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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법이 안 되면 힘으로 복직하겠습니다"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이하나 조합원의 이야기

이훈(성공회대 학생) mtosocialism@gmail.com
기사입력 2023.07.01 08:03 | 조회 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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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에서 일하다 해고된 3명의 노동자가 6개월 넘게 저축은행중앙회 앞에서 해고철회 투쟁을 하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인 이하나씨를 성공회대학교 학생인 이훈씨가 인터뷰했다.

     

    2023628, 저축은행중앙회 앞에서 피켓팅을 하는 이하나씨를 만났다. 이하나씨는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가 처음 문을 열던 날부터 약 3년간 일해온 상담노동자다. 그러나 작년 12, 용역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4명의 동료가 해고되었고 이를 막기 위해 애쓰다가 자신도 해고되었다. 이후 매일 저축은행중앙회 앞에서 해고를 철회하라고 요구하며 피켓팅과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하나씨가 어떻게 입사했고 어떤 일을 하다가 지금까지 왔는지를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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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전병철

     

    20199, 하나씨가 용역업체를 통해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에 입사했다. 당시 하나씨는 겁 많은 유기견을 입양했던 터라 낮에 같이 있어주기 위해 밤에 일하는 직장을 찾고 있었다. 운 좋게도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저축은행중앙회가 콜센터를 오픈하면서 상담노동자를 구했다. 주간, 오후, 심야로 팀이 나뉘어있었으니 심야에 지원하면 될 거 같았다. 심야조는 오후 8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오전 9시에 퇴근하는 13시간의 장시간 노동이었으나, 하루를 일하면 이틀을 쉬는 3교대 근무였다. 이전에 하나씨는 카드사와 홈쇼핑의 콜센터에서 일한 경험도 있어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도 가깝고, 강아지와 있는 시간도 확보하고, 해봤던 일이니 지원 안 할 이유가 없는 아주 좋은 직장이었다.


    한국엔 총 79개의 저축은행이 있다. 저축은행마다 각자 고객센터가 있고 아침부터 오후 6시까지 은행별 콜센터가 고객들의 문의 전화를 받는다. 그러나 6시가 지나면 그들은 퇴근하고 모든 저축은행의 고객 전화는 모두 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로 몰린다. 심야 시간임에도 은행에 전화를 거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급한 사정이 있었다.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일도 있었지만 보이스피싱으로 수백만원부터 수억까지 송금한 사람들의 다급한 전화도 많았다. 상담사는 보이스피싱 신고를 받으면 우선 돈이 더 빠져나가지 않도록 조치하고 돈을 받은 계좌는 정지시켜서 보이스피싱범이 해당 계좌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하나씨와 동료들은 보이스피싱으로부터 시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


    그러나 업무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상담 매뉴얼을 전혀 제공하지 않았다. 고용된 상담사한테 모니터와 헤드폰 말곤 상담에 쓸 걸 준 게 없었다. 전화받는 도구를 줬으니 알아서 다 하라는 식이었다. 당시 ‘SB톡톡플러스라는 은행 어플의 사용법을 묻는 것과 해당 어플에 오류가 생겼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알려달라는 문의가 가장 많았는데, 매뉴얼이 없는 상담사들은 지금 어플에 문제가 생겨서 사용이 어려우니 조금 이따가 이용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는 하나마나한 멘트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콜센터의 존재 의미가 갸우뚱해지는 상황 속에서 상담사들은 알아서 각자의 매뉴얼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나씨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문의가 들어오면 모니터의 어디를 순서대로 눌러서 대응해야 하는지, 은행별 오류코드는 무엇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알아서 정리했다. 어느 날, 오후조의 정금숙(가명)씨가 하나씨에게 말을 걸어왔다.

    언니, 이거 언니가 만든 거예요?”

    응 내가 알아보기 쉽게 대충 만든 건데 필요하면 보내줄까?”

    네 고마워요

    금숙씨는 하나씨의 간단한 매뉴얼을 받아가고 약 한 달 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매뉴얼을 제대로 만들어왔다. 거의 책 한 권 분량이었고 금숙씨와 하나씨는 사비로 복사, 제본까지 해서 주간, 오후, 심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상담노동자가 볼 수 있도록 사무실에 비치했다.

     

    상담사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일했으니 상담은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관리자(매니저)의 갑질이 심각했다. 어느 날, 한 상담사가 매니저에게 김매니저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라고 말했다. 매니저 성씨가 김()이라서, 그렇게 부른 거였다. 그런데 매니저는 그 호칭이 마음에 안 든다며, 심야팀의 휴식시간을 2시간에서 1시간 30분으로 줄여버렸다. 한 상담사에게 민원이 들어왔을 땐 회사 공금으로 구매한 간식을 넣어두던 간식함에 자물쇠를 걸어버렸다.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한 상담사가 있을 땐 해당 상담사가 속한 팀 전체에게 앞으로 10분 일찍 출근하세요라는 밑도 끝도 없는 지시를 했다. 민원이 들어온 전화엔 해당 민원이 정당한지 부당한지와 관계없이 고객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무조건 사과하라고 상담사들에게 강요했다. 이러한 부당한 강요는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감정노동자를 보호하는 조항을 위반하는 행위였으나, 사규에 한 달에 3회 이상 민원을 받은 근로자는 회사가 해고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기에 노동자들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무조건 죄송합니다를 반복했다. 하나씨도 이런 일들을 겪었는데, 쉬는 날 매니저가 전화를 해선 동료가 어려운 콜을 받아서 힘들어하고 있는데 하나씨는 집이 가까우니까 회사에 가서 좀 도우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쉬는 날 출근할 것을 지시했다. 당연히 출근하기 싫었지만 이를 거부했다간 매니저가 팀 전체에게 패널티를 줄 게 뻔하니 하나씨는 거절하지도 못했다. 매니저는 자신의 한 줌 권력으로 약 17명의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매니저의 갑질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노동자 전원이 힘을 모았다. 매니저가 욕설, 막말한 카톡을 캡쳐하고 상황을 녹음했다. 다같이 증거를 모으니 순식간에 방대한 양이 모였다. 책도 만들 수 있는 분량이었다. 하나씨와 금숙씨는 이를 제본해서 당시 용역업체인 KS한국고용정보를 찾아갔다. 매니저를 교체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하며, 그렇지 않으면 노동청에 찾아가겠다고 했다. 이틀 후 회사 전무와 인사과장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만남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해당 매니저는 교체됐고 모든 상담노동자에겐 위로금이 지급됐다. 노동조합도 없었으나 노동자가 힘을 모아 만들어낸 일터의 변화였다. 개인으로선 찍소리 못 하고 착취당하던 노동자가 힘을 모으니 바꿔낼 수 있음을 모두가 느낀 순간이었다.

     

    이후 교체된 매니저는 금방 개인적인 이유로 떠났고 세 번째 매니저가 들어왔다. 이번 매니저는 달랐다. 상담노동자를 보호하려 했고 갑질 매니저의 이상한 행태는 현장에서 사라졌다. 악성민원인에게 강제로 사과하라고 하지 않았고 출퇴근 시간과 휴식 시간도 온전히 보장받았다. 치사하게 간식함을 잠그지도 않았다. 그동안 있는지도 몰랐던 명절수당도 챙겨서 들어왔다. 그리고 매니저는 상담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기꺼이 회사와 싸우는 사람이었다. 잘못한 게 없는 상담노동자가 왜 민원인에게 사과를 해야 하냐며, 바락바락 회사에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20226, 한 민원인이 화가 잔뜩 나서 직접 중앙회를 찾아왔다. 자신을 상담했던 노동자와 매니저가 나와서 자신에게 사과하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급히 매니저가 불려왔는데, 중앙회 직원은 매니저의 출입증을 뺏으며 이럴 거면 내일부터 출근하지마!’라고 소리를 질렀다. 옆에 있는 직원에겐 지금 업체에 전화해서 얘 당장 치우라고 해라고 했다.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한 모욕적인 행동, 그게 해고 통보였다. 그렇게 매니저가 해고됐다.

     

    하나씨와 동료들은 절차도 없이 눈 깜짝할 새 이루어진 해고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상담노동자 대부분이 참여해서 이를 규탄하는 대자보를 작성했다. 그리고 새벽에 경비노동자의 눈을 피해 건물 이곳저곳에 대자보를 붙였다. 아침에 출근한 중앙회 직원들은 대자보를 다 떼어버렸지만 노동자들은 새벽에 다시 붙였다. 그렇게 붙이고 떼길 3일째 반복했을 때, 우연히 중앙회의 회장이 대자보를 봤다. 그렇게 해고 일주일만에 매니저는 복직했다. 노조도 없는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현장을 바꿔낸 승리가 또다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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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담노동자 대부분이 참여해 새벽에 매니저의 복직을 촉구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사진=저축은행중앙회 통합콜센터 해고노동자들


    20221227일 목요일, 용역업체가 KS한국고용정보에서 효성 ITX’로 바뀐다며 고용승계를 위한 면담이 이루어졌다. 불안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효성 ITX는 처음부터 노동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서 100% 고용승계가 이루어지도록 할 것이라며 노동자들을 안심시켰고 노동자들은 다들 자신이 일을 열심히 할 뿐만 아니라 잘하기 때문에 승계가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나씨도 비슷했다. 면담은 간단하고 화기애애했다. 회사 담당자는 직원들에게 간단한 신상과 고용승계를 원하는지 물었고 다들 웃으며 답했다. 하나씨도 계속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날 오후 8, 연차도 높고 일도 잘하는 노동자 4명에게 효성 ITX의 비전과 맞지 않는다며 고용승계를 거절한다는 메일이 왔다. 해고였다. 메일이 온 건 1227일 목요일 오후 8시였다. 기존 계약은 1231일이 마지막이었으니, 노동자들이 반박할 수 있는 날은 1228일 금요일이 유일했다. 반박하고 싸울 시간을 안 주기 위한 노림수가 분명했다.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를 그냥 두고 볼 노동자들이 아니었다. 이미 두 번의 승리 경험이 있던 상담노동자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221228일 금요일, 6명의 고용승계 대상자가 4명의 해고대상자와 손을 잡았다. ‘4명이 해고되면 인원이 너무 줄어서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회사가 정말로 해고한다면 우리도 계약하지 않겠습니다라며 회사에게 화를 낸 것이다. 노동자들의 주장은 사실이었다. 당시 상담노동자 총인원이 15명이었다. 그중 3명은 퇴사예정자였다. 그런데 4명을 추가로 해고하면 고작 8명이 남는 거였다. 동료가 억울하게 해고당하는 걸 막으려는 마음과 실제로 인원이 너무 줄어서 업무가 불가능한 사실이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만약 추가로 6명이 계약하지 않으면 고작 2명 남는다. 회사가 그러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씨도 충분히 해고를 철회시킬 수 있다고 믿으며 해고대상자 동료들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효성 ITX는 놀랍게도 업무 스케줄표에서 6명의 이름을 추가로 지웠다. 하나씨의 이름도 사라졌다. 순식간에 10명의 노동자가 해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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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고된 지 180일 넘게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희망연대본부


    10명의 해고자는 피켓을 만들고 현수막을 걸었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피켓팅을 한겨울에 하려니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순식간에 5명이 투쟁을 포기했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2명이 더 포기했다. 해고 한 달 만에 10명은 3명이 됐다. 세 사람은 온갖 군데에 도움을 요청했다. 자신들을 받아달라고 한국노총 소속 노조 두 군데와 사무금융노조를 두드렸고 무료노동상담 센터도 전부 돌아다녔다. 한국노총은 이미 해고됐으니 못 받아준다며 내쳤고 사무금융노조는 저축은행중앙회 정규직 조합원들이 반대해서못 받아준다며 거절했다. 무료노동상담을 해주던 사람들도 전부 이건 못 이겨요. 안 돼요라며 승리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 힘들게 버텼는데 마음이 자꾸 무너졌다.

     

    그러던 중 희망연대본부를 찾았다. 이야기를 나누고 조직국장님이 내부에서 이야기해보고 연락드릴게요라고 말하자 하나씨는 , 나가리구나. 이번에도 거절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희망연대본부는 내부 논의 결과, 같이 하기로 했다며 가입하자고 했다. 동아줄이었다. 그때부터 기자회견, 결의대회, 투쟁문화제 등 생전 처음 해보는 것들을 할 수 있었다. 해고된 지 약 6개월이 지난 요즘, 하나씨는 미친 듯이 연대 다닌다. 투쟁하는 곳을 알면 부본부장님을 조르고 달달 볶는다. 데려가 달라고, 발언도 잡아달라고 한다. 동지들이 싸우는 곳에 연대 가서 몸으로 배운다. 그리고 연대를 요청한다. 우리 투쟁에 연대해달라고 한다. 그렇게 연대의 힘으로 싸움을 이어나가고 승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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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나씨와 다른 해고노동자들은 손을 잡아준 희망연대본부와 함께 투쟁을 하고있다. 사진=희망씨 김은선 국장

     

    하나씨의 투쟁과 연대를 바라보며 솔직히 머릿속에 물음표가 뜬다. 사실 하나씨는 법적 투쟁이 어렵다. 다른 두 조합원은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해고를 당한 거지만 하나씨는 스스로 계약을 거부한 것이기 때문에 부당해고 소송을 할 수 없다. 부당해고 판결을 받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와 별개로 소송을 하는 한 법정에서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하나씨는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중노위 접수할 때도 당사자에서 하나씨는 빠졌다. 그런데 하나씨는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두 조합원에 대한 의리로 있는 게 아니라 자신도 복직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하나씨가 법적으로 부당해고 인정받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데, 어떻게 자신의 복직을 믿냐는 질문에 하나씨는 예상치 못한 답을 했다.

    노동조합은 법으로만 싸우지 않으니까요. 법이 안 되면 힘으로 복직할 거예요.”

     

    하나씨는 노동조합과 연대자의 힘으로 저축은행을 박살내서라도 반드시 돌아가겠다고, 돌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의 일터, 그곳에서 이렇게 쫓겨날 순 없다. 반드시 돌아가 저축은행중앙회에게 자신이 옳고 당신들은 틀렸음을 증명해내겠다. 각오를 말하는 하나씨의 눈에서 불꽃이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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