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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죽음으로 내몰린 택시노동자 _ ‘방영환 열사 죽음의 책임 규탄 시민행진’ 후기

기사입력 2023.10.22 10:46 | 조회 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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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20일 오후 1시, 해성운수 앞에서부터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까지 이어지는 ‘방영환 열사 죽음의 책임 규탄 시민행진’이 있었다. 


    업무를 서둘러 마치고 양천구에 있는 해성운수 앞으로 향했다. 약식 집회 후 바로 행진이 이어지는 터라 혹시라도 늦을까 봐 바삐 발걸음을 움직이다 결국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아 오르고 ‘해성운수’라 행선지를 말했다. 택시노동자분은 내비게이션을 켜지도 않은 채 해성운수로 곧바로 출발했다. 어떻게 아시냐고 물었더니 서울 시내에서 택시 운전을 오래 하니 당연히 안다고 했다. 지난달 그곳 택시노동자가 분신했고 관련 집회에 참여하러 가는 길이라 했더니 그런 일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고 했다. 


    해성운수, 서울시, 고용노동부가 내몬 죽음


    지난 9월 25일, 정부는 ‘임금체불 근절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발표가 무색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그 이튿날 해성운수 방영환 택시노동자가 분신했다. 


    방영환은 2008년 1월부터 택시노동자로 일했다. 2012년에는 해성운수를 포함한 18개 계열사를 둔 동호그룹의 주호교통에 입사했고 2017년 해성운수로 전근했다. 2019년에는 택시노동자들이 겪는 여러 부당함을 해소하고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해성운수분회를 설립했다. 그러다 2020년 2월 계열사 간 이동임에도 1년 단위로 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는 불이익변경 근로계약 서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같은 해 8월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소했고 이후 부당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와 집회를 이어갔다. 그리고 2022년 11월, 원직복직을 했으나 사측의 노동탄압은 계속됐다. 복직한 그는 사측이 제시하는 사납금제 근로계약 서명을 거부했다. 


    2021년 1월 1일부터 서울지역 일반택시 사업장에서 주 40시간 이상 소정근로시간에 기반한 완전월급제가 시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성운수는 편법적인 사납금제를 유지했다. 사납금제는 택시노동자가 날마다 일정 기준의 액수를 회사에 내고 초과분은 택시노동자가 갖는 제도다. 단 요금 수입이 사납금에 미치지 못할 경우 모자란 만큼 택시노동자가 채워 넣어야 한다. 


    방영환이 사납금제 근로계약 서명을 거부하자 사측은 주 40시간 근무에 대한 월 급여 100만원만 지급했다. 2023년 5월부터는 그마저도 전액 미지급했다. 방영환은 2023년 2월부터 227일 동안 완전월급제 이행을 요구하며 1인 시위와 집회를 지속했다. 5월부터는 1인 시위 중 사측의 빈번한 폭언과 폭행마저 감내해야 했다. 사측은 복직한 방영환에게 한여름 에어컨이 고장 난 차량을 배차하며 사실상 택시운전업무를 할 수 없게 했고 노조활동을 방해했다. 그러다 9월 26일 해성운수 앞에서 분신했고 10월 6일 너무나 안타깝게도 목숨을 거뒀다.  


    이는 해성운수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서울지역 일반택시 사업장 대부분이 변형된 기준금제를 시행하며 택시노동자들을 착취하는가 하면 임금을 체불하고 있다. 택시노동자들은 서울시에 전수조사와 사업주 처벌을 요구하고 있지만 어디 한 곳에서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또한 택시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 사업주 처벌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 역시 실행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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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지역 일반택시 사업장의 법 위반


    택시 요금 인상으로 시민들의 불만과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택시노동자들이 그만큼의 인상분을 수입으로 가져가는 것도 아니다. 서울지역 일반택시 회사들은 법률에 따라 1주간 40시간 이상이 되도록 노동시간을 정해야 한다. 하지만 사측은 승객이 승차한 시간만으로 산정하는 ‘실차시간’, 또는 1일 3.5시간/1주 20시간으로 소정근로시간을 정해, 주 40시간에 한참 미달하는 임금을 지급하고 있다. 수많은 노동위원회 판정으로, 임금지급의 기초가 되는 소정근로시간을 실차시간으로 규정하는 행위는 무효임이 확인되었다. 1주 40시간 미만으로 정한 경우는 법 위반으로 인정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회사가 일정 금액을 기준으로 정해 운송수입금 납입을 강요하고, 기준금에 미치지 못할 경우 임금에서 공제하고 징계하는 등 불이익을 주며, 법으로 금지된 사납금제를 사실상 운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법 위반을 막기 위해 사업장을 지도, 관리, 감독해야 함에도 방관만 하고 있다.  


    더 이상 이대로는 살 수 없다!


    10월 20일, ‘방영환 열사 죽음의 책임 규탄 시민행진’이 진행되는 동안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노동자 40여 명은 서울남부고용노동지청 5층에 모여 농성을 벌였다. 이들은 △해성운수가 방영환 열사에게 미지급한 최저임금에 대한 체불금품 확인원 발급 △동훈그룹(해성운수 포함 21개 법인택시회사 소유) 특별근로감독 △해성운수 사업주 처벌 △서울남부지청장 면담 등을 요구했다. 


    해성운수, 서울시, 고용노동부는 방영환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공범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21조는 아래와 같다. 


    1. 1일 근무시간 동안 택시요금미터에 기록된 운송수입금의 전액을 운수종사자의 근무종료 당일 수납할 것 

    2. 일정금액의 운송수입금 기준액을 정하여 수납하지 않을 것

    3. 차량 운행에 필요한 제반경비를 운수종사자에게 운송수입금이나 그 밖의 금전으로 충당하지 않을 것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 제11조의2는 아래와 같다.

      

    일반택시운송사업 택시운수종사자의 근로시간을 「근로기준법」 제58조제1항 및 제2항에 따라 정할 경우 1주간 40시간 이상이 되도록 정하여야 한다.


    사납금제는 불법이다. 택시는 완전월급제로 운영되어야 하며, 이는 택시노동자들이 치열한 투쟁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대통령이 입만 열면 ‘법과 원칙’을 외치는 이 나라에서, 택시노동자 방영환은 멀쩡히 존재하는 그 법을 온전히 적용받기 위해 분신해야 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그의 죽음은 말한다. 자본주의 국가의 ‘법과 원칙’은 오직 자본가들을 위한 것임을, 계급투쟁 없이는 노동자 삶의 그 어떤 개선도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무법천지의 현장에서 착취당하는 택시노동자들에게는 민주노조가 필요하다. 태반이 무노조 상태에서, 혹은 어용노조 아래 고통받는 택시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방영환 열사투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힘을 모아, 악랄한 택시자본과 국가에 맞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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