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우리는 전 세계적인 극우 파시즘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내란수괴 윤석열의 계엄 시도 이후 이어진 지난 4개월의 투쟁 끝에 윤석열은 마침내 파면되었지만, 그와 함께 내란을 준비하고 시도한 자들, 이를 정당화하고 선동한 이들은 여전히 권력을 장악하고자 갖은 수를 쓰고 있다.
한국뿐 아니다. 미국, 독일, 프랑스, 칠레, 우루과이, 인도네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극우 정치 세력이 부상하고 있으며, 이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구축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본 원칙을 파괴하고 있다. 한국에서 윤석열이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고 적극적으로 여성 인권을 삭제하고자 했듯,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극우 정치는 페미니즘을 적극적으로 공격하며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왔다. 특히 이들의 주된 전략은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조치들을 포함하여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파괴하는 데에 집중되고 있다. 이들은 각국에서 포괄적 성교육을 금지하고, 피임과 임신중지 지원을 위한 예산을 삭감하며, 보건의료와 사회복지, 노동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지원 체계를 해체시키기 위해 국제적으로 전략을 공유하고 극우 네트워크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따라서 윤석열과 내란 세력에 맞선 투쟁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을 넘어, 이제 전 세계적으로 인권과 성평등 가치를 옹호하며 싸우는 이들과 연대하여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투쟁으로 이어져야 한다.
한국에서 ‘낙태죄’ 폐지 이후 보장되어야 할 안전한 임신중지의 권리도 계속해서 방해를 받고 있다. 전 세계 90여개국이 사용 중인 유산유도제는 ‘낙태죄’가 폐지된지 수 년이 지났음에도 입법미비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로 승인이 거부되고 있고, 보건복지부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의료 보장 체계에 대해서는 현황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익명출산이 마치 대안인 것처럼 꾸며 사회적 여건의 문제를 가리고 특정한 상황에서의 임신출산과 임신중지를 단지 숨겨야 할 문제로 만들어 버렸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파면 결정 이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6주년을 맞이하며 우리는 여전히 지연되고 있는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과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의 보장이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기본 방향이 되어야 함을 다시 한 번 천명한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4월 11일 형법 ‘낙태죄’ 조항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결정문에서 임신의 유지 여부에 대한 자기결정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자기결정권의 근거이자 동시에 목적인 인간의 존엄성은 국가에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의무를 부과한다. 인간은 그 자체로서 궁극적 목적이자 최고의 가치로서 대우받아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이 다른 가치나 목적, 법익을 위한 수단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국가의 인구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혼인여부, 장애, 국적, 연령 등에 따라 임신·출산의 자격을 가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임신중지를 처벌하거나 통제해 온 오랜 역사를 끝내기 위해 ‘낙태죄’ 폐지를 요구했다. 그리고 ‘낙태죄’의 위헌성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임신의 유지 여부에 대한 결정을 법적 처벌이 아닌 권리 보장을 위한 방향으로 바꿔내기 위한 출발점이 되어야 함을 강조해 왔다.
안전한 임신중지를 온전히 보장하고 그와 함께 임신의 유지 여부에 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부정의를 바꾸어 나가는 것은 모든 사회 구성원이 그 자체로 존엄성을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의 결정 이후 6년이 지나도록 정부와 국회는 이를 위해 어떠한 구체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여전히 청소년과 이주민/난민, 장애인, 가정폭력이나 젠더폭력에 처한 사람, 사회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들이 이른 시기에 안전한 임신중지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모두의 존엄과 평등이 보장되는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다시 한 번 요구한다.
내란 세력과 극우 파시즘에 대한 대응은 그들을 처벌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앞으로도 우리의 삶을 통제하려는 권력이 사회 구성원들을 더 이상 수단으로 취급하지 않도록, 우리는 ‘낙태죄’의 역사를 바꾸고 재생산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근본적인 전환을 계속해서 함께 만들어나갈 것이다.
2025년 4월 11일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 보장 네트워크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건강사회를위한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노동당, 녹색당,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시민건강연구소, 여성환경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장애여성공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탁틴내일, 트랜스젠더인권단체 조각보, 플랫폼 C,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홈리스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