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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30%인상 연속기고] 최저임금을 둘러싼 세계적 수준의 계급투쟁

미국 노동계급운동이 보여준 새로운 가능성

기사입력 2023.04.17 16:08 | 조회 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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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로 최저임금 1만원을 내세우면 당선은 확실하겠네요.”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분위기가 실제로 그랬다. 모든 정당의 후보들이 실현 시기만 차이가 있을 뿐 최저임금 1만원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5~6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2022년에 연거푸 치러진 대선과 지자체 선거에서 최저임금을 핵심 공약으로 내건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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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정당의 후보가 시기의 차이만 있을뿐 최저임금 1만원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사진=KBS)

     

    어쩌다가 최저임금은 찬밥 신세가 되어버린 것일까. “최저임금 오르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반짝 하고 최저임금이 잠시 오르긴 했지만, 이내 산입범위가 망가지며 오히려 임금이 깎이는 일이 벌어지고, 최저임금법이 적용되지 않는 플랫폼·특수고용을 비롯한 사각지대가 늘어나는 부작용을 겪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제도로서 갖고 있던 실효성·보편성이라는 힘이 사라지자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전세계에서 유사하게 벌어진 과정

     

    사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그에 뒤이은 비정규직 불안정노동의 대량 실직, 월가와 광장 점거운동을 거치며 전세계 노동계급운동은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에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래서 2010년대에 시작된 한국의 최저임금 1만원 운동은 미국의 15달러 운동에서 영감을 크게 받은 것이고, 독일에서 법정 최저임금제가 부활하고 영국에서 생활임금 제도라는 형식으로 최저임금이 대폭 오르는 일이 거의 동시에 벌어졌다.

     

    처음에 자본가계급과 정부들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노동계급의 공세적 요구와 새로운 운동 조직화에 놀라 양보 조치를 통해 뒷걸음질을 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적으로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들이 찾아낸 방법은 최저임금이 가진 실효성·보편성이라는 힘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산입범위가 개악된 것처럼 그리스에서는 경제위기를 틈타 25세를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차등적용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요구 자체는 들어주되 이를 몇 년에 걸쳐 점진적인 방식으로 실행하는 일도 벌어졌다. 매년 새로운 최저임금 협상이 벌어지며 운동에 힘을 불어넣어주는 역동성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구조를 이원화하는 개악을 밀어붙였던 것, 최근 최저임금위원회가 사실상 교섭을 무력화시키는 최저임금 결정 공식을 활용하고 있는 점, 윤석열 정부가 업종별 차등적용을 밀어붙이는 것 모두가 사실 자본가계급과 자본가정부가 세계 곳곳에서 벌이는 공격과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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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 미국의 15달러 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한국의 최저임금 운동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불과 5~6년 만에 상황은 정반대가 되었다. (사진=장그래대행진)

     

    다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노동계급운동


    2010년대 초부터 전세계로 퍼진 최저임금 대폭 인상운동은 2010년대 말쯤에 가면 자본가들의 반격에 맥을 못 추고 가라앉게 된다. 설상가상 2020년부터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며 최저임금운동은 세계적으로 자취를 감춘 것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노동계급이 가만히 앉아있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팬데믹 과정에 끊임없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처음으로 15달러 운동을 조직했던 그룹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조직한 15달러 운동이 역동적으로 뻗어갔음에도 왜 한계에 봉착하게 되었는지를 곰곰이 되돌아보게 된다.

     

    첫째, 대부분의 주들에서 최저임금 15달러를 수용했으나 5~6년에 걸친 점진적 인상이라는 방식으로 역동성을 제거당하게 되었다는 점. 둘째, 지불능력 있는 원청사의 책임이 모호하다는 한계를 남겼다는 점. 그렇다면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소산별(업종) 교섭

     

    그들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면서 새로운 운동을 조직했다. 지난 몇 년간의 지속적인 요구와 투쟁을 통해 지난해 말 캘리포니아 주의회에서 AB257이라는 법안을 통과시키게 된다. 이 법안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교섭틀을 법제화한 것으로, 총 10명의 교섭단을 구성해 교섭구조를 만들도록 규정하고 있다. 프랜차이즈(원청사)를 대표하는 2명, 프랜차이즈 점주를 대표하는 2명, 노동조합 대표 2명, 노동시민단체 대표 2명에다 캘리포니아주 정부 대표 2명으로 총 10명의 대표단이 구성되어 교섭을 진행하며 시간당 22달러로 최저임금을 높일 수 있도록 하였다. 

     

    15달러 운동이 가졌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표적인 저임금 사업장인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목표로, 프랜차이즈 원·하청 자본 모두를 교섭틀로 끌어들이며 사업장을 뛰어넘는 집단교섭을 법제화하고 여기에 주 정부까지 끌어들임으로써 실효성을 높인 것이다.

     

    만일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강제할 수 있는 소산별(업종) 교섭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여기서 실효성 있는 임금인상을 실현해낼 수 있다면, 가장 낮은 곳의 노동자 임금인상은 전체 노동자의 자신감 회복으로 이어질 것임에 틀림없다.

     

    AB257 법안의 통과는 자본가들로 하여금 그동안 잠시 잊고 살았던 최저임금 대폭 인상운동의 공포를 다시 느끼게 만들었다. 곧바로 이 법에 반대하는 점주들이 법안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주민투표 서명운동이 시작되었다. 누가 보더라도 점주들의 ‘자주적·자발적 행동’이라기보다 원청인 프랜차이즈 자본의 사주가 있었을 것이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은 그저 항의시위나 기자회견만 하고 앉아있지는 않았다. 점주들의 서명운동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해 11월 15일 하루 파업을 벌였으며, 주민투표 발의가 이뤄지던 올해 1월 27에는 1박 2일간의 파업을 조직했다.

     

    그러나 프랜차이즈 원·하청 자본이 수십~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으며 주민투표 발의에 열을 올려 가까스로 주민투표 발의에 필요한 서명지를 채워내고 말았다. 미국법에 따르면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는 11월, 이 법안의 개폐 여부를 묻는 캘리포니아 주민투표가 진행될 예정이다. 안타깝지만 그때까지 법안의 효력은 잠시 정지된다.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이제 다시 한 번 최저임금을 놓고 치열한 계급 간 격돌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노동자들도 그저 손놓고 기다리며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법안 발의와 투쟁, 입법 성공 이후 자본가들의 무력화 시도에 맞선 파업을 전개해온 것처럼 다시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화에 나서며 반격을 시작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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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는 교섭틀을 법제화하기 위한 AB257 법안 통과 운동 (사진=Fight For 15$)

     

    뉴욕과 워싱턴에서 조직된 새로운 저항

     

    뉴욕시에서 택시기사 생활고로 인한 자살률이 심각해지자 2000년대부터 10여년간의 조직화와 투쟁 노력이 이어지게 된다. 특히 뉴욕 택시기사노조는 우버, 리프트 등 승차공유 호출 앱 기사들을 적극적으로 조직하며 뉴욕택시노동자연합(NYTWA)을 결성했다.

     

    2018년 말 뉴욕시 택시-리무진 위원회(Taxi Limousine Committee, TLC)는 앱 기사들의 최저 표준 운임(minimum pay standard) 제도를 도입해 시간당 최저 표준 임금을 $17.22로 결정했는데, 이 과정이 이뤄지도록 지속적인 투쟁을 이끌어온 것이 바로 NYTWA였다.

     

    TLC의 새로운 제도 도입에 우버를 비롯한 승차공유 업체들은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지난해 말 법원에 이 제도의 시행을 중단시켜 달라는 소송을 제기해 일시 중단 가처분을 받아내기도 한다. 이에 NYTWA는 이 법안의 애초 시행 예정일인 작년 12월 19일에 맞추어 하루 파업을 조직했으며, 항소심이 벌어지던 1월과 2월에도 법원 심리가 열리는 날마다 파업이 조직되었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TLC는 자료를 보강하여 3월에 새롭게 의결절차를 거쳤으며 3월 13일부터 위 제도가 시행되게 되었다. 3차례의 파업, 브루클린 다리 통행을 마비시켰던 대규모 차량 시위 등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이 제도 시행을 만들어낸 것이다.

     

    워싱턴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이어졌다. 미국의 경우 각 주별로 결정되는 최저임금은 대부분의 경우 팁 받는 노동자에게 차등 적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워싱턴 DC의 경우 주 최저임금은 시간당 16.1달러인데, 팁을 받는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5.35달러로 1/3 수준에 불과하다.

     

    자본가들과 정부의 논리는 사장이 지급하는 임금과 별도로 팁을 받으니 최저임금 수준을 낮춰도 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은 제도 자체를 갉아먹을 수밖에 없으며 각 주별로 이러한 차별을 없애자는 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되어왔다.

     

    작년 미국 중간선거와 함께 워싱턴 DC주에서 팁 받는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폐지하는 법안 ‘Initiative 82’가 발의되어 주민투표가 이뤄진 결과, 2/3 주민의 동의를 얻어 제도를 폐지하기로 결정하게 된다. 현재 미국 50개의 주 중에서 워싱턴 DC는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폐지한 8번째 주가 되었다. (오리건주, 미네소타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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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업중인 NYTWA 소속 뉴욕 택시 노동자들. (사진=NYTWA 트위터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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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 DC주에서 팁 받는 노동자에 대한 최저임금 차등적용을 폐지하는 법안 ‘Initiative 82’ 찬성투표를 독려하는 포스터

     

    최저임금이라는 삼손이 가진 힘의 원천

     

    미국 노동계급운동이 보여주는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 액수만 대폭 인상하는 취지의 최저임금 운동이 맞닥뜨린 한계, 바로 거기에 한국 노동계급운동도 함께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는 상황 아닌가.

     

    2010년대 전세계 노동계급운동이 자본가계급과 정부를 잠시나마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최저임금을 둘러싼 계급투쟁, 도대체 최저임금 제도의 어느 대목이 그들을 주춤거리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일까.

     

    최저임금이라는 삼손이 가진 힘의 원천은 이 제도가 가진 보편성이다. 노동을 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성별·국적·나이·신념·고용형태나 장애 여부를 가리지 않고 차별 없이 동일하게 작동되는 제도의 성격 말이다.

     

    자본가들과 정부는 최저임금이 가진 이 삼손의 머리칼을 잘라내야만 힘을 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최저임금 업종별 차등적용을 밀어붙이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반대로 노동계급운동이 새롭게 찾은 길은 무너진 보편성을 다시 세우는 것이다. 팁 받는 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는 것, 플랫폼과 특수고용 노동자에게도 차별 없이 최저임금 법·제도가 적용되도록 만드는 것, 원청과 하청 모두를 교섭 테이블로 불러내 실효성 있는 최저임금 인상을 밀어붙이는 것. 2023년 한국 노동계급운동이 최저임금 투쟁에서 참조해야 할 훌륭한 참고서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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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칼이 잘려 힘을 잃은 삼손처럼, 최저임금 또한 차등적용, 적용제외로 힘을 잃었다. 최저임금의 힘을 되찾는 길은 무너진 보편성을 되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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