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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9 투쟁 24일 차, 기만 씨의 마음

이훈 (민주노조를깨우는소리 호각)
기사입력 2023.11.26 10:15 | 조회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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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여름,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다. 약 1천 가지의 업무를 하며 하루에 약 120콜씩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받으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경주하듯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투쟁의 결과는 ‘소속기관 전환’이었다. 온전한 직고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고용 안정성이 나아지는 결과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3년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1,600여 명의 상담사는 아직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노동조합원들은 원주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로 모였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을까, 하루하루 어떤 투쟁을 하며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오늘의 투쟁’을 하루하루 돌아보기 위해 조합원을 인터뷰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투쟁 24일 차는 부산2센터 소속이며 지회 정책부장인 김기만 조합원의 시선으로 돌아보았다.

     

    2015년 4월, 기만 씨가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에 입사했다. 1년이 조금 넘었을 무렵 몸이 안 좋았다. 병원에선 한 달간 쉬어야 한다고 했다. 회사에 병가를 요청했는데 ‘그 정도 쉬려면 그만두셔야 해요’라는 말을 들었다. 결국 기만 씨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만둘 때 이런저런 서류에 서명해야 했는데, 회사가 주는 거에 서명만 했다. 그러니 실업급여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서명을 잘못했다고 했다.

     

    약 4개월 후, 기만 씨는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에 재입사했다. 3년 정도 더 일했다. 어느 날 잘 모르는 사람들이 찾아왔다. 노동조합을 만들 거라고 했다. 설명회를 하러 왔으니 모여달라고 했다. 기만 씨는 안 그래도 열악한 노동 환경 때문에 노동조합이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설명회 다음 날, 기만 씨와 많은 상담사가 가입서를 바로 썼다.

     

    2021년 여름, 치열한 직고용 투쟁이 ‘소속기관 전환’으로 마무리되고 다들 각자의 지역/지회로 돌아갔다. 기만 씨는 부산에서 생각했다. ‘쉽게 될 리가 없어. 분명 회사는 소속기관도 안 해주려 할 거야. 언젠가 다시 투쟁하게 될 거야.’ 기만 씨의 생각은 현실이 됐다. 2023년 11월 1일부터 파업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기만 씨는 ‘때가 왔구나’ 생각했다. 예상했던 거라고 화가 안 나는 것도 아니었다. ‘저번에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하려고 소속기관을 말한 거야. 다 순 거짓말이었던 거야.’ 억울했다.

     

    2023년 11월 24일, 기만 씨는 원주로 향했다. 부산에서 동대구까진 기차로, 동대구에서 원주까진 고속버스를 타고 왔다. 날이 춥다. 부산도 원주도 한파가 찾아왔다. 기만 씨는 나름 옷을 따뜻하게 챙겨입었다. 기차를 타니 따뜻했다. 밖을 바라보니 햇살이 좋았고 평화로워 보였다. 기만 씨는 아이러니함을 느꼈다. 세상은 평온해 보이고 오늘 기만 씨의 생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상황은 힘들고 마음은 전쟁터다. ‘사람들은 우리 상황을 잘 모르겠지.’ 건보공단과 노동조합의 상황이 어딘가에 파묻혀있는 거 같았다.

     

    원주에 도착하니 오후 1시쯤이었다. 조합원들과 이젠 익숙해진 일상을 함께 했다. 밥을 먹었고 선전전과 결의대회를 했다. 부산2센터 집행부와 중간중간 이야기도 조금 나눴지만 대부분 “이날 조합원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같은 업무적인 이야기였다. 사실 기만 씨는 공단에 대한 분노도 있고 투쟁이 길어진다는 걱정도 있지만, 머릿속에 가득한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단식하는 은영 누나 걱정, 다른 하나는 조합원 조직에 대한 걱정이다. 투쟁이 길어지면서 조합원들이 점점 힘들어하는 거 같아서 걱정이다. 가정이 있는 조합원은 농성하는 게 부담스럽단 걸 잘 알고 있다. 말을 꺼내기 어렵다. 하지만 투쟁을 포기할 순 없다. 조합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더 잘 다가가고 함께해달라고 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한다.

     

    투쟁 24일 차, 기만 씨는 오늘을 ‘은영 지부장님을 걱정한 날’이라고 정리했다. 이은영 지부장과 기만 씨는 같은 센터 소속이다.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닌지 몰라도 서로 반말하며 ‘누나’, ‘기만아’하는 사이다. 2년 전에 18일간 단식했던 은영 누나가 또 단식을 하고 그게 길어지는 걸 보며 걱정이 많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의 소속기관 전환을 향한 총파업 투쟁 24일 차, 익숙해진 투쟁과 평온한 날씨 속에서 마음이 전쟁터라서 아이러니했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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