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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흔드는 에너지 위기, ‘사유화’가 낳은 비극

기사입력 2022.11.24 15:46 | 조회 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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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marketwatch)

     

    난방도 일자리도 없는 겨울이 온다

    유럽에서 에너지 위기가 현실이 됐다. 9월 2일 러시아가 유럽으로 향하는 천연가스 파이프 노르트스트림 1호 작동을 무기한 중단한 데 이어 이달 말에만 3차례의 가스관 폭발 사고가 발생했다. 천연가스 공급의 41%를 러시아에 의존했던 유럽이 공포에 휘감기고 있다.* 통상 겨울철에 가스 수요가 폭증하는데, 올해는 라니냐로 인해 유럽 대륙에 엄혹한 겨울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난방 없이 올 겨울을 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설사 온난한 겨울을 맞이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천연가스는 산업용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실제 EU 국가들의 올 3분기 산업용 가스 소비량은 전년 대비 25%나 감소했으며, 10월 소비량은 코로나19 직후인 2020년 5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독일 상공회의소(DIHK)가 2만4,0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 기업들은 최근 과중한 에너지 비용 부담으로 인해 생산을 축소하고 있다.** 화학부문 기업의 25% 이상, 자동차부문 기업의 16%가 감산을 검토・실시했으며, 자동차부문 기업의 17%가 일부 생산시설을 해외로 이전할 계획이다. 특히 다량의 가스 소비가 불가피한 업종의 경우 천연가스가 비교적 저렴한 북미 대륙(미국의 천연가스 가격은 유럽의 1/6 수준이다) 등으로 생산시설 이전을 추진 중이다.

    즉 유럽 민중들은 난방도 일자리도 없는 겨울을 보내야 한다. 초유의 위기 앞에, 극우파와 자국 우선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당장 에너지 위기를 직격으로 맞는 독일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대하는 기류가 달라지고 있다. 개전 초기만 해도 독일 민중들은 전쟁의 책임이 러시아에 있다고 보고 우크라이나에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가스 공급 중단을 전후로 과격한 언사가 힘을 얻고 있다. 기민당(CDU) 당수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가 TV에 나와 “우크라이나 난민이 독일에서 사회보장관광을 하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난민을 비난하는가 하면,***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조국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러시아 제재 해제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 참석자는 약 1만 정도로, 반대 시위 참석자 1,500명의 6배를 넘는 규모다.****

     

    위기 속 분열하는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15개 국가는 EU 가스 가격 상한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러나 독일, 네덜란드, 헝가리 등이 반대하고 나섰다. 독일의 명분은 에너지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가격 상한제를 도입할 경우, 유럽으로 오는 가스 공급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르반 빅토르(Orban Viktor) 헝가리 총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러시아가 가스 가격 상한선이 도입되면 헝가리에 가스를 보내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힌 바 있어, EU가 가격 상한선을 적용한다면 헝가리를 위한 특별 모델이나 면제 조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헝가리는 러시아와 직접 연결된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가진 국가다. 즉, 각국의 에너지 안보와 EU 전체의 에너지 위기 대응이 충돌하는 셈이다. 지난 10월 EU 회원국 정상회담에서도 가스 가격 상한제를 둘러싸고 독일과 프랑스가 격돌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독일은 자국 에너지 산업 보조금으로 2천억 유로(한화 약 280조)를 편성했다. 독일 최대 가스 기업(Uniper) 국유화에 나설 뿐 아니라 내년 초부터 독일 내에서 가격 상한제도 도입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U 회원국들은 일제히 독일을 비난하고 나섰다. 자국의 에너지기업을 지원할 재원을 EU 전체의 에너지 위기 대응에 써야 한다는 논리인데, 실상은 독일의 에너지기업 지원으로 자국의 에너지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에너지 안보를 둘러싼 EU 회원국간 갈등요소는 이 밖에도 많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 5월 “러시아의 협박에서 벗어나고 EU의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프랑스-스페인을 연결하는 ‘미드캣’ 가스관이 필요하다”고 하자 마크롱은 “왜 미드캣이 가스 위기를 해결할 것처럼 말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기저에는 미드캣 가스관이 자국의 에너지 시장을 위협할 수 있다는 마크롱의 판단이 깔려 있다. EU 회원국의 공통된 기치가 있다면 그것은 ‘조국이 먼저다’ 일 것이다.

     

    각자도생 속 흔들리는 기후정의

    이렇듯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위기의 교훈을 세계는 두 가지로 해석하고 있다. 첫째, 에너지를 러시아 같은 ‘잠재적 적대 국가가 될 수 있는 인접국(potentially hostile neighbours)’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둘째, 재생에너지 전환은 장기적인 투자가 필요하므로, 당면한 에너지 위기 해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국 중심으로 에너지 공급망을 재편하고자 하며, 화석 연료와 핵발전이 에너지 위기를 타개할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가스 공급의 15%를 러시아에 의존하던 네덜란드는 석탄발전 생산 상한선을 해제했고 이탈리아도 석탄발전 확대를 선언했다. 각국에서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 재가동, 폐쇄 지연을 추진하자 주요 석탄 생산국인 폴란드는 아예 석탄 생산량을 늘렸다. 폴란드는 1분기 석탄 생산량이 1,900만톤이라 밝혔는데 이는 전년 동기 대비 약 15만톤 늘어난 수준이다.********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던 국가들의 기후정의는 에너지 위기 앞에 이렇듯 무력했다. 실제 올해 전세계 이산화물(dioxide) 배출량은 전년 대비 0.8% 증가한 40.5기가톤으로, 2019년에 이어 역대 두 번째 최다 배출을 기록할 것으로 보이며, 온실가스 배출은 올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파리기후협약에서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로 기온 상승을 억제하자고 합의했으나, 이 추세라면 이번 세기말에 기온이 2.8도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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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Pixabay)

     

    에너지 위기, 원인은 ‘사유화’

    이쯤에서 에너지 위기의 원인을 진단해 보자. 가장 흔한 진단은 러시아의 가스 공급 중단이 위기를 촉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 이전부터 에너지 가격은 상승 추세였다. 코로나19 이후 한동안 낮아졌던 화석연료 가격이 등귀하면서 전반적인 에너지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화석연료와 핵발전에 대한 저투자가 에너지 위기를 심화시켰다고 하지만, 기후정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찰할 가치가 없는 진단이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의 에너지 위기가 사실 예고된 위기였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리라 예측한 이는 많지 않다. 그러나 러시아와 서방의 긴장 고조는 누구나 직감하고 있었으며, 에너지 자원이 무기화될 것이라는 예측도 상당수 제기된 바 있다. 그렇다면 에너지 수급 안정화를 위한 대책을 강구했어야 하나, 유럽 어느 국가도 실현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에너지가 사유화되어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기업은 그때그때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에너지를 생산했을 뿐이었고, 그에 따른 위험부담은 정부와 민중이 떠안았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LNG를 직수입하는 SK 등 에너지 재벌이 단기적인 이윤을 위해 LNG 공급량을 자의적으로 조절하면서 가스공사가 수급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U와 각국 정부는 에너지기업에 천문학적인 공적 자금을 투입하면서도 에너지 수급 안정화를 위한 사회적 통제는 가하지 않았다.

    도리어 에너지기업에 초과이윤의 근거를 제공하기도 했다. 유럽의 전력시장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사유화가 진전되었기 때문이다. 전력 도매시장을 보면, 계통한계가격(SMP)에 따라 도매가격이 책정된다. 계통한계가격이란 가장 저렴한 방식부터 사용해 최종 수요를 충족시킬 때의 한계 비용을 전체 가격으로 책정하는 방식을 뜻한다. 발전 원가가 판매 가격보다 훨씬 저렴할 수 있는 이유다. 최근에는 가스 가격 급등에 따라 계통한계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다수 에너지기업에 ‘횡재이윤’ 내지 초과이윤이 발생하고 있다. ‘횡재’라는 단어로 인해 마치 외부적인 행운에 따라 이윤이 발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윤의 원천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력시장 그 자체에 있다.

    그나마 한국은 전력 소매를 한국전력공사가 담당하고 있어 가정용, 산업용 전기요금이 크게 인상되지는 않았다. 대신 한국전력이 적자를 떠안고 에너지 재벌이 흑자를 남기는 상황이다. 반면 유럽에는 한국전력과 같이 ‘쿠션’ 역할을 해줄 주체도 없어서 에너지 위기가 그대로 가정으로 전가된다. 결국 전력시장은 이윤을 에너지기업으로 사유화하고, 손실을 철저히 민중에게 사회화하는 전장이다. 유럽에서도 ‘횡재세’와 초과이윤 환수가 일부 도입되고 있으나, 그 자체로 에너지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수단은 당연히 아니다. 오히려 횡재이윤이 실은 에너지 사유화에 따른 ‘특혜이윤’임을 주장하며 사유화 자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공공이 에너지 생산과 수급을 안정적으로 통제하고, 가정과 필수유지시설 등 필요한 곳에서 필요한 만큼 쓸 수 있도록 분배를 책임져야 한다. 전력시장 폐지와 발전 국유화를 대안으로 제시해야 한다.

     

    에너지 사회화운동, 지금 여기서 시작하자

    한국 노동자민중에게 에너지 위기는 아직 체감하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앞서 적었듯이 한전이 위기를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한전의 역대 최대 적자를 근거로 올겨울 전기와 가스 가격을 인상했고, 발전 민영화와 핵발전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4대 정유사의 영업이익이 한국전력의 적자와 맞먹는다는 사실(올 상반기 한전의 영업손실은 14조인데, 4대 정유사의 영업이익은 12조 원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LNG를 직수입하는 에너지 재벌로 인해 한국가스공사가 손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 더구나 “탄소감축 목표 산업계 부담”이라며 2030년 탄소배출 40% 감축에도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고 있다. 기후정의에도, 에너지 공공성에도 역행할 의사를 분명히 밝힌 셈이다.

     

    윤석열의 기후부정의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발전의 국유화와 공공적 재생에너지 전환을 요구해야 한다. 지금 ‘국유화’는 더 이상 진부한 구호가 아니다. 4년 전 김용균이 죽은 원인이 발전의 민영화다. 에너지 재벌이 발전을 지속하는 한 한전의 적자를 만회하긴 커녕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도 담보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기후정의를 위한 에너지 공적 소유와 통제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에너지기업을 국유화하고, 6개로 쪼개진 발전공기업을 재생에너지 공기업으로 통합해야 한다. 지난 9월 기후정의행진을 앞두고, 태안화력 노동자들이 공공적 재생에너지 전환을 요구하는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의 선언을 모든 노동자의 요구로 확산시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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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visualcapitalist.com/visualizing-the-eus-energy-depend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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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uters, Energy crisis putting most German firms under duress –survey, 2022.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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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dw.com/en/german-opposition-leader-sorry-for-ukraine-welfare-tourism-jibe/a-63253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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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www.dw.com/en/germany-far-right-demo-protests-russia-sanctions-energy-policy/a-63380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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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uters, Hungary will not agree to EU gas price cap, will need exemption, 2022.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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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ractive, Macron adamant no need for MidCat gas pipeline,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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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inancial Times, Food and energy crises threaten to distract from climate talks, 202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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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너지데일리, “EU, 천연가스 공급 위기… 석탄발전 가동 늘리고 있다”, 202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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