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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총파업 연재기고] #8 투쟁 11일차, 이슬 씨의 마음

이훈 (민주노조를깨우는소리 호각)
기사입력 2023.11.12 16:52 | 조회 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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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1월 1일 발언하는 고이슬 조합원

     

    2021년 여름,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상담노동자들은 투쟁에 돌입했다. 약 1천 가지의 업무를 하며 하루에 약 120콜씩 전화를 받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통제받으며 인센티브를 더 받기 위해 경주하듯 일했다.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투쟁의 결과는 ‘소속기관 전환’이었다. 온전한 직고용은 아니지만 비교적 고용 안정성이 나아지는 결과였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3년 11월,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1,600여 명의 상담사는 아직도 저임금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다리다 지친 노동조합원들은 원주에 위치한 국민건강보험공단 본사로 모였다.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 모였을까, 하루하루 어떤 투쟁을 하며 그 속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궁금했다. ‘오늘의 투쟁’을 하루하루 돌아보기 위해 조합원을 인터뷰해서 정리하기로 했다. 투쟁 11일 차는 부산2센터 소속이며 누가 권하기 전, 노조에 가입하려 먼저 찾아왔다는 고이슬 조합원을 인터뷰했다.

     

    2022년 5월 17일, 이슬 씨가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에 입사했다. 수습기간에 조합원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이슬 씨는 깜짝 놀랐다. 점심시간, 육아 휴직, 쉬는 시간 모두 노동조합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었다. 가장 놀란 건 관리자와 노조의 관계였다. ‘노동조합이 생긴 후로 관리자는 조합원 상담사한테 함부로 말할 수 없어’라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이슬 씨는 이전에 카드사와 홈쇼핑의 고객센터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다. 두 곳 모두 관리자가 소리 지르며 상담사를 혼내는 건 일상이었다. 그런데 이곳은 달랐다. 노동조합에 가입하기만 하면 관리자가 함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슬 씨는 잠시 고민했지만, 노동조합에 대해 전혀 모르는 자신이 ‘감히’ 가입해도 되는 건지 망설였다. 며칠 후, 관리자는 이슬 씨와 옆자리 동료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냈고 이슬 씨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오열하듯 울었다. 수습기간이 끝나는 8월 1일, 이슬 씨는 바로 노동조합을 찾아가 가입했다.

     

    2023년 9월, 이슬 씨는 파업하고 원주로 투쟁하러 가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이슬 씨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열의가 불탔다. 하루라도 빨리 원주에 가고 싶었다. 얼른 가서 잘 싸우고 싶었다. 2년 전 선배 상담사들이 어떻게 싸웠는지 알고 있었다. 이번엔 자신도 함께하고 싶었다. 11월 1일, 부산지회가 도착했을 땐 이미 펜스를 뚫고 동료들이 들어간 상태였다. 동료들이 경찰과 대치했고 물품을 들여오려고 애쓰고 있었다. 이슬 씨는 많이 떨렸다. 경찰과 싸워야 할지, 물품을 날라야 할지, 무서워하는 조합원들 손을 잡고 있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긴장했다.

     

    11월 4일, 이슬 씨는 집에 있었다. 3일 밤에 부산으로 돌아와서 6일에 원주로 다시 가는 일정이었다. 핸드폰이 마구 울렸다. 경찰이 들어와서 대치하고 있다고 했다. 쓰러진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게 부산지회장이라고 했다. 이슬 씨는 안절부절못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가야 할까’, ‘부지회장님이 결정해주면 지금이라도 갈 텐데 어쩌지’ 고민했다. 자신이 지금 원주로 가는 것과 일정대로 하는 것 중 무엇이 맞는지 몰라서 발만 동동거렸다. 6일에 일정대로 가기로 결정이 나왔고 이슬 씨는 한숨 돌렸다. 짐을 챙겼다. 더 따뜻하고 두꺼운 옷을 챙겼다. 필요할 것 같은 물품은 다 가방에 넣었다. 꼼꼼하게 챙기며 단단히 무장한다는 생각을 했다. 문득 ‘현타’가 오기도 했다. ‘내가 왜? 우리가 왜 이래야 하는 거지?’ 하지만 이슬 씨는 고개를 흔들고 다시 짐을 싸는 데에 집중했다.

     

    11월 11일, 이슬 씨가 원주에 온 세 번째 날이었다. 주말이라 조합원은 다소 적었고 농성장은 조용했다. 조용하니까 좋기도 했지만 다른 생각도 많이 들었다. ‘이렇게 조용해도 되나? 조용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마치 우리가 공단 앞마당의 조형물처럼 자리 잡은 거 같아서 걱정됐다.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그날 밤, 이슬 씨는 잠시 천막을 나왔다. 밤하늘을 봤다. 농성장을 쭉 둘러보니 천막에서 불빛이 새어나왔고 말소리도 들렸다. 조합원 숫자는 조금 적었다. 하지만 여기 없는 조합원도 다들 마음은 여기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몸은 멀리 있어도 마음은 여기 있을 텐데.’ 이슬 씨는 총파업 투쟁 11일차를 ‘머물지 않지만 머무는 날’이라고 정리했다. 밤에 천막 안으로 다시 들어가면서 ‘오늘은 여기 머물지 않는 조합원도 마음으로 머무는 날이네’라고 생각했다.

     

    이슬 씨는 이 투쟁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가끔 현장이 버거울 때면, 모든 상담사가 다함께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쉽다. 다만 예전에 지부장님이 한 말을 떠올린다. “옛날 독립운동도 전 국민이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첫 발언에서 “저는 아직 노조를 잘 모릅니다. 하지만 집행부에서 키를 잘 잡아주시면 저는 때를 맞춰 노를 젓고 돛을 올리는 조합원이 되겠습니다”라고 했던 약속을 떠올린다. 이슬 씨는 지부장의 조언과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려 한다. 온전한 소속기관 전환을 위한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조합 총파업 11일차, 농성장을 지키는 조합원과 떨어져 있는 조합원이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 날이다. 약속하는 과거의 자신과 그 약속을 지키는 현재의 자신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 날이다.

     

    사진: 공단을 향해 아침 선전전을 하는 조합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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