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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프랑스 연금개악 반대투쟁의 교훈: 노동자계급은 어떻게 승리로 나아갈 수 있는가

송성윤(성공회대 노학연대모임 가시)
기사입력 2023.08.21 13:41 | 조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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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내용은 프랑스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 '연속혁명'의 활동가 아르쑤르(Arthur) 동지와 전진이 7월 16일 온라인 토론을 진행한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것입니다.

    지난 12일~13일 전진에서 준비한 정치캠프에 참여했다. 나는 대학교에서 노학연대 활동을 하며 사회학과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세션 중 특히 프랑스 연금개악 반대투쟁에 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지난 학기 학교에서 유럽정치에 관한 수업을 들었기에 더 관심이 갔다. 특히나 프랑스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라니! 이런 일은 흔치 않겠다 싶어 신청했다.

    프랑스에서 지난 몇 달간 가장 이슈가 되었던 일을 뽑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마크롱 정부의 연금개혁 문제였을 것이다. 마크롱 정부가 1월 10일 발표한 연금개혁안의 핵심은 퇴직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늘리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더 일하다 죽어라"라는 내용의 연금개악안이었다.


    불과 몇 년 전이었다면 나는 "도대체 정년을 늘리는 게 왜 문제지?"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한국의 많은 노동자는 정년이 늘어나는 일을 반가워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이미 더 일하지 않고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상황에서 더 일하라고 한다면? 이것이 프랑스 노동자계급이 처한 문제였다. 프랑스의 연금제도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만들어 낸 사회적 성과였다. 지금 정부가 그것을 건드리는 것이다.

    연금개악 반대투쟁의 흐름


    2023년 1월 10일, 마크롱 정부는 연금개악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프랑스 노총들의 연합인 '노총연합'은 하루 총파업 집회를 소집하여 1월부터 2월까지 총 5일의 총파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노총연합이 진행한 총파업 집회는 파업일을 멀찍이 떨어뜨리는 방식이었고, 이것으로는 승리할 수 없음을 노동자들은 알았다. 노동자계급은 투쟁의 강도를 더 높이기를 열망했고, 이에 압력을 받은 노조 지도부는 3월 7일 총파업을 선포했다. 이날 열린 총파업 집회는 노총연합의 CGT 추산 약 350만 명가량이 참여한 집회였다. 동시에 철도, 항만, 에너지, 쓰레기 수거, 정유공장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파업참가자들이 투표를 통해 파업 여부를 결정하는 갱신파업의 형태로 무기한 파업이 한 달가량 진행되었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거세지는 와중, 마크롱 정부의 입지는 의회에서도 마냥 유리한 상황은 아니었다. 의회의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는 마크롱 정당은 결국 3월 16일 의회 표결 없이 법안 통과를 선언하는 긴급명령권(헌법 49.3조)을 발동했다. 이에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는 약 10일간 격렬한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이어서 3월 20일 프랑스 의회에서는 불신임투표가 진행되었지만 과반인 287표에 비해 9표가 부족해 투표는 부결되었고, 이는 강력한 퇴진 시위로 이어졌다. 불신임투표가 부결되자 마크롱 정부는 업무복귀명령을 발동하고, 경찰병력을 투입하여 갱신파업을 공격했다. 이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반(反)민주적인 마크롱 정부에 대한 명백한 정치투쟁이었다. 아르쑤르 동지는 이 시기를 '준혁명적 순간(pre-revolutionary moment)'이라고 표현했다.


    투쟁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뉴스를 보면 알 수 있듯 아쉽게도 연금개악은 진행되었다.

    연금개악 반대투쟁은 왜 실패하게 되었을까?


    연금개악은 왜 진행될 수 있었을까? 이 문제에는 너무 많은 요인이 작동했다(아르쑤르 동지가 전제했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지연되어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의 경쟁에서 밀리자 과격해진 자본가계급, 마크롱 정부의 성격과 프랑스 포퓰리즘으로 인한 극우의 부상, 연합되지 못한 여러 의제 등등…). 아르쑤르 동지는 그중 특히 노조관료주의에 빠진 노총연합과 프랑스 좌파정당들을 비판하고, 총파업 네트워크 사례에 대해 소개한다.


    앞서 소개했던 노총연합은 프랑스에 있는 전국 단위 노총 8개의 연합이다. 이 중에는 'CGT'와 '솔리데아'같이 좌파적 입장으로 평가받는 노총도 있는 반면, 친정부·친우파 성향으로 평가되는 CFDT와 같은 노총도 함께 연합을 이루고 있다. 각기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는 8개의 노총이 연금개악 반대라는 하나의 의제에 모인 것 자체는 의미가 있었지만, 그 자체가 한계이기도 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노총연합은 정부가 연금개악안을 발표한 뒤부터 적극적인 태도로 투쟁에 임하지 않았다. 1~2월까지 총파업 집회를 2주 간격으로 진행하는 등 관성적인 태도로 총파업에 임했다. 연금개악 반대라는 단일 의제로 모인 노총연합은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계급에 대하여 "너무 많은 요구 사항으로 운동을 분산하지 말라"고 답했다. 노총연합은 자신들의 총파업을 마크롱 정부에 대한 3월 20일 불신임투표와 분리하기 위하여 일부러 3월 23일로 총파업 시위를 소집했다. 3월 20일 불신임투표가 부결되고 마크롱 정권이 실시한 업무복귀명령에 대하여 그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았다. 결국 노조관료주의야말로 자본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고 아르쑤르 동지는 평가했다. 다소 과한 주장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운동 방식에서 노총연합의 방식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좌파계열 정당 역시 투쟁 회피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불복하는 프랑스(LFI)는 의회에서 두 번째로 큰 세력으로 기존 프랑스 좌파 정당을 대표했던 사회당이 몰락한 뒤 부상하게 된 정당이다. LFI는 의회 안에서의 입법저지 투쟁을 펼치기는 했지만 의석 90석을 보유하고 있는 좌파계열 정당이 '준혁명적 순간'에 행동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니었다. 이들은 특히 정치 문제와 경제 문제를 정당과 노동조합이 분할하여 맡는 '양날개론'을 지지하며 노총연합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를 보냈다. 극좌파1) 계열에 속하는 LO와 NPA는 패배주의와 수동성에 갇혀 지금은 상황이 어려우며,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말할 뿐이었다. 보다 명확한 정세 판단은 중요하다. 정세를 판단하지 못하고, 무작정 뛰어드는 지도부는 무능하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도 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을 방치하는 이들은 더 무능하다.

    노총연합과 좌파 계열 정당의 투쟁 회피적인 입장에도 효과적인 총파업을 통해 '과격해진 자본가들'을 압박하여 승리를 쟁취하려는 '총파업 네트워크'의 활동이 있었다. 아르쑤르 동지가 속한 '연속혁명' 역시 여기에 참여하여 무기한 총파업을 확산시키고자 했다. 우선 이들은 노총연합에서는 의제화 하기 거부했던 임금 문제를 연금 문제와 결합했다. '연금개악 반대'와 '인금인상 요구'의 결합은 무기한 파업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것을 더 쉽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문제로 만드는 것이 필요했다.


    이들은 노총연합에 끌려다니지 않고, 정권의 탄압에 대한 반격에 나섰다. 3월 20일 이후 실시된 업무복귀명령에 맞서, 프랑스에서 가장 큰 정유공장에 250명을 집결시켜 경찰이 치워버린 파업 대오를 다시 세웠다. 총파업 네트워크는 파업 전략 역시 노총연합에게 맡기지 않았다. 파업에 동참하기로 한 노동자들의 투표에 맡겼다. 대신 처음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하는 것이 아닌 점진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갱신파업' 전술을 선택했다. 노총연합이 아닌, 노동자가 직접 파업을 결정하게 되었다. 무엇을 하든 자신이 선택한 일을 하게 되었다.

     

    1) 발제자는 좌파와 극좌파라고 표현했는데, 한국의 맥락에서 좌파는 개량적 정치, 극좌파는 혁명적 정치를 추구하는 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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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프랑스 연금개악 반대투쟁의 교훈: 노동자계급은 어떻게 승리로 나아갈 수 있는가" - 이 세션의 제목이다. 이 세션을 듣고 바로 든 질문, '지금 민주노조는 어떤가요?'. 현장에서 차마 질문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자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들렸다. 옆 테이블에 있던 한 동지는 이마를 짚기도 했다. 8월 19일에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토론회가 개최되기도 한다.


    결국 관성적인 노동조합 활동에 빠진 프랑스의 노동운동은 길을 찾지 못했다. 프랑스의 3월 중반부터 10일간을 '준혁명적 순간'이라고 표현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만큼 중요한 분기점이었다는 것과 '순간(moment)'을 '상황(situation)'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사실 프랑스와 같은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옳은 판단을 내릴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관성적으로 외치는 정권퇴진 구호 이외에 그 대안이 보이지도 않는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들의 진입을 막는 모습에도 가만히 있는 총연맹의 태도에 크게 실망하곤 했다. 지금과 같은 태도라면 우리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바꿔야 한다. 자본에 맞서는 일은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할 때 가능하다. 거대한 자본의 영향력 아래에서 혁명을 자체적으로 만드는 일이란 불가능에 가깝지만 혁명의 '순간'을 '상황'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힘은 있다.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 그것이 프랑스 연금개악 반대투쟁을 통해 내가 배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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