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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죽였다 -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을 호소한다

이환태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mtosocialism@gmail.com
기사입력 2023.09.17 13:55 | 조회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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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 


    지난 8월 29일 현대제철 당진공장에 다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병원으로 옮겼지만 뇌사판정을 받았고, 9월 6일 장기기증을 마친 후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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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충남노동자뉴스 길

     

    고인은 2010년 30대 중반에 사내하청업체에 들어왔다. 연주공장 주상공정(제강공장에서 정련을 마친 용강1)을 연속주조기에 주입하기 위한 준비공정)에서 10년 넘게 일했다. 현대제철이 자회사를 밀어붙이며 그가 다니던 업체를 폐업했고, 그가 일하던 공정은 자회사로 넘어갔다. 하루아침에 다른 업체, 다른 업무로 쫓겨가는 신세가 됐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1) 불순물이 제거된 쇳물

     

    3개월간 대기했다. 자회사로 더 많은 공정을 넘긴 탓에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냉연공장 롤샵(압연에 쓰일 롤을 연마 등으로 준비하는 공정)으로 전적되었다. 좀처럼 일이 손에 익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동료들과도 데면데면해졌다. 

     

    올해 3월, 고인이 다니던 업체가 또 폐업되고 다른 업체로 전적됐다. 3월 21일 천장크레인 수동운전 리모컨을 조작하다 설비 사고를 냈다. 회사에선 수천만원에서 수억 원을 보상해야 할 거라고 한다. 그 사고 이후 리모컨을 잡을 수가 없다. 동료들의 시선도 곱지 않은 것 같다. 주변에서 당분간 휴직을 권했다. 당장 가족들의 생계가 걱정이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3개월 정도 쉬면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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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제철의 자회사 강행이 노동자를 죽였다 


    2021년 현대제철은 자회사 설립을 밀어붙였다. 불법적 비정규직 양산의 책임을 덮으려는 조치였다. 자회사 ‘현대ITC’는 덩치 큰 용역회사에 불과했고 그 자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여전히 비정규직이었지만, 현대제철은 ‘자회사 정규직’이라고 포장했다. 현대제철은 14개 업체의 도급계약 종료를 통보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자회사로 가라고 협박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생산에 지장을 받는 핵심 공정을 자회사로 넘겼다. 비정규직지회 투쟁의 힘을 최대한 빼겠다는 심산이었다.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는 총파업으로 저항했다. 현대제철 자본은 정규직 노동자로부터, 그리고 전국 각지로부터 파업 대체인력을 모집해 투입했다. 246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비정규직지회는 53일 파업으로도 자회사 도입을 온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현대제철은 하청업체가 맡았던 일자리 상당수를 자회사로 넘겼다.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회사로 넘어갔다. 


    (운송·환경사를 제외하고) 자회사를 거부한 1,900여 노동자 중 940여 명이 일하던 공정이 자회사로 넘어갔다. 이에 따라 천명에 가까운 인원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과 업무로 쫓겨가야 했다. 현대제철은 자회사로 넘길 공정을 먼저 선정한 다음, 남은 공정을 하청업체 몫으로 남겼다. 자회사가 공식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2021년 9월 1일 이후, 자회사로의 전직을 거부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력배치는 고려하지도 않았다. 일자리를 지키려면 자회사로 가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자회사로 넘어간 인원이 현대제철의 예상보다 적었다. 그러자 현대제철은 회유와 협박으로 현장을 들쑤셨다. 공정을 빼앗으려고 사람까지 바꿔치기하고, 자회사 인원이 어느 정도 차면 공정조정을 한다며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 거기에 비정규직지회의 전 지도·집행부까지 동원됐다. 현대제철은 약 9개월간 비정규직 노동자를 분열시키면서 자회사에 부족한 인원을 채워갔다.


    자회사로 가지 않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들어가야 할 일자리는 ‘좁은문’이 됐다. 당장 일자리가 없는 노동자들은 공장이나 집에서 기약 없이 대기하게 했다. 짧게는 1~2개월에서 길게는 7~8개월이나 대기했다. 노동자들은 기약 없는 대기에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견디지 못한 수십 명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공장을 떠났다. 


    현대제철은 노동자들이 십수년간 공들여 해오던 일을 강탈하고, 동고동락하던 동료들과 강제로 헤어지게 하고, 수개월간 대기시키며 고용불안에 떨게 했다. 자회사 전직을 거부한 노동자들은 ‘해보지 않은 일인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람들과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일 못한다고 잘리지는 않을까’ 등 극심한 심적 부담으로 고통받았다. 현대제철은 작년부터 원청이 맡아야 할 안전관리 업무를 하청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부당한 방침을 강요하며,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워크오더2)를 발행하지 않는 갑질까지 저지르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현대제철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병들게 하고, 극한 상황으로까지 내몰았다.

    2) 원청에서 하청에 발행하는 작업지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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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제철 원하청 모든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으로 


    불법적 비정규직 양산의 책임을 덮으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대제철 자본이 노동자를 죽였다. 노동자를 극한 선택으로 내몬 책임은 전적으로 현대제철에 있다. 더는 노동자가 죽임 당해서는 안 된다. 현대제철은 사망한 노동자의 유족에게 사죄하고 보상함은 물론, 자회사 설립 강행으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탐욕으로 가득찬 정의선을 강제할 수 있는 것은 노동자의 단결과 투쟁뿐이다. 그래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등 돌리고 있는 현실이 못내 아쉽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모든 노동자가 단결해 함께 공장을 멈출 때, 파업을 이유로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할 때, 현장통제권이 노동자들의 손에 있을 때 노동자가 죽임 당하지 않는다. 현대제철 불법파견 철폐! 온전한 노조법 2·3조 개정! 고인의 죽음 앞에 다시 투쟁을 결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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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충남노동자뉴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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