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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야, 너도 경단녀 될 수 있어'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김효성 조합원의 이야기

이훈(성공회대학생) mtosocialism@gmail.com
기사입력 2023.06.13 16:58 | 조회 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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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조합원들이 서울2센터 용역업체인 ‘유니에스’의 본사 앞에서 인센티브제 개악안 철회를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투쟁중인 서울2센터 조합원 김효성씨를 성공회대학교 학생인 이훈씨가 인터뷰했다.


    2017년 가을, 효성씨가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전에 대기업에서 정규직으로 일한 적도 있고 꽤 많은 월급을 주는 회사에서 일한 기간도 길었다. 그런데 결혼 후 아기가 태어났고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되니, 엄마의 역할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효성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했다. 5년이 지나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손이 좀 덜 간다고 느꼈다. 이젠 다시 직장을 다니고 싶었다. 효성씨는 구직 사이트를 찾아보며 지원할 회사를 찾았다.


    그런데 당황스러웠다. 대부분 나이 제한이 있었다. 당시 효성씨는 41살이었는데 대부분 40세 미만만 뽑았다. ‘여자 나이 40 넘어가면 일할 데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긴 했는데, 현실로 마주한 건 처음이었다. 합격은커녕 지원할 수 있는 곳조차 찾을 수 없었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도 나이 제한이 있었다. 그런데 더 찾아보니 또 다른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구직 공고엔 나이 제한이 없다고 나와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서 잘 읽어보니 건보고객센터가 서울에 3개나 있었는데 그중 1센터와 3센터는 나이 제한이 있고 2센터는 없었다.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이었고 ‘40 넘은 경단녀’가 지원할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었다. 그렇게 효성씨는 2센터를 담당하는 도급업체 ‘유니에스’에 지원서를 냈다. 곧 전화가 왔다.


    “여기 유니에스인데요. 지원하셨더라구요. 여기는 일이 많이 어려워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괜찮아요.”

    “일하다가 내가 이거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나 자괴감이 들 수도 있어요. 할 수 있겠어요?”

    “네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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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다음소희’의 한 장면. 소희 옆에서 팀장이 전화를 같이 들으며 도움을 주고 있다.


    이상했다. 입사도 하기 전에 이렇게까지 겁을 주다니. ‘으쌰으쌰 같이 열심히 해봅시다’ 하진 못할망정 이렇게 겁주는 게 참 괴상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간단히 면접을 보고 이틀간 CS 교육을 받기 위해 선릉에 있는 유니에스 본사로 출근했다. 이후 당산에 위치한 서울 2센터로 투입되었고 약 3주간 수습기간이라며 선배들이 콜 받는 걸 옆에서 지켜보거나 드문 드문 선배와 같이 콜을 받으며 배웠다. 수습기간이 끝나고 2017년 10월 30일, 효성씨는 유니에스를 통해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에 정식으로 입사했다.


    제대로 일한 지 얼마 안 된 초반이었다. 정신없이 전화를 받고 상담중이었는데 사내 메신저로 전체 채팅이 올라왔다. 팀장이 보낸 거였다. ‘지금 3명이 화장실 이석 중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좀 기다리세요’ 뭔가 이상했다. ‘3명이 화장실 갔으니까 나머지는 가지 말라고? 설마 아니겠지’ 그러나 ‘설마’는 사실이었고 효성씨는 화장실을 통제하는 회사가 있다는 사실, 그것이 내가 다니는 회사라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업무 강도가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효성씨는 입사하면서 ‘난 태어나서 한 번도 건보공단에 전화한 적 없는데, 다들 비슷하겠지. 전화가 와봤자 얼마나 오겠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화가 매일 폭주했다. 센터에 상담사가 총 100여명이었다. 그런데 첫 1년간 그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집중해서 아등바등, 죽기살기로 전화를 받았다. 그래봤자 하루 평균 60콜 정도였다. 다른 사람들은 하루에 120콜도 받고 160콜도 받는다는데, 그건 남의 나라 얘기였다. 회사 전체에 전산 화면과 나만 있는 것처럼 집중했다. 중간 중간 끼어드는 건 팀장과 멘토정도였다.


    가끔 연차가 필요한 때가 있었다. 아이의 입학식, 졸업식, 체육대회, 소풍 같은 날들이었다. 하지만 학교가 행사를 하는 시기는 대부분 비슷했고 고객센터엔 비슷한 연령대의 아이를 가진 엄마가 많았다. 같은 날 연차를 쓰는 사람이 많으면 팀장은 가위바위보나 제비뽑기를 하라고 했다. 내 연차 내가 쓰겠다는데 제비를 뽑아야 했다. 가끔은 운 좋게 이기기도 했지만 당연히 질 때도 있었다. 진 사람은 이긴 사람한테 가서 “저희 애가 이번에 졸업하는데 어떻게 좀 안 될까요?”라며 연차를 바꿔달라고 사정해야 했다. 그래도 안 될 땐 하는 수 없이 관리자에게 “그래도 저 연차 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팀장은 “점수 깎이는 거 알죠?”라고 답했다.


    노동자들은 매달 점수가 있었다. 콜 수가 얼마나 되는지, QA 평점이 얼마나 되는지, 컴플레인 들어온 건 없는지, 지각한 적이 있는지 등으로 평가되는 점수였고 그걸 기반으로 매달 등급이 매겨지면 인센티브가 달라졌다. 최고 등급은 SS였고 최하는 D였는데, SS는 40만원, D는 0원의 인센티브가 나왔다. 내 연차를 내가 마음대로 쓰면 점수가 5점이나 깎였다. 다들 점수가 비슷해서 안 그래도 소수점에 따라 등급 2-3개가 훅 올라가고 내려갔다. 그렇게 연차를 쓴다는 건 그달 인센티브를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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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 노동자들의 인센티브 지급기준과 평가기준.

     

    2019년 12월 21일, 노동조합이 생겼다. 멘토 언니가 오늘 노동조합 설명회가 있으니 퇴근하고 같이 가자고 했다. 노동조합이 어떤 걸 하는지, 왜 필요한지 잘 몰랐지만 언니가 가자길래 간다고 했다. 당시 많은 동료가 노조에 가입했다. 효성씨도 다소 휩쓸리듯 가입했다. 하지만 탈퇴하고 싶은 적은 없었다. 효성씨는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남편이 노동자가 목소리를 내려면 노조가 있어야 한다고 응원해줬어요”라고 말한다. 화장실을 허락받아서 가는 건 부당하다. 연차를 쓴 대가로 점수가 깎이는 건 부당하다. 교육도 별로 안 해주고 전화 받으라는 건 부당하다. 관리자가 상담노동자를 무시하는 것도 부당하다. 현장이 부당함으로 가득한데 부당하다고 말하기 힘들었다. 흩어지면 죽고 뭉치면 산다는 다소 진부한 노동조합의 구호가 효성씨에겐 노조를 하는 이유였다. 실제로 노동조합이 활동하면서 화장실을 갈 땐 눈치보지 않아도 괜찮아졌고 연차를 쓴다고 점수가 깎이지도 않게 바뀌었다.


    2021년 여름, 노동조합은 원주로 향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주차장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시작했다. 로비를 점거했다. 출퇴근 시간에 피켓팅을 했고 집회도 했다.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의 직고용 투쟁이 시작됐다. 조합원들은 뜨거운 여름에 아스팔트에 앉았고 로비 안에 있는 조합원에게 김밥과 물을 전달하기 위해 경찰과 싸웠다. 경찰차가 길을 막아서 뒤쪽 언덕도 저벅저벅 올랐다. 언론과 공단 직원이 킹덤의 좀비냐며 비아냥댔다. 효성씨도 원주를 여러 번 가서 함께했다.


    현장에서 느껴지는 건 치열함이었다. 강렬한 기운이 자신과 조합원들에게서 보였다. 물론 공단 직원들의 눈빛도 만만치 않았다. ‘너희는 우리 직원이 아니잖아. 원래 너네 꺼가 아닌데 왜 여기 와서 떼쓰는 거야. 우린 너희와 달라’ 효성씨는 사람이 말을 꼭 입으로만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눈으로 충분히 그들의 마음이 전해졌다. 피켓팅하는 효성씨를 그렇게 쳐다볼 땐 아팠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정규직이었어. 너희는 결혼하고 아기 낳으면서 경단녀 안 될 자신 있어? 나중에 너희도 경단녀 돼서 고객센터 입사하고 비정규직 될 수 있어. 너희가 언젠가 이 자리에 피켓 잡고 있을 수도 있어. 나도 너 같았고 너도 나 같아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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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을 넘어 공단 부지로 진입 시도하는 조합원들을 좀비로 묘사한 파이낸셜 뉴스 기사.


    노사가 소속기관 전환에 합의하면서 노조의 파업도 끝났다. 돌아온 효성씨에게 한 비조합원은 시비조로 말했다. “효성아 수고했다. 근데 왜 너희가 좀비야?” 다 알면서 묻는 거였다. 그저 남의 아픔을 비웃으려 하는 질문이었다. 효성씨는 “우리가 맨날 살아나서 그런가 봐. 공단도 우릴 찍어누르고 정규직들도 우릴 찍어누르는데 우리가 자꾸 자꾸 살아나서 싸우니까 그런가봐. 우리가 그만큼 치열하게 싸워서 그래”라며 당차게 받아쳤다.


    효성씨는 현장으로 돌아온 뒤 노조의 준법투쟁에 함께했다. 당시 효성씨도 ‘짬바’가 차면서 하루에 130콜을 받곤 했다. 그러나 비상식적인 콜 수 경쟁에서 벗어나도록 다같이 콜 수를 줄여서 받자는 움직임에 동참해서 하루 최대 60콜 정도로 줄였다. 효성씨가 입사 초반에 아등바등 받던 콜 수와 같은 숫자다. 하지만 달라진 건 효성씨의 마음이었다. 꼴랑 60콜 받는다고, 인센티브 못 받으면 어쩌냐고, 능력이 부족해서 어떡하냐고 조바심내던 때와는 달라졌다. 이제 당당한 노동자로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 일하겠다는 마음이 담겨있었다.


    지금 효성씨는 ‘인센티브 폐지’를 외치며 파업중이다. 인센티브라고 하면 월급을 온전히 주고 추가로 주는 돈에 관한 이야기인 듯하지만, 건보공단과 유니에스에선 그렇지 않다. 유니에스는 매달 노동자들의 월급을 지급할 때 산정액에서 8만원을 빼고 지급한다. 그 ‘8만원’들을 모아다가 SS등급부터 순서대로 ‘인센티브’라며 차등 지급하고 있다. 노동자들끼리 자신의 월급을 온전히 받고 싶으면 혹은 옆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돈을 뺏고 싶으면 경주마처럼 전화 받으라고 경쟁을 시키고 있다.


    심지어 사라진 ‘8만원’들의 총액은 인센티브로 지급되는 총액과 같지 않다. 일부를 유니에스에서 가로챘다고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만약 중간 탈취가 아니라면 그 차액이 어디로 갔는지 귀신도 곡할 노릇이다. 이 의심에 대해 유니에스는 한 번도 노동자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결국 노동조합은 수상한 인센티브 지급 구조 자체를 바꿔내기로 결심했다. 효성씨를 포함해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매일 선릉역 8번 출구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인센티브 폐지하라’를 외친다.


    많은 한국 여성이 겪는 삶을 효성씨도 살아왔다. 정규직으로 잘 살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연스레 경력이 단절되었고 재취업하려면 하청업체 비정규직밖에 없었다. 한가지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노동조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한 가지 효성씨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효성씨는 알고 있을까? 자신이 하는 투쟁이 수많은 경단녀의 삶을 바꾸고 있다는 것을. 어쩌면 지난 여름 효성씨를 경멸했지만 언젠가 경단녀가 되어 구직 사이트 화면을 바라보며 한숨 쉴 공단의 여성 정규직들의 미래조차 효성씨가 바꿔내고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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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성 씨를 포함한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조합원들은 인센티브제 개악 철회를 위해 선릉역 유니에스 본사 앞에서 파업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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