국의 명확한 정책이다. 이를 방해하는 과거사 따위는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윤석열 정부 아래서 일어난 일들은, 민주당 또한 한미동맹에 철저히 복종하려는 세력임을 생각한다면, 민주당 정부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게 전개됐을 것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강제징용이나 위안부 같은 단어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인류를 얼마나 끔찍한 처지로 내몰았는지를 말해주는 단면들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일본·한국과 중국·러시아·북한이 상호 군사적 대치전선을 강화해 나가는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전쟁으로 우리를 다시 몰고 들어가는 일이다. 이 대치 전선에는 어떤 진보적 세력도 없다. 다양한 모습과 발전단계를 가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세계를 지배하려는 미국과 중국의 제국주의 패권 열망을 중심으로 뭉치고 있을 뿐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자본주의 경제위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시 한 번 인류를 대량파괴와 대량학살로 내몰아 자신의 수명을 연장하려는 냉혹한 자본주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굴욕적인 한일외교 앞에서 우리가 진정 분노할 것은 일부러 전쟁위기를 만들어나가는 모든 자본가 지배세력들의 저 잔인한 욕망이다. 우리가 진정 해야 할 일은 하루라도 빨리 제국주의 전쟁책동과 전쟁위기에 맞서 일본·중국·북한·대만·러시아·미국 등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과 함께 국제적 단결투쟁을 건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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