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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노조법 2·3조개정 연속기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 원청 책임으로 보장하라

기사입력 2023.06.20 17:13 | 조회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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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균의 죽음과 노조법 개정


    “태안발전소를 운영하는 서부발전과 피해자를 비롯한 운전원들 사이에 실질적인 고용관계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므로, 서부발전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정한 사업주라고 볼 수 없다. 이를 전제로 하여 근로자의 사망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상 가중처벌조항 위반은 인정하기 어렵다.”


    2022년 2월 10일, 사법부는 ‘산업안전보건법상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형사책임은 사업주와 해당 근로자 사이에 실질적 고용관계가 있는 경우에만 인정될 수 있다’며 전 서부발전 대표에게 업무상과실치사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무죄를 선고했다. 2018년 말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사망한 김용균 노동자 1심 재판의 취지다. 2023년 2월 9일 2심 역시 서부발전 대표에게 마찬가지 취지로 무죄가 선고되었고, 심지어 1심에서 유죄였던 본부장도 무죄를 받았다.   


    서부발전을 김용균의 고용주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처벌하기 어렵다는 판결은 노조법 2·3조를 노동자의 손으로 고쳐야 하는 이유를 드러낸다. 원청 자본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위험 업무를 외주화하고, 노동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고용의 외주화와 함께 죽음과 질병 또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는 현실 속에서, 비정규 노동자가 희생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원청사용자 책임을 명문화하는 투쟁, 노조법 2·3조 개정투쟁은 일터에서 발생하는 죽음과 질병의 원인이 원청 자본의 노동안전보건조치 미비에 있음을 인정받기 위한 계급투쟁이다. 역으로, 원청 자본에 죽지 않고 일할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일터의 싸움은 ‘노조법 2·3조 개정’이라는 다소 어렵게 보이는 투쟁을 노동현장에서 대중적으로 전개하는 방법이다. 특히 하루가 멀다하고 산업재해가 발생하는 건설업, 조선업, 제철산업 등에서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를 의식적으로 노조법 2·3조 개정투쟁과 연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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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2023년 2월 9일 MBC 


    죽지 않고 일하기 위해, 진짜 사장을 불러 세우자


    노조법 2·3조가 개정되지 않은 지금도 원청 자본에 노동안전 보장 의무를 부여하는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 조항들이 일부 있다. 김용균 1심 판결에서조차 다음과 같이 원청 자본의 의무를 일부 인정하고 있기는 하다. 


    “원칙적으로 수급인의 업무와 관련하여 사고방지에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할 주의의무가 없지만, 도급인이 공사의 시공이나 개별 작업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지시ㆍ감독하였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도급인에게도 수급인의 업무와 관련하여 사고방지에 필요한 안전조치를 취할 주의의무가 있다. 서부발전은 이 사건 컨베이어벨트를 비롯한 발전소 내부에 있는 설비의 소유자로서 설비에 관한 주요 결정권을 가지고 있으면서 설비 운전 및 운전원들의 작업에 관하여 구체적, 직접적 업무지시를 하고 감독을 하였으므로 운전원들의 안전을 보호할 주의의무를 부담한다.”


    위와 같이 현행법이 원청 자본의 의무를 일부나마 규정하고 있음에도,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가 원청자본에 노동안전보건권 보장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자본은 비정규직 노동자가 현장을 들여다보고 개선을 요구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현실을 바꾸는 것이 현장으로부터 이루어지는 노조법 2·3조 개정투쟁의 과제다. 진짜 사장에게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요구할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 바로 이 점이 우리가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다. 

     

    현대제철 예를 보자. 금속노조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는 2022년 7월 발생한 2건의 사고조사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위한 원·하청 TFT 구성을 요구했다. 원청 현대제철의 입장은 간단했다. 한 건의 사고는 교통사고로 조사대상조차 아니며, 다른 한 건의 사고에 대해서는 원청과 협력업체 대표·현장소장·안전관리자가 참여하는 사고조사위원회를 열었고, 하청업체 노동조합은 사고조사위 참여주체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심지어 과거에 현대제철, 협력사, 원·하청노조 등 19명이 참여한 TFT가 운영됐던 전례가 있는데도 이제는 원·하청이 진행하는 TFT는 없다고 부정했다.1) 이뿐만이 아니다. 현대제철 원청은 2023년 3월 말부터 화재감시자를 비정규직 조합원이 담당할 것을 강요하며, 이를 거부하는 하청노동자들에게 당일 작업을 취소시키고 해오던 주말 특근을 배정하지 않는 등 불이익을 주고 있다. 전담 화재감시인력을 배치해 안전한 현장을 유지할 책임을 하청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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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재감시자 배치의무 하청에게 떠넘기는 현대제철 원청을 규탄한다 

    현대제철비정규직지회 노동안전통신


    현대중공업도 마찬가지다. 2022년부터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조는 현대중공업 자본에 함께 산업안전보건위원회 협의를 진행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사내하청지회는 교섭대상이 아니’라며 협의를 거부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현대중공업이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기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할 권리는 협력업체 바지사장에게 요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현대중공업 원청조차 ‘안전작업 요구권’이라는 이름으로 하청노동자의 노동안전 책임이 원청에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하는 형국이다. 현대중공업 원청 사측은 하청노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안전작업 요구권 안내 링크를 보낸다. https://hse.hhi.co.kr/HSEinfo.as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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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공업 원청의 ‘안전작업 요구권’ 안내 

    현대중공업도 간접적으로나마 원청사용자성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우조선 사례는 어떠한가. 2022년 12월 8일, 대우조선해양과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하청노동자의 노동안전보건에 대한 원청책임에 면죄부를 주는 단체협약안을 신설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은 원청 대우조선해양 자본 책임이 아니라 하청 사장 책임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단체협약 개악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이 노조법 2·3조 개정을 위해 투쟁하는 상황에서, 심지어 중앙노동위원회와 행정법원조차 잇따라 원청 책임을 인정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금속노조는 해당 조항을 미승인 상태로 남겨두었으나, 이미 단협으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법조항보다 못한 단체협약을 정규직 노조가 체결하는 상황, 이에 산별노조 차원의 어떤 교정조치도 행해지지 않는 상황을 바로 잡아야 한다. 


    화물연대도 마찬가지다. ‘거리에서 죽고 싶지 않다”는 절규와 함께 ‘화물노동자의 최저임금, 안전운임제 상시화’를 요구하며 싸운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노동안전보건권은 노조법 2·3조 개정투쟁과 직결되어 있다. 화물노동자들이 다단계 물류운송구조 속에서 ‘자영업자’로 분류되는 국가는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 화물노동자들이 ‘자영업자’로 규정된 결과, 원청인 화주는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다. 저임금을 벌충하기 위한 장시간 노동이 구조화되며, 이는 모두의 안전을 위협한다. 미국의 경우 화물기사의 90%는 월급 받는 노동자들이다. 그렇기에 노동시간 역시 엄격한 규제를 받는다. 미국 NHTSA, ‘고속도로 안전교통국’은 화물노동자들의 노동시간에 관해 아래와 같이 규정한다.2) 


    - 하루에 운전은 최장 11시간만 한다. 일도 대기와 식사시간까지 총 14시간 이상 시킬 수 없다.
    - 퇴근하면 10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쉬어야 한다. 최소 7시간은 침대에서 잘 수 있게 시설을 제공해야 한다.
    - 7일 동안 60시간, 8일 동안 70시간 이상 일을 할 수 없다.
    - 어기면 회사는 최고 1,200만 원 벌금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규제가 가능한 이유는 화물노동자들이 ‘자영업자’가 아니라 ‘노동자’로 분류되기 떄문이다. 화물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한 안전운임제의 상시화 전면화는 물론, 노조법 2·3조 개정으로 화물노동자들의 원청인 화주들에게 책임을 물을 권리를 노동자에게 부여해야 하며, 종국에는 다단계 화물운송구조를 철폐해야 한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투쟁과 노조법 2·3조 개정투쟁, 의식적으로 연결하자 


    매년 2천여 명이 일하다 죽는다. 명백한 산재임에도 드러나지 않는 부상과 질병은 셀 수도 없이 많다. 2021년 연구에 따르면 은폐되는 산재는 전체 산재의 66.6%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3) 비정규직노동자에게 원청에 요구할 권리, 원청과 싸울 권리를 부여해야 일터의 죽음과 질병을 추방할 수 있다. 하청노동자에게 노동3권이 없는 상황이 죽음을 낳는다.  


    바로 그렇기에,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위한 일터의 투쟁은 노조법 2·3조를 개정하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이기도 하다. 이미 많은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쟁취하고자 싸우고 있다. 문제는 현장의 노동안전보건권 쟁취투쟁과 노조법 2·3조 개정투쟁을 의식적으로 연결하며 확대하는 것이다. 


    여태껏 하청노동자가 사망해도 원청은 ‘무재해 사업장’으로 포장되고4), 이를 통해 산재보험료 할인 혜택을 챙겨온 기가 막힌 현실은 잘 알려져 있다. 2020년부터 2022년 8월까지 대기업 총 2,461곳에서 산재보험료 9,060억 1,000만원을 할인받았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현실은 진짜 사장 책임을 요구하는 노동자 투쟁 없이 바뀌지 않는다. 노조법 2·3조 개정투쟁은 하청노동자들의 교섭권에 기반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온전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 산업재해가 낮게 발생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정부조차 2022년 11월 30일 ‘중대재해감축로드맵’을 발표하며 2026년까지 OECD 수준으로 중대재해를 감축하기 위해 ‘노동자 참여가 필수적인 위험성 평가를 중심으로 예방체계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조차 노동자가 생산현장에 관해 발언할 권리가 있어야 중대재해를 예방할 수 있음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국가와 자본은 이를 실현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 

     

    자본의 독재가 산업재해를 만든다. 노동자 생산통제가 산재를 추방한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를 요구하는 현장투쟁과 함께 노조법 2·3조 개정투쟁을 확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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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재해를 감축하고 싶다면 노조법 2·3조를 즉각 개정해야 한다 

     

    1) 최진일, 「죽음의 외주화 넘어설 노조법 개정」, 매일노동뉴스 2022.10.06.

    2) https://premium.sbs.co.kr/article/NY8o7tsGba

    3) 김정우, 「노동조합은 산업재해 발생과 은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산업노동연구』 27권. 2021.

    4) 원하청 산재통합관리제도가 전 기업으로 확장된 것이 불과 작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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