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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상담 일기 (4) ┃ 버스 노동 실태

기사입력 2023.02.28 17:17 | 조회 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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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성기(가명) 씨는 전북의 한 소도시에서 20년째 시내버스를 운행해 온 중년의 버스 노동자다. 조성기 씨는 입사 후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묵묵히 일만 해왔던 노동자다. 하지만 오랜 버스 노동의 결과로 역류성 식도염, 전립선염, 수면장애 같은 직업병을 앓고 나서부터, 조성기 씨는 버스 기사들의 노동조건이 무언가 크게 잘못됐다고 느끼게 되었다. 서울 시내버스 정도만 돼도 8시간+1시간(연장노동) 2교대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버스 기사들이 여전히 하루 16시간 이상의 살인적인 격일제 노동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루의 배차시간표를 보자. 조성기 씨가 운행하는 어느 노선의 경우, 06시 02분에 운행이 개시되어 밤 23시 정각에야 운행이 종료된다. 꼬박 17시간이다. 이렇게 격일제로 일하게 되면 1주 51시간(3일 근무) 내지 68시간(4일 근무)을 일하게 된다. 그러나 버스 자본가는 이래도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버스 자본가들과 결탁한 어용노조 덕분이기도 하다. 이들은 ‘운행 회차 사이의 휴식시간은 근로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단체협약에 명시해두고 있다. 그러나 도로 교통의 특성상, 운행 회차 사이 휴식시간이 제대로 지켜진다는 보장이 없다. 더구나 정해진 대로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조성기 씨가 운행한 노선은 하루에 총 9회차 운행을 했다. 1회차 운행에 소요되는 시간은 1시간 40~50분 정도다. 운행기록표를 토대로 조성기 씨의 실제 휴식시간을 살펴보니, 각 운행회차 종료 후 주어진 휴식시간은 1회차 20분, 2회차 0분, 3회차 0분, 4회차 22분, 5회차 8분, 6회차 14분, 7회차 8분, 8회차 12분으로 도합 1시간 24분에 불과했다. 조성기 씨가 06시 02분터 23시 정각까지 총 17시간 근무를 한다는 점을 상기하자. 하루 중 아무리 긴 휴게시간이라 해도 20분에 불과하다. 그런데 바로 이 짧은 휴식시간을 이용해 버스기사들은 최소 하루 두 끼를 해결해야 하고, 시종점 정류장에서 한참 떨어진 화장실도 이용해야 한다. 소화기계, 배뇨기계 장애가 생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버스 기사들이 시민 불편을 잘 알면서도, 때로는 안전까지 도외시한 채 과속, 신호위반, 노선이탈을 무릅쓰는 이유다. 조금이라도 빨리 시종점에 도착해야 식사도 가능하고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어용노조 사업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집단적 투쟁방식 자체가 봉쇄된 경우가 허다하다. 조성기 씨도 어용노조의 노골적인 방해를 뚫으며 홀로 사업주의 근로기준법 위반을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 근로기준법상 4시간 당 30분, 8시간 당 1시간의 휴게시간이 보장돼야 하므로 적어도 하루 1시간 30분 이상의 휴게시간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은 “휴게시간이 부여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를 발견할 수 없다”며 조성기 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뻔한 수법이다. 사실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준수되고 있는지는 근로감독관이 현장 조사 한 번 나가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일이다. 이에 분개한 조성기 씨는 자신의 실제 운행기록 자료를 토대로 재차 사업주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이 분명해지자, 고용노동부는 이번엔 “휴게시간 미부여를 피고소인의 귀책사유로 인정하기 어렵고 또한 범죄혐의의 고의성을 인정하기 어려움”이라는 핑계를 대며 책임을 회피했다. 즉 휴게시간 규정이 위반된 사실 자체는 인정하지만 어쨌건 버스 자본을 처벌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의사표시다. 이런 직무유기는 한국의 개판 오분 전 노동행정에서 그다지 드물지 않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 자본가를 상대로 단체교섭권은 행사할 수 있지만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거나 쟁의행위는 할 수 없다던 중앙노동위원회의 기상천외한 판정처럼 말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 따라 버스 자본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가지고 있는 지자체도 자기 책임을 방기하고 있기는 매일반이다. 사실 지자체는 그저 버스 자본의 물주(物主)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에서 시내‧시외버스 운수사업이 땅 짚고 헤엄치기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다. 2004년 도입된 버스 준공영제가 제도적으로 버스 자본의 이윤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2019년 이후 수도권의 시내버스 업체가 사모펀드에 인수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인천시만 해도 최근 몇 년 간 7개의 버스업체가 사모펀드에 인수됐다. 크게 한 방은 없지만, 쏠쏠하게 꾸준하다! 자본이 버스 운수업체에 군침을 흘리는 이유다. 조성기 씨가 일하던 버스 회사에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기초 지자체도, 버스 기사들의 터무니없는 노동조건이나 시민 불편에 대한 자기 책임은 내팽개친 채 3개 업체에 한 해 160여 억 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었다.


    노동자들에겐 전근대적인 노동조건을 강요하면서, 이윤은 사실상 공적 재원(지자체 보조금)으로 확보한다. 경영상 위험은 전무하지만, 경영권은 털끝만치도 포기할 수 없다. 대체 이 사회적 기생충에 불과한 버스 자본을 그대로 놔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버스 자본은 조성기 씨가 자신의 이윤 질서에 항의하자, 곧바로 사소한 징계사유를 들이대 조성기 씨를 즉각 해고하기까지 했다. 


    공적 재원으로 버스 자본을 먹여 살릴 게 아니라, 완전공영제를 통해 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것은 기후위기 시대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도 교통약자들의 보편적 이동권을 보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자가용 승용차 운행이 불가피하다는 걸 누구나 절감한다. 무계획적인 노선 운영(노선 운영권을 버스 자본이 가진 탓이다), 늘어지는 배차 간격,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는 버스 기사들의 무리한 운행 등등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운 이유가 분명하다. 승용차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감축할 수 있다는 뻔한 얘기를 늘어놓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노약자, 장애인, 영유아 등 교통약자가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 체계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


    한편에는 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 승객들의 안전 및 교통약자들의 이동권 보장, 탄소 감축이라는 사회적 대의가 놓여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오로지 버스 자본의 이윤이 놓여있다. 양자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너무도 명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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