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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보우소나루 아래의 브라질을 이해하기

파시즘인가 보나파르티즘인가? 보우소나루 아래의 브라질을 이해하기 위한 트로츠키의 교훈

André Barbieri
기사입력 2022.11.22 18:06 | 조회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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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지난 10월말 치러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노동자당의 룰라가 보우소나루에게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이번 브라질 대선은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끌었으며, 중요한 물음을 던졌다. 보우소나루주의는 ‘파시즘’인가? 보우소나루주의를 격퇴하는 길은 노동자당과 룰라의 선거 승리에 있는가? 이에 대해 10월 9일 브라질의 ‘혁명적 노동자운동’(MRT)이 발표한 글을 미국 <레프트보이스>의 영역을 거쳐 옮겨 싣는다.


     

    파시즘인가 보나파르티즘인가? 보우소나루 아래의 브라질을 이해하기 위한 트로츠키의 교훈


    진정한 의미의 파시즘이 브라질에서 부상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노동계급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마르크스주의는 보우소나루 정부를 규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극우에 맞설 방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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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 이탈리아 파시스트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


    마르크스주의는 운동의 이정표이며, 동시에 우리를 집단화하는 사고의 지침이자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현상을 구분할 수 있도록 만든다. 브라질에서는 극우에 맞서는 결단력 있는 투쟁의 조직이 절실하다.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과 그의 협력자들이 전체 체제 안에서 입지를 강화한 대선 1차 선거 결과는 이를 재확인했다. 반면 노동자당(PT, Partido dos Trabalhadores)과 룰라(1)의 선거 캠페인은 우리가 ‘파시즘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고 선언한다. - 이 선언은 극우와 맞서는 거리의 모든 풀뿌리 운동을 방해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파시즘 규정은 보우소나루와의 그 어떤 진지한 대립도 방해하는 노동자당의 정책을 가리는 유용한 역할을 한다.


    보우소나루의 실제 파시스트적 면모를 바탕으로, 이 공작은 극우파에 대한 거부를 룰라-알크민 선거운동에 대한 지지로 연결시키기 위해 “파시즘 대 민주주의”라는 이분법을 만들어 대중들 사이에 공포를 주입하려고 한다.(2) 이는 트럼프주의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보우소나루와 대치한다면서, 우파, 대규모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그리고 미제국주의 민주당 분파와의 계급적 화해로 나아가는 행위다. - 이들 모두가 오늘날의 반동적 상황에 우리를 몰아넣은 2016년의 제도적 쿠데타에 책임이 있는데도 말이다.(3)


    헤지스땡시아(Resistência, 사회주의자유당(4) 내 분파) 같은 특정 좌파 그룹들은 이러한 노동자당의 노선을 복창해 왔다. 헤지스땡시아의 리더인 발레리오 알카리(Valério Arcary)는 에미르 사데르(Emir Sader, 브라질 노동자당 소속의 정치학자)의 주장이나 “파시즘 대 민주주의” 이분법 같은 노동자당(PT)의 선전을 되풀이한다.  정치적 개념들을 혼란스럽게 뒤섞는 오랜 역사를 가진 알카리는 브라질의 “네오파시스트들” 때로는 “파시스트들”을 물리칠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는 투표를 통해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헤지스땡시아는 파시즘을 물리치기 위해 “선거일에 전국을 붉게 만들 것”을 요구한다. 룰라-알크민의 계급화해 정치에 대한 열렬한 헌신으로, 이 조직은 보우소나루가 첫 번째 임기 때는 파시스트 정부를 구성할 수 없었던 것과 관계없이 이번에는 꼭 파시스트 정부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희한한 “두 번째 임기 파시즘” 주장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아래에서 우리는 무엇이 파시즘이고 무엇이 파시즘이 아닌지, 그리고 오늘날 브라질에는 어떤 것이 존재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헤지스땡시아와 마르크스주의 간의 결정적인 단절–오늘날 브라질이 파시스트 지배 아래에 있는지 여부와는 관계없는-에 대해 살펴보자.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어떻게 파시즘과 맞서 싸웠는가?


    친보우소나루 극우파들은 노동계급, 여성, 흑인, 원주민, LGBTQ+ 대중들의 적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보우소나루와 그의 협력자들은 눈에 띄는 초기 파시스트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만일 이러한 개별적인 초기 파시스트적 특성이 대중적 현상이 된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우리가 브라질에서 파시즘의 발흥을 목격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이런 현상은 혁명이냐 반혁명이냐를 가르는 격돌이 예고된 가운데 노동자계급이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일어나는 상황에서만 현실화 될 수 있다. 만일 실제 파시스트적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알카리의 조직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헤지스땡시아는 알크민, 상파울루주산업연맹, 브라질은행연맹, 미국 민주당 등 2016년 쿠데타에 주요한 역할을 했던 세력들과 함께하는 캠페인에 기꺼이 뛰어들고자 한다. 헤지스땡시아는 투표함 안에서, 노동자당과 우파의 동맹에 던지는 투표를 통해서 파시즘과 맞서 싸울 수 있다고 믿는다.


    “선거일에 파시즘을 물리치자”는 헤지스땡시아의 기치다. 알카리와 다른 대변인들을 통해, 헤지스땡시아는 파시스트와 맞설 유용한 무기로 선거를 활용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논리적인 결론은 계급 간의 물리적 투쟁 공간에서 파시즘에 맞서는 대신, “평화로운” 시기 “통상적인” 부르주아 지배를 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좌파의 임무는 “반-파시스트” 세력(또는 사회주의자유당내 좌파사회주의운동(MES) 소속, 루씨아나 젱호의 표현에 따르면 “민주세력”(5))의 가장 광범위한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바로 체제 내 많은 인사들이  페르시오 아리다, 알미노 프라가, 페드로 말란 등 1990년대 신자유주의 경제 신봉자들의 복귀를 환영하면서(6) 룰라-알크민의 광범한 전선을 가리키며 사용한 성격규정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파시스트 현상에 맞서는 방법일까?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의 정치적 논리는 정반대다. 파시즘에 맞선 투쟁은 부르주아계급의 모든 부문으로부터 독립적이며 노동계급 헤게모니에 기반을 둔 강령과 함께, 계급투쟁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파시즘에 맞선 투쟁에 대해 마르크스주의는 지배계급에 맞선 노동계급의 단결을 바탕으로 여성, 흑인, 청년 그리고 억압받는 모든 민중과 연대해 나아가야 한다고 제기한다. 이는 레닌과 트로츠키가 코민테른에서 정교하게 다듬었던 노동자공동전선의 목표다. 


    1921년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 발표된 노동자공동전선 전술(카프 폭동이라고 불리는 1920년 3월 볼프강 카프와 발터 폰 뤼트비츠의 쿠데타 시도에 맞서, 독일 노동자계급이 성공적 투쟁을 전개한 데서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은 전략을 강조하던 당대 마르크스주의의 무기고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가운데 일부다. 노동자공동전선 전술은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전술적 측면으로는 민주적 권리를 향한 극우파의 공격에 대항하는 것을 포함해 최소한의 요구를 중심으로 노동자 대열을 단결시키기 위한 개량주의자들과의 일시적 합의를 포함한다. 동시에, 전략적 측면으로는 -이것이 주된 목적인데- 대중들의 공통된 경험의 산물을 통해 (그리고 단결된 행동에 대한 개량주의 지도부의 거부를 통해) 혁명 정당들의 영향력을 확대함으로써 권력 쟁취의 전망으로 다수의 노동자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전술은 항상 부르주아 정당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유지한다.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의 승리는 많은 부분 노동자공동전선에 입각한 접근에 대한 스탈린의 경멸에서 비롯되었다. 스탈린의 전술은 파시스트 집단을 물리치기 위한 공산당 계열과 사회민주노동당 계열 노동자들 간의 단결을 방해하고 계급투쟁을 저해했다. 이후 대응방식을 정반대로 뒤바꾼 스탈린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인민전선을 활용했는데 이는 계급투쟁을 연기시켰고 그 결과 혁명을 방해하고 파시스트들에게 승리를 내줬다. 


    히틀러가 독일에서 승리를 거두기 전, 트로츠키주의 좌익반대파들은 파시스트들의 부상에 맞서 (민주적 권리를 옹호하고, 공장과 노동자 거주지를 방어하는 등)  사회민주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의 단결을 이뤄내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노동계급의 자주적 단결이라는 방침은, 스탈린의 지시 아래 “제3기” 지침에 따라 코민테른 독일지부와 오스트리아지부에 의해 고의적으로 방해받았다. “제3기” 지침이 적용되는 동안 공산당 조직과 개량주의 사회민주당 지도부는 노동자 운동의 지도력을 갖기 위해 서로 싸웠는데, 이는 양측 모두에게 유해한 갈등이었다. 이러한 행보는 영국과 중국에서 공산주의자들의 기회주의가 재앙을 불러온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스탈린주의의 파국적이고 종파적인 정책의 결과로 나치가 승리를 거두자 코민테른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했다. 스스로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동맹을 맺었을 뿐만 아니라(합의 기간에는 개량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을 삼가는 것을 포함) 제국주의 부르주아 정당들 가운데 “민주적” 분파와도 손을 잡았다. 스탈린과 프랑스 외무장관 라발의 공동선언은 프랑스 공산당의 “사회적 평화”에 대한 약속과 함께 소련과 프랑스 간 군사협정을 얻어냈다. 이는 전 세계 ‘반파시스트’ 인민전선들의 모델이 되었다.


    트로츠키는 노동자공동전선을 제기했다. 노동자공동전선은 계급화해주의 인민전선을 세우려는 기회주의 정책과 맞서 싸우고 계급투쟁의 실질적인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단결된 운동을 (모든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핵심에 두었다. 


    1930년대 내내 트로츠키는 "반파시즘 전선"이라는 미명 아래 부르주아의 이른바 민주적-공화적 분파-항상 이러한 선거 구호를 내세웠던-와 타협하는 정책에 격렬하게 맞서 싸웠다. 이는 스탈린주의가 스페인과 프랑스에 인민전선을 건설하여 수많은 혁명적 과정들을 파괴하고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도록 하는 길을 닦은 기치였다. 20세기 후반 브라질에서는 이 정책을 되풀이한 결과 일련의 패배로 이어졌다. 브라질 공산당이 주도한 계급화해 정책은 노동자농민 운동의 패배로 이어졌으며 1964년 군사독재 정권의 대대적인 승리를 가능하게 했다. 군사독재 이후 시기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화해는 1988년 헌법에서 군부의 후견인역 확립으로 이어졌고, 1990년대 신자유주의로 향하는 길을 수월하게 했다. 동일한 결말을 맞은 역사적 사례들은 넘쳐난다.


    진정한 파시즘의 부상을 마주한 트로츠키는 1936년 7월 오스트리아 노동자들과의 대담에서 해당 문제를 조명했다. 트로츠키는 히틀러에 맞서 "반파시스트" 세력과의 동맹을 요구한 오스트리아의 사회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의 정책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그들의 모든 정책은 다음과 같은 사고에서 나온다: 오스트리아와 러시아 노동자들의 주적은 히틀러다. 따라서 그들의 당면 임무는 히틀러를 공격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오스트리아 안팎의 “민주적” 부르주아라는 수치스러운 이름이 포함된 모든 “반파시스트 세력”과 프롤레타리아가 동맹을 맺어야 한다. 당연하게도, 이 동맹은 계급투쟁을 완전히 유예해야만 가능하다. 다른 어떤 근거를 대더라도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계급의 동맹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방금 우리가 보여주려 했듯, 이 정책은 나치의 승리를 부추긴다.


    간결한 반증을 통해, 트로츠키는 부르주아(반파시스트 세력의 일부로 간주되는)와의 동맹은 계급투쟁을 미루고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조직을 무력화하면서 극우와 맞서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이는 파시스트의 위협에 직면해, 노동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가장 주요한 무기를 내다 버리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분석을 브라질의 상황에 적용하면 계급투쟁을 유예하는 것이 노동자당의 전형적 방식임을 알 수 있다. 일례로, 국립대학들을 향한 보우소나루의 공격에 직면했을 때, 노동자당과 연계된 노동조합 관료들은 투쟁을 조직하는 대신 기를 쓰고 도망쳤다. 룰라는 알크민으로 대표되는 재계 리더들에게 어떤 불안정의 신호도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10월 2일 대선 1차 투표 결과를 통해 -보우소나루가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표를 얻어 결선 투표가 열리게 됨- 이러한 정책이 극우파를 더 강력하게 만들 뿐이라는 게 드러났음에도 이들의 해결책은 “파시즘과 맞서기 위해” 선거에서 부르주아계급과 화해하는 것이다. 


    트로츠키는 스페인 좌익반대파 안드레우 닌과 그밖에 전 세계 다른 이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르주아와의 이러한 동맹들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 동맹들을 “반파시즘 전선”이라 부르든지, “확장된 전선”이라 부르든지, 아니면 소설가이자 프랑스 공산당원인 앙리 바르뷔스, 소설가 로맹 롤랑, 스탈린주의 코민테른 지도자들 같은 이들이 1930년대에 그런 것처럼 “대중들의 통일전선”이라 부르든지 간에 말이다. 트로츠키는 1935년 4월에 쓴 글에서, 노동자 공동전선의 기본 개념이  “부르주아 개인, 평화주의자, 민주적 작가들 등”과 연결되면서 의미를 상실한다고 말한다. 트로츠키의 결론은 이랬다. “이 모든 블록, 회의, 위원회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핵심을 구성하는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서 수동성, 비겁함, 무능력을 감추는 게 자신의 과업이다.”


    트로츠키의 예상은 정확했다. 선거를 통해 파시스트 문제를 해결하길 원했던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1930년대의 악몽 같은 시나리오로 이끌었다.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스탈린주의자, 그리고 민족 자본가 사이의 동맹은 “반파시즘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계급투쟁을 가라앉혔다. 노동자들의 사기가 저하된 틈을 이용해 돌푸스 정부는 사건을 일으키기 위한 일련의 도발을 감행했고, 결국 1934년 성공을 거둬 오스트리아군(軍)이 노동자들을 학살하도록 만들었다.


    프랑스에서는 공산당, 사회당이 공화주의 자본가(급진당)와 결성한 동맹이 1936년 인민전선의 창설로 이어졌다. 1934년부터 힘을 키워온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잡는 것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그러나 인민전선은 공장 점거 물결이 일어나고 있던 계급투쟁에 제동을 걸었으며, 혁명적 봉기가 패배하는 길을 예비했다. 이것은 차례로 패탱 원수(元帥)의 비시 정부와 나치의 점령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스페인에서는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그리고 스탈린주의자가 마누엘 아사냐와 디에고 마르티네스 바리오가 이끄는 공화주의 부르주아와 함께한 인민전선(안드레아 닌과 통합마르크스주의노동자당(7)의 지지를 받았다)이, 마찬가지로 사유재산의 수호와 자본의 지배를 인정했다. 영웅적인 스페인혁명을 파괴하면서 말이다. 점차적으로, 투쟁에 참여한 노동자 조직들은 파괴되었으며, 노동자 민병대는 무장 해제되었고, 공장은 이전의 소유주들에게 도로 넘어갔다. 프랑코 파시스트 정부를 향한 길을 닦으면서 말이다.


    이러한 각각의 역사적 실례에서 명백한 것은, 파시즘을 패퇴시키는 게 헤지스땡시아가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고 주장한 것처럼 투표를 통해서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진짜 파시즘 현상과 진지하게 맞서는 방법은 무엇인가? 파시즘에 맞선 투쟁은 선거가 아니라 물리적 투쟁을 포함한 계급투쟁을 통해서 해결된다. 그 시작점은 모든 자본가 정당들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이다.


    스페인의 예를 보자. 트로츠키는 인민전선에 반대해, 대토지 소유를 폐지하고 농촌 대지주들을 수탈해 소농에게 토지를 즉각적으로 재분배하며, 자본가들을 수탈해 공장을 즉각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넘겨주는 투쟁을 주장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인민전선의 입장과는 반대로 트로츠키가 마드리드 정부의 통치로부터 억압받는 민중의 해방을 수호하면서 모로코에서 스페인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할 것을 강조한 점이다. 그것은 프랑코세력 군부에 대한 정면 공격이었다. 이 정책은 “반파시즘 세력들”의 동맹 논리와 정확히 정반대였다. 그것은 기초적인 민주적 요구의 방어를 위해 가장 효율적인 조직을 기반으로 하여, 반자본주의 사회적 경제적 요구를 건설한다. 이는 공동전선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다시 말해 (소위 민주적 자본가들을 포함해) 자본가들에 맞선 계급투쟁 속에서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내건 노동자들의 단결된 행동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 이것이 극우파와 파시스트들에 맞서 싸우는 정확한 정책이다.


    나치가 승리하기 이전 독일에서의 상황을 두고 스탈린주의자들과 논쟁하면서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사회민주당 또는 독일 노동조합 지도자들과의 공동의 연단(演壇)도 없으며, 공동의 출판물, 깃발, 현수막도 없다! 따로 행진하되, 단결해서 파업하라! 오로지 어떻게 파업할 것인지, 누구를 대상으로 파업할 것인지, 언제 파업할 것인지만 합의하라!”


    좀 더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트로츠키가 사회민주당과 같은 개량주의 노동자 조직과의 선거 협정이라는 의회주의적 수단을 계급투쟁에 유해(有害)한 것으로 문제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심지어 인민전선의 시대 이전부터 그러했다. 그보다 훨씬 더 나쁜 것은, 우파, 대자본, 그리고 미제국주의의 민주당 분파와 함께하면서 룰라의 대통령 선거운동 속으로 자신을 용해시킨 헤지스땡시아의 기회주의적 적응이다.


    (어떻게 파업할 것인지, 누구를 대상으로 파업할 것인지, 언제 파업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에 기초한) 노동자 공동전선이라는 트로츠키의 방법은 실제로 성공을 거두었는가? 그랬다. 다양한 역사적 순간에서 말이다. 1917년 코르닐로프 장군(러시아혁명에 반대한 파시스트 세력)의 반란 시도에 맞선 투쟁에서, 볼셰비키는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케렌스키 임시정부 기간 소비에트를 이끌었던 개량주의 정당들)에 공동전선 전술을 제안했다. 이 공동전선은 노동자들을 단결시켰고 케렌스키와 동맹을 맺은 장군들이 이끄는 공격을 분쇄했다. 이 정책은 볼셰비키의 지위를 강화한 반면 계급화해주의자들의 지위를 약화시켰다. 코르닐로프에 맞선 투쟁은 케렌스키에 대한 어떠한 지지도 없이, 그리고 선거 수단들이 아니라 손에 쥔 무기를 가지고 수행됐다.


    1920년 독일 노동조합들의 공동전선은 카프 폭동을 물리치는 데서 결정적 요인이었다. 뒤이어 독일에서 히틀러에 맞선 투쟁에서, 브르후잘과 클링엔탈 지역에 노동자 공동전선이 건설됐다. 공동전선에는 공산주의자 노동자들, 브란들러-발처가 이끄는 사회주의노동자당(SAP)의 중도주의자들(이전에는 우익 반대파의 일부였다), 그리고 지도부에 저항하는 조합원들이 지역의 나치 세력을 패퇴시키기 위해 함께했다.


    1936년 7월 스페인혁명에서는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 공산주의자 노동자들이 파시스트들의 반동을 분쇄하기 위해 단결했다. (그러나 인민전선 군대가 이들을 억누르고 무장 해제했다.)


    비록 작은 규모였지만 심지어 브라질에서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1934년 갈리나스 베르데스 반란에서 다양한 정치적 그룹으로 구성된 노동자들의 공동전선을 이끌었고, 쎄 광장(Praça da Sé) 전투에서 통합주의자들(8)을 물리쳤다.


    코민테른 3차 대회에서 발전된 노동자 공동전선 전술은 마르크스주의가 가진 풍부한 무기들의 일부이며, 오늘날 필수적이다. 공동전선은 전술적 측면과 전략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전술로서 공동전선은 노동자 대열을 단결시켜 공동투쟁을 전개하기 위한 위급한 동맹으로서 개량주의자들과 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포함한다. 전략적으로 공동전선의 주요 목표는 대중들과 공동의 경험을 거침으로써 혁명정당의 영향력을 높이는 것이다. 대중들이 개량주의자들의 지도를 거부하도록 도와, 권력 장악을 위한 투쟁에 다수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모든 단계에서, 공동전선은 지배계급 내 어떤 분파와도 독립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반복하지만 독일에서 1933년 히틀러의 승리는 노동자 공동전선 전술에 대한 스탈린주의자들의 경멸, 즉 계급투쟁을 외면하고, 공산주의자 노동자들이 파시스트 집단에 맞서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어떤 형태의 연합도 못 하게 막은 데서 비롯됐다. 뒤이은 유턴에서, 스탈린은 인민전선을 이용해 혁명적 운동을 패퇴시켰다. 그것은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파시즘의 승리를 가져왔다.


    헤지스땡시아는 노동자 공동전선이라는 마르크스주의 정책이 아니라, 반마르크스주의 인민전선 정책의 변종을 채택했다. 이 정책은 “반파시스트” 우파부터 상파울루주산업연맹(FIESP), 알크민, 바이든과 함께 하는 선거연합을 지지한다. “함께 행진하되 절대 파업하지 말라!”가 그 공식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것은 보우소나루주의를 패배시키는 데는 무능력하지만 강화시키는 데는 충분히 유용한 룰라-알크민 후보의 계급화해주의 정책‧강령을 고수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압제자들과 단결한다며 계급투쟁을 미루는 수치스러운 정책이다.


    브라질에서 파시스트 봉기가 일어난다면, 헤지스땡시아의 정책은 필연적으로 노동자들의 치명적 패배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절대적으로 동떨어진 것이다.


    파시즘이 아닌 것을 왜 파시즘으로 규정하는가?


    브라질의 실제 상황은 무엇일까? 헤지스땡시아는 “파시즘”에 관한 노동자당(PT)의 선전을 앵무새처럼 반복하지만, 그것은 브라질의 정치 현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보우소나루주의 극우파의 반동적 행태를 정치이론적 범주로서의 파시즘과 반드시 구별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는 현실에서 배우기 위해, 이론적으로 일반화된 경험을 적용한다. 그러한 전통에 입각해, 우리는 파시즘의 핵심이 모든 노동자 조직을 완전히 파괴하고, 노동자들의 원자화를 통해서 그 재건을 막는 것이라 이해한다. 트로츠키는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목표는 오로지 경찰력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그를 위한 단 한 가지 수단이 있는데, 절망에 빠진 소부르주아 대중의 압력을 이용해, (프롤레타리아가 약해진 순간에) 프롤레타리아의 압력에 직접적으로 맞서는 것이다. 파시즘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자본주의적 반동의 바로 이 특정한 체계다.”


    파시즘은 절망에 빠진 중간계급과 거대 금융자본의 테러주의 정치가 결합한 산물이다. 파시즘은 소부르주아의 몰락한 부문들이,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야말로 자신이 겪는 역경의 이유라고 믿게 만든다. 파시즘은 노동자와 자본가들 사이의 공공연한 충돌이 발생할 때 반혁명 진영의 선제적이거나 후속적인 직접적 대응으로 나타난다.


    보우소나루는 트럼프주의 극우파의 야만성을 대표한다. 우리는 모든 차원에서 보우소나루 정치의 매우 반동적인 특성을 이해해야만 하며, 노동자계급이 가진 가장 훌륭한 역사적 수단을 활용하여 그에 맞선 엄중한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브라질리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이자 불꽃(Faísca) 회원인 루이자 이네끼가 말한 대로다. “우리는 노동자당(PT)이 하는 것처럼 자본이나 우파와 동맹을 맺지 않은 채, 교육에서의 긴축, 보우소나루주의, 혐오스러운 극우파와 싸우기 위해 단결을 조직할 필요가 있다.”


    조금만 이론적 엄밀성을 갖더라도 브라질에는 파시즘도 없고 파시스트의 발흥도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특정한 선거적인 환상들에 빠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타락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 사이에는 몇 가지 중간 단계가 있는데, 이 중 어느 것도 중대한 격변 없이는 도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정부의 기본 기능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개념인 보나파르티즘의 다양한 단계들도 포함된다. 트로츠키는 보나파르티즘을 이렇게 정의했다. 의회를 약화시키면서 좀 더 직접적으로 군사력에 의존하며, 언제나 자본주의적 소유를 보호하고 질서를 강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투쟁하는 계급들 위에 있으려 하는 정부형태. 좀 더 결정적인 물리적 충돌에 대해서는 아직 경종을 울리지 않으면서 말이다.


    “보나파르티즘은 “질서”의 도구다. 그것은 현존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소환된다. 정치적으로 계급들 위에 올라선 보나파르티즘은, 이전의 카이사르주의처럼, 사회적 의미에서 언제나 그리고 모든 시대마다 착취자들의 가장 강력하고 확고한 부분의 정부를 대표한다.“ (트로츠키, 1934년, <보나파르티즘과 파시즘>)


    유럽 국가들을 위해 작성된 이 정의는, “[국가] 관료체계의 정점들을 지시하고, 고무하고, 부패시키는” 제국주의 “금융자본”의 결정적 권력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라틴아메리카와 같은 반식민지 종속 지역에 적용했을 때는, 무엇보다 외국 금융자본에 대한 지역 대표자들의 굴종에 관한 것이기도 하다.


    보우소나루는 제국주의에 대한 가장 절대적인 굴종의 상징이다. 게다가 그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에 유리한 공격을 벌이기 위해 정부의 장군들과 사법적 권위주의에 의존하고 있다. (몇 가지는 의회 없이는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는 다양한 위기를 피해 나가기 위해 의회 내 자기 기반에 체계적으로 의존해왔다. 보우소나루표 보나파르티즘은 사회의 가장 진보된 부문에 오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결국 금융자본의 목적을 추구하는 “민주적” 수단을 방어하는, 또 다른 보나파르티스트 세력인 사법부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됐다. “공공질서가 어지럽혀질 경우” 군부에게 정치개입 권한을 주는 제142조와 같이, 독재정부가 만든 헌법 조항을 유지하는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금융자본과 대중들의 이해를 조화시키겠다는 이 헛된 시도는, 또한 자본과 노동의 동맹이라는 노동자당(PT)의 고전적인 개념을 부활시킨다.


    현실에 대한 과학적 분석은 정치적 단계들 사이에 명확한 구분을 만들며, 이것은 극우파에 맞서 더 나은 싸움을 벌이는 데서 필수적이다. 브라질에서는 혁명과 반혁명이 서로 충돌하고 있지 않다. 노동자계급의 현장 노동자들 사이에 곧 터질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대자본가들이 노동자와 민중에 대항해 내전의 방법을 사용할 준비를 요구받는 수준의 계급투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우소나루는 의회 기반을 포기할 수 없으며, 그것 없이는 취약해질 것이다. 보우소나루는 극우파를 흡수해 그를 “정상화”하려는 정권의 입법 및 사법 기관(예를 들어 연방대법원)으로부터 수개월 간 영향을 받아왔다. 파시스트 운동이 출현하기 위한 조건은 리더 개인의 열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계급의 객관적 요구에 달려 있다.


    이 분석은 브라질에서 우익 요소의 중요성을 깎아내리자는 것이 아니며, 쿠데타 위협, 선거 절차에 대한 공격, 그밖에 보우소나루 지지자들에게 전형적인 행위들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분석의 목적은 사회적 갈등의 현 단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올바른 방침을 발전시켜 내는 것이다.


    이것은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만일 우리가 파시즘에 실제 직면한 것이 아니라면, 이 지도자들은 “파시스트 위협”에 대한 경고를 통해 무엇을 얻길 바라는가? 그들의 목표는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체제가 점점 더 억압적으로 변모하는 것을 막고 “파시스트의 광란”을 멈출 유일한 길은 “룰라의 지도력”(룰라의 선거 승리)이라는 걸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다. 발레리오 알카리와 헤지스땡시아는 룰라-알크민 선거운동의 저렴한 옹호자가 되었다. 이 선거운동이 교회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보여주려 애쓰고, 여성의 임신중지권을 옹호하지 않겠다고 홍보하는데도 말이다. 그들은 노동자당(PT)이 선거에서 내놓은 입장들을 충실히 지지하고 있는데, 심지어 노동개악에 대한 공식 입장마저 복창하고 있다. 알카리에 따르면, 노동개악은 “수정”될 필요가 있다. 즉 그는 초자유주의 노동개악의 완전한 폐지를 요구하지 않음으로써 대자본의 이익에 복무한다. 화해에는 결과가 따른다. 이 경우에는 여성과 노동자계급에게 관건적인 문제들에 대한 그들의 강령이 후퇴하는 결과가 뒤따랐다.


    최근 브라질에서 일어나는 일을 파시즘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중운동이 실제 파시즘 위협에 대비하는 것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당(PT)의 정책과 사회-자유주의 연합(명목상 사회[민주]주의를 내건 세력과 신자유주의 세력의 연합 –옮긴이)을 정당화한다. 그것은 극우파가 강요하는 노동자에 대한 경제적, 사회적 공격에 맞선 대중 결집을 억제하는 것이다. 트로츠키가 지적한 대로, “반파시즘 세력”과의 동맹은 오로지 계급투쟁을 미루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부르주아와의 화해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평화”에 기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2016년의 제도적 쿠데타 이후 노동자당(PT)이 해온 일이다. 테메르의 노동개악에 맞선 2017년 4월 28일 총파업이, 노동자당(PT)과 연계된 노총들에 의해 결국 봉쇄되었음을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아니면 아무런 반대 없이 통과됐던 2019년의 범죄적 연금개악을 잊을 수 있나? 둘 다 2018년에 있었던 마리엘 프랑코와 카포에이라(브라질 전통무술) 사범 모아 살해 사건, 2022년 환경운동가 브루노 페레이라와 돔 필립스 살해 사건은 어떤가? 노총들이 무시했던 이들의 죽음은 극우파에 맞선 대결이 되어 나라를 마비시켰어야 하지 않았나?(9) 그리고 노동자들의 이익을 심각하게 축소하는, 경제장관 파울로 게데의 ‘그린 앤 엘로우 카드 프로그램’(브라질 국기 색인 녹색, 황색에서 이름을 딴 것으로, 고용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노동권 공격 정책 -옮긴이)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어떤 투쟁도 없이 통과됐던 것은 어떤가? 공교육에 대한 수많은 공격은 언급할 필요도 없다. 극우파가 가장 사악한 긴축정책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노동자당(PT)이 통합노총(CUT), 브라질노총(CTB), 전국학생연합(UNE) 지도부를 통해 보여준 대응은 대중운동의 무장 해제였다.


    우익의 전진이 공공연한 계급투쟁의 시나리오를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틀렸다. 이 생각은 2020년 트럼프 행정부 시기 미국에서 거짓으로 증명된 바 있다. 지도력이 수행하는 역할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서 필수적이다.


    헤지스땡시아는 노동자당(PT) 지도부가 알크민, 바이든, 대법원, 대자본과의 동맹으로 계급투쟁을 억제하는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헤지스땡시아는 스스로 “파시즘”이라 부르는 것과 맞서 싸우는 과제를 브라질 자본가국가의 통제 아래에 있는 룰라-알크민 정부 수준으로 강등시킨다. 그것이 노동자 투쟁의 조건을 “개선”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자본가국가가 파시스트에 맞선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알카리의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은,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이탈이라는 긴 사슬에서 마지막 고리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부가 파시즘의 위협으로부터 노동자계급을 “구출”할 수 있다고 보는 알카리의 생각과는 반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가국가를 대자본이 하위 계급을 억누르는 도구로 본다. 자본가국가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사용한다. 그것은 “민주적”일 수도 있고, 아니면 계급투쟁이 요구할 때는 파시즘일 수도 있다.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는 우익 보나파르티즘(또는 선(先)보나파르티즘)의 변종을 포함하기도 한다.


    헤지스땡시아는 노동조합을 국가 통제 아래 두거나, 국가와 연결된 노조 관료가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조직과 투쟁을 막을 수 있는 권력을 갖게 하는 정책들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원칙 중 하나를 깨뜨린 것이다. 노동조합 관료제는 자본가 민주주의의 주요 기둥 가운데 하나이며, 그것 없이 지배계급은 대중의 빈곤 속에서 최소한의 안정도 얻을 수 없다. 헤지스땡시아는 역병을 피하듯 계급투쟁을 피하면서, “진보 정부”가 어떻게든 흉악한 극우에 맞서는 “국가 차원의 안전장치”가 되리라는 노동자당(PT)의 환상을 부채질한다. 그러나 극우는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의 주먹으로, 그리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모든 경제적, 사회적 공격에 대해 “수정”이 아니라 폐지를 내걸고 투쟁하는 노동자 강령으로 분쇄돼야 한다. 


    6년 전, ‘혁명적 노동자운동’(MRT. FT그룹의 브라질지부)이 지우마 호세프 정부에 대한 우파의 제도적 쿠데타에 맞서 싸우는 동안, 발레리오 알카리는 제도적 우익 쿠데타를 지지할 것인지와 같은 기초적 문제를 두고 통합사회주의노동자당(PSTU)의 내부 논쟁에 참여했다. 유감스럽게도, PSTU는 ‘세차 작전’의 결과로 노동자당(PT)이 권력에서 제거된 것을 전진으로 보아, 쿠데타에 적응하는 입장을 채택했다. 이 심각한 오류에 대응하여, 당시 알카리 분파는 앞으로 나아가 제도적 쿠데타에 반대했다. 그것은 기초적 마르크스주의, 마르크스주의의 ABC에 기초한 입장이었고, PTSU의 굴복 때문에 그렇게 비쳐졌지만 어떤 거대한 진보는 아니었다. 상황은 비극이었다.


    그 후 알카리 분파는 쿠데타에 맞선 시위에는 기권하면서 “즐거운 미래를 건설하자”라고 이름 붙인 축제를 조직했다. 그것은 마르크스주의와의 결별을 심화시켰는데, 오늘날 그들이 수행하고 있는 수치스러운 역할에 의해 강화되고 있다. 알카리 분파가 가장 열광적인 선거주의에 기반해 있는 노동자당(PT)으로 용해된 것은, 이미 그 분파에게 해로운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이제 그 분파는 알크민과 바이든은 말할 것도 없고, 쿠데타실행자들, 신자유주의자들, 그리고 대법원, 상파울루주산업연맹, 브라질은행연맹, 그밖에 비슷한 종류의 반동들과 손잡고 “즐거움”을 선언한다. 헤지스땡시아는 과연 저항할 것인가? 오직 시간만이 답할 것인데, 시간은 무자비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으로 일반화했을 때 브라질 역사와 세계사는 우리에게 몇 가지 큰 교훈을 준다. 부르주아와의 동맹을 통해서는 극우와 싸우는 것도, 노동자계급에게 유리한 세력관계를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 ‘청년의 불꽃’은 브라질리아의 UnB, 캄피나스의 Unicamp, 상파울로의 USP와 같은 전국의 대학들에서 펼치진 상황에 개입할 때 바로 이 점을 보여주었다. 회원들은 현 상황에 대해 학생들과 토론하면서 룰라-알크민 후보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없이 보우소나루주의에 맞선 직접적 투쟁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자고 주장했다. USP의 마리아나 두아르테가 말한 대로, “지금 당장 우리의 첫 번째 임무는 극우에 맞서는 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현장 조직화, 집회, 파업 같은 우리 고유의 투쟁방식을 통해서 가능하다.”


    Unicamp에서 줄리아나 베지아또는 이러한 토론들에 힘을 불어넣는 투쟁의 기상을 보여주었다.

    “다마리스, 무로오, 히까르도 살레스 같은 혐오스러운 인물들이 당선되면서, 보우소나루주의는 브라질에서 계속 사회적 세력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파와 동맹을 맺지 않은 채, 투쟁하고 결집해서 반동적인 보우소나루주의에 대응해 나아가야 한다. 사장이나 사업가들과의 계급 화해라는 노동자당(PT)의 정책으로는 보우소나루주의를 물리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우파를 물리쳐야 한다. 노총들과 전국학생연합이 각 현장마다 집회를 조직할 것을 요구하자. 그 집회에서는 학생들이 노동자들과 함께 자기조직화를 할 수 있고, 우리에게 행해지는 모든 공격에 맞서 투쟁할 계획을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영역자 주>


    1. 룰라로 잘 알려진 룰라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는 노동자당(PT)의 대통령 후보이다. 룰라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브라질 대통령이었으며, 노동자당(PT)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노동자당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좌파 정당으로, 오늘날 이념적으로는 대략 사회민주주의에 해당한다. 룰라의 후임은 역시 노동자당(PT) 소속인 지우마 호세프였다.


    2. 룰라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는 브라질사회당(PSB)의 제랄도 알크민이다. 그는 상파울루 주의 전 주지사였다.


    3. 2015년 12월 브라질에서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부패”를 이유로 탄핵하는 절차가 시작됐다. 탄핵소추는 ‘세차 작전’(브라질리아의 한 세차장에서 처음 “적발”됐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됐다)에 기반해 있었는데, 그것은 2013년 호세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중에 시작된 브라질 연방경찰의 부패 범죄 수사로 처음에는 브라질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에 집중돼 있었다. 이후 이 범죄 수사는 룰라를 감옥에 가두는 데 활용됐는데, 이는 노동자당(PT)이 2018년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부였으며, 미 제국주의의 도움을 받았다. 결국 2016년 8월 브라질 상원은 지우마 대통령의 예산법 위반을 찾아내 지우마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써 국가기관을 활용한 무혈 쿠데타를 일으켰다.


    4. 사회주의자유당(PSOL)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이라고 말하는 브라질의 좌파 정당으로 규모가 꽤 있다. PSOL은 노동자당(PT)에서 축출당한 당원들이 만들었다.


    5. 좌파사회주의운동(MES)은 PSOL의 가장 큰 분파다.


    6. 페르시우 아리다는 브라질 개발은행의 전 총재다. 아르미니우 프라가는 브라질 중앙은행의 전 총재다. 페드루 말란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브라질 재무장관이었다.


    7. 통합마르크스주의노동자당(POUM)은 스페인에서 ‘트로츠키주의 공산주의 좌파’와, 코민테른 내 우익반대파와 연계된 ‘노동자와 농민’ 블록이 연합하며 결성됐다. 트로츠키는 결성을 반대했다.


    8. 브라질의 통합주의는 1930년대 초반의 운동으로, 당시 유럽의 대중적 파시즘 운동과 유사하다.


    9. 리우데자네이루 시의원이자 LGBTQ+ 활동가인 마리엘 프랑코는 2018년 3월 자신의 차에서 암살당했다. 모아 두 카텐데는 63세의 아프리카-브라질 무술 카포에이라의 사범으로, 사랑받는 문화인이자 흑인 권리 옹호자였는데, 스스로를 보우소나루 지지자라고 밝힌 자에게 2018년 10월 7일 살해당했다. 그날은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선거 1차 투표에서 승리한 날이다. 브루노 페레이라는 브라질 원주민 전문가로, 아마존 원주민의 토지에 대한 불법 침략에 맞서 서류 작성, 고소 등 아마존 원주민을 지원해왔던 활동가다. 돔 필립스는 2022년 6월 기습 살해됐을 때, <아마존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라는 책을 쓰기 위해 페레이라와 함께 브라질 아마존 열대우림의 서부 지역으로 연구 여행 중이었던 영국 저널리스트다. 살해범들은 아마도 불법 어업 네트워크 두목들 중 한 명에게 지시를 받아 행동했을 것이다.


    번역: 윤종훈, 김요한


    원문

    https://www.leftvoice.org/fascism-or-bonapartism-lessons-from-trotsky-for-understanding-brazil-under-bolsona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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