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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법2·3조개정 현장기고] 현대중공업 자본에 맞선 20년의 투쟁,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의 힘으로 노조법 2·3조를 개정하자

오세일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mtosocialism@gmail.com
기사입력 2023.03.16 15:54 | 조회 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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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공업 비정규직 노동자투쟁을 돌아보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2003년 8월 24일 노조건설 이후 원청이 자행하는 해고와 업체 폐업 등 탄압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박탈당해왔다. 사내하청지회와 하청업체의 임단협 교섭에서 하청업체 사장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이렇듯 현대중공업이 비정규직노동자의 노동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이라는 것은 심지어 하청업체 사장들에게도 분명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이를 부인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해왔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4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2004년 2월 14일, 박일수 열사가 몸에 불을 댕겼다. "이 사회에서 하청노동자로 산다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가진 놈들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제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차별과 멸시, 박탈감, 착취에서 오는 분노,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나 한 몸 불태워 하청노동자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일터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비정규직 철폐하라! 열사정신 계승하자! 54일간의 처절한 투쟁이었다. 하청노동자들은 승리하지 못했지만 그 분노를 새기고 싸워왔다. 그 과정에서 2010년, 원청사용자성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후 2017년에는 현대중공업 원청에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8년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패소 후 대법원 판결이 남아있다. 


    최근 노조법 2·3조 개정 투쟁을 보며, 하청 노동자로서 현장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 고민이 많이 든다. 현대중공업 현장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원청사용자성 쟁취와 손배가압류 철폐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한 고민을 적어보고자 한다. 


    서진ENG 노동자 투쟁, 연대로 승리하자 


    몇 년 사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에 새로운 활력을 만든 것이 서진ENG 노동자투쟁이다. 2019년, HD현대그룹(이전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건설기계 서진ENG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을 개선하고자 노동조합에 집단 가입했다. 그러나 현대건설기계 원청은 위장폐업으로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서진 노동자들은 원청을 불법파견 혐의로 노동부에 고발했고, 노동부는 2020년 12월 23일 직접 고용을 명령했다. 그러나 현대건설기계 원청이 직접고용을 거부함에 따라 민사 1심 근로자지위확인소송, 형사 1심 파견법 위반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21년 3월, 서진 노동자들은 직접고용을 요구하며 현대중공업 기숙사 ‘율전재’ 옥상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현대중공업 경비대가 농성장을 침탈하자 현대호텔 옥상에서 점거농성을 이어갔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율전재 점거에 대해 2천2백만 원 손배가압류를 걸었고, 법원이 470여 만 원 배상을 선고하자 사측은 항소했다. 현대호텔은 손배가압류를 하지는 않았으나 검찰 기소에 따라 약식명령으로 벌금을 냈다. 이처럼 현대중공업 자본은 불법파견 직접고용 요구에 대해서는 소송으로 시간을 끌고, 노동자 투쟁은 가처분 신청과 손배가압류로 원천 봉쇄한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서진ENG 동지들은 투쟁을 이어가며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들의 실상을 알리는 것은 물론 다른 사업장 노동자 투쟁에도 적극적으로 연대해왔다. 사용자 책임을 거부하며 직접고용을 거부하는 현대중공업 자본에 맞선 승리는 노조법 2·3조 개정투쟁을 현대중공업 현장으로 확장하는 데 있어 중요한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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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하다 죽고 싶지 않다!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위해, 원청책임을 묻자 


    조선소 산업재해는 악명 높다. 특히 ‘위험의 외주화’에 따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로 희생된다. 죽음에 대해 원청 책임을 묻고 처벌하지 않는 한 죽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2022년부터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조가 함께 산업안전협의를 진행하자고 현대중공업 자본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은 ‘사내하청지회는 교섭대상이 아니’라며 협의를 거부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현대중공업이 고용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할 권리는 협력업체 바지사장에게 요구하라는 것이다. 이렇듯 현대중공업 자본은 그저 책임을 피할 궁리뿐이다. 지난 2021년 여름휴가 당시, 현대중공업 원청은 하청업체를 동원해 사내 CCTV를 도둑처럼 설치했다. 말인즉슨 ‘하청업체들이 중대재해를 예방하고자 설치했다’는 것이다. 조선소 노동자라면 안다. 조선업 자본이 ‘중대재해 예방’을 입에 담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지를, 그리고 중대재해를 없애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위험의 외주화’ 중단과 하청노동자 직접고용이라는 것을. 


    위험천만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현대중공업 자본의 행태를 사회적으로 폭로하는 한편, 원하청 노동자의 연대투쟁으로 원청책임을 물어야 한다. 


    현대중공업의 원청사용자 책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현대중공업은 터치원(Touch One)이라는 모바일 프로그램으로 현장통제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 모두에게 프로그램 설치를 강요했으나 정규직 노동조합이 거부하자, 노동조합으로 단결하기 어려운 하청노동자들부터 설치시키는 상황이다. 그 결과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대부분의 하청노동자가 프로그램을 설치해 작업지시를 받는다. 


    터치원 프로그램은 작업명, 작업 시간, 작업 장소, 투입대상 인원의 이름 등 작업에 관련된 전반 사항을 하달한다. 프로그램 내부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형식적 작업지시는 하청업체가 하나, 전체 프로그램 운영은 원청이 총괄한다. 이는 하청노동자의 실질 사용자가 현대중공업이라는 또 하나의 증거다. 고용관계를 감추려는 원청 자본의 시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위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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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하청 노동자 연대투쟁을 확대하자 


    2022년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정규직 노동자들은 HD현대그룹의 임단협 가이드라인에 맞서 공동투쟁을 전개했다. 각 사업장들로만 보면 세부 조건이 다름에도, 3사 노동자들이 맺은 임금 단체협약은 큰 차이가 없이 마무리되었다. 계열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실질적 사용자가 계열사 사장들이 아니라 ‘HD현대그룹’임은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하청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주체는 하청업체 바지사장들이 아니라 원청 HD현대그룹이다. 진짜 사장과 교섭을 요구하며 투쟁해야 한다. 원청사용자성 쟁취, 손배가압류 철폐투쟁 과정에서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동자들의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당장 현대중공업지부도 손배가압류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2019년 현대중공업 물적분할에 맞선 파업투쟁 과정에서 정규직 지부는 한마음회관 점거농성을 진행했다. 사측은 업무방해와 폭행 등 혐의로 1,335명을 징계위에 올려 4명을 해고하고 나머지는 출근 정지와 정직 등 징계조치했다. 뿐만 아니라 박근태 지부장 등 노조간부와 조합원 117명을 고소고발했고, 92억 손해배상을 진행해 노조에 20억 원, 박근태 지부장과 조합원들에 대해 1억원씩 가압류를 진행했다. 손배가압류 해결을 위해 현대중공업지부는 임단협을 미루며 교섭과 투쟁을 이어갔고 결국 손배가압류 철회를 합의했다. 모든 노동자들의 단결로 노조법 3조 손배가압류를 없애는 투쟁에 모두가 나서야 한다. 


    바지사장 뒤에 숨은 진짜 사장의 책임을 명문화하고 노동자의 삶을 파탄으로 이끄는 손배가압류를 철폐하는 싸움, 노조법 2·3조 개정은 만만치 않은 과제다. 그러나 2022년 여름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이 처절한 투쟁으로 열어낸 원청사용자성 쟁취, 손배가압류 철폐 투쟁 정세에 조응해 투쟁을 확대해야 한다. 나의 노동과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 원청 자본의 책임을 요구하며 투쟁을 확대해 가자. 민주노조운동이 코너로 내몰리는 엄중한 정세다. 원하청 노동자의 연대로 반격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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