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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소심해서 투쟁합니다_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박재정 동지 인터뷰

이훈 (민주노조를깨우는소리 호각) mtosocialism@gmail.com
기사입력 2024.02.21 17:49 | 조회 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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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구미의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투쟁을 보고 많은 사람이 대단하다고 한다. 외국 자본에 맞서 고작 11명의 조합원이 가압류와 가처분을 이겨내며 싸우고 있다. 언제 공권력이 투입될지 아슬아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사측이 찾아온다. 당사자의 절박함은 전국의 동지를 끌어모으고 옵티칼 투쟁을 굴러가게 한다. 11명의 조합원 중 박재정 조직1부장을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비정규직의 서러움

    재정 씨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이하 옵티칼)에 입사하기 전, 공장 세 곳에서 일하며 경험을 쌓아왔다. 옵티칼 직전에 다녔던 공장은 정규직 자리인 줄 알고 입사했는데, 알고 보니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는 ‘단정해야 한다’며 두발 규정이 있었다. 머리를 기르거나 염색하면 안 됐다. 공장 안에선 휴대전화 사용도 금지됐다.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을 공장 안에서 만났다. 반가웠다. 알고 보니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던 거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동창은 긴 염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손에 휴대전화도 쥐고 있었다.

     

    “00아, 핸드폰 쓰면 안 되는 거 아냐? 머리는 또 왜 그래?”

    “아, 괜찮아. 우리한텐 아무도 뭐라고 안 해.”

     

    동창은 정규직이었다. ‘우리한텐’이라니, 재정 씨는 감정이 상했다. 차별이었다. 월급이 많은 곳이었지만 오래 다니고 싶진 않았다. 재정 씨는 딱 1년을 채운 후 그만두었다.

     

    첫인상은 좋았는데…

    2011년 5월 9일, 재정 씨는 정식으로 옵티칼에 입사했다. 면접을 보러 와서 받은 첫인상은 ‘와, 엄청 깨끗하다’였다. 외벽은 유리벽이 많았고 내부도 깔끔했다. 주차장도 컸고 ‘면접비’라며 하얀 봉투에 2만 원을 넣어서 주었다. 입사 후 재정 씨는 쭉 한 공정에서 일했는데, ‘단면 포장’ 공정이었다. 필요한 크기로 잘린 원단은 테두리가 거친데, 그걸 약 400장 쌓아서 기계로 깔끔하게 잘라 내는 게 재정 씨의 일이었다. 하루 12시간, 3조 2교대 근무는 힘들었고 방진복 속에서 마구 흐르는 땀은 티셔츠에 소금꽃을 피웠다. 한 달 정도 지나서야 적응되었다.

     

    2019년, 회사는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당시 회사는 물량이 줄었다며 직원들에게 근무시간 중 반은 원래 일을, 나머지 반은 청소만 시키고 있었다. 너도나도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망해 버릴 것만 같은 회사에서 미래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한 듯했다. 재정 씨도 휩쓸렸다.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그런데 고민이 들었다. 아내의 배 속엔 첫째 아이가 있었다. 아내가 만삭인데 희망퇴직을 한다는 건 너무 불안한 일이었다.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희망퇴직 신청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2020년, 1년 만에 회사는 또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만약 목표한 숫자만큼 희망퇴직하지 않으면 해고도 하겠다고 했다. 재정 씨는 화가 났다. 재정 씨는 근속연수도 많고 부양가족도 많아서 해고 대상자가 될 일은 없었지만, 회사의 무책임함은 재정 씨를 분노하게 했다. 노동조합을 찾았다.

     

    “저희 다 조합원이고 다들 조합비도 내는데 왜 노조가 우릴 지켜주지 않습니까?”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싸웠다가 회사가 다 접고 일본으로 가겠다고 하면 어떡해.”

     

    그렇게 노동조합은 싸우지 못했고 700여 명의 노동자 중 약 57명이 남았다. 그 후, 코로나19로 중국 공장이 폐쇄되면서 구미 공장의 물량이 엄청나게 늘자 100명을 새로 뽑았다. 새로 들어온 사람 중 대다수는 이전 희망퇴직으로 나갔던 사람이기에, 알려 주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척척 일했다. 물량은 많고 반가운 얼굴도 잔뜩 돌아오니, 회사가 잘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박서방 어떡해!”

    2022년 10월 4일,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집에 오셨다.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TV엔 뉴스가 나오고 있었는데 화면 아래쪽에 속보가 나왔다. 구미 옵티칼 공장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는 거였다. 직원 단체방에서 화재 사진과 영상이 쉴 새 없이 올라왔다. 곧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이 나왔다.

     

    “관리사무소에서 알려드립니다. 현재 구미4공단에서 큰 화재가 발생하여 연기와 재가 아파트 방향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주민분들께선 건강과 청결을 위해 창문을 닫으시길 바랍니다.”

     

    급히 뉴스를 검색하니 공장이 엄청난 불에 휩싸여 있었다.

     

    “박서방 어떡해!”

     

    가족 모두가 얼어붙었다. 재정 씨는 몸과 생각이 모두 멈춰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22년 11월 4일, 회사는 청산을 문자로 통보하며 희망퇴직할 기회를 준다고 했다. 만약 희망퇴직하지 않으면 해고라고 했다. 재정 씨네는 아이가 둘이다. 당시 첫째는 2살, 둘째는 고작 7개월이었다. 아내가 돈을 버는 것도 아니었다. 막막했다. 재정 씨는 노동조합 설명회를 찾았다. 금속노조의 간부들이 회사가 ‘먹튀’를 했다며, 이길 수 있는 투쟁이라고 했다. 자신감 있어 보였다. 장인어른도 찾아갔다. 재정 씨의 장인어른은 한국노총 사업장에서 위원장을 15년이나 한 경험이 있었다.

     

    “아버님, 제 상황이 이런데, 투쟁이 고민됩니다.”

    “박서방, 한번 해 봐. 안 하는 것보다 좀 나을 거야.”

     

    재정 씨는 고민 끝에 투쟁하기로 마음먹었다. 희망퇴직 신청 마지막 날인 12월 16일, 재정 씨가 투쟁에 합류했다.

     

     

    탄압과 고공농성, 절박함과 홀가분함

    그 후로 많은 일이 있었다. 노동조합이 유의미한 활동을 못 한 8개월과 굴착기를 맨몸으로 막아서던 날, 전세 보증금이 가압류되었음을 확인한 날, 단전(斷電), 단수(斷水)를 아등바등 버텨내는 날이 이어졌다. 건강도 안 좋아졌다. 원래 재정 씨는 약을 자주 먹으면 몸에 내성이 생긴다며 감기약도 안 먹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젠 매일 약을 15개나 먹는다. 회사의 탄압은 재정 씨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주었고 고지혈증, 고혈압, 협심증, 신경불안, 역류성 식도염 등이 생기게 했다.

     

    2024년 1월, 회사는 청산의 마지막 절차로 공장 건물 철거를 원했다. 절차상 구미시청의 승인이 필요한데, 구미시청은 곧 승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만약 전부 철거하면 청산은 빠르게 마무리될 거고 노조의 투쟁은 더 어려워진다. 조합원들은 걱정이 많았다. 1월 8일 아침, 재정 씨가 평소처럼 노동조합 사무실로 왔다. 뭔가 이상했다. 박정혜 수석부지회장과 소현숙 조직2부장이 공장 건물 옥상에 있었다. 분위기도 무거웠다. 이지영 사무장에게 물었다.

     

    “지영아, 현숙이 누나랑 정혜 누나 왜 저깄어?”

    “고공농성... 시작이야.”

    “그게 뭔데?”

     

    재정 씨는 고공농성이 뭔지도 잘 몰랐다. ‘누나들이 왜 안 내려오는 거냐고. 얼른 내려오라 하라고’ 지영 씨를 붙들고 말했다.

     

    2024년 2월 16일 오전 10시, 법원집행관이 ‘공장철거방해금지가처분’ 중 일부를 집행하겠다고 찾아왔다. 경찰들도 함께했다. 노조 사무실을 회사에 넘기겠다는 거였다. 정혜 누나와 현숙이 누나가 고공농성에 돌입한 지 40일 차였다. 전국에서 약 1,000명의 동지가 모여 주었다. 다 같이 공장을 둘러싸고 법원 집행관과 사측에게 ‘돌아가라’고 외쳐댔다. 그날 재정 씨와 조합원 대부분은 약 4M 높이의 틀비계에 올랐다. 온몸에 쇠사슬을 감은 채였다. 재정 씨는 처음엔 겁이 났지만 조합원들과 다 같이 그 위에 앉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막아내겠다는 절박함 속에서 이상하게 홀가분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아내는 투쟁이 격해지는 걸 볼 때면 재정 씨를 말렸다.

     

    “오빠, 이렇게까지 해야 돼?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

     

    아내의 걱정과 만류는 재정 씨를 고민하게 했으나, 재정 씨는 아내를 설득했다. 여기까지 온 게 아깝다고. 회사는 가압류 풀고 싶으면 반성문 쓰라는데 그럴 수는 없다고. 날 조금만 더 믿어달라고. 그때마다 아내는 재정 씨의 설득에 기꺼이 넘어가 주었고 그때마다 재정 씨는 아내가 많이 고마웠다. 집을 나설 때, 아내와 서로 ‘투쟁!’이라고 인사를 주고받기도 한다.

     

    소심해서 투쟁을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재정 씨는 성격이 소심하다. 작은 거 하나라도 꽂히면 헤어나오질 못한다. 계속 생각하고 고민한다. 가끔 “재정 동지, 생각 좀 그만해요. 어떻게 그러고 살아요”라며 조합원들에게 잔소리도 듣는다. 전세 보증금이 가압류된 후 재정 씨는 꽤 오랫동안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들었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이사 가야 하는데 보증금을 못 받으니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심함이 재정 씨를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재정 씨는 알고 있다. 만약 포기하고 떠나면 계속 눈앞에 조합원들이 아른거릴 것을. 고공에 누나들을 두고 왔음에 괴로울 것이다. 재정 씨의 소심함은 재정 씨가 매일 ‘투쟁!’을 외치게 하는 동력이다. 서로에게 미안함 없이 마음 편하게 함께 살 방법을 재정 씨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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