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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우익이 페미니즘을 이용하는 방법

셀레스테 무리쇼(Celeste Mur…
기사입력 2022.11.07 14:16 | 조회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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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로이터 통신

     

    세계의 정치 무대에 조르자 멜로니와 같은 우익 여성 지도자의 존재가 부상하고 있다. 이는 우파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어떻게 ‘페미니즘’을 부당하게 이용하는지 보여준다.

     

    지난 9월 이탈리아 총선에서 조르자 멜로니 우파연합이 승리하자 유럽 전역이 크게 우려했다. 멜로니의 집권은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토대로 한 극우세력 확대, 그 새 국면을 뜻한다. 그러나 멜로니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의 앞에는 리즈 트러스 영국 전 총리와 같은 ‘고전적인’ 우익 지도자들이나 프랑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나 독일대안당의 알리체 바이델과 같은 ‘복원자들’이 있다.

     

    이러한 광범한 우려를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한 사람은 미국 전 국무장관이자 유리천장 페미니즘의 아이콘 힐러리 클린턴이다. 그는 멜로니의 승리에 “한 나라에서 첫 번째 여성 총리의 선출은 항상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하며 그것은 확실히 좋은 일”이라고 반응했다. 그는 멜로니가 극우정당 소속인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의 선출은 클린턴에게 좋은 소식처럼 보인다.

     

    클린턴의 진술은 가장 최근의 역설적인 것이지만,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여성이 고위직을 맡을 때마다, 국가를 관리하는 이들의 젠더가 정책과 질적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젠더 워싱(Gender washing), 즉 권력의 자리에 있는 여성의 존재를 긍정적인 어떤 것으로 프레이밍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이는 여성들이 타고난 양육자, 조정자, 공감자로 간주되어, (이러한 특성이) ‘여성적인’ 자질로 제시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여성들이 공식적인 연설이나 선거 운동, 광고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유이다.

     

    동시에 팬데믹이나 다른 위기의 시기에, 권력의 자리에 있는 여성들의 존재는, 실비나 바타키스 아르헨티나 경제부 장관의 짧은 재임과 같이, ‘유리절벽’이라는 또 다른 오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여성들은 격동의 시기에, 단지 빨리 버려지기 위해 요직을 차지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인가?

     

    이상하지만 효과적인 혼합

     

    멜로니의 선거운동 슬로건은 ‘신과 조국, 가정’이었고 2019년에는 한 연설에서 “나는 여성이고, 엄마이며, 이탈리아인이자 기독교 신자”라고 선언했다. 그는 (“자연적인 가족을 지지하며, 게이의 로비에 반대하여”) 공개적으로 페미니즘과 LGBTQ+ 운동을 반대한다. 그의 가장 중요한 선거운동 이슈 중 하나는 반동적인 ‘민족 대체’ 이론에 따라 이탈리아 출생율을 높이는 것이었다. 다른 우파 여성 지도자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성, 어머니, 가족’이라는 프로필을 쉽게 사용한다.

     

    멜로니와 이러한 정치인들은 연구자 사라 패리스(Sara Farris)가 칭한 ‘페모내셔널리즘(femonationalism)’으로 수렴된다. 이는 반동적인 정책들을 지지하기 위해 페미니스트의 필요를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패리스와 다른 연구자들은 왜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점점 더 이슬람 혐오적으로 변해 가는지 뿐만 아니라 유럽 우파정당이 페미니즘 이슈를 받아들이는 이유를 알고자 했다. 많은 우파와 심지어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지지하는 머리 스카프 금지에 대한 논쟁은 이러한 현상의 한 예이며, 마흐사 아미니의 살해에 대한 이란의 시위에 의해 다시 활성화되었다. 억압에 맞선 투쟁을 국가의 반동적인 금지정책에 대한 지지와 혼동하는 것은 우익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여성의 권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이들 우익 부문은 성별 고정관념을 불러일으킨다. 남성 이민자, 특히 아랍이나 무슬림 출신 이민자들은 성적 위협이자 안보와 경제상의 위협으로 묘사된다. 여성들은 억압적인 문화로부터 구해져야 할 희생자로서 묘사된다. 동시에, 이 그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이주민들이 노동시장과 일반적으로 유럽 복지 부문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적절한 복지와 사회 서비스 제공에서 물러나면서 이민자들은 특히 어린이와 노인을 돌보는 문제에서 그 격차를 점점 더 메우고 있다.

     

    ‘문화적 위협’이라는 주장은 일반적으로 이민을 공격하기 위해 사용된다. 예를 들면, 스페인 극우 복스당 마드리드지부 지도자인 리치오 모나스테리오는 ‘진정한 페미니즘’이란 스페인에서 여성의 평등을 끝내고자 하는 이민자들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르펜은 2017년 “이주민 위기가 여성 인권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가 될까 두렵다”고 기록했다. 멜로니가 우크라이나 난민 여성에 대한 성폭행 동영상을 유포하면서 가해자가 아프리카 이민자라고 강조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여성을 안아 달라. 나는 우리 도시의 안전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멜로니는 마땅하게도 그 여성을 다시 희생시킨다는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그의 외국인 혐오적인 태도는 별로 논의되지 않았다.

     

    이탈리아 철학자 조르지아 세루게티(Giorgia Serughetti)에 따르면, 극우는 가해자가 이탈리아인이 아닌 여성혐오 폭력만을 겨냥한다. 이 나라에서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이탈리아인인데도 말이다. 그는 또한 여성이 전통적인 우익의 수사학을 동원하여 여성의 권리 침해에 항의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이민에 적대적인 여론에 호소하기 때문에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KKK단의 여성들

     

    우파가 젠더 워싱을 이용하거나 반동적 논리를 페미니즘의 외관과 결합시킨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21년 1월 6일 미국 국회의사당 난동은 종종 도널드 트럼프와 관련된 ‘해로운 남성성’의 표현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트럼프는 많은 여성 지지자들을 보유했으며, 큐어넌 운동의 대열은 여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일반적으로 백인 우월주의에 대한 여성의 참여는 과소평가된다. 아마도 그러한 반동적 현상이 불평등과 억압의 체계를 기반으로 하는 남성적 본질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울 것이다. 하지만 UC 버클리 역사가인 스테파니 존스-로저스(Stephanie Jones-Rogers)가 지적하듯이, 백인 우월주의에 연루된 여성들의 역사는 노예 제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반대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백인 여성들을 늘 희생당하는 동질적인 집단으로 위치시키는 경향이 식민시대부터 있었다.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여성의 참여는 노예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계속됐다. KKK단의 회원 수가 150만으로 성장했는데, 그들이 벌인 일의 대부분은 백인, 개신교 교외 주택가에서의 집단적 활동에 집중되었다. 언론인 에밀리 카타네오(Emily Cataneo)는 참정권 운동의 다양한 진영에 반인종차별주의적 비판이 부재했고, 투표할 권리가 획득된 뒤 이른바 페미니즘과 인종차별주의의 혼합을 가능하게 하는 시나리오가 열렸다는 것을 지적한다. 엘리자베스 타일러(Elizabeth Tyler)와 같은 선동가들은 KKK단의 부흥을 도왔고, 여성 KKK단(WKKK)을 설립하여 조직에 새로운 역동성을 불어넣었다. 카타네오가 설명하듯이, 여성 KKK단은 참정권 운동 기간 획득한 권리들의 “수호자로 자신을 위치지었다.”

     

    존스-로거스는 백인 여성들이 투표권을 획득하자, 백인 우월주의를 정치화하는 데 필요한 동맹이자 그들 나름대로의 선거 블록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성폭력을 이용하는 것 또한 백인 우월주의를 옹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흑인 남성에 대한 린치를 합법화하기 위해 강간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후 여성들은 아동 복지에 대한 권위 있는 목소리로서 학교의 인종 차별 금지법에 대한 반발의 핵심이기도 했다.

     

    큐어넌 운동도 마찬가지로 여성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부당하게 이용했다. 대부분 여성인 이 그룹의 회원과 지지자들은 아동 인신매매 반대 캠페인 #SaveTheChildren(#어린이들을 구하라)을 주도했으며 힐러리 클린턴, 버락 오바마 등을 소아성애자라고 비난하는 ‘피자게이트’ 음모를 증폭시켰다. 더욱이 이러한 캠페인에는 복지와 돌봄에 대한 담론이 기묘하게 교차한다. <증오의 자매들: 백인 민족주의의 최전선(Sisters in Hate: Front Lines of White Nationalism)>의 저자인 시워드 다비(Seyward Darby)가 언급한 바와 같이, “자신과 자신의 삶과 가족의 삶의 문제들을 정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여성을 겨냥하여 큐어넌 같은 그룹이 만든 호소들에 매우 공통적이다.

     

    여성이 더 잘 통치하는가?

     

    다시 힐러리 클린턴으로 돌아가 보자. 여성이 권력을 잡는 것이 본질적으로 좋은 일일까? 이탈리아 사회학자 엘리아 아르피니(Elia Arfini)는 우파와 페미니즘 사이의 교차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더 이른 출발점으로 비욘세, 이방카 트럼프, 도브와 같은 브랜드가 그들의 마케팅 담론에 페미니즘을 포함시켰을 때를 주시했다(‘진보적 신자유주의’라고 들어봤는가?). 아르피니는 “배제, 억압, 불평등을 조장하는 영역에서 체계적인 사회 정의의 페미니스트 목표를 추구하면, 페미니스트 메시지의 세계적 확장은 모순과 역설로 가득 찬다”고 지적한다.

     

    극소수의 영향력 있는 여성만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는 테이블에 앉아 있는가? 그렇다. 하지만 성차별을 비판하는 것은 더 많은 여성 총리와 대통령을 갖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둥을 개선하거나 방해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 이글은 원래 Ideas de Izquierda에서 10월 23일 스페인어로 출판되었다(Otto Fors 번역).

    * 원문 : https://www.leftvoice.org/how-the-right-wing-uses-feminism-for-its-own-purposes/

     

    (번역) 정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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