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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자본에 백기투항한 COP28, 파국에 맞서는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을 조직하자

2024년,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에 주목하자

기사입력 2023.12.26 10:38 | 조회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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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든도, 시진핑도 COP28에 참여하지 않았다. 사진: DPA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을 거부했다. 지난 13일 두바이에서 채택한 최종 합의문에는 ‘10년 안에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을 시작한다’고 적혀있다. 2년 전 COP26에서 합의한 석탄의 ‘단계적 감축(phase down)’보다 더 후퇴한 표현이다. 덕분에 당장 화석연료 자본이 생산을 늘려도 합의 위반이 아니다. 실제로 COP28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UAE)부터 화석연료 투자 확대를 선언했다. 그것도 COP28 폐막 이틀 만에 말이다. 기후위기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자본주의의 맨얼굴이다.

     

    COP28 의장 “화석연료에 더 많은 투자를”

     

    COP 회의장에는 언제나 석유자본과 핵자본 로비스트가 득실거렸다. 심지어 이번 COP28에는 대놓고 UAE 석유회사(ADNOC)의 최고경영자가 의장으로 선출됐다. 술탄 알 자베르(Sultan Al Jaber) COP28 의장은 개회 전 한 행사에서 “(1.5도 제한을 지키기 위해) 화석연료를 퇴출해야 한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발언했다. 기후위기 부정론자들이나 할 법한 얘기를 할 정도로 그는 석유자본의 이해에 충실하다.

     

    의장을 배출한 석유자본가들은 합의문에도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했다. COP26에서 석탄의 단계적 감축에 합의한 이후, COP27은 화석연료에 대해서도 단계적 퇴출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회의장에 화석연료 자본을 대변하는 총 636명의 로비스트가 참석했고, 화석연료에 대한 합의는 불발됐다(전진 기사 “COP27에서 확인된 것 : 자본가들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참고). 논의는 COP28로 넘어왔고, 세계 2위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국가들이 화석연료 퇴출을 반대하고 나섰다. 그 결과 합의문 초안에는 ‘퇴출’ 대신 ‘소비와 생산의 감소’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얼마나, 언제까지 감소하겠다는 목표조차 없는 무기력한 문구다. 당장 수몰 위기에 놓인 태평양 국가들이 반발하고 나서자, 산유국들은 10년 내로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진다’는 문구를 최종 합의문에 넣었다. 화석연료로부터 ‘어떻게’ 멀어질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하다. 이미 기후파국에 접어들었음에도 ‘10년’이나 더 기다리라고 하는 화석연료 자본에 COP28이 굴복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베르 COP28 의장은 “화석연료에 계속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7년간 1,500억 달러(한화 약 200조) 규모의 투자 계획을 COP28 폐막 불과 이틀 뒤에 발표한 것이다. COP28 의장국이 행동에 나섰으니 다른 산유국도 마음 편히 석유생산을 확대할 수 있다. COP28은 실상 기후위기 해결이 아닌, 석유자본 이윤 확대를 위해 모인 회의였던 셈이다.

     

    기후파국으로 질주하는 COP, 이것이 자본주의의 실체다

     

    이렇듯 COP28은 석유자본의 요구 앞에 무기력하다. 이는 비단 올해에만 일어나는 특수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실체다. 자본주의에서 제국주의 전쟁, 에너지 위기, 석유자본의 이윤 앞에 ‘기후위기’는 후순위로 밀려난다. 당장 이번 COP28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미국과 중국 정상, 바이든과 시진핑이 불참했다. COP는 강제력이 없고, 불참 국가에 대한 제재나 처벌도 없다. 특히 미국은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올해는 이스라엘에 무기를 지원하며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를 경험한 이후, 주요 선진국들은 일제히 화석연료로의 회귀를 외치기 시작했다. “에너지 공급을 외국에 의존하지 마라. 자국 내에 에너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러우 전쟁과 공급망 위기가 가져다준 교훈이다. 그런데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자국 내에서 충분한 에너지를 확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화석연료뿐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 10월 한 달간 북해에 27곳의 신규 유전 개발을 허가했다. 독일의 화석연료 발전량은 2020년 302TWh에서 2022년 332TWh로 10% 이상 늘었고, 영국도 164TWh에서 176TWh로 7% 이상 늘었으며, 프랑스도 56TWh에서 69TWh로 20% 이상 증가했다. COP28에서 ‘화석연료 퇴출’이 거부된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심지어 손실과 피해기금(Loss and damage fund) 조차 난도질당했다. 지난해 COP27에서 기후위기 피해국을 지원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기금을 마련하자는 내용이 진통 끝에 합의되었다. 물론 구체적인 보상 범위와 규모는 논의되지 않았다. 개발도상국들은 기후위기 피해복구를 위해 연간 1천억 달러의 기금을 요구했다. 그러나 COP28에서 확인된 기금은 약 8억 달러(0.8%)에 그쳤다. 특히 미국은 겨우 1,750만 달러를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전쟁과 학살 지원에는 아낌이 없지만, 기후위기 피해국을 지원할 돈은 없다. 자본주의 국가에 기후위기 해결을 맡기는 것은 이렇듯 허망하다.

     

    지구를 구할 유일한 희망,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에 나서자

     

    한편 COP28 회의가 열린 두바이에서는 화석연료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그런데 그 규모는 최근 수년간 COP 앞에서 열린 시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에 대해 UAE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인 탓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는 또한 세계 기후정의운동의 정체를 반영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세계 기후정의운동은 그레타 툰베리 등장에 이은 '미래를 위한 금요일' 시위와 함께 단시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런데 초기 몇 차례의 대규모 거리시위나 직접행동 외에, 자본을 힘으로 강제하거나 실제 변화를 이룬 사례는 많지 않다. 지금, 자본이 기후정의운동을 두려워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운동의 동력은 정체하고 있다.

     

    그런데 독일에서 반전의 실마리가 나타났다. 노동자가 참여하는 대규모 기후파업이 성사된 것이다. 독일의 기후정의 활동가들은 노동자계급의 참여가 기후정의운동에 새로운 동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대중교통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퇴사율이 높았다. 또한 도서 지역에는 대중교통 체계가 매우 열악했다. 독일의 미래를 위한 금요일 활동가들은 2020년부터 대중교통 노동자의 생활임금이 기후정의라며 연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23년 3월 3일, 세계 기후파업에 맞추어 독일 최소 30개 도시, 대중교통 노동자들을 비롯해 20만 명 이상이 파업에 나섰다. 독일 고용주 연맹(BDA)의 CEO 슈테펜 캄페터는 파업에 대해 “노조가 정치파업의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며 비난했다. 자본이 두려워할 만한 기후파업을 조직해 낸 것이다. 같은 달 27일에는 대중교통 노동자만이 아니라 전체 운송노동자의 파업인 메가스트라이크(Mega strike)로 확대됐다.

     

    이는 노동자계급의 참여가 기후정의운동을 반등시킬 수 있는 경로임을 보여준다. 노동자계급은 자본의 이윤을 중단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기후정의운동에 가장 절실한 ‘자본에 대한 강제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집단이라는 뜻이다. 물론, 한국에서 노동자계급에게 기후정의운동은 여전히 어색하다. 그러나 발전노동자를 중심으로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은 분명 확산하고 있다. 2022년 924 기후정의행진 이후 에너지 산업 국유화와 해고 없는 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발전노동자들이 등장했다. 발전뿐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서 자본의 책임을 묻고 해고 없는 산업전환을 쟁취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던져야 한다.

     

    내년 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를 앞둔 충남 지역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충남노동자행진’이 열린다.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노동자 기후정의운동이 시작된다. 이것만으로도 연대할 이유는 충분하다. 자본주의가 가속하는 기후위기, 노동자계급이 앞장서서 막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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