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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가사도우미’, 국경을 넘는 돌봄 여성 노동자 초과착취

저출생 해법으로 ‘외국인가사도우미’ 도입한다는 정부의 분할공세에 맞서자

기사입력 2023.05.29 17:15 | 조회 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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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저출생 대책이라며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고용허가제 아래 E9 비전문취업비자에 ‘가사근로’를 포함하는 방식으로 동남아시아 이주 여성 노동자를 가사돌봄 일자리에 고용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3월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이 가사돌봄노동에 종사하는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 적용을 제외하는 법을 만들자더니, 5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은 직접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을 “강하게 나가달라”고 지시했다. 고용노동부는 서울시와 올해 하반기 시범운영으로 동남아시아 여성 노동자를 고용하기로 정하고, 25일 각계 의견수렴 명목으로 ‘외국인가사근로자관련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아찔한 소식이다. ‘가사도우미’라는 노동은 개별 가정에서 행하는 가사와 돌봄노동이 섞여 있다. 지금도 한국에서 차별과 착취를 당하는 이주노동자가 이 소식을 듣는다면 얼마나 참담할까.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된 플랫폼 호출 가사노동자와 성차별에 시달리는 여성 노동자에게 참담한 소식이다. 그리고 모든 노동자의 단결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이주 여성 노동자의 처지를 악용하려는 저들의 계획은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이 기울어진 운동장, 여성과 이주노동이 기울어져도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자본은 노동자계급의 분할전략으로 착취를 가중하고 있다. 구조적 성차별과 이주노동자 차별을 노동자 단결투쟁으로 헤쳐가지 못한 상황에서 저들은 저평가된 여성의 가사돌봄노동으로부터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 더 혹독한 차별을 제도화하는 방식으로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공격하고 있다. 


    뭐가 저출생 해법이라는 건가? 


    노동자들은 이주 여성 노동자에게 가사돌봄노동을 하도록 하는 게 어떻게 저출생 해법이라는 건지, 한국말인데도 알아듣기 어렵다. 작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주40시간)은 월 1,914,440원, 비혼노동자가 혼자 먹고사는 데 든 생계비는 월 241만 원. 누군가를 고용해 가사돌봄노동을 맡기는 것은 상상이 안 된다. 도대체 저들은 뭐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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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가사노동자 채용사이트 캡쳐

     

    윤석열 정부는 작년 5월 110대 국정과제에서 농업부문에 외국인 인력공급 다양화를 제출했다. 2022년 6월 16일에는 가사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과 노동관계 법령을 적용하지 않는 현행법을 유지한 채 가사노동자법(가사근로의고용개선등에관한법률)을 도입했다. 이마저도 플랫폼 자본에 대한 규제를 배제하고, 적용범위를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 등에 한정해 모든 가사노동자가 적용받을 수도 없다. 그러고는 2022년 7월 21일 ‘국민제안 TOP 10’ 항목에 ‘외국인 가사도우미 취업비자 허용’을 기어이 밀어 넣었다. 


    정부의 신호에 오세훈 서울시장이 먼저 나서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원~76만원 수준”이라며 9월 27일 국무회의에서 외국인육아도우미 도입을 제안했다. “경제적 이유나 도우미 공급 부족 때문에 고용을 꺼려왔던 분들에겐 반가운 소식일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저임금 여성 일자리던 돌봄노동이 사회에 필수노동임이 드러났음에도 이는 싼값의 노동이며 이주 여성노동자는 더 싸게 착취하는 게 정주민에게 반가운 일이라 떠벌렸다. 


    2023년 3월 21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외국인 가사도우미에게는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가사노동자법 개정안을 민주당, 국민의힘 의원들과 함께 발의했다. “대한민국은 최악의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다. 맞벌이가 기본인 청년세대에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며 국내법과 국제협약을 위반하면서 “월 100만원 수준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로 가사돌봄노동자 저평가와 이주노동자 착취강화를 법으로 못 박자고 했다. 이는 저출생 원인이 곧 돌봄노동의 비용 문제이니, 과거 ‘식모’를 가정에 두고 부려먹던 때보다 세련되게 가사돌봄노동을 평가절하해 여성노동 차별과 인종차별을 ‘가사 노예’라는 법으로 해결하자는 주장이다.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다. 다음 날 철회하는가 했지만, 공동발의자였던 민주당 2명을 국민의힘 2명으로 바꿔 재발의한 상태다. 


    시범운영부터 밀어붙이는 정부


    밑밥이 충분히 깔렸다고 판단한 정부는 5월, 광폭 행보로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가사돌봄노동자 수급정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정부 관계자는 ‘조정훈 의원 안처럼 최저임금 이하를 받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자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 적용 제외 조항이 그대로고 가사노동법 자체가 허점투성이다. 조정훈 의원 발의안에 최저임금 차등적용까지 추진하는 정부로서는 뻔뻔한 변명이다. 그러면서 ‘출산을 강요할 수 없으니, 이들의 육아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가사도우미 제도가 저출산 대책’이라고 주장했다. 


    5월 25일 고용노동부 토론회 안팎에서 사회 각계각층 연구자와 노동시민사회의 지적이 이어졌다. 토론회에서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부가 예로 든 싱가포르를 포함해 홍콩, 대만, 일본 등 아시아 4개국이 외국인 가사노동자제도를 도입했지만, 합계출생률 증가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증가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제기했다. 이들 나라 출생률은 오히려 감소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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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전문가들도 ‘정부가 돌봄의 가치와 공공성을 높이려는 고민 없이 개인에게 그 부담을 전가하는 점(김현미 교수), 가사와 돌봄이 여성의 몫이라는 편견을 강화하는 점(조혁진 연구원),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이주노동자가 겪을 수 있는 인권침해, 착취, 성폭력 우려점(이규용 연구원), 특권 계층만 이용할 수 있는 제도일 것이라는 점(이은영 YMCA부회장)을 지적했다. “저출산 해결과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 사이의 인과관계가 별로 없다(강정향 교수)”는 것이 대부분의 의견이었다. 


    뿐만 아니다. 사태의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수많은 여성단체, 이주인권과 사회단체 등이 오세훈 시장, 조정훈 의원의 발언, 윤석열 정부의 사업추진안이 나올 때마다 졸속행정임을 지적했고, 여성과 이주노동에 대한 성차별과 인종차별 노동착취 계획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대신 돌봄노동의 국가책임을 강화하고 노동자가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현실적인 저출생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해 왔다. 


    그러나 정부는 “저출산 대응 및 여성 경력단절 방지”를 위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다양한 실태조사와 여론조사를 거쳐 구체적 안을 확정하겠다고 못 박았다. 저들이 다하고 싶은 국가의 책임은 확장되는 돌봄시장에서 자본이 싼값으로 노동을 착취하고, 성차별과 이주노동자 차별 속에 노동자를 갈수록 쪼개 단결된 저항의 힘을 잃게 만드는 역할일 뿐이다. 


    0.78명


    저출생이 가사돌봄비용 문제인가? 한국은 이미 1998년 IMF를 경과한 2000년부터 저출생 상태에 진입했다. 정부가 꾸준히 대책을 내놓고 예산을 썼지만, 청년들은 갈수록 아이를 낳을 수 없다. 지난 20여 년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 수치를 OECD 수치로 비교해 보면 2000년 41.7%에서 2021년 31.1%로 약 10% 줄었다. 합계출산율은 2000년 1.48명에서 2022년 0.78명으로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해외언론이 한국어로 알린 단어 중에 ‘Kwarosa(과로사)’가 있다. 한국 노동자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보다 39일 더 일하는 장시간 노동구조는 자본에 철저히 장악당한 노동의 권리를 의미한다. 일자리는 적고, 있어 봤자 비정규직이나 열악한 노동조건의 나쁜 일자리다. 높은 집값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노동자의 임금은 제자리인데 공공요금과 물가 인상으로 실질임금은 하락한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 73년이 지났지만, 모든 노동자가 아직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착취도는 높아가고 노동개악은 거듭된다. 


    여성 노동자의 권리는 어떤가? 한국은 OECD 가입 원년인 1996년부터 27년째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큰 1위 국가다. 여성은 여성 노동에 대한 저평가와 생애를 관통하는 저임금, 차별과 혐오, 무급가사노동, 경력단절, 높은 성범죄와 솜방망이 처벌, 성역할 고정관념 등의 여성차별에 시달린다. 가사돌봄노동은 여전히 여성의 일로 치부한다. 2022년 통계를 보면 부부 5명 중 1명이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한다고 생각했고 나머지는 여성이 주도한다고 답변했다. 가사돌봄노동 사회화는 국가책임이 아닌 여성의 무급 가사노동을 여성 노동자가 전담하는 ‘민간시장화’로 이어졌다(아래 표 참조). 상대적 저임금 일자리, 불안정 일자리로 깊숙이 자리 잡았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며 모든 국가기구에서 ‘여성’을 지웠고, 미약하게나마 돌봄노동을 공공 영역으로 만든 사회서비스원을 쪼그라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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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베이징의 위와인구연구소는 한국이 세계에서 양육비가 가장 비싼 나라라는 통계 결과를 발표했다. 자녀 1명을 18세까지 키우는 데 드는 양육 비용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7.79배인 3억 6,500만원에 달한다는 분석이었다. 올해 3월 민주노동연구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남성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은 339만 원, 여성 노동자는 남성의 65%인 220만 원이었다. 5월 22일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이 발표한 ‘나의 최저임금’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노동자는 8년의 노동경력 중 57.0%의 기간 동안 최저임금 이하를 받았다. 


    정부의 저출생 대책은 이성애 가족만을 상정해 아이 양육에 드는 비용을 찔끔 지원해 주는 방식이었다. 국가의 책임을 각자에게 떠넘겼다. 정규직 여성노동자가 아이를 낳으면 가정이냐 직장이냐 선택을 강요받았고,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는 출산휴가를 꿈도 꾸지 못해왔다. 정부는 자본의 노동착취·여성차별을 규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를 거들뿐이었다. 정부의 일 가정 양립 정책은 여전히 일 가정 양자택일 정책일 뿐이다. 공공주거와 의료·연금, 생명안전 존중, 자본 규제 강화와 복지사회서비스영역에서 국가책임은 갈수록 줄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어제도 오늘도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봉쇄당하고 열악한 노동조건과 단속 추방 등 인권침해에 시달린다. 혐오와 차별이 지속되고 있다. 농촌의 할머니가 젊은 시절 따던 깻잎을 지금은 이주 여성 노동자가 딴다. 냉난방과 화장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숙소비로 몇십만 원씩 뜯겨도 되는 게 한국법이고, 사업주의 임금체불, 노동법 위반, 성범죄가 비일비재해도 정부는 이를 방치한다. 이미 다른 나라에서 해외 가정의 가사돌봄노동자 취업 사례는 숱한 노동착취와 성착취를 당한 고통이 가득하다. 지금도 이러한 국제적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한국은 유엔 9대 핵심인권조약 중 ‘이주노동자권리협약’ 비준을 2006년부터 권고받았으나 아직도 비준하지 않은 나라다. 


    한국의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꾸준히 재생산하고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 결국 청년들은 자녀에게 이생을 물려주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말았다. 올해 2월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작년 합계출산율 0.78명은 청년 노동자 민중의 비명이자, 동시에 한국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낳은 결과다. 


    노동자의 단결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은 자본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틀어쥔 채 여성의 돌봄노동 저평가를 넘어 국경을 넘는 노동착취, 돌봄 여성노동자 착취의 구조를 공고히 하려는 조치다. 이주노동자 도입과 그 시도는 정주노동자를 포함해 돌봄노동을 더욱 저평가하고 노동권을 소외시킬 것이다. 자본은 노동자들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며 뒤에서 웃음 지을 것이다. 이 앞에선 노동자의 단결이 요구된다. 청년의 비명소리에 응답하자. 여성 노동자,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마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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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1일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에 속한 노동자와 영남권 이주단체, 사회단체 활동가, 이주노동자 등이 모여 ‘이주노동자 차별철폐 집회’를 열었다. 정주·이주노동자들은 고용허가제 폐지 등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이주민 가사노동자법 반대를 함께 외쳤다. 더 큰 단결이 필요하다. (사진 출처 : 정원현)


    가사돌봄노동의 외주화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사회화’가 답이다. 성차별 폐지 투쟁!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라! 고용허가제 폐지하고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하라! 그동안 소홀했던 성차별,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 투쟁을 계속 미룬다면, 여성에서 이주노동자로, 이주 여성 노동자로 노동자를 분할시켜 노동자의 단결을 파괴하려는 자본의 공격에 더 당하게 될 것이다. 성별, 성정체성, 국적, 인종, 장애, 직종, 고용형태 등 모든 차별 앞에 평등을 외치며 단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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